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양경八陽經 선해禪解》

2023. 6. 16. 21:28글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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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양경八陽經】
 
 
 
- 화담경화선사華潭敬和禪師 선해禪解.
 
 
 
 
 
 
 
 
 
 
 
 
 
 
 
 
 
 
 
 
 
 
 
 
 
 
【聞如是】

문여시하니
 
[이와 같음을 들었으니]

註曰 聞如是者 下經云 耳聞種種聲 聲即是空 空即是聲 根塵合為一相 這箇相內 三世諸佛 十方菩蕯 恒沙緣覺聲聞 十二類衆生 天森羅地萬相 明暗色空 擴而充之 則不出這箇聞相也 如是者 是相如如不動 隨事情指法之詞 

주註하여 이르되, 
「문여시聞如是(이와 같음을 들었으니)」라 함은, 경經 아래에서 이르되,『귀가 갖가지 소리를 듣되 소리가 곧 이 공空이요 공空이 곧 이 소리라[耳聞種種聲 聲即是空 空即是聲] 』하여 근根과 진塵이 합合하여 한 상相이 된 이 상相 안[內]인 것이니,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과 시방十方의 보살菩蕯들과 항하사 수와 같은 연각緣覺 ‧ 성문聲聞과 십이류十二類의 중생衆生과 하늘의 삼라森羅와 땅의 만상萬相과 밝고[明] 어두움[暗]과 색色과 공空으로 넓혀서 그것을 가득히 하더라도 이 문상聞相(들음의 상)을 벗어나지 않음이라. 「여시如是(이와 같음)」라 함은, 이 상相이 여여부동如如不動해서 ‘사事와(일과) 정情을(마음을) 따름에 법法을 가리킨다는 말씀이라[사事와 정情에 즉即해서 마음을 밝힌다는 말씀]. 

頌曰, 
如如不動衆罔然, 
諄諄之慈如是說, 
若也透得這箇地,
大地山河一空濶. 

송頌하여 이르되, 
여여如如로 동動함 없으심에 중생이 망연罔然하니,
순순諄諄하신(정성스런) 자비慈悲로 이와 같음 설說하시네. 
만약 이 한 땅을 뚫어버리면,
대지大地와 산하山河가 한 공空의 툭 트임이리라.
 
 

* 如是者 是相如如不動 隨事情指法之詞:
 「여시如是」라 함은, 이 상相이 여여부동如如不動해서 ‘사事(일)와 정情(마음)을 따름에 법法을 가리킨다는 말씀’이라.
 
‧ 『一事一相이 無非妙法也ᅟᅵᆯᄊᆡ니라 由是而往애 山河大地며 明暗色空애 擴而充之ᄒᆞ면 則物物이 燈明智體오 推而行之ᄒᆞ면 則步步ㅣ 普賢行門이라 直下即法以明心이오 不復離物以觀妙ᄒᆞ리니 則所謂大事因緣이 一題예 盡之矣샷다』
 
한 일과 한 상相이 묘법妙法 아님이 없음이니라. 이를 말미암아서 감에 산과 강과 대지大地며 밝고[明] 어두움[暗]과 색色과 공空에 넓혀서 가득히 하더라도 물物마다 지혜를 밝히는 등불의 체體요 미루어서 행行하면 걸음마다 보현보살普賢菩薩의 행문行門이라. 바로 법法에 나아가[법에 즉即해서] 마음을 밝힐 것이요 다시 물物을 여의고서 묘妙를 보지[觀] 아니할지니, 그러면 이르신바 대사인연大事因緣이 한 제題에 다하심이로다. 
 

  • <법화경언해法華經諺解> 일권一卷.

 
 
○ 如如不動: 여여부동
하나의 일[事]과 하나의 상[相]이 여여부동如如不動해서 묘법妙法 아님이 없음이니, 물건 물건이 지혜智慧의 체體를 밝히는 등불[燈]이 되고 걸음 걸음이 보현普賢의 행문行門이 되어 직하直下에(곧바로) 법法에 나아가 마음을 밝히는[明心] 것이라. 그러므로 「수사정지법지사隨事情指法之詞」라 함은, ‘마주하는 일(事)과 일어나는 마음(情)에 즉即해서 그 마음을 밝히는[明心, 指法] 말씀’이라는 뜻이다.
 
‧ 『如如』: 如者「不動」 如者「動」, 不動而動 動而不動.
『여여如如하다』: 앞의 ‘여如’는 동動하지 않음[不動]이요, 뒤의 ‘여如’는 동動함[動]이니, ‘동하지 않되 동하고[不動而動, 慈悲], 동하되 동하지 않음[動而不動, 解脫]이라.’
 
‧ 『觀一切法 自性無生 離於妄見 不住生死, 觀一切法 因緣和合 業果不失 起於大悲 修諸福德 攝化衆生 不住涅槃, 以隨順法性無住故』
 
일체법一切法은 자성自性이 무생無生임을 관觀해서 「망견妄見을 여의어 생사生死에 머물지 아니하며」, 일체법一切法이 인연因緣으로 화합和合함을 관觀해서 업과業果를 잃지 않고 대비大的悲를 일으켜서 모든 복덕福德을 닦아 「중생衆生을 섭화攝化하여 열반涅槃에 머물지 아니하나니」, 법성法性의 머무름 없음을 수순隨順하는 까닭이니라. 
 
-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一時佛】


일시에 불이 
 
[한 때 부처님께서]
 
 
註曰 一者 這箇一物衆妙之原 萬法之根本 黃面老子所謂一佛乘 孔子所謂一太極 老子所謂谷神 盡不出這箇一物也 時者 師資合會之時耶 此時即是轉法輪 度衆生活之時也

「일一(한) 」이라 함은, 이 일물一物(한 어떤 것)이 온갖 묘妙함의 근원根原이요 만법萬法의 근본根本으로, 황면노자黃面老子의 이른바 일불승一佛乘과, 공자孔子의 이른바 일태극一太極과, 노자老子의 이른바 곡신谷神이 다 이 일물一物을 벗어나지 않음이라. 「시時(때)」라 함은, 스승과 제자가 합하여 모인 때인가? 이 때[時]는 곧 법륜法輪을 굴려서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여 살리는 때이라.
 
頌曰
日日現前明日月
時時體露眞常樂
若人欲識眞住處
日用即是煥然爍 

송頌하여 이르되,
날마다 현전現前하여 일월日月이 밝고
시간마다 체體가 드러난 진상眞常(참다운 상)이 낙樂이라.
만약 사람이 참된 머물 곳 알고자 하면
일용日用(날로 씀, 일상생활)이 곧 이 문채文彩로 밝게 비춤이라. 

佛者 華嚴離世間品 十種佛身 云云.

「불佛(부처님께서)」이라 함은, <화엄경華嚴經> 이세간품離世間品에 ‘십종불신十種佛身 운운云云’하심이라.
 
頌曰
眞常寂滅受樂佛
自性清淨天眞佛
十身相海莊嚴佛
毗盧遮那嵬嵬佛

송頌하여 이르되,
진상적멸眞常寂滅 수락불受樂佛
자성청정自性清淨 천진불天眞佛
십신상해十身相海 장엄불莊嚴佛
비로자나毗盧遮那 외외불嵬嵬佛


* 佛者華嚴離世間品十種佛身云云:
‘불佛’이라 함은, <화엄경華嚴經> 이세간품離世間品에 ‘십종불신十種佛身 운운云云’하신 말씀이라. 

『佛子 菩薩摩訶薩有十種見佛 何等為十 所謂 於安住世間成正覺佛無著見 願佛出生見 業報佛深信見 住持佛隨順見 涅槃佛深入見 法界佛普至見 心佛安住見 三昧佛無量無依見 本性佛明了見 隨樂佛普受見 是為十 若諸菩薩安住此法 則常得見無上如來.』

-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在毘耶達摩城 寥廓宅中 十方相隨】

재비야달마성의 요확택중하사 시방상수하고 
 
[비야달마성毘耶達摩城의 넓고 큰 집에 계심에 시방十方에서 서로 좇아 모여들고]

註曰 毗耶城 淨朙居士所居之地也. 表法釋則毗耶 即是自性淸淨戒地也 達摩城 大法城也 表法則即是心城 華嚴法界品 摩耶夫人主城神處云云. 寥廓宅中者 廣大厦也 表法釋則即是慈悲家也. 在者 約事釋則不言可知也 表法釋則常在五分香處法界城中大慈悲家也. 十方常隨者 來集衆也 表法則十二時中日用八字打開 逍遙自在之德方也

주註하여 이르되, 「비야성毘耶城」은 정명거사淨明居士(維摩居士)의 살던 땅이니, 법法으로 드러내어 풀이하자면[表法釋] ‘비야毗耶’는 곧 이 ‘자성청정계自性淸淨戒’의 땅[地]이라. 「달마성達摩城」은 대법성大法城(대법大法의 성곽)이니, 법法으로 드러내자면 곧 이 ‘심성心城(마음의 성)’으로, <화엄경華嚴經> 법계품法界品에 마야부인摩耶夫人등 ‘주성신主城神들의 처소處所를 운운云云’ 하심이라. 「요확택중寥廓宅中(넓고도 큰 집 가운데에)」이라 함은, 광대廣大한 집이니, 법法으로 드러내어 풀이하자면 곧 이 ‘자비慈悲로운 집’이라. 「재在(있다)」라 함은, 사事(일)에 의거해서 풀이하자면[約事釋] 말하지 않아도 가히 알 수 있음이요, 법法으로 드러내어 풀이하자면 오분향五分香(戒香, 定香, 慧香, 解脫香, 解脫知見香) 처소處所인 법계성法界城 가운데의 크게 자비로운 집에 항상 계심이라. 「시방상수十方常隨」라 함은, 와서 모인 대중이니, 법法으로 드러내자면 십이시十二時(열두 때, 24시간) 가운데의 일용日用에 팔자八字로 타개打開해서 소요자재逍遙自在하는 위덕방편威德方便이라.
 
* 華嚴法界品 摩耶夫人主城神處 云云:
<화엄경華嚴經> 법계품法界品에 마야부인摩耶夫人 등 ‘주성신主城神들의 처소處所를 운운云云’.

復次 寶峯光耀主城神 得方便利益眾生解脫門 妙嚴宮殿主城神 得知眾生根教化成熟解脫門 清淨喜寶主城神 得常歡喜令一切眾生受諸福德解脫門 離憂清淨主城神 得救諸怖畏大悲藏解脫門 華燈焰眼主城神 得普明了大智慧解脫門 焰幢明現主城神 得普方便示現解脫門 盛福威光主城神 得普觀察一切眾生令修廣大福德海解脫門 淨光明身主城神 得開悟一切愚暗眾生解脫門 香幢莊嚴主城神 得觀如來自在力普遍世間調伏眾生解脫門 寶峯光目主城神 得能以大光明破 一切眾生障礙山解脫門.

-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四衆圍繞】

사중위요러니 
 
[사부대중四部大衆이 둘러서 앉아있더니]


註曰 四衆圍繞者 即是比丘比丘尼憂婆塞優婆夷 供養讚歎云云也 表法則誠實男慈悲女眞實心四攝法也 

주註하여 이르되, 「사중위요四衆圍繞(사부대중이 둘러서 있더니)」라 함은, 곧 이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憂婆塞, 우바이優婆夷가 공양찬탄供養讚歎하여 운운云云함이라. 법으로 드러내자면 성실誠實[지혜]한 남자와 자비慈悲로운 여자의 진실眞實한 마음인 사섭법(布施攝, 愛語攝, 利行攝, 同事攝)이라. 


頌曰
住對面念大人相 
星羅之中滿月容
德用難思大雄氏 
自在無礙法中王

송頌하여 이르되,
대인大人의 상相을 념念하여 대면對面하고 머무니,
별들이 늘어선 가운데 그득한 보름달 얼굴이라. 
덕용德用이 가히 생각키 어려운 대웅씨大雄氏는
자재自在하고 걸림 없으신 법중法中의 왕王이로다. 
 
 
 
 
【爾時 無礙菩薩】

이시무애보살이 
 
[그때 무애보살無礙菩薩이]

註曰 無礙菩薩者 當機上首也 表法釋則即是慈悲喜捨四無量心也

주註하여 이르되, 「무애보살無礙菩薩」이라 함은 당기當機(설법대중, 기틀을 당當한)의 상수上首(우두머리)이시라. 법을 드러내어 풀이하자면 곧 이 자비희사慈悲喜捨인 사무량심四無量心이라.
 
 
 
 
【在大衆中】

재대중중하사 
 
[대중 가운데 있다가]

註曰 在大衆中者 大衆即是天龍八部與七部衆也 表法則即是八正道分七覺智之大衆也

주註하여 이르되, 「재대중중在大衆中(대중 가운데 있다가)」이라 함은, 대중大衆이 곧 이 천룡팔부天龍八部와 칠부중七部衆이라. 법法으로 드러내자면 곧 이 팔정도분八正道分과 칠각지七覺智의 대중大衆이라.
 
 
 
 
即從座起】

즉종좌기하사 
 
[곧 자리로 좇아 일어나서]

註曰 即從座起者 致敬之貌也 表法則從法空之座 起聽法之心也 

주註하여 이르되, 「즉종좌기即從座起(곧 자리로 좇아 일어나서)」라 함은, 치경致敬하는(공경을 다하는) 모양이라. 법法으로 드러내자면 법法의 공空한 자리로 좇아서 법을 듣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킴이라. 
 
 
 
 
合掌向佛】

합장향불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註曰 合掌向佛者 允所瞻仰也 表法則始覺合本覺 同一究竟覺也 

주註하여 이르되, 「합장향불合掌向佛(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이라 함은, 진실로 우러러보며 사모하는 것이라. 법으로 드러내자면 시각始覺이 본각本覺에 합하여 구경각究竟覺과 동일同一함이라. 
 
 
 
 
而白佛言 世尊】

이백불언 하사대 세존이시여 
 
[부처님께 아뢰어 말씀드리되, 세존이시여]

註曰 而白佛言世尊者 師資問法之始初話也 若約觀心釋 則覺今是而昨非之類也

주註하여 이르되, 「이백불언 세존而白佛言世尊(부처님께 아뢰어 말씀드리되, 세존이시여)」이라 함은, 스승과 제자가 법法을 묻는 시초始初의 말씀이라. 마음을 관觀함에 따라 풀이할 것 같으면[觀心釋] 『각금시이작비覺今是而昨非(지금을 깨달음이 옳되 지난날은 그릇됨이로다)』라 함이 이런 류類이라.

* 覺今是而昨非之類也:
‘지금을 깨달음이 옳고 지난날은 그릇됨이라’고 한 류類이라.
 
⋅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既自以心爲形役 奚惆悵而獨悲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實迷塗其未遠 覺今是而昨非」 舟揺揺以輕颺 風飄飄而吹衣』

거래[去來, 과거와 미래]에서 돌아가리라[歸]. 전원田園에 잡초가 무성하려 하니 어찌 돌아가지 아니하랴. 이미 내 마음이 형形의 부림을 받게 되었으니, 어찌 한탄하며 홀로 슬퍼만 하랴. 이미 지나간 일[去]은 고칠 수 없음을 깨달았고, 앞으로 다가올 일[來]은 따르면 될 일임을 알았네. 「실로 길을 잃었으나 그리 멀어지진 않았으니, 지금을 깨달음이 옳되[歸, 覺今是] 지난날은 그릇됨[去來, 昨非]이로다」. [今時에]배는 흔들리며 가볍게 나아가고, 바람은 표표飄飄히 옷자락에 불어온다. 
 
- [귀거래사歸去來辭] 도연명陶淵明.
 
 

⋅ 「古者 當時之今也 今者 後世之古也. 古之爲古 非年代之謂也. 盖有不可以言傳者 若夫貴古而賤今者 非知道之言也 」 
 
옛날은 당시의 지금이고, 지금은 후세의 옛날이라. 옛날이 옛날인 것은 연대年代만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님이니, 대개 말로써 전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이라. 만약 옛것만 귀하다 하면서 지금[今]을 우습게 보는 것은, 도道를 아는 말이 아니다.  
 
- [계고당기稽古堂記] 홍양호洪良浩.
 
 

⋅ 「自人之不知有當日而世道非矣. 昨日已過 明日未來. 欲有所爲 只在當日. 已過者 無術復之 未來者 雖三萬六千日相續而來 其日各有其日當爲者 實無餘力可及翌日也. ..... 其工夫惟在當日 來日則不言. 噫! 不修之日 乃與未生同 卽空日也. 君須以眼前之昭昭者 不爲空日而爲當日也.」 
 
사람이 오늘[當日]이 있음을 알지 못하게 되면서 세상의 도道가 잘못되게 되었다. 어제[過去]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未來]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려는 바가 있게 하고자하면 다만 오늘[當日]에 있을 뿐이다. ‘이미 지나간 것은 돌이킬 수가 없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은 비록 3만 6천 일이 연이어 온다 해도 그 날에는 각각 그 날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실로 이튿날에 미칠 만한 여력이 없다. ..... 공부工夫는 오직 오늘[當日]에 달린 것이어서 내일[來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아! 공부하지 않는 날은 살지 못한 것과 한가지니 공친 날[空日]이다. 그대는 모름지기 눈앞에 환한 이 날을 공친 날[空日]로 만들지 말고 오늘[當日]로 만들어야 한다. 

- [당일헌기當日軒記] 이용휴李用休. 
 
 
 
 
【此閻浮提衆生 遞代相生】

차염부제중생이 체대상생하야 
 
[이 염부제閻浮提 중생衆生들이 서로 처지를 바꿔가며 생겨나서]

註曰 此閻浮提衆生遞代相生者 報應淪溺之事也 觀心釋則 即是一刹那間九百生滅心也 

주註하여 이르되, 「차염부제중생체대상생此閻浮提衆生遞代相生(이 염부제 중생이 서로 처지를 바꿔가며 생겨나서)」이라 함은, ‘보응윤익報應淪溺(과보에 응하여 윤회에 빠짐)’하는 일이라. 마음을 관觀함으로 풀이하자면, 곧 이 ‘한 찰나간刹那間의 구백생멸九百生滅하는 마음’이라. 
 
頌曰 
戒器完固如石槽 
定水澄淸似摩尼
慧月方照千日出
微細客塵觀見易

송頌하여 이르되, 
계戒의 그릇 완고完固함이 석조石槽(돌 절구통)와 같고
정定의 물 맑고 깨끗함은 마니주摩尼珠와 같으며
지혜智慧의 달 두루 비춤에 일천 해가 솟음이라
미세微細한 객진客塵인 견見을 관觀하기가(보기가) 수월하도다.
 
 
 
 
【無始已來 相續不斷】

무시이래로 상속부단하되
 
[시작이 없이 오면서 서로 이어옴이 끊임이 없으되]

註曰 無始已來相續不斷者 輪廻不已也 觀心釋則即是生住異滅也 

주註하여 이르되, 「무시이래상속부단無始已來相續不斷(시작이 없이 오면서 서로 이어옴이 끊임이 없으되)」이라 함은, 윤회輪廻하는 것이 그침이 없는 것이라. 마음을 관觀함으로 풀이하자면, 곧 이 생주이멸生住異滅(나서 머무르다 변하여 사라짐) 함이라.
 
 
 
 
【有識者少】

유식자소하고 
 
[유식有識한(앎이 있는) 이는 적고]

註曰 有識者少者 有識者之言善能文筆耶 非也 即是謂正信因果者少也
주註하여 이르되, 「유식자소有識者少(앎이 있는 이는 적고」라 함은, 유식有識한 사람이 글을 지음에 뛰어남을 말하는 것인가? 아님이라. 곧 이는 ‘인과(因果)를 바르게 믿는 자가 적음’을 말함이라. 
 
 
 
 
無智者多】

무지자다하며 
 
[무지無智한(지智가 없는) 이는 많으며]

註曰 無智者多者 廓徹大悟之前隨識而行 不隨智者多矣
 
주註하여 이르되, 「무지자다無智者多(지智가 없는 이가 많으며)」라 함은,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기 전前의 식識을 따르던 행行으로, 지智를 따르지 않는 이가 많음이로다. 
 
 
 
 
念佛者少 求神者多】

염불자소하고 구신자다하며 
 
[염불念佛하는(부처를 념念하는) 이는 적고 구신求神하는(신神을 구하는) 이는 많으며]

註曰 念佛者少求神者多者 念佛者阿彌陁佛念佛耶 此誦佛亦云唱佛非也 何者眞念佛 即是十二時中四威儀內 見聞覺知之間 數數反照自性 方可謂之眞實念佛矣 神者何者是神 神者妄用也 即是正念者少 妄念者多也
 
주註하여 이르되, 「염불자소구신자다念佛者少求神者多(염불하는 이는 적고 신을 구하는 이는 많으며)」라 함은, 염불念佛이라는 것이 ‘아미타불阿彌陁佛’하는 것이 염불인가? 이는 송불誦佛(부처님을 욂) 또는 창불昌佛(부처님을 부름)이라 하여 (염불念佛은) 아닌 것이라, 어떤 것이 진실한 염불念佛인가? 곧 이 열두 때(二十四時) 가운데와 사위의四威儀 내內에서 보고 ‧ 듣고 ‧ 깨달아 아는[見聞覺知] 사이에 자주 자주 자성自性을 반조反照하여야 바야흐로 가히 진실한 염불念佛이라 할 수 있으리라. 「신神」이라 함은, 어떤 것이 이 신인가? 신神이라 함은 망妄의 작용作用이니, 곧 이 ‘정념正念하는 이는 적고 망념妄念하는 이는 많음’이라. 
 
 
 
 
【持戒者少 破戒者多】

지계자소하고 파계자다하며 
 
[지계持戒하는(계戒를 가지는) 이는 적고 파계破戒하는(계戒를 어기는) 이는 많으며]

註曰 持戒者少破戒者多者 此戒五戒耶 八戒耶 十戒耶 二百五十戒耶 最上乘菩薩戒耶 這箇戒者 即是最淸淨一圓融法界 心地無非自性戒也
 
주註하여 이르되, 「지계자소파계자다持戒者少破戒者多(계를 가지는 이는 적고 계를 어기는 이는 많으며)」라 함은, 이 계는 오계五戒인가? 팔계八戒인가? 십계十戒인가? 이백오십계二百五十戒인가? 최상승보살계最上乘菩薩戒인가? 이 계戒라는 것은 곧 이 가장 청정淸淨한 일원융법계一圓融法界로, ‘마음 땅에 그름 없는 자성계[心地無非自性戒]’이라. 
 
 
 
 
【精進者少 懈怠者多】

정진자소하고 해태자다하며 
 
[정진精進하는 이는 적고 해태懈怠한(게으른) 이는 많으며]

註曰 精進者少懈怠者多者 行步是精進耶 巡堂是精進耶 非也 即是妙踐眞覺 廓淨塵習 而是眞精進也
 
주註하여 이르되, 「정진자소해태자다精進者少懈怠者多(정진하는 이는 적고 게으른 이는 많으며)」라 함은, 걸음을 걷는 것이 이 정진精進인가? 순당巡堂하는 것이 이 정진인가? 아니라, 곧 이 진각眞覺을 묘하게 밟아 육진六塵의 습習을 확연廓然히 맑힘이 이 진실한 정진[眞精進]이라. 
 
 
* 순당巡堂: 주지가 승당僧堂을 순회하면서 그 행의行儀를 안찰按察함이니 이를 일러 순당巡堂이라 한다. 
 
 
 
 
【智慧者少 愚癡者多】

지혜자소하고 우치자다하며 
 
[지혜智慧로운 이는 적고 우치愚癡한(어리석은) 이는 많으며]

註曰 智慧者少愚癡者多者 智愚相去多少 悟之名智 迷之名愚也
 
주註하여 이르되, 「지혜자소우치자다智慧者少愚癡者多(지혜로운 이는 적고 어리석은 이는 많으며)」라 함은, ‘지智(지혜로움)’와 ‘우愚(어리석음)’는 서로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깨달으면 그 이름이 지智(지혜)요, 미혹하면 그 이름이 우愚(어리석음)라. 
 
 
 
 
【長壽者少 短命者多】

장수자소하고 단명자다하며 
 
[장수長壽하는(오래 사는) 이는 적고 단명短命하는(일찍 죽는) 이는 많으며]

註曰 長壽者少短命者多者 此壽人間壽耶 天上壽耶 這箇壽量 歷千刼而不古 亘萬歲而長今者是也
 
주註하여 이르되, 「장수자소단명자다長壽者少短命者多(오래 사는 이는 적고 일찍 죽는 이는 많으며)」라 함은, 이 수명壽命이 인간人間의 수명인가? 천상天上의 수명인가? 이 수명의 양量은 『천겁千刼을 지나도 옛이 아니요 만세萬歲를 뻗쳤으되 언제나 지금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라. 
 
 

* 歷千刼而不古 亘萬歲而長今者是也:

천겁千刼을 지나도 옛이 아니요, 만세萬歲를 뻗쳤으되 언제나 지금이라.

 
『歷千劫而不古ᄒᆞ며 亘萬歲而長今이라 多經海嶽이 相遷ᄒᆞ니 幾見風雲ㅅ 變態ᄒᆞ야뇨』
 
천겁千劫을 지났으되 옛이 아니요, 만세萬歲에 뻗쳤으되 언제나 지금이라. 바다와 산악이 서로 옮아감을 많이 지냈으니, 바람과 구름의 변變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는고.
 

  • <금강경삼가해언해金剛經三家解諺解> 일권一卷.

 
 
 
 
【禪定者少 散亂者多】

선정자소하고 산란자다하며 
 
[선정禪定한(한마음 어지럽지 않은) 이는 적고 산란散亂한(흩어져 마음 어지러운) 이는 많으며]

註曰 禪定者少散亂者多者 是凡夫禪耶 是小乘禪耶 是大乘禪耶 是最上乘禪耶 這箇禪 即是一心不亂之自性禪是也
 
주註하여 이르되, 「선정자소산란자다禪定者少散亂者多(한마음 어지럽지 않은 이는 적고 흩어져 마음 어지러운 이는 많으며)」라 함은, 이는 범부선凡夫禪인가? 이 소승선小乘禪인가? 이 대승선大乘禪인가? 이 최상승선最上乘禪인가? 이 선禪이라 함은 곧 이 일심불란一心不亂한(한마음 어지럽지 않은) 자성선自性禪이 이것이라. 
 
 
 
 
 
 
【富䝿者少 貧賤者多】

부귀자소하고 빈천자다하며 
 
[부귀富䝿한(부유하여 귀한) 이는 적고 빈천貧賤한(가난하여 천한) 이는 많으며]

註曰 富䝿者少貧賤者多者 有七寶而富䝿耶 有財穀而富䝿耶 多子孫而富䝿耶 這箇之中 富有萬德 蕩無纖塵之富䝿是也
 
주註하여 이르되, 「부귀자소빈천자다富䝿者少貧賤者多(부귀한 이는 적고 빈천한 이는 많으며)」라 함은, 칠보七寶가 있어서 부귀함인가? 재산과 곡식이 있어서 부귀함인가? 자식손자가 많아서 부귀함인가? ‘이  가운데에 부富함에는 만덕萬德이 있으며 탕탕蕩蕩함에는 가는 티끌이 없는[這箇之中 富有萬德 蕩無纖塵]’ 부귀富䝿가 바로 이것이라. 
 
 
 
 
【溫柔者少 剛强者多】

온유자소하고 강강자다하며 
 
[온유溫柔한(온화하고 부드러운) 이는 적고 강강剛强한(억세고 강한) 이는 많으며]

註曰 溫柔者少剛强者多者 即是忍辱波羅蜜 是溫柔也
 
주註하여 이르되, 「온유자소강강자다溫柔者少剛强者多(온화하고 부드러운 이는 적고 억세고 강한 이는 많으며)」라 함은, 곧 이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이니, 이것이 온유溫柔(온화하고 부드러움)이라. 
 
 
 
 
【興盛者少 惸獨者多】

흥성자소하고 경독자다하며 
 
[흥성興盛한(일어나 번창한) 이는 적고 경독惸獨한(근심으로 홀로된) 이는 많으며]

註曰 興盛者少惸獨者多者 子孫興盛耶 錢財興盛耶 此興盛者 即是聽法敎授 勸學傳法 四弘誓願之興盛也
 
주註하여 이르되, 「흥성자소경독자다興盛者少惸獨者多(일어나 번창한 이는 적고 근심으로 홀로된 이는 많으며)」라 함은, 자손子孫이 흥성興盛함인가? 돈과 재산이 흥성興盛함인가? 이 흥성興盛(일어나 번창함)이라 함은, 곧 이 ‘법문法門을 듣고 ‧ 가르침을 전하며 ‧ 배움을 권勸하고 ‧ 법法을 전傳하는’ 이 ‘사홍서원(四弘誓願)’의 흥성興盛(일어나 번창)함이라. 
 
 
 
 
【正直者少 曲諂者多】

정직자소하고 곡첨자다하며 
 
[정직正直한 이는 적고 곡첨曲諂(아첨)하는 이는 많으며]

註曰 正直者少曲諂者多者 仰天而不愧於乾 俯地而不慚於坤 對人而面不煖 謂之正直也
 
주註하여 이르되, 「정직자소곡첨자다正直者少曲諂者多(정직한 이는 적고 아첨하는 이는 많으며)」라 함은, 하늘을 우러러보되 하늘[乾]에 부끄러움이 없고 땅을 굽어보되 땅[坤]에 부끄러움이 없으며 사람을 대함에 얼굴이 (부끄러워)달아오르지 않으면, 그것을 일러 정직正直이라.
 
 
 
 
【淸愼者少 貪濁者多】

청신자소하고 탐탁자다하며 
 
[청신淸愼한(삼가하여 맑은) 이는 적고 탐탁貪濁한(탐내어 흐릿한) 이는 많으며]

註曰 淸愼者少貪濁者多者 五蘊皆空 十八界頓落之處 謂淸也 愼者如何是定信 五戒信耶 妙行十善是信耶 正知四諦法是信耶 忽悟十二緣是信耶 隨順六波羅蜜是信耶 能知最上乘而是信耶 即是這箇信者 六祖所謂此衣表信之信也 世尊擧拈花 迦葉破顔微笑之信也 反復諸己之信也 日用返照自性之信也 如是信者 諸人受用而不知矣
 
주註하여 이르되, 「청신자소탐탁자다淸愼者少貪濁者多(삼가하여 맑은 이는 적고 탐내어 흐릿한 이는 많으며)」라 함은, 오온五蘊이 모두 공空하여 십팔계十八界가 몰록 탈락(脫落)한 곳을 이르되 「청淸」이라. 신愼(삼가함)이라 함은, 어떤 것이 이 결정된 신信(믿어 삼가함)인가? 오계五戒가 신信(믿음)인가? 묘행십선妙行十善(묘하게 십선을 행함)이 이 신信(믿음)인가? 정지사제법正知四諦法(사제법을 바르게 앎)이 이 신信(믿음)인가? 홀연히 십이인연十二因緣을 깨달음이 이 신信(믿음)인가?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수순隨順함이 이 신信(믿음)인가? 능히 최상승最上乘을 앎이 이 신信(믿음)인가? 곧 이 신信이라 함은, 육조六祖 스님이 이르신바 『이 옷은 신信을 표함이라』고 하신 신信이요, 『세존世尊께서 염화拈花를 드시니 가섭迦葉이 파안미소破顔微笑 하신』 신信이요, 『돌이켜 자기로 돌아오는[反復諸己]』 신信이요, 『일용日用 중에 자성自性을 반조返照하는(돌이켜 비추는)』 신信이라. 이와 같은 신信(믿음)은 모든 사람이 항상 수용受用하되(받아서 쓰되) 알지를 못하도다.
 
 

* 此衣表信:

이 옷은 신信을 표함이라.

 
『惠能擲下衣鉢於石上 云 此衣表信 可力爭耶 能隱草莽中 惠明至 提掇不動 乃喚云 行者 行者 我為法來 不為衣來』
 
혜능惠能이 의발衣鉢을 돌 위에 던지고 이르되, ‘이 옷은 신信을 표함이니 가히 힘으로 다투겠는가?’ 혜능이 풀 가운데에 숨거늘, 혜명惠明이 이르러서 잡아 들어 올리니 움직이지 아니하여 불러서 이르되, “행자 행자여! 저는 법法을 위하여 왔지 옷을 위하여 오지 아니하였나이다.” 하였다.
 

  •  [육조법보단경六祖法寶壇經]

 
 
 
 
【布施者少 慳悋者多】

보시자소하고 간린자다하며 
 
[보시布施하는 이는 적고 간린慳悋하는(인색하여 아끼는) 이는 많으며]

註曰 布施者少慳悋者多者 財施耶 無畏施耶 法施耶 內施耶 外施耶 內外施耶 竭盡施耶 過去施耶 現在施耶 未來施耶 無盡施耶 此布施 即是五蘊六入六塵六識我我所 三界二十五有染淨 十法界依正等法 皆捨是眞布施也

 
주註하여 이르되, 「보시자소간린자다布施者少慳悋者多(보시하는 이는 적고 인색하여 아끼는 이는 많으며)」라 함은, 재물을 보시함[財施]인가? 두려움 없음을 보시함[無畏施]인가? 법을 보시함[法施]인가? 안을 보시[內施, 몸을 보시]함인가? 밖을 보시[外施, 재산 ‧ 권리 ‧ 지위를 보시]함인가? 안과 밖을 함께 보시[內外施]함인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시[竭盡施]함인가? 과거를 보시[過去施]함인가? 현재를 보시함[現在施]인가? 미래를 보시함[未來施]인가? 다함이 없이 보시[無盡施]함인가? 이 보시布施는 곧 이 오온五蘊(色受想行識) ‧ 육입六入(眼耳鼻舌身意) ‧ 육진六塵(色聲香味觸法) ‧ 육식六識(眼識 耳識 鼻識 舌識 身識 意識)의 아我(나)와 아소我所(나의 것), 삼계三界(欲界 色界 無色界) ‧ 이십오유二十五有(욕계 14, 색계 7, 무색계4)의 더럽고 깨끗함, 십법계十法界의 의보依報와 정보正報 등等의 법法을 다 버려버림이니, 이것이 참된 보시[眞布施]이라. 
 
 
* 十法界依正:
십법계十法界의 의정依正.
 
‧ 의정依正이란, ‘의보依報’와 ‘정보正報’로써, 의보依報는 곧 ‘주변환경’이요 정보正報는 ‘자신의 몸’을 말한다. 
 
 

* 內施耶 外施耶 內外施耶 竭盡施耶 過去施耶 現在施耶 未來施耶 無盡施耶: 안을 보시함인가? 밖을 보시함인가? 안과 밖을 보시함인가? 가진 모든 것을 보시함인가? 과거를 보시함인가? 현재를 보시함인가? 미래를 보시함인가? 다함이 없이 보시함인가?
 
『何等爲菩薩修習過去施法 此菩薩聞過去諸佛菩薩所行具足功德 聞已不著 了達非有 不起妄想 不貪 不味 觀察諸法 心無所猗 諸法如夢 無有堅固 於諸善根 不起有想 心無所著 但爲化衆生故 示現其身 廣說道教 欲令衆生成就佛法 又復觀察過去諸法 十方推求都不可得 菩薩如是觀已 復作是念 過去諸法皆悉捨離 是爲菩薩修習過去施法』 
 
어떤 것이 ‘보살이 과거를 보시하는 법’을 닦아 익히는 것인가? 이 보살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행한 바 구족한 공덕을 들음에, 듣고도 그것이 있는 것이 아님[非有]을 통달하여 알아서, 망상을 일으키지 않고 탐착하지 않으며 맛들이지 않고 모든 법을 관찰하되, 마음이 의지하는 바가 없어서 모든 법은 꿈과 같고 견고함이 있음이 없으며 모든 선근善根에 대하여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 마음이 집착한 바가 없다. 다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까닭으로 그 몸을 시현示現하여 널리 도道의 가르침을 설하는 것이니, 중생으로 하여금 불법佛法을 성취케 하기 위함인 것이다. 또 다시 관찰하되, ‘과거의 모든 법은 시방으로 추구하여 보아도 도무지 얻을 것이 없다’라고 생각한다. 보살은 이와 같이 관찰하고서 또 이런 생각을 짓되, ‘과거의 모든 법을 실로 다 여의어 버리리라’하나니, 이것이 보살이 ‘과거를 보시하는 법’을 닦아 익히는 것이다. 
 
『何等爲菩薩修習未來施法 此菩薩聞未來世諸佛菩薩所行善根 具足功德 聞已而不取相 心無所有 不求往生彼方佛剎 無諸求想 不生行願 攝心 不散 不味 不厭 不以善根迴向於彼 不爲生彼專修善根 亦不廢捨 但因彼境界教化衆生 欲令衆生具足佛法 觀察眞實 此眞實法非有處所 非無處所 非內 非外 非遠 非近 復作是念 若法非有 不可不捨 是爲菩薩修習未來施法』
 
어떤 것이 보살이 ‘미래를 보시하는 법’을 닦아 익힘인가? 이 보살은 미래세未來世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행할 선근善根과 구족한 공덕功德을 들음에, 듣고도 그 모양을 취하지 아니하여 마음에 가진 바가 없고 저 타방의 부처님 나라에 태어나기를 구하지도 않으며 모든 구하는 생각이 없어서 행원行願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마음을 거두어들여 산란하지 않고 맛들이지 않으며 싫어하지도 않고 선근으로써 피안에 회향하지 않으며 피안에 나고자 하지도 않나니, 오롯이 선근만을 닦되 또한 멈추거나 버리지도 않아서 다만 피안의 경계를 인因하여서 중생을 교화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불법을 구족하게 하려는 것뿐이다. 진실을 관찰하되 ‘이 진실한 법은 처소處所가 있는 것이 아니요 처소가 없는 것도 아니며,안도 아니요 바깥도 아니며,먼 것도 아니요 가까운 것도 아니다’라고 한다. 다시 또 이런 생각을 짓되, ‘만약 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非有] 가히 버리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나니,이것이 보살이 ‘미래를 보시하는 법’을 닦아 익히는 것이다. 
 
『何等爲菩薩修習現在施法 此菩薩聞四天王 三十三天 夜摩天 兜率陀天 化樂天 他化自在天 梵天 梵身天 梵輔天 梵眷屬天 大梵天 光天 少光天 無量光天 光音天 淨天 少淨天 無量淨天 徧淨天 密身天 少密身天 無量密身天 密果天 不煩天 不熱天 善現天 善見天 色究竟天聞聲聞 緣覺具足功德 聞已 心不惑 正念不忘 不懈不沒 亦不憂慼 其心寂滅而無所取 菩薩唯作是念 一切諸行 皆悉如夢 一切所行 皆非眞實 衆生不知 故流轉惡道 菩薩於彼 廣爲說法 遠離諸惡 成就佛法 修菩薩道 心無惑亂 是爲菩薩修習現在施法』 
 
어떤 것이 보살이 ‘현재를 보시하는 법’을 닦아 익히는 것인가? 그 보살은 사천왕천四天王天과 삼십삼천三十三天ㆍ야마천夜摩天ㆍ도솔타천兜率陀天ㆍ화락천化樂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ㆍ범천梵天ㆍ범신천梵身天ㆍ범보천梵輔天ㆍ범권속천梵眷屬天ㆍ대범천大梵天ㆍ광천光天ㆍ소광천少光天ㆍ무량광천無量光天ㆍ광음천光音天ㆍ정천淨天ㆍ소정천少淨天ㆍ무량정천無量淨天ㆍ변정천遍淨天ㆍ밀신천密身天ㆍ소밀신천少密身天ㆍ무량밀신천無量密身天ㆍ밀과천密果天ㆍ불번천不煩天ㆍ불열천不熱天ㆍ선현천善現天ㆍ선견천善見天ㆍ색구경천色究竟天에 대한 일을 듣거나 또 성문ㆍ연각의 원만한 공덕에 대한 일을 듣거나 또 성문ㆍ연각의 구족한 공덕에 대한 일을 듣고도, 마음이 미혹되지 않고,정념正念(바른 생각)을 잊지 않으며, 게으르거나 매몰되지 않고 또한 근심하지 않음에 그 마음이 적멸寂滅하여 취할 바가 없다. 보살은 오직 이러한 생각을 짓되, ‘일체의 모든 행行은 다 꿈과 같고 일체의 행하는 바는 다 진실이 아니니, 중생은 알지 못한 까닭으로 악도惡道에 구르고 흘러서 다니는구나’라고 한다. 보살은 저들에게 널리 위하여 설법하여 모든 악을 멀리 여의고 불법을 성취케 하기 위함이니, 보살도를 닦아 그 마음이 미혹되거나 어지러움이 없는 이것이 보살이 ‘현재를 보시하는 법’을 닦아 익힘인 것이다. 

 

-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권제십이卷第十二.

 
 
 
 
【信實者少 虛妄者多】

신실자소하고 허망자다해서 
 
[신실信實한(믿음이 실다운) 이는 적고 허망虛妄한(헛되고 망령된) 이는 많아서]
 
註曰 信實者少虛妄者多者 這箇實者 十刹寶王 得此爲種 成正覺 轉法輪 度衆生 入涅槃 恒沙菩薩 得此爲種 十度四無量心 妙修萬行 微塵數辟支佛 得此爲種 妙悟十二緣法 無數聲聞 得此爲種 能斷煩惱 證得四果 六道衆生 得此爲種 爲天 爲人 爲修羅 爲三途胎卵濕化 十二類衆生 得此爲種 各受其報 乾坤得此而天覆地載 日月星辰 得此爲光朙 照耀世界焉 
 
주註하여 이르되, 「신실자소허망자다信實者少虛妄者多(믿음이 실다운 이는 적고 헛되고 망령된 이는 많아서)」라 함은, 이 「실實(실다움)」이라는 것은 십찰十刹의 보왕寶王이 이것[實]을 얻어 종자種子를(씨앗으로) 삼아 정각正覺을 이루어 법륜法輪을 굴려서 중생제도衆生濟度하시고 열반涅槃에 드시며, 항하사수恒河沙數와 같은 보살菩薩도 이것을 얻어 종자를 삼아 십도十度(十波羅蜜, 십바라밀)와 사무량심四無量心으로 묘妙하게 만행萬行을 닦으시며, 미진수微塵數와 같은 벽지불辟支佛도 이것을 얻어 종자를 삼아 묘妙하게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을 깨치시고, 무수한 성문聲聞도 이것을 얻어 종자를 삼아 능히 번뇌煩惱를 끊고 사과四果를 증득證得할 수가 있는 것이다. 육도중생六道衆生도 이것을 얻어 종자를 삼아 천인天人이 되기도 하고 사람이 되기도 하며 수라(修羅)가 되기도 하고 삼도三途의 태란습화胎卵濕化가 되기도 하며, 십이류十二類의 중생衆生도 이것을 얻어 종자를 삼아 그 과보果報를 받는다. 건곤乾坤도 이것을 얻어 하늘을 덮고 땅을 실어주며, 일월성진日月星辰도 이것을 얻어 광명光朙을 삼아 세계世를 비추어 빛나게 하도다.

頌曰
大覺世尊出世間 
威光遍照鑑刹土
如此種智徧十方 
種種說法無量道
 
송頌하여 이르되,
대각세존大覺世尊께서 세간世間을 나오심에 
위엄스런 빛이 찰토刹土를 두루 비추어 살피시도다. 
이와 같은 부처님 종지種智 시방十方에 두루하시니
갖가지 설법이 한량없는 도道이니라.
 
 
 
 
【致使 世俗淺薄 官法茶毒 賦役煩重 百姓窮苦 所求難得】
 

치사 세속으론 천박하야 관법이 다독하며 부역이 번중하고 백성이 궁고하야 소구난득이로다. 
 
[그러한 탓으로 세속으로는 천박하여 관청의 법규가 혹독하며, 부역이 무거워 고통스럽고, 백성이 궁핍으로 괴로워 구하는 바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註曰 此二十二字經文 如上所說二十八句 摭擧發問後法也
 
주註하여 이르되, 여기 스물두 글자의 경문經文은 위에서 설한 스물여덟 구절과 같으니, 모두 모아서 뒤의 법을 묻게 되는 것이라. 
 
 
 
 
【良由信邪倒見 獲如是苦】

양유신사도견하야 획여시고하나니 
 
[참으로 삿되고 전도된 견해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고통을 얻나니] 
 
 
註曰 此十字經文中 這箇苦字 八苦是耶 三苦是耶 袈裟之下 未朙大事 眞所謂苦也
 
주註하여 이르되, 이 열 글자의 경문經文 가운데 이 「고苦」라는 글자는 팔고八苦가 이것인가? 삼고三苦가 이것인가? 「가사袈裟 아래서 큰 일[一大事] 밝히지 못함이 진실로 이른바 「고苦」인 것이라. 
 
 
 
 
【唯願 世尊 爲諸邪見衆生 說其正見之法 令得悟解 免於衆苦】

유원 세존은 위제사견중생하야 설기정견지법하사 령득오해하야 면어중고케 하소서
 
[원하옵나니, 세존께서는 모든 사견중생邪見衆生을 위하여 그 정견正見의 법法을 설說하시어 깨달아 알게 하여 온갖 고통을 면하게 하소서]
 
 
註曰 此二十四字經文 如此發問者 攝前起後之問也 邪見者 喜怒哀樂憎愛取捨耶 纔恁麽 便不恁麽 解礙末忘 即是邪見也 衆生者 十二類衆生耶 九類衆生耶 四生衆生耶 六道衆生耶 這箇衆生 慳貪心 即是衆生 布施正見 免於衆苦 染欲心 即是衆生 持戒正見 免於衆苦 嗔心 即是衆生 忍辱正見 免於衆苦 懈怠心 即是衆生 精進正見 免於衆苦 散亂心 即是衆生 禪㝎正見 免於衆苦 愚癡心 即是衆生 智慧正見 免於衆苦也 法者 人天因果法耶 聲聞四諦法耶 緣覺十二緣法耶 菩薩六度法耶 如來慈悲法耶 即是靈光無垢之心法 所謂眞如體也 令得悟解者 五品弟子位悟解耶 五十七位悟解耶 即是念念修 辦事修 先頓悟後漸修之悟解也 如是時時念念 五蘊皆空 度一切苦厄 免於衆苦也
 
주註하여 이르되, 여기 스물네 글자의 경문經文으로 이같이 물음을 제기한 것은, 앞의 내용을 거두어서 뒤의 물음을 일으킴이라. 「사견邪見(삿된 견해)」이라 함은, 희로喜怒 ‧ 애락哀樂 ‧ 증애憎愛 ‧ 취사取捨인가? 잠깐이라도 ‘이렇다’고 하자마자 곧 이러하지 아니하리니, 안다고 하는 장애[解礙]로 지엽인 말단에서 (정념正念을)잃어버리면 곧 이 사견邪見이라. 「중생衆生」이라 함은 십이류十二類의 중생衆生인가? 구류九類의 중생衆生인가? 사생四生의 중생衆生인가? 육도六道의 중생衆生인가? 이 중생衆生이라 함은 아끼고 탐내는 마음[慳貪心]이 곧 이 중생이니 보시布施의 바른 견해[正見]가 온갖 고통을 면免하게 하고, 욕欲에 물든 마음[染欲心]이 곧 이 중생이니 지계持戒의 바른 견해가 온갖 고통을 면하게 하며, 성내는 마음[嗔心]이 곧 이 중생이니 인욕忍辱의 바른 견해가 온갖 고통을 면하게 하고, 게으른 마음[懈怠心]이 곧 이 중생이니 정진精進의 바른 견해가 온갖 고통을 면하게 하며, 산란한 마음[散亂心]이 곧 이 중생이니 선정禪㝎의 바른 견해가 중생의 고통을 면하게 하고, 어리석은 마음[愚癡心]이 곧 이 중생이니 지혜智慧의 바른 견해가 중생의 고통을 면하게 함이라. 
 
「법法」이라 함은, 인간과 하늘의 인과법因果法인가? 성문聲聞의 사제법四諦法인가? 연각緣覺의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인가? 보살菩薩의 육도법六度法(六波羅蜜)인가? 여래如來의 자비법慈悲法인가? 곧 이 영광靈光의 때 없는[無垢] 마음 법[心法]이니, 이른바 진여眞如의 체體인 것이라. 「영득오해令得悟解(깨달아 알게 하여)」라 함은, 오품제자위五品弟子位를 깨달아 안다는 것인가? 오십칠위五十七位를 깨달아 안다는 것인가? 곧 이 생각 생각[念念]에 닦으며 일을 판별함에 닦는 것이니, 먼저 몰록 깨닫고[頓悟] 후에 점차로 닦음[漸修]이 깨달아 앎이라. 이와 같이 시간 시간과 생각 생각에 『오온五蘊이 모두 공空하여 일체一切의 고액苦厄을 건넘[五蘊皆空 度一切苦厄]』이 「면어중고免於衆苦(온갖 고통을 면함)」이라. 
 
 
 
 
【佛言 善哉善哉 無礙菩薩 汝大慈悲 爲諸邪見衆生 問於如來正見之法 不可思議 汝等諦聽 善思念之 吾當爲汝 分別解說天地八陽之經】

불언 선재선재라 무애보살아 여대자비로 위제사견중생하야 문어여래정견지법의 불가사의하리니 여등은 제청하고 선사념지하라 오당위여하야 분별해설천지팔양지경하리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선재善哉 선재善哉라 무애보살아. 그대가 큰 자비慈悲로 모든 사견중생邪見衆生을 위하여 여래如來 정견正見의 법法인 가히 사의思議할 수 없음을 묻나니,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잘 사념思念하라. 내 마땅히 너를 위하여 천지팔양天地八陽의 경經을 분별分別하여 해설解說하리라.]

註曰 善哉善哉者 滿口許他也 無礙菩薩者 聽法當機上首者也 汝大慈悲者 揀非愛見悲也 菩薩慈能與樂 悲能拔苦者 法喜禪悅爲樂 而凡小反爲苦也 不可思議者 染而不染 難可了知 不染而染 難可了知 周易所謂諸民日用而不知 故不可思議也 汝等云云者 叮嚀付囑之辭也

주註하여 이르되, 「선재선재善哉善哉(옳고 옳다)」라 함은, 두말없이 그를 허락함이라. 「무애보살無礙菩薩」이라 함은 법法을 듣는 대중의 우두머리[上首]가 되는 이라. 「여대자비汝大慈悲(그대가 큰 자비로)」라 함은 애착愛著된 견해가 아닌 자비慈悲임을 가려주심이라. 보살菩薩은 ‘자慈로 능히 즐거움을 주고 비悲로 능히 고통을 뽑아내는 것’이 법희선열法喜禪悅의 즐거움이 되나, 범부凡夫와 소승小乘은 도리어 고통으로 여김이라. 「불가사의不可思議(가히 사의思議할 수 없음)」라 함은, 물들되 물들지 아니함이라 가히 깨달아 앎이 어렵고, 물들지 아니하되 물듦이라 가히 깨달아 앎이 어려우니, [주역周易]에서 이른바 『모든 백성들이 날마다 쓰면서 알지 못한다』 함이라. 이러한 까닭으로 불가사의不可思議이라. 「여등운운汝等云云(너희들은 운운,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잘 사념하라. 내 마땅히 너를 위하여 천지팔양의 경을 분별하여 해설하리라]」함은,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입이 쓰도록 당부하여) 부촉付囑하시는 말씀이라. 
 
* 諸民日用而不知: 
모든 백성들이 날마다 쓰면서 알지 못한다.
 
 
‧ 『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 仁者見之謂之仁 知者見之謂之知 「百姓日用而不知」 故君子之道鮮矣』
 
한 번 음陰하고 한 번 양陽한 것을 일러 도道라 한다. 이를 이어가는 것이 선善이요, 이를 이룬 것이 성性인데, 어진 자는 이를 어짊[仁]이라 하고, 지혜로운 자는 이를 지혜[知]라 하나니, 보통사람들은 날마다 사용하면서도 알지 못하니 군자君子의 도가 드물도다. 
 
- [주역周易] 계사繫辭 상上.
 
 
‧ 『具足凡夫法 凡夫不知, 具足聖人法 聖人不知. 聖人若知 卽是凡夫, 凡夫若知 卽是聖人』범부凡夫가 구족具足한 법은 범부가 모르고, 성인聖人이 구족具足한 법은 성인이 모른다. 성인이 만약 안다면 곧 범부이고, 범부가 만약 안다면 곧 성인이다.  
 
- 밀운선사密雲禪師.
 
 
‧ “환동범부還同凡夫니라, 도리어 범부니라. 깨달랐다고 벌써 각해覺解를 일으키면 그게 중생衆生이여. 다른 게 중생이 아니라. ‘내가 깨달랐다’ 해가지고 각상覺相이 하나가 있으면 중생衆生이라도 그건 천하에 못된 중생, 그건 중생도 버린 놈으 중생이여.” 
 
- 전강선사田岡禪師.
 
 
* 當機: 
기틀을 당해서.
 
『當機者 宿植德本 緣合時熟 如癰欲潰 不起于座 聞即得道 此名當機衆』
당기當機라 함은, 과거세過去世에 덕본德本을 심은 탓에 ‘기연機緣이 합치合致하고 시기가 성숙함’이 등창이 터지려는 것과 같아, 자리로부터 일어나지도 않은 채 법을 듣자마자 곧 도를 얻음이니, 이를 당기중當機衆이라 한다.
- <묘법연화경문구妙法蓮華經文句>
 
 
 
 
【此經 過去諸佛已說 未來諸佛當說 現在諸佛今說】
 
차경은 과거제불이 이설하시고 미래제불이 당설하시며 현재제불이 금설하시니라. 
 
[이 경經은 과거過去의 모든 부처님이 이미 설하셨고 미래未來의 모든 부처님이 당래當來에 설하시며 현재現在의 모든 부처님이 지금 설하시니라]

註曰 此經者 言說經耶 無言說經耶 即是不因紙墨成 展開無一字 入息出息常轉 量等三千大千世界 云云 一卷經矣 
 
주註하여 이르되, 「차경此經(이 경)」이라 함은, 언설言說로 된 경經인가? 언설言說이 없는 경經인가? 곧 이 『종이와 먹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펼치면 한 글자도 없으되, 숨 들이쉬고 내쉼에 항상 굴리니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와 그 양量이 같도다』라고 운운云云」 함이 이 한 권의 경[一卷經]이로다.

頌曰
常住不滅這箇經 
無形無體寫一切
能小能大自在卷 
妙在塵中無染體
 
송頌하여 이르되,
상주불멸常住不滅한 이 경經은
형形이 없고 체體가 없음에 일체一切를 그려내도다.
능히 작기도 크기도 한 이 자재自在한 경권經卷은
그 묘妙함이 ‘티끌 속에서 체體를 물들임이 없음’에 있도다. 
 
三世佛者 過云莊嚴刼千佛耶 未來星宿刼千佛耶 現在賢刼千佛耶 即是出入息常說這箇經之佛也
 
「삼세불三世佛(과거 미래 현재의 부처님)」이라 함은, 과거장엄겁천불過云莊嚴刼千佛인가? 미래성숙겁천불未來星宿刼千佛인가? 현재현겁천불現在賢刼千佛인가? 곧 이 숨 내쉬고 들이쉼[出入息]에 항상 이 경經을 설說하시는 불佛(부처님)이라. 
 
 
* 不因紙墨成 展開無一字 入息出息常轉 量等三千大千世界:
종이와 먹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펼치면 한 글자도 없으되, 숨 들이쉬고 내쉼에 항상 굴리니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와 그 양量이 같도다
 
 
‧ 『若約祖宗門下 一卷經 言之 則入息出息 常轉經 豈待形於紙墨然後 以爲經哉』
 
만약 조종문하祖宗門下에 일권경一卷經을 잡아 이르건댄, 들이쉬며 내쉼에 항상 경經을 전轉커니(굴리거니) 어찌 종이와 먹의 나타남을 기다린 후에야 경經이라 하리오.   
 
-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
 
 
‧ 『諸塵旣然 則不越此念 不破此塵 入息不居陰界 出息不涉萬緣 常轉如是經 百千萬億卷又何勞』
 
모든 티끌이 이미 그러하다면, 이 념念을 넘어서지 않고 이 티끌을 부수지도 않고서, 숨을 들이쉴 때에 오온五蘊 십팔계十八界에 머물지 않고 숨을 내쉴 때에 온갖 인연因緣에 간섭되지 않아, 언제나 이와 같이 이렇게 경經을 굴리니(읽으니), 백천만억百千萬億 권卷이라 하더라도 또한 어찌 피로하겠는가.
 
-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제십오권第十五卷 보설普說.
 
 
‧ 입식출식入息出息에 상전경常轉經.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면서 ‘이 뭣고?’』 
 
- 송담선사松潭禪師.
 
 
* 量等三千: 양등삼천.
 
여래如來의 몸이 삼천대천세계와 같다는 뜻에서 양등삼천量等三千이라 한다.
 
 
 
 
【夫天地之間 爲人最勝最上 䝿於一切萬物 人者 正也 眞也 心無虛妄 身行正眞 左丿爲正 右乀爲眞 常行正眞 故名爲人 是知人能弘道 道以潤身 依道依人 皆成聖道】
 
부천지지간에 위인이 최승최상하고 귀어일체만물하니 인자는 정야며 진야라 심무허망하야 신행정진이니 좌별위정이요 우불위진이라 상행정진할새 고명위인이니 시지인능홍도하며 도이윤신하나니 의도의인하면 개성성도하리라
 
[대저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가장 뛰어나고 가장 높으며 일체만물 가운데에서 귀하니, 사람[人]이라 함은 정正이요 진眞이라. 마음이 허망함이 없어 몸이 정正과 진眞을 행行하니, 좌左로 획을 그어[丿] 정正으로 삼고 우右로 획을 그어[乀] 진眞으로 삼음이라 항상 정正과 진眞을 행하는 까닭에 이름하여 인[人, 사람]이라 함이니, 이는 사람이 능히 도道를 널리 펼치며 도로써 몸을 윤택하게 함을 아나니, 도道를 의지하고 사람[正眞]을 의지하면 모두가 성인의 도과[道果]를 이루리라.]
 
