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庭前柏樹子 정전백수자】

2017. 11. 27. 13:26전강선사 법문

【庭前柏樹子여、뜰앞에 잣 냉기여】


양춘탄일곡陽春彈一曲이요 송월시만창松月時滿窓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개창開窓 견정수見庭樹요
만엽일추성萬葉一秋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

양춘陽春에 탄일곡彈一曲이다.
봄이 돌아왔는디 거문고 곡조를 탄다.
거문고 터억 그 화창한 춘일春日에 타고 앉았어.

그때 마침 송월松月은 만창시滿窓時지.
솔달은 창에 가득 한 때라.
솔냉기 사이로 비추어주는 달빛은 창앞에 가득- 혀.

개창開窓에 견정수見庭樹요.
창窓을 열고 뜰앞에 냉기를 본다.

만엽일추성萬葉一秋聲이로구나.
봄에 바램이 부니 일만 이파리가 추성秋聲이여.
가을 소리여.
가을 바람이 불어서 나무 잎은 만엽萬葉이 흔들거린다 그말이여.

——

참선법叅禪法이 다른법이 아니여.
참선법이라는 것은 그대로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여. 뜰앞에 잣 냉기여.
아 이런것이 제일구第一句 참선법 아니여?
그 모도 깨, 견성見性 해가지고 지은 것인디.
옛날 큰스님이 견성해가지고 이렇게 지었어.
이 견성見性 도통시道通詩여.
도통시인디 얼른 들으믄 그 알 수 없지.
자연 경계自然境界, 평상화平常話 그대로지.

——

그 뭐 양춘陽春에 탄일곡彈一曲이여.
양춘陽春은 한참 그 일기日氣가 온화해서 봄 경계가 대단히 화창한 때를 양춘陽春이락 햐.
양춘陽春에, 그 좋은 때 거문고를 터억 탄다 그말이여.

송월松月 만창시滿窓時다.
솔이라도 좋은 솔 속에, 달이 솔 사이로 비춘 놈이 그 운치가 더 있고 대단히 대자연 경치거든!
그 솔, 솔사이로 비추어진 달은 창앞에 가득-하다.
그 다른 도리 아니여. 그게 생사없는 도리여.
그게 참선도리叅禪道理여.
세상에 그렇게 쉬운 도리, 그렇게 아! 바로 일러준 도리, 그것을 이렇게 그만 맥혀 보덜 못허고 우리 중생은 캄캄 칠통漆桶속에서 미迷해가지, 미迷해가지고 우리 일생一生 이렇게 참 허망하지.

개창開窓에 견정수見庭樹허고,
창을 열고 정수庭樹를 봤다 그말이여.
그러헌 판인디 창窓 열고 정수見庭樹를 보다가,

만엽일추성萬葉一秋聲이로구나,
일만냉기 이파리에 한 가을 소리로구나.
가을에 모도 부니까 낙엽소리가 후- 일어나는 것이 가을바람 소리로구나.

——

아! 그놈이 그만 들어와서 내 면목面目을 보게 맨든다 말이여!

그, 그 경계, 그 경계 쫓아가서 - 자연경自然境이라고 헐런지 천연경天然境이라고 헐런지 뭐 비밀경秘密境이라고 헐런지 - 그러헌 무슨 어디가서 마음 밖에 찾는게 아니라 그러헌 경계 속에서 나를 봐 부렀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놈이, 그놈이 경계가 모도 내 면목面目 도리道理지 다른 도리 아니란 말이여.
그렇게 깨달라 버렸어. 선禪 도리道理가.
그러니 선 도리가 모도 그러한 도리지 다른거 무엇이 있소?
이 중생경계衆生境界를 여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중생 경계 그대로가 참선법叅禪法이지!

그러니 우리 이렇게 도道도 사는 가운데, 이 몸뚱이 얻어가지고 나와서 이 몸띵이 가지고 사는 가운데 얼마든지 나를 찾을 수 있고 얼마든지 나를 닦을 수 있고 아 참선叅禪할 수 있고 견성見性할 수 있고 견성해서 해탈解脫헐 수 있고 해탈 한번 해버리면 그만 우리 인생人生문제가 시심마是甚麼냔 말이여.

- 전강선사 법문 338번.




———————

참선은,
아까 조실스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평상화平常話, 일상생활日常生活, 밥먹고, 옷입고, 똥누고, 일하고, 소지하고, 걸어다니고 허는 그 생활生活이, 생활生活을 한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참선叅禪을 해야만 하는 것이고, 깨달음도 역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일을 하고 발로 걸어다니고 생각으로 성내고 웃고 울고 하는 그 일상日常 평상시平常時의 생활生活을 조끔도 여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도 그렇고 또한 참선叅禪도 그렇습니다.

