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남명계송證道歌南明繼頌》 독송본.

2023. 3. 9. 13:59글뭉치

남명증도가송..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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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嘉大師證道歌南明泉禪師繼頌》 上

  영가대사증도가남명천선사계송  

 

 

 

證道歌는, 歌此曲이니 

涅槃會上에 曾親囑하시다 

金色頭陀가 笑不休하시니 

數朶青山이 對茅屋하도다

 

도道 증證한 노래는 이 노래를 불러가니, 

열반회상涅槃會上에 일찍이 친親히 부촉付屬하시다. 

금색두타金色頭陀가 웃음 그치지 아니하시니, 

두어 뿔 푸른 산이 띳집(초가)을 대對하였도다. 

 

 

 

君不見가, 是何顏고 

擬議思量하면 隔亂山하리라 

從此曹磎門外句가 

依前流落向人閒하리라

 

그대는 아니 보는가? 이 어떤 낯인고? 

여겨서 의론議論하여 사량思量하면 어지러운 산이 가리우리라. 

이로부터(이를 좇아) 조계문曹溪門 밖의 구句가 

예전같이 흘러 떨어져 인간人閒에 향向하리라. 

 

 

 

絕學無爲閒道人은, 

雲蹤鶴態어니 何依托이리오 

春深幽鳥가 不歸來하니 

巖畔群花가 自開落하는구나.

 

배움이 그쳐 함이 없는 한가한 도인道人은, 

구름의 자취요 학鶴의 모습이니 어디 붙으리오? 

봄이 깊거늘 깊은 새 돌아오지 아니하니, 

바위 가에 모든 꽃이 스스로 피었다 졌다 하는구나.

 

 

 

不除妄想하며 不求眞하나니, 

眞妄이 都如鏡裏塵하니라 

打破虛空光影斷하야사 

此時에 方見本來人하리라.

 

망상妄想을 덜지 아니하며 진眞을 구求하지 아니하나니, 

진眞과 망妄이 다 거울 속의 티끌 같으니라. 

허공虛空의 빛 그림자를 쳐서 헐어버려 끊어야, 

이때 본래本來의 사람을 보리라.

 

 

 

無明實性이 即佛性이니, 

兩處는 由來強立名이니라. 

四海晏清時雨가 足하니  

不勞野老로 賀昇平이니라.

 

밝음 없는 실實한 성性이 곧 불성佛性이니, 

두 곳은 예로부터 옴에 억지로 이름 세우니라. 

사해四海가 편안便安히 맑고 시절時節의 비가 족足하니, 

들 늙은이로 승평昇平 경하慶賀함을 수고롭게 말지니라. 

 

 

 

幻化空身이 即法身이니, 

若了法身이면 無內外하니라. 

疥狗泥豬는 却共知어늘 

三世如來는 曾不會하시니라.

 

곡두(幻)같이 된 빈 몸이 곧 법신法身이니, 

만약 법신法身을 알면 안팎이 없느니라. 

도랑 먹은 개와 흙 묻은 돼지는 도리어 다 알거늘, 

삼세三世의 여래如來는 곧 알지 못하시니라. 

 

 

 

法身을 覺了하면 無一物하니, 

瑩若晴空에 絕點霞하도다. 

因憶靈山當日事하야 

携筇春徑에 踏殘花하니라.

 

법신法身을 깨달아 알면 한 물건도 없으니, 

맑음이 갠 허공虛空에 한 점點의 노을도 없음과 같도다. 

인因하여 영산靈山의 그 날의 일을 생각하여, 

대막대를 잡고 봄 길에 지는 꽃을 밟느니라.

 

 

 

本源自性인 天眞佛은, 

目若青蓮하고 齒似珂하도다. 

未識慈尊은 須急去하라. 

迴頭하면 鷂子가 過新羅하리라.

 

본래本來의 근원根源이 제 성性인 천진불天眞佛은, 

눈이 푸른 연꽃 같고 이(齒)는 구슬 같도다. 

자애慈愛로우신 세존世尊을 알지 못한 이는 모름지기 빨리 가거라. 

머리 돌이키면 도롱태(새매)가 신라新羅를 지나리라. 

 

 

 

五陰은 浮雲이 空去來하나니, 

英英似有하나 還非實이니라. 

西風一陣이 掃無蹤하니 

萬里山河가 共晴日이로다.

 

오음五陰은 뜬 구름이 속절없이 가며 오나니, 

치성熾盛하게 있는듯하나 도리어 실實(실다움)이 아니니라. 

서풍西風 한 무리가 쓸어 자취 없으니, 

만리萬里의 산하山河가 다 갠 날이로다. 

 

 

 

三毒은 水泡가 虛出沒하나니, 

起滅이 無蹤하야 不可窮이로다. 

勿謂水泡가 名相異하라. 

千波萬浪이 盡朝宗하나니라.

 

삼독三毒은 물 거품이 속절없이 나며 꺼지나니, 

일어나며 사라짐이 자취 없어 가히 다하지 못하리로다. 

물과 거품에 이름(名)과 얼굴(相)이 다르다 여기지 말라. 

천 물결과 만 물결이 다 조종朝宗하나니라. 

 

* 조종朝宗: 「선종禪宗의 근본 뜻에 계합契合함」을 의미한다. ‘조朝’는 뵙는다는 것이니, 첫째로 신하가 임금을 뵙고, 둘째로 아랫사람이 상관을 뵙고, 셋째로 자식이 부모를 향하는 것이다. ‘종宗’은 제후諸侯들이 여름에 천자天子를 조현朝見하는 예禮이다. [주례周禮]에, ‘봄에 천자天子를 조현朝見하는 것을 조朝라 하고, 여름에 조현朝見하는 것을 종宗이라 한다’ 하였다.

 

 

 

○ 證實相하면 絕離微니, 

不在東邊하며 不在西하니라. 

最好江南三二月에, 

折花風暖커늘 鷓鴣啼하노라.

 

실상實相을 증證하면 리離와 미微가 끊어지니,

동東녘 끝에 있지 아니하며 서西녘에 있지 아니하니라.

강남江南 이삼월二三月에 꽃 피고 바람이 덥거늘,

자고鷓鴣새 울음소리를 가장 즐기노라.

 

 

 

無人法하야 只此人이니,

見說今年이 直是貧이라호라.

擧目에 已無依倚處하나

金剛이 門外에 尙含瞋이로다.

 

사람과 법法이 없어 오직 이 사람이니, 

‘올해가 바로 가난하다’ 이르거늘 보라. 

눈 듦에 이미 의지한 곳이 없으나, 

금강金剛이 문門 밖에 오히려 화(怒)를 머금었도다. 

 

 

 

剎那에 滅却阿鼻業하나니, 

休言善惡이 不同途이라 하라. 

須知罪性이 猶霜雪하야 

慧日才昇에 一點無이니라.

 

찰나刹那에 아비업阿鼻業을 없게 하나니, 

선善과 악惡이 한 길이 아니라 이르지 말라. 

죄罪의 성性이 서리와 눈과 같아서, 

지혜智慧의 해가 갓 올라옴에 한 점點도 없는 것을 모름지기 알지니라.

 

 

 

若將妄語하야, 誑衆生하면 

自己인들 何緣으로 能出離하리오. 

此心은 終日類孤舟하야 

只欲含靈이 免淪墜하시니라.

 

만약 거짓말을 가져서 중생衆生을 속이면, 

내 몸인들 어느 연緣으로 능能히 여의어 벗어나리오? 

이 마음은 저물도록 외로운 배와 같아서, 

오직 함령含靈(중생)이 꺼지어 떨어짐을 면免코자 하시니라.

 

 

 

自招拔舌塵沙劫이라 하시니, 

莫大之恩을 豈易酧이리오. 

對此하야 翻憐遠遊子의 

光陰이 喪盡호되 不迴頭하노라.

 

‘내 진사겁塵沙劫에 혀 뽑힘을 부르리라’ 하시니, 

이보다 더 큼이 없는 은혜를 어찌 쉬이 갚으리오? 

이를 대對하여서 멀리 노니는 아들의 

광음光陰이 다하여 없어져 가되 머리 돌이키지 아니함을 뒤집어 어여삐 여기노라. 

 

 

 

頓覺了하고, 即忘筌호리니 

依舊眉毛가 在眼邊이로다. 

向上機關을 何足道이리오. 

飢來喫食하고 困來眠하나니라.

 

몰록 깨닫고는 곧 전筌(통발)을 잊으리니, 

예로부터 눈썹 털이 눈 가에 있도다. 

향상向上의 기관機關을 어찌 족足히 이르리오?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조느니라. 

 

 

 

如來禪을, 須密悟호리니 

寂靜無爲하야 超四句하니라. 

團扇을 雖將하야 擬月輪하나 

俊鷹은 不打籬邊兔하나니라.

 

여래선如來禪을 모름지기 밀밀密密히 알지니, 

고요하여 함이 없어 사구四句에 건너뛰니라. 

둥그런 부채를 비록 가져서 달 둘레와 견주나, 

날랜 매는 울타리 가의 토끼를 치지 아니 하나니라.

 

 

 

六度萬行이 體中圓하니, 

眞體엔 無勞辨同別이니라. 

萬水蟾光을 任去留이어다 

皎皎天心엔 唯一月이니라.

 

육도만행六度萬行이 체體의 가운데 원만하니, 

진체眞體엔 같으며 다름을 수고로이 가림(辨)이 없느니라. 

만萬 물(水)에 섬광蟾光[달]이 가며 머무름을 맡겨둘지어다. 

맑은 하늘 가운데엔 오직 한 달이니라. 

 

 

 

夢裏에 明明有六趣하니, 

苦樂이 相交하야 不暫停하나니라. 

欲出輪迴生死海인댄 

須從北斗하야 望南星이어다.

 

꿈 속에 밝고 밝게 육취六趣가 있나니, 

고苦와 낙樂이 서로 섞여 잠깐도 머물지 아니 하나니라. 

윤회하는 생사生死의 바다에서 벗어나고자할진댄, 

모름지기 북두北斗를 좇아서 남성南星을 바라볼지어다.

 

 

 

覺後에 空空하야 無大千하니, 

始信從前自拘縛호라. 

如今에 要識本來空인댄 

門外青山이 倚寥廓이로다.

 

깬 후後에는 비어서 대천大千이 없으니, 

이전부터 제 스스로 매었던 줄을 비로소 신信하노라(믿노라). 

이제 본래本來 빈(空한) 줄을 모름지기 알려할진댄, 

문門 밖에 푸른 산이 훤한 데에 기대었도다. 

 

 

 

無罪福하며, 妄眞捐하니 

皎月이 當秋이라도 莫喻圓이로다. 

仗劒文殊도 猶不見이온 

豈容生死가 到伊邊이리오.

 

죄罪와 복福이 없으며 망妄과 진眞을 버리니, 

맑은 달이 가을을 당當하여도 두렷함을 견주지 못하리로다. 

칼 짚은 문수文殊도 오히려 보지 못하거늘, 

어찌 생사生死가 저 가에 다다름이 있으리오? 

 

 

 

無損益하니, 更何疑리오 

佛祖도 從來自不知하시니라. 

南北東西에 無閒斷커늘 

鳥窠가 空把布毛吹하니라.

 

손損(손해)과 익益(이익)이 없으니 다시 어찌 의심疑心하리오? 

불조佛祖도 예부터 옴에 스스로 알지 못하시니라. 

남南 북北 동東 서西에 끊어진 사이가 없거늘, 

조과鳥窠가 속절없이 베 터럭을 잡아 부니라.

 

 

 

寂滅性中엔 莫問覔이니, 

坐斷千峯하니 過者難하도다. 

莫訝空堂에 無客到하라. 

從來不許外人看이니라.

 

적멸성寂滅性 가운데엔 물어서 찾지 말지니, 

천 산을 끊어 앉으니 지나가는 이가 어려워하도다. 

빈 집에 손님 올 리 없음을 의심疑心치 말라. 

예전부터 옴에 밖의 사람 봄을 허락하지 아니하니라.

 

 

 

比來에 塵鏡을 未曾磨하니, 

心垢가 爲緣하야 漸昏黑이로다. 

神膏를 點出하야 一堂이 寒하니 

始信靈光이 非外得호라.

 

요 사이에 티끌 묻은 거울을 닦지 아니하니, 

마음의 때가 연緣이 되어 점점漸漸 어두워져 검도다. 

신고神膏를 찍어내어 한 당堂이 서늘하니, 

신령한 광명이 밖에서 얻지 아니한 줄을 비로소 신信하노라(믿노라).

 

 

 

今日에 分明須剖析호리니, 

爭肯區區徇世情이리오 

決散浮雲ᄒᆞ야 孤月이 

上ᄒᆞ니 大千沙界一時明ᄒᆞ도다.

 

오늘날에 분명分明히 모름지기 쪼개어 분석하리니, 

어찌 부지런히 세정世情(세간의 뜻)을 쫓으리오? 

뜬 구름 흩어져 외로운 달이 돋으니, 

대천사계大千沙界가 한 때(一時)에 밝도다.

 

 

 

誰無念이리오 念皆眞이니, 

若了眞眞이면 未出塵하리라. 

到岸捨舟가 常式事이어니 

何須更問渡頭人이리오.

 

뉘라서 념念이 없으리오? 념念이 다 진眞이니, 

만약 진眞을 진眞이라고 알면 티끌에 벗어나지 못하리라. 

저 언덕에 다다라 배를 버림이 상식의 일이거니, 

어찌 모름지기 강 건네주는 사람에게 다시 물으리오? 

 

 

 

誰無生이리오 生是妄이니, 

妄起無根하야 即實相이니라. 

一夜에 曹溪水逆流한데 

平人이 無限隨波浪하니라.

 

뉘라서 남이 없으리오? 남[生]이 이 망妄이니, 

망妄 일어남이 뿌리가 없어 곧 실상實相이니라. 

하룻밤에 조계曹溪의 물이 거슬러 흐르는데, 

평범한 사람이 한 없이 물결을 좇느니라.

 

 

 

若實無生인댄 無不生이니, 

生生이 豈與無生으로 異리오. 

無不生時에 一物無하니 

欲識無生인댄 萬法이 是니라.

 

만약 실實로 무생無生인댄 불생不生도 없으니, 

생生과 생生이 어찌 무생無生(남이 없음)과 다르리오? 

불생不生이 없는 때에 하나의 어떤 것도 없으니, 

무생無生을 알고자 할진댄 만법萬法이 이(是)라.

 

 

 

喚取機關木人問하라, 

此理는 從來不屬知하니라 

若謂無知를 是眞道인댄 

秋風臺殿에 黍離離하리라.

 

기관목인機關木人을 불러서 물어라. 

이 이치는 예부터 옴에 앎에 속하지 아니하니라. 

만약 앎이 없음을 이 진도眞道(진실한 도)라 여길진댄, 

가을바람의 누대와 전각에 기장이 무성하리라.

 

 

 

求佛施功하면 早晚成이리오. 

無證無修하야사 功自久하리라. 

看取虗空이 滿目前하라. 

豈容捉搦에 隨人手이리오.

 

부처를 구求하여 공功을 들이면 어느 때에 이루리오? 

증證 없으며 닦음 없어야 공功이 스스로 오래이리라. 

허공虛空이 눈앞에 가득함을 보라. 

어찌 잡음에 사람의 손을 좇음이 있으리오?

 

 

 

放四大하야, 

獨坐獨行에 無罣礙하도다. 

破席을 閑拖하야 向日眠이어니 

何心에 更覓超三界리오.

 

사대四大를 놓아, 

혼자 앉으며 혼자 다님에 막힘이 없도다. 

헌 돗자리를 한가로이 끌어와 해를 향向하여 조나니, 

어느 마음에 다시 삼계三界에 건너뜀을 얻으리오?

 

 

 

莫把捉호리니, 

翦翦規規하면 成大錯이리라. 

欲將心意하야 學修行인댄 

大虗에 豈解生頭角이리오.

 

붙잡지 말지니, 

전전翦翦하며(잘게 부서지며, 破碎) 규규規規하면(뿌리 없이 떠다니면, 自失) 큰 착錯(그르침)이 이뤄지리라. 

심의心意를 가져 수행修行을 배우고자 할진댄, 

큰 허공虛空에 어찌 능能히 머리와 뿔이 생겨나리오?

 

 

 

寂滅性中에 隨飲啄하야, 

無思無慮하야 混時流하도다. 

曾餐一粒家田米호니 

直至如今히 飽未休하여라.

 

적멸성寂滅性 가운데에 마시며 찍어 먹음을 좇아서, 

사량思量 없으며 분별없어 시류時流에 섞이도다. 

일찍이 한 낱 집 밭의 쌀을 먹으니, 

바로 지금에 이르도록 배부름이 마지 아니 하여라.

 

 

 

諸行이 無常하야 一切空하니, 

緣起緣終에 性本同하니라. 

欲捨緣生하고 求實義할진댄, 

猶如問北할 이 却行東하리라.

 

제행諸行이 항상함(常, 변치않음)이 없어 일체一切가 비니[空], 

연緣이 일어나고 연緣이 마침에 성性은 본래本來 한가지니라. 

연생緣生을 버리고서 실實한 뜻을 구求하고자 할진댄, 

북北녘을 묻는 이가 도리어 동東으로 감과 같으리라.

 

 

 

即是如來大圓覺이니, 

更無一物이 可雌黃이로다. 

倚簷山色은 連雲翠커늘, 

出檻花枝는 帶露香하도다.

 

곧 이 여래如來의 대원각大圓覺이니, 

다시 한 물건이 가히 자황雌黃함(고칠 것)이 없도다. 

집 기슭에 비스듬히 기댄 산 빛은 구름을 연이어서 퍼렇거늘, 

난간에 내민 꽃가지는 이슬 가져 향기롭도다. 

 

 

 

決定說을, 莫狐疑어다. 

直下承當하야도 已是遲니라. 

香嚴은 當日에 成何事오. 

擊竹하고 徒言上上機라 하도다.

 

결정決定된 말을 의심疑心치 말지어다. 

바로 알아도 벌써 늦었느니라. 

향엄香嚴은 그날에 무슨 일을 이루었는가? 

대[竹]를 치고서 속절없이 상상근기上上根機라 이르도다.

 

 

 

表眞乘하니 不虗僞하야, 

攝盡塵沙無量義하니라. 

堅密이 長如百鍊金하니 

剛鎚猛燄으로 徒相試하도다.

 

진승眞乘을 표表하니 허虛하며 거짓되지 아니하여, 

진사塵沙(티끌모래) 같은 그지없는 뜻을 다 가졌나니라. 

굳음이 백 번을 불린 금金과 같으니, 

굳은 망치와 매운 불로 속절없이 서로 시험試驗하도다.

 

 

 

有人이 不肯인댄 任情徵이어다. 

意句交馳千萬狀이로다. 

園裏花枝를 任短長이니 

青帝春風은 還一樣이니라.

 

시혹(時或) 사람이 신信치(믿지) 아니할진댄 마음껏 물을지어다. 

의구意句가 섞여 달려 천만千萬 모습이로다. 

정원 속에 꽃가지의 짧으며 긺을 무던히 여길지니, 

청제靑帝의 봄바람은 도리어 한 모양이니라. 

 

 

 

直截根源은 佛所印이시니, 

電轉風行이 頃刻閒이니라. 

火急歸來하야 莫迴顧이어다. 

須臾에 寒日이 下西山하리라.

 

바로 근원根源을 끊음은 부처의 허락하신 바이시니, 

번개 옮으며 바람 행함이 경각간頃刻間(눈 깜짝할 사이)이니라. 

빨리 돌아와 돌아봄을 말지어다. 

수유須臾(잠깐사이)에 차가운 해가 서산西山에 내리리라.

 

 

 

摘葉尋枝를 我不能하노니, 

數去飜來에 何所得이리오. 

可憐遊子가 逐芳菲하야 

不覺紅塵이 蠧顏色이로다.

 

잎 따며 가지 찾음을 내 능能히 못하노니, 

헤아려 가며 도로 옴에 무엇을 얻으리오? 

가련하다! 노니는 아들이 향기로움을 좇아 

홍진紅塵(妄想)이 안색顔色(本來面目)을 좀 먹는 줄 알지 못하는구나.

 

 

 

摩尼珠는, 

本無瑕纇하야 絕精麁하니라. 

月白風清去年夜에 

一帆飛過洞庭湖호라.

 

마니주摩尼珠는, 

본래本來 허물없어 정精(가늚)과 추麁가(거침이) 끊어지니라. 

달 밝고 바람 맑은 지난해 밤에, 

한 돛으로 동정호洞庭湖를 날아 지난다.

 

 

 

人不識하노니, 

無量劫來로 至今日이로다. 

放下皮囊하고 子細看이언정 

不須向外空尋覓이어다.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무량겁無量劫으로 오늘날에 이르도다. 

가죽주머니를 놓아버리고 자세히 볼지언정, 

밖을 향向하여 속절없이 찾음을 모름지기 말지어다. 

 

 

 

如來藏裏에 親収得이니, 

要識如來藏也麼아. 

酸酒冷茶三五醆으로 

長江에 風急거늘 浪花多하도다.

 

여래장如來藏 속에서 친親히 얻을지니, 

여래장如來藏을 알고자 하는가? 

신(시어버린) 술과 찬(차가워진) 차(茶) 세 다섯 잔으로, 

긴 강江에 바람이 빠르거늘 물결 꽃이 많도다.

 

 

 

六般神用이 空不空하니, 

在聖在凡에 無異質하니라. 

不二門開하야 任往還이어니 

何須更問維摩詰이리오.

 

여섯 가지의 신령한 용用이 공空하되 공空하지 아니하니, 

성聖에 있거나 범凡에 있음에 다른 바탕(質) 없느니라. 

불이문不二門이 열려 마음대로 가락 오락 하거니, 

무엇을 구태여 유마힐維摩詰께 다시 물으리오?

 

 

 

一顆圓光이 色非色이니, 

那律能觀으로도 不易觀이로다. 

正體는 從來誰得見고 

風高天地하니 雪霜寒하도다.

 

한 낱 두렷한 빛이 색色이로되 색色이 아니니, 

나율那律의 능能히 봄으로도 쉽게 보지 못하리로다. 

정正한 체體는 옛부터 옴에 누가 능히 보는고? 

하늘과 땅에 바람이 높으니 눈과 서리가 서늘하도다. 

 

 

 

淨五眼하면, 異還同이니, 

萬別千差가 畢竟空하도다. 

誰知塵劫無窮事를 

如視菴摩가 在掌中이리오.

 

오안五眼이 깨끗하면 다름(異)이 도리어 한가지(同)니, 

만별萬別와 천차千差가 마침내 비도다(空). 