 
註曰 爲人最勝最上者 三界諸佛 十方菩薩 歷代祖師 天下老和尙 皆從人道 初發信心 見性成佛 故䝿於一切萬物也 不昧自性 常順於大道故 正也 眞也 顧見天命 不違眞如性 故心無虛妄 身行正眞也 人順於道 道順於身 人道身 是三無差別 故皆成聖道也 聖者 正也 道者 是也 人者 眞也
 
주註하여 이르되, 「위인최승최상爲人最勝最上(사람이 가장 뛰어나고 가장 높으며)」이라 함은, 삼세제불三界諸佛과 시방보살十方菩薩과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천하노화상天下老和尙이 모두 다 인도人道로 좇아 처음 신심信心을 발發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 하시는 까닭에 일체만물一切萬物 가운데에서 귀䝿하다 하는 것이라. 자성自性을 매昧하지(어둡지) 아니하여 항상 대도大道를 수순隨順하는 까닭으로 정正이요 진眞이며, 천명天命을 돌아보아 진여성眞如性을 어기지 아니하는 까닭에 「심무허망신행정진心無虛妄身行正眞(마음이 허망함 없음이요 몸이 정진正眞을 행함)」이라. 사람[人, 正眞]이 도道를 따르고 도道는 몸[身]을 따름에 ‘사람[人]’과 ‘도[道]’와 ‘몸[身]’의 이 세 가지가 차별差別이 없는 까닭에 「개성성도皆成聖道함(모두 성인의 도과道果를 이룸)」이라. 
 
 
 
 
【復次無礙菩薩 一切衆生 旣得人身 不能修福 背眞向僞 造種種惡業 命將欲終 沈淪苦海 受種種罪】
 
 부차무애보살아 일체중생이 기득인신하되 불능수복하고 배진향위하며 조종종악업타가 명장욕종에 침윤고해하여 수종종죄하나니 
 
[또 무애보살無礙菩薩아, 일체중생一切衆生이 이미 사람의 몸을 얻었으되 복福을 닦지 아니하고 참됨을 등져 거짓을 향하며 갖가지 악업惡業을 짓다가 목숨이 장차 끊어지려고 함에 고해苦海에 빠져서 갖가지 죄를 받나니]
 
 
註曰 一切衆生者 五十五位衆生耶 七趣衆生耶 蠢動含靈之衆生耶 即是自心八萬四千衆生也 旣得人身者 四大色身耶 四蘊身心耶 即是最淸淨一圓融 依正不二之身也 修福者 布施是修福耶 持戒是修福耶 忍辱是修福耶 精進是修福耶 禪定是修福耶 這箇修福者 即是自心 常生智慧 是大福田之修福也 背眞向僞者 權大乘是向僞耶 緣覺聲聞是向僞耶 五十種魔邪是向僞耶 一念不覺生 即是背眞向僞也 造種種惡業者 十惡業是耶 七遮罪是耶 五逆是耶 不忠不孝是耶 乍起嗔心即是造種種惡業也 
 
주註하여 이르되, 「일체중생一切衆生」이라 함은, 오십오위五十五位의 중생衆生인가? 칠취七趣의 중생衆生인가? 준동함령蠢動含靈(령靈을 머금어 꿈틀거리는 벌레)의 중생인가? 곧 이 자기 마음의 팔만사천八萬四千 중생衆生이라. 「기득인신旣得人身(이미 사람의 몸을 얻었으되)」이라 함은, 사대색신四大色身인가? 사대四大와 오온五蘊인 몸[身]과 마음[心]인가? 곧 이는 의보(依報, 환경)와 정보(正報, 몸)가 하나로 원융圓融하여 둘이 아닌 가장 청정淸淨한 몸이라. 「수복修福(복을 닦음)」이라 함은, 보시布施가 이 복을 닦음인가? 지계持戒가 이 복을 닦음인가? 인욕忍辱이 이 복을 닦음인가? 정진精進이 이 복을 닦음인가? 선정禪定이 이 복을 닦음인가? 이 복福을 닦음이라 함은, 곧 이는 자신의 마음이 항상 지혜智慧를 생生함이 이 대복전大福田의 복福을 닦음이라. 「배진향위背眞向僞(참됨을 등지고 거짓을 향하며)」라 함은, 권대승權大乘(일시적인 방편方便으로 설한 대승의 가르침)이 이 거짓을 향함인가? 연각緣覺과 성문聲聞이 이 거짓을 향함인가? 오십종五十種 마군魔軍의 삿됨이 이 거짓을 향함인가? ‘한 생각 중생衆生을 깨닫지 못하면[一念不覺生, 한 생각 생生함을 각覺하지(깨닫지) 않으면]’ 곧 이 참됨을 버리고 거짓을 향함이라. 「조종종악업造種種惡業(갖가지 악업을 짓다가)」이라 함은, 십악업十惡業이 이것인가? 칠차죄七遮罪(칠역죄)가 이것인가? 오역五逆이 이것인가? 나라에 충성忠誠하지 않고 부모에 효도孝道하지 않음이 이것인가? 잠깐 성내는 마음[嗔心]을 일으킴이 곧 이 갖가지 악업을 지음이라. 
 
 
頌曰
能仁寂默大聖尊 
八相成道度衆生
兩足光朙照我頂 
一輪朙月無二狀
 
송頌하여 이르되,
능인적묵能仁寂默이신 대성존大聖尊께서
팔상성도八相成道로 중생衆生을 제도하시네.
양족兩足[지혜, 자비]의 광명光朙이 내 정수리를 비추시니 
한 바퀴 둥그런 달은 두 모양이 없구나. 
 
命將欲終者 人間短促之命耶 天上延長之命耶 極樂世界無量壽之命耶 即是一刹那間九百生滅心之命也 沉淪苦海 受種種罪者 地獄苦是耶 餓鬼苦是耶 畜生苦是耶 即是一起嗔心 是大苦也
 
「명장욕종命將欲終(목숨이 장차 끊어지려고 함에)」이라함은, 인간人間의 시일時日이 촉박하여 짧아진 목숨인가? 천상天上의 오래 사는 목숨인가? 극락세계極樂世界의 무량한 수명의 목숨인가? 곧 이는 ‘일찰나간一刹那間에 구백생멸九百生滅하는 마음’인 목숨[命]이라. 「침윤고해수종종죄沉淪苦海受種種罪(고해에 빠져 갖가지 죄를 받나니)」라 함은, 지옥地獄의 고苦가 이것인가? 아귀餓鬼의 고苦가 이것인가? 축생畜生의 고苦가 이것인가? 곧 이는 한 번 성내는 마음 일으킴이 이 커다란 고苦(고통)이라. 
 
 
* 能仁寂默: 
석가모니釋迦牟尼. 
 
능인能仁- 자비慈悲가 광대廣大하고(釋迦).
적묵寂默- 지혜智慧가 심원深遠하다(牟尼).
 
 
 
 
【若聞此經 信心不逆 即得解脫諸罪之難 出於苦海 善神加護 無諸障礙 延年益壽 而無橫夭】 
 
약문차경하야 신심불역하면 즉득해탈제죄지난하고 출어고해하야 선신가호로 무제장애하고 연년익수하야 이무횡요니라
 
[만약 이 경經을 듣고서 신심信心이 물러나지 아니하면, 곧 모든 죄의 어려움에서 해탈解脫을 얻고 고해苦海에서 벗어나 선신善神의 가호加護로 모든 장애가 없고 나이가 늘어 수명을 더하여 감에 갑자기 요절夭折하는 일이 없느니라] 
 
 
註曰 若聞此經者 聲根相觸是聞耶 師資相對是聞耶 即是反聞聞性悟圓通 是眞聞也 信心不逆者 信受聽法而不逆耶 即是反照自性 覺今時而昨非 是眞不逆也 即得解脫者 聲聞解脫是耶 緣覺解脫是耶 菩薩解脫是耶 佛解脫是耶 即是自性解脫也 解其萬法 脫其塵勞土是矣 諸罪之難者 聞法八難耶 即是自心衆生 是大難焉 出於苦海者 阿鼻墮地獄苦耶 即是自性煩惱 是大苦海也 善神加護者 一百四位是善神耶 三十九衆是善神耶 即是善用其心 是眞善神加護也 無諸障礙者 嗔心是障礙耶 四蛇五欲是障碍耶 六入趣落是障礙耶 十二處十八界是障礙耶 即是一起惡心 是大障礙也 廓徹大悟 善用其心 是眞無障礙也 延秊益壽者 身命長遠是益壽耶 時時念念 反本還源 自成佛道 是眞延秊益壽矣 而無橫夭者 法身慧命相續不斷者也
 
주註하여 이르되, 「약문차경若聞此經(만약 이 경을 듣고서)」이라 함은, 성聲(소리, 聲塵)과 근根(귀, 耳根)이 서로 닿음이 이 들음인가? 스승과 제자가 서로 마주 대對함이 이 들음인가? 곧 이 ‘듣는 성性을 돌이켜 들어[反聞聞性] 원통圓通을 깨달음’이 이 진실한 들음[眞聞]이라.  「신심불역信心不逆(믿는 마음이 물러나지 아니하면)」이라 함은, 법法을 듣고서 물러나지 아니하여 믿고 받아들임인가? 곧 이는 자성自性을 돌이켜 비춤[反照自性]이니, 『지금 이때[今時]를 깨달음이요 지난날은 그릇됨이라[覺今時(歸) 而昨非(去來, 過去와 未來)]』함이 이 진실로 물러나지 아니함이라. 「즉득해탈即得解脫(곧 해탈을 얻는다)」라 함은, 성문聲聞의 해탈이 이것인가? 연각緣覺의 해탈이 이것인가? 보살菩薩의 해탈이 이것인가? 불佛의 해탈이 이것인가? 곧 이 자성自性의 해탈解脫이니, 그 만법萬法을 풀어버리고[解] 그 진로塵勞의 흙을 벗어버림[脫]이 이것[得解脫, 해탈을 얻음]이로다. 「제죄지난諸罪之難(온갖 죄의 어려움)」이라 함은, 법을 들음에 여덟 가지 어려움[聞法八難]이 있음인가? 곧 이 자기 마음의 중생[自心衆生]이 이 큰 어려움[大難]이로다. 「출어고해出於苦海(고해에서 벗어나)」라 함은, 아비阿鼻의 지옥고(地獄苦)에 떨어짐인가? 곧 이 자성自性의 번뇌煩惱가 이 커다란 고해[苦海(고통의 바다)]이라. 

 

「선신가호善神加護(선신의 가호)」라 함은, 일백사위一百四位가 이 선신善神인가? 삼십구중三十九衆이 이 선신인가? 곧 이는 『그 마음을 잘 씀[善用其心]』이 이 진실한 선신善神의 가호加護인 것이라. 「무제장애無諸障礙(모든 장애가 없고)」라 함은, 성내는 마음[嗔心]이 이 장애인가? 사사四蛇(四大)와 오욕五欲이 이 장애인가? 육입六入으로 향하여 떨어짐이 이 장애인가? 십이처十二處와 십팔계十八界가 이 장애인가? 곧 이 한 번 악한 마음 일으킴[一起惡心]이 이 큰 장애障礙이니, 확철대오廓徹大悟하여 『선용기심善用其心(그 마음을 잘 씀)』함이 이 진실한 장애 없음[無障礙]이라. 「연년익수延秊益壽(나이가 늘어 수명을 더하여)」라 함은, 몸의 목숨 길어짐이 이 수명을 더함인가? ‘시간 시간과 생각 생각에 뿌리로 돌이켜 근원으로 돌아옴에 스스로 불도佛道를 이룸[時時念念 反本還源 自成佛道]’이 이 진실로 나이가 늘어 수명을 더함[延秊益壽]이로다. 「이무횡요而無橫夭(갑자기 요절하는 일이 없느니라)」라 함은, 법신法身의 혜명慧命이 상속相續하여 끊어짐이 없는 것이라. 
 
 
* 覺今時而昨非: 
지금 이때를 깨달음이요 지난날은 그릇됨이로다.

 
- 이 경 위의 주석에서는 『今是』로 기록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今時』로 기록되어 있어 그대로 ‘금시今時’로 해석하였다. 
 
 
‧ 불원복不遠復: 『不遠復 无祗悔 元吉』
멀지 않아서 되돌아오니 후회하는 일이 없음이요, 길吉함의 으뜸이라.
- [주역周易] <복괘復卦> 초구初九. 


‧ 중화中和: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하고, 이미 일어나서는 모두 中으로 돌아가도록 조절하는 것을 ‘화和’라고 한다. 

- [중용中庸]


‧ 『一念回光是丈夫』: 한 생각 빛을 돌이키면 이 장부丈夫이라.

- 부휴선수浮休善修. 

 
 
‧ 『汝等去來 寶所在近[寶處在近]』
너희들은 버리고 오너라. 보배 있는 곳이 가까이에 있다.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지난날 그릇됨[昨非]」이라 함은 「거래去來(生死去來, 과거와 미래로 방황)」함이요, 「지금을 깨달음이 옳다[覺今是]」라 함은 「귀歸(경계境界에 각覺하여 돌아옴)」함이라.

 
 
 
 
【以信力故 獲如是福 何況有人 盡能書寫 受持讀誦 如法修行 其功德 不可稱 不可量 無有邊際 命終之後 竝得成佛】
 
이신력고로 획여시복이어늘 하황유인이 진능서사하고 수지독송하야 여법수행하면 기공덕은 불가칭이며 불가량하야 무유변제하야 명종지후에 병득성불하리라 
 
[믿는 힘으로도 이와 같은 복福을 얻는데, 어찌 하물며 다 능히 글을 베껴 쓰고 받아 지녀 독송하는 사람에 있어서랴. 여법如法히 수행하면 그 공덕功德은 가히 저울질 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으며 끝 간 데가 없어서, 목숨이 끝난 후에는 모두가 나란히 성불成佛하리라]
 
 
註曰 以信力下乃至竝得成佛者 獲如是福者 這箇福者 出世大丈夫萬德眞常之大福 非世間有漏小福也 盡能書寫者 書寫竹間耶 書寫白紙耶 書寫錦彩耶 書寫樺皮耶 書寫貝多羅葉耶 即是自性法門誓願學 是眞能書寫一卷經也 受持讀誦者 即文字經讀誦耶 離文字經受持讀誦耶 即是常覺眞如性  是眞經受持讀誦者矣 如法修行者 四諦法修行耶 十二緣法修行耶 六度萬行法修行耶 慈悲喜捨四無量心法修行耶 即是妄本空心本淨 如是了知 眞如法眞修行也 其功德云云者 謙下諸人 尊敬三寶 敬重父母 能行忠孝 奉持法藏 愛育萬物 謙讓諸才 知非遷善 其功德廣大矣 命終後竝得成佛者 人間命終耶 天上命終耶 即是自心衆生命終則立地成佛 居然可知也
 
주註하여 이르되, 「이신력하내지병득성불以信力下乃至竝得成佛(‘믿는 힘으로도’아래에서부터 ‘나란히 성불하리라’에 이르기까지)」이라 함은, 「획여시복獲如是福(이와 같은 복을 얻는데)」의 이 복福이라는 것이 세간世間을 벗어난 대장부大丈夫의 만덕진상萬德眞常인 큰 복이지 세간世間의 샘이 있는 작은 복이 아님이라. 「진능서사盡能書寫(다 능히 글을 베껴 쓰고)」 라 함은, 죽간竹間[竹簡]에 베껴서 씀인가? 흰 종이에 베껴서 씀인가? 비단 무늬에 베껴서 씀인가? 벚나무껍질에 베껴서 씀인가? 패다라 잎에 베껴서 씀인가? 곧 이 『자성법문서원학自性法門誓願學(자성의 법문을 맹세코 배움)』이 이 진실로 ‘능히 한권의 경[一卷經]을 베껴서 씀’이라. 「수지독송受持讀誦(받아지녀 독송하는)」이라 함은, 문자文字로 된 경經에 즉即해서(나아가) 독송讀誦함인가? 문자文字로 된 경經을 여의고 수지독송受持讀誦함인가? 곧 이 ‘항상 진여眞如의 성性을 각覺함[常覺眞如性]’이 이 진실로 경經을 수지受持하여 독송讀誦하는 것이로다.
 
「여법수행如法修行(여법히 수행하는)」이라 함은, 사제법四諦法의 수행修行인가? 십이연법十二緣法의 수행修行인가? 육도만행법六度萬行法의 수행修行인가? 자비희사慈悲喜捨인 사무량심법四無量心法의 수행修行인가? 곧 이는 『망妄은 본래로 공空이요 마음은 본래로 깨끗하다[妄本空心本淨]』라고 이와 같이 분명하게 아는 것이 ‘진실한 여법如法’이요 ‘진실한 수행修行’이라.「기공덕운운其功德云云(그 공덕은 운운, [그 공덕은 가히 저울질 할 수 없으며 헤아릴 수 없어 끝 간 데가 없어서])」함은, 모든 사람에게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삼보三寶를 존중하여 공경하며, 부모父母를 공경하여 중히 여기고, 능히 충忠과 효孝를 행行하며, 법장法藏을 받들어 지니고, 만물萬物을 사랑으로 길러내며, 모든 재능 있는 이들에게 겸양謙讓하고, 자신의 그릇됨을 알아 선善으로 옮기나니, ‘가히 그 공덕功德이 광대廣大함’이로다. 「명종후병득성불命終後竝得成佛(목숨이 끝난 후에는 모두가 나란히 성불하리라)」이라 함은, 인간人間의 목숨이 끝남인가? 천상天上의 목숨이 끝남인가? 곧 이는 『자기 마음의 중생이 그 목숨을 마치면, 땅을 딛고서 성불한다[自心衆生命終則立地成佛]』함을 분명하게 알 수 있음이라. 
 
 
* 即是妄本空心本淨 如是了知眞如法眞修行也: 
곧 이는 『망妄은 본래로 공空이요 마음은 본래로 깨끗하다』라고 이와 같이 분명하게 아는 것이 ‘진실한 여법如法’이요 ‘진실한 수행修行’이라.
 
 
‧ 『‘絲毫不掛’, 似最上頓宗 了萬法本空 真心本淨』 
 
‘가는 털도 걸어두지 못한다’ 함은, 최상승最上乘 돈종頓宗의 「만법萬法은 본래로 공空이요 진심真心은 본래로 깨끗함」을 깨달아 앎과 같음이라.
 
- [소석금강경과의회요주해銷釋金剛經科儀會要註解], 종경宗鏡
 
 
‧ 『達磨所傳禪宗 說一切妄想本空 真心本淨 元無煩惱 本是菩提』
 
달마達磨가 선종禪宗을 전하신 바는, “「일체의 망상妄想은 본래로 공空이요 진심真心은 본래로 깨끗하여」 원래 번뇌煩惱가 없으며 본래 이 보리菩提니라” 라고 설하심이라.
 
- [정토자량전집淨土資糧全集], 주굉袾宏
 
 
 
 
 
【佛告 無礙菩薩摩訶薩 若有衆生 信邪倒見 即被邪魔外道 魑魅魍魎 鳥鳴百怪 諸惡鬼神 競來惱亂 與其橫病 惡腫惡疰惡忤 受其痛苦 無有休息 遇善知識 爲讀此經三遍】
 
불고 무애보살마하살하시되 약유중생이 신사도견하야 즉피사마외도와 이매망량과 조명백괴와 제악귀신이 경래뇌란으로 여기횡병하되 악종악주악오로 수기통고하야 무유휴식이라 우선지식하야 위독차경삼편하면 
 
[부처님께서 무애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시되, 만약 중생이 삿되고 전도顚倒된 견해를 믿어서 곧 사마외도邪魔外道와 이매망량魑魅魍魎과 온갖 괴이한 소리로 우는 새와 모든 악한 귀신들이 그 갑작스런 병과 더불어 다투어 와서 번뇌煩惱로 어지럽게 하되 지독한 종기와 지독한 염병과 지독한 어지러움으로 그 사무치는 고통을 받아서 쉴 겨를이 있음이 없음이라. 선지식善知識을 만나 이 경經 삼편三遍을 읽게 되면] 
 
 
註曰 信邪倒見者 外道六十二見 是倒見耶 即是一念心正佛在堂 一念心邪魔在堂 一念心邪 眞倒見也 魑魅魍魎者 本覺之性本朙 晦昧爲空離本朙 曰魑魅也 一心無兩般 忽起分二曰魍魎也 鳥鳴百怪者 是烏鵲鳴耶 即是自心輕動之鳴也 諸惡鬼神云云者 是道錯之鬼耶 即是虛妄分別之心也 與其橫病云云者 是色身之病耶 即是心中 喜怒哀樂 憎愛取捨 種種病痛之苦 無有休息之病是也 遇善知識云云者 人天因果法敎訓 是善知識耶 聲聞緣覺法指示 是善知識耶 闡揚權大乘 是善知識耶 普贒萬行指示 是善知識耶 即是一切日用事 三思反覆 自心眞如現前 一切妄心妄見 一時消滅 是眞善知識也
 
주註하여 이르되, 「신사도견信邪倒見(삿되고 전도된 견해를 믿어서)」이라 함은, 외도外道의 육십이견六十二見이 이 전도顚倒된 견해인가? 곧 이 『한 생각 마음이 바르면 부처님께서 집[堂]에 계신 것이요 한 생각 마음이 삿되면 마왕魔王이 집[堂]에 있는 것』이니, ‘한 생각 마음이 삿됨’이 진실로 전도된 견해[倒見]이라. 「이매망량魑魅魍魎(도깨비)」이라 함은, 본각本覺의 성性은 본래로 밝으나[本朙] 어둑히 매昧함이 공空이 되어 본래의 밝음을 여읜 것을 이르되, 「이매魑魅」라. 한 마음[一心]은 두 가지가 없는데 홀연히 둘로 나뉨이 일어남을 이르되 「망량魍魎」이라. 「조명백괴鳥鳴百怪(온갖 괴이한 소리로 우는 새)」라 함은, 이 까막까치의 울음인가? 곧 이 자신의 마음이 경솔히 움직이는 울음소리이라. 「제악귀신운운諸惡鬼神云云(모든 악한 귀신 운운, [諸惡鬼神 競來惱亂~ 受其痛苦 無有休息, 모든 악한 귀신들이 그 갑작스런 병과 더불어 다투어 와서 번뇌로 어지럽게 하되 ~ 그 사무치는 고통을 받아서 쉴 겨를이 있음이 없음])」함은, 이 도道를 그르치는 귀신인가? 곧 이는 허망虛妄하게 분별分別하는 마음이라. 
 
「여기횡병운운與其橫病云云(‘그 갑작스런 병과 더불어’ 운운)」이라 함은, 이 색신色身의 병病인가? 곧 이 마음 가운데의 희로애락喜怒哀樂(기쁨 ‧ 노여움 ‧ 슬픔 ‧ 즐거움)과 증애취사憎愛取捨(미움 ‧ 사랑 ‧ 취함 ‧ 버림)의 갖가지 병통病痛의 괴로움으로 쉴 겨를이 없는 병病이 이것이라. 「우선지식遇善知識云云(‘선지식을 만나’ 운운, [遇善知識 爲讀此經三遍, 선지식을 만나 이 경經을 세 번 읽게 되면])」함은, 인천人天의 인과법因果法으로 가르쳐 깨우침이 이 선지식인가? 성문聲聞 ‧ 연각緣覺의 법法으로 가리켜 보임이 이 선지식인가? 권대승權大乘(방편으로 설한 대승의 가르침)을 들어내어 펼침이 이 선지식인가? 보현普贒의 만행萬行으로 가리켜 보임이 이 선지식인가? 곧 이 일체一切의 일용日用하는 일들 속에서 반복하여 깊이 사유思惟[三思]하여 자기 마음인 진여眞如가 현전現前하여 일체의 망령된 마음과 망령된 견해[妄心妄見]가 일시一時에 소멸消滅케 함이 이 진실한 선지식善知識이라.
 
 
* 魍魎: 망량.

『神不明謂之魍 精不明謂之魎』
  
‘신神이 밝지 않은 것’을 일러 「망魍」이라 하고, 
‘정精이 밝지 않은 것’을 일러 「량魎」이라 한다.   
 
- [류설類說] 권 오십卷五十 불서잡설佛書雜說.
 
 
* 本覺之性本朙 晦昧爲空離本朙:
 
본각本覺의 성性은 본래로 밝으나[本朙], 어둑히 매昧함(밝은 성性을 미迷하여 무명無明이 됨)이 공空이 되어(무명無明이 완공頑空이 되어) 본래의 밝음을 여읜 것을.
 
『「晦昧하약 爲空하야」 空과 晦暗와의 中에 結暗하야 爲色하니 色이 雜妄想하야 想相으로 爲身하야 聚緣이 內로 搖코 趣外하야 奔逸하는 昏擾擾相을 以爲心性하니 一迷爲心하여서는 決定惑爲色身之內하고 不知色身과 外洎山河와 虛空大地가 咸是妙明眞心中物인 줄을 하나니』
 
어둑하여 공空(완공頑空)이 됨에 공空과 어두움과의 가운데에 어두움이 맺혀 색色이 되니, 색色이 망상妄想을 섞어 상想과 상相으로 몸이라 하고, 모인 연緣이 안으로 요동하고 밖으로 치달리는 어둑하고 어지러운 상相을 심성心性이라 하나니, 한번 미혹하여 마음으로 삼고서는 결정決定코 미혹(惑)하여 색신色身 안에 있다고 하고, 색신色身과 밖의 산하山河와 허공대지虛空大地에 이르기까지가 다 이 미묘微妙하게 밝은 진실眞實한 마음 가운데의 물物인 줄을 알지 못하나니.
 

  •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 이권二卷.

 
 
‧ 「本覺之性本朙 晦昧爲空離本朙」 의 보충으로, 권말卷末에 능엄경의 《전도顚倒》에 관한 부분을 다시 첨부하였음.
 
 
 
 
【是諸惡鬼 皆悉消滅 病則除愈 身强力足 讀經功德 獲如是福】
 
시제악귀가 개실소멸하야 병즉제유하야 신강역족하나니 독경공덕으로 획여시복이니라 
 
[이 모든 악귀가 다 소멸하여 병은 곧 없어지고 나아서 몸이 강건해지고 힘은 족足하여지나니, 경을 독송하는 공덕으로 이와 같은 복을 얻느니라] 
 
 
註曰 此廿四字經文內 身强力足者 法身之强 智慧之力也 讀經功德獲如是福者 知一切法 即心自性 成就慧身 不由他悟之福也
 
주註하여 이르되, 이 스물네 글자의 경문經文 안에 「신강역족身强力足(몸이 강건해지고 힘은 족足하여지나니)」이라 함은, 법신法身의 강强함이요 지혜智慧의 힘이라. 「독경공덕획여시복讀經功德獲如是福(경을 독송하는 공덕으로 이와 같은 복을 얻느니라)」이라 함은, 『일체一切의 법法이 곧 마음 자성自性임을 알라. 지혜의 몸[慧身]을 성취함이 다른 사람을 말미암아 깨닫는 것 아니니라』 한 복福이라. 
 
 
* 知一切法 即心自性 成就慧身 不由他悟之福也:
「일체법一切法이 곧 마음 자성임을 알라. 지혜 몸[慧身]을 성취함이 타他를 말미암아 깨닫는 것 아니니라」한 복福이라. 
 
 
‧ 『知一切法 即心自性 成就慧身 不由他悟』
『일체一切의 법法이 곧 마음 자성自性임을 알라. 지혜의 몸[慧身]을 성취하되 다른 사람을 말미암아 깨닫는 것 아니니라』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권 제십칠卷第十七.
 
 
‧ 『慧身即般若德 了因性開發 玅法身即法身德 正因性開發 應一切即解脫德 即緣因性開發 如此三身發得本有 故言不由他悟』
 
혜신慧身은 곧 반야般若의 덕德이니 「요인了因」의 성性[相]으로 개발開發하고, 묘법신妙法身은 곧 법신法身의 덕德이니 「정인正因」의 성性[體]으로 개발하며, 응일체應一切(일체에 응함)란 곧 해탈解脫의 덕德이니 곧 「연인緣因」의 성性[用]으로 개발한다. 이와 같은 삼신三身이 「본유本有」를 개발開發하여 얻는지라, 그러므로 이르되 ‘타인을 말미암아 깨침이 아니라’ 하였다.
 
- [사교의집해四教儀集解]
 
 
○ 慧身 – 般若 – 相
妙法身 – 法身 – 體
應一體 – 解脫 - 用
 
 
 
 
【若有衆生 多於淫欲 瞋恚愚癡 慳貪嫉妬 若見此經 信敬供養 則讀此經 三遍 遇癡等惡 竝皆除滅 慈悲喜捨 得佛法分】
 
약유중생이 다어음욕하며 진애우치하며 간탐질투라도 약견차경하고 신경공양하며 즉독차경삼편하면 우치등악이 병개제멸하며 자비희사로 득불법분이니라 
 
[만약 중생衆生이 음욕淫欲 ‧ 진애瞋恚 ‧ 우치愚癡 ‧ 간탐慳貪 ‧ 질투嫉妬가 많다 하더라도, 만약 이 경經을 보고 믿음과 공경으로 공양供養하여 이 경經 삼편三遍을 독송하면, 우치遇癡 등의 악惡이 아울러서 모두 사라지며 자비희사慈悲喜捨로 부처님의 법法 분부分付하심을 얻느니라]
 
 
註曰 此三行經文內 若有衆生讀經罪滅云云者 大陽之下 霜雪之氷 豈敢暫住 是故上品 十惡業罪 作法供養 則妄滅眞現 即是得佛法分也
 
주註하여 이르되, 이 세 줄의 경문經文 안에 「약유중생독경죄멸운운若有衆生讀經罪滅云云(‘만약 중생이 경을 독송하면 죄가 멸하여’ 운운)」 함은, 태양太陽의 아래에 서리와 눈의 얼음이 어찌 감히 잠깐인들 머물 수가 있겠는가? 이러한 까닭으로 상품上品이니, 열 가지 악업惡業의 죄罪는 법공양法供養을 지으면 망妄은 사라지고 진眞이 나타나나니, 곧 이 ‘부처님의 법法 분부分付하심을 얻음[得佛法分]’이라. 
 
 
 
 
【復次 無礙菩薩 若善男子善女人 興有爲法 先讀此經三遍】
 
부차 무애보살아 약선남자와 선여인이 흥유위법하되 선독차경삼편하고 
 
[다시 무애보살無礙菩薩아, 만약 선남자善男子와 선여인善女人이 유위법有爲法을 일으키되 먼저 이 경經 삼편三遍을 독송하고]
 
 
註曰 善男子者 修五戒十善 是善男耶 即是誠實之心是也 善女人者 窈窕淑女是耶 即是慈悲之心是也 興有爲法者 三界因果之法 皆有爲法也 先讀此經三遍者 一切萬法以心爲體 百事三思 即是先讀此經三遍也
 
주註하여 이르되, 「선남자善男子」라 함은, 오계五戒와 십선十善을 닦음이 이 선남善男인가? 곧 이 성실誠實[智慧]한 마음이 이것이라. 「선여인善女人」 이라 함은, 요조숙녀窈窕淑女가 이것인가? 곧 이 자비慈悲의 마음이 이것이라. 「흥유위법興有爲法(유위법을 일으키되)」이라 함은, 삼계三界 인과因果의 법法이 다 유위법有爲法이라. 「선독차경삼편先讀此經三遍(먼저 이 경 삼편을 독송하고)」 이라 함은, 일체一切의 만법萬法이 마음으로 체體를 삼음이니, 온갖 일에 깊이 사유思惟함이 곧 이 ‘먼저 이 경 삼편을 독송함[先讀此經三遍]’이라. 
 
 
 
 
【築墻動土 安立家宅 南堂北堂 東序西序 厨舍客屋 門戶井竈 碓磑庫藏 六畜欄圂】 
 
축장동토하며 안입가택하며 남당과 북당과 동서와 서서와 주사객옥과 문호정조와 대애고장과 육축난혼하면 
 
[담을 쌓고 흙을 옮겨서, 남쪽 사랑舍廊채(안채)와 북쪽 사랑채, 동쪽 행랑방行廊房(바깥채)과 서쪽 행랑방, 주방과 객실, 출입문 ‧ 우물 ‧ 아궁이(화덕) ‧ 디딜방아 ‧ 맷돌 ‧ 곳간, 가축을 기르는 축사 등의 집을 편안히 세우면]
 
 
註曰 築墻者 心地堅固 即是眞築墻也 動土者 日日作用之心 是動土也 安立家宅者 高臺廣室耶 即是慈悲之心室也 南堂者 即是明正之心也 北堂者 即是不動之心也 東序者 即是度濟衆生之心也 西序者 即是掃除煩惱之心也 厨舍者 即是眞如之體也 客屋者 即是眞如之用也 門戶者 大門耶 中門耶 家家門戶 通長安之門耶 即是六根之門戶也 井者 里隣之井耶 家中之井耶 即是自心注無渴涌泉之井也 竈者 竈王神所居之處耶 即是香積飡之竈也 碓磑者 六祖大師所舂之碓磑耶 即是師資相逢決擇法門之碓磑也 庫藏者 官家之庫藏耶 村家之庫藏耶 即是七法財所藏之庫藏也 六畜欄圂者 官家之欄圂耶 村家之欄圂耶 即是自心衆生之欄圂也
 
주註하여 이르되, 「축장築墻(담을 쌓고)」이라 함은, 마음 땅[心地]의 견고함이 곧 이 진실한 ‘담 쌓음’이라. 「동토動土(흙을 옮기며)」라 함은, 날마다 작용하는 마음이 이 ‘흙을 옮김’이라. 「안입가택安立家宅(편안히 집을 세우면)」이라 함은, 높은 누대와 넓은 집인가? 곧 이 자비慈悲의 마음 방[心室, 심장]이라. 「남당南堂(남쪽 사랑채, 안채)」이라 함은, 곧 이 밝고 바른 마음[明正心]이라. 「북당北堂(북쪽 사랑채)」이라 함은, 곧 이 동動함이 없는 마음[不動心]이라. 「동서東序(동쪽 행랑방, 바깥채)」라 함은, 곧 이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여 인도引導하는 마음이라. 「서서西序(서쪽 행랑방)」라 함은, 곧 이 번뇌煩惱를 말끔히 쓸어버린 마음이라. 「주사厨舍(주방)」라 함은, 곧 이 진여眞如의 체體이라. 「객옥客屋(객실)」이라 함은, 곧 이 진여眞如의 용用이라. 
 
「문호門戶(출입문)」라 함은, 대문大門인가? 중문中門인가? 『가가문호통장안家家門戶通長安(집집마다 문은 장안으로 통했네)』이라는 문인가? 곧 이는 육근六根의 드나드는 문門이라. 「정井(우물)」이라 함은, 마을의 가까운 우물인가? 집 안의 우물인가? 곧 이는 ‘스스로 마음에 물을 댐에(마음을 쏟음에) 마르지 않고 솟아오르는 샘물’인 우물이라. 「조竈(아궁이, 화덕)」라 함은, 조왕신竈王神이 머무는 곳인가? 곧 이는 향적여래香積如來가 밥하는 아궁이라.「대애碓磑(디딜방아와 맷돌)」라 함은, 육조대사六祖大師가 방아 찧던 곳의 방아와 맷돌인가? 곧 이는 스승과 제자가 서로 만나 법문法門을 결택決擇하는 디딜방아와 맷돌이라. 「고장庫藏(곳간)」이라 함은, 관가官家의 곳간인가? 시골집의 곳간인가? 곧 이 일곱 가지 법재[七法財]가 감추어져 있는 곳간이라. 「육축난혼六畜欄圂(가축을 기르는 축사)」이라 함은, 관가의 외양간인가? 시골집의 축사인가? 곧 이 자심중생自心衆生의 축사이라. 
 
 
* 七法財: 일곱 가지 법재.

신재信財, 계재戒財, 참재慚財, 괴재愧財, 문재聞財, 사재捨財, 혜재慧財.
 
 
 
 
【日遊月殺 將軍太歲 黃幡豹尾 五土地神 靑龍白虎 朱雀玄武 六甲禁諱 十二諸神 土尉伏龍 一切鬼魅 皆悉隱藏 遠迸他方 形消影滅 不敢爲害 甚大吉利 得福無量】 
 
일유월살과 장군태세와 황번표미와 오토지신과 청룡백호와 주작현무와 육갑금휘와 십이제신과 토위복룡과 일체귀매가 개실은장하야 원병타방하고 형소영멸로 불감위해하며 심대길리하야 득복무량하리라
 
[일유월살日遊月殺과 장군태세將軍太歲와 황번표미黃幡豹尾와 오토지신五土地神과 청룡백호靑龍白虎와 주작현무朱雀玄武와 육갑금휘六甲禁諱와 십이제신十二諸神과 토위복룡土尉伏龍과 일체一切의 귀매鬼魅가 모두 다 숨거나 멀리 다른 곳으로 떠나고 형상은 소멸하여 그림자마저 사라지므로 감히 해害가 되지 아니하며 심히 크게 길吉하고 이利로워 무량無量한 복福을 얻으리라]
 
 
註曰 日遊月殺者 根本智即是月殺 後得智即是日遊也 將軍太歲者 人間將軍耶 天上將軍耶 鬼中將軍耶 即是能斬六賊之將軍也 五土地神者 五方神耶 即是五陰之神也 色蘊即是東方靑龍神也 受蘊即是西方白虎神也 想蘊即是南方朱雀神也 行蘊即是北方玄武神也 識蘊即是中方黃䲷神也 六甲禁諱者 六入之神耶 六塵之境耶 六十二見之邪神耶 十二處耶 即是十二時中 分別之知見也 土尉伏龍云云者 四海之龍耶 山野諸澤之龍耶 即是觸境逢緣 事不如意 嗔心之龍也 一切鬼魅者 如是等四威儀中諸見 一時消滅也 時時念念 返照自性一卷經力故 甚大吉利 得福無量也
 
주註하여 이르되, 「일유월살日遊月殺」이라 함은, 근본지根本智가 곧  이 월살月殺이요 후득지後得智가 곧 이 일유日遊이라. 「장군태세將軍太歲」라 함은, 인간人間의 장군인가? 천상天上의 장군인가? 귀신鬼神 가운데의 장군인가? 곧 이 능히 육적六賊(여섯 도적, 六塵)을 베어버리는 장군이라. 「오토지신五土地神」이라 함은, 오방신五方神(다섯 방위의 신)인가? 곧 이 오음五陰의 신神이니, 색온色蘊이 곧 이 동방東方 청룡신靑龍神이요, 수온受蘊이 곧 이 서방西方 백호신白虎神이요, 상온想蘊이 곧 이 남방南方 주작신朱雀神이요, 행온行蘊이 곧 이 북방北方 현무신玄武神이요, 식온識蘊이 곧 이 중방中方 황효신黃䲷神이라.「육갑금휘六甲禁諱([六甲禁諱 十二諸神, 육갑금휘와 십이제신])」라 함은, 육입六入의 신神인가? 육진六塵의 경境인가? 육십이견六十二見의 사신邪神인가? 십이처十二處인가? 곧 이 열두 때(24시) 가운데에 분별分別하는 지견知見이라. 
 
「토위복룡土尉伏龍 운운云云」 함은, 사해四海의 용龍인가? 산야山野에 있는 여러 연못[澤]의 용龍인가? 곧 이 경계에 부딪히고[觸境] 연緣을 만남[逢緣]에 일[事]이 뜻과 같지 않아 성내는 마음[嗔心]인 용[龍]이라. 「일체귀매一切鬼魅([일체의 귀매鬼魅가 모두 다 숨거나 멀리 다른 곳으로 떠나고 형상은 소멸하여 그림자마저 사라지므로 감히 해害가 되지 아니하며])」라 함은, 이와 같은 사위의四威儀 가운데에 모든 견해[見]들이 일시一時에 소멸消滅함이라. 시간 시간 생각 생각 자성自性의 일권경一卷經을 반조返照하는 힘으로써서「심대길리甚大吉利 득복무량得福無量(심히 크게 길吉하고 이利로워 한량없는 복덕得福을 얻음)」 함이라. 
 
 
*  將軍太歲 黃幡豹尾 五土地神 靑龍白虎 朱雀玄武:
장군태세와 황번표미와 오토지신과 청룡백호와 주작현무와
 
‧ 대장군방大將軍方은 팔장신八將神이 관장하고 있는 여덟 방위를 말한다. 여기서 팔장신은 음양가陰陽家의 신神들로서, 태세太歲 대장군大將軍 태음太陰 세형歲刑 세파歲破 세살歲煞 황번黃幡 표미豹尾 등을 지칭한다. 도교의 믿음이 강하던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이 팔장신을 존중했는데, 실은 지구와 같은 행성들이나 별들에 신격神格을 부여하여 이름 지은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태세太歲는 목성의 다른 이름으로 간지干支의 방향에 따라 순행한다고 보는데 목성의 순행 방위에서 길사吉事를 하면 탈이 없지만 나무를 벤다거나 하면 액운을 겪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 대장군 방위에서는 되도록 이사를 삼가야 한다. 그리고 황번黃幡 방위에서는 흙을 다루는 일을, 표미 방위에서는 장가 드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한다.
 
 
‧ 청룡[靑龍, 東], 백호[白虎, 西], 주작[朱雀, 南, 火], 현무[玄武, 北, 水]는 오방신五方神을 말한다. 이 사상은 전국시대 말에 발달한 천문오행사상天文五行思想에 의해서 체계화되었으며, 이 사신四神을 사방에 배치함으로써 우주를 형성시키는 한편, 어떤 특정 공간을 보호하는 보호신保護神을 구성할 목적으로 만들어져 육조시대에 유행하였다. 사신은 원래 고대 중국에서 사방四方의 성좌星座를 각각 동물형으로서 나타낸 것이다. 이 四神 가운데 중방 황효신黃梟神이 더해져서 오방신五方神이 된다. 
 
 
○ 사신四神(오방신五方神)에 대한 보충.
『青龍者 東方甲乙木 水銀也. 澄之不清 攪之不濁 近不可取 遠不可捨 潛藏變化無盡 故言龍也. 白虎者 西方庚辛金 白金也. 得真一之位 經云 子若得一萬事畢. 淑女之異名 五行感化 至精之所致也. 其伏不動 故稱之為虎也. 朱雀者 南方丙丁火 硃砂也. 剖液成龍 結氣成鳥 其氣騰而為天 其質降而為地 所以為大丹之本也. 見火即飛 故得朱雀之稱也. 玄武者 北方壬癸水 黑汞也. 能柔能剛 經云 上善若水 非鉛非錫 非眾石之類 水乃河車神水 生乎天地之先 至藥不可暫捨 能養育萬物 故稱玄武也.』
 
「청룡青龍, 木, 肝]」이라 함은, 동방東方의 갑을목甲乙木이요 수은水銀[汞]이라. 맑힌다고 맑아지지 않으며, 흔든다고 탁해지지 않으며, 가까이 한다고 가히 취할 수 없으며, 멀리 한다고 가히 버릴 수 없으며, 잠기어 숨지만 변화하면 다함이 없으니, 이러한 까닭으로 말하여 용龍이라 한다. [色蘊]
 
「백호白虎, 金, 肺」라 함은, 서방西方의 경신금庚辛金이요 백금白金이라. 진일真一의 지위를 얻음이니, 경에 이르되, ‘그대가 만약 하나를 얻으면 만사를 마침이라’하였다. 정숙貞淑한 여인의 다른 이름이요, 오행五行이 감화感化된 지정至精의 소치所致이라. 그것이 조복調伏되어 부동不動한 까닭으로 일컬어 호랑이[虎]라 한다. [受蘊]
 
「주작朱雀, 火, 心臟」이라 함은, 남방南方의 병정화丙丁火요 주사硃砂라. (주사는)쪼개져 액液으로 용龍을 이루고, (액은)기氣[蒸氣]로 맺어져 나는 새를 이루며, 그 기氣(증기)는 날아서 하늘이 되고, 그 (하늘은)질質로 내려와 땅이 되니, 이러한 까닭으로 대단大丹의 본本이 됨이라. 견화[見火]는 곧 위로 날으니, 이러한 까닭으로 주작朱雀이란 이름을 얻음이라. [想蘊]
 
「현무玄武, 水, 腎臟」라 함은, 북방北方의 임계수壬癸水요 흑홍黑汞(검은 수은)이라. 능히 부드러울 수도 있고 능히 강할 수도 있음이니, 경에 이르되, ‘상선上善은 물과 같다’하였다. 납도 아니요 구리도 아니며 온갖 돌의 종류도 아니니, 물은 곧 하거河車를 움직이는 신수神水이라, 나되 하늘과 땅의 먼저요 지약至藥은 가히 잠시도 버릴 수 없음이라, 능히 만물을 길러내니, 이러한 까닭으로 현무玄武라 일컫는다. [行蘊]
 
- [운급칠첨雲笈七籤]
 
 
 
 
【善男子 興功之後 堂舍永安 屋宅牢固 富䝿吉昌 不求自得 若欲遠行 從軍仕䆠 興生 甚得宜利 門興人貴 百子千孫 父慈子孝 男忠女貞 兄恭弟順 夫妻和睦 信義篤親 所願成就】
 
선남자야 흥공지후에 당사영안하고 옥택뢰고하며 부귀길창하야 불구자득하며 약욕원행하야 종군사환으로 흥생하면 심득의리하야 문흥인귀하며 백자천손으로 부자자효하며 남충여정하며 형공제순으로 부처화목하며 신의독친하여 소원성취하리라
 
[선남자善男子야, 공功을 흥성하게 한 후에, 집안은 영원히 편안하고 가옥은 견고하며 부귀富䝿로 길吉하고 번창하야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으며, 만일 먼 길을 떠나 군인이나 관직에 나아가 삶을 흥興하게 하고자하면 심히 마땅한 이익을 얻어서 가문家門이 흥성하고 사람이 존귀尊貴해지며 많은 자식과 손자들로 아비는 자애慈愛롭고 자식은 효도孝道하며 남자는 충성忠誠하고 여자는 정결貞潔하며 형은 공손하고 아우는 수순하며 남편과 아내는 화목하고 신의信義로 도탑고 친하여 바라는 바를 성취하게 되리라]
 
 
註曰 善男子興功者 世間種種差別興功耶 出世間大丈夫之興功耶 這箇興功 即是始覺合本覺同一究竟覺之興功也 堂舍者 即是五陰堂舍永安也 屋宅牢固者 即是十二處之屋宅牢固也矣 如何是五陰十二處永安牢固耶 即是皆空故 即成永安牢固也 富䝿吉昌不求自得者 世間榮華之富䝿耶 即是富有萬德之富䝿 妙吉祥之吉昌 不求自得矣 若欲遠行者 千里萬里之遠行耶 十萬八千里之遠行耶 三大阿僧秖刼之遠行耶 這箇咫尺之間 太近難見故遠行也 從軍仕䆠者 天軍魔軍耶 人軍耶 鬼軍耶 即是自心衆生之軍也 仕䆠者 天上之仕䆠也 人間之仕䆠耶 即是通古今達事理之仕䆠也 興生者 即是常生智慧之興生也 甚得宜利者 世間之利耶 出世間之利耶 義理之利耶 即是繼煩惱證眞 逮得己利之利也 門興人䝿者 子孫興䝿耶 弟資興䝿耶 即是轉法輪之門興 度衆生之人䝿也 百子千孫者 法利滋息之多子孫也 父慈子孝者 無朙之父 反爲眞如 始覺之子 亦順眞如性也 男忠女貞者 誠實之男心 反資慈悲之女心也 兄恭弟順者 六波羅蜜之兄弟 相恭相順也 夫妻和睦信義篤親者 即是慈悲喜捨四無量心相信相親也 所願成就者 富䝿榮華之願耶 人天五欲樂之願耶 二乘涅槃樂之願耶 菩薩萬行之願耶 諸佛慈悲心之願耶 即是無生法樂之願成就也
 
주註하여 이르되, 「선남자흥공善男子興功(선남자야, 공을 흥성하게 한 )」이라 함은, 세간世間의 갖가지 차별差別된 공功을 흥성하게 함인가? 출세간出世間의 대장부大丈夫가 공功을 흥성하게 함인가? 이 공功을 흥성하게 함은 곧 이 시각始覺이 본각本覺에 합合하여 구경각究竟覺과 동일同一함이 ‘공功을 흥성하게 함[興功]’이라. 「당사堂舍([堂舍永安, 집안은 영원히 편안하고])」라 함은, 곧 이 오음五陰의 집안이 영원히 편안함이라. 「옥택뢰고屋宅牢固(가옥은 견고하며)」라 함은, ‘십이처十二處의 가옥이 견고함’이로다. 어떤 것이 이 오음五陰과 십이처十二處가 영원히 편안하고 견고함인가? 곧 이 『모두가 공[皆空]』한 까닭으로, 곧 영원한 편안함과 견고함을 이룸이라. 「부귀길창불구자득富䝿吉昌不求自得(부귀로 길吉하고 번창하야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으며)」이라 함은, 세간世間에 영화榮華로운 부귀富䝿인가? 곧 이 ‘부유만덕富有萬德’(부富가 만 가지 덕德을 갖춤)의 부귀富䝿요 묘길상妙吉祥(지智,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의 길창吉昌(길吉하고 번창함)이라,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음이로다. 
 
「약욕원행若欲遠行(만약 먼 길을 떠나 ~하고자 하면)」이라 함은, 천리千里 만리萬里의 먼 길을 감인가? 십만팔천리十萬八千里의 먼 길을 감인가? 삼대아승기겁三大阿僧秖刼의 먼 길을 감인가? 이는 지척지간咫尺之間(여덟치, ‘3. 03cm’ 길이의 거리)으로 ‘너무 가까워서 보기가 어려운 까닭’으로 먼 길을 감[遠行]이라. 「종군사환從軍仕䆠(군인이나 관직에 나아가)」이라 함은, 하늘의 군대인 마군魔軍인가? 사람의 군대인가? 귀신의 군대인가? 곧 이 자기 마음 중생의 군대[軍]이라. 「사환仕䆠(관직)」은, 천상의 관직이요 인간의 관직인가? 곧 이 예[古]와 이제[今]에 통通했으며 일[事]과 이치[理]에 달達한 관직[仕䆠]이라. 「흥생興生(삶을 흥하게)」이라 함은, 곧 이 항상 지혜智慧를 생生하는 것이 흥생興生[삶(衆生)을 흥興하게 함]이라. 「심득의리甚得宜利(심히 마땅한 이익을 얻어)」라 함은, 세간世間의 이익인가? 출세간出世間의 이익인가? 의리義理의 이익인가? 곧 이 계속되는 번뇌煩惱가 진여眞如를 증득證得하여 ‘자기自己 이익을 얻음에 이르른[逮得己利]’ 이익[利]이라.  「문흥인귀門興人䝿(가문家門이 흥성하고 사람이 존귀尊貴해지며)」라 함은, 자손이 흥성하여 존귀함인가? 제자가 흥성하여 존귀함인가? 전법륜轉法輪(부처님 법의 수렛바퀴를 굴림)의 문門이 흥興하여 중생衆生 제도하는 사람이 존귀尊貴함이라. 「백자천손百子千孫(많은 자식과 손자들로)」이라 함은, 법法의 이로움[法利]이 불어나 자란 것이 ‘많은 자손[多子孫]’이라. 
 
「부자자효父慈子孝(아비는 자애롭고 자식은 효도하며)」이라 함은, 무명無朙의 아비가 도리어 진여眞如가 되니 시각始覺의 자식은 또한 진여성眞如性을 수순隨順함이라. 「남충여정男忠女貞(남자는 충성하고 여자는 정결하며)」이라 함은, 성실誠實[忠]한 남자의 마음이 도리어 자비慈悲[貞]로운 여자의 마음바탕이 됨이라. 「형공제순兄恭弟順(형은 공손하고 아우는 수순하며)」이라 함은,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형제兄弟가 서로 공경하고 서로 따름이라. 「부처화목신의독친夫妻和睦信義篤親(남편과 아내는 화목하고 신의로 도탑고 친하여서)」이라 함은, 자비희사慈悲喜捨인 사무량심四無量心이 서로 믿고 서로 친함이라. 「소원성취所願成就(소원을 성취하리라)」라 함은, 부귀영화富䝿榮華의 원願인가? 인천人天 오욕락五欲樂의 원願인가? 이승二乘 열반락涅槃樂의 원願인가? 보살菩薩 만행萬行의 원願인가? 제불諸佛 자비심慈悲心의 원願인가? 곧 이 무생법락無生法樂(남이 없는 법의 기쁨)의 원願을 성취成就함이라. 
 
 
* 從軍仕䆠: 옛 당시 중국에서 군대에 들어가 훈련을 받고 정치나 행정 분야의 공무원이 되었던 것을 뜻한다. 
 
 
* 逮得己利: 체득기리.
 
『己利ᄂᆞᆫ 卽證智斷惑之事ㅣ니 文句에 謂호ᄃᆡ 三界因果ᄂᆞᆫ 皆爲他事ㅣ어니와 智斷功德이ᅀᅡ 乃名己利니 逮得己利ᄒᆞ야ᅀᅡ 乃堪爲人天福田일ᄊᆡ 故로 號應供이라ᄒᆞ니라』.
 
‘기리己利(자기 이익)’는 곧 지智를 증證하고 혹惑을 끊는 일이니 문구文句에 이르되 ‘삼계三界의 인과因果는 다 남을 위爲한 일이어니와 지단智斷의 공덕功德이어야 이름이 기리己利(자기 이익)’이니, 기리己利를 득得함에(얻음에) 미쳐야(이르러야) 가히 인천人天의 복福밭이 될세 이런 까닭으로 이름이 ‘응공應供’이라 하니라. 』
 
- <법화경언해法華經諺解>
 
 
 
 
【若有衆生 忽被縣官拘繫 盜賊牽挽 暫讀此經三遍 即得解脫 若有善男子善女人 受持讀誦 爲他人書寫天地八陽經者】
 
약유중생이 홀피 현관구계커나 도적견만이라도 잠독차경삼편하면 즉득해탈하리라 약유 선남자와 선여인이 수지독송하고 위타인서사천지팔양경자는
 
[만약 어떤 중생이, 고을의 관청에서 잡아 묶어버리거나 도적이 잡아서 끌고 감을 문득 당하게 된다 하더라도, 잠깐 이 경經 삼편經三遍을 독송하면 곧 해탈解脫을 얻으리라.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받아 지녀 독송讀誦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천지팔양경天地八陽經의 글월을 베껴 쓰는 이가 있다면]
 
 
註曰 若有衆生忽被縣官拘繫者 內官耶 外官耶 即是平等心之官也 煩惱妄想五欲樂之所拘繫也 盜賊牽挽者 陸賊耶 水賊耶 六根之賊甚於這賊也 暫讀此經三遍云云者 三十九衆別解脫耶 普贒摠解脫耶 釋迦之無量解脫耶 即是自性解脫也 若有下乃至八陽經者 這箇經 如何受持讀誦爲他人書寫耶 即是圓光頂戴 體絕偏圓 常爲他人演說 書寫此經者也
 
주註하여 이르되, 「약유중생홀피현관구계若有衆生忽被縣官拘繫(만약 어떤 중생이 고을의 관청에서 잡아 묶어버리거나 도적이 잡아서 끌고 감을 문득 당하게 된다 하더라도)」이라 함은, 안의 관청인가? 밖의 관청인가? 곧 이 ‘평등심平等心’의 관청이니, ‘번뇌망상煩惱妄想과 오욕락五欲樂이 잡아 묶은 것’이라. 「도적견만盜賊牽挽(도적이 잡아서 끌고 감)」이라 함은, 육지의 도적인가? 물의 도적인가? ‘육근六根의 도적’이 이 도적(육지와 바다의 도적)보다 심함이라. 「잠독차경삼편운운暫讀此經三遍云云(잠깐 이 경 삼편을 독송하면 곧 해탈을 얻으리라)」 함은, 삼십구위三十九位 신중神衆의 별해탈別解脫인가? 보현普賢의 총해탈摠解脫인가? 석가釋迦의 무량해탈無量解脫인가? 곧 이 ‘자성自性의 해탈解脫’이라. 「약유하내지팔양경자若有下乃至八陽經者(‘약유若有’에서부터 ‘팔양경자八陽經者’에 이르기까지,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받아 가져서 독송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천지팔양경의 글월을 베껴 쓰는 자가 있다면])」라 함은, ‘이 경經’은 어떤 것이 ‘받아 지녀 독송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천지팔양경의 글월을 베껴 씀’인가? 곧 이는 『둥그런 빛[圓光]을 정수리에 이었으니 체體가 편偏과 원圓이 끊어짐[圓光頂戴 體絕偏圓]』이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하여 연설演說하며 이 경經의 글을 베껴 쓰는 것’이라.
 
 
* 別解脫: 별해탈.
 
개별적 조목에 따라 각각의 악행惡行을 벗어나 해탈解脫을 얻도록 하는 계율戒律을 모아놓은 것.
 
 
* 圓光頂戴 體絕偏圓 : 
둥그런 빛[圓光]을 정수리에 이었으니 체體가 편偏과 원圓이 끊어짐.
 
『受持者 如何受持 圓光頂戴 體絕偏圓 動靜相隨 故云受持也』
 
「수지受持(받아 지님)」라 함은, 어떻게 받아 지니는 것인가? 둥그런 빛[圓光]을 정수리에 이었으니 체體가 편偏과 원圓이 끊어졌으며 동動과 정靜이 서로 따르는 까닭으로 이르되 ‘받아 지님[受持]’이라.
 

  • p. 146 주석에. 