중생衆生의 번뇌망상煩惱妄想 일체행동一切行動 동작動作을 떠나서 깨달음이 있다면은 그것을 떠나서 찾아야 되겠지마는, 중생의 눈과 귀와 코와 입과 몸띵이와 생각 그놈을, 일찰나一刹羅도 떠나지 아니하고 깨달음은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있다고 허는 것은 ‘부처님이 거기에 계시는 것’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은 탁자위에 모셔논 부처님, 또는 삼천년전에 정반왕淨飯王에 탄생하셨다가 팔십세를 일기一期로 열반涅槃하신 싯타르타 서가모니釋迦牟尼 그 부처님만이 부처님인줄 알고,
바로 지금! 산승은 말을 하고 있고 여러분은 지금 산승의 말을 듣고 계십니다.
듣고 있는 그놈! 그놈을 여의고는 참 부처님은 안계신 것입니다.
그놈을 항시 놓치지 말고 그놈에서 자기를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놈이 있길래 눈을 통해서 볼 수 있고 귀를 통해서 들을 수 있고 코를 통해서 냄새 맡고 입을 통해서 말하고 음식을 먹고.

아까 조실스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문을 열매 뜰앞 뜰에는 나무가 섰다.
그 나무를 봄으로 해서 그 나무를 통해서 내가 나를 보는 것이 그것이 견성見性’이라 하셨습니다.

견성見性이라 하는 것은, 내가 나의 부처를 친견親見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하없는 모든 일은 다 할 수가 있어도 한가지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이 몸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 나의 몸으로부터서 부처님을 밖으로 내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백 만번 뛰었다 엎쳤다 온갖 짓을 다허고 헌다 하더라도 나로부터서 나의 부처님을 밖으로 내몰수가 없어요. 오히려 그 부처님을 안볼려고 허고 내몰려고 헐수록 나의 부처님은 더욱 소소영영昭昭靈靈허게 나에 의해서 보여지는 것입니다.
너무 분명分明하고 가깝기 때문에 그것은 부처가 아닌 줄 알고 그놈을 내놓고 찾기 때문에 우리는 그 나의 자성自性을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뜰앞에 있는 나무, 누가 못보는 것입니까.
누구라도 장님이 아닌 다음에는 문을 열면은 뜰앞에 있는 뜰에 있는 나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나무만 보고 나무는 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너무 평범平凡한 것은 우리는 그것이 위대偉大한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국왕의 은혜, 국가민족의 은혜,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 다 이 우리가 세세생생에 갚을려고 해도 갚기가 어렵지만은 정말 고마운 것은 ‘공기’라고도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공기가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고 하면서 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무의식 중에도 언제라도 우리는 그 공기는 제절로 이 공기가 우리 코를 통해서 드나들고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탄광, 장성에서 탄광에 화재가 나가지고 이번에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만은, 그러헌 일을 당해봐야 공기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 없을 때에는 공기가 얼마나 우리에게 고마움을 주고 있는가를 아무도 느끼지를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깨닫는 것도, 언제나 나의 부처 , 나의 성품, 나의 마음자리는 이 몸으로부터 조끔도 떠나 있지를 않습니다.눈으로 볼 때, 귀로 들을 때, 입으로 말하고 음식을 먹을 때, 발로 걸어다닐 때, 울고 웃고 썽낼 때 바로 그곳에 나가 있건만 어째서 내가 나를 보질 못해.

이것은 이론적으로 아무리 설명해봤자 소용이 없는 것이고 이론적으로 설명을 들어보았자 소용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활구참선을 통해서만이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58번.

———————

【贈心印禪子

山矗矗水泠泠
風習習花㝠㝠
道人活計只如此
何用區區順世情(一)

叅禪明了了
栢樹立中庭
可笑南詢子
徒勞百十城(二)

- 벽송당야로송 碧松堂埜老頌


산은 삐쭉 삐쭉하고 물은 영롱히 맑으며
바람은 보드랍고 꽃은 그윽하다.
도道 닦는 사람의 살아나가는 방도가 이같을 뿐
어찌 구구하게 세간의 정情을 따를 필요가 있겠는가.

참선은 밝고 분명하니
잣나무가 뜰 안에 섰느니라.
가히 우습다 남순동자여
헛되이 백십성을 다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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