진겁塵劫의 다함없는 일이, 

암마菴摩가 손바닥 가운데 있음을 봄과 같음을 누가 알리오?

 

 

 

得五力하야사 是眞修이니, 

去去長依聖道流하는구나. 

直趣菩提心匪席이어니 

有何魔外가 敢擡頭이리오.

 

오력五力을 얻어야사 이 진실眞實의 닦음이니, 

가며 감에 성인聖人의 도류道流에 길이 의지하는구나. 

바로 보리菩提에 나아가는 마음이 돗자리가 아니거니, 

어떤 마구니와 외도가 구태여 머리 들어 올릴 리가 있으리오.

 

 

 

唯證이라야 乃知라 難可測이니, 

一點孤明이 若大陽하도다. 

盲者는 不知光所在하야 

低頭冷坐하야 暗思量하도다.

 

오직 증證한 이라야 아는지라 헤아림이 어려우니, 

한 점點의 외로운 밝음이 태양 같도다. 

눈이 먼 이는 광명光明 있는 곳을 알지 못하여, 

머리 숙이고 차갑게 앉아 그윽이 사량思量하도다.

 

 

 

鏡裏에 看形이 見不難하니, 

顏容이 雖似하나 還非實이니라. 

欲識當年舊主人인댄 

剔起眉毛하라 在今日하니라.

 

거울 속에 얼굴 봄이 보기가 어렵지 아니하니, 

모양이 비록 같으나 도리어 실實이 아니니라. 

당년當年의 옛 주인主人을 알고자 할진댄, 

눈썹 털을 헤쳐라. 오늘날에 있느니라.

 

 

 

水中에 捉月이어니 爭拈得이리오, 

眞月은 何甞在水中이리오. 

但得癡猿의 狂解息하면 

江河淮濟를 一時通하리라.

 

물의 가운데 달 잡음이어니 어찌 잡아 얻으리오? 

진실眞實의 달은 어찌 물 가운데 있으리오? 

오직 어리석은 원숭이가 미친 앎이 없으면, 

강江 하河 회淮 제濟를 한때에 통通하리라.

 

 

 

常獨行하야, 

過得潼關하야사 罷問程이니라. 

一徑森森한대 人不到하니 

黃金殿上에 綠苔生하도다.

 

항상 혼자 행行하야, 

동관潼關을 지나서 길을 묻지 말지니라. 

한 길이 삼삼森森한데 사람이 가지 아니하니, 

황금전黃金殿 위에 파란 이끼가 나도다. 

 

 

 

常獨步하나니, 

從前更勿別門戶하니라. 

何事로 寒山은 愛遠遊하야 

如今에 忘却來時路이라 하였는고.

 

항상 혼자 걷나니, 

이전부터 다시 문호門戶가 다르지 아니하니라. 

무슨 일로 한산寒山은 멀리 노님을 즐겨, 

이제 온 길을 잊으라 하였는고?

 

 

 

達者로 同遊涅槃路호니, 

看來엔 皎皎勿遮欄하도다. 

古今履踐이 何曾息이리오. 

遊子는 休言下脚難이라 하라.

 

통달한 사람으로 열반涅槃의 길에 한 데 노님이, 

봄엔 맑으며 맑아 막지(가리지) 아니하도다. 

예와 이제에 밟을 이가 어찌 잠깐인들 없으리오? 

유자遊子는 발 디디기 어렵다 이르지 말라.

 

 

 

調古神清하야 風自高하니, 

若涉絲毫하면 未相許하리라. 

妙峯頂上에 忽逢時에도 

不與白雲으로 爲伴侶하니라.

 

격조格調가 옛스러우며 신神이 맑아 도풍道風이 스스로 높으니, 

만약 실 터럭 만큼이나 간섭하면 서로 허락지 아니하리라. 

묘봉妙峯 정상 위에 문득 만날 때에도, 

백운白雲으로 벗 삼지 아니하니라.

 

 

 

貌顇骨剛하야 人不顧하나니, 

取相凡夫가 豈易猜리오. 

子貢은 不知蔾藿味하야 

空馳駟馬하야 入門來하도다.

 

모양 여위어 시들고 뼈 부르돋아 사람이 돌아보지 아니하나니,

상相을 취取하는 범부凡夫가 어찌 쉽게 헤아리리오? 

자공子貢은 여곽藜籗(콩잎)의 맛을 알지 못하여, 

속절없이 사마駟馬를 달려 문門에 들어오도다.

 

 

 

窮釋子는 續眞風하니, 

三世如來格調로 同이로다. 

莫訝通身無所有하라. 

伊家活計는 本來空하니라. 

 

가난한 석자釋子는 진풍眞風을 이으니, 

삼세여래三世如來의 격조格調로 한가지로다. 

온 몸이 있는바 없다 의심疑心 말라. 

이 집 활계活計는 본래本來 비었느니라. 

 

 

 

口稱貧하나 心煥爾하니, 

城市山林에 無所止하도다. 

著箇孃生破布衫하니 

幾經劫火하였느냐만 長如此하도다.

 

입으로는 가난하다 이르나 마음은 밝으니, 

성시城市(도시)와 산림山林(산중)에 붙은 곳이 없도다. 

어미 낳은 헌 베적삼 입으니 겁화劫火를, 

얼마나 지내었냐마는 마냥(길이) 이 같도다. 

 

 

 

實是身貧하나 道不貧하니, 

囊無一物하야 度青春이로다. 

報爾世人하노니 休取相이어다. 

一番拈起하니 一番新하도다.

 

실實로 몸이 가난하나 도道는 가난치 아니하니, 

가죽주머니에 한 어떤 것도 없어 푸른 봄을 지내는구나. 

너희 세상 사람에게 아뢰나니 상相을 취取하지 말지어다. 

한 번 잡아 일으키니 한 번 새롭도다.

 

 

 

貧則身常披縷褐하나니, 

相逢하야 不用笑繿縿이어다. 

有時에 抖擻하야 閑提起하니 

勝得空披錦綉衫하도다.

 

가난하면 몸에 늘 누갈縷褐(누비옷)을 입나니, 

서로 만나 남삼纜縿(옷이 헐었음)을 웃지 말지어다. 

이따금 정신을 차려 한가로이 잡아 일으키니, 

속절없이 수놓은 비단적삼을 입음보다 더하도다.

 

 

 

道則心藏無價珍하니, 

世出世閒에 難可比로다. 

五蘊山前에 著眼看하라. 

點著거든 不來하면 千萬里리라.

 

도道는 마음에 값없는 구슬을 갈무리하였나니, 

세간世閒과 출세간出世閒에 견줌이 어렵도다. 

오온산五蘊山 앞에 눈을 두어 보라. 

점지點指하여 주거든, 오지 아니하면 천만리千萬里리라.

 

 

 

無價珍은 寶之寶이니, 

搜徧龍宮호되 無處討이로다. 

直饒舶主가 善機宜하야도 

開口論量하면 定相惱하리라.

 

값 없는 구슬은 보배의 보배이니, 

찾기를 용궁龍宮에서 다 하여도 얻을 곳이 없도다. 

아무리 박주舶主(불조佛祖)가 기의機宜를(기미機微에 응應하여 주심을) 잘 하여도, 

입을 열어 논하여 사량하면 필히 서로 괴로워 어려우리라.

 

 

 

用無盡하니, 豈能過이리오. 

今古에 源源하야 若逝波하도다. 

悲願所薰으로 方至此하니 

毗耶香飯도 未爲多하도다.

 

씀이 다함이 없으니 어찌 능能히 지나리오? 

예와 지금에 연이어서 물결이 흘러감과 같도다. 

비원悲願의 훈薰하심(쏘이심)으로 비로소 이에 이르니, 

비야리毘耶離의 향적반香積飯도 많지 아니하도다.

 

 

 

利物應形에 終不悋하나니, 

還似龍王의 降雨初하도다. 

舉意에 風雲이 天下徧하나니 

有何花木이 不沾濡이리오.

 

물物을 이롭게 하며 형形을 응應함에 마침내 아끼지 아니하나니, 

용왕龍王의 비 내릴 처음과 또 같도다. 

뜻 가짐에 바람과 구름이 천하天下에 가득하나니, 

어느 꽃과 나무가 젖지 아니하리오.

 

 

 

三身四智가 體中에 圓하니, 

此體는 從來無有二하니라. 

若於自性에 絕追求하면 

萬種名言이 非實義리라.

 

삼신三身과 사지四智가 체體의 가운데 두렷하니(원만하니), 

이 체體는 예로부터 옴에 둘이 없느니라. 

만약 자성自性에 구求함이 그치면, 

만萬 가지의 이름과 말씀이 실實한 뜻이 아니리라. 

 

 

 

八解六通은 心地의 印이니, 

泥水空三用이 莫齊하도다. 

獨有鐵牛曾搭處하니 

竹林東畔이오 石橋西니라.

 

팔해탈八解脫과 육신통六神通은 심지心地의 인印이니, 

흙과 물과 허공의 세 씀이 가지런하지 아니하도다. 

오직 쇠 소에 일찍이 친(인印을 찍은) 곳이 있나니, 

죽림竹林엔 동東녘 갓이요 석교石橋엔 서西의 녘이니라.

 

 

 

上士는 一決에 一切了하나니, 

勢若崩山하야 不小留하도다. 

豈似刻舟求劒者의 

舟移커늘 猶自守舩頭이리오.

 

상사上士는 한 번 결단함에 일체一切를 다 깨쳐 아나니, 

세勢가 산 무너짐 같아서 조금도 머물지 아니하도다. 

배를 새겨서 칼 찾을 사람이, 

배가 옮아가거늘 오히려 뱃머리를 지킴과 어찌 같으리오?

 

 

 

中下는 多聞토록 多不信하나니, 

只爲離家한 歲月長이로다. 

勸尒하노니 從今息求索이어다. 

自有珍財가 滿故鄉하니라.

 

중근기 하근기는 많이 들을수록 어둑하여 신信치(믿지) 아니하나니, 

오직 집 여읜 해와 달(세월)이 길도다. 

너를 권勸하노니 이제부터 구하지 말지어다. 

내게 있는 살림살이 재산이 고향故鄕에 가득하니라.

 

 

 

但自懷中엣 解垢衣호리니, 

此衣는 從來亦無價이니라. 

如今에 線綻하야 體全彰하니 

更莫區區尋縫罅이어다.

 

오직 내 품의 때 묻은 옷을 벗으리니, 

이 옷은 예부터 옴에 또 값없느니라. 

이제 실이 타져 체體가 온전히 나투니, 

다시 부지런히 꿰맨 틈을 찾지 말지어다. 

 

 

 

誰能向外하야 誇精進이리오. 

取捨心生하면 染汙人이리라. 

桃源洞裏에 花開處는 

不待東風하야 自有春하니라.

 

누가 능能히 밖을 향向하여 정진精進 잘하는 체 하리오? 

가지며 버릴 마음 나면 사람을 더럽히리라. 

도원桃源(무릉도원)의 골짜기 속에 꽃 피는 곳은, 

동東녘 바람을 기다리지 아니하여도 제게 봄이 있나니라. 

 

 

 

從他謗하면 意安寧하니, 

一切言語가 但風聲이니라. 

木人花鳥가 曾相遇하니 

彼若無情하야 自不驚하도다. 

 

남의 비방誹謗을 좇으면 뜻이 편안便安하니, 

일체一切 말씀이 오직 바람 소리니라. 

나무 사람과 꽃 새가 일찍이 서로 만나니, 

저 뜻 없어 스스로 놀라지 아니하도다.

 

 

 

任他非호리니 非亦是니, 

非是가 何曾達了義리오. 

了義를 將何하야 爲指陳고 

春深커늘 花落莓苔地하도다.

 

남의 그릇되다 함을 무던히 여기리니 그릇됨이 또 옳음이니, 

그릇되며 옳음이 어찌 요의了義를 알리오? 

요의了義를 무엇을 가져서 위爲하여 펴 가리키리오? 봄이 깊거늘 꽃이 이끼 낀 땅에 떨어지도다.

 

 

 

把火燒天이라 徒自疲니, 

蒼蒼이 豈解生煩惱ㅣ리오. 

若將自己ᄒᆞ야 合虗空ᄒᆞ면 

即是如來眞實道ㅣ니라.

 

불을 잡아 하늘을 사룸이라 헛되이 스스로 고단하니, 

창창蒼蒼(하늘)이 어찌 능能히 번뇌煩惱를 내리오? 

만약 내 몸을 가져 허공虛空에 합하면, 

곧 이 여래如來의 진실眞實한 도道이니라.

 

 

 

我聞코 恰似飲甘露호리니, 

一滴이 能令萬病消하나니라. 

高臥山堂하야 寂無事하니 

任他今日又明朝하는구나.

 

내 듣고 감로甘露를 마심과 같이 하리니, 

한 방울이 능能히 만병萬病을 스러지게 하나니라. 

산당山堂에 높이 누워 고요하여 일 없으니, 

저 오늘날 또 내일 아침을 무던히 여기는구나.

 

 

 

消融頓入不思議라 하시니, 

如今不必更消融이어다 直下分明하니 

猛提取하라 數竿脩竹一堂風이로다.

 

녹여 부사의不思議에 몰록 들리라 하시니, 

이제 구태여 다시 녹이지 말지어다. 

바로 분명分明하니 용맹勇猛히 잡아 취取하라. 

두어 줄기 긴 대와 일당一堂(한 집)의 바람이로다.

 

 

 

觀惡言호되,

若了無言하면 理不偏하리라. 

幾度江風이 連日起오마는 

未聞沈却釣魚船호라.

 

모진 말을 보되, 

만약 말씀 없는 줄 알면 리理(이치)가 기울지 아니하리라. 

몇 번을 강풍江風이 여러 날 일어났는가마는, 

고기 낚는 배가 잠겼다 듣지 못하였노라.

 

 

 

是功德이니, 

慧劒을 親揮煩惱賊하도다. 

烟塵을 掃盡却歸來하니 

一色一香이 皆淨國이로다.

 

이 공덕功德이니

혜검慧劒을 번뇌煩惱의 도적에게 친親히 휘두르도다. 

연기와 티끌을 다 쓸고 돌아오니, 

한 색色 한 향香이 다 깨끗한 나라이로다. 

 

 

 

此即成吾善知識이니, 

忍心如幻하야 攪無痕하도다. 

達多를 親授靈山記하시니 

銘骨如何報此恩이리오.

 

이 곧 나를 만드는 선지식善知識이니, 

참는 마음이 곡도(꼭두각시) 같아서 휘저어도 허물없도다. 

제바달다를 친親히 영산기靈山記를 전하시니, 

뼈에 새긴들 어찌 이 은혜을 갚으리오?

 

 

 

不因訕謗起怨親이면, 

爭識曹溪路上人이리오. 

曾渡流沙天未曉하시니 

至今滿面하니 是埃塵이로다.

 

꾸짖어 헐뜯음을 인因하여 원친怨親을 일으키지 않으면,
어찌 조계曹溪의 길 위에 사람을 알리오? 

류사流沙를 하늘이 밝지 아니하였거늘 일찍이 건너시니, 

지금에 이르도록 낯에 가득한 것이 이 티끌이로다. 

 

 

 

何表無生慈忍力이리오, 

無生을 自證코 忍還忘호리니, 

年來에 老大커시니 歸何處오. 

剎剎塵塵이 是故鄉이로다.

 

남이 없는 자인력慈忍力을 어찌 나투리오, 

무생無生을 스스로 증證하고 인忍을 도로 잊으리니, 

연래年來에 늙고 크시거니 어느 곳에 돌아가리오? 

나라마다 티끌마다 이 옛 본향本鄕이로다.

 

 

 

宗亦通이니 眞秘訣이니, 

摩竭當年에 曾爲說하시다. 

文殊가 撞倒老維摩하시니 

至今에 有理어늘 難分雪이로다.

 

종宗을 또한 통通하리니 진실眞實의 비밀秘密한 결訣이니, 

마갈타摩竭陀에서 그 해에 일찍이 위爲하여 이르시다. 

문수文殊가 늙은 유마維摩를 대질러 거꾸러뜨리시니, 

지금에 이르도록 이치가 있거늘 분별分別하여 씻음이 어렵도다.

 

 

 

說亦通이니 義無量하니, 

應感隨機하야 爲宣暢하시니라. 

若得因言하야 達本根하면 

止啼黃葉이 知虗妄이리라.

 

설說함을 또한 통通하리니 뜻이 그지없으니, 

감感에 응應하며 기機를 좇음에 위爲하여 펴시니라. 

만약 말씀을 인因하여 본래本來의 근원根源을 알면, 

울음 그친 누런 잎이 거짓 것인 줄을 알리라.

 

 

 

定慧가 圓明하야 不滯空하니, 

上下가 悠悠하야 無覓處하도다. 

有時에 自與白雲來하더니, 

昨夜엔 還隨明月去하도다.

 

정定과 혜慧가 두렷이 밝아 공空에 막혀있지 아니하니, 

아래 위가 유유悠悠하여(멀어서) 찾을 곳이 없도다. 

이따금 스스로 백운白雲과 더불어 오더니, 

어젯밤엔 도로 밝은 달을 좇아가도다. 

 

 

 

非但我今에 獨達了이라 하시니, 

是我는 何甞落見知리오. 

有我인댄 直應還未達이오 

若言無我하야도 更愚癡하리라.

 

‘내 이제 혼자 알 따름 아니라’ 하시니, 

이 ‘나[我]’는 어찌 잠깐인들 견지見知에 떨어지리오? 

‘나 있다’ 할진댄 바로 또 통달通達치 못함이요, 

만약 이르되 ‘나 없다’ 하여도 또 우치愚癡(어리석어 미혹)하리라. 

 

 

 

恒沙諸佛이 體皆同하시니, 

此體는 從來無閒斷하니라. 

欲知此體인댄 爲君宣호리라. 

漁人이 笑立蘆花岸햐얏다.

 

항사恒沙 제불諸佛이 체體가 다 같으시니, 

이 체體는 예로부터 옴에 끊어진 사이 없느니라. 

이 체體를 알고자 할진댄 그대 위爲하여 펴리라. 

고기 잡는 사람이 갈대꽃 가에서 웃고 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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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子吼는 響而圓하니, 

振徹幽微하야 力自全하도다. 

有情昏暗이 蒙開曉하나니 

長似春雷가 發半天하도다. 

 

사자師子 울음은 소리 두렷하니, 

깊으며 적은 데에 움직이며 사무쳐 힘이 스스로 온전하도다. 

유정有情의 어두움이 힘입어 열어 아나니[開曉], 

봄 우레가 하늘 한가운데에 발發함과 길이 같도다.

 

 

 

無畏說은 不迂斜하니, 

凡聖이 都如病眼花하도다. 

荊棘林中에 啓行路하야 

相將共到法王家하는구나.

 

두려움 없는 말은 에두르고 비끼지 아니하니, 

범凡과 성聖이 다 병病든 눈에 꽃 같도다. 

가시수풀 가운데 다닐 길을 열어서, 

서로 더불어 법왕가法王家에 한가지로 이르는구나.

 

 

 

百獸가 聞之코 皆腦裂하나니, 

還如魔衆이 聞眞說하도다. 

愁怖歸來에 失舊容하니 

不知本自無生滅하니라.

 

온 짐승이 듣고 머리가 다 깨어지나니, 

마군의 무리들이 진설眞說을 들음과 또 같도다. 

시름하여 두려워 돌아옴에 옛 모습을 잃으니, 

본래本來 제 생멸生滅 없음을 알지 못하니라.

 

 

 

香象은 奔波하야 失却威하나니, 

二乘의 證性이 還如此하니라. 

不知煩惱가 即菩提인달하고 

自取泥洹하야 厭生死하도다.

 

향상香象은 함부로 다녀 위의를 잃나니, 

이승二乘의 성性을 증證함이 또 이 같으니라. 

번뇌煩惱가 곧 보리菩提인 줄을 알지 못하고, 

제 니원泥洹(열반)을 취取하여 생사生死를 싫어하도다.

 

 

 

天龍은 寂聽하고 生忻悅하나니, 

含生이 從此盡依歸하도다. 

幽巖이 寂寂한데 不迴首하고 

却向人閒하야 著弊衣하도다.

 

천룡天龍은 고요히 듣고 기쁨을 내나니, 

함생含生이 이로부터 다 의귀依歸하도다. 

깊은 바위 고요한데 머리 돌이키지 아니하고, 

도리어 인간人閒을 향向하여 헌 옷을 입도다.

 

 

 

游江海하니, 

窮極淵源할 興猶在하도다. 

自有金甁이 勝寶珠하니 

龍王은 不用空憂怪어다.

 

강과 바다에 헤매어 다니니, 

깊은 근원根源의 극에 다다를 흥興이 오히려 있도다. 

제게 있는 금병金甁이 보주寶珠보다 더하니, 

용왕龍王은 속절없이 시름하여 괴이怪異하게 여기지 말지어다.

 

 

 

涉山川하야, 

楖[木+栗]로 曾分野路烟호라. 

今日에 誰知當日事이리오. 

有時에 閑倚草堂前하였도다.

 

산과 시내를 걷너, 

즐률楖[木+栗, 만들지 않은 막대기]로 들길에 연기를 일찍이 나누어라. 

오늘날에 누가 그 날의 일을 알리오? 

이따금 초당草堂 앞에 한가로이 기대어있도다. 

 

 

 

尋師訪道는 爲參禪이니, 

何事로 玄沙는 不出嶺고. 

嗟尒今人은 苦自欺하야 

撞破頟頭호되 猶未省하는구나.

 

스승 찾아 도道 물음은 참선參禪을 위爲함이니, 

무슨 일로 현사玄沙는 고갯마루에서 나오지 아니하였는고? 

슬프다! 너희 지금의 사람은 괴로이 스스로 속아, 

이마를 들이받아 헐어지되 오히려 깨닫지를 못하는구나.

 

* 「玄沙因雪峯云 備頭陀何不出嶺遊方 師才出嶺 踢着脚指頭 不覺作忍痛聲云 彼處虛空 此處虛空 我身無有 痛自何來 休休 達磨不來東土 二祖不往西天 廻雪峯更不出嶺」 

 

현사玄沙가 “사비두타師備頭陀는 어찌하여 산을 벗어나 제방諸方을 유람하지 않는가?”하는 설봉雪峯의 말을 인하여, 선사가 막 고갯마루를 벗어나려는데 발가락 끝을 부딪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소리치되, “저곳도 허공이요 이곳도 허공이며 내 몸은 있음이 없거늘, 이 고통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쉬고 쉬어라! 달마達磨는 동토東土에 오지 않았고, 이조 혜가二祖慧可는 서천으로 가지 않았도다.” 하고서 설봉雪峯에게로 돌아와 다시는 고갯마루를 벗어나지 않았다. 