 
 
 
 
【設入水火 不被焚漂 或在山澤 虎狼屛迹 不敢搏噬 善神衛護 成無上道】

설입수화라도 불피분표하고 혹재산택이라도 호랑이 병적하야 불감박서하며 선신이 위호하야 성무상도하리라

[설사 물과 불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떠내려가거나 불태워지지 않고, 혹은 산과 연못에 있더라도 호랑이와 늑대가 자취를 감추어 감히 잡아 뜯어먹지 못하며, 선신善神이 보호하고 지켜서 위없는 보리도菩提道를 이루리라]

註曰 設入云云者 世間堅濕煖動之水火耶 即是水者 大邪見貪愛之水也 火者 嗔憤之火也 不漂者 不沒愛欲境界也 不焚者 不動逆順境界也 或在山澤乃至不敢搏噬者 彌盧山耶 七金輪山耶 崑崙山耶 八萬四千諸大山耶 山者 即是我慢之心也 澤者 即是邪見愛水也 虎狼者 殺害之心也 若實悟這箇經者 能摧慢山 頓渴愛水 永無殺氣之心 故虎狼不敢搏噬云 若非如此解釋 未免謗法矣 何以故 而今口誦紙墨經者 忽被虎狼噬者有矣 善神云云者 不昧一卷經 常生善心 剋念作聖之志矣
 
주註하여 이르되, 「설입운운設入云云(‘설사 들어간다 하더라도’ 운운[設入水火 不被焚漂, 설사 물과 불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떠내려가거나 불태워지지 않고) 」 함은, 세간의 견고함 ‧ 습함 ‧ 따뜻함 ‧ 움직임인 물과 불인가? 곧 이 「수水(물)」라 함은, 큰 사견邪見과 탐애貪愛의 물이요, 「화火(불)」라 함은, 진심瞋心과 분심憤心의 불이라. 「불표不漂(떠내려가지 않음)」라 함은, 애욕경계愛欲境界에 침몰(沈沒)되지 않음이요, 「불분不焚(불타지 않음)」이라 함은, 역순경계逆順境界에 동요動搖하지 않음이라. 「혹재산택내지불감박서或在山澤乃至不敢搏噬(‘혹 산과 연못에 있더라도’에서부터 ‘감히 잡아 뜯어먹지 못하며’까지, [혹은 산과 연못에 있더라도 호랑이와 늑대가 자취를 감추어 감히 잡아 뜯어먹지 못하며])」라 함은, 미로산彌盧山(須彌山, 수미산)인가? 칠금륜산七金輪山인가? 곤륜산崑崙山인가? 팔만사천八萬四千의 모든 큰 산인가? 「산山」이라 함은, 곧 이 아만심我慢心이요, 「택澤(연못)」이라 함은, 곧 이 사견邪見과 애욕愛慾의 물이며, 「호랑虎狼(호랑이와 늑대)」이라 함은, 죽이고 해롭게 하는 마음이라. 만약 ‘이 경經’을 실답게 깨달은 자라면, ‘능히 아만我慢의 산을 꺾고 ‧ 몰록 애욕愛慾의 물을 마르게 하며 ‧ 영원히 죽이려는 기운의 마음이 없으니, 그러므로 「호랑이와 늑대가 감히 잡아 뜯어먹지 못한다」라고 말할 것이요, 만약 이와 같은 해석이 아니라면 법 비방함(謗法)을 면하기는 어려우리라. 왜 그런가하면, 오늘날 종이와 먹으로 된 경전을 입으로만 독송하는 사람은 문득 호랑이와 늑대에게 뜯어 먹히는 자가 있기 때문이로다. 「선신운운善神云云(‘선신이’ 운운, [선신이 보호하고 지켜서 위없는 보리도를 이루리라])」 함은, 일권경一卷經을 매昧하지 않아 항상 선심善心을 일으켜서 생각 이기는 성인의 뜻을 지음이로다. 
 
 
 
* 剋念作聖之志矣:
생각 이기는 성인의 뜻을 지음이로다. 

『內勤尅念之功 外弘不諍之德』
안으로 생각 이기는 공功을 힘쓰고, 밖으로 다투지 않는 덕德을 넓힌다.
 
- [위산경책주溈山警策註]
 
 
 
 
【若復有人 多於妄語綺語 兩舌惡口 若能受持讀誦此經 永除四過 得四無礙辯 而成佛道 若善男子善女人等 父母有罪 臨終之日 當墮地獄 受無量苦 其子即爲讀誦此經七遍 父母即離地獄 而生天上 見佛聞法 悟無生忍 以成佛道】
 
약부유인이 다어망어기어와 양설악구라도 약능수지독송차경하면 영제사과하고 득사무애변하야 이성불도하며 약선남자선여인등이 부모유죄하야 임종지일에 당타지옥하며 수무량고라도 기자즉위독송차경칠편하면 부모즉리지옥하고 이생천상하야 견불문법하고 오무생인하여 이성불도하리라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망어妄語 기어綺語와 양설兩舌 악구惡口가 많다 하더라도, 만약 능히 이 경經을 받아 지녀 독송讀誦하면 영원히 사과四過를(네 가지 허물을) 제거하고 사무애변四無礙辯을(네 가지 걸림 없는 변재를) 얻어서 불도佛道를 이루며, 만약 선남자善男子 선여인善女人 등이 부모父母가 죄罪가 있어서 임종臨終하는 날에 지옥地獄에 떨어짐을 당하며 한량없는 고苦를 받게 되더라도, 그 자식이 곧 (부모를)위하여 이 경經 칠편七遍을 독송讀誦하면 부모父母가 곧 지옥地獄을 여의고 천상天上에 나서 부처님을 뵈어 법문을 듣고 무생인無生忍을 깨달아 불도佛道를 이루리라]
 
 
註曰 若復有人乃至成佛道者 這箇經中 本無如此四過四辯之名 强作名言 離過成德云云也 善男子善女人父母有罪云云者 貪愛之母 無明之父故 當墮地獄苦 始覺之子 不受人謾故 頓破無朙 不落貪愛水 而自慧現前 見自性天眞佛 悟無生法忍 而成佛道也 
 
주註하여 이르되, 「약부유인내지성불도若復有人乃至成佛道(‘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에서부터 ‘불도를 이루리라’ 까지,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망어기어와 양설악구가 많다 하더라도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녀 독송하면 영원히 사과四過를(네 가지 허물을) 제거하고 사무애변四無礙辯을(네 가지 걸림이 없는 변재를) 얻어 불도佛道를 이루리라])라 함은, ‘이 경經’ 가운데에 본래本來로 이러한 ‘사과四過’나 ‘사변四辯’이라 하는 이름이 없으나, 억지로 이름과 말을 지어 ‘잘못을 여의고 덕德을 이룬다’라고 운운云云 함이라. 「선남자선여인부모유죄운운善男子善女人父母有罪云云(‘만약 선남자 선여인 등이 부모가 죄가 있어서’ 운운, [만약 선남자 선여인 등이 부모가 죄가 있어서 임종하는 날에 지옥에 떨어짐을 당하며 한량없는 고苦를 받더라도, 그 자식이 곧 (부모를) 위하여 이 경經 칠편七遍을 독송하면 부모가 곧 지옥을 여의고 천상에 나서 부처님을 뵈어 법문을 듣고 무생인無生忍을 깨달아 불도佛道를 이루리라])」 함은, ‘탐애貪愛의 어머니[貪愛之母]’요 ‘무명無明의 아버지[無明之父]’인 까닭으로 마땅히 지옥地獄의 고통에 떨어질 것이나, 시각始覺의 아들[始覺之子]이 남에게[妄念] 속임을 받지 아니한 까닭으로 몰록 무명無明을 파破하고 탐애貪愛의 물에 떨어지지 아니함으로, 자신의 혜慧가 현전現前하여 자성自性인 천진불天眞佛을 보고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깨달아 불도佛道를 이룸이라.  
 
 
頌曰
眞俗無碍自在尊 
慈悲方便說此經
曠劫多聞成種智 
演法覺海竗難窮
 
진제眞諦와 속제俗諦에 걸림 없이 자재自在하신 세존世尊께서
자비慈悲의 방편方便으로 이 경經을 설하시니,
광겁曠劫의 다문多聞으로 종지種智를 이루시어
미묘微妙하여 헤아리기 어려운 각해覺海의 법法을 연설演說하시네. 
 
 
* 四無礙辯: 사무애변.
 
‘사무애해四無礙解’를 가리키니, 이것은 모든 불보살 설법의 지변(智辯)이 되는지라, 고로 의업意業을 따르자면 해解라 하고 지智라 하며, 구업口業을 따르자면 변辯이라 한다. 곧 법무애法無礙와 의무애義無礙와 사무애辭無礙와 요설무애樂說無礙이니, 또 이르되 ‘변설무애辨說無礙’라고도 한다.
 
 
 
 
【佛告 無礙菩薩 毗婆尸佛時 有優婆塞優婆夷 心不信邪 敬崇佛法 書寫此經 受持讀誦 須作即作 一無所問】 
 
불고 무애보살하시되 비바시불시에 유우바새나 우바이하야 심불신사하고 경숭불법하며 서사차경하여 수지독송하되 수작즉작하고 일무소문하니라
 
[부처님께서 무애보살無礙菩薩에게 말씀하시되, 비바시불毗婆尸佛 때에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가 있어서 마음은 삿됨을 믿지 아니하고 불법佛法을 우러러 공경恭敬하여 이 경經을 베껴 써서 받아 지녀 독송讀誦하되, 모름지기 지음에 곧 짓고 한 번도 물어본 바가 없었느니라]  
 
 
註曰 佛告云云者 見聞覺知之佛 告於自在之覺有情也 毗婆尸佛時者 光朙徧照之時 不無誠實之心 慈悲之心也 是故 不信邪見之心 敬崇本覺之心 不昧自性 而眞受持讀誦 這箇一卷經也 須作云云者 一見本性之後 㪅無所疑也
 
주註하여 이르되, 「불고운운佛告云云(‘부처님께서 고하시되’ 운운, [부처님께서 무애보살에게 말씀하시되])」함은, 보고[見] 듣고[聞] 아는[覺知] ‘불佛’이 자재自在한 ‘각유정覺有情’에게 고告함이라. 「비바시불시毗婆尸佛時(비바시불 때)」라 함은, 광명光朙이 두루 비춘 때이니, 성실誠實한 마음과 자비慈悲로운 마음이 없지 아니함이라. 이러한 까닭으로 사견邪見을 믿지 아니하는 마음과 본각本覺을 공경하고 우러르는 마음으로 자성自性에 어둡지 아니하나니, 진실로 이 일권경一卷經을 수지독송受持讀誦함이라. 「수작운운須作云云(‘모름지기 지으면’ 운운, [모름지기 지음에 곧 짓고 한 번도 물어본 바가 없었으며])」함은, 한 번 본성本性을 본 후에는 다시 의심하는 바가 없음이라. 
 
 
* 須作即作 一無所問: 
모름지기 지음에 곧 짓고 한 번도 물어본 바가 없었으며.
 
‧ 但問耕耘 不問收穫
다만 밭 갈고 김매는 것을 물을 뿐, 수확은 묻지 않는다. 
- 증국번曾國藩. 
 
 
 
 
【以正信故 兼行布施 平等供養 得無漏身 成菩提道 號曰 普光如來應正等覺 劫名大滿 國號無邊 但是人民 行菩薩道 無所得法】
 
이정신고로 겸행보시하되 평등공양하고 득무루신으로 성보리도하나니 호왈 보광여래응정등각이라 겁명은 대만이요 국호는 무변이라 단시인민이 행보살도하되 무소득법하나니라

[바른 믿음[正信]인 까닭으로 겸하여 보시布施를 행하되 평등平等히 공양供養하고 무루신無漏身을 얻어 보리도菩提道를 이루었나니, 호號는 이르되 보광여래응정등각普光如來應正等覺이라. 겁명劫名은 대만大滿이요 국호國號는 무변無邊이라. 다만 이 나라의 백성이 보살도菩薩道를 행行하되 법을 얻은 바가 없나니라.]
 
 
註曰 以正信云云者 盡捨邪心 故曰布施也 平等云云者 四智現前法身朗然也 號曰云云者 所謂應眼之時 譬如千日出 影相不能逃者也 應耳之時 如萬谷之響 音聲昭昭然也 劫名云云者 時時念念中 這箇靈覺 徧滿法界者也 國號云云者 直心之土 範圍天地 包呑萬象者也 但是云云者 正直不妄之心 即是普贒萬行之道也 無所得云者 修道證滅非大道 與覺相應 是眞無所得法矣 
 
주註하여 이르되, 「이정신운운以正信云云(‘바른 믿음으로써’ 운운, [바른 믿음[正信]인 까닭으로 겸하여 보시布施를 행하되)」 함은, 사심邪心을 다 버린 까닭으로 이르되 ‘보시布施’라. 「평등운운平等云云(‘평등히’ 운운, [平等供養 得無漏身 成菩提道, 평등히 공양하고 무루신을 얻어 보리도를 이루었나니])」 함은, 사지四智(성소작지成所作智, 묘관찰지妙觀察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대원경지大圓鏡智)가 현전現前하여 법신法身이 낭연朗然함이라. 「호왈운운號曰云云(‘호는 이르되’ 운운, [호는 이르되, 보광여래응정등각이라. 겁명은 대만이요, 국호는 무변이라])」 함은, 이른바 눈에 응하는 때에는 비유하자면 천개의 해가 떠올라 그림자의 상相이 숨지 못함과 같으며, 귀에 응하는 때에는 온 계곡의 메아리 음성이 밝고도 밝아 분명함과 같음이라. 「겁명운운劫名云云(‘겁명은’ 운운, [劫名大滿, 겁명은 크게 가득함이요])」 함은, 시간 시간과 생각 생각 가운데에 이 영각靈覺이 법계法界에 두루 가득함이라. 「국호운운國號云云(‘국호는’ 운운, [國號無邊, 국호는 갓이 없음이라」 함은, 곧은 마음[直心]의 보살이 천지天地를 범위로 하여 만상萬象을 싸서 안은 것이라. 「단시운운但是云云(‘다만 이’ 운운, [다만 이 나라의 백성은 보살도를 행하되])」 함은, ‘정직正直하여 망령되지 않은 마음’이 곧 이 보현普贒의 만행萬行인 도道이라.  「무소득운無所得云(‘얻은 바 없는’ 운운, [법을 얻은 바가 없나니라])」 함은, 도道를 닦아 적멸寂滅을 증득證得함이 대도大道가 아니요, 각覺과 더불어 상응相應함이 이 진실로 ‘법을 얻은 바가 없음[無所得法]’이로다. 
 
 
* 修道證滅非大道 與覺相應是眞無所得法矣: 
도道를 닦아 적멸寂滅을 증득得得함이 대도大道가 아니요, 각覺과 더불어 상응相應함이 이 진실로 ‘법을 얻은 바 없음[無所得法]’이로다. 
 
 
‧ 『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 佛子行道巳 來世得作佛』
 
제법諸法이 본래本來로 좇아 항상 그대로 적멸寂滅한 상相이니, 불자佛子가 행도行道하면 오는 세世에 부처됨을 얻으리라.
 
「修道하야 證滅이 是亦非眞이어니와 了法의 本来常自寂滅하야 不假修證하야 乃爲眞滅이니 能行此道하면 與覺相應故로 得作佛也하리라」
 
도道를 닦아 적멸寂滅을 증득證得함이 이 또한 참[眞]이 아니거니와, 법法의 ‘본래 항상 그대로 적멸寂滅해서 닦아 증득證得함을 빌리지 아니함[法本来常自寂滅 不假修證]’인 줄을 사무쳐 알아야 진실로 적멸寂滅이 되리니, 능히 이 도道를 행하면 각覺과 더불어 서로 응應할새 부처됨을 얻으리라. 
 
- <묘법연화경요해妙法蓮華經要解> 방편품方便品, 계환戒環 해觧.
 
 
‧ 『照見五蘊皆空』
 
오온五蘊이 모두 공空임을 「비추어 본다」.
 

  • <반야심경般若心經>

 
 
 
 
【復次無礙菩薩 此天地八陽經 行閻浮提 在在處處 有八菩薩 諸梵天王 一切朙靈 圍繞此經 香華供養 如佛無異】
 
부차무애보살아 차천지팔양경이 행염부제하면 재재처처에 유팔보살과 제범천왕과 일체명령이 위요차경하고 향화공양하야 여불무이하나니라
 
[다시 무애보살無礙菩薩아, 이 천지팔양경天地八陽經이 염부제行閻浮提에 행行하여지면, 있는 곳마다에 팔보살八菩薩과 모든 범천왕梵天王과 일체一切의 밝은 령靈이 있어서 이 경經을 둘러싸고 향과 꽃으로 공양供養함이 부처님과 같아 다름이 없느니라]
 
 
註曰 復次云云者 人人日用所作 所謂無非此神呪經力也 在在云云者 即是八意妙用自在也 諸梵天王者 自在梵行 以自圍繞 本淸淨這箇經也 香華云云者 五分法身之眞香熏 於萬行之花 供養眞如佛寶也 
 
주註하여 이르되, 「부차운운復次云云(‘다시’ 운운, [다시 무애보살아, 이 천지팔양경이 염부제에 행하여지면])」 함은, 사람사람이 날마다 쓰면서 짓는 바가 이른바 이 ‘신주경神呪經의 힘’ 아님이 없음이라. 「재재운운在在云云(‘있는 곳마다’ 운운, [在在處處 有八菩薩, 있는 곳곳마다 여덟 보살이 있어서] 」 함은, 곧 이 여덟 의意의 묘용[八意妙用]이 자재自在함이라. 「제범천왕諸梵天王(모든 범천왕)」이라 함은, ‘자재自在한 범행梵行이 스스로 둘러쌈으로써 본래本來로 청정淸淨한’ 이낱 경經이라. 「향화운운香華云云(‘향과 꽃’ 운운, [香華供養 如佛無異, 향과 꽃을 공양함이 부처님과 같아 다름이 없느니라]」 함은, 오분법신五分法身(戒香, 定香, 慧香, 解脫香, 解脫知見香)의 진실한 향훈香熏이 만행萬行의 꽃에 의지하여 진여불보眞如佛寶께 공양供養함이라.
 
 
* 即是八意妙用自在也:
곧 이 여덟 가지 뜻[八意]의 묘용妙用이 자재自在함이라. 
 
『最後佛未出家時有八王子一名有意二名善意三名無量意四名寶意五名增意六名除疑意七名響意八名法意』
 
가장 후의 부처가 출가하지 아니하여 계실 때 여덟 왕자가 있었더니, 하나는 이름이 유의有意요, 둘은 이름이 선의善意요, 셋은 이름이 무량의無量意요, 넷은 이름이 보의寶意요, 다섯은 이름이 증의增意요, 여섯은 이름이 제의의除疑意요, 일곱은 이름이 향의響意요, 여덟은 이름이 법의法意이더니.
 
「有八王子者聖人示迹表法也 依燈明有八意 表從妙明眞心出妙觀察意其用有八也 妙心本空而能有用故名有意此妙有也 出乎妙心用無不善故名善意此妙善也 量不可測名無量意此妙量也 對境利用名寶意此妙寶也 觸類而長名增意此妙增也 善能覺了名除疑意此妙覺也 應物如響名響意此妙響也 建立萬法名法意此妙法也」
 
‘팔왕자八王子가 계심’이라 함은, 성인聖人의 자취를 보이시어 법法을 표함이시라. ‘등명燈明(등의 밝음)을 의지하여 팔의八意가 있음’은 미묘히 밝은 진실의 마음[妙明眞心]을 좇아서 미묘히 보아 살피는 뜻[妙觀察意]이 나오되 그 작용[用]이 여덟이 있는 것을 표하심이라. 미묘한 마음이 본래 비었으되 능히 용用이 있는 까닭으로 이름이 ‘유의有意’이시니 이는 미묘한 유[妙有]이시고, 미묘한 마음에서 나와 용用이 좋지 못함이 없는 까닭으로 이름이 ‘선의善意’이시니 이는 미묘한 선[妙善]이시고, 량量을 헤아리지 못함이 이름이 ‘무량의無量意’이시니 이는 미묘한 헤아림[妙量]이시고, 경계를 대하여 이롭게 쓰심이 이름이 ‘보의寶意’이시니 이는 미묘한 보배[妙寶]이시고, 류類에 부딪혀 기르심이 이름이 ‘증의增意’이시니 이는 미묘한 더함[妙增]이시고, 잘 능히 깨달아 아심이 ‘제의의除疑意’이시니 이는 미묘한 각[妙覺]이시고, 물物에 응應함이 메아리 같으심이 이름이 ‘향의響意’이시니 이는 미묘한 메아리[妙響]이시고, 만법萬法을 세우심이 이름이 ‘법의法意’이시니 미묘한 법[妙法]이시니라. 
 
- <묘법연화경요해妙法蓮華經要解> 서품序品 제일第一.
 
 
○ 그 여덟의 묘한 작용[八意妙用]은, 묘유妙有 ‧  묘선妙善 ‧ 묘량妙量 ‧ 묘보妙寶 ‧ 묘증妙增 ‧ 묘각妙覺 ‧ 묘향妙響 ‧ 묘의法意이다.
 
 
 
 
【佛告 無礙菩薩摩訶薩 若善男子 善女人等 爲諸衆生 講說此經 深達實相 得甚深理 即知身心 佛身法心】
 
불고 무애보살마하살하사되 약선남자 선여인등이 위제중생하야 강설차경하면 심달실상하야 득심심리하되 즉지신심이 불신법심이라.
 
[부처님께서 무애보살마하살無礙菩薩摩訶薩에게 말씀하시되, 만약 선남자善男子 선여인善女人 등이 모든 중생衆生을 위하여 이 경經을 강설講說하면,  실상實相을 깊이 통달通達하여 심히 깊은 이치를 얻어서 곧 몸과 마음[身心]이 부처님의 몸[佛身]이요 법의 마음[法心]임을 알리라]
 
 
註曰 佛告下講說此經者 講說義理禪耶 講說格外禪耶 日用圓佗佗地 眞講說此經也 深達實相者 魚躍于淵 鳶飛唳天 松直棘曲 竹如是靑 花如是紅 無非實相者也 得甚深理者 頓悟無生法忍也 即知云云者 菩提身耶 願身耶 相好莊嚴身耶 即知常樂我淨四德之身心也
 
주註하여 이르되, 「불고하강설차경佛告下講說此經(‘부처님께서 고하시되’부터 ‘이 경을 강설하면’까지, [부처님께서 무애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시되, 만약 선남자 선여인 등이 모든 중생을 위하여 이 경을 강설하면])」이라 함은, 의리선義理禪을 강설함인가? 격외선格外禪을 강설함인가? 일용日用의 원타타지圓佗佗地(심체心體의 원전무애圓轉無礙한 지경地境)가 진실로 이 경經을 강설講說함이라. 「심달실상深達實相(실상을 깊이 통달하여)」이라 함은, 물고기는 못에서 뛰고 솔개는 하늘을 날아 울며 소나무는 곧고 가시나무는 굽으며 대나무는 이와 같이 푸르고 꽃은 이와 같이 붉음이 실상實相 아님이 없는 것이라. 「득심심리得甚深理(심히 깊은 이치를 얻어서)」라 함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몰록 깨달음이라. 「즉지운운即知云云(‘곧 알리라’ 운운, [即知身心 佛身法心(곧 몸과 마음이 부처님의 몸과 법의 마음임을 알리라])」 함은, 보리菩提의 몸인가? 원願(원력)의 몸인가? 상호相好로 장엄莊嚴한 몸인가? 곧 상락아정常樂我淨 사덕四德의 몸과 마음임을 앎이라.  
 
 
* 圓陀陀: 원타타.
 
『孤迴迴〈不與萬法爲侶〉 圓陀陀〈無缺無餘〉』 
고형형孤迴迴하고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다〉 원타타圓陀陀하나니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다〉
 
- [종용록從容錄] 제팔십오칙第八十五則 송頌.
 
 
‧ ‘원타타圓陀陀’라 함은, 물物의 원만한 형태를 형용함이니, 선가禪家에는 이로써 심체心體의 원전무애圓轉無礙(원만히 운전運轉하여 걸림이 없음)를 형용함이다.
 
 
 
 
【所以 能知則智慧 眼常見種種無盡色 色即是空 空即是色 受想行識 亦空 即是妙色身如來】 
 
소이 능지즉지혜니 안상견종종무진색하되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라 수상행식도 역공하나니 즉시묘색신여래며
 
[이러한 까닭으로 능히 앎이 곧 지혜智慧이니, 눈이 항상 갖가지 다함이 없는 물질[色]을 보되 물질[色]이 곧 이 공空이요 공空이 곧 이 물질[色]이라 수상행식受想行識도 또한 공空이니, 곧 이 묘색신여래妙色身如來이며]
 
 
註曰 所以云云者 五眼具足 六根成佛 不言可知也 常見云云者 可見有對色耶 不可見有對色耶 不可見無對色耶 這箇色即是妙有之眞色也 色即是空者 碧空之空耶 頑空之空耶 對色之空耶 即是妙有之眞空也 空即是色者 如此類例 則空即是受 受即是空 想即是空 空即是想 行即是空 空即是行 識即是空 空即是識 如如之理 色空不二故 即是妙色身如來也 眞空如來 亦在其中也 
 
주註하여 이르되, 「소이운운所以云云(‘이러한 까닭으로’ 운운)」 함은, 오안五眼이 구족具足하여 육근六根이 성불成佛함은 말하지 않아도 가히 알 수 있음이라. 「상견운운常見云云(‘항상 보되’ 운운, [常見種種無盡色, 항상 갖가지 다함이 없는 물질[色]을 보되]」 함은, 가히 볼 수 있고 대對할 것이 있는 색色인가? 가히 볼 수는 없고 대對할 것이 있는 색色인가? 가히 볼 수도 없고 대對할 것도 없는 색色인가? 이 색色은 곧 이 묘유妙有(미묘하게 있음)의 진실한 색[眞色]이라. 「색즉시공色即是空(색色이 곧 이 공空)」이라 함은, 푸른 허공의 공空인가? 완공頑空의 공空인가? 색色에 상대相對한 공空인가? 곧 이 묘유妙有(묘하게 있음)의 진공眞空(진실로 없음)이라. 「공즉시색空即是色(공空이 곧 이 색色)」이라 함은, 이러한 류類를 나열할 것 같으면 공空은 곧 이 수受요 수受는 곧 이 공空이며, 상想은 곧 이 공空이요 공空은 곧 이 상想이며, 행行은 곧 이 공空이요 공空은 곧 이 행行이며, 식識은 곧 이 공空이요 공空은 곧 이 식識이니, 여여如如한 이치[理]는 색色과 공空이 둘이 아닌 까닭으로 곧 이 「묘색신여래妙色身如來」이라. 진공여래眞空如來는 또한 그 가운데 (본래로)있음이라. 
 
 
頌曰
五蘊空處妙色身 
晝夜放光遍大千
空刼已前無垢身 
逈脫根塵露裸然 
 
송頌하여 이르되,
오온五蘊이 공空한 곳의 묘妙한 색신色身은
낮과 밤으로 빛을 놓아 대천세계를 두루하네.
공겁이전空刼已前의 때 없는 몸이여.
근진根塵을 멀리 벗어남에 알몸이 그대로 드러남이로다.
 
 
* 可見有對色耶... : 
가히 볼 수도 있고 대할 수도 있는 색인가...
 
 
‧ 『佛說三種色 有色可見有對 有色不可見有對 有色不可見無對.』
 
부처님께서는 세 종류의 색色을 말씀하셨으니, 곧 어떤 색은 볼 수도 있고 대할 것도 있음이요[可見有對, 눈의 물질], 어떤 색은 볼 수는 없으나 대할 것이 있음이요[不可見有對, 귀의 소리, 코의 냄새, 혀의 맛, 몸의 촉감], 어떤 색은 대할 수도 없고 볼 것도 없음이라[不可見無對, 마음속의 상상이나 꿈].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이십권第二十卷 대지도론석초품大智度論釋初品.
 
 
* 逈脫根塵: 
근根과 진塵을 멀리 벗어나.
 
 
‧ 『靈光獨耀 逈脫根塵 體露真常 不拘文字 眞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即如如佛』
 
신령한 광명이 홀로 비치어 육근六根과 육진六塵을 멀리 벗어나며, 진상真常의 체體가 드러나 문자에 의지하지 아니하며, 진성眞性은 더럽지 아니하여 본래로 제 두렷이 이루었나니, 오직 망령된 연緣[妄緣, 妄想]을 여의면 곧 여여如如한 부처이니라.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백장선사百丈禪師.

 
 
* 如如之理 色空不二故 即是妙色身如來也:
여여如如한 이치는 색色과 공空이 둘이 아닌 까닭으로 곧 이 묘색신여래이라.
 
 
‧ 『觀一切法 自性無生 離於妄見 不住生死, 觀一切法 因緣和合 業果不失 起於大悲 修諸福德 攝化衆生 不住涅槃, 以隨順法性無住故』
 
일체법一切法은 자성自性이 무생無生임을 관觀해서 「망견妄見을 여의어 생사生死에 머물지 아니하며」, 일체법一切法이 인연因緣으로 화합和合함을 관觀해서 업과業果를 잃지 않고 대비大悲를 일으켜서 모든 복덕福德을 닦아 「중생衆生을 섭화攝化하여 열반涅槃에 머물지 아니하나니」, 법성法性의 머무름 없음을 수순隨順하는 까닭이니라. 
 
-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 『如如』: 如 - 色即是空 - 妙有之眞空 - 動而不動 - 解脫
           如 - 空即是色 - 眞空之妙有 - 不動而動 - 慈悲
 
 
 
 
【耳常聞 種種無盡聲 聲即是空 空即是聲 即是妙音聲如來】

이상문 종종무진성하되 성즉시공이요 공즉시성이라 즉시묘음성여래며 
 
[귀가 항상 갖가지 다함이 없는 소리[聲]를 듣되 소리[聲]가 곧 이 공空이요 공空이 곧 이 소리[聲]이라 곧 이 묘음성여래妙音聲如來이며]
 
 
註曰 聲者 聖人聲耶 凡夫聲耶 畜生聲耶 地水火風聲耶 草木叢林之聲耶 即是即眞空妙有之聲也 是故云 聲即是空 空即是聲 即是妙音聲如來也 此根與眞如無異也.
 
주註하여 이르되, 「성聲(소리)」이라 함은, 성인聖人의 소리인가? 범부凡夫의 소리인가? 축생畜生의 소리인가?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소리인가? 풀과 나무로 우거진 숲의 소리인가? 곧 이 ‘진공묘유眞空妙有’에 즉即한(진공에 나아가 묘하게 있는) 소리이라. 이러한 까닭으로 이르되, 「성즉시공공즉시성즉시묘음성여래聲即是空空即是聲即是妙音聲如來(소리가 곧 이 공空이요 공空이 곧 이 소리이니, 곧 이 묘음성여래妙音聲如來)」라 함이니, 이 근본[根]은 진여眞如와 더불어 다름이 없음이라.
 
 
 
 
【鼻常齅 種種無盡香 香即是空 空即是香 即是香積如來】
 
비상후 종종무진향하되 향즉시공이요 공즉시향이라 즉시향적여래며 
 
[코가 항상 갖가지 다함이 없는 향香을 맡되 향香이 곧 이 공空이요 공空이 곧 이 향香이라 곧 이 향적여래香積如來이며]
 
 
註曰 香者 人間香耶 天上香耶 聖人香耶 凡夫香耶 畜生香耶 草木叢林香耶 可意香耶 不可意香耶 即是五分法身之香也 香即是空 空即是香者 性香眞空 眞空性香 遍滿法界 當處出生 隨處滅盡 故云 香積如來 眞法性中 本無異物故.
 
주註하여 이르되, 「향香(냄새)」이라 함은, 인간人間의 향香인가? 천상天上의 향香인가? 성인聖人의 향香인가? 범부凡夫의 향香인가? 축생畜生의 향香인가? 풀과 나무로 우거진 숲의 향香인가? 마음에 맞는 향香인가? 마음에 맞지 않는 향香인가? 곧 이 오분법신五分法身의 향香이라. 「향즉시공공즉시향香即是空空即是香(향이 곧 이 공이요 공이 곧 이 향)」이라 함은, 성性(진여성)인 향香이 진공眞空(진실로 공함)이요 진공眞空(진실로 공함)이 성性(진여성)인 향香이라, 법계에 두루 차서 당처當處에서 생겨나고 곳을 따라 없어져 다함이라. 그러므로 『향적여래香積如來는 진실로 법성法性 가운데에 본래로 다른 물건이 없다』고 이르는 까닭이라. 
 
 
* 當處出生 隨處滅盡: 
당처當處에 생겨나고 곳을 따라 없어져 다함이라.
 
 
‧ 『阿難아 汝猶未明一切浮塵諸幻化相의 「當處出生하며 隨處滅盡하나니」 幻妄은 稱相이어니와 其性은 眞爲妙覺明體니 如是乃至五陰六入과 從十二處하야 至十八界히 因緣이 和合하야 虛妄으로 有生하며 因緣이 別離하야 虛妄으로 名滅하나니 殊不能知生滅去來가 本如來藏이라 常住하며 妙明하며 不動하며 周圓한 妙眞如性 하는구나. 性眞常中엔 求於去來와 迷悟와 生死와 하야도 了無所得하니라.
 
아난阿難아, 네 오히려 일체一切의 뜬 티끌인 모든 환화상幻化相이 「곳을 당當하여 나며 곳을 좇아 없어 다함」을 밝히지 못하나니, 환망幻妄은 상相이라 이르거니와 그 성性은 진실眞實의 묘각妙覺인 밝은 체體니, 이같이 오음五陰과 육입六入과 십이처十二處를 좇아 십팔계十八界에 이르기까지, 인연因緣이 화합和合하면 허망虛妄으로 ‘생겨남[生]’이 있으며 인연因緣이 따로 여의면 허망虛妄으로 ‘없어짐[滅]’이라 이름 하나니, 나며 없어지며 가며 옴이 본래本來 여래如來의 장藏이라. 항상 주住하며 미묘微妙히 밝으며 동動치 아니하며 두렷하여 미묘微妙한 진여眞如의 성性을 따로 능能히 알지 못하는구나. 성性이 진상眞常한 가운데엔 감과 옴과 어리석음과 깨달음과 남과 죽음을 구求하여도 마침내 득得함이 없느니라. 
 
-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 이권二卷.
 
 
‧ 『當處出生하며 當處寂滅이라.』
당當한 곳에 나며 당當한 곳에 적멸寂滅이라.
 
-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 일권一卷.
 
 
* 性香眞空 眞空性香 遍滿法界: 
성性(진여성)인 향香이 진공眞空(진실로 공함)이요 진공眞空이 성性인 향香이라, 법계에 두루 차서 당처當處에서 생겨나고 곳을 따라 없어져 다함이라.
 
 
‧ 『汝ㅣ 曾不知로다 如來ㅅ 藏中엔 性이 見인 覺明과 覺이 精인 明見이 淸淨本然ᄒᆞ며 周徧法界ᄒᆞ야 隨衆生心ᄒᆞ야 應所知量ᄒᆞᄂᆞ니 如一見根이 見이 周法界ᄒᆞ야 聽과 齅와 嘗觸과 覺觸과 覺知왜 妙德이 瑩然ᄒᆞ야 徧周法界ᄒᆞ니 圓滿十虛커니 寧有方所ㅣ리오 循業ᄒᆞ야 發現ᄒᆞ거늘 世閒ᄋᆞᆫ 無知ᄒᆞ야 惑爲因緣과 及自然性ᄒᆞᄂᆞ니 皆是識心의 分別計度이니 但有言說이언뎌ᇰ 都無實義ᄒᆞ니라 性見等者ᄂᆞᆫ 亦體用ᄋᆞᆯ 相依而擧ᄒᆞ시니 有見有覺이 雖覺明之咎ㅣ나 而體ᄂᆞᆫ 實性見이오 用ᄋᆞᆫ 實覺精也ㅣ라』 
 
네가 일찍이 알지 못함이로다. 여래如來의 장藏 가운데엔 성性이 견見인 각명覺明과 각覺이 정精인 명견明見이 청정본연淸淨本然하며 법계法界에 주변周徧하야 중생衆生의 마음을 좇아 아는 량量을 응應하나니, 한 견근見根이 봄이 법계法界에 주변周徧하듯 하여 들음과 맡음과 맛보는 촉감과 감각하는 촉감과 깨어 아는[覺知] 미묘微妙한 덕德이 밝아 법계法界에 주변周徧하나니, 십허十虛에 원만圓滿하거니 어찌 방소方所가 있으리오? 업業을 좇아 발현發現하거늘 세간世間은 알지 못하여 미혹迷惑하야 인연因緣과 자연성自然性으로 삼나니, 다 이 식심識心의 분별分別하여 헤아림이니, 한갓 언설言說이 있을 뿐이언정 전혀 실實한 뜻이 없느니라. ‘성性이 견見이라’ 한 것들은 또한 체용體用을 서로 의지하여 들어 일으키심이니, 견見 있으며 각覺 있음이 비록 각명覺明의 허물이나, 체體는 실實로 성性인 견見이오 용用은 실實로 각覺인 정精이라.
 

  •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 삼권三卷.

 
 
 
 
【舌常了 種種無盡味 味即是空 空即是味 即是法喜如來】
 
설상료 종종무진미하되 미즉시공이요 공즉시미이라 즉시법희여래며
 
[혀가 항상 갖가지 다함이 없는 맛을 알되, 맛[味]이 곧 이 공空이요 공空이 곧 이 맛[味]이니 곧 이 법희여래法喜如來며]
 
 
註曰 味者 世間味耶 天上味耶 這箇味 即是法喜禪悅味也 味即乃至法喜如來者 性味眞空 眞空性味 淸淨本然 如來藏妙眞如性 遍滿法界故 非因緣性 非自然性故也 
 
주註하여 이르되, 「미味(맛)」라 함은, 세간世間의 맛인가? 천상天上의 맛인가? 이 맛은 곧 이 ‘법희선열法喜禪悅의 맛’이라. 미즉내지법희여래味即乃至法喜如來(‘맛이 곧’에서부터 ‘법희여래法喜如來며’까지, [味即是空 空即是味 即是法喜如來, 맛이 곧 이 공空이요 공空이 곧 이 맛이니, 곧 이 법희여래며])라 함은, 성性(진여성)인 맛이 진공眞空(진실로 공함)이요 진공眞空(진실로 공함)이 성性(진여성)인 맛이니, 청정본연淸淨本然한 여래장如來藏의 미묘微妙한 진여성眞如性이 법계法界에 두루 가득 차 있는 까닭이요, 인연因緣한 성性이 아니며 자연自然한 성性도 아닌 까닭이라. 
 
 
* 如來藏妙眞如性 遍滿法界故 非因緣性 非自然性故也:
여래장의 미묘한 진여성이 법계에 두루 가득한 까닭이요, 인연한 성이 아니며 자연한 성도 아닌 까닭이라. 
 
 
‧ 『是故로 當知하라 眼入이 虛妄하야 「本非因緣이며 非自然性이니라」 旣無所從할새 故로 非因緣自然이라 本如來藏妙眞如性矣니 餘五를 例此하라』
 
이런 까닭으로 반드시 알라. 안입眼入이 허망虛妄하여 본래本來 인연因緣 아니며 자연自然한 성性 아니니라. 이미 좇은 바가 없을새 이런 까닭으로 인연因緣도 자연自然도 아니라 본래本來로 여래장如來藏의 미묘微妙한 진여성眞如性이니, 나머지 다섯을 이에 견주어보라.
 

  •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 삼권三卷.

 
 
 
 
【身常覺 種種無盡觸 觸即是空 空即是觸 即是智勝如來】
 
신상각 종종무진촉하되 촉즉시공이요 공즉시촉이라 즉시지승여래이라
 
[몸은 항상 갖가지 다함이 없는 닿음[觸]을 감각하되[覺] 닿음[觸]이 곧 이 공空이요 공空이 곧 이 닿음[觸]이라 곧 이 지승여래智勝如來이라]
 
 
註曰 觸身者 地大是身耶 火大是身耶 水大是身耶 風大是身耶 此身常身法身 即是金剛不壞身也 內四大能觸耶 外四大能觸耶 能觸屬何大耶 觸乃至智勝如來者 性觸眞覺 眞覺性觸 即是如來藏妙眞如性遍滿法界 當處出生 隨處滅盡 故眞如性中 覺觸無異 三世初無間斷時 十方都無空缺處者也
 
주註하여 이르되, 「촉신觸身(몸에 닿음)」이라 함은, 지대地大가 이 몸[身]인가? 화대火大가 이 몸인가? 수대水大가 이 몸인가? 풍대風大가 이 몸인가? 이 몸은 항상하는 몸인 법신[常身法身]으로 곧 이 금강金剛의 부서지지 않는 몸이라. 안의 사대四가 능히 닿음인가? 밖의 사대四大에 능히 닿음인가? 능히 닿음은 어느 대大에 속하는가? 「촉내지지승여래觸乃至智勝如來(‘닿음’에서 ‘지승여래’까지, [닿음이 곧 이 공空이요 공空이 곧 이 닿음이라 곧 이 지승여래이라])」라 함은, 성性(진여성)인 닿음이 진각眞覺(진실로 감각함)이요 진각眞覺(진실로 감각함)이 성性(진여성)인 닿음이니, 곧 이 여래장如來藏의 미묘微妙한 진여성眞如性이 법계法界에 두루 가득하여 곳을 당當하여 나며 곳을 따라서 멸滅해 다하니, 이러한 까닭으로 진여성眞如性 가운데에는 각覺과 촉觸이 다름이 없어 『삼세에 잠깐도 끊어진 때가 없으며 시방十方에 다 비어서 이지러진 데가 없는[三世初無間斷時 十方都無空缺處]』것이라.
 
 
* 三世初無間斷時 十方都無空缺處: 
삼세三世에 잠깐도 끊어진 때가 없으며, 시방十方에 다 비어서 이지러진 데가 없음.
 
 
‧ 『體遍一切하야 無在不在하야 「三世에 初無間斷時하며 十方에 都無空缺處하니」 此가 所以得名爲摩訶也이라』
 
체體가 일체一切에 가득하여 ‘있으며 있지 아니함’이 없어, 삼세三世에 잠깐도 그친 때가 없으며 시방十方에 다 비어서 이지러진 데가 없으니, 이것이 써 이름을 얻되 ‘마하摩訶’라 한 바이라.
 
–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 일권一卷.
 
 
* 內四大能觸耶 外四大能觸耶:
안의 사대四가 능히 닿음인가? 밖의 사대四大에 능히 닿음인가?
 
 
‧ 『四大有內外 外四大 地水火風也 內四大 皮肉地大 唾涕便利等水大 㬉氣火大 動轉風大也』
 
사대四大는 안과 밖이 있으니, 밖의 사대는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이요, 안의 사대는 가죽과 살의 지대地大와 침과 콧물과 똥오줌 등의 수대水大와 따뜻한 기운의 화대火大와 움직임(숨쉼)의 풍대風大이라.
 

  • [석전유해釋典類解]

 
 
 
 
【意常思想分別 種種無盡法 法即是空 空即是法 即是法朙如來】
 
의상사상분별 종종무진법하되 법즉시공이요 공즉시법이라 즉시법명여래니라
 
[뜻이 항상 갖가지 다함이 없는 법法을 사상思想하여 분별分別하되 법法이 곧 이 공空이요 공空이 곧 이 법法이라 곧 이 법명여래法朙如來이니라]
 
 
註曰 法者 俗諦法耶 眞諦法耶 人天因果法耶 三十七助道品法耶 十二因緣法耶 六度萬行等法耶 最上乘法耶 大摠相法耶 此法即是一刹那間九百生滅之心 法塵煩惱之法也 法即是空 攝用歸體 空即是法 從體起用也 法朙如來者 八萬四千塵惱心 即是如來藏妙眞性也 
 
주註하여 이르되, 「법法」이라 함은, 속제俗諦의 법法인가? 진제眞諦의 법法인가? 인천人天의 인과법因果法인가?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의 법法인가?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인가? 육도만행六度萬行 등의 법法인가? 최상승법最上乘法인가? 대총상법大摠相法인가? 이 법法은 곧 이 ‘한 찰나간刹那間에 구백九百을 생멸生滅하는 마음’이니, 법진번뇌法塵煩惱의 법法이라. 「법즉시공法即是空(법法이 곧 이 공空이요)」은 용用을 섭攝하여 체體로 돌아옴이요, 「공즉시법空即是法(공空이 곧 이 법法이라)」은 체體를 좇아 용用을 일으킴이라. 「법명여래法朙如來」라 함은, 팔만사천八萬四千의 티끌로 번뇌하는 마음이 곧 이 여래장如來藏의 미묘微妙한 진성眞性이라.
 
 
頌曰
六根成佛君知否 
晝夜放光無歇時
反照六根悟圓通 
塵消覺圓得菩提
 
송頌하여 이르되,
육근六根이 부처 이룸을 그대는 아는가? 
낮과 밤으로 빛을 놓아 쉴 때가 없느니라.
육근六根을 반조反照하여 원통圓通을 깨달으면 
티끌이 사라짐에 각覺이 원만하여 보리菩提를 얻느니라.
 
 
* 法塵煩惱之法也: 
법진번뇌法塵煩惱(법 티끌에 번뇌하는)의 법法이라.
 

‧ 「臨濟云, 你但歇得念念馳求心 則與釋迦老子不別. 七地菩薩 求佛智心未歇 謂之法塵煩惱」

임제臨濟가 이르시되, “그대들이 다만 생각 생각에 구求하여 내달리는 마음[馳求心]을 쉬기만 하면, 석가노자釋迦老子와 다르지 않다.” 라 하였습니다. 칠지보살七地菩薩은 부처님 지혜를 구하여 마음이 쉬지를 못하니, 그를 일러 ‘법진번뇌 (法塵煩惱)’라 합니다.

-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제이십이권第二十二卷.

* 「若得前後際斷 心智路自絶矣. 若得心智路絶 說種種事 皆此法也. 此法旣明 卽此明處便是不思議大解脫境界. 只此境界亦不可思議 境界旣不可思議 一切譬喩亦不可思議 種種事亦不可思議 只這不可思議底 亦不可思議 此語亦無著處 只這無著處底 亦不可思議. 如是展轉 窮詰 若事若法 若譬喩若境界 如環之無端 無起處無盡處 皆不可思議之法也. 所以云, 菩薩住是不思議 於中思議不可盡 入此不可思議處 思與非思皆寂滅. 然亦不得住在寂滅處. 若住在寂滅處 則被法界量之所管攝 敎中謂之法塵煩惱. 滅却法界量 種種殊勝一時蕩盡了 方始好看, 庭前柏樹子 麻三斤 乾屎橛 狗子無佛性 一口吸盡西江水 東山水上行之類, 忽然一句下透得 方始謂之法界無量回向.」 

만일 앞뒤의 시간이 끊어지면, 마음의 지혜 길은 저절로 끊어집니다. 만일 마음의 지혜 길이 끊어지면 설說하는 갖가지 일들이 모두가 이 법法이요, 이 법法이 이미 분명하였음에 이 분명한 곳이 바로 이 부사의대해탈경계不思議大解脫境界인 것입니다. 다만 이 대해탈의 경계도 역시 불가사의不可思議요 이 경계가 이미 불가사의라면 일체의 비유도 또한 불가사의이며 갖가지 일들도 또한 불가사의이니, 다맛 이 불가사의不可思議라고 하는 것 역시 불가사의이며 이 말도 또한 붙을 곳이 없어서 다맛 이 붙을 곳 없는 이것도 또한 불가사의입니다. 이와 같이 펼쳐 나아가 마지막까지 따져 들어가면, 일에 있어서나 법에 있어서나 비유에 있어서나 경계에 있어서나 마치 고리가 끝이 없듯이 일어난 곳도 없고 끝나는 곳도 없어서 모두가 불가사의不可思議의 법法인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으로 이르되, “보살이 머묾은 이 불사의不思議이나 그 가운데에 사의思議함이 가히 다하지 아니하나니, 이 불가사의不可思議의 처소에 들어가면 사의思議함과 사의思議하지 못함이 모두 적멸寂滅인 것이라.”하였습니다. 그러나 또한 적멸寂滅한 곳에 있어서도 머물 수 없으니, 만약 적멸한 곳에 있어서 머문다면 법계法界의 량量에 갇히게 됩니다. 교敎에서 그것을 일러 ‘법진번뇌(法塵煩惱)’라 합니다. 법계法界의 량量을 없애버리고 온갖 뛰어난 것들을 일시에 쓸어버려서 ‘뜰 앞의 잣나무’, ‘삼서근’, ‘똥 닦는 막대기’, ‘개에게 불성이 없다’, ‘한입에 서강의 물을 다 마신다’, ‘동산이 물 위를 간다’ 하는 공안에서 바야흐로 잘 간看하여 나아가면, 홀연히 일구一句 아래에 뚫어버리게 될 것이니, 그것을 일러 ‘법계의 한량없는 회향[法界無量回向]’이라고 합니다. 
 

  •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제이십칠권第二十七卷.

 

‧ 『猶爲法塵엣 分別影事이니라.』

 
히려 법진法塵의 분별分別하는 그림자의 일이 되리라. [진塵은 형상과 같고 분별分別은 그림자와 같으니라]
 

  •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 일권一卷.

 
○ 但歇妄想即是菩提 更求菩提即是妄想
다만 망상妄想을 쉬면 곧 보리菩提다. 

다시 보리菩提를 구하면 곧 망상妄想이다. 

 
 
 
 
【善男子 此六根 顯現 人皆口常 說其善語 善法常轉 即成聖道 說其邪語 惡法常轉 即墮地獄 善男子 善惡之理 不得不信】
 
선남자야 차육근이 현현하야 인개구상설기선어하여 선법상전하면 즉성성도하고 설기사어하야 악법상전하면 즉타지옥하나니 선남자야 선악지리는 부득불신이니라
 
[선남자善男子야, 이 육근六根이 드러나 나툼에 사람이 모두 입으로 항상 그 좋은 말을 설說하여 선善한 법法이 항상 구르면 성인聖人의 도과道果를 이루고, 그 삿된 말을 설하여 악惡한 법法이 항상 구르면 곧 지옥地獄에 떨어지나니, 선남자야, 선善과 악惡의 이치는 믿지 않을 수가 없느니라]
 
 
註曰 顯現者 浮根四塵顯現耶 淨色根顯現耶 此六根眞妄善惡頓現也 善語者 十善語耶 四諦語耶 十二緣語耶 六度萬行語耶 即是口裏無嗔常說善語也 聖道云云者 人天道耶 聲聞道耶 緣覺道耶 菩薩道耶 佛道耶 即是一念正心 是成聖道也 邪語者 惡口邪語耶 兩舌邪語耶 妄語邪語耶 綺語邪語耶 即是一起邪念之心 是邪語也 惡法者 十惡法耶 五逆惡法耶 七遮惡法耶 一起嗔心 大惡法相轉也 地獄者 八寒地獄耶 八熱地獄耶 十八地獄耶 乃至五無間地獄耶 即是乍破五戒 是大地獄也
 
주註하여 이르되, 「현현顯現(드러나 나툼)」이라 함은, 뜬 근根[浮根]의 네 가지 티끌[四塵, 색色 ‧ 향香 ‧ 미味 ‧ 촉觸]이 드러나 나툼인가? 청정하고 미묘한 색근色根이 드러나 나툼인가? ‘이 육근六根이 진실과 망령됨[眞妄]과 선과 악[善惡]을 몰록 나툼’이라. 「선어善語(선한 말)」라 함은, 십선十善語의 말인가? 사제四諦의 말인가? 십이인연十二因緣의 말인가? 육도만행六度萬行의 말인가? 곧 이 ‘입 속에 성냄 없음이 항상 선善한 말을 설說함’이라.   「성도운운聖道云云(‘성인의 도’ 운운, [成聖道, 성인의 도과를 이루고])」 함은, 인천人天의 도道인가? 성문聲聞의 도道인가? 연각緣覺의 도道인가? 보살菩薩의 도道인가? 부처님의 도道인가? 곧 이 한 생각 바른 마음[一念正心] 이 ‘성인聖人의 도과道果를 이룸[成聖道]’이라. 「사어邪語(삿된 말)」라 함은, 악구惡口가 삿된 말인가? 양설兩舌이 삿된 말인가? 망어妄語가 삿된 말인가? 기어綺語가 삿된 말인가? 곧 이 ‘한 번 삿된 생각을 일으킨 마음’이 이 삿된 말[邪語]이라. 「악법惡法(악한 법)」이라 함은, 열 가지가 악법惡法인가? 오역五逆이 악법惡法인가? 칠차七遮가 악법惡法인가? ‘한 번 성냄을 일으킨 마음’이 큰 악법惡法을 서로 굴림[相轉]이라. 「지옥地獄」이라 함은, 팔한지옥八寒地獄인가? 팔열지옥八熱地獄인가? 십팔지옥十八地獄인가? 나아가 오무간지옥五無間地獄인가? 곧 이 ‘잠깐 오계五戒를 파破한 것’이 이 커다란 지옥地獄이라.
 
 
* 淨色根顯現耶:
청정하고 미묘한 색근色根이 드러나 나툼인가?
 
‧ 객이 묻기를, “사람이 육신肉身을 버리고 내생來生에 몸을 받고자 할 때에 그 형용은 어떠합니까?” 용성이 대답하기를, “사람이 죽을 때에 사대로 조직된 이 육체가 움직여서 운전하는 바람 기운과 따뜻한 불기운은 위로 떠서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차고 찬 몸뚱이만 남아 있어서 썩어서 물이 되고 흙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때는 싱그러운 신식만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신식神識은 비록 형체가 없지만, 「청정하고 오묘한 색근[淨妙色根]이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범부가 대단히 알기 어렵다. 모든 귀신이 다 청정하고 오묘한 색근을 의지하여 보고 듣고 아는 것이다. 비유로 말할 것이다. 그대가 필시 꿈을 꾸어 보았을 것이다. 몽중夢中에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것[見聞覺知]과 말하고 움직임[言語動作]과 일체가 생시와 어떠하던가?” 객이 대답하기를, “생시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용성이 말하기를, “그것이 청정하고 오묘한 색근을 빌려서 말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 [각해일륜覺海日輪] 용성선사龍城禪師. 

 
 
 
 
【善男子 人之身心 是佛法器 亦是十二部大經卷也】
 
선남자야 인지신심이 시불법기며 역시십이부대경권야어늘
 
[선남자善男子야, 사람의 몸과 마음이 이 부처님의 법기法器(법 그릇)이며 또한 이 십이부十二部의 큰 경권經卷이어늘]
 
 
註曰 是佛法器者 揀衆生法器也 佛法器如何 衆生法器如何 佛法器者 此心常生智慧 不忘菩提心者 是佛法器也 衆生法器者 念念常在五欲中 喜怒哀樂憎愛取捨之心 恒無間斷者也 十二部大經卷者 十二時中 見聞覺知 不昧自性 即是入息出息常轉十二部大經卷也
 
주註하여 이르되, 「시불법기是佛法器(이 부처님의 법기이며)」이라 함은, 중생衆生의 법기法器(법그릇)와 가려냄이라. 부처님의 법기法器(법그릇)는 어떠한 것이며 중생의 법기法器(법그릇)은 어떠한 것인가?  부처님의 법기[法器]라 함은, 이 마음이 항상 지혜智慧를 내어서 보리심菩提心을 잊지 않는 것, 이것이 부처님의 법기[佛法器]이라. 중생衆生의 법기法器라 함은, 생각 생각이 항상 오욕五欲 가운데에 있어서 희로애락喜怒哀樂(기쁨과 노여움, 슬프고 즐거움)하고 증애취사憎愛取捨(미워하고 사랑함, 취하고 버림)하는 마음이 항상하여 끊어짐이 없는 것이라. 「십이부대경권十二部大經卷(십이부의 큰 경권이어늘)」이라 함은, ‘열두 때(24시) 가운데에 보고 듣고 앎[見聞覺知]에 자성自性을 매昧하지 아니함(어둡지 아니함)’이, 곧 이 『숨 들이쉬고 내쉼[入息出息]에 항상 십이부十二部의 큰 경권經卷을 굴림』 이라. 
 
 
* 入息出息常轉十二部大經卷也: 
 숨 들이쉬고 내쉼에 항상 십이부十二部의 큰 경권經卷을 굴림이라.
 
 
‧ 『諸塵旣然, 則不越此念, 不破此塵, 入息不居陰界, 出息不涉萬緣, 常轉如是經, 百千萬億卷又何勞?』

모든 티끌이 이미 그러하다면, 이 념念을 넘어서지 않고 이 티끌을 부수지도 않고서, 숨을 들이쉴 때[入息]에 오온五蘊 십팔계十八界에 머물지 않고 숨을 내쉴 때[出息]에 온갖 인연因緣에 간섭되지 않아, 언제나 이와 같이 이렇게 경(經)을 굴리니(읽으니), 백천만억百千萬億 권卷이라 하더라도 또한 어찌 피로하랴?

-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제십오권第十五卷 보설普說.


‧『若約祖宗門下앳 一卷經하야 言之컨댄 則「入息出息에 常轉經커니」 豈待形於紙墨然後에사 以爲經哉리오』 

만약 조종문하祖宗門下의 일권경一卷經을 잡아 이르건댄, 들이쉬며 내쉼에 항상 경經을 전轉커니(굴리거니) 어찌 종이와 먹의 나타남을 기다린 후에야 경經이라 하리오? 

-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
 
 
 
 
 
【無始已來 轉讀不盡 不損毫毛 如來藏經 唯識心見性者之所能知 非諸聲聞凡夫所能知也】
 
무시이래로 전독부진하야 불손호모하나니 여래장경은 유식심견성자지소능지요 비제성문범부의 소능지야니라
 
[시작이 없이 옴으로 경을 읽음이 다함이 없어서 가는 터럭만큼도 잃지 않았나니, 여래장경如來藏經은 오직 마음을 알아 견성見性한 자가 알 수 있는 바요 모든 성문聲聞이나 범부凡夫의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니라]
 
 
註曰 如來藏經者 人天因果經 是如來藏經耶 小乘九部經 是如來藏經 大乘十二部經 是如來藏經耶 藏通別圓四敎 是如來藏經耶 日用四威儀內 是是非非知知者 活鱍鱍圓陀陀地 即是眞如來藏經也 唯識心見性者 如何見性 千七百公案處見性耶 十二部八萬大藏經處見性也 不朙此事 則滿目陳言 若朙這箇 即是五陰六入十二處十八界 無非見性境界也 何以故 性在眼而能見故 性在耳而能聞故 性在鼻而能齅故 性在舌而能味故 性在身而能觸故 性在意而能思想故 性在足而運奔故 性在手而執放故 性在口而能言語故 性在胎而爲名色故 性在世而名爲人故 乃至如是妙萬物而自在故 古人云 展則覆法界而無欠少 捲則在些子而能灰灰焉 知者名爲佛性 不知者名爲鬼神云云 是故非諸聲聞凡夫所能知也
 
주註하여 이르되, 「여래장경如來藏經」이라 함은, 인천人天의 인과경因果經이 이 여래장경如來藏經인가? 소승小乘의 구부경九部經이 이 여래장경인가? 대승大乘의 십이부경十二部經이 이 여래장경인가? 장통별원藏通別圓의 사교四敎가 이 여래장경인가? ‘일용日用하는 사위의四威儀(行住坐臥) 안에 시시비비是是非非할 줄 아는 놈을 알아[知知者] 활발발活鱍鱍하고 원타타圓陀陀한 지경地境’이 곧 이 진실한 여래장경如來藏經이라. 「유식심견성唯識心見性(오직 마음을 알아 성性을 본)」이라 함은, 어떤 것이 성性을 본 것인가? 천칠백공안처千七百公案處가 성性을 봄인가? 십이부十二部의 팔만대장경처八萬大藏經處가 성性을 봄[見性]이니, 이 일을 밝히지 못하면 진부한 말들만 눈에 가득할 것이며, 만약 이것을 밝히면 곧 이 오음五陰 ‧ 육입六入 ‧ 십이처十二處 ‧ 십팔계十八界가 성性을 보는 경계境界가 아님이 없음이라. 
 
