【此身、心佛及衆生】

2018. 1. 10. 05:17송담선사 법문



【朝入頌

三界猶如汲井輪
百千萬刼歷微塵
此身不向今生度
更待何生度此身

- 『삼문직지』 三門直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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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

삼계유여급정륜三界猶如汲井輪한데,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삼계三界는 흡사 뭣과 같으냐 하면은,
깊은 물에서 물을 품는 두레박과 같은 것이다

백천만겁역미진百千萬刼歷微塵이다,
백천 만겁 동안 띠끌수와 같이 삼계三界에 윤회輪廻허기를 그렇게 겪어왔다 그 말씀이여.
생겨난 때가 없이 무량겁無量劫 전前부터서 생로병사生老病死 속에서 두레박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허면서 오늘날까지 왔고,

(此身不向今生度하면 更待何生度此身고.)
금생今生에 이몸을 제도하지 아니하면 앞으로 무량겁을 생사윤회生死輪廻를 거듭헐 것이다.

이런 게송이었습니다.

........

첫째, 정법正法을 믿어냐 하는 것입니다.
막연하게 불교佛敎허면 참 범위가 넓습니다.
경經을 통해서 교리를 연구헌다던지, 아미타불阿彌陀佛이나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염불念佛을 해가지고 자꾸 닦아가는 그런 염불 수행도 있을 것이고, 옴마니반메홈(oṃ ma ṇi pad me hūṃ)과 같은 진언眞言을 외와 가지고 목적을 달성헐랴고 허는 그런 종파도 있습니다. 육바라밀六波羅蜜이라던지 그런 것을 닦아가지고 자꾸 향상向上해 나가는 길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용화선원에 법보제자法寶齋者는, 모든 것을 부인否認을 허지 않지마는 가장 모든 것을 포함包含해 가지고 있는 한가지 의무義務가 있습니다.
그것은,

‘중생과 마음과 부처가 따로 따로 있는것이 아니라 차별이 없이 바로 그것이 하나 속에 다 갖춰져 있다’고 허는 법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정법인 것입니다.

[화엄경]에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마음과 부처님과 중생이,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이다, 이 세가지가 차별이 없느니라.>

차별差別이 없다고 허는 것은, 그 하나 속에 다른 것이 그속에 다 갖춰져있다고 허는 것입니다.
이것을 철저히 믿고 수행을 헌다면은 ‘수행修行의 방법方法도 그 속에 들어있는것’입니다.

우리는 잠시도 아-무 생각없이 그냥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없이 그냥 있을라고 해도 그것이 불가능헌것입니다. 끊임없이 온갖 생각이 일어납니다.

일어나는 그 생각 속에 ‘부처님’도 들었고 ‘법’도 들어있고 그속에 ‘중생’도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어나는 그생각이 무조건허고 그것을 안할랴고 헌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없앨랴고 헌다고해서 된는것이 아닙니다.
일단 그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난 그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이 무엇고?’이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생각...생각이라기보다는 관觀을 허는 것입니다.

의, 의심疑心의 관觀을 허는 것입니다.
모든 공부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知識과 상식常識을 통해서 여러 가지 각도에서 연구하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적용을 허고 그렇게 공부를 해가기 마련이지만는, 내가 나를 찿는 참선공부은 지식과 교리敎理와 분별심分別心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이 무엇고?’ 무슨 좋은 생각이 일어나도 ‘이 무엇고’ 나쁜 생각이 일어나도 ‘이 무엇고’ 대관절 이 ‘이놈이 무엇인가’ 이렇게 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공부는 너무 건단허고 너무 쉬워서 옛날 고인네는 이 공부를 ‘세수허다가 코만지기보다도 더 쉽다’고 이런 표현을 허셨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기自己에게있는 것을 자기自己가 찾는 공부이기 때문에 넘녀노소도 상관이 없고, 머리가 좋고 나쁜것도 상관이 없고, 지식이 있고 없고허는 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얼굴이 잘나고 못나고 헌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어떠헌 사람이라도 끊임없이 생각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그 생각이 일어나는 근본이 무엇인가를 찿는 것은 지극히 간단한 일입니다.

[화엄경]이나 [법화경]같은 그런 경전經典을 통해서 연구허는 것도 아니고, 일어나는 생각을 바로 거기에서 ‘이 무엇고?’허고 일어나는 생, 그 근본根本을 찿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라도 이공부는 헐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누워서도 헐 수 있고 걸어가면서도 헐 수 있고, 속이 상할때도 헐수가 있고 슬프고 기쁠때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험으로 해서 결국은 자기가 자기의 마음을 깨닫게 되는것이고, 자기가 자기의 자기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요 이것이 정법正法인 것입니다.