 

  • [직지直指] 백운경한白雲景閑.

 

 

 

自從認得曹溪路하야, 

鉢袋針筒을 日日開하노라. 

若見當年의 奔逐者이어든 

爲傳盧老가 待君來라 하라.

 

조계曹溪의 길 앎으로부터, 

바리때 주머니와 바늘 통을 날마다 펴노라. 

만약 그 해의 쫓던 사람을 보거든, 

(그를) 위爲하여 전傳하되 ‘노로盧老(혜능)가 그대 오기를 기다리더라’ 하라.

 

 

 

了知生死가 不相干호니, 

若了死生하면 無去住하니라. 

跋提當日에 有遺風하시니 

雙舉金趺하샤 向鶴樹하시다.

 

생生과 사死가 서로 관계치 아니한 줄을 사무쳐 아니, 

만약 생사生死를 알면 가며 있음이 없느니라. 

발제하跋提河의 그날에 유풍遺風이 계시니, 

금金 발 둘을 들어 학수鶴樹를 향向하시다.

 

 

 

行亦禪이니, 

不落中閒與二邊하도다. 

熊耳老師가 曾漏洩하샤 

獨携隻履하샤 到西天하시니라.

 

다님이 또한 선禪이니, 

중간中閒과 두 갓에 떨어지지 아니하도다. 

웅이노사熊耳老師(웅이산熊耳山에 묻혔던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일찍이 누설漏洩하시어, 

홀로 한 짝 신을 들고서 서천西天으로 가시니라.

 

 

 

坐亦禪이니, 

非舉非沈이어니 豈兀然이리오. 

遊子는 不知春已去하야 

誤聽黃鸝作杜鵑하도다.

 

앉음이 또한 선禪이니, 

도거掉擧 아니며 혼침昏沈 아니거니 어찌 올연兀然하리오? 

유자遊子(떠도는 아들)는 봄이 벌써 간 줄을 알지 못하여, 

황리黃鸝(꾀꼬리)를 잘못 들어 두견杜鵑(두견새)으로 삼도다. 

 

 

 

語默動靜에 體安然하니, 

萬境이 來侵하야도 渾不動하도다. 

著却當年破草鞋하니 

護身符子도 全無用이로다.

 

말하며 잠잠하며 움직이며 고요함에 체體가 안연安然하니, 

온갖 경계 와서 침해侵害하여도 혼연渾然히 움직이지 아니하도다.

그 해의 헌 초혜草鞋(짚신)를 신으니, 

호신부자護身符子도 온전히 쓸데없도다.

 

 

 

縱遇鋒刀하야도 常坦坦하니, 

蘊空을 已證하야 即亡身하도다. 

臨危하야 莫訝無憂怖하라. 

祖父로 同家한 是此人이니라.

 

비록 날카로운 칼을 만나도 늘 훤하니, 

온蘊(오온)이 공空함을 이미 증證하여 곧 몸이 없도다. 

어려움을 만나 두려움 없음을 의심疑心 말라. 

할아비와 아비로 집이 한 가지인 이 사람이니라.

 

 

 

假饒毒藥이라도 也閑閑하니, 

曾得金人이 護生訣하도다. 

只聞凍水가 怯春風이오. 

未見濁泥汙明月이로다.

 

비록 독毒한 약藥이라도 무던하니, 

일찍이 금인金人의 중생 보호하는 비결(無生理)을 얻도다. 

오직 언 물이 봄바람을 두려워한다 들어도, 

더러운 흙이 명월明月을 더럽히는 것은 보지 못하리로다. 

 

 

 

我師가 得見然燈佛하샤, 

布髮泥塗를 志不移하시다. 

今日如來가 還出現하시니, 

休言無復似當時라 하라.

 

우리 스승님이 연등불然燈佛을 뵈시어, 

진흙 길에 머리 깔으심을 뜻을 옮기지 아니하시다. 

오늘날에 여래如來가 또 출현出現하시니, 

또 그때와 같지 못하다 이르지 말라.

 

 

 

多劫에 曾爲忍辱仙하시니, 

性等虗空하야 離瞋意하시다. 

寶刀가 無刃을 謾持來하도다. 

幾爲歌王하야 悲不已하야시뇨.

 

여러 겁劫에 일찍이 욕辱 참는 선인仙人이 되시니, 

성性이 허공虛空과 같아서 성내는 마음을 여의시다. 

보배의 칼이 날 없는 것을 속절없이 가져오도다. 

얼마나 기리왕歌利王을 위爲하여 슬퍼하심을 마지아니하셨던고?

 

 

 

幾迴生고, 

長夜가 冥冥한데 信脚行하도다. 

改頭換面이 無窮日하니 

忘却當年엣 舊姓名하도다.

 

몇 번을 태어났는고? 

긴 밤이 어두운데 발을 좇아 다니는구나. 

머리 고치며 얼굴 바꿈이 날이 다함이 없으니, 

그 해의 옛 성명姓名을 잊어버리도다.

 

 

 

幾迴死오, 

積骨如山하야도 猶未已하도다. 

山前野老를 若相逢이면 

跬步도 不移하야 歸故里하리라.

 

몇 번을 죽었는고? 

뼈 쌓음이 산 같아도 오히려 마지아니하도다. 

산 앞의 들 늙은이를 만약 서로 만나면, 

반半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여 옛 마을에 돌아가리라.

 

 

 

生死가 悠悠하야 無定止하니, 

貪癡가 如酒하야 醉難醒이로다. 

冥然不記還家路하야 

飄去沉來가 似水萍하도다.

 

살며 죽음이 멀어서 일정一定히 머무른 곳 없으니, 

탐심과 어리석음이 술 같아서 취醉하여 깨기가 어렵도다. 

아득하여 집에 돌아갈 길을 알지 못하여, 

(바람에)불려 가며 (물결에)잠기어 옴이 물의 부평초 같도다. 

 

 

 

自從頓悟了無生하야, 

性種을 熏成하야 斷憎愛하도다. 

是名是相이 絕纖毫하니 

海闊山高를 人不會하도다.

 

몰록 깨달아 무생無生을 앎으로부터, 

성종性種(불성종자)을 훈습熏習하여 이루어 미우며 사랑함을 끊도다. 

이 이름과 이 상相이 가는 터럭만큼도 없으니, 

바다 넓으며 산 높음을 사람이 알지 못하도다.

 

 

 

於諸榮辱에 何憂喜리오, 

如石이 逢春하야 不變春하도다. 

試問庭前桃李樹하노라.

 花開花落은 爲誰人고.

 

여러 영예과 인욕에 어찌 시름하며 기쁘리오? 

돌이 봄을 만나 봄의 변變치 아니함과 같도다. 

시험삼아 뜰 앞의 복숭화 오얏나무에게 묻노라. 

꽃 피며 꽃이 짐은 어느 사람을 위爲함인고?

 

 

 

○ 入深山하야, 

自樂朝昏에 養病顏하도다. 

時人이 欲識巖中意인댄 

幽禽이 時與斷雲還하도다.

 

깊은 산에 들어, 

아침저녁[朝昏]에 병病든 모습 기름을 스스로 즐기는구나. 

시절時節의 사람이 바위 가운데의 뜻을 알고자 할진댄, 

깊은 새 때때로 끊어진 구름과 돌아오도다.

 

 

 

住蘭若하니, 

遠離塵囂한 眞靜者이로다. 

請看終日縱心猿하라. 

何似深居調意馬이리오.

 

난야蘭若(적정寂靜한 곳)에 주住하니, 

티끌과 시끄러움을 멀리 여읜 진실眞實의 고요한 사람이로다. 

청請하노니 날이 맟도록 심원心猿(마음 원숭이)을 놓아두는 이를 보라. 

어찌 깊이 살아[居] 의마意馬(의식意識)를 길들이는 것만 같으리오?

 

 

 

岑崟幽邃長松下에, 

一念이 凝然하니 萬慮가 灰하도다. 

塵中一徑이 連峯頂하니 

誰解偷閑하야 向此來오.

 

잠음岑崟하며(산이 높으며) 유수幽邃한(그윽하여 깊은) 긴 솔 아래, 

일념一念이 어리니(엉기니) 만萬 가지의 사려思慮가 재가 되도다. 

티끌 가운데 한 길이 산의 정상에 이어졌나니, 

누가 능能히 한가함을 훔쳐서 이를 향向하여 오리오?

 

 

 

優遊靜坐野僧家하야, 

困即閒眠코 渴即茶이로다. 

暑往寒來에 何所有오 

一條雲衲이 是生涯로다.

 

우유優游히(자약自若하여) 시골 중(僧)의 집에 적정寂靜히 앉아, 

고단하면 곧 한가로이 졸고 목마르면 곧 차茶로다. 

더위 가고 추위 옴에 있는바가 무엇인고? 

한 가닥 구름누비(雲衲)가 이 생애生涯로다.

 

 

 

閴寂安居가 實蕭洒하니, 

密密行藏이라 不露蹤하도다. 

千眼頓開하야도 無覓處이어니와 

等閑門下에사 却相逢하리라.

 

고요하게 편안히便安히 삶이 실實로 소쇄蕭洒하니, 

밀밀密密한 행장行藏이라 자최 나투지 아니하도다. 

천 눈을 몰록 떠도 찾을 곳이 없거니와, 

넌즉한(마음 두지 아니한) 문門 아래에사 도리어 서로 만나리라.

 

 

 

覺即了하나니, 

日午三更이오 半夜曉이로다. 

桃花가 才謝커늘 杏花가 開하니 

始信從來無欠少호라.

 

알면 곧 마치나니, 

낮이 삼경三更(迷)이요 밤이 새벽(悟)이로다. 

복숭아꽃이 겨우 지거늘 살구꽃이 피니, 

예로부터 옴에 모자람 없음을 비로소 신信하노라.

 

 

 

不施功하니, 

欲識無功인댄 恰似風하니라. 

無瞋無喜無心意호ᄃᆡ 

吹砂鼓霧ᄒᆞ야 滿晴空ᄒᆞᄂᆞ니라

 

공功을 펴지 아니하니, 

공功 없음을 알고자할진댄 마치 바람과 같으니라. 

성냄 없으며 기쁨 없으며 마음 뜻 없으되, 

모래 불며 안개 쳐서 갠 허공虛空에 가득케 하나니라.

 

 

 

一切有爲法이 不同하니, 

好滌心源하야 求出離어다. 

露滴漚沈이 瞬息閒이니 

浮生萬物이 皆如是하니라.

 

일체一切 함이 있는 법法이 한가지 아니니(不同), 

마음 근원根源을 좋이 씻어 여의어 벗어남을 구求할지어다. 

이슬 떨어지며 물방울 잠김이 눈 깜짝할 사이이니, 

부생만물浮生萬物(부평초 같이 사는 만물)이 다 이와 같으니라.

 

 

 

住相布施는 生天福이니, 

玉殿花臺에 任意過하는구나. 

休言拂石이 能堅久하라. 

若比無生인댄 是剎那이니라.

 

상相에 주住한(머문) 보시布施는 하늘에 날 복福이니, 

옥전화대玉殿花臺에 뜻다이(마음대로) 가는구나. 

‘불석拂石이 능能히 굳어서 오래간다’ 이르지 말라. 

만약 무생無生과 견줄진댄 이 찰나刹那이니라.

 

* ‘불석拂石’은 한 큰 돌이 있으되 방方이 사천리四千里이니, 100년에 천인天人이 한번 내려와 비단옷을 입고 저 돌을 쓸어 그 돌이 다 없어지면 ‘한 불석겁(一拂石劫)’이라 하나니라.

 

 

 

 

猶如仰箭射虗空하니, 

是箭은 無由空裏奠이니라. 

須求實相趣菩提하야 

免向三途換頭面이어다.

 

화살을 우러러 허공虛空을 쏨과 같으니, 

이 화살은 허공虛空에 멈출 까닭이 없느니라. 

모름지기 실상實相을 구求하여 보리菩提에 나아가, 

삼도三途를 향向하여 머리와 얼굴 바꿈을 면免할지어다. 

 

 

 

勢力盡하면 漸傾欹하나니, 

猶若天人의 見五衰하니라. 

憔悴하야 始憂囹辟苦하나니 

不似歡園에 正樂時하도다.

 

힘이 다하면 점점漸漸 기울어지나니, 

하늘 사람의 다섯 쇠함를 봄과 같으니라. 

쇠하고 시들어서야 영벽고囹辟苦를 비로소 시름하나니, 

환원歡園에서의 정正히 즐거운 시절時節과 같지 못하도다.

 

* ‘영囹’은 감옥이요 ‘벽辟’은 죄罪요, ‘환원歡園’은 제천帝釋의 환희로운 정원이라.

 

 

 

箭還墜호되 極方休하나니, 

識浪이 飄飄하야 若散漚하도다. 

還隨習業의 重牽去하나니 

到此何甞得自由이리오.

 

화살이 도로 떨어지되 극極하면 반드시 그치나니, 

식랑識浪(식의 물결)이 표표飄飄[바람부는 모양]하여 물방울 흐름과 같도다. 도로 익힌 업業의 다시 이끌어 감을 좇나니, 

이에 이르러 어찌 자유로움을 얻으리오? 

 

 

 

招得來生에 不如意하나니, 

爲因이 不正하야 果還頗하도다. 

行檀호되 須使三輪淨호리니 

罪福이 雖靈인줄 柰尒何오.

 

오는 생生에 뜻 같지 못함을 불러 얻나니, 

인因이 정正하지 아니하여 과果가 또 비뚤어지도다. 

단檀(보시布施)을 행行하되 모름지기 삼륜三輪을 깨끗이 하리니, 

죄罪와 복福이 비록 신령한들 네게 어떠하리오?

 

 

 

爭似無爲實相門이리오, 

欲知實相인댄 實無相하니라. 

春至커늘 幽禽이 盡日啼하고 

月出커늘 漁舟가 連夜放이로다.

 

어찌 함이 없는 실상문實相門과 같으리오, 

실상實相을 알고자할진댄 실實로 상相 없느니라. 

봄이 이르거늘 깊은 새 날이 맟도록 울고, 

달이 돋거늘 고기 잡는 배가 밤을 이어 (그물을)놓도다.

 

 

 

一超直入如來地하니, 

頓證이어니 何須滿月容이리오. 

還似龍門魚化日에 

一聲雷後覓無蹤하도다.

 

한 번 건너뜀에 바로 여래지如來地에 드니, 

몰록 증證함이어니 어찌 만월용滿月容(보름달 용모)을 구求하리오? 

용문龍門에서 고기가 화化하는 날에, 

한 소리 우레 후後에 얻을 자최 없음과 같도다.

 

* 고기가 용龍 되어 그 비늘을 고치지 아니하며 사람이 부처 되어 그 낯을 고치지 아니하나니, 몰록 증證하면 곧 부처이거니 어찌 구태여 상호장엄相好莊嚴을 부처로 삼으리오?

 

 

 

但得本이언정, 

終朝更不勞脣吻이어다. 

一飽에 膨朜하야 萬事休하니 

任他人笑無思忖이니라.

 

오직 본本을 득得할지언정, 

아침이 맟도록 다시는 입술을 고단히 말지어다. 

한 번 배부름에 배불러서 만사萬事를 쉬니, 

저 사람의 헤아림 없는 웃음을 무던히 여길지니라.

 

 

 

莫愁末호리니, 

世界無窮하나 都一撮이니라. 

折脚鐺兒를 不借人하야 

煮粥煎茶에 自提掇하도다.

 

끝[말변사末邊事]을 시름하지 말지니, 

세계[末]가 다함이 없으나 모아서 한 움큼[本]이니라. 

발이 꺾인 솥[본분本分의 집 그릇]을 사람에게 빌리지 아니하여, 

죽粥 끓이며 차 달임에 스스로 잡들도다.

 

 

 

如淨琉璃가 含寶月하니, 

體用이 相交하야 璨尒明하도다. 

有眼하면 不能窺髣髴이어니와 

無心하야사 方見本圓成하리라.

 

조촐한(맑은) 유리琉璃가 보월寶月(보배달)을 머금음과 같으니, 

체體와 용用이 서로 섞여 맑게 밝도다. 

눈이 있으면 비슷하게 엿봄도 능能히 못하려니와, 

무심無心하여야 본래本來로 두렷이(원만히) 이룸을 바야흐로 보리라.

 

 

 

我今에 解此如意珠호니, 

迸出寒光이 千萬仞이로다. 

四生六類는 恣須求이어다. 

世界는 有窮커니와 此無盡하니라.

 

내 이제 이 여의주如意珠를 아니, 

솟아나는 찬 광명光明이 천만인千萬仞이로다. 

사생육류四生六類는 내키는대로 모름지기 구求할지어다. 

세계世界는 다함이 있거니와 이는 다함이 없느니라. 

 

* 인仞은 ‘일곱 자’라.

 

 

 

自利利他에 終不竭하니, 

悲水心花가 半夜開하도다. 

金殿玉堂에 留不住하고 

披毛戴角하야 又重來하는구나.

 

내 몸 이롭게 함과 남 이롭게 함에 마침내 다하지 아니하니, 

자비慈悲의 물과 마음 꽃이 반야半夜(한밤중)에 피도다. 

금전옥당金殿玉堂[正位]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털을 입고 뿔을 이고서 또 다시 오는구나. 

 

 

 

江月이 照하니, 

衲子家風이 最爲要하도다. 

夜靜同誰하야 話此心고 

亂山에 時有孤猿이 呌하도다.

 

강에 달이 비추이니, 

납자衲子의 가풍家風이 가장 종요롭도다. 

밤 고요한데누구와 함께 이 마음을 이르리오? 

난산亂山(어지러운 산)에 때때로 외로운 납이(원숭이가) 울도다. 

 

 

 

松風이 吹하니, 

拂面蕭蕭無盡時하도다. 

根下茯苓이 神入妙하니 

往來樵子는 幾人知오.

 

솔바람이 부니, 

얼굴에 불어 소소簫簫(서늘)하여 다할 때가 없도다. 

뿌리 아래의 복령茯苓이 신령하여 묘妙에 들어가니, 

가며 오는 초자樵子는(나무꾼은) 몇 사람이나 아느냐?

 

* ‘복령茯笭’은 송진이 땅에 들어 천년千年이면 화化하여 복령茯笭 되나니라. 

 

 

 

永夜清霄에 何所爲오, 

行時行行코 坐時坐이로다. 

馬生雙角하고 瓫生根하야도 

終不爲君하야 輕說破호리라.

 

긴 밤 맑은 하늘에 하는 바가 무엇고? 

다닐 땐 다니며 다니고 앉은 땐 앉았도다. 

말에 두 뿔이 나고 항아리에 뿌리가 나도, 

마침내 그대 위爲하여 가벼이 이르지는 아니하리라. 

 

 

 

佛性戒珠는 心地에 印이니, 

普天匝地에 勿遺餘하도다. 

茫茫蠢蠢이 皆同有하니, 

誰道唯傳碧眼胡오,

 

불성佛性과 계주戒珠는 마음 땅의 인印이니, 

넓은 하늘과 두른 땅에 남겨 남지 아니하도다. 

망망준준茫茫蠢蠢이(온 세상의 벌레들도) 다 한 가지로 두어 있나니, 

누가 ‘오직 눈 파란 오랑캐(達磨)가 전傳하였다’ 이르리오? 

 

 

 

霧露雲霞가 體上에 衣니, 衣體는 從來無別號하니라. 休言一物도 不持來하라. 大地山河가 皆我造이니라. 

 

안개와 이슬과 구름 노을이 체體 위의 옷이니, 

옷과 체體는 예로부터 옴에 다른 이름 없느니라. 

한 것[一物]도 가져오지 아니하였다 이르지 말라. 

대지大地와 산하山河가 다 내 지음[造]이니라. 

 

 

 

降龍鉢은 體堅牢하니, 

展盡靈通하야도 莫可逃이로다. 

大千沙界를 曾盛去하니, 

不怕拏雲萬丈高하도다.

 

용龍을 항복降伏시킨 발우(智, 바리때)는 체體가 굳으니, 

신령한 신통神通 펼침을 다하여도 가히 도망逃亡치 못하리로다. 

대천사계大千沙界를 일찍이 담아 가니, 

구름 움켜잡아 만장萬丈 높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도다. 

 

* 세존世尊이 화룡굴火龍窟에 가 주무시거늘 룡龍이 독기毒氣를 내어 세계世界 다 붙거늘 세존世尊이 삼매화三昧火를 펴시는데 대지大地가 모두가 불이라. 그 용龍이 궁窮하여 갈 데를 몰라 세존世尊의 발우 가운데에 물만 맑거늘 들어가니라.

 

 

 

解虎錫은 響遙空하니, 

分鬬하야 曾飛入亂峯하니라. 

不識怨親이 同一體하닌 

謾誇王屋에 有遺蹤하도다.

 

범 말린 막대기는, 소리 허공虛空에 아스라하니, 

싸움 말리느라 일찍이 난봉亂峯에 날아드니라. 

원怨(원수)과 친親(친함)이 한 체體인 것을 알지 못한 이는, 

왕옥王屋에 끼친 자취가 있다 속절없이 자랑하도다. 

 

* 왕옥王屋은 산의 이름이니 승조선사僧稠禪師가 왕옥산王屋山에 주암住菴하여 계시다가 두 범이 싸우거늘 석장錫杖을 던져 싸움을 말리시니라.

 

 

 

兩鈷金鐶이 鳴歷歷하니, 

只此圓通을 爲指南이니라. 

若見觀音眞住處하면 

方知不在寶陀巖하리라.

 

양고兩鈷와 쇠고리 울음이 역역歷歷하니, 

오직 이 원통圓通을 지남指南으로 삼나니라. 

만약 관음觀音의 진실眞實로 주住한 곳을 보면, 

보타암寶陀巖에 있지 아니하심을 비로소 알리라. 

 

 

 

不是標形하야 虗事持라, 

欲使因聞하야 自迴向이니라. 

忽於聽處에 覓無蹤커든 

更看迦葉의 古時樣하라.

 

이 형상을 표시하여 허사虛事로 지니는 것이 아니라, 

들음을 인因하여서 제 도리켜 향向하게 하고자함이니라. 

문득 듣는 곳에서 찾을 자최 없거든, 

또 가섭迦葉의 옛 때 모양을 보라.

 

* 옛적에 가섭迦葉이 건달바왕의 음악音樂을 들으시고 문득 일어나 춤추시니 이는 대용大用이라.

 

 

 

如來의 寶杖이 親蹤跡이시니, 

能與生靈의 斷網羅하나니라. 