왜 그런가하면, 성性이 눈에 있음에 능히 볼 줄 아는 까닭이요, 성性이 귀에 있음에 능히 들을 줄 아는 까닭이요, 성性이 코에 있음에 능히 냄새 맡을 줄 아는 까닭이요, 성性이 혀에 있음에 능히 맛볼 줄 아는 까닭이요, 성性이 몸에 있음에 능히 감촉할 줄 아는 까닭이요, 성性이 뜻에 있음에 능히 사상思想할 줄 아는 까닭이요, 성性이 발에 있음에 운동하고 달릴 줄 아는 까닭이요, 성性이 손에 있음에 잡고 놓을 줄 아는 까닭이요, 성性이 입에 있음에 능히 말할 줄 아는 까닭이라. 성性이 태胎에 있음에 이름을 색色이라 하는 까닭이요, 성性이 세상에 있음에 이름을 사람이라 하는 까닭이며, 나아가 이와 같이 묘妙히 만물萬物에 있으되 자재自在한 까닭이라. 고인古人이 이르되, 『펼치면 법계法界를 덮되 조금도 모자람이 없으며, 거두어들이면 사자些子(조그만 함)이로되 능히 회회灰灰함이로다. 아는 자는 이름을 ‘불성佛性’이라 하고, 알지 못하는 자는 이름을 ‘귀신鬼神’이라 한다.』 운운云云 하였으니, 이러한 까닭으로 모든 성문이나 범부가 알 수 있는 바가 아님이라. 
 
 
* 藏通別圓: 장통별원.
 
장교(藏敎)와 통교(通敎)와 별교(別敎)와 원교(圓敎)의 네 가지 교화방법이다. 하나는 장교(藏敎)이니, 장(藏)은 곧 함장(含藏)의 뜻이다. 이르자면 경율론(經律論)이 각자 일체의 문리(文理)를 함장한 까닭으로 이름이 장교이다. 둘은 통교(通敎)이니, 이르자면 앞 장교(藏敎)에 통하고 뒤 별교(別圓)에 통하는 까닭으로 이름이 통교이다. 셋은 별교(別敎)이니, 별은 곧 격별(隔別)이니 부동(不同)의 뜻이다. 이르자면 앞 장교(藏敎)와 다르고(別) 뒤 원교(圓敎)와 다른 까닭으로 이름이 별교이다. 넷은 원교(圓敎)이니, 원(圓)은 곧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이니, 이르자면 이 교(敎)가 뜻하는 중도中道의 도리는 ‘성상(性相)이 원융하고 사리(事理)가 무애하며 법마다 구족한지라’ 그러므로 이름이 원교圓敎이다.
 
 
* 活潑潑: 활발발.
 
 
‧ 『鱍鱍 고기 리 후 라』
발발鱍鱍은 물고기가 꼬리를 흔드는 모양이라.
 

  •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 제사第四.

 
 
‧ 『活潑潑  흐르는 믌겨레 비췬 비츨 닐온 마리니 미 聲色애 번득호 가비니라』
활발발活潑潑은 ‘절절 흐르는 물결에 비친 달빛’을 이른 말이니, ‘마음이 소리와 색상에 분명함’을 비유하니라.
 
- [몽산법어약록언해蒙山法語略錄諺解]
 
 
 
 
【善男子 讀誦此經 深解眞理 即知身心 是佛法器 若醉迷不醒 不了自心是佛法根本 流浪諸趣 墮於惡道 永沈苦海 不聞佛法名字】
 
선남자야 독송차경하여 심해진리하면 즉지신심이 시불법기어니 약취미불성하면 불료자심이 시불법근본하고 유랑제취하야 타어악도하고 영침고해하야 불문불법명자하리라
 
[선남자善男子야, 이 경經을 독송讀誦하여 깊이 진리眞理를 이해하면 곧 이 몸과 마음이 이 부처님의 법기法器임을 알 것이어니와, 만약 취한 듯 미혹하여 깨어있지 못하면 자기의 마음이 이 불법佛法의 근본根本임을 깨닫지 못하고 제취諸趣를 떠돌아다녀 악도惡道에 떨어지고 영원히 고해苦海에 빠져서 불법佛法의 이름과 글자조차 듣지 못하리라.]
 
 
註曰 深解眞理者 三句深解眞理耶 最初句深解眞理耶 末句深解眞理耶 即是能知凡夫事 是名深解眞理也 即知下乃至不醒者 所謂日用而不知者也 不了云云者 大慧所謂心外覔佛 癡㾠外邊走者也 白雲和尙云 重敎輕心者 天魔外道 黃面老子云 諸衆生迷頭狂走 似演若云 諸趣者 七趣耶 即是一起嗔心 則墮地獄趣 起慳貪心 則墮餓鬼趣 起癡心 則墮畜生趣故 苦海者 愛別離苦耶 怨憎會苦耶 求不得苦耶 五陰熾盛苦耶 即是日用無智慧 是大苦也 佛者 報身佛耶 化身佛耶 即是全無擧覺之心 不聞佛名字也
 
주註하여 이르되, 「심해진리深解眞理(깊이 진리를 이해하면)」이라 함은, 삼구三句가 진리를 깊이 이해함인가? 최초구最初句가 진리를 깊이 이해함인가? 말후구末後句가 진리를 깊이 이해함인가? 곧 이 ‘범부凡夫의 일을 능히 앎’이 이름하여 ‘이 깊이 진리를 이해함[深解眞理]’이라. 즉지하내지불성即知下乃至不醒(‘곧 알 것’에서부터 ‘깨어있지 못하면’까지, [即知身心 是佛法器 若醉迷不醒, 즉 이 몸과 마음(身心)이 이 부처님의 법기法器임을 알 것 이어니와, 만약 취한 듯 미혹하여 깨어있지 못하면])이라 함은, 이른바 『날마다 쓰면서도 알지 못한다』한 것이라. 「불료운운不了云云(깨닫지 못하여 운운, [不了自心是佛法根本流浪, 자기의 마음이 이 불법의 근본임을 깨닫지 못하여 떠돌아다님])」 함은, 대혜종고大慧宗杲가 이르신바『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어리석게 미쳐서 밖으로만 내달린다』 하신 것과, 백운화상白雲和尙이 이르되, 『교敎를 중히 여기고 마음[心]을 가벼이 여기는 자는 천마외도天魔外道이라』하신 것과, 황면노자黃面老子가 이르되, 『모든 중생이 머리를 미혹하여 미쳐 내달리는 것이 연야달다演若達多와 같다』하심을 말함이라.
 
『제취諸趣』라 함은, 칠취七趣인가? 곧 이는 한 번 성내는 마음[嗔心]을 일으키면 지옥취地獄趣에 떨어지고, 아껴서 탐내는 마음[慳貪心]을 일으키면 아귀취餓鬼趣에 떨어지며, 어리석은 마음[癡心]을 일으키면 축생취畜生趣에 떨어지는 까닭이라.  『고해苦海(고통의 바다)』라 함은, 애별리고愛別離苦(사랑하되 이별하는 고통)인가? 원증회고怨憎會苦(미워하되 만나야 하는 고통)인가? 구부득고求不得苦(구하되 얻지 못하는 고통)인가? 오음치성고五陰熾盛苦(오음이 치성한 고통)인가? 곧 이는 날마다 씀에 지혜智慧 없음이 이 커다란 고통이라. 『불佛(부처)』이라 함은, 보신불報身佛인가? 화신불化身佛인가? 곧 이 ‘각覺을 들어 일으키는 마음이 전혀 없어 부처라는 이름과 글자조차 듣지 못함[不聞佛名字]이라.
 
 
* 心外覔佛 癡㾠外邊走: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어리석고 미쳐서 밖으로만 내달린다.
 
 
‧ 『你若領略他知他解 盡是癡狂外邊走』
 
그대가 만약 타他를 짐작해서 알고 타他를 이해해서 알면 전부가 다 이 어리석게 미쳐서 밖으로만 내달리는 것이다. 
 
- [대혜보각선사보설大慧普覺禪師普說,  삼三]
 
 
‧ 『學道人 若馳求心不歇 縱與之眉毛廝結理會 何益之有 正是癡狂外邊走耳』
 
도를 배우는 사람이 만약 내달려 구하는 마음을 쉬지 못하면, 설령 그와 더불어 눈썹에 맺어두어 이치를 알게 한다 하더라도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바로 어리석게 미쳐서 밖으로만 내달릴 뿐이로구나.
 
-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 권제이십육卷第二十六]
 
 
‧ 『若未識得家 且業識茫茫儘在外邊走』
 
만약 자기의 집을 알지 못하면, 또 업식業識이 망망茫茫하여 줄곧 바깥으로만 내달림에 있는 것이다. 
 
-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사四]
 
 
‧ 『不知自性이 是真法身인 ᄃᆞᆯ ᄒᆞ며 不知自己靈知ㅣ 是真佛ᅟᅵᆫ ᄃᆞᆯ ᄒᆞ야 「心外예 覔佛ᄒᆞ야 波波浪走타가」 忽被善知識의 指示入路ᄒᆞ야 一念廻光ᄒᆞ야 見自本性ᄒᆞ니』
 
자성自性이 이 진실真實의 법신法身인 줄을 알지 못하며 자기自己의 영지靈知가 이 진실真實의 부처인 줄을 알지 못하여,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속절없이 다니다가」 홀연忽然히 선지식善知識의 들어갈 길 가리켜 보이심을 입어 한 생각에 광光을 돌이켜 제 본성本性을 보니. 
 
-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
 
 
* 重敎輕心者 天魔外道: 
교敎를 중重히 여기고 마음을 가벼이 여기는 자는 천마외도天魔外道이라.
 

『學道人 多於敎法上悟 不於心法上悟 雖歷劫修行 終不是本佛 若不於心悟 乃至於敎法上悟 卽輕心重敎 遂成逐塊 忘於本心 故但契本心 不用求法 心即法也』

도道를 배우는 사람이 많이들 교법敎法[經書] 위에서 깨달으려 하고 심법心法(마음법) 위에서 깨달으려 하지 않나니, 비록 역겁歷劫 동안을 수행修行한다 하더라도 끝내 이 ‘본래 부처[本佛]’는 아님이라. 만약 마음[心]에서 깨닫지 아니하고 나아가 교법敎法 위에서 깨달으려 한즉은, 곧 마음을 가벼이 여기고 교敎를 중히 여김이라 마침내 ‘흙덩이 쫓음[逐塊, 개가 흙덩이를 쫓는다]’을 이루어 본심本心을 잊어버리느니라. 이러한 까닭으로 다만 본심本心에 계합契合할 것이요 법法 구하기를 쓰지 말지니, 마음이 곧 법[心即法]이니라. 
 

  •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백운화상白雲和尙, 중中 황벽희운 선사黃蘗希運禪師의 말씀.

 
 
‧ 『故古德云 重敎輕心 雖歷多刦 盡作天魔外道』
고故로 고덕古德이 이르되, ‘교敎를 중히 여기고 마음[心]을 가벼이 여기면, 비록 다겁多劫을 지내오더라도 다 천마외도天魔外道를 지음이라’ 하였다.
 
- [선교석禪敎釋] 서산대사西山大師
 
 
* 迷頭狂走: 
머리를 미혹하여 미쳐서 내달림.
 
 
‧ 『室羅城中엣 演若達多ㅣ 忽於晨朝애 以鏡ᄋᆞ로 照面ᄒᆞ고 愛鏡中頭의 眉目이 可見ᄒᆞ고 嗔責己頭의 不見面目ᄒᆞ야 以爲魑魅라ᄒᆞ야 無狀히 狂走ᄒᆞ니 於意云何오 此人이 何因ᄒᆞ야 無故狂走오 富樓那ㅣ 言호ᄃᆡ 是人이 心狂이라 更無他故ㅣ니ᅌᅵ다』
 
실라벌室羅筏 성중城中에서 연야달다演若達多가 문득 이른 아침에 거울로 얼굴을 비추어 보고 거울 가운데에 머리의 눈썹과 눈이 가히 볼만하다고 사랑하고서, 자기 머리의 면목(얼굴과 눈) 보지 못함을 성내고 꾸짖어서 이매魑魅(도깨비)라 하여 끝없이 미쳐 내달리니, 네 뜻에 어떠하냐? 이 사람은 어디를 인因하여 까닭 없이 미쳐서 달리느냐? 부루나富樓那가 말씀드리되, 이 사람은 마음이 미친 것이라, 다시 다른 연고緣故가 없사옵니다. 
 
 
‧ 『狂心自歇 歇即菩提』
 
미친 마음[狂心]이 그대로 쉬면, 쉰즉 보리菩提라.
 

  •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 권사卷四.

 
 
* 諸趣: 제취.
 
중생衆生이 육도윤회六道輪廻하는 곳으로, 「천상天上과 인간人間과 아수라阿修羅와 지옥地獄과 아귀餓鬼와 축생畜生」의 육도六道가 있다. 
 
 
 
 
【爾時 五百天子 在大衆中 聞佛所說 得法眼淨 皆大歡喜 即發無等等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無礙菩薩 復白佛言 世尊 人之在世 生死爲重 生不擇日 時至即生 死不擇日 時至即死】  
 
이시에 오백천자가 재대중중하야 문불소설하고 득법안정하야 개대환희하며 즉발무등등아누다라삼먁삼보리심하니 무애보살이 부백불언하되 세존이시여 인지재세에 생사위중이나 생불택일이라 시지즉생하고 사불택일이라 시지즉사어늘
 
[그때 오백천자五百天子가 대중大衆 가운데에 있어 부처님의 설하심을 듣고 법안정法眼淨을 얻어서 모두 크게 환희하며 곧 견줄 바 없는 아누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발發하니, 무애보살無礙菩薩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어 말씀드리되, 세존世尊이시여, 사람이 세상에 있음에 나고 죽는 일이 중대함이 되나, 나는 것도 날을 택하지 못함이라 때가 이르러야 곧 나며, 죽는 것도 날을 택하지 못함이라 때가 이르러야 곧 죽거늘]
 
 
註曰 五百天子者 日天子耶 月天子耶 即是五蘊皆空 變成五如來 爲五百天子也 何以故 色蘊空即是妙色身如來也 受蘊空即是成所作智如來 想蘊空即是妙觀察智如來 行蘊空即是平等性智如來 識蘊空即是大圓鏡智如來也 在大衆中者 即是五如來在五蘊中也 聞佛云云者 常覺故 謂之大覺尊也 得法眼淨者 即早淨六根也 六根如何淨耶 但見但聞 但齅但味 但觸但思 本知見 不立妄知見 方可謂之淨六根也 歡喜者 曠劫未朙之事 一見㪅不疑 是大歡喜也 無礙菩薩者 當機㪅問生死法耶 表法則 不隨客塵煩惱也 世尊者 覺今是而昨非者也 生死爲重者 人間生死耶 天堂生死耶 一期生死耶 刹那生死耶 即是假和合乍起 名曰生 假和合即有滅 名曰死也 生不云云者 五蘊成謂之生 五蘊謝謂之死也
 
주註하여 이르되, 「오백천자五百天子」라 함은, 일천자日天子인가? 월천자月天子인가? 곧 이는 오온五蘊이 다 공空함에 다섯의 여래如來로 변하여 오백五百의 천자天子가 됨이라. 왜 그런가하면, 색온色蘊이 공空한즉 이 묘색신여래妙色身如來요, 수온受蘊이 공空한즉 이 성소작지여래成所作智如來며, 상온想蘊이 공空한즉 이 묘관찰지여래妙觀察智如來요, 행온行蘊이 공空한즉 이 평등성지여래平等性智如來며, 식온識蘊이 공空한즉 이 대원경지여래大圓鏡智如來이라. 「재대중중在大衆中(대중 가운데에 있어)」이라 함은, 곧 이 다섯 여래如來가 오온五蘊 가운데에 있음[在]이라. 「문불운운聞佛云云(부처님을 듣고 운운, [聞佛所說, 부처님의 설하시는 바를 듣고)」 함은, 항상 각覺하는 까닭으로 그것을 일러 ‘대각존大覺尊’이라. 「득법안정得法眼淨, 법안정을 얻어서」이라 함은, 곧 『일찍이 육근六根을 깨끗이 함』이라. 육근六根은 어떻게 하는 것이 깨끗이 함인가? 다만 보고, 다만 들으며, 다만 맡고, 다만 맛보며, 다만 감촉하고, 다만 생각하는 본래의 지견知見이 망령된 지견을 세우지 않아야, 바야흐로 가히 ‘육근을 깨끗이 한다[淨六根]’고 이를 수 있음이라. 
 
「환희歡喜」라 함은, 광겁曠劫동안에 밝히지 못한 일이 ‘한 번 봄에 다시 의심하지 않음’이니, 이 커다란 환희[大歡喜]이라. 「무애보살無礙菩薩」이라 함은, 설법대중 가운데에 다시 생사법生死法을 묻는 이 인가? 법法으로 드러내자면, ‘객진번뇌客塵煩惱를 따르지 않음’이라. 「세존世尊」이라 함은, 『지금을 깨달음이 옳고 지난날은 그릇됨이라[覺今是而昨非]』한 것이라. 「생사위중生死爲重(나고 죽는 일이 중대함이 되나)」이라 함은, 인간人間의 생사生死인가? 천당天堂의 생사生死인가? 일기一期(한 생애)의 생사死死인가? 찰나刹那의 생사生死인가? 곧 이 임시로 화합和合한즉 잠시 일어남을 이름하여 ‘생生’이라 하고, 임시로 화합和合하여 있음[有]이 멸滅함을 이름하여 ‘사死’라 함이라. 「생사운운生死云云(‘생生과 사死를’ 운운, [生不擇日 時至即生 死不擇日 時至即死, 남도 날을 택하지 못함이라 때가 이르러야 곧 나며, 죽음도 날을 택하지 못함이라 때가 이르러야 곧 죽거늘]) 」 함은, 오온五蘊이 이루어지면 그것을 일러 ‘생生’이라 하고, 오온五蘊이 물러가면 그것을 일러 ‘사死’라 함이라.
 
 
* 本知見 不立妄知見: 
본래의 지견이 망령된 지견을 세우지 않아야.
 
 
‧ 『是故로 汝ㅣ 今에 「知見에 立知ᄒᆞ면 即無明本이오 知見에 無見ᄒᆞ면 斯即涅槃」無漏眞淨이니』
 
이런 까닭으로, 네 이제 「지견知見에 지知를 세우면 곧 무명無明의 근본根本이요, 지견知見에 견見이 없으면 이 곧 열반涅槃」의 무루진정無漏眞淨이니   
 
-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 권오卷五
 

 

‧ 『由知見에 立知ᄒᆞ야 妄塵이 瞥起ᄒᆞᆯᄊᆡ 故로 有無明ᄒᆞ니 若知見에 無見ᄒᆞ면 則智性이 眞淨ᄒᆞ야 復還妙湛ᄒᆞ야 洞徹精了ᄒᆞ리니 名이 無明滅이라』
 
지견知見에 지知 세움을 말미암아 거짓 티끌이 문득 일어날새 무명無明이 있나니, 만약 지견知見에 견見이 없으면 지智의 성性이 진실로 정淨하여 묘담妙湛에 돌아가 사무쳐 정료精了하리니 이름이 무명無明이 멸滅함이라
 

  • <법화경언해法華經諺解> 삼권三卷

 
 
○ 「知見立知, 即無明本, 知見無見, 斯即涅槃」
파능엄破楞嚴(우안선사遇安禪師)이라는 선사는 이 구절을 문득 아래와 같이 새기고서 깨달음을 얻었다. 
 
『知見立, 知即無明本, 知見無, 見斯即涅槃』
 
지견知見을 세우면 지知가 곧 무명無明의 근본根本이요, 
지견知見이 없으면 보는 이것이 곧 열반涅槃이라.
 
 
* 一見㪅不疑:
한 번 보고서 다시 의심하지 않음.
 
 
‧ 『若是過量漢이면 一見便不疑어니와 若非過量漢이면 未免暗思量ᄒᆞ리라』

만약 이 헤아림에 넘어선 사람[過量漢]이면 한 번 봄에 곧 의심疑心을 아니하려니와, 만약 헤아림에 넘은 놈이 아니면 그윽이 사량思量함을 면免하지 못하리라.
 

  • <금강경삼가해언해金剛經三家解諺解> 이권二卷.

 

 
 
 
【何因殯葬 即問良辰吉日 然始殯葬 殯葬之後 還有妨害 貧窮者多 滅門者不少 唯願世尊 爲諸邪見無知衆生 說其因緣 令得正見 除其顚倒】
 
하인빈장하야 즉문양신길일하고 연시빈장하되 빈장지후에 환유방해하야 빈궁자다하고 멸문자불소닛고 유원 세존이시여 위제사견무지중생하야 설기인연하야 령득정견하고 제기전도하소서
 
[무엇으로 인하여 염하고 장사 지냄에 곧 좋은 때와 좋은 날을 묻고, 비로소 염하고 장사 지내되 염하고 장사 지낸 후에는 도리어 장애와 해로움이 있어 가난하여 궁핍한 이가 많고 가문이 멸망한 이가 적지 않나니잇고? 오직 원하옵나니 세존이시여, 모든 사견邪見으로 무지無知한 중생衆生을 위하시어 그 인연因緣을 설하시어 정견正見을 얻게 하시고 그 전도顚倒됨을 없애주소서]
 

 
註曰 殯葬者 四大各歸本原也 吉日者 轉法輪度衆生 入涅槃之時日耶 透得格外禪之時日耶 即是反本還源之時吉日也 妨害者 聞法時有妨害耶 思法時有妨害耶 修法時有妨害耶 即是客塵煩惱 是眞大妨害也 貧窮者 無衣服貧窮耶 即是無慧功德 是大貧窮也 滅門者不少者 五戒十善法門耶 四諦十二緣法門耶 六度萬行法門耶 即是自性法門數滅者不少也 世尊者 世出世間爲大導師故 物無與等故 獨出五十七位故 有大智慧故 三界獨尊故 有大悲願力故 有大福德力故 三乘聖贒中無比尊 故曰世尊也 邪見者 八邪見耶 十邪見耶 一起妄心 即是大邪見也 無知衆生者 因果法無知耶 三乘法無知耶 一乘法無知耶 最上乘法無知耶 即是無方便慧 是無知也 衆生者 二十五有是衆生耶 人畜是衆生耶 天龍八部是衆生耶 五十六位是衆生耶 即是自心衆生也 說其因緣者 說其正因耶 說其了因耶 說其緣因耶 即是一大事之因緣也 令得正見者 三綱五常八條目之正見令得耶 五戒十善之正見令得耶 四諦十二緣之正見令得耶 六度萬行之正見令得耶 即是自性佛道之正見也 正因佛性開示 了因佛性悟入 是眞令得正見也 除其顚倒者 性理卒暴 是顚倒耶 心性燥動 是顚倒耶 樂着五欲 是顚倒耶 即是一起嗔心 是大顚倒也 一念忍辱時 曠劫顚倒 如氷消湯也
 
주註하여 이르되, 「빈장殯葬(염하고 장사지내어)」이라 함은, 사대四大(地水火風)가 각각 본원本原으로 돌아감이라. 「길일吉日(운이 좋은날)」이라 함은, 법륜法輪을 굴려 중생衆生을 제도하여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시일時日(시간과 날짜)인가? 격외선格外禪을 투철히 깨달은 시일時日인가? 곧 이 ‘뿌리로 돌이켜 근원根源으로 돌아오는[反本還源] 때’가 길일吉日이라. 「방해妨害(장애와 해로움)」라 함은, 법法을 들을 때 방해가 있음인가? 법法을 사유思惟할 때 방해가 있음인가? 법法을 닦을 때 방해가 있음인가? 곧 이 객진번뇌客塵煩惱가 이 진실로 큰 방해妨害이라. 「빈궁貧窮(가난으로 궁핍한)」이라 함은, 의복衣服 없음이 이 빈궁인가? 곧 이 혜慧의 공덕功德 없음이 이 크게 가난하여 궁핍함[貧窮]이라. 「멸문자불소滅門者不少(가문이 멸망한 이가 적지 않나니잇고)」이라 함은, 오계五戒와 십선법十善法의 문門인가? 사제四諦와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의 문門인가? 육도만행법六度萬行法의 문門인가? 곧 이 자성법문自性法門이 멸滅한 자의 수가 적지 않음이라. 「세존世尊」이라 함은,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의 대도사大導師가 되시는 까닭이요, 물物이 더불어 대등한 이가 없는 까닭이며, 홀로 오십칠위五十七位를 뛰어나신 까닭이요, 대지혜大智慧가 있으신 까닭이며, 삼계三界에 홀로 존귀하신 까닭이요, 대비大悲의 원력願力이 있으신 까닭이며, 대복덕大福德의 힘이 있으신 까닭이요, 삼승三乘의 성현聖贒 가운데에 존귀함을 견줄 이가 없으신 까닭으로 이르되 ‘세존世尊’이시라. 「사견邪見」이라 함은, 여덟 가지 사견邪見인가? 열 가지 사견邪見인가? 한 번 망심妄心을 일으킴이 곧 이 큰 사견邪見이라. 
 
「무지중생無知衆生(무지無知한 중생衆生)」이라 함은, 인과법因果法에 무지無知함인가? 삼승법三乘法에 무지無知함인가? 일승법一乘法에 무지無知함인가? 최상승법最上乘法에 무지無知함인가? 곧 이 방편方便의 혜慧가 없음이 이 무지無知함이라. 「중생衆生」이라 함은, 이십오유二十五有가 이 중생衆生인가? 인간人間과 축생畜生이 이 중생衆生인가? 천룡팔부天龍八部가 이 중생衆生인가? 오십육위五十六位가 이 중생衆生인가? 곧 이 자심自心의 중생衆生이라. 「설기인연說其因緣(그 인연을 설하시어)」이라 함은, 그 정인正因[法身]을 설함인가? 그 료인了因[般若]을 설함인가? 그 연인緣因[解脫]을 설함인가? 곧 이 일대사一大事의 인연因緣이라. 「영득정견令得正見(바른 견해를 얻게 하시고)」이라 함은, 삼강三綱(君臣, 父子, 夫婦)과 오상五常(仁義禮智信)의 여덟 조목條目의 정견正見을 얻게 함인가? 오계五戒와 십선十善의 정견을 얻게 함인가? 사제四諦와 십이인연十二因緣의 정견을 얻게 함인가? 육도만행六度萬行의 정견正見을 얻게 함인가? 곧 이 자성불도自性佛道의 정견正見이라, ‘정인正因의 불성佛性(법신)으로 열어보이고[開示] 료인了因의 불성佛性(반야)으로 깨달아 들게 함[悟入]이니, 이것이 진실로 정견正見을 얻게 함이라. 「제기전도除其顚倒(그 전도됨을 없애주소서)」라 함은, 성리性理를 졸포卒暴함이 이 전도顚倒인가? 심성心性이 조급히 움직임[燥動]이 이 전도인가? 오욕五欲을 집착하여 즐김이 이 전도顚倒인가? 곧 이 한 번 성내는 마음 일이킴이 이 큰 전도顚倒요, 한 생각 욕辱됨을 참는[忍辱]때가 광겁曠劫의 전도顚倒가 끓는 물에 얼음 녹듯 함이라. 
 
 
* 物無與等故: 
물物이 더불어 대등한 이가 없는 까닭이며.
 
 
‧ 『無等等者ᄂᆞᆫ 謂物이 無與等ᄒᆞ샤ᄃᆡ 而能與物와 爲等이니 此ᄂᆞᆫ 得妙圓通ᄒᆞ샤 上同下合之德也ㅣ라』
 
‘무등등無等等’은 이르되, 물物이 등等[對等]한 것이 없으되 능能히 물物과 등等한 것이니, 이는 묘원통妙圓通을 얻으시어 위로 같으며[上同, 위로는 부처에 감感하고] 아래로 합한[下合, 아래로는 중생에 응應한]이라. 
 
-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 권육卷六
 
 
* 說其正因耶 說其了因耶 說其緣因耶:
그 정인正因을 설함인가? 그 료인了因을 설함인가? 그 연인緣因을 설함인가?
 
 
‧ 『慧身即般若德 了因性開發 玅法身即法身德 正因性開發 應一切即解脫德 即緣因性開發 如此三身發得本有故言不由他悟』
 
혜신慧身은 곧 반야般若의 덕德이니 요인了因의 성性[相]으로 개발開發하고, 법신妙法身은 곧 법신法身의 덕德이니 정인正因의 성性[體]으로 개발하며, 응일체應一切(일체에 응함)란 곧 해탈解脫의 덕德이니 곧 연인緣因의 성性[用]으로 개발한다. 이와 같은 삼신三身이 본유本有를 개발開發하여 얻는지라, 그러므로 이르되 「타인을 말미암아 깨침이 아니라」 하였다.
 
- [사교의집해四教儀集解]
 
 
⦁ 정인성正因性: 정인불성正因佛性[法身]이니, 삼인불성三因佛性의 하나이다. 이르자면 일체중생이 모두 이 성性을 갖추었으나 다만 각覺을 등지고 진塵에 합하여 늘 번뇌에 덮혀 장애되는 바이니, 만약 성性을 따라서 수행하면 곧 능히 생사를 초탈超脫하고 열반에 깨달아 들어가 부처님이 증득하신 바와 둘 없고 차별 없는 것이다. 
 
⦁ 요인성了因性: 요인불성了因佛性[般若]이니, 삼인불성三因佛性의 하나이다. 정성正性을 요달하는 각지覺智이다.
 
⦁ 연인성緣因性: 연인불성緣因佛性[解脫]이니, 삼인불성三因佛性의 하나이다. 연緣은 곧 돕는다는 뜻이니 각지(覺智)를 돕는 공덕의 선근이다.
 
 
* 性理卒暴: 성리性理를 졸포卒暴함이.
 
‧ 『不戒視成謂之暴者 謂不宿戒而責目前成 謂之卒暴』
 
‘불계시성위지포不戒視成謂之暴’라 함은, ‘미리 경계하지도 않고서 목전의 성과만을 요구하는 것’을 일러서 ‘졸포卒暴’라 한다. (성리性理를 깨닫고자 함에 평상시 오래도록 자신을 경계하여 살피지 아니하고 목전에 성리의 이치가 문득 드러나기만을 바람) 
 
- [논어주소論語注疏]
 
 
 
 
【佛言 善哉善哉 善男子 汝實甚能問於衆生 生死之事 殯葬之法 汝等諦聽 當爲汝說 智慧之理 大道之法】
 
불언 선재선재라 선남자야 여실심능문어중생의 생사지사와 빈장지법하니 여등제청하라 당위여설 지혜지리와 대도지법하리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선재善哉 선재善哉라 선남자善男子야, 그대가 실로 심히 중생衆生의 죽고 사는 일과 염하여 장사지내는 법에 대하여 물으니 그대는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지혜智慧의 이치와 대도大道의 법法을 설說하리라]
 
 
註曰 善哉云者 滿口許他也 生死者 凡夫 分段生死 緣覺聲聞 變易生死 佛菩薩 意生身生死也 智慧者 何爲智慧 智爲體 慧爲用也 此心性 冲虛妙粹 炳煥靈朙 無去無來 冥通三際 不生不滅 湛然常寂者也 用者 虛空不解說法聽法 此肉段心 不解說法聽法 今此說法者 慧用也 聽法者 慧用也 見聞覺知慧用也 是是非非 把得便用 皆慧用也 大道之法者 如何是大道 即是應無所住 以生其心 眞大道也
 
주註하여 이르되, 「선재운善哉云(선재운운, [善哉善哉, 좋고 좋구나])」 함은, 남음이 없이 상대를 허락함이라. 「생사生死」라 함은, 범부凡夫의 분단생사分段生死와 연각緣覺과 성문聲聞의 변역생사變易生死와 불보살佛菩薩의 의생신생사意生身生死이라. 「지혜智慧」라 함은, 무엇이 지혜智慧인가? 지智는 체體가 되고 혜慧는 용用이 됨이니,  이 ‘심성心性(지智의 체體)’은 깊고 비었으며 묘妙하여 섞임이 없으며[冲虛妙粹] 넓고도 크며 신령하게 밝으며[炳煥靈朙] 감이 없고 옴이 없으며[無去無來] 그윽이 삼제三際(과거, 현재, 미래)에 통通하였으며[冥通三際], 남이 없고 멸함이 없으며[不生不滅] 담담히 맑아 항상 고요한[湛然常寂] 것이라. ‘용用[慧의 用]’이라 함은, 허공虛空은 법을 설하거나 법을 듣지 못하며[不解說法聽法] 이 육단심肉段心(육체)도 법을 설하거나 들을 수 없으니, 지금 이 법法을 설說하는 것이 ‘혜慧의 용用’이요, 법法을 듣는 것이 ‘혜慧의 용用’이요, 보고 듣고 아는 것[見聞覺知]이 ‘혜慧의 용用’이요, 옳고 그름을 가리고[是是非非] (경계 위에서) 곧 잡아 쓰는 것[把得便用]이 다 ‘혜慧의 용用’이라. 「대도지법大道之法(대도의 법을)」이라 함은, 어떤 것이 이 대도大道인가? 곧 이 『응당 머무는 바 없음으로 그 마음을 냄[應無所住 以生其心(而生其心)]』이 진실한 대도大道이라. 
 
 
 
* 此心性 冲虛妙粹 炳煥靈朙:
이 심성心性은(지智인 체體라 함은) 깊고 비었으며 묘妙하여 섞임이 없으며 넓고도 크며 신령하게 밝으며.
 
 
‧ 『旣云離相發心이라 ᄒᆞ시니 心與相과 相去ᄂᆞᆫ 多少오 「冲虛妙粹ᄒᆞ며 廣大靈明ᄒᆞ야」 離諸幻妄이 名之爲心이오』 

이미 이르시되, “상相을 여의어 발심發心하라” 하시니, 마음과 상相이 서로 벌어짐은 얼마인고? 깊으며 비며 묘妙하며 수粹하며 넓으며 크며 령靈하며 밝아, 여러 환망幻妄을 여읨을 이름하여 ‘마음’ 이라 하고.

  •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

 
 
* 冥通三際:
그윽이 삼제三際에 통하였으며.
 
‧ 『圭峯云 心也者 「冲虛妙粹炳煥靈明 無去無來 冥通三際 非中非外 洞徹十方 不滅不生 豈四山之可害 離性離相 奚五色之能盲 」』 
 
규봉이 이르시되, ‘마음이라 하는 것은 『비고 묘하며 정밀精密하고 빛나고도 실령神靈하야 밝도다. 무거무래無去無來라 「그윽이 삼제三際에 통通하고」 비중비외非中非外라 훤출이 시방十方에 사모쳤도다. 불생불멸不滅不生이라 어찌 사산四山(생로병사生老病死)이 가히 해롭게 하며 성품性品을 떠나고 상相도 떠난지라 어찌 오색五色이 능히 눈 멀리리오?』’
 
-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국사普照國師.
 
 
* 虛空不解說法聽法:
허공은 법을 설하거나 법을 듣지 못하며.
 
 
‧ 『何名爲智慧오. 「虛空이 不解說法聽法하며 四大가 不解說法聽法하나니」 只今目前에 歷歷孤明호되 勿形叚者이야 能說法聽法也하나니라. 此說聽底一叚孤明은 輝天鑑地하며 曜古騰今하며 行住坐卧語默動靜하는 一切時一切處에 昭昭靈靈하야 了然常知하나니 此가 所以得名爲般若也이라.』

어찌 이름을 지혜智慧라 하느냐? 「허공虛空이 법法 설하며 법法 들음을 능能히 못하며, 사대四大가 법法 설하며 법法 들음을 능能히 못하나니」, 오직 지금 눈앞에 환하고 환하게 외로이 밝되 형상形相 못할 것이 능能히 법法을 이르며 법法을 듣나니라. 이 ‘설하며 들으며’ 하는 한 무더기 고명孤明은, 하늘을 비추이며 땅을 비추이며, 옛에 빛났으며 지금에도 솟아나며, 다니며 가만히 있으며 앉으며 누우며, 말하며 잠잠하며 움직이며 고요한, 일체一切 시절時節과 일체一切 곳에 환하며 령靈하여 사무쳐 항상 아나니, 이것이 써 이름을 얻되 ‘반야般若’라 한 바이라. 
 

  •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

 
 
‧ 『四大ㅣ 「不解說法聽法ᄒᆞ며 虛空이 不解說法聴法고」 只汝目前에 歷歷孤明ᄒᆞᆫ 勿形段者ㅣᅀᅡ 始解說法聴法이라 ᄒᆞ시니 所謂勿形段者ᄂᆞᆫ 是諸佛之法印이며 亦是汝의 本來心也ㅣ니 則佛性이 現在汝身커니 何假外求ㅣ리오』
 
‘사대四大가 설법說法과 청법聴法을 할 줄 모르고 허공虛空이 설법說法과 청법聴法을 할 줄 모르며, 오직 네 눈앞에 분명히 홀로 밝아 형상 못하는 것이어야 설법說法과 청법聽法을 할 줄 아느니라.’ 하시니, 이른바 ‘형상 못할 것’은 이 제불諸佛의 법인法印이며 또한 너의 본래本來의 심心이니, 불성佛性이 네 몸에 나타나 있거니 어찌 밖을 향하여 구하리오?
 

  •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

 
 
 
 
【夫天地廣大淸 日月廣長朙 時年善善美 實無有異 善男子 人王菩薩 甚大慈悲 愍念衆生 皆如赤子 下爲人主 作民父母 順於俗人 敎民俗法 遺作曆日 班下天下】
 
부천지광대청하고 일월광장명하야 시년선선미하며 실무유이니라 선남자야 인왕보살이 심대자비하야 민념중생하되 개여적자하야 하위인주하야 작민부모하되 순어속인하여 교민속법하며 유작력일하사 반하천하하며
 
[대저 천지天地는 넓고도 커서 맑고 일월日月은 널리 오래도록 밝아서, 시간마다 해마다 선善이 선善하여 아름다우며 실상實相은 다름이 있음이 없느니라. 선남자善男子야, 인왕보살人王菩薩이 심히 크게 자비慈悲로워 중생衆生을 어여삐 여기되 모두를 마치 갓난아이와 같이하여 내려가 사람의 주인이 되고 백성의 부모가 되시되, 세속 사람들에게 순응하여 백성들에게 세속의 법을 가르치며 력일曆日을 지어 남겨서 천하天下에 내려 반포頒布하였으며]
 
 
註曰 天者 三界諸天耶 旣爲廣大淸 則即是逍遙自在之義天也 地者 堅碍之地耶 即是心地也 廣大淸者 橫遍十方 窮三際之義也 日月者 虛空之日月耶 即是根後二智也 時年者 十二時耶 即是時時念念中乃至無量刼中 善惡無記三性中 這箇無非善善美也 實無有異者 實相圓通性 一切萬法 常不變易也 人王菩薩者 四輪王是耶 十六國王是耶 五百國王是耶 十萬國王是耶 即是正直菩提心 是眞人王菩薩也 甚大慈悲者 揀凡少心也 赤子者 三尺孩童 謂之赤子耶 心小非大 謂之赤子也 愍念者 惻隱之心也 人主者 攝化衆生之心爲人主也 作民父母者 爲産人之父母耶 爲養育之父母耶 爲法身之父母耶 即是常生智慧方便 是大父母也 順於俗人者 率妻子爲俗人耶 即是不斷愛情 是爲俗人也 敎民俗法者 鎭定邦國善政化民 是俗法耶 決斷刑獄 是俗法耶 春畊夏耨 秋收冬藏 是俗法耶 凡所有相 皆是俗法也 又敎民也 遺作曆日者 黃粧曆耶 靑粧曆耶 白粧曆耶 不昧十二時 即是遺作曆日也 班下天下者 分與諸人家耶 了知節月 即是眞班下天下也
 
주註하여 이르되, 「천天(하늘)」이라 함은, 삼계三界(欲界, 色界, 無色界)의 모든 하늘인가? 이미 넓고도 크게 맑다면 곧 이 소요자재逍遙自在한 의천義天[뜻의 하늘, 理]이라. 「지地(땅)」라 함은, 굳어서 막힌 땅인가? 곧 이 심지心地[마음 땅]이라. 「광대청廣大淸(넓고도 크게 맑음)」이라 함은, ‘횡橫(공간)으로 시방十方에 두루 하고, 수竪(시간)로 삼세三世에 다한다’는 뜻이라. 「일월日月(해와 달)」이라 함은, 허공虛空의 일월日月인가? 곧 이 근본지根本智[月]와 후득지後得智[日]인 두 가지 지智이라. 「시년時年」이라 함은, 열 두 때[十二時, 24시]인가? 곧 이 시간 시간 생각 생각 가운데와 나아가 한량없는 세월 가운데와 선善 ‧ 악惡 ‧ 무기無記의 삼성三性 가운데가 이[這箇] ‘선선미善善美’ 아님이 없음이라. 「실무유이實無有異(실상은 다름이 있음이 없느니라)」라 함은, ‘실상實相의 원통圓通한 성性이니, 일체一切의 만법萬法이 항상하여 변하지 않음’이라. 「인왕보살人王菩薩」이라 함은, 사륜왕四輪王(금륜왕, 은륜황, 동륜왕, 철륜왕)인가? 십육국왕十六國王인가? 오백국왕五百國王인가? 십만국왕十萬國王인가? 곧 이 정직正直한(바르고 질직한) 보리심菩提心이 이 진실한 인왕보살人王菩薩이라. 「심대자비甚大慈悲(심히 커다란 자비)」라 함은, 범부의 작은 마음과 구별함이라. 
 
「적자赤子(갓난아이)」라 함은, 젖먹이 어린아이를 일러서 적자赤子라 함인가? 마음이 작아서 크지 못하니 그것을 일러 적자赤子라 함이라. 「민념愍念(어여삐 여겨)」이라 함은, 측은惻隱한 마음이라. 「인주人主(사람의 주인)」라 함은, 중생의 마음을 거두어 교화함이 사람의 주인[人主]됨이라. 「작민부모作民父母(백성의 부모가 되시되)」라 함은, 사람을 낳는 부모가 됨인가? 양육養育하는 부모父母가 됨인가? 법신法身인 부모父母가 됨인가? 곧 이 항상 지혜智慧의 방편方便을 낳음이 이 큰 부모父母이라. 「순어속인順於俗人(세속 사람들에게 순응함)」이라 함은, 처자妻子를 거느린 속인俗人이 됨인가? 곧 이 애정愛情을 끊지 않음이 이 속인俗人 됨이라. 「교민속법敎民俗法(백성에게 세속의 법을 가르침)」이라 함은, 나라를 안정되게 진압하고 국가가 백성을 잘 다스려 교화하는 것이 이 세속의 법法인가? 형벌과 감옥을 결단하는 것이 이 세속의 법인가? 봄에 밭 갈고 여름에 김매며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저장하는 것이 이 세속의 법인가? ‘무릇 있는 바의 상相은 다 이 세속의 법[俗法]이요, 또 백성을 가르침[敎民]’이라. 「유작력일遺作曆日(력일을 지어 남겨서)」이라 함은, 누른 표지의 책력인가? 푸른 표지의 책력인가? 흰 표지의 책력인가? 열두 때 가운데에 매昧하지(어둡지) 않음이 곧 이 력일을 지어 남김[遺作曆日]이라. 「반하천하班下天下(천하에 내려 반포頒布하였으며)」라 함은, 모든 사람의 집마다 나누어 줌인가? 절월節月을 깨달아 앎이 곧 이 진실로 천하에 내려 반포頒布(널리 펴서 알도록)함이라. 
 
 
*  橫遍十方 窮三際: 
횡橫으로 시방十方에 두루하고, 수로 삼세三世에 다한다.
 
공간적[橫, 가로]으로 시방十方에 두루하고, 시간적[竪, 세로]으로 삼세三世(과거 현재 미래)에 다함. 「무량광無量光 무량수無量壽」.
 
 
* 善善美: 선선미
선善이 선善하여 아름다움.
 
‧ 『葢人之性命 於天本太和所保合 不二不雜純粹以精 所以曰善善美辭也』대개 사람의 성명性命은, 하늘의 근본인 태화太和를 보합保合한 바이니, 둘이 아니어서 잡되지 않은 순수한 정精[眞精]으로써, 이르되 ‘선선미善善美’라 말씀하신 까닭이라. 
 
- [주역함서약주周易函書約註] 권일卷一.
 
 
‧ ‘태화太和’는 대립된 음양陰陽의 기氣가 통일된 기氣이다.
 
- 이경지李鏡池 [주역탐원周易探源] 중화서국中華書局, 1978.
 
 
‧ 건乾괘 단전彖傳에서는, 『건도乾道가 변화함에 각기 성명性命을 바르게 하고, 태화太和를 보합保合하니, 바르게 함에 이롭다(乾道變化, 各正性命, 保合太和, 乃利貞)』라고 하였다. 이는 건도乾道의 굳세고 강건함은 양陽으로, 건도乾道를 얻으면 각자 자기의 규정성을 갖게 되지만 음유陰柔의 도움을 받아야 굳세면서도 포악하지 않고, 강건하면서도 꺾이지 않아, 고도의 화해和諧 상태에 도달할 수 있기에, 바르고 굳세게 함에 이롭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태화太和를 보합保合함이니 바르게 함에 이롭다(保合太和, 乃利貞)’이다. 그러기에 역대의 역학가들은 모두 태화太和를 사물 발전의 가장 좋은 상황으로 여겼다. 예컨대 송대宋代의 역학가인 장재張載가 “태화太和, 소위 도道는 부침浮沉, 승강升降, 동정動靜 등의 서로 감응하는 성질[性]을 내포하고 있어, 이것이 상호 뒤섞여[絪縕] 상탕相蕩(서로 움직이게) 하며, 이기고 지고[승부勝負], 굽히고 펼침[굴신屈伸]의 시작을 만든다.… 도道를 말하는 자가 이와 같으면 도道를 안다고 할 수 있고, 역易을 공부하는 자가 이것을 알면 역易을 안다고 할 수 있다(張載 『正蒙』 「太和」)”라고 말함과 같은 것이다. 
 
- 주백곤朱伯崑 지음, 김학권 외 옮김 [역학 철학사] 8권, 소명출판
 
 
 
 
【令知時節 爲有滿平成收開除之字 執危破殺之文 愚人依字信用 無不免其凶禍】
 
령지시절하야 위유만평성수계제지자와 집위파살지문이라 우인의자신용하야 무불면기흉화코져하였나니라
 
[시절時節을 알게 하고자 하야 ‘만滿 ‧ 평平 ‧ 성成 ‧ 수收 ‧ 개開 ‧ 제除’의 글자와 ‘집執 ‧ 위危 ‧ 파破 ‧ 살殺’의 글월이 있게 하였음이라. 어리석은 사람은 글자만을 의지하여 믿고서 씀에 그 흉화凶禍를 면하려 함 아님이 없었느니라.] 
 
 
註曰 令知云云者 愚人依字者 朙知紙墨書 順其言敎也 免其凶禍者 順敎之驗也
 
주註하여 이르되, 「영지운운令知云云(알게 하고자 운운, [시절時節을 알게 하고자 하여 ‘만 ‧ 평 ‧ 성 ‧ 수 ‧ 개 ‧ 제’의 글자와 ‘집 ‧ 위 ‧ 파 ‧ 살’의 글월이 있게 함이라])」 함과 「우인의자愚人依字(어리석은 사람이 글자를 의지해서)」라 함은, 종이와 먹으로 써서 밝게 알게 하여 그것을 순응케 하려는 말의 가르침이라. 면기흉화免其凶禍(그 흉화를 면함)라 함은, 가르침을 따른 영험이라. 
 
 
* 滿平成收開除之字 執危破殺之文: 
만滿 ‧ 평平 ‧ 성成 ‧ 수收 ‧ 개開 ‧ 제除의 글자와 집執 ‧ 위危 ‧ 파破 ‧ 살殺’의 글월.
 
‧ 고대 천문역법天文曆法에서의 소위 ‘건제십이신建除十二神’이라는 것이 있어서, 천문성상天文星像을 가지고 인간사人間事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12가지 정황으로 예측하였다. 길吉한 것으로는, ‘제除 위危 정定 집執 성成 개開’의 여섯 신神이 있고, 흉凶한 것으로는 ‘건建 파破 평平 수收 만滿 폐閉’의 여섯 신神이 있다. 
 
 
 
 
【又使邪師 壓鎭 說是道非 謾求邪神 拜餓鬼 却招殃自受苦 如是人輩 反天時 逆地理 背日月之光明 常投暗室 違正道之廣路 恒尋邪徑 顚倒之甚也】
 
우사사사로 압진하고 설시도비하야 만구사신하며 배아귀하야 각초앙자수고하나니 여시인배는 반천시하고 역지리하야 배일월지광명하고 상투암실하며 위정도지광로하야 항심사경이라 전도지심야니라 
 
[또 하여금 삿된 스승은 정신을 압박하고 일의 옳고 그름을 설說하여 부질없이 삿된 신神을 구하거나 아귀餓鬼에게 절하게 하여 도리어 재앙을 초래하고 스스로 고통 받게 하나니, 이와 같은 사람의 무리는 하늘의 때[天時]를 배반하고 땅의 이치[地理]를 거슬러서 일월日月의 광명光明을 등지고 항상 어두운 방으로 뛰어들며 정도正道의 넓은 길을 어기고서 늘 삿된 좁은 길을 찾음이라 그 전도顚倒됨이 심甚하니라.]
 
 
註曰 說是道非者 誹謗言敎耶 即是不順自性也 謾求邪神者 不見自性 無非邪神也 拜餓鬼者 不食香積飯者 無非餓鬼也 却招殃自受苦者 三業有過失 却招殃耶 即是自性不淨 招殃也 又自受苦者 三毒數起 是大苦也 如是人輩者 四果四向八輩之人耶 非也 即是愚癡凡夫人也 反天時者 者背反父命耶 背反師傳命耶 背反君王命耶 背反自在天時耶 即是背反天眞自在之時也 逆地理者 逆母心耶 即是自心地理昧逆也 背日月之光朙者 虛空日月耶 日月者 即是本覺始覺也 常投暗室者 地獄之室耶 餓鬼之室耶 畜生之室耶 如何是暗室 日用無慧方便 即是常投暗室也 違正道之廣路者 大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坦然朙白 如是之心常欺 故云違正道之廣路云也 恒尋邪徑 顚倒之甚也者 擧心動念 常與十惡八邪常應 豈非邪徑顚倒也
 
주註하여 이르되, 「설시도비說是道非(일의 옳고 그름을 설說하여)」라 함은, 언교言敎를 비방함인가? 곧 이는 자성自性을 따르지 않음이라. 「만구사신謾求邪神(부질없이 삿된 신을 구하거나)」이라 함은, 자성自性을 보지 못하면 삿된 신神 아님이 없음이라. 「배아귀拜餓鬼(아귀에게 절하게 하여)」이라 함은, 향적香積의 밥을 먹지 아니한 자는 아귀餓鬼 아님이 없음이라. 「각초앙자수고却招殃自受苦(도리어 재앙을 초래하고 스스로 고통 받게 하나니)이라 함은, 삼업三業이 과실過失이 있어 도리어 재앙을 초래함인가? 곧 이는 자성自性이 깨끗지 못하여 재앙을 초래함이라. 또「자수고自受苦(스스로 고통을 받음)」라 함은, 삼독三毒이 자주 일어남이 이 큰 고통이라. 「如是人輩(이와 같은 사람의 무리)」라 함은, 사과四果와 사향四向인 여덟 무리[八輩]의 사람인가? 아니라, 곧 이는 어리석은 범부凡夫의 사람이라. 「반천시反天時(하늘의 때를 배반하고)」라 함은, 사람이 부모의 명령을 배반背反함인가? 스승이 전傳하신 혜명[慧命]을 배반함인가? 임금의 명령을 배반함인가? 자재천自在天의 때[時]를 배반함인가? 곧 이는 천진天眞으로 자재自在한 때[時]를 배반함이라. 「역지리逆地理(땅의 이치를 거슬러서)」라 함은, 어머니의 마음을 거스름인가? 곧 이 자기 마음 땅의 이치에 어두움이 거스름이라. 
 
「배일월지광명背日月之光朙(해와 달의 광명을 등지고) 이라 함은, 허공虛空의 일월日月인가? 일월日月이라 한 것은 곧 이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이라. 「상투암실常投暗室(항상 어두운 방으로 뛰어들며)」이라 함은, 지옥地獄의 방인가? 아귀餓鬼의 방인가? 축생畜生의 방인가? 어떤 것이 이 암실暗室(어두운 방)인가하면, 일용日用함에 혜慧의 방편方便 없음이 곧 이 항상 어두운 방에 뛰어 듦[常投暗室]이라. 「위정도지광로違正道之廣路(정도正道의 넓은 길을 어기고)」라 함은, 『큰 도는 어려움이 없으니 간택함을 꺼릴 뿐이다. 다만 미워하고 사랑함이 없으면 훤하여 명백하리라[大道無難(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坦然朙白(洞然明白)]』한 이와 같은 마음이 항상 속으니, 그러한 까닭으로 ‘정도正道의 넓은 길을 어긴다 운운’ 하여 이르심이라. 「항심사경전도지심야恒尋邪徑顚倒之甚也(늘 삿된 좁은 길을 찾음이라 그 전도됨이 심하니라)」라 함은, 마음을 일으켜 생각 움직임이 항상 십악十惡 팔사八邪와 더불어 늘 상응相應하게 되니 어찌 삿된 좁은 길에 전도顚倒됨이 아니겠는가.
 
 
 
 
【善男子 産時 讀誦此經三遍 兒即易生 甚大吉利 聰明利智 福德具足 而不中夭 死時讀誦此經三遍 一無妨害 得福無量】
 
선남자야 산시에 독송차경삼편하면 아즉이생하고 심대길리하야 총명이지하며 복덕구족하야 이불중요하며 사시독송차경삼편하면 일무방해하고 득복무량하리라
 
[선남자善男子야, 출산出産할 때에 이 경經 삼편三遍을 독송讀誦하면, 아이가 곧 쉽게 태어나고 심히 크게 길吉하고 이利로워 총명聰明으로 지혜가 날카로우며 복덕福德이 구족具足하여 중간에 요절夭折하지 않으며, 죽을 때에도 이 경 삼편을 독송하면 하나도 방해로움이 없고 한량이 없는 복을 얻으리라]  
 
 
註曰 善男子産時讀誦此經三遍者 即是三句相應不離自性 即是讀誦此經三遍也 兒即易生者 常生天眞心也 甚大吉利者 世利之利耶 斷煩惱證眞之利耶 妄本空心本淨 如是修行者 即是甚大吉利也 聰明利智者 世知辯聰耶 非也 常生智慧 即是大聰明也 福德具足而不中夭者 人間壽命不夭耶 天堂壽命不夭耶 分段壽命不夭耶 變易壽命不夭耶 意生壽命不夭耶 即是法身慧命 歷千刼而不古 亘萬世而長今者也 死時讀誦此經三遍者 捨身之時耶 即是煩惱滅時 三覺相應故 云讀誦此經三遍也 一無妨害得福無量者 順性之德也
 
주註하여 이르되, 「선남자산시독송차경삼편善男子産時讀誦此經三遍(선남자야, 아이를 낳을 때에 이 경전 세 번을 독송하면)」이라 함은, 곧 이 삼구三句와 상응相應하여 자성自性을 여의지 않음이 곧 이 경 삼편(세 번)을 독송함이라. 「아즉이생兒即易生(아이가 곧 쉽게 태어나고)」이라 함은, 항상 천진天眞한 마음을 생生함이라. 「심대길리甚大吉利(심히 크게 길하고 이로워)」라 함은, 세속의 이득인 이로움인가? 번뇌煩惱를 끊어버리고 진리를 증득證得함인 이로움인가? 『망妄은 본래로 공空이요 마음은 본래로 청정淸淨함』이니, 이와 같이 수행修行하는 것이 곧 이 심히 크게 길吉하고 이利로움이라. 「총명이지聰明利智(총명하고 지혜가 날카로우며)」라 함은, 세간世間의 알음알이로 분별하는 총명인가? 아니라, 항상 지혜智慧를 생生함이 곧 이 큰 총명聰明이라. 
 
「복덕구족이불중요福德具足而不中夭(복과 덕이 구족하여 중간에 요절하지 않으며)」라 함은, 인간人間의 수명壽命이 요절하지 않음인가? 천당天堂의 수명壽命이 요절하지 않음인가? 분단생사分段生死의 수명이 요절하지 않음인가? 변역생사變易生死의 수명이 요절하지 않음인가? 의생신意生身의 수명이 요절하지 않음인가? 곧 이 법신法身의 혜명慧命이『천겁을 지나되 옛이 아니요, 만세에 뻗치되 언제나 지금[歷千刼而不古 亘萬世而長今]』인 것이라. 「사시독송차경삼편死時讀誦此經三遍(죽을 때에도 이 경 삼편을 독송하면)」이라 함은, 몸을 버리는 때인가? 곧 이 번뇌煩惱가 멸滅하는 때이니, 삼각三覺(本覺, 始覺, 究竟覺)과 상응相應하는 까닭으로 이르되, ‘이 경 삼편을 독송함[讀誦此經三遍]’이라. 「일무방해득복무량一無妨害得福無量(하나도 방해로움이 없고 한량없는 복을 얻으리라)」이라 함은, 성性을 따르는 덕德이라.
 