이공부를 안해놓고보면 흥망성쇠興亡盛衰와 희로애락喜怒哀樂 속에서 곤두박질을 치면서 갖은 업業을 지으면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헐수밲에는 없습니다.
이 공부를 아니헌 사람은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 일어나 가지고 그, 그것을 감내를 못해가지고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온갖 죄업罪業을 지어가지고 생사윤회生死輪廻를 거듭할수밲에는 없는 것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67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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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大道를 통通허면은, 대도大道 통通한 그놈 하나 떡 불거져 나오고는, 이 삼라만상森羅萬象, 산하대지山河大地와 만상삼라萬象森羅와 일체一切 모든 것이 없어져 뻐린다. 버뇌, 중생 버뇌망상煩惱妄想이 통- 없어져 뻐린다.’ 그런법 없어.

척! 깨달라 놓으면은 깨달은 곳에 나아가서,
내 본각대의本覺大意 확철대廓徹大, 자아自我를 자각自覺 탁 해놓으며는, 삼라만상森羅萬象과 산하대지山河大地와 정여무정情與無情이 모두 다 가풍家風 법法이여.
밥, 법法이여. 추어망담醜語妄談도 개시묘법皆是妙法이여.
하나 무슨 뭐 깨달기 전에는 모도 응? 착물着物 착상着相이지마는, 깨달고 보니 일체一切가 원륭법계圓融法界요 생사生死없는 대大 법계法界네.

- 전강선사 법문 64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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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識滅空、識性自空】

色、色空為二。色即是空、非色滅空、色性自空、如是受想行識。識即是空、非識滅空、識性自空、於其中而通達者、是為入不二法門。

색色과 색이 공함(色空)은 둘(二)이 된다.
색色 그대로가 바로 이 공空인 것으로, 색이 소멸(色滅)해서 공空인 것이 아니라 색의 본성(色性)이 그대로 공(自空)한 것이며 수상행식受想行識도 이와 같다.
식識도 그대로가 바로 공(自空)이어서, 식을 멸(識滅)해서 공空이 아니라 식의 본성(識性)이 그대로 공(自空)이며 그 가운데에서 통달通達하는 것, 이것이 불이 법문不二法門에 들어가는 것이다.

- [유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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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身不向今生度、更待何生度此身


차생실각此生失却하면,
만겁난우萬劫難遇니라.

허망虛妄허다, 허망헌 것이 무상無常하다.
아무 참 소용없어 허망혀. 무상혀. 상常이 없어.
금방 그만 그저 잃어 버리고 없어져 뻔지고 이건 뭐 허망 무상혀.

그것 무엇이 허망虛妄 무상無常허냐?
멀리 갈 것 없어.
내 이 똥망태가, 이것 똥망태 이것이 무상한 것이고, 허망한 것이여.
차신此身이, 이 몸띵이 내 몸띵이가.

그런디 그까짓 무상無常하고 허망虛妄한 것인디, 본래 어디 이 뭐 이 뭐가 있나 말이여.
생각해 봐.
과학이니 철학이니 무슨 뭐 뭔 천문天文, 뭔 문무文武 기술을 다 때려 붙여 봐. 아 뭐 그 차신此身 이 몸띵이가 허망虛妄허고 무상無常한 것인디, 그 뭐여?

어 무상하고 허망한 것 보담도, 본래 없느니락 했으니, 생사生死가 없닼 해... 생사가 어디 있나 켔으니, 어디, 어디 뭐가 있나?

헌디, 만겁萬劫에 난우難遇니라.
이 몸띵이 한번 잃어버리면 만겁萬劫에 난우難遇니라.
만 겁에 만나기 어렵다. 그게 무슨 말이여?
그걸 개거이, 껍딱으로만 그렇게 듣고 허지를 말고 좀 깊이— 깊이 생각해 봐라 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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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응해 스님 설법에 - 응해 스님이 무슨 견성을 했나? 뭐 했나? 문, 문자견성文字見性했다고 헌 이여. 문자, 선방禪房한 번 나온 사람인가? 사판事判중이지.
커지만은 그 어른 설법, - 똑 그 게송 하나에 내가 발심發心을 했어. 발심이라는 것은 도 닦을 마음 내는 것이 발심이여.

