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25. 19:20ㆍ글뭉치
【필삭기筆削記】
한 사람이[眞如], 홀연히 잠이 들어 [無明], 꿈을 꾸면서[業相], 갖가지 일을[現相] 보고[轉相], 분별을 일으키면서[智相], 분별이 염념이 간단이 없다[相續相].
간단없는 분별을 하면서 자기 감정에 어기는 대상(違境)과 감정에 순종하는 대상(順境)에서 깊이 취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내어 [執取相] 선하게 여긴 것은 친근하다 하고 악하게 받아들여지는 대상은 소원하다 한다[計名字相]. 선하고 친근하게 여겨지는 대상엔 갖가지 은혜와 이익을 베풀고 악하고 소원하게 여겨지는 대상에서 갖가지로 능멸하고 손해를 끼치다가[起業相], 혹 은혜로 보답함이 있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혹 원한으로 갚는 경우를 만나면 괴로움으로 받아들이 다가[業繫苦相] 흡연히 꿈을 깨고 나선 이상에서 있었던 꿈속의 일들은 모두 일시에 버리게 된다.
비록 근본무명 때문에 삼세의 미세함으로부터 육추의 현저한 차별상에 이르기까지 사상四相이 단계적으로 내려왔음을 논변하긴 하였다. 그러나 사상의 시작과 끝을 깨닫는 데는 시간적인 전후가 없으며, 이 사상을 총괄하여 일념으로 삼는다. 이는 삼세와 육추가 용해되어 융합한 일심一心일 뿐임을 말한다. 그러므로 사상이 전후의 시간차를 두지 않고 동시에 존재하여, 따라서 모두가 낱낱으로 자립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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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한 사람이 홀연히 원한이 맺힌 사람을 만나 그를 살해하였다[起業相]. 그 사람이 장씨 성이나 왕씨 성을 가졌다고 여기며[名字相], 그 사람은 나에게 원한이 있다고 단정적인 말을 한다[執取].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 간단없이 계속하여 [相續相], 이는 원한이고 이는 친근하다고 분별한다[智相]. 상대방은 볼 대상이 되고[現相], 자기는 보는 주관이 되어[轉相], 그로 인해 망심이 염념이 일어나고 요동하여 [業相], 삼세 육추가 최초의 근본무명업상 가운데에 나머지 여덟 가지 모습이 빠짐없이 동시에 갖추어지게 된다.
그러나 마음의 근원을 끝까지 추궁하지 못한 자는 일기사상(一期四相)을 수행하는 위차(位次)의 천심에 따라서 사상을 깨달아 가는 데에 시간적인 전후가 있게 된다. 그러나 마음의 근원을 통달한 사람은 일념사상(一念四相)을 동시에 안다. 경전에서는 그 문제를 말하기를 ‘보살은 수행위차에 따라 멸상滅相에서 주상住相까지만 깨달아 알고 최초의 생상生相은 모르지만, 부처님 여래如來만은 사상四相의 시작인 생상生相과 끝인 멸상烕相까지를 동시에 함께 아신다.’ 라고 하였다.
이미 무명불각無明不覺의 세력 때문에 생상 등등의 갖가지 꿈같은 망념을 일으켰다. 이 망념이 마음의 근원을 요동하고 전변하여 멸상에까지 이르러 삼계의 생사에 영원히 잠이 들어 육취의 세계로 생사유전한다. 그러다가 지금은 본각의 불가사의한 훈습의 세력으로 인해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다시 진여에서 유출한 교법을 듣고 본각을 훈습한다. 이로 인해 진여의 자체와 본각이 동일하고, 여기에서 일어나는 훈습의 작용인 외연外緣의 교법敎法과 내적으로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는 마음이 하나로 융합 소통한다. 그리하여 진여에서 유출한 교법을 듣고 그 훈습을 받아들여 자성에 대한 이해의 세력을 더한 만큼 무명망념을 감손하게 된다. 이로 인해 점진적으로 마음의 근원을 향하여 처음에는 멸상을 종식시키고 끝내는 생상마저 불식 (拂息)하여 일심진여를 환하게 깨닫는다.