 
* 妄本空心本淨 如是修行者 即是甚大吉利也:
망妄은 본래로 공空하고 마음은 본래로 청정淸淨함이니, 이와 같이 수행修行하는 것이 곧 이 심히 크게 길吉하고 이利로움이라.
 
 
‧ 『所言空者 從本已來一切染法不相應故 謂離一切法差別之相 以無虛妄心念故』
 
이른바 공空이라 함은 본래本來로 좇아 옴에 일체의 오염된 법[染法]이 상응하지 않는 까닭[不相應]이니, 일체법一切法의 차별差別된 상相을 여읜 것이라 허망虛妄한 심념心念이 없는 까닭이니라. 
 

  •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해석분解釋分, 마명馬鳴.

 
 
* 三句: 삼구.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첫째 구[一句]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二句]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三句]는 똥삼태기와 빗자루이니라.
 

  • [선가귀감禪家龜鑑]

 
 
 
 
【善男子 日日好日 月月好月 年年好年 實無間隔 但辦即須殯葬 殯葬之日 讀誦此經七遍 甚大吉利 獲福無量 門榮人貴 延年益壽 命終之日 竝得成聖】
 
선남자야 일일호일이며 월월호월이며 년년호년이며 실무간격이니 단판즉수빈장하고 빈장지일에 독송차경칠편하면 심대길리하야 획복무량하며 문영인귀하고 연년익수하며 명종지일에 병득성성하리라. 
 
[선남자善男子야, 날마다 좋은 날이며 달마다 좋은 달이며 해마다 좋은 해이며 실로 그 사이의 벌어짐이 없으니 다만 갖추어지는 대로 곧 모름지기 염殮하여 장사葬事를 지내고, 염하여 장사지내는 날에 이 경 칠편七遍을 독송讀誦하면 심히 크게 길吉하고 이로워서 복을 얻음이 한량이 없으며 가문은 번영繁榮하여 사람이 높아지고 나이가 늘어 수명이 더하여감에 목숨이 마치는 날 모두가 성인의 도道를 이루리라]
 
 
註曰 善男子下云云者 這箇靈覺之性 晝夜洞徹 三世初無間斷時 十方都無空缺處 故云實無間隔也 但辦即須者 這箇心性逍遙也 殯葬云云者 誦經七遍耶 即是七覺知相應之經也 甚大吉利者 身口意三業無非吉祥 是故獲福無量也 門榮云云者 家門中高官大爵者多出耶 道德成立者多出耶 孝子烈女多出耶 即是四威儀內 念念成正覺 即是門榮人䝿也 延年云云者 人間延年益壽耶 天上延年益壽耶 即是常見法身智慧壽命也 命終云云者 捨身之日 云命終耶 即是滅人欲之命 故云竝得成聖也
 
주註하여 이르되, 「선남자하운운善男子下云云(‘선남자’ 아래로 운운, [선남자야, 날마다 좋은 날이며 달마다 좋은 달이며 해마다 좋은 해이며 실로 사이의 벌어짐이 없으니])」 함은, 이 신령한 각覺의 성性은 낮과 밤으로 훤히 사무쳐 『삼세三世가 잠깐도 끊어진 때가 없으며, 시방十方이 다 비어서 이지러진 곳이 없으니』 그러므로 이르되 ‘실로 사이의 벌어짐이 없다[實無間隔]’ 함이라. 「단판즉수但辦即須(다만 갖추어지는 대로 곧 모름지기)」라 함은, 이 심성心性이 소요逍遙함이라. 「빈장운운殯葬云云(염하여 장사지냄 운운, [殯葬之日 讀誦此經七遍, 염하여 장사지내는 날에 이 경 칠편을 독송하면)」함은, 경을 일곱 번  독송함인가? 곧 이 칠각지七覺知와 상응相應하는 경經이라. 「심대길리甚大吉利(심히 크게 길하고 이로워서)」라 함은,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 길하고 상서로움[吉祥] 아님이 없음이니, 이러한 까닭으로 「획복무량獲福無量(한량이 없는 복을 얻음)」이라. 
 
「문영운운門榮云云(‘가문은 번영하여’ 운운, [門榮人貴, 가문은 번영하여 사람이 높아지고])」 함은, 가문家門 가운데 고관대작高官大爵하는 자가 많이 배출됨인가? 도덕道德이 성립成立된 자가 많이 배출됨인가? 효자孝子와 열녀烈女가 많이 배출됨인가? 곧 이 사위의四威儀(行住坐臥) 내內에 생각 생각 정각正覺을 이룸이 곧 이 ‘가문이 번영하여 사람이 높아짐[門榮人䝿]’이라. 「연년운운延年云云, [延年益壽, 나이가 늘어 수명이 더하며)」함은, 인간人間의 나이가 늘어 수명이 더함인가? 천상天上의 나이가 늘어 수명이 더함인가? 곧 이 항상 법신法身을 보는 지혜智慧의 수명壽命이라. 「명종운운命終云云, [命終之日 竝得成聖, 목숨이 마치는 날에는 모두가 성인의 도를 이루리라]」 함은, 몸을 버리는 날이 이르되 목숨을 마침[命終]인가? 곧 이는 ‘사람의  오욕五欲의 목숨’이 멸滅함이니 그러므로 이르되, ‘모두가 성인聖人의 도道를 이룬다[竝得成聖]’ 함이라. 
 
 
* 七覺支: 
 
擇法覺支 ‧ 精進覺支 ‧ 喜覺支 ‧ 除覺支 ‧ 捨覺支 ‧ 定覺支 ‧ 念覺支.
 
 
 
 
【善男子 殯葬之地 莫問東西南北 安穩之處 人之愛樂 鬼神愛樂 即讀此經三遍 便以修營 安置墓田 永無災障 家富人興 甚大吉利】 
 
선남자야 빈장지지를 막문동서남북 안온지처니 인지애락은 귀신도 애락이라 즉독차경삼편하고 변이수영하며 안치묘전하면 영무재장하고 가부인흥하야 심대길리하리라
 
[선남자善男子야, 염하여 장사지내는 땅을 동서남북東西南北으로 편안한 곳을 묻지 말 것이니, 사람이 사랑하고 즐거워함은 귀신도 사랑하고 즐거워함이라. 곧 이 경 삼편을 독송하고서 바로 건물을 고치거나 세우며 묘전墓田을 안치安置하면 영원히 재앙이나 장애가 없고 가문은 부귀하며 사람은 흥하여 심히 크게 길하고 이로우리라]
 
 
* 墓田: 묘전.
묘위전墓位田 ‧ 묘위토墓位土라고도 하며, 묘에서 지내는 제사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경작하던 논밭. 
 
 
 
 
【爾時 世尊 欲重宣此義 而說偈言 營生善善日 休殯好好時 生死讀誦經 甚得大吉利 月月善朙月 年年大好年 讀經即殯葬 榮華萬代昌】
 
이시에 세존이 욕중선차의하야 이설게언하사되 영생선선일이며 휴빈호호시라 생사독송경하면 심득대길리니라 월월선명월이요 년년대호년이라 독경즉빈장하면 영화만대창이니라
 
[그때 세존世尊께서 이 뜻을 거듭 펴려 하심에 게송으로 이르시되, 
 
삶을 누림이 선善하고 선善한 날이며
빈소殯所에 이별함도 좋고 좋은 때니라.
나고 죽음에 이 경을 독송하면 
심히 크게 이롭고 길함 얻느니라.
 
달달이 선善한 밝은 달이요 
해마다 대단히 좋은 해로다.
독경讀經으로 염하여 장사지내면
영화榮華로 만대에 창성昌盛하리라]
 
 
註曰 善男子下云云者 所謂地者朙堂耶 即是遏人欲存天理 背塵合覺 云殯葬之地也 何以故 喜怒哀樂 憎愛取捨 貪嗔癡之身 以正覺心 地葬之消滅也 莫問云云者 即此心地 把得便用也 人之愛樂鬼神愛樂者 人之與鬼神 相去多小 有形之鬼 謂之人也 無形之人 謂之鬼也 彼此愛樂無兩般 故人之愛樂云云也 即讀此經三遍下 乃至重頌云云 再明讀經之功德也
 
주註하여 이르되, 「선남자하운운善男子下云云(‘선남자야’ 아래로 운운, [善男子 殯葬之地, 선남자야, 염하여 장사지내는 땅을]」 함은, 이른바 ‘지地’라는 것은 명당朙堂인가? 곧 이 『사람의 욕심欲心을 막아 천리天理를 보존』함이며, 『티끌[六塵]을 등져서 각覺에 합함』이니, 이르되 ‘염하여 장사지내는 땅[殯葬之地]’이라. 왜 그런가하면, 기뻐하고 성내며 슬퍼하고 즐거워하며[喜怒哀樂), 미워하고 사랑하며 가지고 버리는[憎愛取捨],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貪嗔癡]의 몸을 ‘바르게 각覺하는(깨닫는) 마음[正覺心]’으로써 땅에 장사지내어 소멸시킴이라.  「莫問云云(묻지 말라 운운, [莫問東西南北 安穩之處, 동서남북으로 편안한 곳을 묻지 말 것이니])」 함은, 이 마음 땅[心地]에 즉即하여(나아가) 잡아 얻어서 곧바로 씀이라. 「인지애락귀신애락人之愛樂鬼神愛樂(사람이 사랑하고 즐거워로은 귀신도 사랑하고 즐거워함)」이라 함은, 사람이 귀신과 더불어 서로의 거리가 얼마나 되겠는가? ‘형체가 있는 귀신’을 일러 사람[人]이라 하고, ‘형체가 없는 사람’을 일러 귀신[鬼]이라 함이니, 저 귀신과 이 사람의 사랑하고 즐거워함은 두 가지가 없으니 그러므로 ‘사람이 사랑하고 즐거워하면 운운’ 함이라. 「즉독차경삼편하내지중송운운即讀此經三遍下乃至重頌云云(‘곧 이 경 삼편을 독송하고서’부터 ‘거듭 게송으로 운운’함 까지)」함은, 독경讀經하는 공덕功德을 또 다시 밝힘이라. 
 
 
* 營生善善日 休殯好好時 生死讀誦經 甚得大吉利:
삶을 누림이 선善하고 선善한 날이요 빈소殯所에 이별함도 좋고 좋은 때니라. 나고 죽음에 이 경을 독송하면 심히 크게 이롭고 길함 얻느니라.
 
 
‧ 所謂地者朙堂耶 即是遏人欲存天理 背塵合覺 云殯葬之地也 何以故 喜怒哀樂 憎愛取捨 貪嗔癡之身 以正覺心 地葬之消滅也
 
이른바 ‘지地[殯葬之地, 염하여 장사지내는 땅]’라는 것은 명당朙堂인가? 곧 이 『사람의 욕심欲心을 막아 천리天理를 보존』함이며, 『티끌[六塵]을 등져서 각覺에 합함』이니, 이르되 ‘염하여 장사지내는 땅[殯葬之地]’이라. 왜 그런가하면, 기뻐하고 성내며 슬퍼하고 즐거워하며[喜怒哀樂), 미워하고 사랑하며 가지고 버리는[憎愛取捨],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貪嗔癡]의 몸을 ‘바르게 각覺하는(깨닫는) 마음[正覺心]’으로써 땅에 장사지내어 소멸시킴이라.
 
 
‧ “부처님께서는 수자타(善生女)가 바친 유미죽을 잡숫고 도道를 깨달으시고, 춘다(純陀)가 바친 공양을 잡숫고 열반涅槃에 드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자타가 바친 유미죽을 먹고 깨달음을 얻은 그 공덕이나, 춘다가 바친 그 공양을 잡숫고 열반에 드셨으나, 그 춘다의 공양한 공덕은 조금도 다름이 없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무량중생無量衆生의 공양供養을 받으셨고, 그리고 무량법문無量法門을 설說하셨습니다. ..... 우리의 정성어린 이 한 개의 등燈을 부처님께 올린 그 공덕. ‘수자타가 바친 유미죽의 공덕이나, 춘다가 바친 그 버섯국의 공덕이나, 금일 우리 신남신녀信男信女가 바친 이 한 개의 등 공양은 그 공덕에 있어서 추호도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389번.

 
 
‧ 『리별은 美의 創造임니다. 리별의 美는 아츰의 바탕(質) 업는 黃金과 밤의 올(糸) 업는 검은 비단과 죽엄 업는 永遠의 生命과 시들지 안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업슴니다. 님이어 리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엇다가 우슴에서 다시 사러날 수가 업슴니다. 오오 리별이어. 美는 리별의 創造입니다.』  
 

  • 한용운 [님의 침묵]

 
 
* 遏人欲 存天理 : 
사람의 욕欲을 막아 천리天理를 보존하며.
 
 
‧ <맹자孟子> [양혜왕하梁惠王下]에는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자신은 호색好色하기 때문에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시행할 수 없다고 하자, 맹자孟子가 호색하는 마음이 왕도정치와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고 설득하는 부분이 있다. 주희朱熹는 이 부분을 해설하면서 맹자의 이와 같은 대답은 바로 「알인욕遏人欲 존천리存天理」를 위한 것이었다고 풀이하고 있다.
 
蓋鐘鼓苑囿遊觀之樂 與夫好勇好貨好色之心 皆天理之所有 而人情之所不能無者 然天理人欲 同行異情 循理而公於天下者 聖賢之所以盡其性也 縱欲而私於一己者 衆人之所以滅其天也 二者之間 不能以髮 而其是非得失之歸 相去遠矣 故孟子因時君之問 而剖析於幾微之際 皆所以遏人欲而存天理
 
“악기를 연주하고 동산을 만들고 유람하는 즐거움과, 용맹을 좋아하고 재물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은 모두 천리天理 중에 있는 것이며 인정人情 속에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은 함께 움직이지만 실제의 내용은 다르다. 도리道理를 따라 천하를 위해 공을 추구하는 것은 성현들이 자신의 본성本性을 극진히 할 수 있는 까닭이요, 욕망欲望을 함부로 부려서 자기만을 위한 사사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보통 사람이 자신의 본성을 없애 버리는 까닭이다. 이 둘 사이는 머리카락 한 올도 나눌 수 없지만 그 시비是非와 득실得失의 결과는 서로간의 차이가 크다. 그 때문에 맹자께서 당시 군주들의 질문에 따라 조짐이 드러나는 즈음에 가려내셨으니 모두 「인욕人欲을 막아 천리天理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다.”
 
- 동양고전 종합DB. [격몽요결擊蒙要訣]
 
 
 
 
【爾時 衆中 七萬七千人 聞佛所說 心開意解 捨邪歸正 得佛法分 永斷疑惑 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이시 중중에 칠만칠천인이 문불소설하고 심개의해하야 사사귀정하며 득불법분하야 영단의혹하고 개발아누다라삼먁삼보리심 하였나니라
 
[그때 대중 가운데에 칠만 칠천의 사람이 부처님의 설하신 바를 듣고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려서 사邪를 버리고 정正으로 돌아왔으며, 부처님의 법法 분부分付(부촉付囑)하심을 얻어 영원히 의혹을 끊고 모두 다 아누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발發하였나니라.] 
 
 
註曰 爾時下云云者 人人箇箇七識 皆順七覺知也 聞佛云云者 得無生法忍也 捨邪云者 捨外道六十二見回心佛道耶 即是念起即覺 覺則無矣 得佛云云者 如何是得佛法分 即是在眼時見 得佛法分 眼色皆空 即是妙色身佛也 在耳時聞 得佛法分 耳聲皆空 名妙音聲佛也 在鼻時齅 即是得佛法分 鼻香皆空 即是香積佛也 在舌時味 得佛法分 舌味皆空 名法喜佛也 在身時觸 即是得佛法分 身觸皆空 即是智勝佛也 在意時法 得佛法分 意法皆空 名法朙如來也 如是妙悟 故永斷乃至得菩提云云
 
주註하여 이르되, 「이시하운운爾時下云云(‘그때’아래로 운운, [爾時衆中七萬七千人, 그때 대중 가운데 칠만 칠천의 사람이]」 함은, 사람마다 개개인의 칠식七識이 다 칠각지七覺知를 따름이라. 「문불운운聞佛云云(부처님의 ~를 듣고 운운, [聞佛所說 心開意解, 부처님의 설하신 바를 듣고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려서])」 함은, 무생법인無生法忍(남이 없는 법인)을 얻음이라. 「사사운捨邪云(삿됨을 버림 운운, [捨邪歸正, 삿됨을 버리고 바름으로 돌아왔으며)」 함은, 외도外道의 육십이견六十二見을 버리고 불도佛道로 마음을 돌림인가? 곧 이는 『생각이 일어나면 곧 깨닫고, 깨달으면 없음[念起即覺 覺則無]』이로다. 「득불운운得佛云云(부처님의 ~을 얻음 운운, [부처님의 법法 분부分付하심을 얻어 영원히 의혹을 끊고 모두 다 아누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發하였나니라])」 함은, 어떤 것이 이 ‘부처님의 법法 분부分付(부촉付囑)하심을 얻음[得佛法分]’인가하면, 
 
곧 이 눈에 있을 때는 봄[見]이니, 부처님의 법法 분부分付하심을 얻어 눈과 색상이 모두 공空함에 곧 이 묘색신불妙色身佛이요, 귀에 있을 때는 들음[聞]이니, 부처님의 법法 분부分付하심을 얻어 귀와 소리가 모두 공空함에 이름하여 묘음성불妙音聲佛이며, 코에 있을 때는 맡음[齅]이니, 곧 이 부처님의 법法 분부分付하심을 얻어 코와 냄새가 다 공空함에 곧 이 향적불香積佛이요, 혀에 있을 때는 맛[味]이니, 부처님의 법法 분부分付하심을 얻어 혀와 맛이 모두 공空함에 이름하여 법희불法喜佛이며, 몸에 있을 때는 닿음[觸]이니, 곧 이 부처님의 법法 분부分付하심을 얻어 몸과 닿음(감촉)이 다 공空함에 곧 이 지승불智勝佛이며, 뜻에 있을 때는 법法이니, 부처님의 법法 분부分付하심을 얻어 뜻과 법이 다 공空함에 이름하여 법명여래法朙如來이라. 이와 같이 묘妙하게 깨닫는 까닭으로, ‘(번뇌를)영원히 끊으며 나아가 보리菩提를 얻는다’고 운운함이라. 
 
 
 
 
【無礙菩薩 復白佛言 世尊 一切凡夫 皆以婚媾 爲親 先問相宜 後取吉日 然始成親 成親之後 富䝿偕老者少 貧寒生離死別者多 一種信邪 如何而有差別 唯願世酋 爲決衆疑】
 
무애보살이 부백불언하사되 세존 일체범부가 개이혼구요 위친하되 선문상의하고 후취길일하야 연시성친하나 성친지후에 당귀해로자소하고 빈한생리사별자다하니 일종신사하되 여하이유차별이닛고 유원세존이시여 위결중의하소서
 
[무애보살無礙菩薩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어 말씀드리되, 세존世尊이시여, 일체一切의 범부凡夫가 다 혼인婚姻 함으로 친[親, 一家]이 되되, 먼저 서로 마땅한지를 묻고 후에 운수 좋은 날을 가져서 비로소 친親함을 이루나, 친親함이 이루어진 후에는 부귀하여 함께 늙어가는 이는 적고 가난하고 쓸쓸하여 살아서 이별하거나 죽어서 이별하는 이는 많으니, 한 가지의 삿됨을 믿은 것이로되 어찌하여 차별됨이 있나니잇고? 오직 원하옵나니 세존이시여, 위하시어 대중의 의심을 끊어주소서]
 
 
 
 
【佛言 善男子 汝等諦聽 當爲汝說 夫天陰地陽 月陰日陽 水陰火陽 男陰女陽 天地氣合 一切草木生焉 日月交運 四時八節朙焉 水火相承 一切萬物熟焉 男女允諧 子孫興焉 皆是天之常道 自然之理 世諦之法】 
 
불언하사되 선남자야 여등은 제청하라 당위여설하리라 부천음지양하며 월음일양하며 수음화양하며 남음여양이니 천지기합하야 일체초목이 생언하고 일월이 교운하야 사시팔절이 명언하고 수화상승하야 일체만물이 숙언하고 남녀윤해하야 자손이 흥언하나니 개시천지상도라 자연지리며 세제지법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선남자善男子야,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하리라. 대저 하늘[天]은 음陰이요 땅[地]는 양陽이며, 달[月]은 음陰이요 해[日]는 양陽이며, 물[水]은 음陰이요 불[火]은 양陽이며, 남자[男]는 음陰이요 여자[女]는 양陽이니, 하늘과 땅[天地]의 기氣가 합合하여 일체一切의 풀과 나무[草木]가 자라나고, 해와 달[日月]이 운행하여 사귀어서 사시四時와 팔절八節이 분명하며, 물과 불[水火]이 서로 이어가며 일체一切의 만물萬物이 익어가고, 남자와 여자[男女]가 진실로 화합하여 자손子孫이 흥성하나니, 다 이것은 하늘의 상도常道이라 자연自然의 이치[理]이며 세제世諦의 법法이니라]
 
 
註曰 無礙菩薩下乃至凡夫者 內凡夫耶 外凡夫耶 未見眞如 皆爲凡夫也 皆是下乃至世諦之法者 全說俗諦之法 不言可知也
 
주註하여 이르되, 「무애보살하내지범부無礙菩薩下乃至凡夫(‘무애보살’아래로부터 ‘범부’에 이르기까지, [무애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어 말씀드리되, 세존이시여 일체의 범부가]」라 함은, 안의 범부凡夫인가? 밖의 범부凡夫인가? 진여眞如를 보지 못하면 다 ‘범부凡夫’가 됨이라. 「개시하내지세제지법皆是下乃至世諦之法(‘모두 다’아래로부터 ‘세제지법’에 이르기까지, [다 이것은 하늘의 상도이라 자연의 이치이며 세제의 법이니라])」이라 함은, 전부 속제俗諦의 법法을 설함이니 말을 하지 않아도 가히 알 수 있음이라. 
 
 
 
 
【善男子 愚人無智 信其邪師 卜問望吉 而不修善 造種種惡業 命終之後 復得人身者 如指甲上土 墮於地獄 作餓鬼畜生者 如大地土 善男子 復得人身 正信修善者 如指甲上土 信邪造惡業者 如大地土】
 
선남자야 우인은 무지하야 신기사사하며 복문망길하야 이불수선하고 조종종악업이라가 명종지후에 부득인신자는 여지갑상토하고 타어지옥하야 작아귀축생자는 여대지토니라 선남자야 부득인신하야 정신수선자는 여지갑상토하고 신사조악업자는 여대지토니라
 
[선남자善男子야,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가 없어서 그 삿된 스승을 믿으며 점占하여 운수 좋기를 희망하고 물어서 선善은 닦지 아니하고 갖가지 악업惡業을 짓다가 목숨이 끝난 후에 다시 사람 몸을 얻는 자는 손톱 위에 흙 같고 지옥地獄에 떨어져서 아귀餓鬼나 축생畜生을 짓는 자는 대지地土의 흙과 같으니라. 선남자善男子야, 다시 사람의 몸을 얻어 바른 믿음으로 선善을 닦는 자는 손톱 위에 흙 같고 삿됨을 믿어 악업惡業을 짓는 자는 대지의 흙과 같으니라] 
 
 
註曰 善男子下云云者 周易六十四卦 卜問望吉耶 常懷物欲心 即是卜問望吉也 而不下云云者 閻浮提衆生 擧足動念 無非造種種惡業也 命終下云云者 人身者 四大是人耶 五陰是人耶 六入是人耶 十二處是人耶 十八界是人耶 三百六十骨節是人耶 八萬四千毛孔是人耶 即是正直無妄 是眞人也 如指甲云者 指最小者也 墮於云者 指最多者也 約事釋 則往三善道者 如是極少 墮三惡道者 如是極多也 若約觀心釋 則一日十二時 一月三十日 一年十二月 念念刹那間 思想五戒十善時 如指甲上土 思想五欲樂時 如大地土也 何以故 一起嗔心 即墮地獄 一起慳貪心 即墮餓鬼 一起癡心 即墮畜生 如是故 復得人身云也
 
주註하여 이르되, 「선남자하운운善男子下云云(‘선남자’ 아래로부터 운운, [善男子 愚人無智 信其邪師 卜問望吉, 선남자야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가 없어서 그 삿된 스승을 믿으며 점占하여 운수 좋기를 희망하고 물어서])」 함은, 주역周易의 육십사괘六十四卦로 점占하여 운수 좋기를 희망하여 물음인가? 항상 물욕심物欲心을 품음이 곧 이 ‘점占으로 운수 좋기를 희망하여 물음[卜問望吉]’이라. 「이불하운운而不下云云(而不修善造種種惡業, 선을 닦지 아니하고 갖가지 악업을 짓다가]) 이라 함은, 염부제閻浮提 중생衆生은 발 들고 생각 움직이는 것이 갖가지 악업惡業을 짓지 아니함이 없음이라. 「명종하운운命終下云云(‘목숨이 끝난’ 아래에서부터 운운, [命終之後 復得人身者, 목숨이 끝난 후에 다시 사람 몸을 얻는 자는]) 함은, ‘사람 몸[人身]’이라는 것이 사대四大가 이 사람인가? 오음五陰이 이 사람인가? 육입六入이 이 사람인가? 십이처十二處가 이 사람인가? 십팔계十八界가 이 사람인가? 삼백육십골절三百六十骨節이 이 사람인가? 팔만사천모공八萬四千毛孔이 이 사람인가? 곧 이 ‘정직正直하여 망령됨 없음[正直無妄]’이 이 진실한 사람[人]이라. 
 
「여지갑운如指甲云(‘손톱과 같다’ 운운, [如指甲上土, 손톱 위에 흙 같다]」 함은, 가장 작은 것을 가리킴이요, 「타어운墮於云(~에 떨어짐 운운, [墮於地獄作餓鬼畜生者如大地土, 지옥에 떨어져서 아귀나 축생을 짓는 자는 대지의 흙과 같으니라])」함은, 가장 많은 것을 가리킴이니, 사事(일)에 의거해서 풀이하자면 세 선도善道에 가는 자는 이와 같이 극히 적고 세 악도惡道에 떨어지는 자는 이와 같이 극히 많음이라. 만약 마음을 관觀함에 의거해서 풀이하자면, 하루의 열두 때(二十四時)와 한 달의 삼십 일(三十日)과 일 년의 십이 개월(十二個月) 동안의 생각 생각 찰나 사이에, 오계五戒와 십선十善을 생각하는 때는 손톱 위에 흙과 같고 오욕락五欲樂을 생각하는 때는 대지大地의 흙과 같음이라. 왜 그런가하면, 한 번 진심嗔心을 일으킴에 곧 지옥地獄에 떨어지고, 한 번 아껴서 탐하는 마음을 일으킴에 곧 아귀餓鬼에 떨어지며, 한 번 어리석은 마음을 일으킴에 곧 축생畜生에 떨어지나니, 이와 같은 까닭으로 ‘다시 사람 몸을 얻는 자는 운운(지극히 적다)’함이라. 
 
 
 
 
【善男子 欲結婚親 莫問水火相剋 胞胎相壓 年命不同 唯看祿命書 即知福德多少 以爲眷屬 呼迎之日 即讀此經三遍 而以成禮 此乃善善相因 朙朙相屬 門高人䝿 子孫興盛 聰朙利智 多才多藝 孝敬相承 甚大吉利 而無中夭 福德具足 皆成佛道】
 
선남자야 욕결혼친인댄 막문수화상극과 포태상압과 년명부동하고 유간녹명서하야 즉지복덕다소하고 이위권속하고 호영지일에 즉독차경삼편하야 이이성예하면 차내선선상인이요 명명상속이라 문고인귀하고 자손흥성하며 총명이지하야 다재다예하며 효경상승하고 심대길리하야 이무중요하며 복덕구족하야 개성불도하리라
 
[선남자善男子야, 결혼結婚하여 친親[一家]을 이루고자 할진댄, ‘물과 불이 서로 같이 살 수 없다’하는 것과 ‘포胞와 태胎가 서로를 누른다’ 하는 것과 ‘나이와 운명이 서로 같지 않다’하는 것은 묻지를 말고, 오직 녹명서祿命書를 보아 곧 복덕福德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고서 권속眷屬을 삼고, 불러서 맞이하는 날에 곧 이 경經 삼편三遍을 독송하여 예식禮式을 이루면, 이에 선善과 선善이 서로 인因이 됨이요 밝음과 밝음이 서로를 따름이라, 가문家門은 높아 사람이 고귀高貴하고 자손子孫이 흥성興盛하며, 총명聰朙으로 지혜가 날카로워 재능才能과 기예技藝가 많으며, 효도孝道하고 공경恭敬함을 서로 이어감에 심히 크게 이롭고 길吉하여서, 도중에 요절夭折함이 없으며 복덕福德이 구족具足하여 모두가 다 불도佛道를 이루리라]
 
 
註曰 善男子下乃至而無中夭者 假說俗諦事也 其中唯看祿命書者 暗指七星延命經 祿命書耶 即是爲人用心之道善 則福德多少 不言可知也 福德具足者 忠孝是具足福德耶 六波羅蜜是具足福德耶 即是三業淸淨上 能持一卷經 隨順神呪 是眞實福德具足 云皆成佛道也
 
주註하여 이르되, 「선남자하내지이무중요善男子下乃至而無中夭(‘선남자’ 아래부터 ‘이무중요’까지」이라 함은, 속제俗諦의 일을 빌려서 설함이라. 그 가운데 「유간녹명서唯看祿命書(오직 녹명서를 보아서)」라 함은, 칠성연명경七星延命經[佛說北斗七星延命經]을 넌지시 가리켜 녹명서祿命書라 함인가? 곧 이는 ‘사람의 마음 쓰는 도리가 선善하면 그 복덕福德이 얼마나 되는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가히 알 수 있음이라. 「복덕구족福德具足(복과 덕이 충분히 갖추어져서)」이라 함은, 충忠과 효孝가 이 복福과 덕德을 구족함인가? 육바라밀六波羅蜜이 복덕福德을 구족함인가? 곧 이 삼업三業이 청정淸淨한 분상分上에서 능히 한권의 경經을 가져 신주神呪를 수순隨順함이 이 진실로 ‘복福과 덕德을 충분히 갖춤[福德具足]’이요, 이르되 ‘모두가 다 불도佛道를 이룬다[皆成佛道]’함이라.
 
 
 
 
【時有八菩薩 承佛威神 得大總持 常處人閒 和光同塵 破邪立正 度四生 處八解 而不自異】
 
시유팔보살이 승불위신하야 득대총지하며 상처인간하야 화광동진하고 파사입정하며 도사생처팔해하되 이불자이하니
 
[그때 여덟 보살菩薩이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이어받아 큰 총지總持를 얻었으며 항상 인간人閒에 처處하여 빛을 어울어 티끌을 함께하고 삿됨을 부수어 바름을 세웠으며 사생四生(胎卵濕化)을 제도함에 팔해탈八解脫에 처處하였으되 자신을 달리 내세우지 않았느니라]
 
 
註曰 時有下云云者 即是此八菩薩隨順眞如性 故云承佛威神也 得大云云者 一聞千悟 得大總持 常看人欲心地之處也 和光云云者 這箇心性 染而不染 難可了知 不染而染 難可了知也 又不守自性隨緣 成就一切事法 故云和光同塵也 破邪云云者 打破邪念之心 正立八正道分也 度四生者 永離胎卵濕化四生耶 無朙初起之相爲胎生 三細成立爲卵生 智相相續執取計名爲濕生 造業受報爲化生也 然則生住異滅性空處 即是八解脫也
 
주註하여 이르되, 「시유하운운時有下云云(‘그때에’ 운운[時有八菩薩 承佛威神, 그때 여덟 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받아])」 함은, 곧 이는 ‘이 여덟 보살이 진여眞如의 성性을 수순隨順함’이니, 그러므로 ‘승불위신承佛威神(부처님의 위신을 이어받아)’이라고 말함이라.  「득대운운得大云云(‘큼을 얻어서’ 운운, [得大總持常處人閒, 큰 총지를 얻었으며 항상 인간에 처하여])」 함은, 하나를 들음에 천 가지를 깨달아 대총지大總持를 얻어서, 사람이 하고자 하는 바[欲]의 마음땅[心地] 처소處所를 항상 살펴봄이라. 「화광운운和光云云(빛을 어울어, [和光同塵, 빛을 어울어 티끌을 함께하고])」 함은, 이 심성心性은 물들되 물들지 않음이니 가히 깨달아 알기 어렵고, 물들지 않되 물듦이니 가히 깨달아 알기 어려움이라. 또 자성自性을 지키지 아니하여 연緣을 따름에 일체 일[事]의 법法을 성취하나니(一切事에서 法을 성취하나니), 그런 까닭에 ‘빛을 어울어 티끌을 함께 한다[和光同塵]’고 말함이라. 「파사운운破邪云云(삿됨을 부수어 운운, [破邪立正, 삿됨을 부수어 바름을 세웠으며])」 함은, 삿된 생각의 마음을 쳐부숨이 팔정도분八正道分을 바르게 세움이라. 「도사생度四生(사생을 제도함에)」이라 함은, 영원히 태란습화胎卵濕化의 사생四生을 여읨인가? 무명無朙이 처음 일어난 상相이 ‘태생胎生’이 되고, 세 가지 미세함[三細]이 성립成立함이 ‘난생卵生’이 되며, 지상智相 ‧ 상속상相續相 ‧ 집취상執取相 ‧ 계명자상計名字相이 ‘습생濕生’이 되며, 조업造業[起業相] ‧ 수보受報[業繫苦相]가 ‘화생化生’이 됨이라. 그러한즉 나고[生하고] 머물고[住하고] 변하고[異하고] 사라짐[滅함]에 성性이 공空한 곳이 곧 이 ‘팔해탈八解脫’이라. 
 
 
* 時有八菩薩: 
여덟 보살이 있을 때.
 
 
‧ 即是八意妙用自在也, 곧 이 여덟 가지 미묘한 작용(묘유妙有, 묘선妙善, 묘량妙量, 묘보妙寶, 묘증妙增, 묘각妙覺, 묘향妙響, 묘의法意)이 자재自在함이라. 
 
 
* 無朙初起之相爲胎生 三細成立爲卵生 智相相續執取計名爲濕生 造業受報爲化生也:
무명無朙이 처음 일어난 상相이 태생胎生이 되고, 세 가지 미세함[三細]이 성립成立함이 난생卵生이 되며, 지상智相 ‧ 상속상相續相 ‧ 집취상執取相 ‧ 계명자상計名字相이 습생濕生이 되며, 조업造業[起業相] ‧ 수보受報[業繫苦相]가 화생化生이 됨이라.
 
 
‧ 삼세상三細相: 업상業相, 전상轉相, 현상現相 - ‘난생卵生’.
 
『復次依不覺故生三種相 與彼不覺相應不離 云何爲三 一者無明業相 以依不覺故心動 說名爲業 覺則不動 動則有苦 果不離因故 二者能見相 以依動故能見 不動則無見 三者境界相 以依能見故境界妄現 離見則無境界』
 
다시 불각不覺에 의依하기 때문에 세 가지 상相이 생겨서 저 불각不覺과 상응相應하여 여의지 않으니, 무엇이 셋인가? 첫째는 무명업상無明業相[업상業相]이다. 불각不覺에 의하기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업業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깨달으면 움직이지 않으며 움직이면 고통이 있게 되니, 결과는 원인을 여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능견상能見相[전상轉相]이다. 움직임에 의하기 때문에 볼 수 있게 된 것이니, 움직이지 않는다면 볼 것이 없을 것이다. 세 번째는 경계상境界相[현상現相]이다. 능견에 의하기 때문에 경계가 거짓되이 나타나는 것이니 견見을 여읜다면 경계境界도 없어질 것이다. 
 
 
‧ 육추상六麤相: 지상智相, 상속상相續相, 집취상執取相, 계명자상計名字相 - ‘습생濕生’. 기업상起業相, 업계고상業繫苦相 - ‘화생化生’.
 
『以有境界緣故 復生六種相 云何爲六 一者 智相 依於境界 心起分別愛與不愛故 二者 相續相 依於智故生其苦樂 覺心起念相應不斷故 三者 執取相 依於相續緣念境界 住持苦樂 心起著故 四者 計名字相 依於妄執 分別假名言相故 五者 起業相 依於名字 尋名取著 造種種業故 六者 業繫苦相 以依業受果不自在故』
 
경계境界의 연緣이 있기 때문에 다시 여섯 가지의 상相을 내는 것이니,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첫째는 지상智相이니, 경계에 의하여 마음이 일어나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음을 분별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상속상相續相이니, 지상에 의하기 때문에 그 고락苦樂을 내어서 각심覺心(覺觀心)으로 망념妄念을 일으켜 상응相應하여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는 집취상執取相이니, 상속에 의하여 경계境界를 반연攀緣하여 생각해서 고락苦樂을 주지住持하여 마음이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넷째는 계명자상計名字相이니, 잘못된 집착에 의하여 거짓된 명언名言의 상相을 분별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기업상起業相이니, 명자名字에 의하여 이름을 따라가면서 집착하여 여러 가지 업業을 짓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업계고상業繫苦相이니, 업業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아서 자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 不守自性隨緣 成就一切事法 故云和光同塵也:
또 자성自性을 지키지 아니하여 연緣을 따름에 일체사一切事에서 법法을 성취하나니, 그런 까닭에 ‘빛을 어울어 티끌을 함께 한다’고 말함이라.
 
 
‧ 『譬如高原陵地不生蓮華 卑濕淤泥乃生此華.』 - <維摩詰所說經>
비유컨댄 고원의 언덕위에는 연꽃이 나지 못하고, 낮고 습기가 많은 진흙에서야 이 꽃이 나는 것과 같다. 
 
『眞如不守自性 隨緣成就一切事法.』- [大慧普覺禪師書] 卷第二十五.
진여眞如는 자성自性을 지키지 아니하고, 연을 따라 일체사一切事의 법을 성취한다.
 
『隨流認得性 無喜亦無憂』- [宗鏡錄]
흐름을 따라 성性을 인득認得하니, 기쁨도 없으며 또한 괴로움도 없다.
 
 
‧ 『以真心不守自性 隨緣成諸有』
진심真心(참 마음)은 자성自性을 지키지 아니함으로써 연緣을 따라 모든 유有를 이루고.
 
問:「諸法無體 從緣幻生 眾緣無依 還從法起. 緣法無性 必竟俱虛 無主無人 無生無滅. 如何廣論無常之事相 復說虛妄之果報乎」
 
묻되, 모든 법法은 체體가 없어 연緣을 좇아 환幻이 생生함이요, 온갖 연緣에 의지함이 없음에 도리어 법法 일어남을 좇는다. 연緣과 법法은 성性이 없어서 필경에 함께 허虛하며, 주인도 사람도 없어서 생生하고 멸滅함이 없거늘, 어찌하여 무상無常한 사상事相을 널리 논論하는가?
 
答:「以真心不守自性 隨緣成諸有 雖似有即空 乃體虛成事. 猶如樹影雖虛 而有陰覆之義 還同昏夢不實 亦生憂喜之情. 雖無作者之能為 不失因緣之果報. 故《淨名經》云『無我 無造 無受者 善惡之業亦不亡』又教所明空 以不可得故 無實性故 不是斷滅之無 何起龜毛兔角之心 作蛇足鹽香之見」 
 
답하되, 진심真心(참 마음)은 자성自性을 지키지 아니함으로써 연緣을 따라 모든 유有를 이루고, 비록 유有인듯 하나 곧 공空하니, 이에 체體가 비었으되 사事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마치 나무 그림자가 비록 허虛하다고는 하나 그늘로 덮어주는 그 뜻이 있고, 도리어 흐릿한 꿈이 실답지 못하다고는 하나 또한 근심과 기쁨의 정情을 생生하게 함과 같은 것이다. 비록 짓는 자의 능위(能為)는 없다고 하나, 그 인연因緣의 과보果報는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러한 까닭에 <정명경淨名經>에서 이르기를, “나라는 것이 없고 지음도 없으며 받는 자도 없으나, 선善과 악惡의 업業은 또한 없어지지 않는다.” 하였으며, 또 교教에서 공空을 밝힌 것은 ‘가히 얻지 못하는 까닭’이요 ‘실實한 성性이 없는 까닭’인 것이지, 단멸斷滅의 무無가 아니언마는, 어찌 거북 털과 토끼 뿔의 마음으로 뱀 다리(蛇足)와 소금 향(鹽香)의 견해를 짓느냐? 
 
-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 영명지각선사永明智覺禪師. 
 
 
○ 나무의 그림자가 헛되다고는 하나 그 시원함은 얻을 수가 있으며, 꾸는 꿈이 실답지 못하다고는 하나 그 속에서 기쁘고 슬프며 두려워하는 감정은 없는 것이 아니다. 이렇듯, 선과 악을 짓는 그 실다운 자성은 없다고는 하나, 그 실답지 못한 가운데에 선과 악의 일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작은 선善이라 해서 짓지 않을 수가 있으며, 어찌 작은 악惡이라 해서 쉽게 지을 수가 있겠는가? 
 
 
 
 
【其名曰 跋陀羅菩薩漏盡和 羅鄰竭菩薩漏盡和 憍目兜菩薩漏盡和 那羅達菩薩漏盡和 須彌深菩薩漏盡和 因抵達菩薩漏盡和 和輪調菩薩漏盡和 無緣觀菩薩漏盡和】
 
기명왈 발타라보살누진화며 라린갈보살누진화며 교목도보살누진화며 나라달보살누진화며 수미심보살누진화며 인저달보살누진화며 화륜조보살누진화며 무연관보살누진화라
 
[그 이름을 말하자면, 발타라보살누진화跋陀羅菩薩漏盡和며, 라린갈보살누진화羅鄰竭菩薩漏盡和며, 교목도보살누진화憍目兜菩薩漏盡和며, 나라달보살누진화那羅達菩薩漏盡和며, 수미심보살누진화須彌深菩薩漏盡和며, 인저달보살누진화因抵達菩薩漏盡和며, 화륜조보살누진화和輪調菩薩漏盡和며, 무연관보살누진화無緣觀菩薩漏盡和이라.]
 
 
註曰 跋陀羅者 即是眼識 飜爲妙觀察智 與眼根色塵合 爲無漏智性名爲跋陀羅 乃至漏盡和也 羅鄰竭者 即是耳識 飜爲妙音聲智 與耳根聲塵和合 爲無漏智性 名爲那鄰竭 乃至漏盡和也 憍目兜者 鼻識 飜爲妙香幢智 與鼻根香塵和合 爲無漏智性 名爲憍目兜云云也 那羅達菩薩者 即是舌識 飜爲妙法喜智 與舌根味塵和合 爲無漏智性 名爲那羅達云云也 須彌深者 即是身識 飜爲妙色身智 與身根觸塵和合 爲無漏智性 名爲須彌深云云也 因抵達者 即是意識 飜爲成所作智 與意根法塵和合 爲無漏智性 名爲因抵達云云也 和輪調者 即是第七識 飜爲平等性智 與見分相分和合 爲無漏智性 名爲和輪調云云也 無緣觀者 即是第八識 飜爲大圓鏡智 與唯識三界萬法和合 爲無漏智性 名爲無緣觀云云也 亦是八菩薩八意 表從妙朙眞心 出妙觀察意 其用有八也 妙心本空 而能有用 故名有意 此妙有也 出於妙心 用無不善 故名善意 此妙善也 量不可測 故名無量意 此妙量也 對境利用 故名寶意 此妙寶也 觸類而長 故名增意 此妙增也 善能覺了 故名除疑意 此妙覺也 應物如響 故名響意 此妙響 建立萬法 故名法意 此妙法也 以此表法 故名八菩薩云云也
 
주註하여 이르되, 「발타라跋陀羅」라 함은, 곧 이 안식眼識이 뒤쳐서 묘관찰지妙觀察智가 되어 안근眼根과 색진色塵에 더불어 합合하여 샘이 없는 지智의 성性[無漏智性]이 됨을 이름하여 발타라跋陀羅 내지乃至 누진화漏盡和라 함이라. 「라린갈羅鄰竭」이라 함은, 곧 이 이식耳識이 뒤쳐서 묘음성지妙音聲智가 되어 이근耳根과 성진聲塵에 더불어 화합和合하여 샘이 없는 지智의 성性이 됨을 이름하여 나린갈那鄰竭[羅鄰竭] 내지 누진화漏盡和라 함이라. 「교목도憍目兜」라 함은, 비식鼻識이 뒤쳐서 묘향당지妙香幢智가 되어 비근鼻根과 향진香塵에 더불어 화합和合하여 샘이 없는 지智의 성性이 됨을 이름하여 교목도憍目兜 운운云云 함이라. 「나라달보살那羅達菩薩」이라 함은, 곧 이 설식舌識이 뒤쳐서 묘법희지妙法喜智가 되어 설근舌根과 미진味塵에 더불어 화합和合하여 샘이 없는 지智의 성性이 됨을 이름하여 나라달那羅達 운운云云 함이라. 「수미심須彌深」이라 함은, 곧 이 신식身識이 뒤쳐서 묘색신지妙色身智가 되어 신근身根과 촉진觸塵에 더불어 화합和合하여 샘이 없는 지智의 성性이 됨을 이름하여 수미심須彌深 운운云云 함이라. 「인저달因抵達」이라 함은, 곧 이 의식意識이 뒤쳐서 성소작지成所作智가 되어 의근意根과 법진法塵에 화합和合하여 샘이 없는 지智의 성性이 됨을 이름하여 인저달因抵達 운운云云 함이라. 「화륜조和輪調」라 함은, 곧 이 제칠식第七識이 뒤쳐서 평등성지平等性智가 되어 견분見分과 상분相分에 화합和合하여 샘이 없는 지智의 성性이 됨을 이름하여 화륜조和輪調 운운云云함이라. 「무연관無緣觀」이라 함은, 곧 이 제팔식第八識이 뒤쳐서 대원경지大圓鏡智與가 되어 오직 식識인 삼계三界의 만법萬法에 화합和合하여 샘이 없는 지智의 성性이 됨을 이름하여 무연관無緣觀 운운云云 함이라. 
 
또한 이 여덟 보살[八菩薩]은 여덟 가지 뜻이니, 미묘히 밝은 진심[妙明眞心]을 좇아 미묘히 보아 살피는 뜻[妙觀察意]이 나오되 그 작용[用]이 여덟이 있는 것을 표하심이라. 미묘한 마음은 본래 공空하되 능히 작용[用]이 있는 까닭으로 이름이 ‘유의有意’이시니 이는 미묘한 유[묘유妙有]이시고, 미묘한 마음에서 나와 용用이 좋지 아니함이 없는 까닭으로 이름이 ‘선의善意’이시니 이는 미묘한 선[묘선妙善]이시며, 량量을 헤아리지 못하는 까닭으로 이름이 ‘무량의無量意’이시니 이는 미묘한 헤아림[묘량妙量]이시고, 경계를 대하여 그 씀이 이로운 까닭으로 이름이 ‘보의寶意’이시니 이는 미묘한 보배[묘보妙寶]이시고, 류類를 부딪혀 자라게 하는 까닭으로 이름이 ‘증의增意’이시니 이는 미묘한 더함[묘증妙增]이시고, 잘 능히 깨달아 아시는 까닭으로 ‘제의의除疑意(의심된 뜻을 없앰)’이시니 이는 미묘한 각[묘각妙覺]이시고, 물物에 응應함이 메아리 같으신 까닭으로 이름이 ‘향의響意’이시니 이는 미묘한 메아리[묘향妙響]이시고, 만법萬法을 세우시는 까닭으로 이름이 ‘법의法意’이시니 이는 미묘한 법[묘법妙法]이심이라. 이로써 법法을 표表하신 까닭으로 이름이 ‘팔보살八菩薩 운운云云’함이라. 
 
 
 
 
【是八菩薩 俱白佛言 世尊 我等 於諸佛所 受得陀羅尼神呪 而今說之 擁護受持讀誦天地八陽經者 永無恐怖 使一切不善之物 不得侵損讀經法師 即於佛前 而說呪曰 阿佉尼 尼佉尼 阿比羅 曼隷 曼多隷】
 
시팔보살이 구백불언하시되 세존아 아등이 어제불소에 수득다라니신주하니 이금설지하야 옹호수지독송천지팔양경자하야 영무공포케하며 사일체불선지물로 부득침손독경법사케하리라 즉어불전에 이설주왈 아거니 니거니 아비라 만례 만다례
 
[이 여덟 보살菩薩이 함께 부처님께 아뢰어 말씀드리되, 세존世尊이시여, 저희들이 모든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다라니신주陀羅尼神呪를 받아 얻었으니, 지금 그것을 설說하여 천지팔양경天地八陽經을 받아 지녀 독송하는 자를 옹호擁護하여 영원히 공포恐怖가 없게 하며, 일체의 선善하지 못한 물物로 하여금 독경讀經하는 법사法師를 침범하여 손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겠나이다. 곧 부처님 앞에서 주呪를 설說하여 이르되, 
 
『아거니阿佉尼 니거니尼佉尼 아비라阿比羅 만례曼隷 만다례曼多隷』]
 
 
註曰 俱白佛言者 八識意 向本覺也 世尊我等者 地水火風四大是我耶 五陰是我耶 六入是我耶 十二處是我耶 十八界是我耶 這箇我 即是常樂我淨四德之我 故云我等也 諸佛云者 過去莊嚴刼千佛耶 現在贒刼千佛耶 未來星宿刼千佛耶 即是矚目無非諸佛也 神呪者 眞言亦云秘呪也 正脉云 秘呪非但只是梵語 乃是一切聖贒秘蜜之語 盖梵語 此方不曉 而天竺所共解者也 至於秘呪 非但天竺常人不知 即下位聖贒亦不達上位之呪故 諸經神呪例 皆不飜譯 智者大師云 有四意 一云鬼神王名 二云如軍中蜜號 三云蜜默遮惡餘無識者 四云諸佛密語 唯聖乃知 陀羅尼此云總持 亦云神呪 約體名陀羅尼 約用名呪也 呪者 祝也 而今說之者 如何說耶 有言說耶 無言說耶 即是眞箇說者 不干有言說 不干無言說也 如是說者 如是聽者 證智所知非餘境也 擁護云云者 如何擁護 時時念念 不昧自性 智慧方便 連續不絕 是眞擁護也 受持者 如何受持 圓光頂戴 體絕偏圓 動靜相隨 故云受持也 讀誦者 如何讀誦 高聲持讀誦耶 隱念持讀誦耶 金剛持讀誦耶 恒順眞如性 不昧自性 是眞讀誦也 永無恐怖者 五種怖畏永無耶 五蘊皆空 度一切苦厄 即是永無恐怖也 使一切乃至法師者 五十種魔事之物 不得侵損耶 一切物欲之心 不得侵損耶 即是客塵不善之物 一點不起也 是故不得侵損云也 法師者 三界大導師也 所言法者 即是衆生心也 所謂師者 威儀無缺 三界弘範 觸處楷模者也 佛前者 是三身佛耶 即是對面相呈 而無面目漢說是非者也
 
주註하여 이르되, 「구백불언俱白佛言(함께 부처님께 아뢰어 말씀드리되)」이라 함은, 팔식八識과 의意[七識]가 본각本覺을 향함이라. 「세존아등世尊我等(세존이시여, 저희들이)」이라 함은, 지地 ‧ 수水 ‧ 화로 ‧ 풍風 사대四大가 이 나[我]인가? 오음五陰이 이 나인가? 육입六入이 이 나인가? 십이처十二處가 이 나인가? 십팔계十八界가 이 나인가? 이 ‘나[我]’라는 것은 곧 이 상常 ‧ 락樂 ‧ 아我 ‧ 정淨 사덕四德의 나[我]이니, 그러므로 이르되, ‘저희들[我等]’이라. 「제불운諸佛云(모든 부처님 운운, [於諸佛所, 모든 부처님이 계신 곳에])」 함은, 과거장엄겁천불過去莊嚴刼千佛인가? 현재현겁천불現在贒刼千佛인가? 미래성숙겁천불未來星宿刼千佛인가? 곧 이는 주의깊이 살핌[矚目]에 제불諸佛 아님이 없음이라. 
 
「신주神呪」라 함은, 진언眞言이요 또한 이르되 비주秘呪(비밀주)이라. 정맥正脉[大佛頂首楞嚴經正脈疏]에 이르되, 비주秘呪는 다만 이 범어梵語일 뿐만 아니라 곧 이 일체一切 성현聖贒의 비밀秘蜜한 말씀이라. 대개 범어梵語는 이 나라에서 알지 못하니, 천축天竺의 총괄적으로 해석한 바인 것이라. 비주秘呪에 이르러서는 다만 천축天竺의 평범한 사람이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곧 하위下位의 성현聖贒도 또한 상위上位의 주呪를 통달通達하지 못한 까닭에, 모든 경經의 신주神呪는 대개가 다 번역飜譯하지 않음이라. 지자대사智者大師가 이르시되, 네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귀신鬼神의 왕王 이름이요, 둘은 군대의 비밀 암호와 같음이요, 셋은 은밀히 침묵하여 나머지 앎이 없는 자의 악惡을 막음이요, 넷은 제불諸佛의 밀어密語는 오직 성현이어야 앎이라. 다라니陀羅尼는 여기서 이르기를 총지總持라 하고, 또는 신주神呪라고도 함이라. 체體에 준거하면 이름이 ‘다라니陀羅尼’요 용用에 준거하면 이름이 ‘주呪’이라. 주呪라 함은 ‘축祝(비는 것)’이라. 
 
「이금설지而今說之(지금 그것을 설함)」라 함은, 어떻게 설함인가? 말 있음으로 설함인가? 말 없음으로 설함인가? 곧 이 진실한 이 설說이라 하는 것은 언설言說 있음에도 간섭되지 않으며 언설言說 없음에도 간섭되지 않음이니, 이와 같이 설[如是說]하는 것과 이와 같이 듣는[如是聽] 것은 지혜智慧를 증득證得하여야 아는 바이지 여타餘他의 경계로 아는 바가 아님이라. 「옹호운운擁護云云(‘옹호하여’ 운운)」 함은, 어떤 것이 옹호擁護함인가? 시간마다 생각마다 자성自性을 매昧하지 아니하여 지혜智慧의 방편方便이 연속連續해서 끊어지지 않음이 이 진실한 옹호擁護(호위하여 지킴)이라. 「수지受持(받아 지님)」라 함은, 어떤 것이 받아지님[受持]인가? 둥그런 빛[圓光]을 정수리에 이었음에 체體가 편偏과 원圓이 끊어졌으며 동動과 정靜이 서로 따르는 까닭으로 이르되 ‘받아 지님[受持]’이라. 「독송讀誦」이라 함은, 어떤 것이 독송讀誦함인가? 고성高聲으로 가져(큰소리로) 독송讀誦함인가? 은밀히 념念으로 가져(마음속으로) 독송讀誦함인가? 금강金剛으로 가져 독송讀誦함인가? ‘항상 진여眞如의 성性을 수순隨順하여 자성自性을 매昧하지 않음’이 이 진실한 독송讀誦이라. 
 
「영무공포永無恐怖(영원히 공포가 없게 하며)」라 함은, 다섯 가지의 포외심怖畏心이 영원히 없음인가? 『오온五蘊이 다 공空함에 일체一切의 고액苦厄을 건넘[五蘊皆空 度一切苦厄]』이 곧 이 ‘영원히 공포恐怖가 없음’이라. 「사일체내지법사使一切乃至法師(‘일체로 하여금’에서부터 ‘법사’까지, [使一切不善之物 不得侵損 讀經法師, 일체의 선善하지 못한 물物로 하여금 독경讀經하는 법사法師를 침범하여 손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겠나이다])」이라 함은, 오십 가지 종류의 마사魔事(마군의 일)인 물物(어떤 것)이 침범하여 손해를 끼치지 못하게 함인가? 일체一切의 물욕物欲하는 마음이 침범하여 손해를 끼치지 못하게 함인가? 곧 이 객진客塵(번뇌)의 선善하지 못한 물物이 일점一點도 일어나지 않게 함이니, 이러한 까닭으로 ‘침범하여 손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겠나이다[不得侵損]’라고 말함이라. 「법사法師」라 함은, ‘삼계대도사三界大導師(욕계 ‧ 색계 ‧ 무색계의 큰 인도자)’이시니, 이른바 ‘법法’이라 함은 곧 이 ‘중생衆生의 마음[衆生心]’이요 이른바 ‘사師’라 함은 ‘위의威儀가 이지러짐이 없어서 삼계三界의 큰 모범이며 닿은 곳[觸處]마다 본보기가 되는 사람’이라. 「불전佛前(부처님 앞)」이라 함은, 이 삼신불三身佛인가? 곧 이 『얼굴을 마주하여 모습을 드러내되, 얼굴 없는 놈[無面目漢]이 옳고 그름을 설하는[說是非]』것이라.  
 
 
 
* 所言法者 即是衆生心也:
이른바 ‘법’이라 함은 곧 이 ‘중생의 마음’이요.
 
『所言法者 謂衆生心 是心則攝一切世閒法 出世閒法 依於此心顯示摩訶衍義 何以故 是心眞如相 卽示摩訶衍體故 是心生滅因緣相 能示摩訶衍自體相用故』 
 
법法이라고 하는 것은 중생심衆生心을 말함이니, 이 마음이 곧 일체의 세간법世閒法과 출세간법出世閒法을 포괄하며, 이 마음에 의하여 대승(摩訶衍)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어째서인가? 이 심진여心眞如의 상相이 대승의 체體를 보이기 때문이요, 이 심생멸인연心生滅因緣의 상相이 대승 자체自體의 상相 용用을 능히 보이기 때문이다. 
 