兩鈷六鐶이 雖善表이나 

不識全提하면 未足多하니라.

 

여래如來의 보장寶杖이 친親한 자최이시니, 

능能히 생령生靈의 그물을 끊나니라. 

양고兩鈷 여섯 고리는 비록 좋은 표식이나, 

전제全提[한 올의 막대]를 알지 못하면 족足히 많지(아름답지) 못하니라.

 

 

 

不求眞호리니, 

求眞하면 便是有疎親하리라. 

試將金屑하야 安雙眼하라. 

雖貴인들 如何不礙人이리오.

 

진眞을 구求하지 말리니, 

진眞을 구求하면 곧 소疏(성김)와 친親(친함)이 있으리라. 

시험삼아 금金싸라기를 가져 두 눈에 넣어보라. 

비록 귀貴한들 어찌 사람을 가리지(장애하지) 아니하리오?

 

 

 

不斷妄호리니, 

妄與眞源이 同一相이니라. 

曾看江上앳 弄潮人호니 

未聞愛水할 이가 嫌波浪호라.

 

망妄을 끊지 말리니, 

망妄과 진眞은 근원根源이 한 상相이니라. 

일찍이 강 위의 밀물 희롱하는 사람을 보니, 

물을 사랑하는 이가 물결 미워한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도다.

 

 

 

了知二法이 空無相호리니, 

眞妄을 忘來엔 妄是眞이니라. 

若謂是眞인댄 還是妄이리니 

若忘眞妄하야도 更愁人이리라.

 

두 법法이 공空하여 상相 없음을 사무쳐 알리니, 

진망眞妄을 잊어 옴엔 망妄이 이 진眞이니라. 

만약 진眞이라 여길진댄 도로 이 망妄이리니, 

만약 진망眞妄을 잊어도 또한 사람을 시름케 함이리라.

 

 

 

無相無空하며 無不空하니, 

無去無來하며 無所止하도다. 

松下清風이 掃盡苔하니 

茅菴이 依舊白雲裏로다.

 

상相 없으며 공空 없으며 불공不空도 없으니, 

감 없으며 옴 없으며 붙은 곳 없도다. 

솔 아래의 맑은 바람이 이끼를 쓸어 다하니, 

볏짚으로 이은 암자菴子가 예를 의지하여 백운白雲의 속이로다. 

 

 

 

即是如來眞實相이니, 

明月蘆花가 色莫齊하도다. 

普眼이 當時無覓處이여 

夜來和雨宿寒溪하도다.

 

곧 이 여래如來의 진실眞實한 상相이니, 

밝은 달과 갈대꽃의 빛이 가지런하지(같지) 아니하도다. 

보안普眼이 그때 얻지 못한 곳이여, 

밤에 비와 섞여 찬 시내에서 자도다. 

 

* 보안보살普眼菩薩이 보현普賢을 뵈옵고자 하시되 못하시어 세 번 정定에 들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다 보시되 보현普賢을 찾지 못하시어 부처께 와 사뢰되, 부처 이르시되 “네 오직 정삼매靜三昧 중中에 한 념念 일으키면 곧 보현普賢을 보리라” 하시거늘 보안普眼이 곧 한 념念 일으키시니 곧 보현普賢이 공중空中에 육아백상六牙白象을 타시고 계시거늘 뵈오시니라.

 

 

 

心鏡이 明하야 耀遐邇하니, 

杲日이 昇空하야도 難可比로다. 

一片寒光이 湛不流하니 

大千沙界가 從茲起하도다.

 

마음거울이 밝아 먼 데 가까운 데를 비추이니, 

맑은 해 허공虛空에 올라도 가히 비교함이 어렵도다. 

한 조각 찬 광光이 맑아 흐르지 아니하니, 

대천사계大千沙界가 이로부터 일어나도다.

 

 

 

○ 鑒無礙하야 絕毫釐하니 

萬牀千形을 共不知하도다. 

寂寂光中人去後에 

鼻似眉毛하니 是阿誰오. 

 

비추임이 가리움 없어 호리毫釐가 끊어지니, 

만萬 가지의 모양과 천 형상을 다 알지 못하도다. 

고요하며 고요한 광光 중中의 사람이 가버린 후後에, 

코가 눈썹 털 같으니 이 누고? 

 

* 호리毫釐는 열 홀忽이 한 호毫이고 열 호毫가 한 리釐이라.

 

 

 

廓然瑩徹하야 周沙界하니, 

相見혼댄 全非舊日顏이로다. 

莫謂從來無覓處하라. 

有時擺尾上南山하도다.

 

훤하여 조촐하며 사무쳐 사계沙界에 가득하니, 

서로 볼진댄 온전히 옛 모습 아니로다. 

예로부터 옴에 찾을 곳 없다 이르지 말라. 

이따금 꼬리 흔들고 남산南山에 오르도다.

 

 

 

萬象森羅가 影現中하니, 

法法이 非虗이며 亦非實이로다. 

是名是相이 本無生이니 

衆毛師子가 一毛畢이니라.

 

만상萬象과 삼라森羅가 그림자 가운데 나타나니, 

법法마다 허虛 아니며 또한 실實아니로다. 

이 이름과 상相이 본래무생本來無生이니, 

여러 터럭(털)의 사자師子가 한 터럭의 마침이니라. 

 

* 만상萬象은 땅에 있는 것이요, 삼라森羅는 하늘에 있는 것이라.

 

 

 

一顆圓光이 非內外하니, 

近無形狀하며 遠無垠하도다. 

兒童은 不識하고 空名邈하야 

却道團團似月輪하도다.

 

한 낱 두렷한 광光이 안팎이 아니니, 

가까워 형상形狀 없으며 멀어서 갓이 없도다. 

아이는 알지 못하고 속절없이 이름지어 이르되, 

‘두렷함이 월륜月輪(달) 같다’ 하도다.

 

 

 

豁達空은 魔所誘이니, 

只言萬物都無有하도다. 

去路가 猶賒커늘 日已西하니 

可憐獨似喪家狗이로다.

 

훤히 사무친 공空은 마魔의 유혹하는 바이니, 

오직 이르되 ‘만물萬物이 다 있음이 없다’ 하도다. 

갈 길이 오히려 멀거늘 날이 이미 서西쪽으로 져가니 

가련하다 집 잃은 개와 홀로 같도다. 

 

 

 

撥因果함이 更堪傷하니, 

迷失夷途코 暗且狂하도다. 

苦楚를 他時親受處에사 

始知善惡業難忘하리라.

 

인과因果를 쓸어버리는 것이 다시 슬퍼함직하니, 

평탄한 길은 미혹하여 잃어버리고 어둡고 또 미치도다. 

고초苦楚(괴로이 침)를 다른 때에 친親히 받을 곳에서야 

선善과 악惡의 업業이 잊기가 어려운 줄을 비로소 알리라.

 

 

 

漭漭蕩蕩하야 招殃禍하나니, 

惡不加悛하며 善不修하도다. 

無悟無迷를 開口是니 

泥犂에 未到한 땐 卒難休이리라.

 

망망탕탕漭漭蕩蕩하여 앙화殃禍를 부르나니, 

악惡을 더 고치지 아니하며 선善을 닦지 아니하도다.

‘깨달음 없으며 미혹함 없음’을 입을 열어 말함이 이것이니, 

니리泥犂(지옥)에 다다르지 아니한 땐 끝내 그만둠이 어려우니라. 

 

* ‘망망漭漭’은 먼 것이요 ‘탕탕蕩蕩’은 훤한 것이라. ‘니리泥犂’는 지옥地獄이라.

 

 

 

棄有著空이 病亦然하니, 

背空取有도 還如是하니라. 

鉢袋를 持來호되 夜未央인 때 

老盧도 只見錐頭利하니라.

 

유有를 버리고 공空에 집착함이 병病이 또한 그러하니, 

공空을 버리고 유有를 취取함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바리때 주머니를 지녀서 오되 밤이 밝지 아니하신 때에, 

한 노로老盧도 오직 송곳 끝이 날카로움을 보니라. 

 

* <단경壇經>에 이르시되, 오조五祖가 밤이 삼경三更이거늘 혜능慧能을 당내堂內에 오라 하시어 곧 돈교頓敎와 옷과 바리때를 전傳하시고 “너를 제 육대조第六代祖로 삼노니 잘 호념護念하여 모르는 사람을 널리 제도濟度하라.” 하실새 ‘밤이 밝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옛부터 이르되, ‘오직 송곳 끝 날카로움을 보고 끝머리가 네모남을 보지 못한다’ 하니, 송곳 날카로움은 공空이요 끝 방方함은 유有이라. 

 

 

 

猶如避溺하고 而投火하니, 

水火가 雖殊이나 害豈差이리오. 

若入荒田하야 隨手得하면 

不勞移步하야 便還家하리라.

 

(물에)잠김을 피避하려고 불에 들어감과 같으니, 

물과 불이 비록 다르나 해害가 어찌 다르리오? 

만약 풀이 무성한 밭에 들어가 손을 좇아 얻으면, 

피곤하게 걸음 옮기지 아니하야 곧 집에 돌아가리라.

 

 

 

捨妄心하나니, 

將心除妄하면 妄還深하리라. 

了妄即眞하야 眞不有하면 

一條麻線에 兩條針이리라.

 

망심妄心을 버리나니, 

마음을 가져 망妄을 덜어내면 망妄이 도리어 깊으리라. 

망妄이 곧 진眞인 줄을 알아 진眞을 두지 아니하면, 

한 올의 삼 실에 두 올의 바늘이리라.

 

 

 

取眞理하나니, 

片甲纖鱗은 未爲美니라. 

木女가 穿雲하야 笑不休커늘 

大洋海底에 紅塵起한다.

 

진리眞理를 취取하나니, 

편갑片甲과 섬린纖鱗은 아름답지 아니하니라. 

나무계집이 구름을 뚫어 웃음을 멈추지 아니하거늘, 

대양大洋의 바다 밑에 붉은 티끌이 일어난다. 

 

* 편갑片甲(갑옷 조각, 패전병)과 섬린纖鱗(어린 비늘, 잔챙이)은 소승小乘이라. 대양大洋은 바다가 넓고 큰 모양이라.

 

 

 

取捨之心이 成巧僞하나니, 

眞妄이 須知性不殊호리라. 

半滅半生으로 修至道하면 

還如登木望芙蕖하리라.

 

가지며 버리는 마음이 공교工巧하며 거짓됨을 이루나니, 

진眞과 망妄이 성性이 다르지 아니한 줄을 모름지기 알리라. 

반멸半滅하며 반생半生으로 지극至極한 도道를 닦으면, 

나무에 올라 연蓮꽃을 바라는 것과 도리어 같으리라.

 

 

 

學人不了하야 用修行하나니, 

了得修行하면 豈虗妄이리오. 

若將瓮響하야 作鐘聲하면 

不獨無實이라 兼自誑이리라.

 

배우는 사람이 알지 못하여 써 수행修行하나니, 

알고서 수행修行하면 어찌 허망虛妄하리오? 

만약 항아리 소리를 가져서 종소리로 삼으면, 

실實 없을 따름이 아니라 또 저를 속이는 것이리라.

 

 

 

深成認賊하야 將爲子하니, 

愛妄이 纏心하야 不自知하도다. 

待到年窮하야 君自看하라. 

荒涼家業은 更由誰오.

 

도적을 그릇 알아가져 아들 삼음이 깊이 이루어지니, 

망妄 사랑함이 마음에 얽혀서 스스로 알지 못하도다. 

기다려 해(年)가 다함에 이르러서 그대 스스로 보라, 

가업家業을 황량하게 함은 또 누구를 말미암음이리오?

 

 

 

永嘉大師證道歌南明泉禪師繼頌 上

영가대사증도가남명천선사계송 상

 

 

 

 

 

 

 

 

 

 

 

 

 

 

 

 

 

 

 

 

 

 

 

 

 

 

 

 

 

 

 

 

 

 

 

 

 

《永嘉大師證道歌南明泉禪師繼頌》 下

  영가대사증도가남명천선사계송 

 

 

 

損法財하야 功自棄하나니, 

往返三途이어니 何所恃리오. 

省覺은 由來在剎那하니 

不必辛勤하야 坐獲利하리라.

 

법재法財를 없애버리고 공功을 제 스스로 버리나니, 

삼도三途에 오락가락하거니 어느 곳을 믿으리오? 

깨어 앎은 예로부터 옴에 찰나刹那에 있나니, 

구태여 괴롭게 부지런히 아니하여 앉아서 이익을 얻으리라.

 

 

 

滅功德을 更何猜리오. 

五爲門戶이오 一爲媒니라. 

從前寶所에 無關鑰거늘 

自是時人이 不肯來한다.

 

공덕功德 없게 함을 다시 어찌 의심疑心하리오? 

다섯이 문호門戶가 되고 하나가 중매쟁이 되니라. 

예로부터 보소寶所(보배 처소)에 자물쇠 잠금이 없거늘, 

이 시절時節 사람이 제 스스로 즐겨 오지 아니한다.

 

 

 

莫不由斯心意識이니

從來共住호되 若寃讎하니라. 

如今已與同家業이라. 

無限珍財를 更不偷하리라.

 

이 심의식心意識을 말미암지 아니함이 없으니, 

예로부터 한 데에 있으되 원수寃讎와 같으니라. 

이제 이미 더불어 가업家業이 한가지라, 

그지없는 보배재산을 다시 훔치지 아니하리라.

 

 

 

是以禪門에 了却心하야, 

兀兀騰騰度朝夕이니라. 

佛祖를 相看하는 驀路가 同하니 

大暑엔 迎凉코 寒向日하나니라.

 

이런 까닭으로 선문禪門엔 마음을 알아, 

올올등등兀兀騰騰하여 아침저녁을 지낼지니라. 

불조佛祖를 서로 보는 곧은길이 한가지니, 

큰 더위엔 서늘함을 맞고 추위엔 해를 향向하나니라. 

 

* ‘올올兀兀’은 가만히 있는 것이요 ‘등등騰騰’은 일 없는 것이라.

 

 

 

頓入無生知見力이니, 

無生知見을 若爲論고. 

有時에 望月過深夜하고 

幾爲求齋하야 到遠村커니오.

 

무생지견無生知見에 몰록 들어간 힘이니, 

무생지견無生知見을 어찌 논論하리오? 

이따금 달을 바라보며 깊은 밤을 지나고, 

얼마나 재齋를 구求하여 먼 마을에 이르렀던고?

 

 

 

大丈夫는 威且愛하니, 

草偃風行이라 無窒礙하도다. 

不止賢愚에 作羽儀라. 

險惡途中에 人所賴니라.

 

대장부大丈夫는 위엄이 있고 또 사랑하나니, 

풀 누움이 바람 움직임이라 막음이 없도다. 

어질며 어리석음에 우의羽儀가 될 따름 아니라, 

험險한 모진 길에 사람이 힘을 입는 바이니라. 

 

* ‘우의羽儀’는 본보기이라.

 

 

 

秉慧劒하야 雪霜寒하니, 

寰海何人이 敢正看이리오. 

剔起眉毛하야 便歸去하야도 

髑髏峯後에 草漫漫하리라.

 

혜검慧劒을 잡아 눈과 서리가 서늘하니, 

환해寰海(하늘 아래)의 어느 사람이 구태여 정正히 보리오? 

눈썹 털을 헤쳐서 곧 돌아가도, 

촉루봉髑髏峯 뒤에 풀이 가득하리라. 

 

* 촉루봉髑髏峯은 죽은 해골이 산처럼 쌓인 곳이라.

 

 

 

般若鋒兮오 金剛燄이니, 

堅猛하야 能燒亂相林하는구나. 

一掃에 更無毫髮許하야도 

傍人은 猶笑老婆心한다.

 

반야般若 칼날이요 금강金剛 불꽃이니, 

굳고 매워(사나워) 난상亂相의 수풀을 능能히 불사르는구나. 

한 번 쓺에 다시 머리터럭 만큼도 없어도, 

곁에 사람은 오히려 늙은 할미 마음(노파심)을 웃는다. 

 

 

 

非但能摧外道心이니, 

戴盆鍱腹이 何窮數이리오. 

靈山에 據坐하샤 略搖鞭하신댄 

良馬가 追風하야 自迴去하니라.

 

능能히 외도外道의 마음 꺾을 따름 아니니, 

분盆(동이)을 이며 배를 섭鍱함(구리로 두름)이 어찌 수數가 다하리오? 

영산靈山에서 좌坐에 거據하시어 잠깐 채찍을 흔드신댄 

좋은 말이 바람을 쫓아 스스로 돌아가니라. 

 

* ‘분盆을 머리에 이다’ 함은 불을 담은 그릇을 이는 것이니 불을 섬기는 외도外道요, ‘구리로 배를 싼 것’도 외도外道의 일이라. 

 

 

 

早曾落却天魔膽하시니, 

邪正이 相交ᄒᆞ나 勢可知니라. 

自是汝曹가 憎愛重이언정 

非于佛子가 不慈悲니라.

 

일찍이 천마天魔의 간담을 떨어버리시니, 

사邪와 정正이 서로 섞이나 세勢를 가히 알지니라. 

스스로 이 너희 무리가 미우며 사랑함이 무거움이언정, 

불자佛子가 자비慈悲를 아니함에 붙지 아니하니라.

 

 

 

震法雷하시니, 

一擊에 轟然徧九垓하도다. 

莫謂從來無影象하라. 

含靈이 曾爲眼齊開하니라.

 

법뇌法雷(법의 우레)를 떨치시니, 

한 번 침에 굉연轟然하여 구해九垓(九州, 大千)에 가득하도다. 

예로부터 옴에 그림자와 상象이 없다 이르지 말라. 

함령含靈이 일찍이 눈을 가지런히 여니라. 

 

* ‘굉연轟然’은 여러 수레의 소리.

 

 

 

擊法鼓하시니, 

西天此土에 親規矩이시니라.

癡人이 睡重하야 自無聞이언정 

不是觀音이 心未普이시니라.

 

법고法鼓를 치시니, 

서천西天과 차토此土에 친親한 규구規矩(法)이시니라. 

어리석은 사람이 잠이 무거워 스스로 듣지 못함이언정, 

관음觀音이 마음 넓지 못하심이 아니시니라.

 

 

 

布慈雲兮灑甘露하시니, 

人間天上에 絕纖塵하도다. 

濛濛一味가 無差別하나 

洗出萌芽하야 萬種新이로다. 

 

자운慈雲을 펴시어 감로甘露를 뿌리시니, 

인간人閒과 천상天上에 가는 티끌도 끊도다. 

몽몽濛濛한(가늘게 내리는 비) 한 맛이 차별差別이 없으나, 

움(萌芽, 싹)을 씻어내어 만萬 가지가 새롭도다. 

 

* 몽몽濛濛은 가는 비라.

 

 

 

龍象은 蹴踏에 潤無邊하니, 

自在縱橫하야 勿羇絆하도다. 

衆生이 未盡證菩提인댄 

終不輕離煩惱岸하나니라.

 

용상龍象(용과 코끼리)은 밟음에 적심(윤택하게 함)이 갓이 없으되, 

종횡縱橫에 자재自在하여 얽매이지 아니 하도다. 

중생衆生이 다 보리菩提를 증證하지 못할진댄, 

마침내 가벼이 번뇌煩惱의 가(언덕)를 여의지 아니 하나니라.

 

 

 

三乘五性이 皆醒悟하니, 

舒即參差코 卷即同하도다. 

鷰雀鸞凰이 飛各異나 

到頭엔 終不離虗空하나니라.

 

삼승三乘과 오성五性이 다 깨어서 아나니, 

펴면 곧 참차參差하고(가지런하지 아니하고) 거두면 곧 한가지로다. 

제비와 새와 난鸞과 봉鳳이 나는 것이 각각 다르나, 

다다른 끝엔 마침내 허공虛空을 여의지 아니 하나니라.

 

 

 

雪山肥膩更無雜하니, 

時雨時風에 不露根하나니라. 

莫謂緜緜無一事하라. 

曾傳消息하야 到王孫하니라.

 

설산雪山에 비니肥膩[一乘法]는 다시 섞인 것 없으니, 

시절時節의 비와 시절時節의 바람에 뿌리 드러나지 아니 하나니라. 

면면緜緜하여 한 일도 없다 이르지 말라. 

일찍이 소식消息을 전傳하여 왕손王孫[釋尊과 達磨]에게 이르니라. 

 

* ‘비니肥膩’는 풀의 이름이니 설산雪山의 한 소가 비니초肥膩草를 먹으면 제호醍醐를 내나니라.

 

 

 

純出醍醐를 我常納이라 하시니, 

若非寶器면 貯應難이니라. 

舉世何人이 知此味오. 

寒山이 撫掌코 笑豐干하니라.

 

‘순수한 제호醍醐 낸 것을 내 항상 들이노라(納)’ 하시니, 

만약 보배의 그릇이 아니면 담음이 어려우니라. 

온 세상의 어느 사람이 이 맛을 아는고? 

한산寒山이 손뼉치고 풍간豊干을 웃으시니라. 

 

 

 

一性이 圓通一切性하니, 

是性은 悠悠하야 一即多이니라. 

若了一多이면 非一異니 

一異無來에 會得麼아.

 

한 성性이 일체성一切性에 두렷이 사무치니, 

이 성性은 유유悠悠하여(넓고 커 갓이 없어) 하나가 곧 여럿이니라. 

만약 하나와 여럿임을 알면 하나[一]와 다름[異]이 아니니, 

‘하나[一]와 다름[異] 없음’이 옴에, 아는가 모르는가?

 

 

 

一法徧含一切法하니, 

一法이 爲主이오 衆爲賓하나니라. 

無主無賓에 即賓主이니 

芥納須彌가 不礙人하니라.

 

한 법法이 일체법一切法을 다 머금으니, 

한 법法이 주主가 되고 여럿이 손[賓]이 되나니라. 

주主 없으며 손[賓] 없는 데에 곧 손과 주主이니, 

개자芥子에 수미須彌가 들어감이 사람을 막지 아니하니라. 

 

 

 

一月이 普現一切水하니, 

非邇非遐이라 體自常하도다. 

南北東西에 分影去하나 

亭亭天外에 有餘光하니라.

 

한 달이 일체一切 물에 널리 나투니, 

가깝지 아니하며 멀지 아니한 것이라 체體가 스스로 항상 하도다. 

남북동서南北東西에 그림자 나누어 가나, 

정정亭亭한 하늘 밖에 남은 빛이 있나니라. 

 

* ‘정정亭亭’은 조금 밝은 모양이라.

 

 

 

一切水月을 一月이 攝하니, 

月不分形하며 水不孤하도다. 

時人이 未透清波路하야 

只道寒光이 滿太虗한다.