일심진여인 마음의 근원을 깨닫고 나면 그 근원은 본래 무명에 요동하는 바가 없었으므로 지금 본각을 시각했다 해서 심체가 새삼 고요해 진 것은 아니다. 일체의 만법은 일심이 나타난 모습이므로 마음과 만법은 두 모습이 없이 평등하고, 평등하다는 인식까지도 평등하여 시각始覺과 본각本覺이 구별되는 모습이란 없다. 이는 『화엄경』에서 말한 「비유한다면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큰 강물에 빠져 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은 꿈속에서 강물을 건너려고 커다란 용맹심을 내어 큰 방편을 시행한다. 그는 큰 용맹심으로 건널 수 있는 방편을 시행하기 때문에 바로 잠에서 깨어나며, 잠에서 깨고 나면 꿈속에서 시행했던 모든 일을 쉬게 된다………」라고 하였다.
- [대승기신론] 송찬우. (현수스님의 ‘대승기신론 필삭기’를 인용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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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有一人[真如] 忽然睡著[無明] 作夢[業相] 見[轉相] 種種事[現相] 起心分別[智相] 念念無間[相續] 於其違順深生取著[執取] 為善為惡是親是疎[計名] 於善於親則種種惠利。於惡於疎則種種陵損[起業] 或有報恩受樂。或遭報怨受苦[業繫苦相] 忽然覺來上事都遣。當知此事唯一夢心。皆因等者法也。九相之興皆依此力。如依於睡有諸夢事。
…..
且如一人忽逢一怨。便行殺害[業起] 如以為張人王人[計名] 定言於我有怨[執取] 惡心無間[相續] 分別是怨非親[智相] 彼為所見[現相] 已為能見[轉相] 心念起動[業相] 即於一念之中八相具足。
然於二義中正唯前義。亦可一念者即一心也。故下文云。一念相應。即無念之一念也。謂麁下出所以。或問曰。既有麁細前後等差。何得說為一念。故此釋也。謂雖有麁細等差。而是一心而作。豈有心在滅相。而生相中無心。若言無者。生何所依。亦不可分此一心以應四相。既心不可分。復無前後。如何四相得有前後耶。如人是一夢種種事。夢事雖多即無前後。故說下引證。即始覺末文。正云。而實無有始覺之異。以四相俱時而有皆無自立。本來平等同一覺故。
然未下六決通伏難。或難云。既四相同時。何故覺者有其前後。故此釋之。達心源下以了四相同依心者。方得俱時而知也。如人夢中說夢。漸漸而知。或至覺來方可併悟。斯乃得失在人。不應疑法。經云下引證。始者下轉釋所引。並可知。
既因下七結成始覺二。初順流釋所覺。所覺即不覺也。種種夢念即煩惱障。轉至滅相即業障。長眠下即報障。既三障所覆。殊不覺知。無始至今未曾覺悟。故云長眠。三界即依報六趣謂正報。於此六中數數歸往。故名為趣。
今因下。二約反流以明能覺。能覺即始覺二。初明起覺因緣。本覺熏者。內因熏也。覺力冥熏微妙叵測。名不思議。本覺是體熏令厭求是用。此即內因體用也。又因下明外緣熏力。真如是體。所流教法是用。此即外緣體用也。梁攝論說從清淨法界。流出正體。智正體智流出後得智。後得智流出大悲心。大悲心流出十二分教。清淨法界即是真如。據本而言。故云真如所流教法。聞熏者。謂以聞慧熏得真流之教。反資覺性。令彼有力。是則本覺所流教法。還即熏於本覺。
以體下二顯覺起功用。即指前內外熏力。能起始覺也。體同即外緣之體與內因體無二相故。即真如同本覺也。用融即外緣教法與內厭求。二相通和不相違拒也。領彼聞熏者。正顯同融之相。若不同融即不領受。以領彼故。遂能資益內熏覺性。起始覺之解。解力既增無明力劣故。得反流漸向心源也。始息滅相下明其漸向之義。從初信位止其造惡。次了我空。漸斷法執。覺至本識窮了生相。纖塵既盡覺照獨存。故曰朗然大悟。即無明夢盡成究竟覺也。
- [起信論疏筆削記] -宋-子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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