『衆生心者 猶如於鏡 鏡若有垢 色像不現 如是衆生心若有垢 法身不現故』
 
중생심衆生心이란 마치 거울과 같으니, 거울에 때가 있으면 색상色像이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이와 같이 중생심도 때가 있으면 법신法身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 『故云 迷一心而往六趣者ᄂᆞᆫ 去也ㅣ며 動也ㅣ오 悟法界而復一心者ᄂᆞᆫ 來也ㅣ며 静也ㅣ니 雖迷悟之有殊ㅣ나 乃本源則一也ㅣ니 所以云「所言法者ᄂᆞᆫ 謂衆生心이라」 ᄒᆞ시니』
 
그러므로 이르시되, 일심一心을 몰라(미혹하여) 육취六趣에 가는 이는 ‘감[去]’이요 ‘움직임[動]’이오, 법계法界를 깨달아 일심一心에 돌아간 이는 ‘옴[來]’이며 ‘고요함[静]’이니, 비록 모름[迷]과 앎[悟]이 다름이 있으나 본래本來의 근원根源은 하나이니, 그러므로 이르시되 「이른바 ‘법法’이라 함은 ‘중생의 마음[衆生心]’이라 이르느니라」 하시니.
 

  •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

 
 
○ 중생심衆生心이 제법諸法에 있어서는 법성法性 ‧ 진여眞如라 하고, 중생衆生에 있어서는 불성佛性 ‧ 여래장如來藏 ‧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이라 한다. 
 
 
* 八識意 向本覺也:
팔식八識과 의意가 본각本覺을 향함이라. 
 
 
‧ 『爾時大慧菩薩摩訶薩 復白佛言 世尊 般涅槃者 說何等法 謂為涅槃. 佛告大慧 一切自性習氣 藏意意識 見習轉變 名為涅槃』
 
그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반열반般涅槃[究竟涅槃]이라 함에, 어떠한 법을 설하여 열반涅槃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시되, 일체의 자성습기自性習氣인 장藏[八識]과 의意[七識]와 의식意識[六識]의 견見과 습習이 전환하여 변함을 이름하여 열반涅槃이라 한다. 

「自性習氣藏 謂八識 意 謂七識 意識 謂六識 即心意意識也 見習轉變者 八識即如來藏 無有轉變 所轉者見習耳 如來藏不覺妄動起見 由是人法 熏變成習 若能發明識即是性 頓離見習 是名涅槃」
 
자성습기장自性習氣藏을 일러 팔식八識이요, 의意를 일러 칠식七識이요, 의식意識을 일러 육식六識이니, 곧 심心 ‧ 의意 ‧ 의식意識이라. ‘견見과 습習이 전변轉變(전환하여 변함)한다’ 하는 것은, 팔식八識이 곧 여래장如來藏이라 전환하여 변함이 없으며, 전환하여 변하는 것은 견見과 습習일 뿐이다. 여래장如來藏을 각覺하지 아니하고 망령되이 동動하여 견見(견해)을 일으키니, 이로 말미암아 사람과 법이 움직이고 변하여 습習을 이룸이라. 만약 능히 식識을 발명發明하면 곧 이 성性이라 몰록 견見과 습習을 여의나니, 이 이름이 열반涅槃이라. 
 
- <능가아발다라보경심인楞伽阿䟦多羅寶經心印> 권삼卷三.
 
 
 
 
【世尊 若有不善者 欲來惱法師 聞我說此呪 頭破作七分 如阿黎樹枝】
 
세존아 약유불선자가 욕래뇌법사하면 문아설차주하고 두파작칠분을 여아리수지하리라
 
[세존世尊이시여, 만약 선善하지 못한 자가 와서 법사法師를 뇌惱롭게 하면, 저의 이 주呪 설說함을 듣고 머리가 쪼개어져 일곱 등분이 됨을 아리수지阿黎樹枝와 같이 되게 하겠나이다]
 
 
註曰 此樹果實落地 則作七箇分也
 
주註하여 이르되, 이것은 나무의 과실果實이 땅에 떨어짐에 일곱 등분이 됨이라. 
 
 
* 阿黎樹枝」: 아리수지.
 
‘난향초蘭香梢’라고도 하며, 구역舊譯에서는 ‘아리수지阿梨樹枝’라 한다. 난향화가 필 때에 나무 끝에서 꽃봉오리가 일곱 조각이 나는데 이로써 귀신이 죄인의 머리를 일곱 조각내는 것에 비유하였다.
 
 
 
 
【爾時 無邊身菩薩 即從座起 前白佛言 世尊 云何名爲天地八陽經 唯願世尊 爲諸聽衆 解說其義 令得覺悟 速達心本 入佛知見 永斷疑悔】
 
이시에 무변신보살이 즉종좌기하야 전백불언하시되 세존이여 운하명위천지팔양경이닛고 유원세존은 위제청중하야 해설기의하야 령득각오하며 속달심본하고 입불지견하야 영단의회케하소서
 
[그 때에 무변신보살無邊身菩薩이 곧 자리로 좇아 일어나 부처님 앞에서 아뢰어 말씀드리되, 세존世尊이시여, 어찌하여 이름이 천지팔양경天地八陽經이닛고? 오직 원컨대 세존世尊께서는 모든 청법대중聽法大衆을 위하시어 그 뜻을 해설하여 깨달음을 얻게 하시며, 속히 마음의 근본[心本]을 통달하고 부처님 지견[佛知見]에 들어가 영원히 의심과 후회를 끊게 하소서] 
 
 
註曰 無邊身者 肉身無邊耶 色身無邊耶 法身無邊耶 即是一箇無位眞人 其身無量無邊也 即從座起者 從獅子座而起耶 從蓮花座而起耶 從金剛座而起耶 從吉祥草座而起耶 即是從法空座而起也 前白佛言者 以口言耶 以舌言耶 以身言耶 以心言耶 若言心言 則心如工畵師 若言身言 則身如土木瓦石也 如是言者 是什麽物 如是聽者 是什麽物也 如是如是 反照如是現見矣 世尊云何下乃至爲諸聽衆者 天龍八部衆耶 僧俗七部衆耶 同生衆耶 異生衆耶 三十九衆耶 即是自心本具五十七衆也 解說其義者 有言說之義耶 無言說之義耶 有言無言不二之義耶 即是了了常知之義也 令得覺悟者 爲忽覺大夢耶 即是百千法門 無量妙義 令得覺悟也 速達心本者 以何爲心本 眞如爲心本耶 法性爲心本耶 若人欲達心本者 當淨其意如虛空也 佛知見者 揀衆生知見也 佛知見如何 衆生知見如何 入邪衆生知見也 靈知知知 佛知見也 如是知 永斷疑悔也
 
주註하여 이르되, 「무변신無邊身」이라 함은, 육신肉身이 갓이 없음인가? 색신色身이 갓이 없음인가? 법신法身이 갓이 없음인가? 곧 이 ‘위位가 없는 참 사람[無位眞人]’의 그 몸이 한량이 없고 갓이 없음이라. 「즉종좌기即從座起(곧 자리로 좇아 일어나)」라 함은, 사자좌獅子座를 좇아 일어남인가? 연화좌蓮花座를 좇아 일어남인가? 금강좌金剛座를 좇아 일어남인가? 길상초좌吉祥草座를 좇아 일어남인가? 곧 이는 법法이 공空한 자리로 좇아 일어남이라. 「전백불언前白佛言(부처님 앞에서 아뢰어 말씀드리되)」이라 함은, 입으로써 말씀드림인가? 혀로써 말씀드림인가? 몸으로써 말씀드림인가? 마음으로써 말씀드림인가? 만약 ‘마음으로써 말씀드린다’고 말한다면 마음은 ‘화가’와 같으며, 만약 ‘몸으로써 말씀드린다’고 말한다면 몸은 흙이나 나무나 기왓장이나 돌과 같음이니, 이와 같이 말하는 자[如是言者]는 이 무슨 물건이며 이와 같이 듣는 자[如是聽者]는 이 무슨 물건인가? 이와 같고 이와 같음[說聽者]은 ‘이와 같음[說聽]을 돌이켜 비춤[反照]’에 현견現見함(나타나 보임)이라. 
 
「세존운하하내지위제청중世尊云何下乃至爲諸聽衆(‘세존이시여 어찌하여’아래로부터 ‘모든 청법대중을 위하시어’까지,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이름을 천지팔양경이라 하나잇고? 오직 원컨대 세존께서는 모든 청법대중을 위하시어])」이라 함은, 천룡팔부天龍八部의 대중인가? 스님과 속인의 칠부七部 대중인가? 동생중同生衆인가? 이생중異生衆인가? 삼십구중三十九衆인가? 곧 이 자기 마음이 본래로 갖춘 오십칠중[自心本具 五十七衆]이라. 「해설기의解說其義(그 뜻을 해설하여)」이라 함은, 말 있음으로 설한 뜻인가? 말 없음으로 설한 뜻인가? 말 있음과 말 없음이 둘이 아닌 뜻인가? 곧 이 분명하고 분명하게 항상 아는[了了常知] 뜻[義]이라. 「령득각오令得覺悟(깨달음을 얻게 하시며)」라 함은, 홀연히 큰 꿈에서 깨어나게 함인가? 곧 이 백천百千의 법문法門과 무량無量한 묘의妙義를 깨닫게 하심이라. 「속달심본速達心本(속히 마음의 근본을 통달하며)」이라 함은, 무엇으로써 마음의 근본을 삼음인가? 진여眞如가 마음의 근본이 됨인가? 법성法性이 마음의 근본이 됨인가? 『만약 사람이 마음의 근본을 통달코자 하는 자는, 마땅히 그 뜻 깨끗하기가 허공과 같음[(若人欲識佛境界) 當淨其意如虛空]』이라.「불지견佛知見(부처님 지견에 들어가)」이라 함은, 중생의 지견과 가려냄이라. 부처님의 지견[佛知見]은 어떠하며 중생衆生의 지견知見은 어떠한가? 사견邪見에 들면 중생衆生의 지견知見이요, 신령한 앎[靈知]이 아는 놈을 알면 부처님의 지견[佛知見]이라. 이와 같이 앎이 「영단의회永斷疑悔(영원히 의심과 후회를 끊음)」이라. 
 
 
* 反照如是現見矣: 이와 같음을 돌이켜 비춤에 현견함이라. 
 
『現見菩薩曰 盡不盡爲二 法若究竟 盡若不盡 皆是無盡相. 無盡相即是空 空則無有盡不盡相. 如是入者 是爲入不二法門.』
 
현견보살現見菩薩이 말하되, 진盡과 불진不盡이 둘이 됩니다. 법法이 만일 구경究竟이면 진盡이 부진不盡과 같아 모두 이 무진상無盡相입니다. 무진상無盡相이 곧 공空이며, 공空이면 유진有盡과 불진不盡의 상相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들어가는 것이 이 불이법문入不二法門에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以親見盡不盡相 皆是無盡故 名現見 究竟盡者 即妄見生滅法也. 究竟不盡者 即自性所具智慧光明不生滅法也. 若以盡 爲盡則以無盡 爲無盡 是名二法 若以盡無盡法 皆是無盡者 以無盡相 即時空相故 即總入一空則無盡無盡相 名不二 故 大經 云一切凡夫行 莫不速歸盡 其性 如虛空 是故 無有盡.」
 
진盡(다함)과 부진不盡(다하지 아니함)의 상相을 친親히 보는 것이 모두 무진無盡(다함이 없음, 空)인 까닭으로 이름이 현견現見(無所不在, 現實)이라. ‘구경진究竟盡(구경에 다함)’이라 함은 곧 망령되이 보는 생멸법生滅法이요, ‘구경부진究竟不盡(구경에 다하지 아니함)’이라 함은 곧 자성自性이 갖춘 바의 지혜광명智慧光明인 불생멸법不生滅法이라. 만약 진盡(생멸)으로 진盡을 삼으면 무진無盡(불생멸)으로 무진無盡을 삼음이니 이 이름이 이법二法(두 법)이어니와, 만약 진盡(생멸)과 무진無盡(불생멸)의 법法이 다 이 무진無盡(다함이 없음)일진댄, 무진상無盡相(다함이 없는 상相, 空)이 곧 시時(시간)와 공空(공간)의 상相인 까닭이라, 곧 일공一空에 모두가 들어가면 진盡과 무진無盡이 없음이니 이름이 불이不二(둘 아님)이라. 그러므로 <대경大經>에 이르시되, 모든 범부凡夫의 행行이 속히 돌아가 다하지 않음이 없음이라. 그 성性이 허공虛空과 같을새 이런 까닭으로 다함이 있음이 없음[無有盡]이라 하니라. 
 
- <維摩詰所說經> [通潤直疏] 入不二法門品.
 
○ 현견現見: 현실現實이요, 목전目前이요, 공空이요, 심본心本이라.
 
 
 
* 同生衆耶 異生衆耶: 
동생중인가? 이생중인가?
 
‧ 「동생중同生衆」(한가지로 태어난 무리): <화엄경華嚴經>에서 첫모임에 모인 대중 가운데 보현보살普賢菩薩을 위시한 보살대중을 가리킨다. 이 모든 보살들은 다 여래의 선근善根 바다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 모든 보살들이 옛적에 다 비로자나여래毘盧遮那如來와 더불어 한 가지 선근을 모아서 보살행菩薩行을 닦아서 다 여래선근如來善根의 바다로부터 태어났다. 
 
「이생중異生衆」(다르게 태어난 무리): 여기서 보살대중 외의 삼십구류 화엄성중華嚴聖衆들은 다르게 태어난 무리라고 부른다. 세친, [십지경론十地經論] 등, [청량소淸涼䟽]에서도 첫 모임의 사십 부류 전체를 두 무리로 나누고 그 가운데 첫 번째인 보살을 한가지로 태어난 무리로, 나머지를 다르게 태어난 무리로 구분하며 그 의미에 대해서 다음 두 가지로 풀이한다. 첫째, 보살은 법성法性의 몸을 얻어서 사람과 같이 한 부류의 보살의 모습을 짓기 때문이고, 여러 부류[잡류雜類]는 다양하게 다른 생과 갖가지의 모습을 짓기 때문이다. 둘째, 보살菩薩은 모든 지위에 통하기 때문이고, 신중神衆은 법계의 차별된 덕이기 때문이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권일卷一.
 
 
* 自心本具 五十七衆也 : 
자기 마음이 본래로 갖춘 오십 일곱의 무리이라.
 
 
‧ 『初眾數者 謂此初會有五十五眾. 始從普賢至摩醯眾為三十四類, 後從善海還至普賢為十八眾, 牒前總為五十二眾. 海慧內眾并新集十方及勝音眾 牒前總為五十五眾 第二會中有新舊二眾 牒前總為五十七眾』
 
첫 번째 대중의 수[初眾數]라는 것은, 이를테면 이 초회初會에는 오십오(55) 대중[衆]이 있다. 처음 보현으로부터 마혜摩醯의 대중에 이르기까지 서른네(34) 가지 종류가 되고 뒤에 선해善海로부터 돌이켜 보현에 이르기까지 십팔(18) 대중이 되어 앞의 것을 합하여 모두 오십이(52) 대중이 된다. 또 해혜海慧의 내중內衆과 아울러 새로 모인 시방과 승음중勝音衆을 앞의 것과 합하여 모두 오십오(55) 대중이라고 한다. 제 이회 가운데 신구新舊의 두 대중이 있으니, 앞의 것과 합하여 모두 오십칠 (57)대중이 된다. 
 
-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 권제이卷第二.
 
 
 
 
【佛言 善哉善哉 善男子 汝等諦聽 吾今爲汝 分別解說 天地八陽之經 天者陰也 地者 陽也 八者 分別也 陽者 明解也 明解大乘無爲之理 了能分別八識因緣 空無所得】 
 
불언하사되 선재선재라 선남자야 여등은 제청하라 오금위여하야 분별해설 천지팔양지경하리라 천자는 음야요 지자는 양야라 팔자는 분별야요 양자는 명해야니 명해대승무위지리하야 요능분별팔식인연이 공무소득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선재善哉 선재善哉라(좋고 좋구나), 선남자善男子야,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내 너희를 위하여 천지팔양天地八陽의 경經을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천天은 음陰이요 지地는 양陽이라. 팔八은 분별分別이요 양陽은 밝게 앎이니, 대승大乘의 함이 없는 이치[無爲理]를 밝게 알아, 팔식八識의 인因과 연緣이 공空하여 얻을 바 없는 것임을 능히 밝혀 마침이니라.] 
 
 
註曰 佛言善哉下乃至八陽經者 滿口許他也 天陰地陽者 文有影略也 又陰陽和合然後 萬物生焉 八者 一切萬物 天森羅 地萬象 花花草草 物物頭頭 無非八識中所現之物也 陽者明解也者 一切唯識 識如幻夢 但是一心 心寂而知 目之曰朙解也 朙解大乘無爲之理者 揀有爲法也 如何是有爲法 五陰六入十二處十八界二十五有 此時有爲法也 如何是無爲法 四諦十二緣十度大悲 此是無爲法也 了能分別者 能了通八識也 所了根塵也 八識因緣者 無朙爲因生三細 境界爲緣生六麁也 如何是三細 生一業相 能見分轉相 所現分現相 是爲三細也 如何是六麁 智相相續執取計名造業受報 是爲六麁也 空無所得者 如虛空花而空無耶 如渴鹿野馬而空無耶 如蜄樓乾城而空無耶 完空都無而空無耶 即是眞空之中 緣起假有之法 皆無也 是故云空無所得也
 
주註하여 이르되, 「불언선재하내지팔양경佛言善哉下乃至八陽經(‘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아래로부터 ‘팔양경’까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좋고 좋구나 선남자야,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내 너희를 위하여 천지팔양의 경을 분별하여 해설하리라])」이라 함은, 남음이 없이 상대를 허락함이라. 「천음지양天陰地陽(하늘은 음이요 땅은 양)」이라 함은, 글에 숨은 의미가 있음이요, 또 『음陰과 양陽이 화합和合한 연후然後에야 만물萬物이 생生하도다』함이라. 「팔八」이라 함은, 일체一切의 만물萬物이니 하늘의 삼라森羅와 땅의 만상萬象과 꽃과 풀들과 물건 물건 머리마다[物物頭頭]가 팔식八識 가운데에 나타난 바의 물物 아님이 없음이라. 「양자명해야陽者明解也(양陽이라 함은 밝게 앎이니)」라 함은, 일체는 오직 식識이요 식識은 환幻이나 꿈과 같으니, 다만 이 ‘일심一心’의 마음이 고요하면서 아는 것[寂而知, (둘 없는 가운데에서 실다움이 있음)]을 이름하여 이르기를 ‘밝게 안다[朙解, 圓覺]’고 말함이라. 「명해대승무위지리朙解大乘無爲之理(대승 무위의 이치를 밝게 앎)」이라 함은, 유위법有爲法과 가려냄이라. 어떤 것이 이 유위법有爲法인가? 오음과 육입과 십이처와 십팔계와 이십오유가 이 때의[此時는 ‘此是’의 誤記인 듯] 유위법有爲法이라. 어떤 것이 이 무위법無爲法인가? 사제四諦(사성제)와 십이인연十二因緣과 십도(十波羅蜜: 布施, 持戒, 忍辱, 精進, 禪定, 般若, 方便, 願, 力, 智)와 대비大悲가 이 무위법無爲法이라. 
 
「요능분별了能分別(능히 밝혀 마침)」이라 함은, 능히 깨달아 마침은[能了]은 통팔식通八識(一心: 前五識 ‧ 六識 ‧ 七識 ‧ 八識의 통칭)이요, 마쳐지는 바[所了]는 육근六根과 육진六塵이라. 「팔식인연八識因緣(팔식의 인因과 연緣)」이라 함은, 무명無朙은 삼세三細를 낳는 인因이 되고 경계境界는 육추六麁를 낳는 연緣이 됨이니, 어떤 것이 이 삼세三細인가 하면, 한 번 ‘업상業相’이 생겨남에 능히 보는 분상分上인 ‘전상轉相’과 나타나는 바의 분상分上인 ‘현상現相’이 이 삼세三細가 됨이라. 어떤 것이 이 육추六麁인가 하면, ‘지상智相’과 ‘상속相續(相續相)’과 ‘집취執取(執取相)’와 ‘계명計名(計名字相)’과 ‘조업造業(起業相)’과 ‘수보受報(業繫苦相)’가 이 육추六麁가 됨이라. 「공무소득空無所得(空의 얻을 바 없음)」이라 함은, 허공虛空의 꽃과 같아서 공空하여 없음(얻을 바 없음)인가? 목마른 사슴이 아지랑이를 보는 것과 같아서 공空하여 없음인가? 신루蜄樓와 건성乾城의 신기루와 같아서 공空하여 없음인가? 완전히 공空하여 전혀 없는 공空의 없음인가? 곧 이 진공眞空 가운데에 ‘반연攀緣하여 일어나는 임시의 법法[緣起假有]’이 모두 없음이니, 이러한 까닭으로 이르되, ‘공空인 얻을 바 없음[空無所得]’이라. 

 

 
* 一切唯識 識如幻夢 但是一心 心寂而知 目之曰朙解也:
일체는 오직 식識이요 식은 환幻이나 꿈과 같으니, 다만 이 ‘일심一心’의 마음이 ‘고요하면서도 아는 것’을 일컬어 ‘밝게 안다[朙解, 圓覺]’고 말함이라.
 
‧ 『萬法이 虛僞ᄒᆞ야 緣會而生ᄒᆞᄂᆞ니 生法이 本無ᄒᆞ나 「一切唯識이니 識은 如幻夢ᄒᆞ야 但是一心이니 心은 寂而知니 目之圓覺이니」 彌滿清淨ᄒᆞ야 中不容他ᅟᅵᆯᄉᆡ 故로 德用이 無邉ᄒᆞ나 皆同一性ᄒᆞ니 性이 起爲相이라 境智ㅣ 歷然ᄒᆞ며 相이 得性融이라』 
 
만법萬法이 허위虛僞하여 연緣이 모여서 생겨나나니 생겨난 법法은 본래本來로 없으나, 「일체一切가 오직 식識이니 식識은 환幻과 몽夢과 같아서 오직 이 한 마음이니, 마음은 고요하되 아나니[寂而知] 이름을 원각圓覺이라」 하나니, 가득하여 청정淸淨하여 가운데 다른 것을 들이지 아니하는 까닭에 덕德과 용用이 갓이 없으나 다 한가지의 한 성性이니 성性이 일어나 상相이 된 것이라. 경境과 지智가 분명하며 상相이 성性의 녹음을 득得한 것이라. 
 

  • <원각경언해圓覺經諺解> 서권序卷.

 
 
‧ 『謂本唯非染非淨ᄒᆞᆫ 一法界心이 由不覺之ᄒᆞ야 名如來藏이오 與生滅合ᄒᆞ야 成阿梨邪識ᄒᆞ고  復由執此ᄒᆞ야 爲我法故로 轉起餘七ᄒᆞ야 成八種識ᄒᆞ고 各由識體ᄒᆞ야 起能見分ᄒᆞ니 由能見故로 似外境이 現ᄒᆞ니 執取此境ᄒᆞ야 爲定實故로 造種種別業共業ᄒᆞ니 故로 內感自身ᄒᆞ고 外感器界一切諸法ᄒᆞ니라』
 
이르되 본래本來 오직 염染(물듦) 아니며 정淨(깨끗함) 아닌 한 법계심法界心이 알지 못함을 말미암아 이름이 여래장如來藏이오[頓敎], 생멸生滅과 합하여 아뢰야식何黎邪識이 이루어지고 [實敎], 각각各各 식識의 체體를 말미암아 능能한 견분見分을 일으키니 능能한 견見을 말미암는 까닭으로 밖의 경境이 현現함(나타남) 같으니 [權敎], 이 경계[境]을 잡아가져서 일정一定한(한결같이 정해진) 실제[實]로 삼는 까닭에 갖가지 별업別業과 공업共業을 짓나니, 그러므로 안으로 제 몸을 혹感하고 밖으로 기계器界의 일체제법一切諸法을 혹感하나니라 [聲聞敎].
 

  • <원각경언해圓覺經諺解>

 
 
‧ 『先德云 如來藏者 即一心之異名 何謂一心 謂眞妄染淨 一切諸法 無二之性 故名爲一 此無二處 諸法中實 不同虛空 性自神解 故名爲心 是以若於外別求 從他妄學者 猶如鑽冰覓火 壓沙出油 以冰砂非油火之正因 欲求濟用 徒勞功力』

 

선덕先德이 이르시되, “여래장如來藏이라 함은, 곧 일심一心의 다른 이름이니, 무엇을 일러 일심一心이라 하는가? 참[眞]과 망령됨[妄], 더러움[染]과 깨끗함[淨]인 일체의 모든 법은 두 성性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름하여 일一[하나]이라 하고, 이 둘이 없는 곳인 모든 법 가운데의 실實다움은 허공과는 같지 않아 성性이 스스로 신령하게 안다. 그러한 까닭으로 이름하여 심心[마음]이라 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만약 밖에서 따로 구하거나 다른 사람을 좇아서 망령되이 배우려는 자는, 마치 얼음을 뚫어서 불을 찾고 모래를 눌러서 기름을 짜려는 것과 같아서, 기름과 불의 바른 원인[正因]이 아니니 쓸모 있게 쓰고자 하나 애써 공력功力만 허비할 뿐이다. 
 

  • [종경록宗鏡錄] 권이卷二.

 
 

* 無朙爲因生三細 境界爲緣生六麁也:
무명無明은 삼세三細를 낳는 인因이 되고 경계境界는 육추六麁를 낳는 연緣이 됨이라.
 
生一業相 能見分轉相 所現分現相 是爲三細也: 
한 번 업상業相이 생겨남에 능히 분별하여 보는 전상轉相과 분별하여 나타나지는 현상現相이 이 ‘삼세三細’가 됨이라.
 
 
‧ 삼세상三細相: 업상業相, 전상轉相, 현상現相.
 
『復次依不覺故生三種相 與彼不覺相應不離 云何爲三 一者無明業相 以依不覺故心動 說名爲業 覺則不動 動則有苦 果不離因故 二者能見相 以依動故能見 不動則無見 三者境界相 以依能見故境界妄現 離見則無境界』
 
다시 불각不覺에 의依하기 때문에 세 가지 상相이 생겨서 저 불각不覺과 상응相應하여 여의지 않으니, 무엇이 셋인가? 첫째는 무명업상無明業相[업상業相]이다. 불각不覺에 의하기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업業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깨달으면 움직이지 않으며 움직이면 고통이 있게 되니, 결과는 원인을 여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능견상能見相[전상轉相]이다. 움직임에 의하기 때문에 볼 수 있게 된 것이니, 움직이지 않는다면 볼 것이 없을 것이다. 세 번째는 경계상境界相[현상現相]이다. 능견에 의하기 때문에 경계가 거짓되이 나타나는 것이니 견見을 여읜다면 경계境界도 없어질 것이다. 
 
 
‧ 육추상六麤相: 지상智相, 상속상相續相, 집취상執取相, 계명자상計名字相, 기업상起業相, 업계고상業繫苦相.
 
『以有境界緣故 復生六種相 云何爲六 一者 智相 依於境界 心起分別愛與不愛故 二者 相續相 依於智故生其苦樂 覺心起念相應不斷故 三者 執取相 依於相續緣念境界 住持苦樂 心起著故 四者 計名字相 依於妄執 分別假名言相故 五者 起業相 依於名字 尋名取著 造種種業故 六者 業繫苦相 以依業受果不自在故』
 
경계境界의 연緣이 있기 때문에 다시 여섯 가지의 상相을 내는 것이니,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첫째는 지상智相이니, 경계에 의하여 마음이 일어나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음을 분별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상속상相續相이니, 지상에 의하기 때문에 그 고락苦樂을 내어서 각심覺心(覺觀心)으로 망념妄念을 일으켜 상응相應하여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는 집취상執取相이니, 상속에 의하여 경계境界를 반연攀緣하여 생각해서 고락苦樂을 주지住持하여 마음이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넷째는 계명자상計名字相이니, 잘못된 집착에 의하여 거짓된 명언名言의 상相을 분별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기업상起業相이니, 명자名字에 의하여 이름을 따라가면서 집착하여 여러 가지 업業을 짓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업계고상業繫苦相이니, 업業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아서 자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 空無所得: 공空인 얻을 바 없음.
 
 
‧ 『善現 由此前際後際斷故一切法斷 善現 此一切法前後際斷 卽是寂滅 卽是微妙 卽是如實 謂空無所得 道斷愛盡無餘 離染永滅涅槃 善現 菩薩摩訶薩求證無上正等菩提 欲爲有情宣說開示如是寂滅微妙之法 善現 是爲菩薩摩訶薩爲與世閒作洲渚故 發趣無上正等菩提』
 
선현善現아,이 앞끝과 뒤끝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온갖 법이 단절된 것이니라. 선현아,이 온갖 법의 앞뒤 끝이 단절됨이 바로 고요히 사라짐[寂滅]이요 바로 미묘微妙함이요 바로 여실如實이니,공空하여 얻을 바가 없어서[空無所得], 길이 끊어지고 애욕이 다하여 남음이 없고 물듦을 여의며 영원히 사라짐이 열반涅槃이니라. 선현아,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구하여 증득하고는, 유정有情들에게 이와 같이 적멸寂滅과 미묘微妙의 법을 연설하고 보이고자 함이니,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세간世間에 섬이 되어 주기 위하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나아가는 것이니라.
 
-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 권제삼백일卷第三百一 십오十五.
 
 
 
* 如蜄樓乾城: 
신루蜄樓와 건성乾城의 신기루와 같은.
 
 
‧ 신루蜄樓- 전설의 대합조개가 내뿜은 기운으로 이루어진 성곽. 
 건성乾城- 건달바성乾闥婆城, 건달바 신이 공중에 변화하여 보인 성곽.
 
 
 
 
【又云八識爲經 陽朙爲緯 經緯相投 以成經敎 故名八陽經 八者 是八識 六根是六識 含藏識阿賴耶識 是名八識 朙了分別 八識根源 空無所有 即知兩眼是光朙天 光朙天中 即現日月光朙世尊 兩耳是聲聞天 聲聞天中 即現無量聲如來 兩鼻是佛香天 佛香天中 即現香積如來 口舌是法味天 法味天中 即現法喜如來 身是盧舍那天 盧舍那天中 即現成就盧舍那佛 盧舍那鏡像佛 盧舍那光朙佛 意是無分別天 無分別天中 即現不動如來大光朙佛 心是法界天 法界天中 即現空王如來 含藏識天 演出阿那含經 大般涅槃經 阿賴耶識天 演出大智度論經 瑜伽論經 善男子 佛即是法 法即是佛 合爲一相 即現大通智勝如來】
 
우운팔식이 위경하고 양명이 위위하니 경위상투하야 이성경교라 고로 명팔양경이니라 팔자는 시팔식이니 육근이 시육식이요 함장식과 아뢰야식이 시명팔식이라 명료분별팔식근원이 공무소유하면 즉지양안은 시광명천이니라 광명천중에 즉현일월광명세존이며 양이는 시성문천이니 성문천중에 즉현무량성여래며 양비는 시불향천이니 불향천중에 즉현향적여래며 구설은 시법미천이니 법미천중에 즉현법희여래며 신은 시노사나천이니 노사나천중에 즉현성취노사나불과 노사나경상불과 노사나광명불이며 의는 시무분별천이니 무분별천중에 즉현부동여래대광명불이며 심은 시법계천이니 법계천중에 즉현공왕여래며 함장식천에 연출아나함경과 대반열반경이며 아뢰야식천에 연출대지도론경과 유가론경이니라 선남자야 불즉시법이요 법즉시불이니 합위일상하야 즉현대통지승여래니라
 
[또 이르되, 팔식八識이 날줄이 되고 양명陽朙(밝게 앎)이 씨줄이 되니, 날줄과 씨줄이 서로 맞아서 경經의 가르침을 이룸이라 그러므로 이름이 <팔양경八陽經>이니라. ‘팔八’은 이 팔식八識이니, 육근六根이 이 육식六識이요 함장식含藏識과 아뢰야식阿賴耶識의 이 이름이 팔식八識이라. 팔식八識의 근원根源이 공空하여 있는 바가 없음을 분명하게 밝히면, 곧 두 눈은 이 광명천光朙天임을 아나니, 광명천光朙天 가운데에 곧 일월광명세존日月光朙世尊을 나투며, 두 귀는 이 성문천聲聞天이니 성문천聲聞天 가운데에 곧 무량성여래無量聲如來를 나투며, 두 코는 이 불향천佛香天이니 불향천佛香天 가운데에 곧 향적여래香積如來를 나투며, 입과 혀는 이 법미천法味天이니 법미천法味天 가운데에 곧 법희여래法喜如來를 나투며, 몸은 이 노사나천盧舍那天이니 노사나천盧舍那天 가운데에 곧 성취노사나불成就盧舍那佛과 노사나경상불盧舍那鏡像佛과 노사나광명불盧舍那光朙佛을 나투며, 뜻은 이 무분별천無分別天이니 무분별천無分別天 가운데에 곧 부동여래대광명불不動如來大光朙佛을 나투며, 마음은 이 법계천法界天이니 법계천法界天 가운데에 곧 공왕여래空王如來를 나투며 함장식천含藏識天에 아나함경阿那含經과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을 연설하여 내며 아뢰야식천阿賴耶識天에 대지도론경大智度論經과 유가론경瑜伽論經을 연설하여 냄이니라. 선남자善男子야, 부처가 곧 이 법法이요 법法이 곧 이 부처이니, 합하여 한 상相이 되어 곧 대통지승여래大通智勝如來를 나툼이니라] 
 
 
註曰 又云八識爲經者 世間出世間法 種子現行 此八識 皆含攝 故云八識爲經也 陽朙爲緯者 楞嚴經云 空生大覺中 如海一漚發 圓覺經云 無邊虛空 覺所顯發 故云陽朙爲緯也 經緯云云 名眞妄和合 非一非二 名阿賴耶識 妄識性空 即成大圓鏡智加持主佛也 加被自性無礙菩薩 以成八陽經 加被自性普贒菩薩 以成華嚴經 加被自性文殊 以成般若經 加被自性觀音 以成大悲經 加被自性地藏 以成地藏經 加被自性大慧 以成楞伽經 加被自性金剛藏 以成圓覺經 加被自性迦葉 以成涅槃經 加被自性阿難 以成楞嚴經 加被自性彌勒 以成下生經 加被自性舍利弗 以成法華經 加被自性憍陳如 以成阿含經 加被自性須菩提 以成方等經 加被自性目連 以成目連經 加被自性樓䭾 以成四十二章經 加被自性富樓羅 以成彌陀經 如是乃至八萬四千經敎 盡不出此陽朙八識也 故名八陽經下乃至空無所有者 重擧十八界 以朙六根成佛之意也 即知兩眼下云云者 左眼即是根本不動智月光世尊 右眼即是後得智是日光世尊 此兩智大光朙 周遍法界 當處出生 隨處滅盡 故日月光朙世尊云也 兩耳云云者 左耳聞靜聽智 即是不動尊佛也 右耳聞動聽智 即是藥師佛也 此兩智 三世初無間斷時 十方都無空缺處 周遍法界 當處出生 隨處滅盡故即現云云也 兩鼻云云者 左鼻聞靜香智 即是香積佛也 右鼻聞動香智 即是妙香幢佛 此兩智 百千日月 混無光色 周遍法界 當處出生隨處滅盡 故即現云云也 口舌云云者 是辯才智 即是妙辯佛也 此一箇懸河口辯之智 周遍法界當處出生 隨處滅盡 故即現云云也 身是云云者 是身智 即是妙色身佛也 這一箇智光朙 遍照法界 當處出生 隨處滅盡 故即現云云也 意是云云者 此意即是妙觀察智佛也 此智範圍天地 包呑萬象 周遍法界 當處出生 隨處滅盡 故即現云云也 心是云云者 此心即是大圓鏡智佛 這箇智遍一切處 含藏有漏無漏福 故即現云云也 善男子云云者 即是一乘實智之果佛也 其智之體 囊括十虛爲大 徹照塵劫爲通 物無與等爲勝 以理推之 則衆生本源之覺體也 衆生覺體 本來若此 但爲衆生 爲自迷色心之內故 小而不大 封滯無朙之殼故 碍而不通 潜伏妄識之陋故 塵而不勝 夫能了色心之迷滯 破無朙之封殼 則勝智現前 與佛無別矣 又勝智無古無今矣
 
주註하여 이르되, 「우운팔식위경又云八識爲經(또 이르되, 팔식이 날줄이 됨)」이라 함은,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 법法인 종자種子[因]와현행現行[果]은 이 팔식八識이 다 품어 가졌으니, 그러므로 이르되 ‘팔식八識이 날줄[經]이 됨’이라. 「양명위위陽朙爲緯(밝게 앎이 씨줄이 됨)」이라 함은, <능엄경楞嚴經>에 이르기를, 『공空이 대각大覺 가운데 생겨남은 바다에 한 거품이 일어남과 같다』 하였으며, <원각경圓覺經>에 이르기를, 『갓 없는 허공虛空이 각覺의 나툰 바이니라』 하였으니, 이러한 까닭으로 이르되, 양명陽朙(밝게 앎)이 씨줄[緯]이 됨이라. 「경위운운經緯云云(‘날줄과 씨줄’ 운운[經緯相投 以成經敎, 날줄과 씨줄이 서로 맞아서 경經의 가르침을 이룸])」이라 함은, ‘진망화합眞妄和合’이라 하나 아니며 둘 아니요, 이름이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 망식妄識의 성性이 공空이니, 곧 대원경지大圓鏡智인 가지加持의 주불主佛을 이룸이라. 자성무애보살自性無礙菩薩을 가피加被하여 <팔양경八陽經>을 이루고, 자성보현보살自性普贒菩薩을 가피하여 <화엄경華嚴經>을 이루며, 자성문수自性文殊를 가피하여 <반야경般若經>을 이루고, 자성관음自性觀音을 가피하여 <대비경大悲經>을 이루며, 자성지장自性地藏을 가피하여 <지장경地藏經>을 이루고, 자성대혜自性大慧를 가피하여 <능가경楞伽經>을 이루며, 자성금강장自性金剛藏을 가피하여 <원각경圓覺經>을 이루고, 자성가섭自性迦葉을 가피하여 <열반경涅槃經>을 이루며, 자성아난自性阿難을 가피하여 <능엄경楞嚴經>을 이루고, 자성미륵自性彌勒을 가피하여 <하생경下生經>을 이루며, 자성사리불自性舍利弗을 가피하여 <법화경法華經>을 이루고, 자성교진여自性憍陳如를 가피하여 <아함경阿含經>을 이루며, 자성수보리自性須菩提를 가피하여 <방등경方等經>을 이루고, 자성목련自性目連을 가피하여 <목련경目連經>을 이루며, 자성루타自性樓䭾(아누루타)를 가피하여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을 이루고, 자성부루나自性富樓羅를 가피하여 <미타경彌陀經>을 이루며, 이와 같이 하여 나아가 팔만사천경八萬四千經의 가르침이 전부가 다 이 「팔식八識(因果)을 양명陽朙케 함(밝게 앎, 圓覺)」을 벗어나지 않음이라. 
 
「고명팔양경하내지공무소유故名八陽經下乃至空無所有(‘그러므로 팔양경’아래부터 ‘공하여 있는 바가 없음’까지, [그러므로 이름이 팔양경이니라. 팔이라 하는 것은 이 팔식이니, 육근이 이 육식이요 함장식과 아뢰야식의 이 이름이 팔식이라. 팔식의 근원이 공하여 있는 바가 없음을 분명하게 밝히면])」이라 함은, 거듭 십팔계十八界를 들어서 육근六根이 성불成佛하는 뜻을 밝힘이라. 「즉지양안하운운即知兩眼下云云(‘곧 두 눈이 ~임을 아느니라’ 아래부터 운운)」 함은, 왼쪽 눈은 곧 이 근본부동지根本不動智인 월광세존月光世尊이요 오른쪽 눈은 곧 이 후득지後得智인 일광세존日光世尊이니, 이 두 지智의 대광명大光朙이 법계法界에 두루 하여 곳을 당해서 생겨나고[當處出生] 곳을 따라서 멸해 다하니[隨處滅盡], 이러한 까닭으로 일월광명세존日月光朙世尊이라고 이름이라. 「양이운운兩耳云云(‘두 귀’ 운운)」 함은, 왼쪽 귀는 고요히 들림(소리없음)을 듣는 지智이니 곧 이는 부동존불不動尊佛이요 오른쪽 귀는 움직이며 들림(소리 있음)을 듣는 지智이니 곧 이는 약사불藥師佛이라. 이 두 지智는 삼세三世에 잠깐도 그친 때가 없으며 시방十方이 다 비어서 이지러진 데가 없어서 법계法界에 두루 하여 곳을 당하여 생겨나고 곳을 따라서 멸해 다하니, 그러므로 「즉현운운即現云云(‘곧 나툰다’ 운운, [即現無量聲如來, 곧 무량성여래를 나툰다])」함이라. 「양비운운兩鼻云云(‘양쪽 코’ 운운)」 함은, 왼쪽 코는 고요한 향香(향기 없음)을 맡는 지智이니 곧 이 향적불香積佛이요 오른쪽 코는 움직임의 향香(향기 있음)을 맡는 지智이니 곧 이 묘향당불妙香幢佛이라, 이 두 지智는 백천百千의 일월日月이 혼混(혼돈)하여 빛과 색이 없어 법계法界에 두루 해서 곳을 당하여 생겨나고 곳을 따라서 멸해 다하니, 이런 까닭으로 「즉현운운即現云云(‘곧 나툰다 운운, [即現香積如來, 곧 향적여래를 나툰다])」함이라. 
 
「구설운운口舌云云(‘입과 혀’ 운운)」 함은, 이 변재辨才[言辯, 말을 잘함]의 지智이니 곧 이 묘변불妙辯佛이라, 이 급히 흐르는 물과도 같은 구변口辯의 지智는 법계法界에 두루 해서 곳을 당하여 생겨나고 곳을 따라 멸해 다하니, 이런 까닭으로 「즉현운운即現云云, 곧 나툼 운운[即現法喜如來, 곧 법희여래를 나툰다])’함이라. 「신시운운身是云云(‘몸은 이’ 운운)」 함은, 이 몸의 지智이니 곧 이 묘색신불妙色身佛이라, 이 하나의 지智인 광명光朙은 법계法界를 두루 비춤에 곳을 당하여 생겨나고 곳을 따라서 멸해 다하니, 이러한 까닭으로 「즉현운운即現云云(곧 나툼 운운, [即現成就盧舍那佛 盧舍那鏡像佛 盧舍那光朙佛, 곧 성취노사나불과 노사나경상불과 노사나광명불을 나툰다)’함이라. 「의시운운意是云云(‘뜻은 이’ 운운)」  함은, 이 뜻[意]은 곧 이 묘관찰지불妙觀察智佛이라, 이 지智(뜻의 지智)는 천지天地를 범위로 하여 만상萬象을 싸서 안으며 법계法界에 두루 해서 곳을 당하여 생겨나고 곳을 따라서 멸해 다하니, 이런 까닭으로 「즉현운운即現云云(곧 나툼 운운, [即現不動如來大光朙佛곧 부동여래대광명불을 나툰다])」함이라. 「심시운운心是云云(‘마음은 이’ 운운)」 함은, 이 마음[心]은 곧 이 대원경지불大圓鏡智佛라, 이 지智[마음의 지智]는 일체처一切處에 두루 하여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의 복福을 머금어 감추었으니, 이러한 까닭으로 「즉현운운即現云云(곧 나툼 운운, [即現空王如來 含藏識天 演出阿那含經 大般涅槃經 阿賴耶識天 演出大智度論經 瑜伽論經, 곧 공왕여래를 나투며, 함장식천에 <아나함경>과 <대반열반경>을 연설하여 내며, 아뢰야식천에 <대지도론경>과 <유가론경>을 연설하여 낸다])」함이라. 
 
「선남자운운善男子云云(‘선남자’ 운운, [善男子 佛即是法 法即是佛 合爲一相 即現大通智勝如來, 선남자야, 부처가 곧 이 법이요 법이 곧 이 부처이니 합하여 한 상相이 됨에 곧 대통지승여래를 나투느니라]) 」이라 함은, 곧 이 일승一乘 실지實智의 과果인 부처이라, 그 ‘지智’의 체體가 시방 허공을 싸서 안음이 ‘대大’가 되고, 진겁塵劫을 사무쳐 비춤이 ‘통通’이 되며, 물物이 더불어 같을 이가 없으심이 ‘승勝’이 되나니[大 ‧ 通 ‧ 智 ‧ 勝], 이치로 미루어보면 ‘중생衆生의 본래 근원根源인 각체覺體’이라. 중생衆生의 각체覺體가 본래本來 이와 같건만 다만 중생이 되어 색심色心(몸과 마음) 안에 스스로가 미혹된 까닭으로 적어서 크지 못하며[不大], 무명의 껍질에 갇혀서 걸린 까닭으로 막혀서 통하지 못하며[不通], 망령된 식識의 더러운 것이 숨어있는 까닭으로 티끌이 수승하지 못하나니[不勝], 대저 색色과 심心의 미혹한 막힘을 능히 사무쳐 알아[明解] 무명無明의 막힌 껍질을 부수어버리면 수승殊勝한 지智가 앞에 나타나 부처와 더불어 다름이 없도다. 또 수승殊勝한 지智는 옛이 없으며 지금이 없음이로다.
 
 
* 即知兩眼是光朙天..... :
곧 두 눈이 이 광명천光朙天임을 아느니라...
 
 
‧ 『爾時 智輪大海辯才童子白佛言:世尊 云何衆生力因緣生故 如來力亦生 如來力生故 衆生力亦生 佛言:如是 智輪童子 如來力 衆生力 此之二力一不異故 名爲一界如 衆生力因緣 如來力生 如來力因緣 衆生力生 是故 如來一切智覺 爾時 智輪大海辯才童子白佛言:世尊 云何如來 多陁阿伽度 阿羅呵 三藐三佛陁一切種智生 佛言:十二因緣生故 智輪童子 如來 多陁阿伽度 阿羅呵 三藐三佛陁一切種智生 智輪童子 十二因緣者 所謂 眼色 耳聲 鼻香 舌味 身觸 意法 此因緣智故 一切種智生 言因緣智故 恐因緣生故』
 
그때 지륜대해변재 동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중생의 힘[力]의 인연으로 생기기 때문에 여래의 힘도 또한 생기며, 여래의 힘이 생기기 때문에 중생의 힘도 생기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지륜 동자여, 여래의 힘과 중생의 힘, 이 두 힘은 하나여서 다르지 아니하기 때문에 ‘일계여一界如’라고 하느니라. 중생력의 인연으로 여래의 힘이 생기고, 여래의 힘의 인연으로 중생의 힘이 생기기 때문에 여래如來의 일체지一切智를 깨닫게 되느니라. 
 
그때 지륜대해변재 동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여래ㆍ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의 일체종지가 생겨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륜 동자여, 『「십이인연十二因緣이 생기기 때문에 여래ㆍ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의 일체종지一切種智가 생기느니라.」 지륜 동자여, 십이인연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안眼ㆍ색色ㆍ이耳ㆍ성聲ㆍ비鼻ㆍ향香ㆍ설舌ㆍ미味ㆍ신身ㆍ촉觸ㆍ의意ㆍ법法이다. 이 인연을 알기[智] 때문에 일체종지가 생기느니라.』
 
- <역장엄삼매경力莊嚴三昧經>
 
 
* 一乘實智之果佛也 其智之體 囊括十虛爲大 徹照塵劫爲通 物無與等爲勝 以理推之 則衆生本源之覺體也:
 
일승실지一乘實智의 과果인 부처이라. 그 ‘지智’의 체體가 시방 허공을 싸서 안음이 ‘대大’가 되고, 진겁을 사무쳐 비추심이 ‘통通’이 되며, 물物이 더불어 같을 이가 없으심이 ‘승勝’이 되나니[大 ‧ 通 ‧ 智 ‧ 勝], 이치로 미루어보면 ‘중생衆生의 본래 근원源인 각체覺體’이라.
 
 
‧ 『大通智勝者ᄂᆞᆫ 一乘實智之果佛也ㅣ시니 其智之體ㅣ 囊括十虛ㅣ 爲大시고 徹照塵劫이 爲通이시고 物無與等이 爲勝이시니 以迹으로 言之컨댄 則釋迦ㅅ 因地之宗師ㅣ시고 以理로 推之컨댄 則衆生의 本源之覺體也ㅣ시니 衆生覺體ㅣ 本來若此ㅣ언마ᄅᆞᆫ 但爲自迷色心之內故로 小而不大ᄒᆞ며 封滯無明之殼故로 礙而不通ᄒᆞ며 潛伏妄識之陋故로 劣而不勝ᄒᆞ니 夫能了色心之迷滯ᄒᆞ야 破無明之封殼ᄒᆞ면 則勝智現前ᄒᆞ야 與佛無別矣리라 言過無量不思議劫者ᄂᆞᆫ 明此智體ㅣ 其來ㅣ 無始라 非情塵數量의 所及也ᄒᆞ시니라』
 
대통지승大通智勝은 일승一乘 실지實智의 과果인 불佛이시니, 그 지체智體가 십허十虛를 싸서 안음이 대大이시고, 진겁塵劫을 사무쳐 비추심이 통通이시고, 물物이 저와 같은 이가 없음이 승勝이시니, 자취로 살피건댄 석가釋迦의 인지因地에 종사宗師이시고, 이치로 추심推尋컨댄 중생衆生의 본래本來의 근원根源인 각체覺體이시니, 중생衆生의 각체覺體가 본래本來로 이와 같건마는 오직 색심色心 안에 저 스스로 미혹迷惑하여 적어서 크지 못하며, 무명無明의 껍질에 갇혀서 걸린 까닭으로 막혀서 통通하지 못하며, 망식妄識의 더러운 것이 숨어있음에 졸렬하여서 수승殊勝하지 못하니, 색심色心의 미혹迷惑한 걸림을 능能히 사무쳐 알아 무명無明의 막힌 껍질을 부수어버리면 수승殊勝한 지智가 앞에 나타나 부처와 다름이 없으리라. ‘무량無量한 부사의겁不思議劫을 지나다’ 이르심은, 이 지체智體가 그 옴이 비롯함이 없음이라 뜻 티끌 수數 헤아림에 미칠 바가 아닌 줄을 밝히시니라.
 

  • <법화경언해法華經諺解> 삼권三卷.

 
 
 
 
【佛說此經時 一切大地 六種震動 光照天地 無有邊際 浩浩蕩蕩 而無所名 一切幽冥 皆悉朙朗 一切地獄 竝皆消滅 一切罪人 俱得離苦】
 
불설차경시에 일체대지가 육종진동하며 광조천지하야 무유변재하고 호호탕탕하야 이무소명이라 일체유명은 개실명랑하고 일체지옥은 병개소멸하며 일체죄인은 구득리고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실 때에 일체의 대지大地가 육종六種으로 진동震動하며 빛이 천지天地를 비추어서 끝 간 데가 있음이 없고 호호탕탕浩浩蕩蕩하여 이름 할 바가 없음이라. 일체의 검고 어두움은 다 실로 밝아서 환하여지고 일체의 지옥은 모두가 나란히 사라졌으며 일체의 죄인罪人은 모두 함께 고통을 여의었느니라]
 
 
註曰 佛說云云者 反本還源時云也 無朙住持 色愛住持 欲愛住持 言一切大地也 六根所感山河大地頓破 故云六種震動也 光照乃至無有邊際者 敎所謂一毛端現寶王刹 一微塵裏 轉大法輪也 禪所謂百千法門 無量妙義 一毛頭上 識得根源者是也 浩浩云云者 大智慧光朙 名不得狀不得云也 而無所名者 俗諦假立故 一切萬法皆有也 眞諦之理不立一塵故 而無云云也 所謂佛也打祖也打 眞人面前休說假者是也 一切云云者 慧眼觀時地獄空耶 即是妄本空心本淨處云也
 
주註하여 이르되, 「불설운운佛說云云(부처님께서 설함 운운, [佛說此經時 一切大地 六種震動,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실 때에 일체의 대지는 육종으로 진동하고])」 함은, 반본환원反本還源(뿌리로 돌이켜 근원으로 돌아옴)한 때時를 말함이니, 무명주지無朙住持와 색애주지色愛住持와 욕애주지欲愛住持가 요컨대「일체대지一切大地(모든 대지)」요, 육근六根이 산하대지山河大地의 몰록 부서짐을 느낀 것이니 그러므로 이르되 「육종진동六種震動(육종으로 진동함)」이라. 「광조내지무유변제光照乃至無有邊際(‘빛은 비추어’부터 ‘끝 간 데가 없음’까지, [光照天地無有邊際, 빛이 천지를 비추어서 끝 간 데가 있음이 없으며)」라 함은, 교敎의 이른바 『한 터럭 끝에서 부처님 나라를 나투고, 한 티끌 속에서 대법륜을 굴린다[一毛端現寶王刹 一微塵裏轉大法輪]』하는 것과, 선禪의 이른바 『백 천의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뜻을 한 터럭 끝을 향하여 문득 근원을 알았다[百千法門 無量妙義 一毛頭上 識得根源]』 함이 이것이라. 「호호운운浩浩云云([호호탕탕浩浩蕩蕩하여, 넓고도 광대하여])」 함은, 대지혜大智慧의 광명光朙은 이름 지을 수 없고 모양 그릴 수 없음을 이름이라. 「이무소명而無所名(이름할 바가 없음)」이라 함은, 속제俗諦는 임시로 세워진 까닭으로 일체만법一切萬法이 다 ‘있음[有]’이요, 진제眞諦의 이치로는 한 티끌도 세울 수 없는 까닭으로 ‘없음[無]’이라 운운 함이니, 이른바 『부처도 치고 조사도 친다』거나 『진인眞人 앞에서 거짓 설說함을 쉬어라』한 것이 이것이라. 「일체운운一切云云(‘일체의’ 운운, [一切幽冥 皆悉朙朗 一切地獄 竝皆消滅 一切罪人 俱得離苦, 일체의 검고 어두움은 다 실로 밝아서 환하여지고, 일체의 지옥은 모두가 나란히 사라졌으며 일체의 죄인은 모두 함께 고통을 여의었느니라])」 함은, 혜안慧眼으로 관觀하는 때에 지옥地獄이 공空하여 짐인가? 곧 이는 『망妄은 본래로 공空이며 마음[心]은 본래로 깨끗함[淨]인 곳』을 말함이라.
 
 
* 無朙住持 色愛住持 欲愛住持: 
무명주지와 색애주지와 욕애주지.

‧ 『煩惱有二種 何等爲二 謂住地煩惱及起煩惱 住地有四種 何等爲四 謂見一處住地 欲愛住地 色愛住地 有愛住地 此四種住地 生一切起煩惱 起者剎那心剎那相應 世尊 心不相應 無始無明住地』
 
번뇌는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이 두 가지인가 하면, 주지번뇌住持煩惱와 기번뇌起煩惱를 말합니다. 주지번뇌住持煩惱에는 또 네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와 욕애주지欲愛住地와 색애주지色愛住地와 유애주지有愛住地이며, 이 네 가지 주지번뇌가 일체의 기번뇌起煩惱를 일으킵니다. ‘기起’라 하는 것은 찰나의 마음이 찰나에 상응[剎那相應]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음이 상응하지 않는 것[心不相應]은 비롯함이 없는 무명주지(無明住持)라 하나이다.
 
- <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방광경勝鬘師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
 
 
* 一毛端現寶王刹 一微塵裏 轉大法輪: 
한 터럭 끝에서 부처님 나라를 나투고, 티끌 속에서 대법륜을 굴린다.
 
‧ 『於一毛端애 現寳王刹ᄒᆞ며 坐微塵裏ᄒᆞ야 轉大法輪ᄒᆞ노라 色空ᄋᆞᆫ 世間妄相也ㅣ오 妙明은 眞如妙性也ㅣ니 皆如來藏所現이라』
 
「한 터럭 끝에 보왕寳王의 찰刹을 나투며 미진微塵 속에 앉아 대법륜大法輪을 전轉하노라.」 색色과 허공虛空은 세간世間의 망상妄相이오 미묘微妙한 밝음은 진여묘성眞如妙性이니, 다 여래장如來藏의 나툰 것이라. [보왕寳王은 부처이고 찰刹은 나라이라]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 사권四卷.
 
 
* 百千法門 無量妙義 一毛頭上 識得根源:
백 천의 법문法門과 한량없는 묘한 뜻을 한 터럭 끝을 향하여 문득 근원根源을 알았다.
 
‧ 『洪州水潦和尙가 參馬祖할새 問如何是西來的的意라가 被馬祖의 一踏의 踏到에 忽然發悟하야 起來撫掌大笑云也大奇也大奇여 百千三昧無量妙義를 只向一毛頭上하야 便一時識得根源去라 하시고 乃作禮而退라 하시니 據此則功德이 不從外來라 本自具足也ㅣ로다』
 
홍주 수료화상이 마조께 참례할 적에 서쪽으로 오신 적적한 달마조사의 뜻을 묻다가 마조에게 한 번 밟히어 거꾸러졌다가 홀연히 깨달아 손바닥을 어루만지며 크게 웃어 말하길, “또한 기특하고 또한 기특하다. 「백천삼매와 무량묘의를 한 터럭 끝을 향하여 문득 근원을 알았다」” 하시고, 예배하고 물러가시니, 이것을 의거하면 ‘공덕이 밖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본래 저절로 구족함’이로다. 
 