 

일체一切의 물엣 달을 한 달이 잡으니(攝), 

달이 형상을 나누지 아니하며 물이 외롭지 아니하도다. 

시절時節의 사람이 맑은 물결의 길을 사무치지 못하여, 

오직 이르되 ‘서늘한 빛이 대허大虛에 가득하다’ 한다.

 

 

 

諸佛法身이 入我性하니, 

無我無人이어늘 謾聖凡이로다. 

幽徑落花는 紅似火이고 

繞門流水는 碧如藍하도다.

 

제불법신諸佛法身이 내 성性에 드니, 

나 없으며 사람 없거늘 속절없이 聖과 凡이로다. 

깊은 길에 떨어진 꽃은 붉음이 불같고, 

문門을 휘돌아 흐르는 물은 푸르기가 쪽빛 같도다.

 

 

 

我性이 還共如來合하니, 

合處는 非他이며 非自己니라. 

須彌頂上에 鐵舩이 沈커늘, 

穿耳胡僧이 暗彈指한다. 

 

내 성性이 도리어 여래如來와 어우르니(합하니), 

어우른(합한) 곳은 남 아니며 내 몸 아니니라. 

수미산須彌山 정상 위에 쇠 배가 잠기거늘, 

귀 뚫은 되중[胡僧]이 그윽이 탄지彈指하도다(손가락 퉁기도다). 

 

* ‘귀 뚫은 되 중’은 달마達磨를 말함이라. 

 

 

 

一地에 具足一切地하니, 

行位가 差別이나 只此身이니라. 

歷盡僧祇三大劫하니 

今年이 還似去年貧하도다.

 

일지一地에 일체지一切地를 갖추니, 

행위行位가 다르나 오직 이 몸이니라. 

아승기阿僧祇 세 대겁大劫을 지내어 다하니, 

올해가 지난해의 가난과 도리어 같도다. 

 

 

 

非色非心非行業이니, 

戲論言辭가 揔不如하니라. 

唯有華山潘處士가 

途中에 吟望倒騎驢하니라.

 

색色 아니며 마음 아니며 행업行業 아니니, 

희론戱論과 말씀이 다 같지 아니하니라. 

오직 화산華山의 심처사潘處士가, 

곧 길 가운데에(오는 도중에) 읊어 바라보고 나귀를 거꾸로 타니라. 

 

* 반처사潘處士는 이름이 반량潘閬이니, 화산華山에 가서 노닐다가 돌아올 때 산을 사랑하여 길에서 나귀를 거꾸로 타고 산을 바라보며 오니라.

 

 

 

彈指에 圓成八萬門이니, 

八萬法門이 唯一處이니라. 

若迷一處하면 謾馳求하리니, 

一處를 若明하야도 無本據이니라.

 

탄지彈指에 팔만八萬 문門이 두렷이 이루어지니, 

팔만八萬 법문法門이 오직 한 곳이니라. 

만약 한 곳을 모르면 속절없이 다니며 구求하리니, 

한 곳을 만약 밝혀도 의거할 곳이 없느니라.

 

 

 

剎那에 滅却三祇劫하나니, 

一念無生이라 一亦非니라. 

大地盡同銀色界어니, 

有何岐路가 不同歸리오.

 

찰나刹那에 삼기겁三祇劫을 없게 하나니, 

일념一念이 남이 없어 일一도 또한 아니니라. 

대지大地가 다 한가지의 은색계銀色界이거니, 

어느 갈림길이 한 데에 돌아가지 아니할 것이 있으리오?

 

 

 

一切數句와 非數句가, 

性相이 紛拏하야 萬種名이니라. 

閉戶只言天未曉하고 

不知門外에 日頭生하도다.

 

일체一切 수구數句[差別, 相]와 수구數句 아님[無差別, 性]이, 

성性과 상相이 어지러워 만萬 가지의 이름이니라. 

문門 닫고서 오직 이르되 ‘하늘이 새지 아니한다’하고, 

문門 밖에 해 돋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與吾靈覺으로 何交涉이리오, 

千聖眞機는 不易親이니라. 

明州布袋는 多狂怪하샤, 

閙中에 常把示行人하시니라.

 

내 영각靈覺으로 어찌 서로 간섭干涉하리오? 

천성千聖의 진기眞機는 친親함이 쉽지 아니하니라. 

명주포대明州布袋는 크게 미치고 괴이怪異하시어, 

시끄러운 가운데 항상 (마른 고기와 마른 똥을)잡아서, 

다니는 사람에게 보이시니라. 

 

* 포대화상布袋和尙이 저잣거리며 마을에 들어가 아니 빌 것이 없이 빌더니, 이따금 마른 고기와 마른 똥을 들어보이며 이르되 “이것이 미륵내원彌勒內院이라” 하더라.

 

 

 

不可毀니, 

天兵魔后도 徒威美하도다. 

慈光照處에 各歸投하야 

清鏡觀來에 自慚恥하니라. 

 

가히 헐지 못하리니, 

천병天兵[魔軍]과 마후魔后[魔女]도 속절없이 두렵게 하며 아름다움 보이도다. 

자광慈光(자애로운 광명) 비추신 곳에 각각 귀투歸投하야, 

맑은 거울을 봄에 스스로 부끄러워하니라.

 

* 귀투歸投: 귀투신명歸投身命, 신명身命을 바쳐 돌아감(귀명歸命함).

 

 

 

不可讚이니, 

虗空은 未省曾離閒이니라. 

善吉巖中에 草不生하니 

憍尸는 謾把天花散

 

가히 기리지(찬탄하지) 못하리니, 

허공虛空은 잠깐도 여의어 흩어지며 그침[離閒]을 알지 못함이니라.

선길善吉[수보리]의 바위 가운데에 풀이 나지 아니하니, 

교시憍尸[제석천왕]는 속절없이 하늘의 꽃을 잡아 흩뿌리도다. 

 

 

 

體若虗空하야 勿涯岸하니, 

秘藏微言으로 莫可詮이로다. 

十聖三賢의 不知處이여, 

有時에 閑掛寺門前하였다.

 

체體가 허공虛空 같아서 갓 없으니, 

비장秘藏의 미묘微妙한 말로 가히 이르지 못하리로다. 

십성삼현十聖三賢의 알지 못한 곳이여. 

이따금 절의 문門 앞에 한가로이 걸려 있다. 

 

* 십성十聖은 십지성인十地聖人이요 삼현三賢은 십주十住와 십행十行과 십회향十回向이라.

 

 

 

不離當處하야 常湛然하니, 

非是衆生이며 非是佛이니라. 

驀然撞倒須彌山하야사 

始信從來無一物인 줄 하리라.

 

당當한 곳을 여의지 아니하여 항상 맑으니, 

이는 중생衆生 아니며 이는 부처 아니니라. 

문득 수미산須彌山을 부딪혀서 거꾸러뜨려야사,

예로부터 옴에 한 물건도 없는 줄을 비로소 알리라.

 

 

 

○ 覓即知君의 不可見하노니, 

不見은 須從此路歸어다. 

病鳥는 只栖蘆葉下커니와, 

俊鷹은 才舉에 搏天飛하나니라.

 

찾으면 곧 그대의 보지 못하는 것을 아노니, 

보지 못한 이는 모름지기 이 길을 좇아 돌아갈지어다. 

병病든 새는 오직 갈댓잎 아래 깃들었거니와,

날랜 매는 갓 (날개를)듦에 하늘을 날개 치며 나나니라.

 

 

 

取不得이니, 

雲生電轉하야 寰區가 黑하도다. 

臨濟途中에 空手迴하니, 

被人剛喚白拈賊하니라.

 

취取함을 득得치(얻지) 못하리니, 

구름이 일어나며 번개가 옮아 환구寰區(하늘 아래)가 검어지도다.

임제臨濟가 길 가운데 빈손으로 돌아오시니, 

사람에게 ‘낮에 도적을 잡는다’라고 굳이 부름을 입느니라. 

 

 

 

捨不得이니, 

四方上下에 皆充塞하도다. 

鶖子는 何知리오 欲棄捐하니, 

空惹天花徧衣裓하니라.

 

버림을 득得치(얻지) 못하리니, 

사방四方과 上下에 다 가득하도다. 

추자鶖子(사리불)는 어찌 알리오? 버리고자 하니, 

속절없이 하늘 꽃이 옷에 가득히 쌓이니라. 

 

 

 

不可得中에 只麼得하나니, 

無葉無根호되 到處生하나니라. 

昨日開簾호니 隨雨過하더니, 

今朝에 當路하야 礙人行한다.

 

가히 얻지 못하는 중中에 오직 그리 얻나니, 

잎 없으며 뿌리 없으되 가는 데마다 나나니라. 

지난날엔 발(주렴)을 여니 비를 좇아 지나더니, 

오늘 아침엔 길에 당當하여 사람의 걸어감을 가리도다.

 

 

 

默時說은 暗中明이니, 

明暗忘來엔 若砥平하니라. 

不二法門을 終演處이여. 

毗耶城內에 似雷聲하도다.

 

‘잠잠한 때를 설說함’은 어두운 가운데 밝음이니, 

밝음과 어두움을 잊어 옴엔 숫돌 평평함과 같으니라. 

둘 아닌 법문法門을 마침내 펴신 곳이여. 

비야성毗耶城 안에 우레 소리 같도다. 

 

 

 

說時默은 絕夤緣하니, 

縮却舌頭하야사 始解宣하리라. 

四十九年을 無一字하시니, 

龍宮海藏은 若爲傳고.

 

설說할 때가 잠잠함은 인연因緣에 얽힘이 끊어지니, 

혀끝을 움츠려야사 비로소 능能히 펴리라. 

‘사십구년四十九年을 (설함이)한 자字도 없다’ 하시니, 

용궁해장龍宮海藏은 어찌 전傳하였는고?

 

 

 

大施門開하야 無擁塞하니, 

不厭流泉하며 不愛山하는구나. 

面對塵灰하고 頭似雪하니, 

步行騎馬하야 過潼關하도다.

 

크게 주는 문門 열어 옹색擁塞함이 없으니, 

흐르는 물[化門]을 싫어하지 아니하며 산[證處]을 사랑하지 아니하는구나. 

낯은 티끌과 재를 띄고 머리는 눈과 같으니, 

걸어 다니며[발 디딤] 말을 타고[발 디디지 않음] 동관潼關을 지나도다. 

 

 

 

有人이 問我호되 解何宗고 커든, 

不惜眉毛하야 略爲通호리라. 

東嶺에 雲生하니 西嶺이 白하고, 

前山에 花發하니 後山이 紅하도다.

 

사람이 나더러 묻되, ‘어느 종宗을 아느뇨?’ 하거든, 

눈썹 털을 아끼지 아니하여 잠깐 위爲하여 통通하게 하리라. 

동東녁 멧부리에 구름이 생겨나니 서西녁 멧부리가 햐얗고, 

앞 산에 꽃이 피니 뒷 산이 벌겋도다.

 

 

 

報道摩訶般若力이라 호리라, 

古佛今佛의 眞秘密이니라. 

謝三은 本是釣魚人이니, 

過得溪來에 脚不濕하도다.

 

아뢰어 이르되, ‘마하반야摩訶般若의 힘이라’ 하리라. 

옛 부처와 지금 부처의 진실眞實한 비밀秘密이니라. 

사삼謝三(玄沙師備, 현사사비)은 본래本來 이 고기 낚는 사람이니, 

내(개천)를 지나옴에 발이 젖지 아니하도다. 

 

* ‘사삼謝三’은 현사화상玄沙和尙이니 사가謝家의 셋째 아들이라.

 

 

 

或是或非를 人不識하나니, 

不識伊家는 更是誰오. 

換面改頭가 如幻化하니, 

兒童은 爭解等閑知리오.

 

혹或 옳으며 혹或 그름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알지 못하리로다, 이 집은(사람은) 또 이 누군고? 

낯 바꾸며 머리 고침이 환화幻化와 같으니, 

아이는 어찌 능能히 넌지시(공연히) 알리오?

 

 

 

逆行順行을 天莫測하나니, 

更無儀範이 作規箴이로다. 

黃輿는 豈可窮邊際리오. 

徒把折錐하야 候淺深한다.

 

거슬러 행行하며 순順하게 행行함을 하늘이 측량測量하지 못하나니, 

또 의범儀範(모범)이 법法 됨(정해짐)이 없도다. 

황여黃輿(대지)는 어찌 가히 갓을 다하리오? 

속절없이 꺾은 송곳을 잡아 옅고 깊음을 재어 살피도다. 

 

* ‘의범儀範’은 의표儀表이고 ‘황여黃輿’는 대지大地라.

 

 

 

吾早曾經多劫修호니, 

因修하야사 乃證無生力이니라. 

癡人은 求道호되 不修行하나니, 

還似蒸沙하야 望充食이로다.

 

내 일찍이 다겁多劫을 지내어 닦으니, 

닦음을 인因하여야 무생력無生力(남이 없는 힘)을 증證하나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도道를 구求하되 행行을 닦지 아니하나니, 

모래를 쪄서 밥 삼고자 바라는 것과 도리어 같도다.

 

 

 

不是等閑히 相誑惑이니, 

從來眞僞는 豈相干이리오. 

虎皮羊質은 知多少오. 

要識眞金인댄 火裏看이니라.

 

넌지시(공연히) 서로 속여 미혹하게 한 것이 아니니, 

예로부터 옴에 진眞(진실)과 위僞(거짓)가 어찌 서로 간섭干涉하리오? 

범의 가죽과 양羊의 몸은 모르리로다, 얼마나 되는고?

진실眞實의 금金을 알고자할진댄 불 속에서 볼지니라. 

 

 

 

建法幢하시니, 

靈山榜樣이 更無雙하도다. 

髽角女兒가 戴席帽하야, 

手攜筇杖ᄒᆞ고 過寒江ᄒᆞ도다

 

법당法幢을 세우시니, 

영산靈山의 방양榜樣(모범, 법식)이 다시 쌍雙이 없도다. 

좌각髽角(좌계髽髻; 쪽머리)한 계집이 석모席帽를 이어, 

손에 대막대 잡고 찬 강을 지나도다.

 

* ‘영산靈山의 방양榜樣’은 부처님께서 꽃을 드신 일이라. ‘좌각髽角’은 삼으로 머리 맨 것을 뿔 같이 한 것이니 부인婦人의 흉복凶服이요, ‘석모席帽’는 주옥珠玉으로 꾸민 것이니 부인婦人의 성盛한 길복吉服이라. 

 

 

 

立宗旨하시니, 

左凹右凸을 誰相委리오. 

海門舩子가 過楊州하니, 

八臂那吒가 姦似鬼하도다.

 

종지宗旨를 세우시니, 

좌左는 오목하고 우右는 불룩함을 누가 서로 알리오? 

해문海門의 선자船子(배)가 양주楊州를 지나니, 

여덟 팔인 나타那吒가 간사姦邪함이 귀신같도다. 

 

* ‘나타那吒’는 북방北方 비사문천왕毗沙門天王의 셋째 아들이니 머리 셋이요 팔이 여덟이라.

 

 

 

明明佛勑은 曹溪가 是니, 

如今何處가 是曹溪오. 

日日에 日從東畔出이오, 

朝朝에 雞向五更啼한다.

 

불칙佛勑을 명명明明히 하신 이는 조계曹溪(혜능)가 이 분이니, 

이제 어느 곳이 이 조계曹溪오? 

날마다 해 동東녁 갓을 좇아 나오고,

아침마다 닭이 오경五更을 향向하여 울도다.

 

 

 

第一迦葉이 首傳燈핫시니, 

糞掃爲衣하야 自知足하시다. 

只因起舞洩天機하샤, 

直至而今에 遭齒錄하시니라.

 

제일가섭第一迦葉이 처음 등불을 전傳하시니, 

똥을 쓴 것으로 옷을 만드시어 스스로 만족을 아시도다. 

오직 일어나 춤춰 천기天氣를 누설漏洩함을 인因하시어, 

바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입에 기록됨을 만나시니라.

 

 

 

二十八代는 西天記니, 

不戀幽巖하시고 共入塵하시다. 

杖子一枝가 無節目하닐 

慇懃分付夜行人하시니라.

 

이십팔대二十八代는 서천西天의 기記이니, 

깊은 바위는 사랑하지 아니하시고 다 티끌에 들어가시다. 

막대기 한 가지가 절목節目 없는 것을, 

은근慇懃히 밤에 다니는 사람에게 나누어 맡기시니라(분부하시니라).

 

 

 

入此土하샤 信機緣하시니, 

五葉花開가 豈偶然이리오. 

無聖廓然을 人不會할새, 

九年을 孤坐鼻撩天하시다.

 

이 땅에 드시어 기연機緣을 아시니, 

다섯 잎 꽃 핌이 어찌 우연偶然이라 하리오? 

성聖 없어 훤함을 사람이 알지 못할새, 

아홉 해를 외로이 앉아 코가 하늘을 찌르시니라.

 

* 옛 이르되, “‘훤하여 성聖 없다’ 함을 알고자 할진댄, 아홉 해 벽 돌아앉은 곳을 향向하여 잡들여 보라” 하니라.

 

 

 

菩提達磨가 爲初祖이시니, 

謾道西來하야 欲付衣한다. 

却羨梁王의 眞慷慨하노라. 

寒江을 趂過하야 不容歸하니라.

 

보리달마菩提達磨가 초조初祖가 되시니, 

서西에서 와 옷을 맡기고자 속절없이 이르도다. 

도리어 양왕梁王의 진실眞實의 강개慷慨를 부러워하노라. 

차가운 강을 지나며 뒤쫓아 돌아감을 용납容納치 아니하니라. 

 

 

 

六代傳衣를 天下聞하나니, 

表法하야 聊將記宗旨하시니라. 

當時放下가 勿肴訛커늘, 

何事로 人來하야 提不起오. 

 

육대六代에 옷(가사) 전傳하심을 천하天下가 들었나니, 

법法을 표表하여 가져서 종지宗旨를 기록하시니라. 

그때 놓아버리심이 어기지(잘못되지) 아니하시거늘, 

무슨 일로 사람이 와서 잡아 일으키지 못하느뇨?

 

 

 

後人이 得道를 何窮數이리오, 

不是唯從嶺外來니라. 

須信春陽이 及萬物하야, 

高低花木이 一時開호리라.

 

후後엣 사람이 도道 얻음을 어찌 수數가 다하리오, 

오직 고갯마루[嶺] 밖을 좇아서 옴이 아니니라. 

봄의 양기陽氣가 만물萬物에 미치어, 

높으며 낮은 꽃나무가 한때 피어남을 모름지기 알리라.

 

 

 

眞不立호리니, 

白駒도 未似流波急이니라. 

當日文王이사 却識珍이어늘, 

卞和는 堪笑이라 空垂泣하도다.

 

진眞을 세우지 아니하리니, 

백구白駒도 흐르는 물결의 빠름과 같지 못하니라. 

그 날 문왕文王이라야 도리어 보배를 알거늘, 

변화卞和는 웃음직하다가 속절없이 울도다. 

 

* ‘백구白駒’는 해의 그림자라. ‘변화卞和’가 형산衡山의 옥玉을 얻어 임금께 바치거늘 초문왕楚文王이 ‘옥玉이 아니라’ 하고 변화卞和의 발을 베니라.]

 

 

 

妄本空하니, 

遊子가 思鄉하야 歲已窮하도다. 

舉足이 是家이라 歸便得이어니, 

何勞流恨하야 向西風고.

 

망妄이 본래本來 비니(공空하니), 

유자遊子(떠도는 아들)가 본 고향을 사랑하야[思] 세월이 이미 다하도다. 

발을 듦이 이 집이라 돌아가면 곧 얻으리어니, 

어찌 수고로이 한恨을 흘려가며 서西녘 바람을 향向하리오?

 

 

 

有無를 俱遣하면 不空空이니, 

若欲存空인댄 還是礙니라. 

山人去後에 老猿이 啼하고, 

茅屋空來에 白雲이 在하도다.

 

유有와 무無를 다 (보내)버리면 불공不空도 비니, 

만약 공空을 두고져 할진댄 도리어 이 가림(장애)이니라. 

산인山人이 간 후後에 늙은 납(원숭이)이 울고, 

띳집(초가집)이 비어 옴에 백운白雲이 있도다. 

 

 

 

二十空門에 元不著하니, 

眞妄이 悠悠하야 病已除하도다. 

一徑이 穿雲한대 人不到하나니, 

千巖萬壑이 遶吾盧하도다.

 

이십공문二十空門에 본디 착着(집착)하지 아니하니, 

진眞과 망妄이 유유悠悠하여 병病을 이미 덜었도다.

한 길이 구름 뚫는데 사람이 이르지 못하나니, 

천 바위와 만 골짜기 내 집을 횟돌도다.  

 

 

 

一性은 如來體로 自同하니, 

同中에 無路하니 任西東이니라. 

井底蝦蟇는 吹鼓角거늘, 

門前露柱는 笑燈籠한다.

 

일성一性은 여래체如來體와 스스로 한가지니, 

한가지인 중中에 길이 없으니 서西와 동東을 무던히 여길지니라. 

우물 밑의 머고리(개구리)는 고각鼓角(군대 나발)을 불거늘, 

문門 앞에 나툰 기둥은 등롱燈籠을 웃는다.

 

 

 

心是根이니, 

暗聳斜蟠하야 已露痕하도다. 

直下可憐이어늘 人不見하야, 

空將枝葉하야 付兒孫한다.

 

마음이 이 뿌리니,  

그윽이 솟아나며[竪] 비스듬히 서리어[橫] 이미 자취를 나투도다. 

바로 가히 사랑할 것이어늘 사람이 보지 못하여, 

속절없이 지엽枝葉을 가져서 아손兒孫에게 분부分付하도다(맡기도다).

 

 

 

法是塵이니, 

一點이나 纔生하면 即喪眞하리라. 

勿謂名中에 無實義하라. 

紛紛全露本來身이니라.

 

법法이 이 티끌이니, 

한 점點이나 갓(겨우) 나면 곧 진眞을 잃으리라. 

명중名中(이름 가운데)에 실實한 뜻 없다 이르지 말라. 

어지러이 본래本來의 몸이 온전히 나타나니라.

 

 

 

兩種이 猶如鏡上痕하니, 

障覆靈明하는 것이 類心垢하도다. 

山河大地가 勿絲毫커니, 

誰掛高臺코 辨妍醜리오.

 

두 가지가 거울 위의 허물과 같으니, 

영명靈明(거울의 밝음)을 가리워 덮는 것이 마음에 때와 같도다. 

산하대지山河大地가 실 터럭도 없거니, 

뉘라서 높은 대臺에 걸어놓고 이쁘며 추함을 가리리오?