‘아이고 닦아, 도를 닦아야겄다, 내가 나를 깨달아야겄다’ 그 말만 나 가지고 말로만 하는 것은, 그것 참 값없는 것이여.
그 놈이 나자 오장육부에 콱 백혀, 어째 활 살이 그 이상 더 백힐 수 있나? 그 놈 하나 나 버리면 그만이여.
무슨 게송인고 하니 이것이여.



불생不生,
불멸不滅이니라.

나무 아미타불.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니라.’
남도 없고 멸함도 없느니라.
그 생사生死 없으니까.
남도 없고 멸함도 없다는 그 한 글구에 활살이여.
바로 쏜 활살이여. 과녁에 딱! 백힌 활살이여.
그 법문 한 마디 듣고 발심發心을 했어.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니라, 남도 없고 멸함도 없느니라.
죽음도 없지만은, ‘남도 없고 멸함도 없느니라’ 했으니,
그 본각주인공本覺主人公, 주인공, 내 주인공主人公은 본각本覺이여.
본래本來 각覺이여.
본래각本來覺이 그, 각覺이 그대로 꽉 갖촤져 있는 객覺이여.
그런데 왜 미迷했을까? 왜 이렇게 껌껌허니 미迷했을까?

오悟와 미迷가 있아, 있, 있어, 깨달은 본각本覺이 미迷했어. 미했으니 고것이 중생衆生이여.
그 중생衆生 몸띵이 고것이 차신此身이여.
미迷헌 몸띠이, 이 중생, 몸뚱이가 차신此身이여.
이 생, 생사生死있는 몸뚱이, 죽고 사는 몸뚱이, 그 놈이 거, 차신此身이여.

이 몸띵이를, 차신此身을 실각失却하면, 잃어버리면 그말이여. 얻었다마는 잃어버리면, 만겁萬劫에 난우難遇니라.
만 겁에 이 몸, 만, 만나기 어려우니라.

어저께 헌 법문 또 혀.
만겁萬劫에 난우難遇다. 만겁난우萬劫難遇니 그걸, 한번 지내간 과거는 그만 두고 미래 응, 만겁萬劫이 그것이 무슨 뭐 역사歷史가 있어야 만겁 그녀너 것 계산하지, 만 겁이 그 같은 것이 뭐 뭐 계산해서 차츰차츰 하루 이틀이면 그 잠깐 오는 것이여. 그 놈의 것이 역사가 없는디, 미迷허면 중생衆生인디, 오悟를 못허고 미迷해가지고는 이 지경 되아가지고 잃어버리면, 오늘 잃어버릴는지 내일 잃어버릴는지 잃어버리면, 억 만금 보배 가지고 있다 잃어버린데다 댈 것인가?
어따가 비유하겄는가?

헌디, 이 몸띵이는 식풍고객(격)識風鼓擊이지, 거 무슨 아는, 알 식識자 바람 풍風자. 잉? 식識, 응, 식풍識風이 고객鼓擊이여. 응, 식풍 그 놈 하나 그만 북소리 나, 나다가 가 버리면 그만이네, 잃어버리네.

그러허니, 이 몸띵이를 금생今生에 실각失却허면 만겁萬劫에 난우難遇니라.
그 만겁萬劫에 이 실각失却은 실각인디 이 몸띵이 얻었으니 잃어버릴건 정칙定則인디 누가 안 잊어버릴 수가 있나?

거 만겁萬劫에 추한追恨이다. 왜 만겁에 한恨이 딸른고?
어쨌든지 요몸뚱이 요것을 가자假借해사, 색상色相이지마는, 상견相見 몸뚱이지마는, 색상色相 상견相見 몸띠이 요녀너 똥푸대를 가자假借하지 아니허면, 이 놈을 받아 오지 못했드라며는, 미迷를 벳길 수가 없어.
그 청풍淸風이 아니면은 다뿍 찐 안개를 걷우들 못혀.

이 몸띵이를, 이놈을 안 가지, 가자假借치 아니하면은 깨달을 도리가 없으니 이 몸띵이를 하나 받아 왔구나.
어쩌다가 받았든고 모르지. 받아 왔다.
일체 동충動蟲 가운데 이것 인충人蟲을 사람 몸뚱이라고 헌 것이지. 그래도 참 이걸 가지고 왔구나.
왔지마는 그러헌 무상無常과 그러헌 허맹虛妄이 왜 있노?

자 자경自警을 한번 스스로 한번, 자경自警이라,
스스로 한 번 깨달라라. 깨달라 봐라.

- 전강선사 법문 160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