- 선한문역鮮漢文譯 [선문촬요禪門撮要]
 
 
 
 
【爾時 大衆之中 八萬八千菩薩 一時成佛 號曰空王如來應正等覺 劫名離垢 國號無邊】
 
이시에 대중지중의 팔만팔천보살이 일시성불하니 호왈공왕여래응정등각이라 겁명은 리구요 국호는 무변이니
 
[그 때에 대중大衆 가운데의 팔만팔천 보살菩薩이 한 때에 성불成佛하니 호號가 공왕여래응정등각空王如來應正等覺이라. 겁명劫名은 이구離垢요 국호國號는 무변無邊이니]
 
 
註曰 大衆之中者 天人之衆中耶 聲聞之衆中耶 緣覺之衆中耶 菩薩之衆中耶 佛之衆中耶 即是五蘊之衆中也 八萬八千云云者 十信菩薩耶 三贒菩薩耶 十地菩薩耶 等覺菩薩耶 即是八正八邪也 亦是八萬八千法門 心性之作用 云八萬八千菩薩也 一時成佛者 一念正心 即是成正覺也 是故 心正則佛在堂 心邪則魔在堂 云云也 號曰云云者 斷空耶 非也 即妙有之眞空也 王者 自在之意也 應正云云者 與妙覺無異矣 劫名離垢者 心性淡薄無諸欲 六根淸淨安廉之時云也 國號無邊者 此是凡聖同居土耶 方便有餘土耶 常寂光土之國耶 即是此六根國 橫遍十方 竪窮三際 各各無有邊際 故云無邊云也
 
주註하여 이르되, 「대중지중大衆之中(대중 가운데)」이라 함은, 천인天人의 대중 가운데인가? 성문聲聞의 대중 가운데인가? 연각緣覺의 대중 가운데인가? 보살菩薩의 대중 가운데인가? 부처님의 대중 가운데인가? 곧 이 오온五蘊의 모임 가운데이라. 「팔만팔천운운八萬八千云云([八萬八千菩薩, 팔만팔천의 보살이])」 함은, 십신보살十信菩薩인가? 삼현보살三贒菩薩인가? 십지보살十地菩薩인가? 등각보살等覺菩薩인가? 곧 이 팔정八正과 팔사八邪이며, 또한 이 팔만팔천법문八萬八千法門인 심성心性의 작용作用을 일컬어서 팔만팔천보살八萬八千菩薩이라 함이라. 「일시성불一時成佛(한 때에 부처를 이룸)」이라 함은, 한 생각 바른 마음[一念正心]이 곧 이 정각正覺을 이룸이니, 이러한 까닭으로 『마음이 바르면 부처님이 집[堂]에 계시고, 마음이 삿되면 마군이가 집[堂]에 있다』 운운 함이라. 「호왈운운號曰云云([號曰空王如來, 호가 공왕여래])」 함은, 단공斷空인가? 아님이라. 곧 묘하게 있음[妙有]의 진실로 없음[眞空]이라. ‘왕王’이라 함은, 자재自在한 뜻이라. 「응정운운應正云云(응정 운운, [應正等覺, 응정등각])」 함은 묘각妙覺과 더불어 다름이 없음이로다. 「겁명이구劫名離垢(겁명은 ‘더러움을 여읨’)」라 함은, 심성心性이 담박淡薄하여 모든 욕欲이 없음에 육근六根이 청정淸淨하여 청렴淸廉에 편안한 때를 말함이라. 「국호무변國號無邊(국호는 ‘갓이 없음’)」이라 함은, 이 범부凡夫와 성인聖人이 함께 사는 땅[凡聖同居土]인가? 방편도方便道에 노닐지만 남음이 있는 땅[方便有餘土]인가? 항상하고 고요하며 광명이 비치는[常寂光土] 나라인가? 곧 이는 이 육근六根의 나라이니, 공간적으로는 시방에 두루하고[橫遍十方] 시간적으로는 삼재三際에 다하여[竪窮三際] 각각 끝 간 데가 있음이 없으니 그러므로 이르되 ‘무변無邊’이라고 이름이라.
 
 
* 凡聖同居土耶 方便有餘土耶 常寂光土之國耶: 
범부와 성인이 함께 사는 땅[染淨國]인가? 방편에 노닐지만 남음이 있는 땅[有餘國]인가? (법신으로) 항상하며 (해탈로) 고요하며 (반야로) 광명이 비치는 나라[常寂光土]인가?
 
 
‧ 『「석가釋迦가 다른 나라에 부처가 되시어 다시 다른 이름이 있으시니 이름이 여불餘佛이시니라.」 -여불餘佛은 방편유여국토方便有餘國土의 부처이시니, 모든 부처님이 물物 이롭게 하시는 차별상差別相이 무량무변無量無邊 하시건마는 이제 줄여서 넷으로 만드시니, 하나는 ‘염정국染淨國’이니 범부와 성인이 한 곳에 살고, 둘은 ‘유여국有餘國’이니 방편인方便人이 머무르며, 셋은 ‘과보국果報國’이니 순수한 법신法身이 사시고, 넷은 ‘상적광常寂光’이니 곧 묘각妙覺이 사시는 곳이라. 잘 공교工巧하게 닦아 익히므로 ‘방편方便’이요, 무명無明이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유여有餘’이라. 이승二乘이 비록 삼계三界에 나지 아니하나 계界 밖의 정토淨土가 있어서 법성신法性身을 받나니 곧 방편유여토方便有餘土이라-』
 

  • <법화경언해法華經諺解> 일권一卷.

 
 
 
 
【一切人民 皆行菩薩六波羅蜜 無有彼此 證無諍三昧 逮無所得 六萬六千比丘比丘尼 優婆塞優婆夷 得大總持 入不二法門 無數天龍夜叉 乾闥婆 阿修羅 迦樓羅 緊那羅 摩睺羅伽 人非人等 得法眼淨 行菩薩道】
 
일체인민은 개행보살육바라밀하되 무유피차에 증무쟁삼매하야 체무소득하고 육만육천 비구와 비구니와 우바새와 우바이는 득대총지하야 입불이법문하고 무수천룡야차와 건달바와 아수라와 가루라와 긴나라와 마후라가와 인비인등은 득법안정하야 행보살도하라   
 
[일체의 사람들은 다 보살菩薩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을 행하되 저와 나가 있음이 없음에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증득證得하여 얻을 바가 없음에 이르렀고, 육만 육천의 비구比丘와 비구니比丘尼와 우바새優婆塞와 우바이優婆夷는 대총지大總持를 얻어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들었고, 무수한 천룡天龍과 야차夜叉와 건달바乾闥婆와 아수라阿修羅와 가루라迦樓羅와 긴나라緊那羅와 마후라가摩睺羅伽와 사람과 사람 아닌 등류等類는 법안정法眼淨을 얻어서 보살도菩薩道를 행하였다]
 
 
註曰 一切人民者 即是一切人欲之心也 皆行云云者 反本還源 隨順法性也 以知法性無慳貪 故隨順隨行布施波羅蜜也 以知法性無染汚 故隨順隨行持戒波羅蜜也 以知法性無嗔恚 故隨順隨行忍辱波羅蜜也 以知法性無懈怠 故隨順隨行精進波羅蜜也 以知法性無散亂 故隨順隨行禪定波羅蜜也 以知法性無愚癡 故隨順隨行智慧波羅蜜也 無有云云者 心性和合 客塵煩惱 不侵不亂故也 逮無所得者 透得無生眞空之樂也 六萬云云者 表六根六識也 比丘者 指法喜心也 比丘尼者 指禪悅樂也 優婆塞者 指誠實心也 優婆夷者 指慈悲心也 得大摠持者 廓徹大悟 透得眞如性心外無物也 入不二法門者 凡聖不二耶 男女不二耶 僧俗不二耶 即是心性不二也 無數云云者 龍王 西方天王也 夜叉 北方天王也 鳩槃茶 南方天王也 乾闥婆 東方天王也 阿修羅 此云非天 似有天福德 心有多嗔 故無天行故也 加樓羅 此云金趐鳥 常噉諸龍者也 緊那羅 此云疑神 似人而頂有角故 可疑者也 亦云歌神 隨佛說法 皆能歌之也 摩睺羅伽 此云大腹氏也 人非人云云者 常行率性 六根淸淨者 根淸淨故 色淸淨 色淸淨故 識淸淨 識淸淨故 如是乃至八萬陀羅尼門 皆悉淸淨也 行菩薩道者 念念不忘菩提心 常行四攝法也
 
주註하여 이르되, 「일체인민一切人民(일체의 사람들)」이라 함은, 곧 이 일체一切 사람의 하고자 하는[欲] 마음이라. 「개행운운皆行云云(‘모두 행하되’ 운운, [皆行菩薩六波羅蜜, 모두가 보살의 육바라밀을 행하되])」 함은, 『뿌리로 돌이켜 근원으로 돌아와 법성法性을 수순隨順함』이니, 법성法性이 간탐慳貪(아껴 탐함) 없음을 아는 까닭으로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을 좇아 행行하여 (법성法性을)수순隨順하며, 법성法性이 더러움에 물듦 없음을 아는 까닭으로 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을 좇아 행하여 (법성을)수순하며, 법성法性이 성냄 없음을 아는 까닭으로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을 좇아 행하여 (법성을)수순하며, 법성法性이 게으름 없음을 아는 까닭으로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을 좇아 행하여 (법성을)수순하며, 법성法性이 어지러운 생각 없음을 아는 까닭으로 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을 좇아 행하여 (법성을)수순하며, 법성法性이 어리석음 없음을 아는 까닭으로 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을 좇아 행하여 (법성을)수순함이라.
 
「무유운운無有云云(‘있음이 없음에’ 운운, [無有彼此 證無諍三昧, 저와 나가 있음이 없음에 무쟁삼매를 증득하여])」 함은, 심성心性이 화합和合하여 객진번뇌客塵煩惱가 침범치 못하고 어지럽히지 못하는 까닭이라. 「체무소득逮無所得(얻을 바 없음에 이르렀고)」이라 함은, 남이 없는[無生] 진공眞空의 낙樂을 사무쳐 얻음이라. 「육만운운六萬云云(육만 운운, [六萬六千, 육만 육천의)」 함은, 육근六根과 육식六識을 표현함이라. 「비구比丘」라 함은, 법희法喜의 마음을 가리킴이요,「비구니比丘尼」라 함은, 선열禪悅의 낙樂을 가리킴이라. 「우바새優婆塞」라 함은, 성실誠實[지혜]한 마음을 가리킴이요, 「우바이優婆夷」라 함은, 자비慈悲로운 마음을 가리킴이라. 「득대총지得大摠持(대총지를 얻음)」라 함은,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진여眞如의 성性을 사무쳐 깨달아 마음 밖에 물物이 없음이라. 「입불이법문入不二法門(둘 아닌 법문에 들어갔으며)」이라 함은, 범부와 성인이 둘이 아님인가? 남자와 여자가 둘이 아님인가? 스님과 속인이 둘이 아님인가? 곧 이 심성心性이 둘이 아님이라. 
 
「무수운운無數云云(셀 수 없는 운운, [‘무수한 천룡’에서부터 ‘마후라가’까지])」이라 함은, 「용왕龍王」의 서방천왕西方天王이요, 「야차夜叉」의 북방천왕北方天王이요, 「구반다鳩槃茶」의 남방천왕南方天王이요, 「건달바乾闥婆」의 동방천왕東方天王이라. 「아수라阿修羅」는 여기서 이름에 ‘천天이 아님’이니, 천天의 복덕福德이 있는듯하나 마음에 성냄이 많으므로 하늘의 행덕行德이 없는 까닭이라. 「가루라加樓羅」는 여기서 이름에 ‘금색 날개를 가진 새[金趐鳥]’이니, 항상 모든 용을 먹는 자이라. 「긴나라緊那羅」는 여기서 이름에 ‘의심스런 신神[疑神]’이니, 사람 같으나 정수리에 뿔이 있는 까닭으로 가히 의심된 자이며, 또한 이르되 ‘노래 부르는 신神[歌神]’이니, 부처님의 설법說法을 따라서 모두 능히 그것을 노래로 부를 수 있음이라. 「마후라가摩睺羅伽」는 여기서 이름에 ‘배가 큰 자[大腹氏]’이라.「인비인운운人非人云云(사람과 사람 아닌 운운, [人非人等 得法眼淨, 사람과 사람 아닌 등류等類는 법안정法眼淨을 얻어)」이라 함은, 항상 성性 좇음[率性]을 행行하여 육근六根이 청정淸淨한 자이니, 『근根이 청정淸淨한 까닭으로 색色이 청정淸淨하고 색色이 청정淸淨한 까닭으로 식識이 청정淸淨하며 식識이 청정淸淨한 까닭으로 이와 같이 나아가 팔만다라니문八萬陀羅尼門이 모두 다 청정淸淨함』이라. 「행보살도行菩薩道(보살도를 행하였다)」 함은, 생각 생각에 보리심菩提心을 잊지 않아 항상 사섭법四攝法을 행行함이라. 
 
 
* 入不二法門者 凡聖不二耶 男女不二耶 僧俗不二耶 即是心性不二也: 
「입불이법문入不二法門(둘 아닌 법문에 들어갔으며)」이라 함은, 범부와 성인이 둘이 아님인가? 남자와 여자가 둘이 아님인가? 스님과 속인이 둘이 아님인가? 곧 이 ‘심성心性이 둘이 아님[心性不二]’이라. 
 
 
‧ 『心眞如者 卽是一法界大摠相法門體 所謂心性不生不滅 一切諸法唯依妄念而有差別 若離妄念則無一切境界之相』
 
심진여心眞如란 바로 일법계一法界의 대총상법문大摠相法門인 체體이니, 이른바 심성心性이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지만[不生不滅] 일체의 모든 법法이 오직 망념妄念에 의하여 차별差別이 있으니, 만약 망념을 여의면 일체의 경계상境界相이 없을 것이다. 
 

  •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 「心性平等遠離三際 故言心性不生不滅也」
 
심성心性이 평등平等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삼제三際를 멀리 여의었으니, 그런 까닭에 ‘심성心性이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 라고 말하였다.
 

  • [대승기신론소기회본大乘起信論疏記會本] 원효元曉.

 
 
* 隨順法性也: 법성을 수순함(좇아 따름)이라.
 
 
‧ 『解行發心者 當知轉勝. 以是菩薩從初正信已來 於第一阿僧祇劫將欲滿故 於真如法中 深解現前 所修離相. 以知法性體無慳貪故 隨順修行檀波羅蜜 以知法性無染 離五欲過故 隨順修行尸波羅蜜 以知法性無苦 離瞋惱故 隨順修行羼提波羅蜜 以知法性無身心相 離懈怠故 隨順修行毘梨耶波羅蜜 以知法性常定 體無亂故 隨順修行禪波羅蜜 以知法性體明 離無明故 隨順修行般若波羅蜜』 
 
알고 행하는 발심[解行發心]이라 함은, 마땅히 알지니 전승轉勝이라, 이 보살이 처음 정신正信을 좇아옴으로부터 제일아승기겁第一阿僧祇劫이 장차 만족코자 하는 까닭으로 진여법真如法 가운데에 깊이 아는 것이 앞에 나타나 닦는 바가 상相을 여읜 것이라. 법성法性은 체體가 간탐慳貪 없음을 아는 까닭으로 수순隨順하여 단바라밀檀波羅蜜을 수행修行하며, 법성法性은 물듦이 없어서 오욕의 허물 여읨을 아는 까닭으로 수순隨順하여 시바라밀尸波羅蜜을 수행修行하며, 법성法性은 괴로움이 없어서 진뇌瞋惱 여읨을 아는 까닭으로 수순隨順하여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을 수행修行하며, 법성法性은 몸과 마음의 상相이 없어서 해태懈怠 여읨을 아는 까닭으로 수순隨順하여 비리야바라밀毘梨耶波羅蜜을 수행修行하며, 법성法性은 항상 정定하여 체體가 어지러움 없음을 아는 까닭으로 수순隨順하여 선바라밀禪波羅蜜을 수행修行하며, 법성法性은 체體가 밝아서 무명無明 여읨을 아는 까닭으로 수순隨順하여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수행修行함이라. 
 

  •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 常行率性: 
항상 성性 좇음[率性]을 행하여.
 
 
‧ 『天命之謂性이오 率性之謂道ㅣ오 修道之謂敎ㅣ니라 道也者ᄂᆞᆫ 不可須臾離也ㅣ니 可離면 非道也ㅣ라 是故로 君子ᄂᆞᆫ 戒愼乎其所不睹ᄒᆞ며 恐懼乎其所不聞이니라』
 
하늘이 명命하신 것을 일러 성性이요 「성性을 솔率(좇는)하는 것을 일러 도道이요」 도道를 닦는 것을 일러 교敎이니라. 도道는 가可히 수유須臾(잠깐)도 리離치(떠나지) 못하는 것이니 가可히 리離하는 것이면(떠날 수 있다면) 도道가 아니니라. 이런 고故로 군자君子는 그 보지 못하는 바에 계신戒愼(경계하고 삼가)하며 그 듣지 못하는 바에 공구恐懼(두려워)하나니라.
 
- <중용언해中庸諺解>
 
 
* 根淸淨故 色淸淨 色淸淨故 識淸淨 識淸淨故 如是乃至八萬陀羅尼門 皆悉淸淨也:
근이 청정한 까닭으로 색이 청정하고, 색이 청정한 까닭으로 식이 청정하며, 식이 청정한 까닭으로 이와 같이 나아가 팔만다라니문이 모두 다 청정함이라.
 
 
‧ 『善男子 根清淨故色塵清淨. 色清淨故聲塵清淨. 香味觸法亦復如是. 善男子 六塵清淨故地大清淨 地清淨故水大清淨 火大風大亦復如是. 善男子 四大清淨故 十二處十八界二十五有清淨. 彼清淨故 十力四無所畏四無礙智佛十八不共法三十七助道品清淨. 如是乃至八萬四千陀羅尼門一切清淨』
 
선남자야, 육근六根이 청정한 까닭으로 색진色塵이 청정하고, 색色이 청정한 까닭으로 성진聲塵이 청정하며, 향香 미味 촉觸 법法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육진六塵이 청정한 까닭으로 지대地大가 청정하고, 지대가 청정한 까닭으로 수대水大가 청정하며, 화대火大 풍대風大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사대四大가 청정한 까닭으로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 이십오유二十五有가 청정하고, 그것이 청정한 까닭으로 십력사무소외十力四無所畏 사무애지四無礙智 불십팔불공법佛十八不共法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이 청정하느니라. 이와 같이 나아가 팔만사천다라니문八萬四千陀羅尼門의 일체가 청정하느니라.
 
-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 大腹氏也: 배가 큰 사람이라.
 
‧ 『마후라가는 ‘큰 뱃바닥으로 기어 움직인다’ 하는 뜻이니, 큰 뱀의 신령이라』 
 
- <월석 1:15ㄱ>
 
 
 
 
【善男子 若復有人 得官登位之日 及新入宅之時 暫讀此經三遍 甚大吉利 善神加護 延年益壽 福德具足 善男子 若讀此經一遍 如讀一切經一遍 若寫一卷 如寫一切經一部 其功德 不可稱 不可量 等虛空 無有邊際 成聖道果】
 
선남자야 약부유인이 득관등위지일과 급신입택지시에 잠독차경삼편하면 심대길리하야 선신이 가호하고 연년익수하야 복덕이 구족하나니 선남자야 약독차경일편하면 여독일체경일편이요 약사일권하면 여사일체경일부라 기공덕은 불가칭하며 불가량하며 등허공하야 무유변제하며 성성도과리라
 
[선남자善男子야,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관직에 오르는 날과 및 새로 집에 들어가는 때에 잠깐 이 경經 삼편三遍을 독송하면 심히 크게 길吉하고 이로워 선신善神이 가피로 보호하고 나이가 늘어 수명이 더함에 복덕福德이 구족具足하나니, 선남자善男子야 만약 이 경經 일편一遍을 독송하면 일체一切의 경經을 일편一遍 독송함과 같음이요 만약 한 권을 베껴서 쓰면 일체一切의 경經 일부一部를 사경함과 같음이라, 그 공덕功德은 가히 저울질 할 수 없으며 가히 헤아릴 수 없으며 허공虛空과 같아서 끝 간 데가 있음이 없으며 성인聖人의 도과道果를 이루리라]
 
 
註曰 善男子下乃至福德具足者 讀經之靈驗也 善男子云云者 這箇一卷經 無處不在故也 其功德下乃至聖道者 所謂刹塵心念可數知大海衆水可飮盡 虛空可量風可繫無能盡說法功德也
 
주註하여 이르되, 「선남자하내지복덕구족善男子下乃至福德具足(‘선남자야’아래로부터 ‘복덕이 구족하나니’에 이르기까지)」이라 함은, 독경讀經의 영험靈驗이라. 「선남자운운善男子云云(선남자야 운운, [‘선남자야’아래로부터 ‘사경함과 같음이라’까지]」 함은, 이 일권경一卷經이 있지 아니한 곳이 없는 까닭이라. 「기공덕하내지성도其功德下乃至聖道(‘그 공덕은’아래로부터 ‘성인의 도과를 이루리라’까지)」라 함은, 이른바 『온 세계의 티끌 수와 같이 많은 마음의 생각들을 가히 셀 수가 있고, 큰 바다에 모인 물들을 다 마셔버릴 수가 있으며, 허공을 가히 헤아려 바람을 가히 묶어 맬 수가 있다 하더라도, 법의 공덕은 다 설명할 수가 없다[刹塵心念可數知 大海衆水可飮盡 虛空可量風可繫 無能盡說法功德]』함이라.

 
 

* 刹塵心念可數知 大海衆水可飮盡 虛空可量風可繫 無能盡說法功德:
온 세계의 티끌 수와 같이 많은 마음의 생각들을 가히 셀 수가 있고, 큰 바다에 모인 물들을 다 마셔버릴 수가 있으며, 허공을 가히 헤아려 바람을 가히 묶어 맬 수가 있다 하더라도, 법의 공덕은 다 설명할 수가 없다.
 

  •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復次無邊身菩薩摩訶薩 若有衆生 不信正法 常生邪見 忽聞此經 即生非謗 言非佛說 是人現世 得白癩病 惡瘡膿血 徧體交流 腥臊臭穢 人皆憎嫉 命終之日 即墮阿鼻無間地獄 上火徹下 下火徹上 鐵槍鐵叉 徧體穿穴 融銅灌口 筋骨爛壞 一日一夜 萬死萬生 受大苦痛 無有休息 謗斯經故 獲罪如是 佛爲罪人 而說偈言】
 
부차무변신보살마하살아 약유중생이 불신정법하야 상생사견하사 홀문차경하고 즉생비방하되 언비불설이라 시인은 현세에 득백나병하야 악창농혈이 변체교류하며 성조취예를 인개증질타가 명종지일에 즉타아비무간지옥하야 상화철하하고 하화철상하며 철창철차는 변체천혈하며 융동관구에 근골이 난괴하야 일일일야에 만사만생으로 수대고통하야 무유휴식이니 방사경고로 획죄여시니라 불위죄인하야 이설게언하사되
 
[거듭해서 무변신보살마하살無邊身菩薩摩訶薩아, 만약 어떤 중생衆生이 정법正法을 믿지 못하여 항상 사견邪見을 내어서 문득 이 경經을 듣고 곧 비방非謗을 하되 ‘불설佛說이 아니다’ 말함이라, 이 사람은 현세現世에 백나병白癩病을 얻어서 지독한 부스럼과 피고름이 온몸에 두루 뒤섞여 흐르며, 비린내와 고약한 냄새나는 것을 사람들이 모두 미워하여 싫어하다가, 목숨이 마치는 날에 곧 아비무간지옥阿鼻無間地獄에 떨어져서 위에 있는 불은 아래로 사무치고 아래에 있는 불은 위로 사무치며, 쇠로된 창과 작살들은 몸에 여기저기 구멍을 뚫으며, 구리를 녹여서 입 속에 부음에 근육과 뼈가 문드러지고 무너져 하루 낮 하룻밤에 만 번을 죽고 만 번을 생겨남으로 큰 고통을 받아서 쉴 겨를이 없음이니, 이 경經을 비방誹謗한 까닭으로 죄를 얻음이 이와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죄罪를 지은 사람을 위하시어 게송偈頌으로 설說하여 말씀하시되]
 
 
註曰 無邊身菩薩乃至而說偈言者 於其中間 八寒八熱 百八地獄 八萬四千 諸大地獄 受苦之形狀 無出這箇經文 如此種種受大苦痛之事 謗經之罪報 不言可知也
 
주註하여 이르되, 「무변신보살내지이설게언無邊身菩薩乃至而說偈言(‘무변신보살’에서부터 ‘게송으로 설하여 말씀하시되’에 이르기까지」이라 함은, 그 중간에 팔한팔열八寒八熱의 백팔지옥百八地獄과 팔만사천八萬四千의 모든 대지옥大地獄에서 고통을 받는 형상形狀이 이 경문經文에서 벗어남이 없으니, 이 같은 갖가지 큰 고통을 받는 일은 경經을 비방誹謗한 죄罪의 과보果報임을 말을 하지 않아도 가히 알 수 있음이라.
 
 
 
 
【身是自然身 五軆自然足 長乃自然長 老則自然老 生乃自然生 死則自然死 求長不得長 求短不得短 苦樂汝自當 邪正由汝己 欲作有爲功 讀經莫問師  千千萬萬世 得道轉法輪】
 
신시자연신이요 오체자연족이며 장내자연장이요 노즉자연노며 생내자연생이요 사즉자연사며 구장부득장이요 구단부득단이라 고락여자당하고 사정유여기라 욕작유위공인댄 독경막문사니 천천만만세에 득도전법륜이니라
 
[몸은 스스로(지은 바) 그러한 몸이요, 
오체五軆는 스스로 그러한 구족具足이며,
자라남은 스스로 그러하게 자라고, 
늙음에 스스로 그러하게 늙으며, 
태어남에 스스로 그러하게 태어나고, 
죽음에 스스로 그러하게 죽으며, 
장수長壽를 구해도 장수를 얻지 못하며
단명短命을 구해도 단명을 얻지 못함이라.
 
고통과 즐거움은 너 자신을 당當하여 있고, 
삿됨과 바름도 너 자신으로 말미암음이라. 
유위有爲의 공덕功德을 짓고자 할진댄, 
독경讀經[一卷經]하고 스승을 묻지 말지니, 
천천만만千千萬萬의 세상에서 
도道를 얻어 법륜法輪을 굴릴지니라]
 
 
註曰 身是云者 三緣假和合曰名色 此妄識初托胎之相也 五體云者 即是五胞 頭爲一胞 兩肘爲三胞 兩膝爲五胞也 自然云云者 十朔滿足之相也 長乃云者 五蘊成熟之相也 老則云者 五蘊變易之相也 生乃云者 五蘊暫留之時也 死則云者 五蘊衰落之時也 求長云云者 分段之身 自有限定也 求短云者 不得變易生死也 如何是分段身 命有分限 故曰分 身有形段 故曰段也 如此之身命 隨業感報 故曰未得自在也 如何是變易生死 變短壽 易長壽 易長壽 變短壽 短身變爲長身 長身易爲短身者也 然非但分段之身受苦 變易之身 亦未免行苦也 苦樂云者 所謂百千萬劫 所作之業不無 因緣會遇時 果報還自受者也 是故欲得無苦無樂之身者 所謂意生身是也 邪正云云者 五十種魔事 皆從心起 心若不分別 妄情從何起 故云心邪則魔在堂 心正則佛在堂也 欲作云者 俗諦假有之法 無非有爲功也 讀經云者 行住坐臥 語默動靜 十二時中 常與定慧相應方便具足 無時間斷者 是爲大法師 故經云 讀經莫問師也 千千云云者 坐道場之壽量亦爾云也 意朙穪性之壽量 人皆有之 苟能正信順受 不以生滅心行 而自夭閼 則三界之相 可如實知 遂能現壽量以存存示生滅而化化 智力神用 與如來等矣 得道云云者 如何轉法輪 若朙這箇事 則朙朙百草頭 朙朙祖師意 鸎音鷰語 有情無情 朙暗色空 山河大地 擴而充之 則物物頭頭 無非轉法輪也
 
주註하여 이르되, 「신시운身是云(‘몸은 이’ 운운, [身是自然身, 몸은 스스로(지은 바) 그러한 몸이요])」이라 함은, 세 가지 연緣이 임시로 화합和合함을 일러 명색名色이니, 이 망식妄識이 처음 태胎를 의탁依託한 상相이라. 「오체운五體云(오체는 운운, [五軆自然足, (팔과 발과 머리의) 오체는 스스로 그러한 구족이며])」 함은, 곧 이 ‘오포五胞’는 머리가 한 포胞가 되고 양쪽 팔꿈치가 (더해져서) 세 포胞가 되며 양쪽 무릎이 (더해져서) 다섯 포胞가 됨이요, ‘자연운운自然云云([自然足, 스스로 그러한 구족이며)’ 라 한 것은 열 달이 차서 두루 갖추어진 상相이라. 「장내운長乃云([長乃自然長, 자라남에 스스로(지은 바) 그러하게 자라고])」 함은, 오온五蘊이 성숙成熟한 상相이라. 「노즉운老則云([老則自然老, 늙음에 스스로 그러하게 늙으며])」 함은, 오온五蘊이 변하여 바뀐 상相이라. 「생내운生乃云(태어남에 운, [生乃自然生, 태어남에 스스로 그러하게 태어나고])」 함은, 오온五蘊이 잠깐 동안 머물러 있는 때時이라. 「사즉운死則云(‘죽으면’ 운, [死則自然死, 죽으면 스스로 그러하게 죽으며])」이라 함은, 오온五蘊이 쇠락衰落(쇠퇴하여 탈락)한 때이라. 
 
「구장운운求長云云(장수를 구해도 운운, [求長不得長, 장수를 구해도 장수를 얻지 못하며])」 함은, 분단分段하는 몸이 스스로 한정限定이 있음이요, 「구단운求短云(단명을 구해도 운, [求短不得短, 단명을 구해도 단명을 얻지 못함])」 함은, 변역생사變易生死를 얻지 못함이라. 어떤 것이 이 분단分段하는 몸인가 하면, 목숨이 나누어진 한계[分限]가 있는 까닭으로 이르되 ‘분分’이요, 몸이 형단形段이 있는 까닭으로 이르되 ‘단段’이라. 이 같은 몸의 목숨은 업業을 따라서 과보果報를 감응感應하는 까닭으로 이르되 ‘자재自在를 얻지 못함’이라. 어떤 것이 이 변역생사變易生死인가 하면, 짧은 수명을 변화시켜 긴 수명으로 바꾸고 긴 수명을 바꾸어서 짧은 수명으로 변화시킴이니, 짧은(수명의) 몸이 변하여 긴(수명의) 몸이 되며 긴(수명의) 몸이 바뀌어 짧은(수명의) 몸이 되는 것이라. 그러나 다만 분단分段의 몸만 고苦를 받는 것이 아니요, 변역變易의 몸도 또한 행行[無常流轉]의 고苦는 면치 못함이라. 「苦樂云(‘고통과 즐거움’ 운, [苦樂汝自當, 고통과 즐거움은 너 스스로를 당當하여 있고]」 함은, 이른바 백천만겁百千萬劫으로 지은 바 업業은 없지 아니하여, 인因과 연緣이 모여서 만나는 때에 과보果報가 돌아와 스스로 받는 것이라. 이러한 까닭으로 고통이 없고 즐거움이 없는 몸을 얻은 것이 이른바 ‘의생신意生身’ 이것이라. 「사정운운邪正云云(삿됨과 바름 운운, [邪正由汝己, 삿됨과 바름도 너 자신으로 말미암음])」 함은, 오십종 마군의 일이 다 마음을 좇아 일어남이니, 마음이 만약 분별分別하지 아니하면 망령된 정情이 무엇으로 좇아 일어나겠는가. 그러한 까닭으로 이르되, 『마음이 삿되면 마왕이 집에 있으며, 마음이 바르면 부처가 집에 있음』이라. 
 
「욕작운欲作云(‘짓고자 하면’ 운, [欲作有爲功, 유위의 공덕을 짓고자 할진댄])」 함은, 속제俗諦인 가유假有의 법法이 유위有爲의 공功 아님이 없음이라. 「독경운讀經云(‘경을 독송하여’ 운, [讀經莫問師, 경을 독송하고 스승을 묻지 말지니])」 함은, 가고 서고 앉고 누우며 말하고 잠잠하고 움직이며 고요한 열두 때(스물네 시간) 가운데에, 항상 정혜定慧와 더불어 상응相應하는 방편方便을 구족具足하여 사이가 끊어진 때가 없는 사람이 이 대법사大法師이라. 그러므로 경經에 이르되, 「독경막문사讀經莫問師(경經을 독송함에 스승을 묻지 말라)」함이라. 「천천운운千千云云([千千萬萬世, 천천만만의 세상])」이라 함은, 『도량道場에 앉은 수량壽量 또한 그러함을 말함이니, 자성自性에 칭합[稱合]한 수량壽量이라. 사람이 다 그것을 가지고 있으니, 만약 진실로 능히 바른 믿음으로 수순하여 받아들이고 생멸심生滅心으로써 행行치 않아 스스로를 해치거나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다면 삼계三界의 상相이 가히 여실如實히(실답게) 알아짐과 같아서, 마침내 능히 존존存存함으로써(세상에 머무름으로써) 수량壽量을 나툴 수 있으며 화화化化함으로해서(변화에 감응하면서) 생멸生滅을 보일 수도 있는(생사生死에 자재自在한) 지혜력智慧力의 신통神通한 묘용妙用이 여래如來와 더불어 같음』이로다. 「득도운운得道云云(도를 얻어 운운, [得道轉法輪, 도를 얻어 법륜을 굴림])」이라 함은, 어떤 것이 법륜法輪을 굴림인가? 만약 이 일[這箇事]을 밝히면, 밝고 밝은 온 푸성귀(풀)의 머리에 밝고 밝은 조사의 뜻으로[朙朙百草頭 朙朙祖師意], 꾀꼬리 소리와 제비의 재잘거림과 유정有情 무정無情과 밝고[明] 어두움[暗]과 색色과 공空과 산과 강과 대지大地에까지 넓혀서 가득히 함에, 물물物物 두두頭頭가 법륜法輪을 굴림 아님이 없음이라.
 
 
* 坐道塲說壽亦爾 意明本迹一如世相 常住稱性之壽 人皆有之 苟能正信順受 不以生滅心行 而自夭閼 則三界之相 可如實知 遂能現壽量以存存示生滅而化化 智力神用 與如来等矣: 
 
『도량道場에 앉은 수량壽量[수명] 또한 그러함을 말함이니, 자성自性에 칭합[稱合]한 수량壽量이라. 사람이 다 그것을 가지고 있으니 만약 진실로 능히 바른 믿음으로 수순하여 받아들이고 생멸심生滅心으로써 행行치 않아 스스로를 해치거나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다면 삼계三界의 상相이 가히 여실如實히(실답게) 알아짐과 같아서, 마침내 능히 존존存存함으로써(세상에 머무름으로써) 수량壽量[수명]을 나툴 수도 있으며 화화化化함으로해서(변화變化에 감응感應함으로써) 생멸生滅을 보일 수도 있는 지혜력智慧力의 신통神通한 묘용妙用이 여래如來와 더불어서 같음이로다. 』[생사生死에 자재自在함을 나타냄]
 
 
‧ 『前品顯迹而滯者迷本故情疑久近見起生滅欲契如實本際難矣故此顯本釋其疑滯使知如来本無生滅伽耶之化特爲機所受之命稱性無量故曰如来壽量品文云如来如實知見三界之相無有生死退出亦無在世滅度後云其有菩薩聞說壽量即能信受願於未来長壽度生至「坐道塲說壽亦爾 意明本迹一如世相 常住稱性之壽 人皆有之 苟能正信順受 不以生滅心行 而自夭閼 則三界之相 可如實知 遂能現壽量以存存示生滅而化化 智力神用 與如来等矣」 故曰顯本勸持』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여래수량품如来壽量品、제십육第十六.
 
 
* 苦樂汝自當 邪正由汝己, 
고통과 즐거움은 너 자신을 당當하여 있고, 삿됨과 바름도 너 자신으로 말미암음이라. 
 
 
‧『원형이정元亨利貞은 내 가슴이다』
 
- 전강선사田岡禪師.
 
 
‧ 『下淸高處立超然 眼底七山朝百川, 榮辱屈伸都兩忘 自家胸裏有眞天』
 
하청산下淸山 높은 곳에 초연히 섰으니, 눈 아래는 칠산도와 백천 강물이 이곳을 향해서 조읍朝揖을 하고 있구나. 명예니 욕된 것이니, 펴진 것이니 오그라진 것이니, 세상 명예와 권리와 빈부와 귀천 이런 것들을 다 잊어버리니, 「내 가슴 속에 참다운 하늘이 있구나」. 
 
- 석음공石陰公.
 
○ 자연自然: 여기서 「자연自然」이라 함은, 천연天然의 자연이라기보다 ‘「내가 지은 바」를 스스로 그러하게[自然] 받음으로 보았다. 
 
「고통과 즐거움은 너 자신을 당當하여 있고, 삿됨과 바름도 너 자신으로 말미암음이라.」
 
 
 
 
【佛說此經已 一切大衆 得未曾有 心朙意淨 歡喜踊躍 皆見諸相非相 入佛知見 悟佛知見 無入無悟 無知無見 不得一法 即涅槃樂】
 
불설차경이하시니 일체대중이 득미증유하야 심명의정에 환희용약하며 개견제상이 비상하고 입불지견하고 오불지견하야 무입무오하고 무지무견하야 부득일법이 즉열반락하더라
 
[부처님께서 이 경전 설經하심을 마치시니, 일체一切의 대중大衆이 미증유未曾有를 얻어서 마음이 밝아 뜻이 깨끗함에 뛸 듯이 기뻐하였으며, 모두 다 온갖 상相이 상相 아님을 보고 부처님 지견知見에 들고 부처님 지견知見을 깨달아서, 들어감[入]과 깨달음[悟]이 없고 앎[知]과 봄[見]이 없어, 한 법法도 얻지 못함이 곧 이 열반涅槃의 낙樂이더라]
 
 
註曰 佛說此經已下末后句 圓成即是最初句 攝用歸體也
 
주註하여 이르되, 「불설차경이佛說此經已下(‘부처님께서 이 경전 설하심을 마치시니’ 아래로는, [佛說此經已 一切大衆得未曾有 心朙意淨歡喜踊躍, 부처님께서 이 경전 설하심을 마치시니, 일체의 대중이 미증유를 얻어서 마음이 밝아 뜻이 깨끗함에 뛸 듯이 기뻐하였으며])」아래로는 말후구末后句요, 「원성圓成(원만히 이룸, [皆見諸相非相 入佛知見悟佛知見 無入無悟無知無見 不得一法即涅槃樂, 모두 다 온갖 상相이 상相 아님을 보고 부처님 지견에 들고 부처님 지견을 깨달아서, 들어감과 깨달음이 없고 앎과 봄이 없어, 한 법法도 얻지 못함이 곧 이 열반涅槃의 낙樂이더라])」함은 곧 이 최초구最初句인 것이니, 용用을 거두어 체體로 돌아감이라. 
 
 
頌曰
按劒當頭千魔驚 
撥亂反正萬聖踴 
荷負大法八部衆 
信受奉行四部僧 
 
송頌하여 이르되,
칼날 어루만짐을 당면當面하니 천마千魔가 놀라고
난리亂離를 다스려 바름으로 돌이키니 모든 성인聖人이 춤추도다.
팔부중八部衆은 대법大法을 짊어졌으며
사부四部의 승가僧伽는 믿고 받아서 받들어 행하도다. 
 
一切大衆得未曾有者 九旱察甘雨 他鄕見故人 譬如一切川流江河諸水之中 海爲第一 此八陽經 亦復如是 於諸如來所說經中 最爲㴱大又如土山黑山 小鐵圍山 大鐵圍山 及十寶山中 衆山之中 須彌山爲第一 此八陽經 亦復如是 於諸經中 最爲其上 又如衆星之中 月天子最爲第一 此經亦復如是 於千萬億種諸經法中 最爲照朙 又如日天子能除諸暗 此經亦復如是 能破一切不善之暗 又如諸小王中 轉輪聖王最爲第一 此經亦復如是 於諸經中最爲其尊 又如帝釋 於三十三天中王 此經亦復如是 於諸經中王 又如大梵天王 一切衆生之父 此經亦復如是 一切賢聖學無學及發心菩薩者之父 又如一切凡夫人中 須陀洹斯陀含阿郍含阿羅漢辟支佛爲第一 此經亦復如是 一切如來所說 若菩薩所說 若聲聞所說諸經法中最爲第一 有能受持是經典者 亦復如是 於一切衆生中 亦爲第一 一切聲聞辟支佛中 菩薩爲第一 此經亦復如是 於一切經法中 最爲第一如佛爲諸法王 此經亦復如是 爲諸經中王 此經能救一切衆生者 此經能令一切衆生離諸苦惱 此經能大饒益一切衆生 充滿其意 如淸凉池能滿一切渴乏者 如寒者得火 如裸者得衣 如商人得主 如子得母 如渡得船 如病得醫 如暗得燈 如貧得寶 如民得王 如賈客得海 如炬除暗 此八陽經 亦復如是 能令一切衆生 離一切苦一切病痛 能解生死之縛 此經 則爲閻浮提人病之良藥 若人有病 得聞是經 病即消滅 不老不死 是故得未曾有也 心朙意淨者 虛空粉碎 大地平沉 物我俱亡 故云心朙意淨也 歡喜踊躍者 證得這箇田地 故歡喜踊躍也 皆見諸相非相者 所謂凡所有相 皆是虛妄者是也 入佛知見者 成就聞慧智故也 悟佛知見者 成就思慧智故也 無入無悟 無知無見 不得一法者 成就修慧智故也 即涅槃樂者 即是圓滿成就常樂我淨四德之果故也
 
「일체대중득미증유一切大衆得未曾有([일체의 대중이 일찍이 있지 못한 바를 얻어서])」라 함은, 『구년 가뭄에 단 비 내림을 만나고, 타향에서 고향 친구를 보게 됨』이라. 비유하자면, 일체의 흐르는 냇물이나 강물의 여러 물 가운데에는 바다가 제일이 되듯이, 이 <팔양경八陽經>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여래如來가 설하신 경전經典 가운데에 가장 깊고도 큼이 됨이라. 또 토산土山, 흑산黑山, 소철위산小鐵圍山, 대철위산大鐵圍山과 및 십보산十寶山과 많은 산 가운데에 수미산須彌山이 제일第一이 되듯이, 이 <팔양경八陽經>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모든 경전經典 가운데에 가장 위가 됨이라. 또 뭇 별들 가운데에 월천자月天子[달]가 가장 제일第一이 되듯이, 이 경經도 또한 이와 같아서 천만 억 중의 모든 경법經法[경전의 가르침] 가운데에 비춤이 가장 밝음이 됨이라. 또 일천자日天子[해]가 능히 모든 어둠을 덜어서 없애듯이, 이 경전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능히 일체의 좋지 못한 어두움을 덜어서 부수어버림이라. 
 
또 모든 소왕小王 가운데에 전륜성왕轉輪聖王이 가장 제일第一이 되듯이, 이 경전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많은 경전 가운데에 가장 높음[尊]이 됨이라. 또 제석帝釋이 삼십삼천三十三天 가운데에 왕王인 것과 같아서, 이 경전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경전 가운데에 왕王이라. 또 대범천왕大梵天王이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아비와 같아서, 이 경전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 일체의 현성賢聖, 학學, 무학無學과 보살심菩薩心을 발發한 이의 아비[父]이라. 또 일체 범부凡夫의 사람 가운데에 수다원須陀洹 ‧ 사다함斯多含 ‧ 아나함阿那含 ‧ 아라한阿羅漢에게 벽지불辟支佛이 제일第一이 되듯이, 이 경전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일체 여래如來의 설說하신 바와 제불菩薩의 설說하신 바와 성문聲聞의 설說하신 바와 여러 경법經法 가운데에 가장 제일第一이 되나니, 능히 이 경전을 받아서 지니는 이가 있으면 또한 이와 같아서 일체중생一切衆生 가운데에 또한 제일第一이 됨이라. 일체 성문聲聞과 벽지불辟支佛 가운데에 보살菩薩이 제일第一이 되니, 이 경전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일체의 모든 경법經法 가운데에 가장 제일第一이 됨이라. 부처님이 모든 법法의 왕王이 됨과 같아서 이 경전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 모든 경전 가운데에 왕王이 됨이라. 
 
이 경전은 능히 일체중생一切衆生을 구救함이며, 이 경은 능히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고뇌苦惱를 여의게 하며, 이 경經은 능히 일체중생을 크고도 넓게 이익되게 하고 그 뜻을 충만充滿케 하며, 청량한 연못[淸涼池]이 능히 일체의 목마른 사람을 만족滿足케 함과 같으며, 추운 이가 불을 얻음과 같으며, 옷 벗은 이가 옷을 얻음과 같으며, 흥정하는 이가 물건의 주인을 얻음과 같으며, 아이가 어미를 얻음과 같으며, 물 건너는 이가 배 얻음과 같으며, 병든 이가 의원을 얻음과 같으며, 어두운 이가 등불 얻음과 같으며, 가난한 이가 보배를 얻음과 같으며, 백성이 왕을 얻음과 같으며, 장사하는 이가 바다를 얻음과 같으며, 횃불이 어두움을 없앰과 같음이라. 
 
이 <팔양경八陽經>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일체의 중생으로 하여금 일체의 고통과 일체 병으로 인한 고통을 여읠 수 있게 하며 능히 생사生死의 결박結縛을 풀 수 있게 하느니라. 이 경전經典이면 염부제閻浮提 사람들에게 병病의 양약良藥이 되나니, 만약 사람이 병이 있어서 이 경전을 듣는다면 병은 곧 소멸하며 늙지도 죽지도 않을 것이니, 이러한 까닭으로 「득미증유得未曾有(일찍이 있지 못한 바를 얻음)」이라 함이라. 「심명의정心朙意淨(마음이 밝아 뜻이 깨끗함)」이라 함은, 허공虛空을 분쇄粉碎하고 대지大地가 꺼져내려 물物과 아我가 함께 망亡한 까닭으로 이르되, ‘마음이 밝아 뜻이 깨끗함’이라. 「환희용약歡喜踊躍(뛸 듯이 기뻐하며)」이라 함은, 이 전지田地(논밭)를 증득證得한 까닭으로 ‘뛸 듯이 기뻐함’이라. 
 
「개견제상비상皆見諸相非相(모두 다 온갖 상相이 상相 아님을 보아)」이라 함은, 이른바 『무릇 상相이 있는 바는 다 이 허망虛妄이라[凡所有相 皆是虛妄]』함이 이것이라. 「입불지견入佛知見(부처님 지견에 들어가고)」이라 함은, 문혜지聞慧智를 성취한 까닭이라. 「오불지견悟佛知見(부처님 지견을 깨달아서)」이라 함은, 사혜지思慧智를 성취한 까닭이라. 「무입무오무지무견부득일법無入無悟無知無見不得一法(들어감[入]과 깨달음[悟]이 없으며 앎[知]와 봄[見]이 없어서 한 법法도 얻지 못함)」이라 함은, 수혜지修慧智를 성취한 까닭이라. 「즉열반락即涅槃樂(곧 열반涅槃의 낙樂이더라)」이라 함은, 곧 이 상락아정常樂我淨 사덕四德의 과果를 원만성취圓滿成就한 까닭이라. 
 
 
* 九旱逢甘雨他鄕見故人:
구년 가뭄에 단비를 만나고, 타향에서 고향사람을 봄이라. 
 
 
‧ 『九旱에  逢佳雨요  他鄉에  見故人이로다』
 
 구 년 가뭄에 단비 내리고 천리 타향에서 친구 만났도다.
 
-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西山大師.
 
 
* 譬如一切 ... : 비유하건댄, 일체의 ...
 
 
‧ 『宿王華 譬如一切川流江河 諸水之中海爲第一 此法華經亦復如是 於諸如來所說經中 最爲深大. 又如土山 黑山 小鐵圍山 大鐵圍山及十寶山 衆山之中 須彌山爲第一 此法華經亦復如是 於諸經中最爲其上. 又如衆星之中 月天子最爲第一 此法華經亦復如是 於千萬億種諸經法中 最爲照明. 又如日天子能除諸闇 此經亦復如是 能破一切不善之闇. 又如諸小王中 轉輪聖王最爲第一 此經亦復如是 於衆經中最爲其尊. 又如帝釋 於三十三天中王 此經亦復如是 諸經中王. 又如大梵天王 一切衆生之父 此經亦復如是 一切賢聖 學 無學 及發菩薩心者之父. 又如一切凡夫人中 須陁洹 斯陁含 阿那含 阿羅漢 辟支佛爲第一 此經亦復如是 一切如來所說 若菩薩所說 若聲聞所說 諸經法中 最爲第一. 有能受持是經典者 亦復如是 於一切衆生中 亦爲第一. 一切聲聞 辟支佛中 菩薩爲第一 此經亦復如是 於一切諸經法中 最爲第一. 如佛爲諸法王 此經亦復如是 諸經中王. 宿王華 此經能救一切衆生者 此經能令一切衆生離諸苦惱 此經能大饒益一切衆生充滿其願. 如淸涼池 能滿一切諸渴乏者 如寒者得火 如裸者得衣 如商人得主 如子得母 如渡得舩 如病得醫 如暗得燈 如貧得寶 如民得王 如賈客得海 如炬除暗. 法華經亦復如是 能令衆生離一切苦 一切病痛 能解一切生死之縛. 若人得聞此法華經 若自書 若使人書 所得功德 以佛智慧籌量多少 不得其邊.』
 
수왕화宿王華야, 비유하건댄 일체의 흐르는 냇물이나 강물의 여러 물 가운데에 바다가 제일이 되듯이 이 법화경法華經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여래如來가 설하신 경 가운데에 가장 깊고도 큼이 되나니라. 또 토산土山 흑산黑山 소철위산小鐵圍山 대철위산大鐵圍山과 및 십보산十寶山과 많은 산 가운데에 수미산須彌山이 제일第一이 되듯이, 이 법화경法華經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경전經典 가운데에 가장 위가 되나니라. 또 뭇 별 가운데에 월천자月天子[달]가 가장 제일第一이 되듯이, 이 법화경法華經도 또한 이와 같아서 천만 억 중의 모든 경법經法 가운데에 가장 밝게 비춤이 되나니라. 또 일천자日天子[해]가 능히 여러 어둠을 덜어서 제거하듯이, 이 경전도 또한 이와 같아서 능히 일체의 좋지 못한 어두움을 덜어서 제거하나니라. 또 모든 소왕小王 가운데에 전륜성왕轉輪聖王이 가장 제일第一이 되듯이, 이 경전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많은 경전 가운데에 가장 높음[尊]이 되나니라. 또 제석帝釋이 삼십삼천三十三天 가운데에 왕王인 것과 같아서, 이 경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경전 가운데에 왕王이라. 또 대범천왕大梵天王이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아비와 같아서, 이 경전도 또한 이와 같아 일체의 현성賢聖, 학學, 무학無學과 보살심菩薩心을 발發한 이의 아비[父]이라. 또 일체 범부凡夫의 사람 가운데에 수다원須陀洹, 사다함斯多含, 아나함阿那含,아라한 阿羅漢에게 벽지불辟支佛이 제일第一이 되듯이, 이 경전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일체 여래如來의 설說하심과 보살菩薩의 설說함과 성문聲聞의 설說함과 여러 경법經法 가운데에 가장 제일第一이 되니, 능히 이 경전을 받아서 가지는 이가 있으면 또한 이와 같아서 일체중생一切衆生 가운데에 또한 제일第一이 되리라. 일체 성문聲聞 벽지불辟支佛 가운데에 보살菩薩이 제일第一이 되니, 이 경전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일체의 모든 경법經法 가운데에 가장 제일第一이 되나니라. 부처님이 모든 법法의 왕王이 되듯이, 이 경전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경전 가운데에 왕王이라. 숙왕화宿王華야, 이 경전은 능히 일체중생一切衆生을 구救하며, 이 경은 능히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고뇌苦惱를 여의게 하며, 이 경經은 능히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그 바라는 원願을 충만充滿케 하여 능히 크게 요익饒益하게 하며, 청량한 연못[淸涼池]에 능히 일체의 목마른 사람을 만족滿足케 함과 같으며, 추운 이가 불을 얻음과 같으며, 옷 벗은 이가 옷 얻음과 같으며, 흥정하는 이가 물건의 주인 얻음과 같으며, 아들이 어미를 얻음과 같으며, 물 건너는 이가 배 얻음과 같으며, 병든 이가 의원을 얻음과 같으며, 어두운 이가 등불 얻음과 같으며, 가난한 이가 보배를 얻음과 같으며, 백성이 왕을 얻음과 같으며, 장사하는 이가 바다를 얻음과 같으며, 횃불이 어두움을 없앰과 같아서, 이 법화경法華經도 또한 이와 같아 능히 중생衆生으로 하여금 일체의 고통苦痛과 일체의 병고病苦를 여의게 하며, 능히 일체 생사生死의 메임을 풀어버리느니라. 만약 사람이 법화경法華經을 얻어 듣고서 스스로 쓰며 남으로 하여금 쓰게 하면, 얻는 공덕은 부처님의 지혜로  많고 적음을 헤아려도 그 갓을 얻지 못하느니라.
 

  • <화엄경法華經> 육권六卷.

 
 
 
 
 
 
 
 
 
 
 
 
 
 
 
 
 
 
 
 
 
 
 
 
 
 
 
 
[독송본讀誦本]
 
○ 원문(原文)

 
 
【聞如是 一時佛 在毘耶達摩城 寥廓宅中 十方相隨 四衆圍繞 爾時 無礙菩薩 在大衆中 即從座起 合掌向佛 而白佛言 世尊 此閻浮提衆生 遞代相生 無始已來 相續不斷 有識者少 無智者多 念佛者少 求神者多 持戒者少 破戒者多 精進者少 懈怠者多 智慧者少 愚癡者多 長壽者少 短命者多 禪定者少 散亂者多 富䝿者少 貧賤者多 溫柔者少 剛强者多 興盛者少 惸獨者多 正直者少 曲諂者多 淸愼者少 貪濁者多 布施者少 慳悋者多 信實者少 虛妄者多 致使 世俗淺薄 官法茶毒 賦役煩重 百姓窮苦 所求難得 良由信邪倒見 獲如是苦 唯願 世尊 爲諸邪見衆生 說其正見之法 令得悟解 免於衆苦】

문여시하니 일시에 불이 재비야달마성의 요확택중하사 시방상수하고 사중위요러니 이시무애보살이 재대중중하사 즉종좌기하사 합장향불하고 이백불언 하사대 세존이시여 차염부제중생이 체대상생하야 무시이래로 상속부단하되 유식자소하고 무지자다하며 염불자소하고 구신자다하며 지계자소하고 파계자다하며 정진자소하고 해태자다하며 지혜자소하고 우치자다하며 장수자소하고 단명자다하며  선정자소하고 산란자다하며 부귀자소하고 빈천자다하며 온유자소하고 강강자다하며 흥성자소하고 경독자다하며 정직자소하고 곡첨자다하며 청신자소하고 탐탁자다하며 보시자소하고 간린자다하며 신실자소하고 허망자다해서 치사 세속으론 천박하야 관법이 다독하며 부역이 번중하고 백성이 궁고하야 소구난득이로다. 양유신사도견하야 획여시고하나니 유원 세존은 위제사견중생하야 설기정견지법하사 령득오해하야 면어중고케 하소서.
 

 
【佛言 善哉善哉 無礙菩薩 汝大慈悲 爲諸邪見衆生 問於如來正見之法 不可思議 汝等諦聽 善思念之 吾當爲汝 分別解說天地八陽之經 此經 過去諸佛已說 未來諸佛當說 現在諸佛今說 夫天地之間 爲人最勝最上 䝿於一切萬物 人者 正也 眞也 心無虛妄 身行正眞 左丿爲正 右乀爲眞 常行正眞 故名爲人 是知人能弘道 道以潤身 依道依人 皆成聖道】

불언 선재선재라 무애보살아 여대자비로 위제사견중생하야 문어여래정견지법의 불가사의하리니 여등은 제청하고 선사념지하라 오당위여하야 분별해설천지팔양지경하리라 차경은 과거제불이 이설하시고 미래제불이 당설하시며 현재제불이 금설하시니라. 부천지지간에 위인이 최승최상하고 귀어일체만물하니 인자는 정야며 진야라 심무허망하야 신행정진이니 좌별위정이요 우불위진이라 상행정진할새 고명위인이니 시지인능홍도하며 도이윤신하나니 의도의인하면 개성성도하리라.
 
 
【復次 無礙菩薩 一切衆生 旣得人身 不能修福 背眞向僞 造種種惡業 命將欲終 沈淪苦海 受種種罪 若聞此經 信心不逆 即得解脫諸罪之難 出於苦海 善神加護 無諸障礙 延年益壽 而無橫夭 以信力故 獲如是福 何況有人 盡能書寫 受持讀誦 如法修行 其功德 不可稱 不可量 無有邊際 命終之後 竝得成佛】
 
 부차 무애보살아 일체중생이 기득인신하되 불능수복하고 배진향위하며 조종종악업타가 명장욕종에 침윤고해하여 수종종죄하나니 약문차경하야 신심불역하면 즉득해탈제죄지난하고 출어고해하야 선신가호로 무제장애하고 연년익수하야 이무횡요니라. 이신력고로 획여시복이어늘 하황유인이 진능서사하고 수지독송하야 여법수행하면 기공덕은 불가칭이며 불가량하야 무유변제하야 명종지후에 병득성불하리라.
 
 
 
【佛告 無礙菩薩摩訶薩 若有衆生 信邪倒見 即被邪魔外道 魑魅魍魎 鳥鳴百怪 諸惡鬼神 競來惱亂 與其橫病 惡腫惡疰惡忤 受其痛苦 無有休息 遇善知識 爲讀此經三遍 是諸惡鬼 皆悉消滅 病則除愈 身强力足 讀經功德 獲如是福 若有衆生 多於淫欲 瞋恚愚癡 慳貪嫉妬 若見此經 信敬供養 則讀此經 三遍 遇癡等惡 竝皆除滅 慈悲喜捨 得佛法分】
 
불고 무애보살마하살하시되 약유중생이 신사도견하야 즉피사마외도와 이매망량과 조명백괴와 제악귀신이 경래뇌란으로 여기횡병하되 악종악주악오로 수기통고하야 무유휴식이라 우선지식하야 위독차경삼편하면 시제악귀가 개실소멸하야 병즉제유하야 신강역족하나니 독경공덕으로 획여시복이니라. 약유중생이 다어음욕하며 진애우치하며 간탐질투라도 약견차경하고 신경공양하며 즉독차경삼편하면 우치등악이 병개제멸하며 자비희사로 득불법분이니라. 
 