 

 

 

痕垢를 盡除하면 光始現하나니, 

孤明이 獨露하니 大千이 寒하도다. 

無塵을 未許傳衣鉢이온, 

弄影은 須知不易觀호리라.

 

허물과 때를 다 덜면 빛이 비로소 나타나나니, 

외로운 밝음이 홀로 나투니 대천大千이 서늘하도다. 

티끌 없다 한 이를 의발衣鉢 전傳함을 허락지 못할 것이어늘, 

그림자놀이 일진댄 쉽게 보지 못함을 모름지기 알리라.

 

* ‘티끌 없다 한 이’라 함은 혜능惠能이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하처야진애何處惹塵埃 ’라고 하신 일이요, ‘그림자놀이 일진댄’이라 함은 연야달다演若達多가 거울을 보고 자신의 머리가 없다고 도망간 일이라.

 

 

 

心法을 雙忘하면 性即眞이니, 

眞性은 非無이며 亦非有이니라. 

少林에 幾度를 暗思量고, 

維摩도 未敢輕開口하시니라.

 

심心과 법法 둘을 잊으면 성性이 곧 진眞이니, 

진성眞性은 무無 아니며 또한 유有 아니니라. 

소림少林에 몇 번을 그윽이 사량思量하셨느뇨? 

유마維摩도 가벼이 입 열지 아니하시니라.

 

 

 

嗟末法에 背眞風하나니, 

觸物昏迷혼 것이 若騃童하도다. 

空立三車火宅外하니, 

何時에 同到四衢中이리오.

 

슬프다! 말법末法에 진풍眞風(진실한 가풍)을 져버리나니, 

물物에 닿음에 혼미昏迷하여 모르는 것이 어린아이 같도다. 

삼거三車를 화택火宅 밖에 부질없이 세워두니, 

어느 때 네 길 가운데에 한가지로 이르리오? 

 

* 삼거화택三車火宅: ‘화택火宅의 삼거三車’는 곧 불타는 집에서 어린 아들을 구救하기 위爲하여 세 수레를 공교하게 만드시어 작은 지혜智慧로 제도 濟度하기 위하여 權敎로 삼승三乘을 이르심이요, 네 거리의 골고루 준 큰 ‘백우거白牛車’는 곧 이 실교實敎인 대승大乘이라. 

 

 

 

惡時世가 近三灾하니, 

煩惱衆生이 喚不迴한다. 

刀兵飢饉千般苦가,

盡是人心의 造出來니라.

 

모진 시세時世가 삼재三灾에 가까우니, 

번뇌중생煩惱衆生이 불러도 돌아보지 아니하도다. 

도병刀兵과 기근飢饉과 천 가지 고苦가, 

다 이 사람의 마음이 지어서 나오니라.

 

* ‘큰 삼재三灾’는 물과 불과 바람이오, ‘적은 삼재三灾’는 도병刀兵과 기근飢饉과 병病이니, ‘기飢’는 곡식이 없는 것이요 ‘근饉’은 나물이 없는 것이라.

 

 

 

 

衆生이 薄福하야 難調制니, 

險詖奔騰이 若踔猿하도다. 

岸樹가 欲崩이며 魚小水어늘, 

悲哉不悟昔人言하논저.

 

중생衆生이 복福이 엷어 길들임이 어려우니, 

음험하여 바르지 못하며 돌아다님이 뛰노는 원숭이 같도다. 

언덕의 큰 나무가 무너지려 함이며 적은 물의 물고기이거늘, 

슬프다! 옛 사람의 말을 알지 못하는 것이여.

 

 

 

去聖이 遠兮邪見深하니, 

我慢이 纏緜하야 昧眞佛한다. 

導師가 悲濟는 幾辛勤고 마는, 

愛河에 暫出하야 還沈沒한다.

 

성聖의 가신지가 멀어 사견邪見이 깊으니, 

아만我慢이 얽혀 진불眞佛을(참 부처를) 혼미昏迷)하도다. 

도사導師가 자비慈悲로 제도하심은 얼마나 괴로우며 부지런하셨느뇨 마는, 

애하愛河(애착의 강)에서 잠깐 벗어났다가 도로 잠기도다. 

 

 

 

魔強法弱하야 多怨害하니, 

善惡이 雖殊하나 佛性은 同하니라. 

好向此時하야 明自己어다. 

百年光影이 轉頭에 空하나니라.

 

마魔는 강强하고 법法은 약弱하야 원수怨讐로 해害함이 많으니, 

선善과 악惡이 비록 다르나 불성佛性은 한가지니라. 

이 때를 좋게 향向하야 내 몸을 밝힐지어다. 

백년百年의 광영光影이 머리 돌이킴에 비어지나니라.

 

 

 

聞說如來頓教門하옵고, 

半笑半瞋하야 情不悅한다. 

一朝에 歸去하야 見慈親하면, 

方知自昔으로 同家業하리라.

 

여래如來의 돈교문頓敎門을 이르심을 듣고, 

반半만 웃고 반半만 성내어 뜻에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루아침에 돌아가 자친慈親을(어머니를) 보면, 

예부터 가업家業이 한가지인 것을 비로소 알리라.

 

여래如來의 돈교문頓敎門을 이르심을 듣고, 반半만 웃고 반半만 성내어 뜻에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루아침에 돌아가 자친慈親(자신의 어머니)을 보면 옛부터 가업家業이 한가지인(같음인) 것을 비로소 알리라.

 

 

 

恨不滅除호되 令瓦碎하나니, 

眞空은 無相커늘 謾參辰이니라. 

蚍蜉는 可笑이라 不量力하고, 

欲鼓微風하야 撼大樁한다.

 

멸滅하여 덜되 기와 부서지듯이 못함을 한恨하나니, 

진공眞空은 얼굴(형상) 없거늘 속절없이 삼진參辰이니라. 

비부蚍蜉(왕개미)는 웃음직함이라 힘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조그만 바람을 일으켜 대춘大椿을 뮈우고져(흔들고져, 움직이고져)하도다. 

 

* ‘비부蚍蜉’는 큰 개미라.

 

* 삼진參辰: 삼성參星과 진성辰星의 합칭인데, 삼성參星[虎星]은 서쪽에 있고 진성辰星[龍星]은 동쪽에 있으며 이 별이 나오면 저 별이 져서 동시同時에 볼 수가 없다. 진성은 상성商星이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도道를 추구하는 것과 이익利益을 추구하는 것은 삼성參星과 진성辰星처럼 병립竝立할 수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 대춘大椿: 중국中國 고대古代의 큰 나무 이름이니, 8천 년을 봄으로 하고 8천 년을 가을로 하여 3만 2천 년이 인간人間의 1년에 해당한다. 뜻이 바뀌어 사람의 장수長壽를 축하祝賀하는 데에 이르는 말이 되었다.

 

 

 

作在心이라 何大錯하니, 

如將金彈하야 逐飛雀하도다. 

無明郎主가 恣貪瞋하야,

用盡家財호되 渾不覺한다. 

 

지음[作]이 마음에 있는지라 자못 크게 착錯하니(그르치니), 

금탄자金彈子를(탄환을) 가지고서 나는 새를 쫓음과 같도다. 

무명랑주無明郞主가 탐진貪瞋(탐심 진심)을 마음대로하여, 

가재家財를(집안 재산을) 다 쓰되 문득 알지 못한다.

 

 

 

殃在身이라 難脫離니, 

到此하야 徒分愚與智니라. 

痛楚酸寒이 百萬般이니, 

父子가 雖親하나 不容替니라.

 

앙화殃禍가 몸에 있을지라 벗어나 여읨이 어려우니, 

이에 이르러서 헛되이 우愚(어리석음)와 지智(지혜)를 나누니라. 

몹시 아프고 시고 서늘함(어렵고 가난함)이 백만百萬 가지이니, 

부자父子가 비록 친親하나 바꾸어 대신하여 받지 아니 하나니라. 

 

 

 

不須怨訴更尤人이어다, 

自智不明하야 乃昏塞이니라. 

菩提煩惱가 舊無根이라. 

只在回心一頃刻하니라.

 

원망하여 헐뜯으며 또 사람(남) 탓함을 모름지기 말지어다. 

제 지혜가 밝지 못하여 어두워 막히느니라. 

보리菩提와 번뇌煩惱가 옛부터 뿌리가 없어, 

오직 마음 돌이킴이 한 경각頃刻(눈 깜박할 사이)에 있나니라.

 

 

 

欲得不招無閒業인댄, 

若論無閒컨댄 酷難當이로다. 

不唯謗法하니 獨沈此이라.

 六賊이 危人하나니 更可防이니라

 

무간無閒의(사이없는) 업業을 부르지 않음을 얻고자 할진댄, 

만약 무간無閒을 논論컨댄 혹독하여 당當하기가 어렵도다. 

법法을 비방誹謗한 이가 혼자 이에 빠질 따름이 아니라, 

여섯 도적이 사람을 위태롭게 하나니 다시 막을지니라.

 

 

 

莫謗如來正法輪이어다, 

匱法因緣은 苦難究이니라. 

縱經空劫하야 寄他方하야도, 

此界成時에 復來受하나니라.

 

여래如來의 정법륜正法輪을 비방誹謗치 말지어다. 

법法을 허는(없애는) 인연因緣은 괴로워서 궁구窮究하기 어려우니라. 

비록 공겁空劫을 지내어 타방他方에 의지하여도, 

이 계界가 이뤄진 때에 다시 와서 받느니라.

 

 

 

栴檀林은, 

極目蕭蕭하야 一徑이 深ᄒᆞ도다. 

遊子는 幾聞香撲鼻오마는, 

等閑히 失却本來心이로다. 

 

전단旃檀 수풀은, 

눈 닿는 끝까지 소소簫簫하여 한 길이 깊도다. 

노니는 아들은 몇 번이나 향香이 코에 부는 것을 맡았느냐마는, 

넌지시 본래本來의 마음을 잃어버리도다.

 

 

 

無雜樹하니, 

葉葉枝枝가 同雨露이니라. 

執熱行人이 喚不歸하나니, 

四時에 空把青陰布이로다. 

 

잡스런 나무가 없으니, 

잎마다 가지마다 비와 이슬이 한가지니라(같느니라). 

더위를 잡아서 가는 사람이 불러도 돌아가지 아니하나니, 

사시四時에 속절없이 푸른 그늘을 잡아 펼침이로다.

 

 

 

鬱密森沈한 데에 師子가 住하니, 

舉目에 長騰百丈威한다. 

遺迹을 不交林外見이어니, 

更容何物이 此中歸리오.

 

울밀鬱密(무성)하고 삼침森沈한(깊은) 데에 사자師子가 주住하니(머무니), 

눈 듦에 백장百丈 두려움(위엄)을 길이 일으킨다. 

남긴 자최를 수풀 밖으로 서로 보이지 아니하거니, 

또 어느 것이 이 가운데 돌아감을 용납容納하리오? 

 

* ‘울밀鬱密’은 잡풀이 무성한 모양이요, ‘삼침森沈’은 깊은 모양이라. 이는 법성法性의 경계이니, 대승보살大乘菩薩의 주住한 곳이라.

 

 

 

境靜林閒에 獨自遊하나니, 

不住不行하며 亦不倚하도다. 

[毛+瑟][毛+瑟]金毛才拂時에, 

無限清風이 隨步起하나니라.

 

경계가 고요한 수풀 사이에 홀로 제 노니나니, 

주住치(머물지) 아니하며 행行치(가지) 아니하며 또 기대지 아니하도다. 

 

* [毛+瑟][毛+瑟]한 금金 털이 겨우 떨 시절時節에, 그지없는 청풍淸風이 걸음을 좇아 일어나나니라.

 

 

 

走獸飛禽이 皆遠去하나니, 

四顧寥寥하야 一境이 空하도다. 

豈是從來無侶伴이리오. 

爲他毛色이 不相同일새니라.

 

다니는 짐승과 나는 새가 다 멀리 가나니, 

사방四方을 돌아보되 요요寥寥하여 일경一境이(한 경계가) 비도다[空]. 

어찌 이것이 예로부터 옴에 벗이 없으리오? 

저 털과 빛이 같지 아니한 까닭이니라.

 

 

 

 

師子兒가, 

奮振全威하니 也太奇하도다. 

入堀藏身해서는 獨得妙하니 

從來不許象王知하나니라.

 

사자새끼가, 

온전한 위엄를 일으켜 떨치니 크게 기특奇特하도다. 

굴堀에 들어가 몸을 감추어서는 홀로 묘妙를 얻으니, 

예로부터 옴에 상왕象王(코끼리 왕)의 앎을 허許락하지 아니 하나니라.

 

 

 

衆隨後하나니, 

牙爪를 難藏이라 威已就하도다. 

空山에 遊戲엔 有多端하나, 

翻身一擲엔 無新舊이니라.

 

무리가 뒤를 좇나니, 

어금니와 손톱 감춤이 어려워 위엄이 이미 이루어지도다.

빈산에 유희遊戱할 땐 끝이 많음이 있으나, 

몸 뒤쳐(뒤집어) 한 번 던짐에 새것과 옛것이 없느니라.

 

 

 

三歲에 便能大哮吼하나니, 

種性이 無差하야 勢力全하도다. 

坐斷東西하야 無過路하니, 

巍巍長在碧巖前하나니라.

 

세 살에 곧 능能히 크게 우나니, 

종성種性이 다름이 없어 세력勢力이 온전하도다. 

동서東西를 끊어 앉아 지날 길이 없으니, 

외외巍巍하여(높고 커서) 푸른 바위 앞에 사뭇 있나니라. 

 

 

 

若是野干이 逐法王인댄, 

林下山邊에 謾來去이니라. 

狐假虎威는 徒自欺니, 

纔逢本色하얀 還驚懼하나니라.

 

만약 이 야간野干이(여우가) 법왕法王을 쫓을진댄, 

수풀 아래 산 가장자리에 속절없이 오며 가니라. 

여시(여우)가 범의 위세를 빌림은 헛되이 제 기롱欺弄함(속임)이니, 

겨우 본색本色을 만나서는 도리어 놀라 두려워 하나니라.

 

 

 

百年을 妖怪히 虗開口하나니, 

滅智灰身이 若暫閑하도다. 

爭似毗藍園樹下에, 

纔生四顧絕追攀이리오.

 

백년百年을 요괴妖怪히 속절없이 입을 여나니, 

지智를 멸滅하며 몸을 사름[灰身]이 잠깐의 한가함 같도다. 

비람원毗藍園 큰 나무 아래에 갓 나시어 사방四方을 돌아보심에, 

쫓아 부여잡음(攀緣) 끊음과 어찌 같으리오? 

 

 

 

圓頓教는, 

金龍이 出海하니 休籠罩이어다. 

霹靂이 纔轟에 雨似傾하나니, 

無限人天이 夢中覺하도다.

 

원돈교圓頓敎는, 

금룡金龍이 바다에서 나니(나오니) 농籠을 끼지(덮지) 말지어다. 

벽력霹靂이 잠깐 굉轟함에(울림에) 비가 기울인 듯 하나니, 

그지없는 인천人天이 꿈이 깨도다.

 

* ‘비 기울인 듯하다’ 함은, 자비慈悲의 구름을 펴서 감로甘露를 뿌리시는 것이라. ‘인천人天이 꿈 깨다’ 함은 생사生死의 큰 꿈을 영永히 깬 것이라.

 

 

 

勿人情하니, 

若著人情하면 道不成하리라. 

南陽國老는 區區가 甚하여, 

秖蹋毗盧頂上行이라 하니라.

 

인정人情이 없으니, 

만약 인정人情에 붙으면(집착하면) 도道가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남양국로南陽國老(남양혜충국사)는 구구區區함이 심甚하여, 

‘오직 비로정상毗盧頂上을 밟아 다닌다’ 하니라.

 

* 당唐 숙종황제肅宗皇帝가 충국사忠國師께 묻자오되 “어느 것이 이 십신조어十身調御이닛고(십신十身을 조복調服하고 제어制御하는 것입니까?)”  사師가 이르시되, “단월檀越이 비로정상毗盧頂上을 밟아 다니시나이다.” 하시니, 이 말이 인정人情에 붙어 이르신 듯 할새, ‘구구區區가 심甚하다’ 이르시니라.

 

 

 

有疑不決이어든 直須爭이어다, 

眞是眞非는 離煩惱하니라. 

終朝古路에 喚人行커늘, 

爭柰迷徒가 戀荒草한다.

 

의심疑心이 있어 결決하지 못하거든 바로 모름지기 다툴지니라

진실眞實의 옳음과 진실眞實의 그름은 번뇌煩惱를 여의니라. 

아침이 마치도록 옛 길에 사람을 불러서 (이 길을)가라 하거늘, 

그렇건마는 모르는 무리는 황초荒草를(거친 풀을) 사랑한다.

 

 

 

不是山僧이 逞人我이라, 

爲法忘軀가 正此時니라. 

不向邪兵揮智刃하면, 

髻珠가 無纇를 有誰知리오.

 

이 산승山僧이 인아人我를 가장하는[逞, 극진極盡히 하는] 것이 아님이라. 

법法을 위爲하여 몸 잊음이 정正히 이 때이니라. 

사병邪兵을(삿된 병사를) 향向하여 지인智刃(지혜의 칼날)을 휘두르지 아니하면, 계주髻珠가 허물없음을 누가 알리오?

 

 

 

修行하리 恐落斷常坑이니, 

若落此坑하면 難出離니라. 

今朝打鼓는 爲三軍이니, 

動著干戈ᄒᆞ면 還不是리라.

 

수행修行하는 이가 단상斷常의 구덩이에 떨어질까 두려우니, 

만약 이 구덩이에 떨어지면 여의어 벗어남이 어려우니라. 

오늘 아침에 북 침은 삼군三軍을 위爲함이니, 

간과干戈(창과 방폐)를 움직이면 도리어 옳지 아니하니라.

 

 

 

非不非니, 

看取靈苗가 未發時하라. 

大鵬이 舉翼에 摩霄漢이어니, 

肯學寒蟬의 戀死枝리오.

 

그름이 그름 아니니, 

령靈한 움(새싹)이 나지 아니한 때를 보아 취取하라. 

대붕大鵬이 낼개를 듦에 하늘을 갈거니, 

어찌 찬 매미의 죽은 가지 사랑함을 배우리오?

 

 

 

是不是니, 

西家를 置得東家地하도다. 

中心樹子가 若屬君이어든, 

不用波波尋四至니라.

 

옳음이 옳음 아니니, 

서西녘 집을 동東녘 집 땅에 두도다. 

가운데 수자樹子가(나무가, 숲이) 만약 그대에게 속屬하거든, 

부지런히 사지四至(是非) 찾음을 말지니라.  

 

*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이룰 때에 사지四至 주변은 수달須達(수달장자)에게 속屬하고 정중正中의 큰 나무 수풀은 태자太子에게 속屬하니 ‘중심수자中心樹子(가운데 나무)’라 하는 말이 이로부터 나니라.

 

 

 

差之毫釐하면 失千里하리니, 

非是相交하야 昧己靈하도다. 

石火가 一揮에 天外去커늘, 

癡人은 猶望月邊星한다.

 

호리毫釐(털끝)만 어기면 잃음이 천리千里이리니, 

비非(그름)와 시是(옳음)가 서로 섞여 기령己靈(자기의 신령함)을 혼미하도다. 돌엣 불이 한 번 휘두름에 하늘 밖에 지나가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오히려 달 가의 별을 바라본다.

 

 

 

是即龍女가 頓成佛이니, 

修行을 不待歷三祇니라. 

今人은 可嘆이라 多迷妄하야, 

日到南方호되 自不知한다.

 

옳음은 곧 용녀龍女가 문득 부처됨이, 

행行 닦음을 삼아승기三阿僧祇가 지남을 기다리지 아니하니라. 

이젯 사람은 슬프다, 어둑하여 모르고 거칠어 날마다 남방南方에 이르르되 제 알지 못한다. 

 

 

 

非即善星이 生陷墜하니, 

因果를 都忘하야 昧正知하도다. 

輪王種族은 無高下커늘, 

死生은 何事로 不同岐오. 

 

그름[非]은 곧 선성善星 비구가 살아서 (지옥에)꺼지니, 

인因과 과果를 다 잊어 정지正知를(바른 지견을) 혼미하도다. 

전륜성왕의 친족은 높고 낮음이 없거늘, 

죽살이(死生, 생사)는 무슨 일로 갈라져 한가지가 아닌고?

 

* 선성善星은 부처의 사촌四寸 아우라 한가지로 윤왕輪王의 종족種族이니라.

 

 

 

吾早年來에 積學問하야, 

寸陰을 長恨急難留호라. 

源源이 恰似寒溪水하니, 

不到滄溟하얀 肯便休이리오.

 

내 일찍 년래年來에(여러 해 전부터) 학문學問 함을 쌓아, 

촌음寸陰이 빨라 머무름이 어려움을 길이 한恨 하노라. 

원원源源(근원이 깊어 끊임없음)이 마치 찬 냇물에 물과 같으니, 

창명滄溟에 이르지 아니하여선 어찌 곧 말리오(쉬리오)?

 

 

 

亦曾討疏尋經論호니, 

念世하야 期爲破暗燈호라. 

憤悱하야 欲窮沙數義어니, 

豈知無說이 是眞乘이리오.

 

또한 일찍이 소疏를 얻으며 경론經論을 찾으니, 

세상을 생각하여 어두움 헐어버릴 등燈이 되길 기약期約하노라. 

분하고 원통히 여겨 항하사수의 뜻을 다하고자 함이어니,

어찌 말 없음이 이 진승眞乘인 줄을 알리오?

 

 

 

分別名相하야 不知休호니, 

猶如隔雲하야 望天日하도다. 

相盡名忘을 直示君호리라. 

新羅附子요 金州漆이니라. 

 

명상名相을 분별分別하여 쉴 줄을 아지 못하니, 

구름에 격隔하여(막히어) 하늘의 해를 보려함과 같도다. 

상相이 다하고 이름 잊음을 그대에게 바로 보이리라. 

신라新羅엔 부자附子[극약劇藥]요 금주金州엔 칠漆이니라.

 

 

 

入海算沙는 徒自困이니, 

秖爲惺惺이라 轉不堪이니라. 

唯有文殊만이 知此數하시어 

前三三與後三三이라 하시니라.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헤아림은 한갓(헛되이) 제 피곤함이니, 

오직 성성惺惺함이라 더욱 함 직하지 못하니라. 

오직 문수文殊만이 이 수數를 아시어, 

‘전삼삼前三三 후삼삼後三三’이라 하시니라.

 

* 무착無着이 청량산淸凉山에 가시어 문수文殊를 친親히 뵈시어 묻자오되, “대중이 얼마나 많나니잇고?”나니, 문수文殊가 대답對答하시되, “전삼삼前三三 후삼삼後三三이라” 하시니, 이 수數를 밝히면 허물 할 분分이 없느니라. 

 

 

 

却被如來苦訶責호니, 

馳求外物을 幾時停고. 

衣珠가 無價하니 雖然在나, 

爭柰昏昏醉未醒한다. 

 

여래如來의 괴로이 꾸짖으심을 도리어 입으니, 

외물外物(바깥 물건)에 나아가(치달려) 구求함을 어느 시절時節에 멈추랴? 의주衣珠(옷 속 보배)가 값없으니 비록 있으나 그렇건마는, 

아득히 취醉하여 깨어나지 아니한다.

 

 

 

數他珍寶ᄒᆞᆫᄃᆞᆯ 有何益이리오, 自己家財란 却棄捐ᄒᆞ도다 兩手로 擎來ᄒᆞ야 如得用이면 不須辛苦走山川ᄒᆞ리라

 

남의 진보珍寶(무진보배)를 헤아린들 무슨 이익利益이 있으리오? 

제 몸엣 가재家財(재산)일랑 도리어 버리도다. 

두 손으로 잡아와 만약 씀을 얻으면[得用], 

구태여 괴로이 산천山川에(산과 시내로) 다니지 아니하리라.

 

 

 

從前蹭蹬하야 覺虗行호니, 

直到天南及天北하도다. 

幾迴綠水青山邊에, 

撞著祖師코 還不識하야뇨.

 

이전부터 층등蹭蹬하여(비틀거려) 속절없이(공연히) 다닌 것을 아노니

바로 하늘의 남南녘과 또 북北녘에 다다르도다. 

몇 번이나 녹수청산綠水靑山 갓에,

조사祖師를 들이받고도 도리어 알지 못하느뇨? 

 

* 층등蹭蹬은 행行하여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라.

 

 

 

多年을 枉作風塵客호니, 

去日衣衫이 半不存하도다. 

咫尺故園에 歸未得하니, 

慈親이 空倚日斜門하얏다.

 

여러 해를 굽혀 풍진객風塵客이 되오니, 

가던 날에 의삼衣杉(삼베옷)이(헤져) 절반도 있지 아니하도다. 

지척咫尺인 옛 정원에 돌아감을 얻지 못하니, 

자친慈親이(어머니가) 해 비스듬히 넘어가는)문門에 속절없이 기대었도다.

 

 

 

種性이 邪하거늘, 

更遇邪師하니 病轉加하도다. 

開明할 若遇眞知識하면, 

縱令枯木이라도 亦生花하리라.

 

종성種性이 삿되거늘, 

또 삿된 스승을 만나니 병病이 더욱 더하도다. 

열어서 밝힐 진실眞實의 선지식善知識을 만약 만나면, 

비록 마른나무라도 또한 꽃 피게 하리라.

 

 

 

錯知解하니, 

知爲障兮오 解爲礙니라. 

了悟空花가 本不生하면, 

繁然動作에 無憎愛하리라.

 

앎과 해解가 착錯하니(그릇되니), 

앎이 막힘이 되고 해解가 가림이 되나니라. 

공화空花가(허공의 꽃이) 본래本來 남[生]이 아닌 줄을 사무쳐 알면, 

어지러이 동작動作함에 미워하며 사랑함이 없으리라.

 

 

 

不達如來의 圓頓制하고, 

秖將空有하야 競頭爭한다. 

葉公이 好畫도 還如此하야, 

才見眞龍코 却自驚하니라.

 

여래如來의 원돈법제圓頓法制를 알지 못하고, 

오직 공유空有를 가져서 머리 다투어 싸운다.

섭공葉公의 그림 즐김도 또한 이와 같아서, 

진실眞實의 용龍을 갓 보고는 도리어 제 놀라나니라.

 

* 섭공葉公이 용龍 그리기를 즐겨하다가 진용眞龍(진짜 용)을 갓 보고는 도리어 제 두려워하여 달아나니라. ‘진용眞龍(진짜의 용)’은 이 원돈교법圓頓敎法이요 ‘화룡畵龍(그림의 용)’은 이 공유空有의 두 견見이라.

 

 

 

二乘은 精進하나 勿道心하나니, 

自證偏空하야 求出離한다. 

三途諸子가 日焚燒커늘, 

不肯迴心하야 用悲智한다.

 

이승二乘은 정진精進하나 도심道心을 (發하지)아니하나니, 

편공偏空(치우친 공)을 제 증證하여 여의어 벗어남을 구求하도다. 

삼도三途의 제자諸子가(모든 아들들) 날로 볶고 달여지거늘, 

마음을 돌이켜 비지悲智(자비와 지혜) 씀을 즐기지 아니하도다. 

 

 

 

外道는 聦明하나 無智慧하니, 

取捨를 居懷커니 肯暫忘이리오. 

楊朱가 只恨多歧路하고, 

不知脚下가 是家鄉인 줄 하니라.

 

외도外道는 총명聰明하나 지혜智慧가 없으니, 

취사取捨를(가지며 버림을) 마음에 두었거니 어찌 잠깐인들 잊으리오?

양주楊朱가 오직 갈림길 많음을 한恨(한탄)하고, 

발아래가 이 가향家鄕(고향집)인 줄을 알지 못하니라.

 

 

 

○ 亦愚癡하니, 

起坐가 都如木偶兒하도다. 

自有生涯가 傳祖父이어늘, 

草鞋를 踏盡호되 不曾知한다. 

 

또한 어리석고 미혹하니, 

일어나며 앉음이 다 나무로 만든 아이 같도다. 

제 두어있는 생애生涯가 조부祖父에게 전해 얻은[傳得] 것이어늘, 

초혜草鞋(짚신)을 밟아 다하되 잠깐도 알지 못한다.

 

 

 

亦小騃하니, 

觸目이 無常이어늘 任憎愛한다. 

時將沙土하야 學圍城하노니, 

嗟爾那知寰宇大리오.

 

또한 적고 어리석으니, 

눈 닿은 데 항상함이 없거늘 미우며 사랑함을 임연任然히(되는대로) 한다. 때때로 모래를 가져서 성城 애워쌈을 배우나니, 

슬프다! 네 환우寰宇(천하)가 큰 줄을 어찌 알리오?

 

* ‘성城을 애워쌈’은 [소아론小兒論]에 이르되, 공자孔子가 길을 가실 때에 아이가 모래로 성城을 만들거늘 공자孔子가 수레를 멈추고 물으시되, “어찌 수레를 피避하지 아니하느냐?” 아이가 대답對答하되, “성城이 수레를 피避함이 옳은가요, 수레가 성城을 피避함이 옳은가요?”하니, 공자孔子가 웃으시고 수레를 돌려서 가시니라. 

 

 

 

空拳指上에 生實解하나니, 

癡小狂迷함이 類暗夫하도다. 

若了此心에 無所得하면, 

春風秋月이 自蕭疎하리라. 

 

빈주먹 손가락 위에 실實한 앎을 내나니, 

어리며 적으며 미치고 미혹한 것이 어두운 사람과 같도다. 

만약 이 마음에 득得한(얻은) 바 없음을 알면, 

봄의 바람과 가을의 달이 제 소소簫疎하리라. 

 

* ‘소소簫疎’는 조촐한(맑은) 것이라.

 

 

 

執指爲月하야 枉施功하나니, 

不唯失月이라 還迷指니라. 

忽然見月코 指還忘하면, 

森羅萬象이 寒光裏리라.

 

손가락을 집착하여 달을 삼아 속절없이 공부功夫 드리나니, 

달을 잃을 따름이 아니라 도리어 손가락도 모르나니라. 

문득 달을 보고 손가락을 도로 잊으면,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찬 광명光明의 속이리라.

 

 

 

根境法中에 虗揑怪하니, 

影事交羅하야 昧正修하도다. 

可笑이라 幻師가 逢幻物하야, 

自看코 疑怖를 不知休하나니라.

 

근根과 경境의 법중法中에서 속절없이 (눈을)비비어 괴이怪異하니, 

그림자의 일이 섞여 벌려져 정正한 닦음을 혼미하도다. 

웃을만하다! 환사幻師가 환물幻物을 만나, 

스스로 보고 의심疑心하여 두려워함 쉴 줄을 알지 못하나니라.

* ‘근根과 경境’은 내육근內六根(안의 육근)과 외육진外六塵(밖의 육진)이니, 육신六識은 서로를 좇나니라.

 

 

 

不見一法이 即如來니, 

春至커늘 群花가 冒雨開하도다. 

是色是心을 人不會할새, 

撞鐘擊鼓하야 上高臺호라.

 

한 법法도 보지 못함이 곧 여래如來이니, 

봄이 이르거늘 모든 꽃이 비를(무릅쓰고) 맞아 피었도다. 

이 색色과 이 마음을 사람이 알지 못할새, 

종鐘을 치며 북을 쳐서 높은 대臺에 오르노라.

 

 

 

方得名爲觀自在니, 

能觀이 如月하나 未忘明하도다. 

欲知法法이 元覉絆인댄, 

大地山河가 是眼睛이니라.

 

바야흐로 이름을 얻되 ‘관자재觀自在’이니, 

능관能觀이(觀하는 자가) 달 같으나 밝음을 잊지 못하도다. 

법법法法이 얽힌 데 없는 줄을 알고자 할진댄, 

대지大地와 산하山河가 이 눈자위니라.

 

 

 

了即業障이 本來空이니, 

法法이 無根커늘 妄分別한다. 

心生이 即是法生時니, 

心若無生하면 法自滅하리라.

 

알면 곧 업장業障이 본래本來 비니[空이니], 

법법法法이 뿌리가 없거늘 망령되이 분별分別한다. 

마음 남이 곧 이 법法 나는 때이니, 

마음이 만약 나지 아니하면 법法이 제(스스로) 멸滅하리라.

 

* 『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種種法滅』: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갖가지 법이 멸한다.  

 

『所謂心性常無念故 名爲不變 以「不達一法界故 心不相應忽然念起」 名爲無明』: 이른바 심성心性은, 항상 무념無念인 까닭으로 이름하여 ‘불변不變’이라 하고, 「일법계一法界를 통달하지 못하는 까닭으로 마음이 상응하지 못하여[心不相應] 홀연히 생각이 일어남」을 이름하여 ‘무명無明’이라 한다. 

 

-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未了인댄 還須償宿債하나니, 

金鏘馬麥을 更何疑리오. 

誰言祖佛이 無逃處오, 

日捨全身호되 尚未知하시나니라.

 

알지 못할진댄 도리어 모름지기 옛 빚을 갚나니, 

쇠 장鏘과 말의 밀을 또 어찌 의심疑心하리오? 

조사祖師와 부처가 도망逃亡할 곳이 없다고 누가 이르느뇨? 

날로 온 몸을 버리시되 오히려 알지 못하시나니라. 

 

* ‘금장金鏘과 마맥馬麥’은 <인과경因果經>에 이르시되, 세존世尊이 인시因時에 치아를 찌르는 억센 밥으로 사람을 대접해드리니, 이 인연因緣으로 성도成道하신 후後에 이 두 난難(어려움)을 보시니라. ‘장鏘’은 창槍 같은 것이라.

 

 

 

飢逢王膳하야도 不能餐하나니, 

高下心生하야 自離閒이니라. 

呼來與食하야도 尚如斯커늘, 

嗟哉라 餓死人何限이리오.

 

주린 사람이 임금의 차반(반찬)을 만나도 능能히 먹지 못하나니, 

높고 낮은 마음이 나서 제(스스로) 사이가 벌어지니라. 

불러서 오라하여 밥을 주어도 오히려 이와 같거늘, 

슬프다! 굶주려 죽는 사람은 어찌 한정하리오?

 

 

 

病遇醫王한들 爭得瘥이리오, 

頓除藥病하여도 未忘筌이니라. 

何如塗毒一聲鼓에, 

臥聽行聞이 盡悄然이리오 

 

병病드니 의왕醫王을 만난들 어찌 좋아짐을 얻으리오? 

약藥과 병病을 몰록 덜어도 전筌(통발)을 잊지는 못하니라. 

독毒을 바른 한 소리의 북에, 

누워서 들으며 다니며 들으니 다 극極에 달達한 초연悄然함과 어찌 같으리오?

 

* 병病 밖에 약藥 없으며 약藥 밖에 병病 없으니: 

『文殊, 一日, 令善財採藥次云, “不是藥者, 採將來.” 善財云, “山中無不是藥者.” 文殊云, “是藥者, 採將來.” 善財, 於地上, 拾得一莖草, 度與文殊. 文殊接得, 示衆云, “此藥, 亦能殺人, 亦能活人.”』

 

문수보살文殊菩薩이 하루는 선재동자善財童子에게 약초를 캐어오라 하시며 이르시되, “약 아닌 풀이 있으면 캐오너라”고 하시니, 선재가 이르되, “산에

는 약 아닌 것이 없습니다”라 하였다. 문수가 이르시되, “그럼 약 풀을 캐오너라.” 하시니, 선재가 땅에서 한 줄기 풀을 주워 문수께 바쳤다. 문수가 받아들고 대중에게 보여 이르시되, “이 약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느니라.” 하였다.  - 『화엄경행원품소초華嚴經行願品疏鈔』권3.

 

 

 

在欲行禪은 知見力이니, 

居塵하니 終日自無塵하도다. 

安心을 不必論華野이어다. 

踏著眉毛하면 是處眞이리라.

 

욕欲에 있어 선禪을 행行함은 지견知見의 힘이니, 

티끌에 있으나 날이 맟도록 제 티끌 없도다. 

마음 편안함을 구태여 화華와(서울과) 야野를(시골을) 논論하지 말지어다. 

눈썹 털을 밟으면 이곳이 진眞이리라.

 

 

 

火裏에 生蓮은 終不壞하나니, 

花似須彌하고 葉似空하도다. 

普散清香三界內하나니, 

不憂容易落西風이어다.

 

불 속에 난 연蓮은 마침내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꽃이 수미산須彌山과 같고 잎이 허공虛空과 같도다. 

맑은 향香을 삼계三界 안에 널리 흩나니, 

서풍西風에 쉽게 떨어짐을 시름하지 말지어다.

 

 

 

勇施犯重코 悟無生하니, 

善惡은 從來勿差互하니라. 

五陰雲開하야 月滿天하니, 

不須更問還家路이어다.

 

용시비구勇施比丘가 중죄重罪를 범犯하고 무생無生을 깨달으니, 

선善과 악惡은 예로부터 옴에 서로 어기지 아니하니라. 

오음五陰의 구름이 열려 달이 하늘에 가득하니, 

구태여 집에 돌아갈 길을 다시 묻지 말지어다. 

 

 

 

早時에 成佛하야 于今在하니, 

相好端嚴이 百萬般이로다. 

金口宣揚을 如不會어든, 

七斤衫下에 試尋看하라.

 

일찍 부처 되어 지금에 있나니, 

상호相好가 단엄端嚴하심이 백만百萬 가지로다. 

금구金口로 펴심을 만약 알지 못하였거든, 

칠근삼七斤杉(누비옷) 아래에 시험삼아 찾아보라.

 

 

 

師子吼에, 

三十三人이 盡驚走한다. 

畫瓶을 打破코 却歸來하니, 

青山流水가 還依舊하도다. 

 

사자師子의 울음에, 

서른 세 사람[卅三祖師]이 다 놀라 달아난다. 

그린 병病을 쳐서 때리고 돌아오니, 

푸른 산과 흐르는 물이 도리어 예와 같도다(依舊). 

 

* ‘화병畵甁’은 <출요경出耀經>에 이르시되, 사내가 그림으로 장식한 병甁에 똥을 가득히 담아 마개를 굳게 닫아 계집에게 주고 이르되, “내 몸을 본 듯이 가지라.” 하였는데, 계집이 받아 상완賞翫하더니(귀중히 아끼고 즐기더니), 사내가 쳐서 깨뜨려 보여주고 이르되, “너는 내 몸을 보라. 또한 이와 같을 따름이니라.” 하니라.

 

 

 

無畏說은, 

直與迷徒로 去釘楔이니라. 

溪邊野老는 勿攢眉어다. 

夏有炎暉코 冬有雪하니라.

 

두려움 없는 설함은, 

바로 미혹한 무리로 더불어서 못과 쐐기를 뽑느니라. 

냇가의 야로野老는 눈썹을 비비지 말지어다. 

여름엔 더운 해 그림자가 있고 겨울엔 눈이 있나니라.

 

 

 

深嗟懵憧頑皮靼하노니, 

故國이 非遙이어늘 不肯過한다. 

還似浮萍의 根蔕斷하야 

悠悠生死에 信風波한다.

 

몽동懵憧하며 완피달頑皮靼함을 깊이 슬퍼하노니, 

옛 나라가 멀지 아니하거늘 즐겨 가지 아니하도다. 

도리어 뜬 부평초의 뿌리 꼭지가 끊어짐과 같아서, 

유유悠悠한 생사生死에서 바람과 물결을 좇도다. 

 

* ‘몽동懵憧’은 슬기롭지 아니한 것이요, ‘완피달頑皮靼’은 쇠고기의 가장 두꺼운 가죽이니 이는 소승小乘이 근성根性이 둔鈍하여 대법大法을 듣고도 알지 못함을 비유하심이라.

 

 

 

只知犯重이 障菩提인 줄 하나니, 

罪性이 如波하야 結氷起하니라. 

癡人은 渴死하되 不低頭하나니, 

豈識凝冰이 全是水리오. 

 

오직 중죄重罪를 범犯함이 보리菩提 막음인 줄을 아나니, 

죄성罪性은 물결이 얼음 얼어 일어남과 같으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목말라 죽되 머리를 숙이지 아니하나니, 

어찌 엉긴 얼음이 온전히 이 물인 줄을 알리오?

 

 

 

不見如來開祕訣하나니, 

祕訣은 何人이 敢舉揚이리오. 

穿耳胡僧이 應大笑하되, 

明明雪上에 更加霜이라 하리라.

 

여래如來가 비결祕訣 열어주심을 보지 못하나니, 

비결祕訣은 어느 사람이 구태여 들어 펴리오? 

귀 뚫은 되중[胡僧, 달마達磨]이 마땅히 크게 웃되, 

‘밝고 밝은 눈 위에 또 서리를 더함이라’ 하리라. 

 

 

 

有二比丘가 犯婬殺하고, 恥列金田上士名하니라. 惶怖하야 不知心所自하고 欲依淨戒하야 救餘生하니라.

 

두 비구比丘가 음淫과 살殺을 범犯하고, 

금전金田에 상사上士의 이름에 벌려있음을 부끄러워하니라. 

두려워하여 마음이 비롯된  곳을 알지 못하여, 

조촐한 계戒를 의지하여 여생餘生을 구救하고자 하니라. 

 

* ‘금전金田’은 승가람僧伽籃을 모아 이름이니, 수달장자須達長者가 기타태자祇陀太子의 정원을 사서 정사精舍를 짓되 그 땅에 금金을 가득하게 깔아 재 쌓아서 주고 사실새[買] 저[彼, 그곳]를 금전金田이라 하나니라.

 

 

 

波離가 螢光으로 增罪結호되, 

較量輕重하야 柝毫釐하니라. 

可憐[憨+鳥][憨+鳥]이 心雖急하나, 

脚下魚行커늘 柰不知한다.

 

파리波離(우바리존자)가 반딧불의 광명光明으로 죄罪를 더 맺게 하되, 

가벼우며 무거움을 자세히 살펴 헤아려서 호리毫釐(털끝)를 분석分析하니라. 어엿브다(가엽도다)! 감감[憨+鳥][憨+鳥]이 마음이 비록 빠르나, 

발아래에 고기 다니거늘 알지 못하도다. 

 

* ‘파리波離’는 계율 가짐이 제일인 우바리존자優波離尊者이라. 두 비구比丘가 산중山中에 암자菴子를 짓고 수행修行하되 청정한 계戒를 굳게 지니더니, 한 비구比丘가 나가 다니거늘 한 비구比丘가 암자에서 선정禪定을 하다가 한 여인이 오거늘 청정한 계戒를 범犯하고서 안의 마음에 기쁘지 아니하여 한 곳에 있던 비구比丘가 돌아오거늘 계戒를 범犯한 일을 이르되 그 비구比丘가 노怒하여 쫓다가 그 여인이 깊은 수렁에 빠져 죽으니, 한 비구比丘는 무심無心으로 음행을 범犯하고 한 비구比丘는 무심無心으로 살생을 범犯하여 둘이 우바리존자優波離尊者께 가서 참회懺悔를 하여 뵈옵거늘, 존자尊者가 소승小乘으로 죄罪를 맺으시는되 두 비구比丘가 의심疑心을 결정하지 못하여 유마거사維摩居士께 가서 참회懺悔하고 저들의 하였던 일을 사뢰었는데, 유마維摩가 꾸짖어 이르시되, “우바리優波離가 근기根機를 잘 보지 못하였도다. 이 두 비구比丘가 대승大乘을 오래 닦으니 어찌 바다를 소의 발자국에 들어가게 하리오?” 하실새 이르시되, “우바리가 반딧불의 광명光明으로 죄罪를 더 맺는다” 하시니라. 대사大士가 이르시되, “죄성罪性이 안에 있지 아니하며 밖에 있지 아니하며 중간中閒에 있지 아니하여, 전제前際에 가지 아니하며 후제後際에 오지 아니하며 중제中際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삼제三際에 구求하여도 조금도 얻지 못하리라.” 하시거늘 두 비구比丘가 홀연忽然히 대오大悟하여 무생인無生忍을 얻으니라. ‘감감(憨+鳥)(憨+鳥)’은 고기를 잡아 먹는 새라.

 

 

 

維摩大士가 頓除疑하시니, 

三處無心을 略輕據하시다. 

番人이 捉得麒麟兒하야, 

放入祇園하니 無覓處하도다.

 

유마거사維摩大士가 몰록 의심疑心을 덜어내시니, 

세 곳에 마음 없음을 잠깐 가벼이 의거하시다. 

번인番人[智]이 기린아麒麟兒[理]를 잡아 얻어서, 

기원祇園에 놓아 들이니 얻을(찾을) 곳이 없도다. 

 

* ‘기원祇園’은 기타태자祇陀太子가 받들어 바친 정원[園]일새 이로 인因하여 이름하니라.

 

 

 

猶如赫日이 消霜雪하니, 

雪霜이 消盡커늘 見青春이로다. 

誰向靈雲의 開眼處하야, 

認得桃花舊主人하리오.

 

빛난 해가 서리와 눈을 녹임과 같으니, 

눈과 서리가 다 녹거늘 푸른 봄을 보도다. 

뉘(누가) 영운靈雲의 눈을 연 곳을 향向하여, 

도화桃花(복사꽃)의 옛 주인主人을 알리오? 

 

* 영운화상靈雲和尙이 도화桃花를 보시고 도道를 깨달아 송頌으로 읊으시되, ‘서른 해를 지나옴에 칼 찾는 객客이더니, 몇 번이나 잎 지며 또 가지 돋았던가? 한 번 도화桃花를 본 후後로부터 바로 지금에 이르렀으되, 다시 의심疑心치 아니하노라’ 하시니라.

 

 

 

不思議어늘 謾度量하나니, 

善惡이 無從하야 性本常하니라. 

香嚴童子는 虗開口하도다. 

舉足에 何曾識道場이리오.

 

사의思議 못할것이어늘 속절없이 탁량度量하나니(헤아리나니), 

선善과 악惡이 좇아 온 바 없어 성性이 본래本來로 떳떳[常]하니라. 

향엄동자香嚴童子는 속절없이 입을 열도다. 

발을 듦에 어찌 도량道場임을 알리오?

 

 

 

解脫力은 若高風하니, 

無影無形호되 觸處通하니라. 

萬里浮雲이 消散盡커늘, 

一輪明月이 在寒空하도다.

 

해탈解脫의 힘은 높은 바람과 같으니, 

그림자 없으며 형상 없으되 닿은 곳에 통通하니라. 

만리萬里에 뜬 구름이 스러져 흩어 없거늘, 

일륜一輪(한 바퀴) 밝은 달이 찬 허공虛空에 있도다.

 

 

 

妙用이 恒沙라 也無極하니, 

昔有深緣하야 得暫逢하도다. 

翻想未淘眞化日한댄, 

幾迴流浪호되 若飄蓬하야니오.

 

묘용妙用이 항사恒沙라 극極(다함)이 없으니, 

옛의 깊은 연緣이 있어 잠깐 마주봄을 얻도다. 

(선지식의)진실한 교화에도 씻어내지 못한[未淘] 날을 돌이켜 헤아려보건댄, 

몇 번을 흘러 다니되[流浪] 쑥이 불려 날아다님과 같았는고?

 

 

 

四事로 供養을 敢辭勞호리오, 

譬如餧驢하며 及餧馬호리라. 

槽頭에 拾得하야 鉢中에 盛하니, 

四海何人이 敢酬價이리오.

 

네 가지 일로 공양供養함을 어찌 수고롭다 사양하리오? 

비유컨댄 나귀를 먹이며 또 말을 먹임과 같이 하리라. 

구유(모이 주는 그릇)에서 주워 바리(발우)에 담으니, 

사해四海에 어느 사람이 빚을 갚으리오? 

 

* ‘네 가지 일’은 옷과 음식飮食과 잠자리와 의약醫藥이라.

 

* ‘나귀 먹이며 말 먹임과 같이 하다’ 함은, 각별各別히 갚음을 바라는 마음이 없는 것이니, 옛날에 양식을 탁발하던 스님이 속인의 집에 가시거늘 속인이 묻되, “무엇을 구求하는가?” 스님이 이르되, “가리지 아니함이 옳으니라.” 하거늘, 속인이 즉시에 말 구유(모이그릇)에 있는 풀을 바리에 담아 주니, 이를 인용하여 이르심이라. 

 

 

 

萬兩黃金도 亦消得이니, 

此心荷戴는 卒難論이로다. 

直饒施寶가 如沙數하야도, 

未及曹溪一點恩하니라.

 

만냥萬兩의 황금黃金도 또한 스러지리니, 

이 마음을 메어서 임(짊어져 받듦)은 마침내 논論함이 어렵도다. 

비록 보배를 포시布施함이 모래의 수數와 같아도, 

조계曹溪의 한 점點 은혜恩惠에 미치지 못하니라.

 

 

 

粉骨碎身하야도 未足酬이니, 

謾說乾坤과 及雨露이로다. 

古今에 誰是報恩人고, 

若有絲頭하면 即辜負하리라.

 

골骨을 부수며 몸을 부수어도 족足히 갚지 못하리니, 

하늘과 땅과 비와 이슬을 속절없이 이르도다. 

예와 이제에 뉘(누가) 이 은恩을(은혜를) 갚은 사람인고? 

만약 실 끝만큼이라도 있으면 곧 저버리리라(기대를 저버리리라).

 

* ‘비와 이슬의 은恩’은 색신色身을 길러낼[牧] 따름이어니와, ‘일구一句의 은恩’은 법신法身을 길러냄이라.

 

 

 

一句에 了然超百億이니, 

若論一句인댄 我無能호라. 

如斯舉唱하야 明宗旨인댄, 

笑殺西來碧眼僧하리라.

 

한 구句에 요연了然히 백억百億을 건너뛰니, 

일구一句를 논論할진댄 내 능能치 못하노라. 

이같이 들어 일러 종지宗旨를 밝힐진댄, 

서西에서 온 눈 푸른 중을 웃기리라.

 

 

 

法中王은 只者가 是니, 

十體三身이 不相似하니라. 

自有靈光이 照古今이어니, 

何必胷前에 題卍字이리오.

 

법중왕法中王은 이것이 이[是]니, 

십체十體와 삼신三身이 서로 같지 아니하니라. 

제게 있는 영광靈光이 고금古今(예와 지금)에 비취거니, 

어찌 구태여 가슴 앞에 만자卍字를 쓰리오?

 

* ‘십체十體’는 십신十身이니 십체十體를 이르면 ‘삼신三身’이 섭攝하여 드니라. ‘서로 같지 못하다’ 함은, 십체十體와 삼신三身이 법중왕法中王과 서로 같지 못한 것이니, ‘십체十體와 삼신三身’은 이 오늘날 새로 이룬 부처요 ‘법중왕法中王’은 이 본원자성천진불本源自性天眞佛인 까닭이라. 

 

 

 

最高勝하니 若爲宣이리오. 

靈山小室이 盡虗傅이로다. 

無言童子라야 能宣說하리니, 

來來하야 棄你의 草鞋錢하라.

 

가장 높아 승勝(수승)하니 어찌 펴리오? 

영산靈山(석가)과 소실小室(달마)이 다 속절없이 전傳하도다. 

말씀 없는 동자童子라야 능能히 펴 이르리니, 

오며 와서 네 초혜草鞋(짚신)의 전錢(값)을 버리라. 

 

* 전錢은 돈이니 초혜草鞋를 사는 값이라.

 

 

 

恒沙如來가 同共證하시니, 

更無別法이 可傳持로다. 

海天에 明月初生處이여, 

巖樹啼猿의 正歇時로다.

 

항사恒沙의 여래如來가 한가지로 다 증證(증득)하시니, 

또 각별各別한 법法이 가히 전지傳持함(전하여 가짐) 없도다. 

바다의 하늘에 밝은 달이 처음 난 곳이여. 

바위의 나무에 우는 납이(원숭이가) 정正히 헐歇할(쉴) 때로다.

 

 

 

我今에 解此如意珠하니, 

瑩徹光明이 無背面하도다. 

如今에 拋在衆人前하니, 

擬議思量인댄 還不見하리라.

 

내 이제 이 여의주如意珠를 아니, 

사무친 광명光明이 앞뒤가 없도다. 

이제 모든 사람의 앞에 던져져 있나니, 

여겨서 의론議論하며 사량思量할진댄 도리어 보지 못하리라.

 

* 覓即知君不可見.

 

 

 

信受之者에 皆相應호리라. 

笑入千峯하야 不轉頭하도다. 

飯後山茶三兩盞에

塵沙佛祖가 盡悠悠하도다.

 

신信하여(믿어서) 받아들일 사람에게 다 서로 응應하리라. 

웃고 천봉千峯에 들어서 머리 돌이키지 아니하도다. 

밥 먹은 후後의 산 차[茶] 두서너 잔盞에, 

진사塵沙(티끌 모래) 같은 불조佛祖가 다 유유悠悠하도다.

 

 

 

了了見ᄋᆞᆯ 更何言이리오. 

萬物이 惟新하니 又一年이로다. 

去去未歸하는 何處客고, 

竹房이 深鎖斷雲邊하도다.

 

말갓말갓이(환하게) 봄을 다시 어찌 이르리오? 

만물萬物이 오직 새로우니 또 한 해로다. 

가며 가서 돌아오지 아니하는 어느 곳의 객客인고? 

죽방竹房이 그친 구름 갓에 깊이 걸려(잠겨져) 있도다.

 

 

 

無一物하야 空寥寥하니, 

豈是曾經劫火燒이리오. 

越王은 任有傾吳策이로다. 

范蠡孤舟를 不易招이니라.

 

한 것[一物]도 없어 비어서 요요寥寥하니, 

어찌 이 겁화劫火의 불사름을 일찍이 지내리오? 

월왕越王은 오吳나라 기울일 모책謀策 두심을 무던히 여길지로다. 

범려范蠡의 외로운 배를 쉽게 부르지는 못하니라.

 

 

 

亦無人하니, 

唯有虗空이 是舊隣이로다. 

幻滅幻生이 皆不有이어니, 

更從何處하야 覓疎親이리오.

 

또한 사람 없으니, 

오직 허공虛空이 이 옛 이웃이로다. 

곡도(幻, 환)가 멸滅하며 곡도(환)가 나는 것이 다 있음이 아니어니, 

다시 어느 곳을 좇아 소친疎親을 얻으리오?

 

 

 

亦無佛하니, 

昔人이 空下驪龍窟하도다. 

相好를 徒言百劫修이로다. 

紅鑪焰裏엔 難停物이니라.

 

또한 부처 없으니, 

옛 사람이 여룡驪龍[無明] 굴窟[生死]에 속절없이 내려오도다. 

상호相好를 백겁百劫을 닦아 헛되이 이르도다. 

벌건 화로[無生]의 불꽃 속엔 물物의 머무름이 어려우니라. 

 

* ‘여룡驪龍’은 검은 말 용龍이라.

 

 

 

大千沙界가 海中漚이니, 

起滅이 無從콘 誰是主오. 

雪峯이 曾與衆人看하시니, 

萬里無雲커늘 日卓午이로다.

 

대천사계大千沙界가 바닷 가운데 거품이니, 

일어나며 멸滅함이 좇은 데 없거늘 뉘(누가) 이 주主인고? 

설봉雪峯이 일찍이 모든 사람으로 보게 하시니, 

만리萬里에 구름 없거늘 해가 낮[正午, 정오]이로다.

 

 

 

一切賢聖이 如電拂하니, 

亦無形狀하며 亦無名하도다. 

天空白月人歸後에, 

幾握吹毛하야 斷不平커뇨. 

 

일체一切의 성현聖賢이 번게 떨침과 같으니, 

또한 형상形狀 없으며 또 이름 없도다. 

하늘 비고 흰 달에 사람 돌아간 후後에, 

얼마나 취모吹毛를 잡아 불평不平(평등치 못함)을 끊었느뇨? 

 

* ‘취모吹毛[鏌鎁]’는 칼의 이름이니, 칼날에 터럭을 불어도 끊어질새 취모吹毛이라.

 

 

 

假使鐵輪을 頂上旋하여도, 

任運隨緣하야 無所作하도다. 

火蕩風搖하야 萬物이 空하나, 

未見青天이 解摧落이로다. 

 

비록 철륜鐵輪을 정수리 위에 둘려도, 

임운任運하여(움직임에 맡겨) 연緣을 좇아 짓는 바 없도다. 

불붙으며 바람 흔들어 만물萬物이 비나(공空하나), 

푸른 하늘이 능能히 꺾여 떨어짐을 보지 못할 것이로다.

 

 

 

定慧圓明하야 終不失하나니, 

能敵塵勞하야 體自常하도다. 

今古에 更無增減處하니, 

昔人이 聊把하야 喻金剛하시니라.

 

정定과 혜慧가 두렷이 밝아 마침내 잃지 아니하나니, 

진로塵勞를 능能히 이겨 체體가 제 떳떳하도다. 

이제와 옛에 또 더하며 덜한 곳이 없으니, 

옛 사람이 잡아서 금강金剛에 견주시니라(비유하시니라).

 

 

 

日可冷이어니와, 

眞金은 豈解重爲鑛이리오. 

魔工이 煽韛를 不能施하야, 

萬古에 徒勞心耿耿하니라.

 

해는 가히 차게 할지어니와, 

진금眞金은 어찌 능能히 다시 광鑛(광석)이 되리오? 

마공魔工이(마군魔軍의 솜씨가) 풀무를 능能히 펴지 못하여, 

만고萬古에 한갓 수고로이 마음이 말갛말갛하니라(말고 환하니라). 

 

* 광鑛은 금金과 돌이 섞인 것이라.

 

 

 

月可熱이어니와, 

此體는 如空하야 非斷滅이니라. 

人閒妄見은 有虧盈이언정, 

天外孤光은 無閒歇하니라.

 

달은 가히 덥게 할지어니와, 

이 체體는 허공虛空 같아서 끊어 멸滅함이 아니니라. 

인간人閒의 망견妄見은 이지러지며 참이 있을 뿐이언정, 

하늘 밖의 외로운 광명光明은 헐歇할(쉴, 그칠) 사이가 없느니라.

 

 

 

衆魔가 不能壞眞說이니, 

眞說진 長如栢在庭하니라. 

幾見雪霜의 凋萬木고마는, 

盤空聳檻ᄒᆞ야 更青青하도다.

 

중마衆魔(마군의 무리)가 가히 진설眞說(진실한 설법)을 헐지 못하나니, 

진설眞說은 길이 ‘잣이 뜰에 있음’과 같으니라. 

얼마나 눈과 서리의 만목萬木 떨어지게 함을 보았는가마는, 

허공虛空에 서리며 헌함軒檻(마루)에 솟아나 다시 푸릇푸릇하도다.

 

 

 

象駕가 崢嶸하야 漫進途하나니, 

眞體는 如空하야 無所礙하니라. 

雲盡扶桑하야 日已生이어늘, 

작화爝火가 부정不停하야 欲何待오.

 

상象(코끼리)의 수레가 일어나(높아) 가득히 길에 나아가나니, 

진체眞體는 허공虛空과 같아서 막힌 바 없느니라. 

구름이 부상扶桑(해 돋는 동쪽의 땅)에서 다하여 해가 이미 돋아나거늘, 

횃불이 머물지(그치지) 아니하여 무엇을 기다리느뇨? 

 

 

 

誰見螗蜋의 能拒轍이리오, 

須臾에 粉碎하나 意猶獰하도다. 

嗟尒니 不及蟬依木하야, 

飲露嘶風過一生하는구나.

 

뉘(누가) 사마귀[螗蜋, 魔外]의 능能히 수레 거스름을 보리오? 

수유須臾(잠깐사이)에 부수어지나 뜻이 오히려 모질도다(사납도다). 

슬프다! 너, 매미[蟬, 二乘] 나무에 붙어서(의지하여), 

이슬 마시며 바람에 울어 일생一生을 지냄에도 미치지 못하는구나.

 

 

 

大象은 不遊於兔徑하나니, 

彈偏拆小가 豈徒然이리오. 

無中有路에 如能入하면, 

金鎖玄關을 盡棄捐하리라.

 

큰 상象(코끼리)은 토끼의 길에 노닐지 아니하나니, 

편偏[치우침, 漸敎]을 그르다 하며 소승小乘을 꺾음이 어찌 속절없으리오? 

없는 중中의 있는 길[無中有路]에 만약 능能히 들어가면, 

쇠로 걸어 잠근 현관玄關(현묘한 관문)을 다 버리리라.

 

 

 

大悟는 不拘於小節이니, 

相取心修하면 達者가 치嗤하리라. 

舉止에 若無西子態면, 

効顰取醜라 更堪悲하니라.

 

크게 깨달은 이는 소절小節(사소한 일)에 거리끼지 아니하나니, 

상相을 취取하여 마음 닦으면 안(통달한) 사람이 웃으리라. 

다니며 가만히 있음에 만약 서자西子(西施, 미인)의 태도 없으면, 

‘찡그림을 본받아 추함을 취取함’이라 다시 슬퍼할만 하니라.

 

* ‘찡그림을 배우다’ 함은 <장자莊子>에 이르되, 서시西施가 마음에 병病이 있어 얼굴을 찡그리는데, 그 마을의 추한 여인이 그것을 보고서 아름답다 여겨 집으로 돌아가 또한 본받아 얼굴을 찡그리는데, 그 마을의 부유한 사람은 그것을 보고서 문門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아니하며 가난한 사람만이 그것을 보고서 처자식을 함께 데리고 나가느니라. 만약 크게 깨닫지 못하여서 거칠게 막힘없는 무애행無礙行을 짓는다면, 어찌 추한 여인이 미인의 ‘얼굴 찡그림’만 배울 따름이리오? 더욱 슬퍼할만 하니라. 이는 큰 깨달음을 칭찬하고 미혹한 이를 경계警戒한 말이라.

 

 

 

莫將管見하야 謗蒼蒼이어다, 

漏管이 雖窮하나 天豈小이리오. 

心智가 開明하야 妄見이 空하면, 

始知法界가 無邊表하리라.

 

대나무 구멍으로 봄을 가져서 창창蒼蒼(하늘)을 비방誹謗하지 말지어다. 

뚫린 댓구멍은 비록 경계의 다함이 있으나 하늘이 어찌 그리 적으리오? 

심지心智가 열려서 밝아 망견妄見이(망령된 견해가) 비면[空], 

법계法界가 갓의 밖이 없는 줄을 비로소 알리라.

 

 

 

未了인댄 吾今에 爲君決호리라 하시니, 

此意明明하나 不易傳이니라. 

誰肯歸來古巖下오, 

任他滄海變桑田하리라.

 

‘알지 못할진댄 내가 이제 그대를 위爲하여 결決하리라’ 하시니, 

이 뜻이 명명明明하나(밝고 밝으나) 전傳함이 쉽지 아니하니라. 

뉘(누가) 즐겨 옛 바위 아래에 돌아오리오? 

저 창해滄海가 뽕나무밭이 됨을 무던히 여기리라.

 

 

 

 

 

 

 

 

 

 

 

 

 

 

 

 

 

 

 

 

 

 

《後序》

 

 

 夫法은 不可見聞覺知로되 而見聞覺知가 亦不外於法이니, 迷之則凡이오 了之則聖故로 古之得道者가 非即非離하며 不縛不脫하야 應機顯用에 言或不能免호되 而其自在則雖終日言이나 而未甞言이니, 

 

법法은 견문각지見聞覺知(보고 듣고 앎)가 아니로되 견문각지見聞覺知가 또한 법法 밖이 아니니, 모르면(미혹하면) 범凡이요 알면 성聖일새 옛에 도道를 득得한 사람이 즉即하지 아니하며 여의지[離] 아니하며 얽매이지 아니하며 벗어나지 아니하여, 기機를 응應하여 현顯히(드러내어) 씀에 이름을[言] 시혹 능能히 면免하지 못하되 그 자재自在함은 비록 날이 맟도록 이르나[言] 잠깐도(조금도) 이르는 것[言]이 아니니,

 

 

 

 昔에 永嘉之見六祖에 振錫而立하시니 目擊而道存矣어늘, 小駐一宿하샤 因爲之證道歌하시니, 道本無證커늘 證之以歌하시니, 雖不免於有言이나 而卒無所累者也이시니라.

 

지난날에 영가永嘉가 육조六祖를 뵈옴에 막대를 흔들고 서서 눈 닿음(마주대함)에 도道가 있거늘, 조금 머물러 하룻밤 주무심을 인因하여 도道를 증證한 노래를 지으시니, 도道는 본래本來 증證이 없거늘 증證하고 노래하시니, 비록 말씀 있음을 면免하지는 못하시나 마침내 허물없으시니라.

 

 

 

 則後世에 由其歌而悟入者가 不知其幾何也이며 又從而爲之註釋者가 亦不知其幾何也오. 然이나 眞得永嘉之趣者가 蓋難其人矣니라. 

 

그러면 후세後世에 그 노래를 말미암아 깨달아 든 사람이 알지 못하리로다 그 얼마나 되며, 또 좇아서 주註하여 새긴 사람이 또한 알지 못하리로다 얼마나 되느뇨? 그러나 진실眞實로 영가永嘉의 뜻을 득得한(깨달은) 이는, 대개 그러한 사람 있기가 어려우니라.

 

 

 

 泉公禪師가 穎出其類허사 千頃領徒之暇에 於其歌句句之閒에 分爲之頌하시니, 大抵한디 隨色而言空하시며 即定而言慧하시며 不見一相而充滿法界하며 不離一塵而圓具佛性하니, 其詞가 灑落하며 其旨宏遠하야 昭昭然發 永嘉之心於數百年曠絕之後하시니. 

 

천공선사泉公禪師가 그 무리에 빼어나게 특출하시어 천경千頃의 도중徒衆(믿는 대중)을 거느리신 여가餘暇에 그 노래 구구句句(구절마다)의 사이에 나누어 송頌을 지으시니, 대저大抵한데(대체로 보아) 색色을 좇아 공空을 이르시며 정定을 즉即하여 혜慧를 이르시며 한 상相도 보지 못하되 법계法界에 가득하며 한 티끌도 여의지 아니하되 불성佛性이 원만圓滿히 갖추시니, 그 말씀이 쇄락洒落하며 그 뜻이 넓게 크고 멀어서 맑고 환하게 영가永嘉의 마음이 수백년數百年 멀리 끊어진 후後에 펼쳐지시니,

 

 

 

 予가 竊幸叩師之緒餘하야 而因以開明故로 覽師之頌하옵고 慕其清風하야 而不能自已하야 命之鏤板하야 用廣其傳하노니, 庶使㝵者로 通하며 冥者로 明하야 而一超에 頓以悟케함이 乃師之賜也이니라.

 

내가 그으기(남몰래) 다행으로 여겨 사師의 실마리를 두드려서 인因하여 열어 밝힐새, 사師의 송頌을 뵈옵고 청풍淸風을 사모思慕하여 능能히 내 그만두지 못하여 명命하여 판板에 새겨서 써 그 전함을 넓히노니, 바라는 것은 막힌 사람으로 하여금 통通하게 하며 어두운 사람으로 하여금 밝혀서 한 번 건너뜀에 몰록 깨닫게 함이 사師의 주심(賜, 분부分付하심)이니라.

 

 

 

 

 

熙寧 九年 七月 十日 括蒼 祝況 後序

희령 구년 칠월 십일 괄창 축황 후서

 

영가대사 남명천선사계송永嘉大師南明泉禪師繼頌 

 

하下.

 

 - 새벽처럼 깨어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