 
【復次 無礙菩薩 若善男子善女人 興有爲法 先讀此經三遍 築墻動土 安立家宅 南堂北堂 東序西序 厨舍客屋 門戶井竈 碓磑庫藏 六畜欄圂 日遊月殺 將軍太歲 黃幡豹尾 五土地神 靑龍白虎 朱雀玄武 六甲禁諱 十二諸神 土尉伏龍 一切鬼魅 皆悉隱藏 遠迸他方 形消影滅 不敢爲害 甚大吉利 得福無量】
 
부차 무애보살아 약선남자와 선여인이 흥유위법하되 선독차경삼편하고  축장동토하며 안입가택하며 남당과 북당과 동서와 서서와 주사객옥과 문호정조와 대애고장과 육축난혼하면 일유월살과 장군태세와 황번표미와 오토지신과 청룡백호와 주작현무와 육갑금휘와 십이제신과 토위복룡과 일체귀매가 개실은장하야 원병타방하고 형소영멸로 불감위해하며 심대길리하야 득복무량하리라
 
 
【善男子 興功之後 堂舍永安 屋宅牢固 富䝿吉昌 不求自得 若欲遠行 從軍仕䆠 興生甚得宜利 門興人貴 百子千孫 父慈子孝 男忠女貞 兄恭弟順 夫妻和睦 信義篤親 所願成就 若有衆生 忽被縣官拘繫 盜賊牽挽 暫讀此經三遍 即得解脫 若有善男子善女人 受持讀誦 爲他人書寫天地八陽經者 設入水火 不被焚漂 或在山澤 虎狼屛迹 不敢搏噬 善神衛護 成無上道】
 
선남자야 흥공지후에 당사영안하고 옥택뢰고하며 부귀길창하야 불구자득하며 약욕원행하야 종군사환으로 흥생하면 심득의리하야 문흥인귀하며 백자천손으로 부자자효하며 남충여정하며 형공제순으로 부처화목하며 신의독친하여 소원성취하리라. 약유중생이 홀피 현관구계커나 도적견만이라도 잠독차경삼편하면 즉득해탈하리라 약유 선남자와 선여인이 수지독송하고 위타인서사천지팔양경자는 설입수화라도 불피분표하고 혹재산택이라도 호랑이 병적하야 불감박서하며 선신이 위호하야 성무상도하리라.
 
【若復有人 多於妄語綺語 兩舌惡口 若能受持讀誦此經 永除四過 得四無礙辯 而成佛道 若善男子善女人等 父母有罪 臨終之日 當墮地獄 受無量苦 其子即爲讀誦此經七遍 父母即離地獄 而生天上 見佛聞法 悟無生忍 以成佛道】
 
약부유인이 다어망어기어와 양설악구라도 약능수지독송차경하면 영제사과하고 득사무애변하야 이성불도하며 약선남자선여인등이 부모유죄하야 임종지일에 당타지옥하며 수무량고라도 기자즉위독송차경칠편하면 부모즉리지옥하고 이생천상하야 견불문법하고 오무생인하여 이성불도하리라
 
 
【佛告 無礙菩薩 毗婆尸佛時 有優婆塞優婆夷 心不信邪 敬崇佛法 書寫此經 受持讀誦 須作即作 一無所問 以正信故 兼行布施 平等供養 得無漏身 成菩提道 號曰 普光如來應正等覺 劫名大滿 國號無邊 但是人民 行菩薩道 無所得法】 
 
불고 무애보살하시되 비바시불시에 유우바새나 우바이하야 심불신사하고 경숭불법하며 서사차경하여 수지독송하되 수작즉작하고 일무소문하니라. 이정신고로 겸행보시하되 평등공양하고 득무루신으로 성보리도하나니 호왈 보광여래응정등각이라 겁명은 대만이요 국호는 무변이라 단시인민이 행보살도하되 무소득법하나니라.
 
 
【復次 無礙菩薩 此天地八陽經 行閻浮提 在在處處 有八菩薩 諸梵天王 一切朙靈 圍繞此經 香華供養 如佛無異 佛告 無礙菩薩摩訶薩 若善男子 善女人等 爲諸衆生 講說此經 深達實相 得甚深理 即知身心 佛身法心】
 
부차 무애보살아 차천지팔양경이 행염부제하면 재재처처에 유팔보살과 제범천왕과 일체명령이 위요차경하고 향화공양하야 여불무이하나니라. 불고 무애보살마하살하사되 약선남자 선여인등이 위제중생하야 강설차경하면 심달실상하야 득심심리하되 즉지신심이 불신법심이라.
 
 
【所以 能知則智慧 眼常見種種無盡色 色即是空 空即是色 受想行識亦空 即是妙色身如來 耳常聞 種種無盡聲 聲即是空 空即是聲 即是妙音聲如來 鼻常齅 種種無盡香 香即是空 空即是香 即是香積如來 舌常了 種種無盡味 味即是空 空即是味 即是法喜如來 身常覺 種種無盡觸 觸即是空 空即是觸 即是智勝如來 意常思想分別 種種無盡法 法即是空 空即是法 即是法朙如來】 
 
소이 능지즉지혜니 안상견종종무진색하되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라 수상행식도 역공하나니 즉시묘색신여래며, 이상문 종종무진성하되 성즉시공이요 공즉시성이라 즉시묘음성여래며, 비상후 종종무진향하되 향즉시공이요 공즉시향이라 즉시향적여래며, 설상료 종종무진미하되 미즉시공이요 공즉시미이라 즉시법희여래며, 신상각 종종무진촉하되 촉즉시공이요 공즉시촉이라 즉시지승여래며, 의상사상분별 종종무진법하되 법즉시공이요 공즉시법이라 즉시법명여래니라.
 
 
【善男子 此六根顯現 人皆口常 說其善語 善法常轉 即成聖道 說其邪語 惡法常轉 即墮地獄 善男子 善惡之理 不得不信 善男子 人之身心 是佛法器 亦是十二部大經卷也 無始已來 轉讀不盡 不損毫毛 如來藏經 唯識心見性者之所能知 非諸聲聞凡夫所能知也 善男子 讀誦此經 深解眞理 即知身心 是佛法器 若醉迷不醒 不了自心是佛法根本 流浪諸趣 墮於惡道 永沈苦海 不聞佛法名字】
 
선남자야 차육근이 현현하야 인개구상설기선어하여 선법상전하면 즉성성도하고 설기사어하야 악법상전하면 즉타지옥하나니 선남자야 선악지리는 부득불신이니라. 선남자야 인지신심이 시불법기며 역시십이부대경권야어늘, 무시이래로 전독부진하야 불손호모하나니 여래장경은 유식심견성자지소능지요 비제성문범부의 소능지야니라. 선남자야 독송차경하여 심해진리하면 즉지신심이 시불법기어니 약취미불성하면 불료자심이 시불법근본하고 유랑제취하야 타어악도하고 영침고해하야 불문불법명자하리라
 
 
【爾時 五百天子 在大衆中 聞佛所說 得法眼淨 皆大歡喜 即發無等等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無礙菩薩 復白佛言 世尊 人之在世 生死爲重 生不擇日 時至即生 死不擇日 時至即死 何因殯葬 即問良辰吉日 然始殯葬 殯葬之後 還有妨害 貧窮者多 滅門者不少 唯願世尊 爲諸邪見無知衆生 說其因緣 令得正見 除其顚倒】  
 
이시에 오백천자가 재대중중하야 문불소설하고 득법안정하야 개대환희하며 즉발무등등아누다라삼먁삼보리심하니 무애보살이 부백불언하되 세존이시여 인지재세에 생사위중이나 생불택일이라 시지즉생하고 사불택일이라 시지즉사어늘 하인빈장하야 즉문양신길일하고 연시빈장하되 빈장지후에 환유방해하야 빈궁자다하고 멸문자불소닛고 유원 세존이시여 위제사견무지중생하야 설기인연하야 령득정견하고 제기전도하소서.
 
 
【佛言 善哉善哉 善男子 汝實甚能問於衆生 生死之事 殯葬之法 汝等諦聽 當爲汝說 智慧之理 大道之法 夫天地廣大淸 日月廣長朙 時年善善美 實無有異】
 
불언 선재선재라 선남자야 여실심능문어중생의 생사지사와 빈장지법하니 여등제청하라 당위여설 지혜지리와 대도지법하리라. 부천지광대청하고 일월광장명하야 시년선선미하며 실무유이니라.
 
 
【 善男子 人王菩薩 甚大慈悲 愍念衆生 皆如赤子 下爲人主 作民父母 順於俗人 敎民俗法 遺作曆日 班下天下 令知時節 爲有滿平成收開除之字 執危破殺之文 愚人依字信用 無不免其凶禍 又使邪師 壓鎭 說是道非 謾求邪神 拜餓鬼 却招殃自受苦 如是人輩 反天時 逆地理 背日月之光明 常投暗室 違正道之廣路 恒尋邪徑 顚倒之甚也】
 
선남자야 인왕보살이 심대자비하야 민념중생하되 개여적자하야 하위인주하야 작민부모하되 순어속인하여 교민속법하며 유작력일하사 반하천하하며 령지시절하야 위유만평성수계제지자와 집위파살지문이라 우인의자신용하야 무불면기흉화코져하였나니라. 우사사사로 압진하고 설시도비하야 만구사신하며 배아귀하야 각초앙자수고하나니 여시인배는 반천시하고 역지리하야 배일월지광명하고 상투암실하며 위정도지광로하야 항심사경이라 전도지심야니라 
 
 
【善男子 産時 讀誦此經三遍 兒即易生 甚大吉利 聰明利智 福德具足 而不中夭 死時讀誦此經三遍 一無妨害 得福無量 善男子 日日好日 月月好月 年年好年 實無間隔 但辦即須殯葬 殯葬之日 讀誦此經七遍 甚大吉利 獲福無量 門榮人貴 延年益壽 命終之日 竝得成聖 善男子 殯葬之地 莫問東西南北 安穩之處 人之愛樂 鬼神愛樂 即讀此經三遍 便以修營 安置墓田 永無災障 家富人興 甚大吉利】
 
선남자야 산시에 독송차경삼편하 아즉이생하고 심대길리하야 총명이지하며 복덕구족하야 이불중요하며 사시독송차경삼편하면 일무방해하고 득복무량하리라. 선남자 일일호일이며 월월호월이며 년년호년이며 실무간격이니 단판즉수빈장하고 빈장지일에 독송차경칠편하면 심대길리하야 획복무량하며 문영인귀하고 연년익수하며 명종지일에 병득성성하리라. 선남자야 빈장지지를 막문동서남북 안온지처니 인지애락은 귀신도 애락이라 즉독차경삼편하고 변이수영하며 안치묘전하면 영무재장하고 가부인흥하야 심대길리하리라.
 
 
【爾時 世尊 欲重宣此義 而說偈言, 
 
營生善善日 休殯好好時 
生死讀誦經 甚得大吉利 
月月善朙月 年年大好年 
讀經即殯葬 榮華萬代昌】
 
이시에 세존이 욕중선차의하야 이설게언하사되, 
 
영생선선일이며 휴빈호호시라 
생사독송경하면 심득대길리니라 
월월선명월이요 년년대호년이라 
독경즉빈장하면 영화만대창이니라.
 
 
 
【爾時 衆中七萬七千人 聞佛所說 心開意解 捨邪歸正 得佛法分 永斷疑惑 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이시중중에 칠만칠천인이 문불소설하고 심개의해하야 사사귀정하며 득불법분하야 영단의혹하고 개발아누다라삼먁삼보리심 하였나니라.
 
 
【無礙菩薩 復白佛言 世尊 一切凡夫 皆以婚媾 爲親 先問相宜 後取吉日 然始成親 成親之後 富䝿偕老者少 貧寒生離死別者多 一種信邪 如何而有差別 唯願世酋 爲決衆疑】
 
무애보살이 부백불언하사되 세존 일체범부가 개이혼구요 위친하되 선문상의하고 후취길일하야 연시성친하나 성친지후에 당귀해로자소하고 빈한생리사별자다하니 일종신사하되 여하이유차별이닛고 유원세존이시여 위결중의하소서.
 
 
【佛言 善男子 汝等諦聽 當爲汝說 夫天陰地陽 月陰日陽 水陰火陽 男陰女陽 天地氣合 一切草木生焉 日月交運 四時八節朙焉 水火相承 一切萬物熟焉 男女允諧 子孫興焉 皆是天之常道 自然之理 世諦之法 善男子 愚人無智 信其邪師 卜問望吉 而不修善 造種種惡業 命終之後 復得人身者 如指甲上土 墮於地獄 作餓鬼畜生者 如大地土 善男子 復得人身 正信修善者 如指甲上土 信邪造惡業者 如大地土】 
 
불언하사되 선남자야 여등은 제청하라 당위여설하리라 부천음지양하며 월음일양하며 수음화양하며 남음여양이니 천지기합하야 일체초목이 생언하고 일월이 교운하야 사시팔절이 명언하고 수화상승하야 일체만물이 숙언하고 남녀윤해하야 자손이 흥언하나니 개시천지상도라 자연지리며 세제지법이니라. 선남자야 우인은 무지하야 신기사사하며 복문망길하야 이불수선하고 조종종악업이라가 명종지후에 부득인신자는 여지갑상토하고 타어지옥하야 작아귀축생자는 여대지토니라 선남자야 부득인신하야 정신수선자는 여지갑상토하고 신사조악업자는 여대지토니라.
 
 
【善男子 欲結婚親 莫問水火相剋 胞胎相壓 年命不同 唯看祿命書 即知福德多少 以爲眷屬 呼迎之日 即讀此經三遍 而以成禮 此乃善善相因 朙朙相屬 門高人䝿 子孫興盛 聰朙利智 多才多藝 孝敬相承 甚大吉利 而無中夭 福德具足 皆成佛道】
 
선남자야 욕결혼친인댄 막문수화상극과 포태상압과 년명부동하고 유간녹명서하야 즉지복덕다소하고 이위권속하고 호영지일에 즉독차경삼편하야 이이성예하면 차내선선상인이요 명명상속이라 문고인귀하고 자손흥성하며 총명이지하야 다재다예하며 효경상승하고 심대길리하야 이무중요하며 복덕구족하야 개성불도하리라
 
 
【時有八菩薩 承佛威神 得大總持 常處人閒 和光同塵 破邪立正 度四生 處八解 而不自異】
 
시유팔보살이 승불위신하야 득대총지하며 상처인간하야 화광동진하고 파사입정하며 도사생처팔해하되 이불자이하니
 
 
【其名曰,
跋陀羅菩薩漏盡和 羅鄰竭菩薩漏盡和 
憍目兜菩薩漏盡和 那羅達菩薩漏盡和 
須彌深菩薩漏盡和 因抵達菩薩漏盡和 
和輪調菩薩漏盡和 無緣觀菩薩漏盡和】
 
기명왈, 
발타라보살누진화며 라린갈보살누진화며 
교목도보살누진화며 나라달보살누진화며 
수미심보살누진화며 인저달보살누진화며 
화륜조보살누진화며 무연관보살누진화라.
 
 
【是八菩薩 俱白佛言 世尊 我等 於諸佛所 受得陀羅尼神呪 而今說之 擁護受持讀誦天地八陽經者 永無恐怖 使一切不善之物 不得侵損讀經法師】 
 
시팔보살이 구백불언하시되 세존아 아등이 어제불소에 수득다라니신주하니 이금설지하야 옹호수지독송천지팔양경자하야 영무공포케하며 사일체불선지물로 부득침손독경법사케하리라.
 
 
【即於佛前 而說呪曰, 阿佉尼 尼佉尼 阿比羅 曼隷 曼多隷】
 
즉어불전에 이설주왈, 아거니 니거니 아비라 만례 만다례.
 
 
【世尊 若有不善者 欲來惱法師 聞我說此呪 頭破作七分 如阿黎樹枝】
 
세존아 약유불선자가 욕래뇌법사하면 문아설차주하고 두파작칠분을 여아리수지하리라.
 
 
【爾時 無邊身菩薩 即從座起 前白佛言 世尊 云何名爲天地八陽經 唯願世尊 爲諸聽衆 解說其義 令得覺悟 速達心本 入佛知見 永斷疑悔】
 
이시에 무변신보살이 즉종좌기하야 전백불언하시되 세존이여 운하명위천지팔양경이닛고 유원세존은 위제청중하야 해설기의하야 령득각오하며 속달심본하고 입불지견하야 영단의회케하소서
 
 
【佛言 善哉善哉 善男子 汝等諦聽 吾今爲汝 分別解說 天地八陽之經 天者陰也 地者 陽也 八者 分別也 陽者 明解也 明解大乘無爲之理 了能分別八識因緣 空無所得 又云八識爲經 陽朙爲緯 經緯相投 以成經敎 故名八陽經 八者 是八識 六根是六識 含藏識阿賴耶識 是名八識】 
 
불언하사되 선재선재라 선남자야 여등은 제청하라 오금위여하야 분별해설 천지팔양지경하리라 천자는 음야요 지자는 양야라 팔자는 분별야요 양자는 명해야니 명해대승무위지리하야 요능분별팔식인연이 공무소득이니라. 우운팔식이 위경하고 양명이 위위하니 경위상투하야 이성경교라 고로 명팔양경이니라 팔자는 시팔식이니 육근이 시육식이요 함장식과 아뢰야식이 시명팔식이라. 
 
 
【 朙了分別 八識根源 空無所有 即知兩眼是光朙天 光朙天中 即現日月光朙世尊 兩耳是聲聞天 聲聞天中 即現無量聲如來 兩鼻是佛香天 佛香天中 即現香積如來 口舌是法味天 法味天中 即現法喜如來 身是盧舍那天 盧舍那天中 即現成就盧舍那佛 盧舍那鏡像佛 盧舍那光朙佛 意是無分別天 無分別天中 即現不動如來大光朙佛 心是法界天 法界天中 即現空王如來 含藏識天 演出阿那含經 大般涅槃經 阿賴耶識天 演出大智度論經 瑜伽論經 善男子 佛即是法 法即是佛 合爲一相 即現大通智勝如來】
 
명료분별팔식근원이 공무소유하면 즉지양안은 시광명천이니라 광명천중에 즉현일월광명세존이며 양이는 시성문천이니 성문천중에 즉현무량성여래며 양비는 시불향천이니 불향천중에 즉현향적여래며 구설은 시법미천이니 법미천중에 즉현법희여래며 신은 시노사나천이니 노사나천중에 즉현성취노사나불과 노사나경상불과 노사나광명불이며 의는 시무분별천이니 무분별천중에 즉현부동여래대광명불이며 심은 시법계천이니 법계천중에 즉현공왕여래며 함장식천에 연출아나함경과 대반열반경이며 아뢰야식천에 연출대지도론경과 유가론경이니라 선남자야 불즉시법이요 법즉시불이니 합위일상하야 즉현대통지승여래니라. 
 
 
【佛說此經時 一切大地 六種震動 光照天地 無有邊際 浩浩蕩蕩 而無所名 一切幽冥 皆悉朙朗 一切地獄 竝皆消滅 一切罪人 俱得離苦 爾時 大衆之中 八萬八千菩薩 一時成佛 號曰空王如來應正等覺 劫名離垢 國號無邊 一切人民 皆行菩薩六波羅蜜 無有彼此 證無諍三昧 逮無所得 六萬六千比丘比丘尼 優婆塞優婆夷 得大總持 入不二法門 無數天龍夜叉 乾闥婆 阿修羅 迦樓羅 緊那羅 摩睺羅伽 人非人等 得法眼淨 行菩薩道】
 
불설차경시에 일체대지가 육종진동하며 광조천지하야 무유변재하고 호호탕탕하야 이무소명이라 일체유명은 개실명랑하고 일체지옥은 병개소멸하며 일체죄인은 구득리고니라. 이시에 대중지중의 팔만팔천보살이 일시성불하니 호왈공왕여래응정등각이라 겁명은 리구요 국호는 무변이니 일체인민은 개행보살육바라밀하되 무유피차에 증무쟁삼매하야 체무소득하고 육만육천 비구와 비구니와 우바새와 우바이는 득대총지하야 입불이법문하고 무수천룡야차와 건달바와 아수라와 가루라와 긴나라와 마후라가와 인비인등은 득법안정하야 행보살도하라.
 
 
【善男子 若復有人 得官登位之日 及新入宅之時 暫讀此經三遍 甚大吉利 善神加護 延年益壽 福德具足 善男子 若讀此經一遍 如讀一切經一遍 若寫一卷 如寫一切經一部 其功德 不可稱 不可量 等虛空 無有邊際 成聖道果 復次無邊身菩薩摩訶薩 若有衆生 不信正法 常生邪見 忽聞此經 即生非謗 言非佛說 是人現世 得白癩病 惡瘡膿血 徧體交流 腥臊臭穢 人皆憎嫉 命終之日 即墮阿鼻無間地獄 上火徹下 下火徹上 鐵槍鐵叉 徧體穿穴 融銅灌口 筋骨爛壞 一日一夜 萬死萬生 受大苦痛 無有休息 謗斯經故 獲罪如是】
 
선남자야 약부유인이 득관등위지일과 급신입택지시에 잠독차경삼편하면 심대길리하야 선신이 가호하고 연년익수하야 복덕이 구족하나니 선남자야 약독차경일편하면 여독일체경일편이요 약사일권하면 여사일체경일부라 기공덕은 불가칭하며 불가량하며 등허공하야 무유변제하며 성성도과리라. 부차무변신보살마하살아 약유중생이 불신정법하야 상생사견하사 홀문차경하고 즉생비방하되 언비불설이라 시인은 현세에 득백나병하야 악창농혈이 변체교류하며 성조취예를 인개증질타가 명종지일에 즉타아비무간지옥하야 상화철하하고 하화철상하며 철창철차는 변체천혈하며 융동관구에 근골이 난괴하야 일일일야에 만사만생으로 수대고통하야 무유휴식이니 방사경고로 획죄여시니라. 
 
 
【佛爲罪人 而說偈言, 
 
身是自然身 五軆自然足 
長乃自然長 老則自然老 
生乃自然生 死則自然死 
求長不得長 求短不得短 
 
苦樂汝自當 邪正由汝己 
欲作有爲功 讀經莫問師  
千千萬萬世 得道轉法輪】
 
 
불위죄인하야 이설게언하사되, 
 
신시자연신이요 오체자연족이며 
장내자연장이요 노즉자연노며 
생내자연생이요 사즉자연사며 
구장부득장이요 구단부득단이라 
 
고락여자당하고 사정유여기라 
욕작유위공인댄 독경막문사니 
천천만만세에 득도전법륜이니라.
 
 
 
 
【佛說此經已 一切大衆 得未曾有 心朙意淨 歡喜踊躍 皆見諸相非相 入佛知見 悟佛知見 無入無悟 無知無見 不得一法 即涅槃樂】
 
불설차경이하시니 일체대중이 득미증유하야 심명의정에 환희용약하며 개견제상이 비상하고 입불지견하고 오불지견하야 무입무오하고 무지무견하야 부득일법이 즉열반락하더라.
 
 
 
 
 
 
 
 
 
 
 
 
 
 
 
 
 
 
 
 
 
 
 
 
 
 
[번역본飜譯本]

 
 
 
[이와 같음을 들었으니 한 때 부처님께서 비야달마성毘耶達摩城의 넓고 큰 집에 계심에 시방十方에서 서로 좇아 모여들고 사부대중四部大衆이 둘러서 앉아있더니 그때 무애보살無礙菩薩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로 좇아 일어나서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어 말씀드리되, 세존이시여 이 염부제閻浮提 중생衆生들이 서로 처지를 바꿔가며 생겨나서 시작이 없이 오면서 서로 이어옴이 끊임이 없으되, 유식有識한 이는 적고 무지無智한 이는 많으며 염불念佛하는 이는 적고 구신求神하는 이는 많으며 지계持戒하는 이는 적고 파계破戒하는 이는 많으며 정진精進하는 이는 적고 해태懈怠한이는 많으며 지혜智慧로운 이는 적고 우치愚癡한 이는 많으며 장수長壽하는 이는 적고 단명短命하는 이는 많으며 선정禪定한 이는 적고 산란散亂한 이는 많으며 부귀富䝿한 이는 적고 빈천貧賤한 이는 많으며 온유溫柔한 이는 적고 강강剛强한 이는 많으며 흥성興盛한 이는 적고 경독惸獨한 이는 많으며 정직正直한 이는 적고 곡첨曲諂하는 이는 많으며 청신淸愼한 이는 적고 탐탁貪濁한 이는 많으며 보시布施하는 이는 적고 간린慳悋하는 이는 많으며 신실信實한 이는 적고 허망虛妄한 이는 많아서, 그러한 탓으로 세속으로는 천박하여 관청의 법규가 혹독하며 부역이 무거워 고통스럽고 백성이 궁핍으로 괴로워 구하는 바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참으로 삿되고 전도된 견해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고통을 얻나니, 원하옵나니 세존께서는 모든 사견중생邪見衆生을 위하여 그 정견正見의 법法을 설說하시어 깨달아 알게 하여 온갖 고통을 면하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선재善哉 선재善哉라 무애보살아. 그대가 큰 자비慈悲로 모든 사견중생邪見衆生을 위하여 여래如來 정견正見의 법法인 가히 사의思議할 수 없음을 묻나니,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잘 사념思念하라. 내 마땅히 너를 위하여 천지팔양天地八陽의 경經을 분별分別하여 해설解說하리라. 이 경經은 과거過去의 모든 부처님이 이미 설하셨고 미래未來의 모든 부처님이 당래當來에 설하시며 현재現在의 모든 부처님이 지금 설하시니라. 대저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가장 뛰어나고 가장 높으며 일체만물 가운데에서 귀하니, 사람[人]이라 함은 정正이요 진眞이라. 마음이 허망함이 없어 몸이 정正과 진眞을 행行하니, 좌左로 획을 그어[丿] 정正으로 삼고 우右로 획을 그어[乀] 진眞으로 삼음이라 항상 정正과 진眞을 행하는 까닭에 이름하여 인[人, 사람]이라 함이니, 이는 사람이 능히 도道를 널리 펼치며 도로써 몸을 윤택하게 함을 아나니, 도道를 의지하고 사람[正眞]을 의지하면 모두가 성인의 도과[道果]를 이루리라.]
 
 
[또 무애보살無礙菩薩아, 일체중생一切衆生이 이미 사람의 몸을 얻었으되 복福을 닦지 아니하고 참됨을 등져 거짓을 향하며 갖가지 악업惡業을 짓다가 목숨이 장차 끊어지려고 함에 고해苦海에 빠져서 갖가지 죄를 받나니 만약 이 경經을 듣고서 신심信心이 물러나지 아니하면, 곧 모든 죄의 어려움에서 해탈解脫을 얻고 고해苦海에서 벗어나 선신善神의 가호加護로 모든 장애가 없고 나이가 늘어 수명을 더하여 감에 갑자기 요절夭折하는 일이 없느니라. 믿는 힘으로도 이와 같은 복福을 얻는데, 어찌 하물며 다 능히 글을 베껴 쓰고 받아 지녀 독송하는 사람에 있어서랴. 여법如法히 수행하면 그 공덕功德은 가히 저울질 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으며 끝 간 데가 없어서, 목숨이 끝난 후에는 모두가 나란히 성불成佛하리라.]
 
 
[부처님께서 무애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시되, 만약 중생이 삿되고 전도顚倒된 견해를 믿어서 곧 사마외도邪魔外道와 이매망량魑魅魍魎과 온갖 괴이한 소리로 우는 새와 모든 악한 귀신들이 갑작스런 병과 더불어 다투어 와서 번뇌煩惱로 어지럽게 하되 지독한 종기와 지독한 염병과 지독한 어지러움으로 그 사무치는 고통을 받아서 쉴 겨를이 있음이 없음이라. 선지식善知識을 만나 이 경經 삼편三遍을 읽게 되면 이 모든 악귀가 다 소멸하여 병은 곧 없어지고 나아서 몸이 강건해지고 힘은 족足하여지나니, 경을 독송하는 공덕으로 이와 같은 복을 얻느니라. 만약 중생衆生이 음욕淫欲 ‧ 진애瞋恚 ‧ 우치愚癡 ‧ 간탐慳貪 ‧ 질투嫉妬가 많다 하더라도, 만약 이 경經을 보고 믿음과 공경으로 공양供養하여 이 경經 삼편三遍을 독송하면, 우치遇癡 등의 악惡이 아울러서 모두 사라지며 자비희사慈悲喜捨로 부처님의 법法 분부分付하심을 얻느니라.] 
 
 
[다시 무애보살無礙菩薩아, 만약 선남자善男子와 선여인善女人이 유위법有爲法을 일으키되 먼저 이 경經 삼편三遍을 독송하고 담을 쌓고 흙을 옮겨서, 남쪽 사랑舍廊채(안채)와 북쪽 사랑채, 동쪽 행랑방行廊房(바깥채)과 서쪽 행랑방, 주방과 객실, 출입문 ‧ 우물 ‧ 아궁이(화덕) ‧ 디딜방아 ‧ 맷돌 ‧ 곳간, 가축을 기르는 축사 등의 집을 편안히 세우면 일유월살日遊月殺과 장군태세將軍太歲와 황번표미黃幡豹尾와 오토지신五土地神과 청룡백호靑龍白虎와 주작현무朱雀玄武와 육갑금휘六甲禁諱와 십이제신十二諸神과 토위복룡土尉伏龍과 일체一切의 귀매鬼魅가 모두 다 숨거나 멀리 다른 곳으로 떠나고 형상은 소멸하여 그림자마저 사라지므로 감히 해害가 되지 아니하며 심히 크게 길吉하고 이利로워 무량無量한 복福을 얻으리라.]
 
 
[선남자善男子야, 공功을 흥성하게 한 후에, 집안은 영원히 편안하고 가옥은 견고하며 부귀富䝿하여 길吉하고 번창함을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으며, 만일 먼 길을 떠나 군인이나 관직에 나아가 삶을 흥興하게 하고자하면 심히 마땅한 이익을 얻어서 가문家門이 흥성하고 사람이 존귀尊貴해지며 많은 자식과 손자들로 아비는 자애慈愛롭고 자식은 효도孝道하며 남자는 충성忠誠하고 여자는 정결貞潔하며 형은 공손하고 아우는 수순하며 남편과 아내는 화목하고 신의信義로 도탑고 친하여 바라는 바를 성취하게 되리라. 만약 어떤 중생이, 고을의 관청에서 잡아 묶어버리거나 도적이 잡아서 끌고 감을 문득 당하게 된다 하더라도, 잠깐 이 경經 삼편經三遍을 독송하면 곧 해탈解脫을 얻으리라.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받아 지녀 독송讀誦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천지팔양경天地八陽經의 글월을 베껴 쓰는 이가 있다면, 설사 물과 불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떠내려가거나 불태워지지 않고 혹은 산과 연못에 있더라도 호랑이와 늑대가 자취를 감추어 감히 잡아 뜯어먹지 못하며, 선신善神이 보호하고 지켜서 위없는 보리도菩提道를 이루리라.]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망어妄語 기어綺語와 양설兩舌 악구惡口가 많다 하더라도, 만약 능히 이 경經을 받아 지녀 독송讀誦하면 영원히 사과四過를 제거하고 사무애변四無礙辯을 얻어서 불도佛道를 이루며, 만약 선남자善男子 선여인善女人 등이 부모父母가 죄罪가 있어서 임종臨終하는 날에 지옥地獄에 떨어짐을 당하며 한량없는 고苦를 받게 되더라도, 그 자식이 곧 (부모를)위하여 이 경經 칠편七遍을 독송讀誦하면 부모父母가 곧 지옥地獄을 여의고 천상天上에 나서 부처님을 뵈어 법문을 듣고 무생인無生忍을 깨달아 불도佛道를 이루리라.]
 
 
[부처님께서 무애보살無礙菩薩에게 말씀하시되, 비바시불毗婆尸佛 때에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가 있어서 마음은 삿됨을 믿지 아니하고 불법佛法을 우러러 공경恭敬하여 이 경經을 베껴 써서 받아 지녀 독송讀誦하되, 모름지기 지음에 곧 짓고 한 번도 물어본 바가 없었느니라. 바른 믿음[正信]인 까닭으로 겸하여 보시布施를 행하되 평등平等히 공양供養하고 무루신無漏身을 얻어 보리도菩提道를 이루었나니, 호號는 이르되 보광여래응정등각普光如來應正等覺이라. 겁명劫名은 대만大滿이요 국호國號는 무변無邊이라. 다만 이 나라의 백성이 보살도菩薩道를 행行하되 법을 얻은 바가 없나니라.]
 
 
[다시 무애보살無礙菩薩아, 이 천지팔양경天地八陽經이 염부제行閻浮提에 행行하여지면, 있는 곳마다 팔보살八菩薩과 모든 범천왕梵天王과 일체一切의 밝은 령靈이 있어서 이 경經을 둘러싸고 향과 꽃으로 공양供養함이 부처님과 같아 다름이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무애보살마하살無礙菩薩摩訶薩에게 말씀하시되, 만약 선남자善男子 선여인善女人 등이 모든 중생衆生을 위하여 이 경經을 강설講說하면, 실상實相을 깊이 통달通達하여 심히 깊은 이치를 얻어서 곧 몸과 마음[身心]이 부처님의 몸[佛身]이요 법의 마음[法心]임을 알리라.]
 
 
[이러한 까닭으로 능히 앎이 곧 지혜智慧이니, 눈이 항상 갖가지 다함이 없는 물질[色]을 보되 물질[色]이 곧 이 공空이요 공空이 곧 이 물질[色]이라 수상행식受想行識도 또한 공空이니 곧 이 묘색신여래妙色身如來이며, 귀가 항상 갖가지 다함이 없는 소리[聲]를 듣되 소리[聲]가 곧 이 공空이요 공空이 곧 이 소리[聲]이라 곧 이 묘음성여래妙音聲如來이며, 코가 항상 갖가지 다함이 없는 향香을 맡되 향香이 곧 이 공空이요 공空이 곧 이 향香이라 곧 이 향적여래香積如來이며, 혀가 항상 갖가지 다함이 없는 맛을 알되, 맛[味]이 곧 이 공空이요 공空이 곧 이 맛[味]이니 곧 이 법희여래法喜如來며, 몸은 항상 갖가지 다함이 없는 닿음[觸]을 감각하되[覺] 닿음[觸]이 곧 이 공空이요 공空이 곧 이 닿음[觸]이라 곧 이 지승여래智勝如來며, 뜻이 항상 갖가지 다함이 없는 법法을 사상思想하여 분별分別하되 법法이 곧 이 공空이요 공空이 곧 이 법法이라 곧 이 법명여래法朙如來이니라.]
 
 
[선남자善男子야, 이 육근六根이 드러나 나툼에 사람이 모두 입으로 항상 그 좋은 말을 설說하여 선善한 법法이 항상 구르면 성인聖人의 도과道果를 이루고, 그 삿된 말을 설하여 악惡한 법法이 항상 구르면 곧 지옥地獄에 떨어지나니, 선남자야, 선善과 악惡의 이치는 믿지 않을 수가 없느니라. 선남자善男子야, 사람의 몸과 마음이 이 부처님의 법기法器(법 그릇)이며 또한 이 십이부十二部의 큰 경권經卷이어늘, 시작이 없이 옴으로 경을 읽음이 다함이 없어서 가는 터럭만큼도 잃지 않았나니, 여래장경如來藏經은 오직 마음을 알아 견성見性한 자가 알 수 있는 바요 모든 성문聲聞이나 범부凡夫의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니라. 선남자善男子야, 이 경經을 독송讀誦하여 깊이 진리眞理를 이해하면 곧 이 몸과 마음이 이 부처님의 법기法器임을 알 것이어니와, 만약 취한 듯 미혹하여 깨어있지 못하면 자기의 마음이 이 불법佛法의 근본根本임을 깨닫지 못하고 제취諸趣를 떠돌아다녀 악도惡道에 떨어지고 영원히 고해苦海에 빠져서 불법佛法의 이름과 글자조차 듣지 못하리라.]
 
 
[그때 오백천자五百天子가 대중大衆 가운데에 있어 부처님의 설하심을 듣고 법안정法眼淨을 얻어서 모두 크게 환희하며 곧 견줄 바 없는 아누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발發하니, 무애보살無礙菩薩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어 말씀드리되, 세존世尊이시여, 사람이 세상에 있음에 나고 죽는 일이 중대함이 되나, 나는 것도 날을 택하지 못함이라 때가 이르러야 곧 나며, 죽는 것도 날을 택하지 못함이라 때가 이르러야 곧 죽거늘 무엇으로 인하여 염하고 장사 지냄에 곧 좋은 때와 좋은 날을 묻고, 비로소 염하고 장사 지내되 염하고 장사 지낸 후에는 도리어 장애와 해로움이 있어 가난하여 궁핍한 이가 많고 가문이 멸망한 이가 적지 않나니잇고? 오직 원하옵나니 세존이시여, 모든 사견邪見으로 무지無知한 중생衆生을 위하시어 그 인연因緣을 설하시어 정견正見을 얻게 하시고 그 전도顚倒됨을 없애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선재善哉 선재善哉라 선남자善男子야, 그대가 실로 심히 중생衆生의 죽고 사는 일과 염하여 장사지내는 법에 대하여 물으니 그대는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지혜智慧의 이치와 대도大道의 법法을 설說하리라. 대저 천지天地는 넓고도 커서 맑고 일월日月은 널리 오래도록 밝아서, 시간마다 해마다 선善이 선善하여 아름다우며 실상實相은 다름이 있음이 없느니라.]
 
 
[선남자善男子야, 인왕보살人王菩薩이 심히 크게 자비慈悲로워 중생衆生을 어여삐 여기되 모두를 마치 갓난아이와 같이하여 내려가 사람의 주인이 되고 백성의 부모가 되시되, 세속 사람들에게 순응하여 백성들에게 세속의 법을 가르치며 력일曆日을 지어 남겨서 천하天下에 내려 반포頒布하였으며, 시절時節을 알게 하고자 하야 ‘만滿 ‧ 평平 ‧ 성成 ‧ 수收 ‧ 개開 ‧ 제除’의 글자와 ‘집執 ‧ 위危 ‧ 파破 ‧ 살殺’의 글월이 있게 하였음이라. 어리석은 사람은 글자만을 의지하여 믿고서 씀에 그 흉화凶禍를 면하려 함 아님이 없었느니라. 또 하여금 삿된 스승은 정신을 압박하고 일의 옳고 그름을 설說하여 부질없이 삿된 신神을 구하거나 아귀餓鬼에게 절하게 하여 도리어 재앙을 초래하고 스스로 고통 받게 하나니, 이와 같은 사람의 무리는 하늘의 때[天時]를 배반하고 땅의 이치[地理]를 거슬러서 일월日月의 광명光明을 등지고 항상 어두운 방으로 뛰어들며 정도正道의 넓은 길을 어기고서 늘 삿된 좁은 길을 찾음이라 그 전도顚倒됨이 심甚하니라.]
 
 
[선남자善男子야, 출산出産할 때에 이 경經 삼편三遍을 독송讀誦하면, 아이가 곧 쉽게 태어나고 심히 크게 길吉하고 이利로워 총명聰明으로 지혜가 날카로우며 복덕福德이 구족具足하여 중간에 요절夭折하지 않으며, 죽을 때에도 이 경 삼편을 독송하면 하나도 방해로움이 없고 한량이 없는 복을 얻으리라. 선남자善男子야, 날마다 좋은 날이며 달마다 좋은 달이며 해마다 좋은 해이며 실로 그 사이의 벌어짐이 없으니 다만 갖추어지는 대로 곧 모름지기 염殮하여 장사葬事를 지내고, 염하여 장사지내는 날에 이 경 칠편七遍을 독송讀誦하면 심히 크게 길吉하고 이로워서 복을 얻음이 한량이 없으며 가문은 번영繁榮하여 사람이 높아지고 나이가 늘어 수명이 더하여감에 목숨이 마치는 날 모두가 성인의 도道를 이루리라. 선남자善男子야, 염하여 장사지내는 땅을 동서남북東西南北으로 편안한 곳을 묻지 말 것이니, 사람이 사랑하고 즐거워함은 귀신도 사랑하고 즐거워함이라. 곧 이 경 삼편을 독송하고서 바로 건물을 고치거나 세우며 묘전墓田을 안치安置하면 영원히 재앙이나 장애가 없고 가문은 부귀하며 사람은 흥하여 심히 크게 길하고 이로우리라.]
 
 
[그때 세존世尊께서 이 뜻을 거듭 펴려 하심에 게송으로 이르시되, 
 
삶을 누림이 선善하고 선善한 날이며
빈소殯所에 이별함도 좋고 좋은 때니라.
나고 죽음에 이 경을 독송하면 
심히 크게 이롭고 길함 얻느니라.
 
달달이 선善하고 선善한 밝은 달이요 
해마다 대단히 좋은 해로다.
독경讀經으로 염하여 장사지내면
영화榮華로 만대에 창성昌盛하리라.]
 
 
[그때 대중 가운데에 칠만 칠천의 사람이 부처님의 설하신 바를 듣고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려서 사邪를 버리고 정正으로 돌아왔으며, 부처님의 법法 분부分付(부촉付囑)하심을 얻어 영원히 의혹을 끊고 모두 다 아누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발發하였나니라.] 
 
 
[무애보살無礙菩薩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어 말씀드리되, 세존世尊이시여, 일체一切의 범부凡夫가 다 혼인婚姻 함으로 친[親, 一家]이 되되, 먼저 서로 마땅한지를 묻고 후에 운수 좋은 날을 가져서 비로소 친親함을 이루나, 친親함이 이루어진 후에는 부귀하여 함께 늙어가는 이는 적고 가난하고 쓸쓸하여 살아서 이별하거나 죽어서 이별하는 이는 많으니, 한 가지의 삿됨을 믿은 것이로되 어찌하여 차별됨이 있나니잇고? 오직 원하옵나니 세존이시여, 위하시어 대중의 의심을 끊어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선남자善男子야,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하리라. 대저 하늘[天]은 음陰이요 땅[地]는 양陽이며, 달[月]은 음陰이요 해[日]는 양陽이며, 물[水]은 음陰이요 불[火]은 양陽이며, 남자[男]는 음陰이요 여자[女]는 양陽이니, 하늘과 땅[天地]의 기氣가 합合하여 일체一切의 풀과 나무[草木]가 자라나고, 해와 달[日月]이 운행하여 사귀어서 사시四時와 팔절八節이 분명하며, 물과 불[水火]이 서로 이어가며 일체一切의 만물萬物이 익어가고, 남자와 여자[男女]가 진실로 화합하여 자손子孫이 흥성하나니, 다 이것은 하늘의 상도常道이라 자연自然의 이치[理]이며 세제世諦의 법法이니라. 선남자善男子야,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가 없어서 그 삿된 스승을 믿으며 점占하여 운수 좋기를 희망하고 물어서 선善은 닦지 아니하고 갖가지 악업惡業을 짓다가 목숨이 끝난 후에 다시 사람 몸을 얻는 자는 손톱 위에 흙 같고 지옥地獄에 떨어져서 아귀餓鬼나 축생畜生을 짓는 자는 대지地土의 흙과 같으니라. 선남자善男子야, 다시 사람의 몸을 얻어 바른 믿음으로 선善을 닦는 자는 손톱 위에 흙 같고 삿됨을 믿어 악업惡業을 짓는 자는 대지의 흙과 같으니라. 
 
 
[선남자善男子야, 결혼結婚하여 친親[一家]을 이루고자 할진댄, ‘물과 불이 서로 같이 살 수 없다’하는 것과 ‘포胞와 태胎가 서로를 누른다’ 하는 것과 ‘나이와 운명이 서로 같지 않다’하는 것은 묻지를 말고, 오직 녹명서祿命書를 보아 곧 복덕福德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고서 권속眷屬을 삼고, 불러서 맞이하는 날에 곧 이 경經 삼편三遍을 독송하여 예식禮式을 이루면, 이에 선善과 선善이 서로 인因이 됨이요 밝음과 밝음이 서로를 따름이라, 가문家門은 높아 사람이 고귀高貴하고 자손子孫이 흥성興盛하며, 총명聰朙으로 지혜가 날카로워 재능才能과 기예技藝가 많으며, 효도孝道하고 공경恭敬함을 서로 이어감에 심히 크게 이롭고 길吉하여서, 도중에 요절夭折함이 없으며 복덕福德이 구족具足하여 모두가 다 불도佛道를 이루리라]
 
 
[그때 여덟 보살菩薩이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이어받아 큰 총지總持를 얻었으며 항상 인간人閒에 처處하여 빛을 어울어 티끌을 함께하고 삿됨을 부수어 바름을 세웠으며 사생四生(胎卵濕化)을 제도함에 팔해탈八解脫에 처處하였으되 자신을 달리 내세우지 않았느니라]
 
 
[그 이름을 말하자면, 
발타라보살누진화跋陀羅菩薩漏盡和며, 
라린갈보살누진화羅鄰竭菩薩漏盡和며, 
교목도보살누진화憍目兜菩薩漏盡和며, 
나라달보살누진화那羅達菩薩漏盡和며, 
수미심보살누진화須彌深菩薩漏盡和며, 
인저달보살누진화因抵達菩薩漏盡和며, 
화륜조보살누진화和輪調菩薩漏盡和며, 
무연관보살누진화無緣觀菩薩漏盡和이라.]
 
 
[이 여덟 보살菩薩이 함께 부처님께 아뢰어 말씀드리되, 세존世尊이시여, 저희들이 모든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다라니신주陀羅尼神呪를 받아 얻었으니, 지금 그것을 설說하여 천지팔양경天地八陽經을 받아 지녀 독송하는 자를 옹호擁護하여 영원히 공포恐怖가 없게 하며, 일체의 선善하지 못한 물物로 하여금 독경讀經하는 법사法師를 침범하여 손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겠나이다.]
 
[곧 부처님 앞에서 주呪를 설說하여 이르되, 
『아거니阿佉尼 니거니尼佉尼 아비라阿比羅 만례曼隷 만다례曼多隷』
 
세존世尊이시여, 만약 선善하지 못한 자가 와서 법사法師를 뇌惱롭게 하면, 저의 이 주呪 설說함을 듣고 머리가 쪼개어져 일곱 등분이 됨을 아리수지阿黎樹枝와 같이 되게 하겠나이다.]
 
 
[그 때에 무변신보살無邊身菩薩이 곧 자리로 좇아 일어나 부처님 앞에서 아뢰어 말씀드리되, 세존世尊이시여, 어찌하여 이름이 천지팔양경天地八陽經이닛고? 오직 원컨대 세존世尊께서는 모든 청법대중聽法大衆을 위하시어 그 뜻을 해설하여 깨달음을 얻게 하시며, 속히 마음의 근본[心本]을 통달하고 부처님 지견[佛知見]에 들어가 영원히 의심과 후회를 끊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선재善哉 선재善哉라(좋고 좋구나), 선남자善男子야,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내 너희를 위하여 천지팔양天地八陽의 경經을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천天은 음陰이요 지地는 양陽이라. 팔八은 분별分別이요 양陽은 밝게 앎이니, 대승大乘의 함이 없는 이치[無爲理]를 밝게 알아, 팔식八識의 인因과 연緣이 공空하여 얻을 바 없는 것임을 능히 밝혀 마침이니라. 또 이르되, 팔식八識이 날줄이 되고 양명陽朙(밝게 앎)이 씨줄이 되니, 날줄과 씨줄이 서로 맞아서 경經의 가르침을 이룸이라 그러므로 이름이 <팔양경八陽經>이니라. ‘팔八’은 이 팔식八識이니, 육근六根이 이 육식六識이요 함장식含藏識과 아뢰야식阿賴耶識의 이 이름이 팔식八識이라.] 
 
 
[팔식八識의 근원根源이 공空하여 있는 바가 없음을 분명하게 밝히면, 곧 두 눈은 이 광명천光朙天임을 아나니, 광명천光朙天 가운데에 곧 일월광명세존日月光朙世尊을 나투며, 두 귀는 이 성문천聲聞天이니 성문천聲聞天 가운데에 곧 무량성여래無量聲如來를 나투며, 두 코는 이 불향천佛香天이니 불향천佛香天 가운데에 곧 향적여래香積如來를 나투며, 입과 혀는 이 법미천法味天이니 법미천法味天 가운데에 곧 법희여래法喜如來를 나투며, 몸은 이 노사나천盧舍那天이니 노사나천盧舍那天 가운데에 곧 성취노사나불成就盧舍那佛과 노사나경상불盧舍那鏡像佛과 노사나광명불盧舍那光朙佛을 나투며, 뜻은 이 무분별천無分別天이니 무분별천無分別天 가운데에 곧 부동여래대광명불不動如來大光朙佛을 나투며, 마음은 이 법계천法界天이니 법계천法界天 가운데에 곧 공왕여래空王如來를 나투며 함장식천含藏識天에 아나함경阿那含經과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을 연설하여 내며 아뢰야식천阿賴耶識天에 대지도론경大智度論經과 유가론경瑜伽論經을 연설하여 냄이니라. 선남자善男子야, 부처가 곧 이 법法이요 법法이 곧 이 부처이니, 합하여 한 상相이 되어 곧 대통지승여래大通智勝如來를 나툼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經을 설하실 때에 일체의 대지大地가 육종六種으로 진동震動하며 빛이 천지天地를 비추어서 끝 간 데가 있음이 없고 호호탕탕浩浩蕩蕩하여 이름 할 바가 없음이라. 일체의 검고 어두움은 다 실로 밝아서 환하여지고 일체의 지옥地獄은 모두가 나란히 사라졌으며 일체의 죄인罪人은 모두 함께 고통을 여의었느니라. 그 때에 대중大衆 가운데의 팔만팔천 보살菩薩이 한 때에 성불成佛하니 호號가 공왕여래응정등각空王如來應正等覺이라. 겁명劫名은 이구離垢요 국호國號는 무변無邊이니, 일체의 사람들은 다 보살菩薩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을 행하되 저와 나가 있음이 없음에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증득證得하여 얻을 바가 없음에 이르렀고, 육만 육천의 비구比丘와 비구니比丘尼와 우바새優婆塞와 우바이優婆夷는 대총지大總持를 얻어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들었고, 무수한 천룡天龍과 야차夜叉와 건달바乾闥婆와 아수라阿修羅와 가루라迦樓羅와 긴나라緊那羅와 마후라가摩睺羅伽와 사람과 사람 아닌 등류等類는 법안정法眼淨을 얻어서 보살도菩薩道를 행하였다.
 
 
[선남자善男子야,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관직에 오르는 날과 및 새로 집에 들어가는 때에 잠깐 이 경經 삼편三遍을 독송하면 심히 크게 길吉하고 이로워 선신善神이 가피로 보호하고 나이가 늘어 수명이 더함에 복덕福德이 구족具足하나니, 선남자善男子야 만약 이 경經 일편一遍을 독송하면 일체一切의 경經을 일편一遍 독송함과 같음이요 만약 한 권을 베껴서 쓰면 일체一切의 경經 일부一部를 사경함과 같음이라, 그 공덕功德은 가히 저울질 할 수 없으며 가히 헤아릴 수 없으며 허공虛空과 같아서 끝 간 데가 있음이 없으며 성인聖人의 도과道果를 이루리라. 거듭해서 무변신보살마하살無邊身菩薩摩訶薩아, 만약 어떤 중생衆生이 정법正法을 믿지 못하여 항상 사견邪見을 내어서 문득 이 경經을 듣고 곧 비방非謗을 하되 ‘불설佛說이 아니다’ 말함이라, 이 사람은 현세現世에 백나병白癩病을 얻어서 지독한 부스럼과 피고름이 온몸에 두루 뒤섞여 흐르며, 비린내와 고약한 냄새나는 것을 사람들이 모두 미워하여 싫어하다가, 목숨이 마치는 날에 곧 아비무간지옥阿鼻無間地獄에 떨어져서 위에 있는 불은 아래로 사무치고 아래에 있는 불은 위로 사무치며, 쇠로된 창과 작살들은 몸에 여기저기 구멍을 뚫으며, 구리를 녹여서 입 속에 부음에 근육과 뼈가 문드러지고 무너져 하루 낮 하룻밤에 만 번을 죽고 만 번을 생겨남으로 큰 고통을 받아서 쉴 겨를이 없음이니, 이 경經을 비방誹謗한 까닭으로 죄를 얻음이 이와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죄罪를 지은 사람을 위하시어 게송偈頌으로 설說하여 말씀하시되, 
 
몸은 스스로(지은 바) 그러한 몸이요, 
오체五軆는 스스로 그러한 구족具足이며,
자라남은 스스로 그러하게 자라고, 
늙음에 스스로 그러하게 늙으며, 
태어남에 스스로 그러하게 태어나고, 
죽음에 스스로 그러하게 죽으며, 
장수長壽를 구해도 장수를 얻지 못하며
단명短命을 구해도 단명을 얻지 못함이라.
 
고통과 즐거움은 너 자신을 당當하여 있고, 
삿됨과 바름도 너 자신으로 말미암음이라. 
유위有爲의 공덕功德을 짓고자 할진댄, 
독경讀經[一卷經]하고 스승을 묻지 말지니, 
천천만만千千萬萬의 세상에서 
도道를 얻어 법륜法輪을 굴릴지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전 설經하심을 마치시니, 일체一切의 대중大衆이 미증유未曾有를 얻어서 마음이 밝아 뜻이 깨끗함에 뛸 듯이 기뻐하였으며, 모두 다 온갖 상相이 상相 아님을 보고 부처님 지견知見에 들고 부처님 지견知見을 깨달아서, 들어감[入]과 깨달음[悟]이 없고 앎[知]과 봄[見]이 없어 한 법法도 얻지 못함이 곧 이 열반涅槃의 낙樂이더라.]
 
 
 
 
 
 
 
 
八陽經 終
 
- 부산에서,
새벽처럼 깨어있기를. 
 
 
 
 
 
 
 
 
 
 
 
 
 
 
 
 
 
 
 
 
 
 
 
 
 
 
 
 
 
 
 
 
 
 
 
 
 
『자성自性을 매昧하지 아니하여 항상 대도大道를 수순隨順하는 까닭으로 정正이요 진眞이며, 천명天命을 돌아보아 진여성眞如性을 어기지 아니하는 까닭에 「마음이 허망함 없음이요 몸이 정진正眞을 행함」이라. 사람[人, 正眞]이 도道를 따르고 도道는 몸[身]을 따름에 ‘사람[人]’과 ‘도[道]’와 ‘몸[身]’의 이 세 가지가 차별差別이 없는 까닭에 「모두 성인의 도과道果를 이룸」이라. 』
 
 
【회향게廻向偈】
 
大慈菩薩 讚佛懺罪 廻向發願 偈云
큰 자비의 보살이시여, 부처님을 찬탄하고 죄업을 참회하여 회향하고 발원하는 게송을 읊습니다. 
 
我今大歸依 懺悔三業罪 凡有諸福善 至心用廻向 願同念佛人 感應隨時現 臨終西方境 分明在目前 見聞皆精進 共生兜率天 見佛了生死 如佛度一切 
제가 이제 크게 귀의하여 삼업으로 지은 죄 참회하오며, 무릇 있는 모든 복덕과 선근을 지극한 마음으로 남김없이 회향합니다. 원하옵나니 함께 염불하는 사람에게 때를 따라 감응하시어, 삶이 끝나는 날 서방의 경계가 눈앞에 분명하게 나타나지이다. 보고 듣는 이 모두가 정진으로 다 함께 저 도솔천에 태어나 미륵 부처님을 뵈옵고 생사를 끝낸 뒤에 부처님과 같이 일체중생을 제도하여지이다.
 
此偈有威力 能滅一切罪 長一切福 
이 게송의 위력 있으니, 일체의 죄업은 멸해지고 일체의 복덕은 자라나지이다.
 
 
 
○ 시주施主:  경기도 파주시 거주. 
              이영익 거사, 묘법심妙法心 보살.
 
 
 
 
 
 
 
 
 
 
 
 
 
 
 
 
 
 
 
 
 
 
 
 
 
 
 
 
 
 
 
 
 
 송담선사松潭禪師 법문法門
 
 
 
 
이 보일 시示 자字, 보일 시示잡니다.
밑에 여러분의 불명佛名이 여기에 쓰여져 있을 것입니다. 시示 김 법륜궁 이라든지, 이 법계성 헌다든지 이렇게 불명佛名이 써져있을 것입니다. ‘아무개에게 다음과 같은 법문法門을 보여디린다’ 해서 이 보일 시示자예요. 무엇이 보이느냐. 첫째 이 원상圓相을 보여 디리는 거야 이렇게.
                             
둥그라미예요. 둥그라민데 이게 원상인데, 이 원상圓相은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부터서 있었고 우주宇宙가 몇 억 광년億曠年이 지낸 뒤에는 이 우주도 가루가 되아서 없어진 때가 있습니다. 설사 이 우주법계宇宙法界에 일월성진日月星辰과 이 모든 지구地球까지도 다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한 물견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한 물견物件이 어디 있느냐’ 하며는, 여러분의 몸띵이 속에 들어있습니다. 또 이 허공계虛空界, 이 허공계에도 가뜩 차있습니다. 어느 조그만한 구석에도 그 한 물견이 꽉 차있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눈을 감으나 눈을 뜨나, 해가 지나 해가 해가 뜨나 언제 어데서라도 그 한 물견은 소소영영昭昭靈靈허게 작용作用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혜智慧의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의 눈앞에도 있고 우리의 뒤에도 있고 발밑에도 있고 머리 위에도 있고 우리의 몸 안·밖에 헐 것 없이 꽉 차 있건만 우리는 그것을 보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 참선을 이렇게 험으로 해서 그 한 물견이 첫째 자기 안에 있는 것을 깨닫게 되고, 모든 사람의 몸 안에도 그것이 있는 것을 깨닫게 되고, 삼라만상森羅萬象 산천초목山川草木 두두물물頭頭物物에도 그 한 물견이라고 허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 깨닫는 방법方法을 지금 부터서 일러드리게 되겠습니다.
 
 
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하니, 한 물견이 여기에 있으니, 
 
여기서 「한 물견」이라 헌 것은, 그 한 물견을 고인古人네들이 이런 원상圓相으로 표시를 했습니다마는, 사실은 이 원상圓相이라고 하는 상相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득이 해서 이런 원상으로 표현을 헌 것 뿐인 것입니다.
 
근디 지끔 제가 설명을 드린 바와 같은 그러헌, ‘이름을 뭐라고 붙일 수도 없고 모냥도 그릴 수도 없는 그러한 소소영영昭昭靈靈한 한 물견이 여기에 있다.’
 
이 「여기」라고 허는 것이 무엇이냐?
「동용중動用中」이여. 
 
 
[상재동용중常在動用中, 항상 동용하는 가운데 있으되]
 
‘움직이고 쓰는 그 가운데에 항상 그 한 물견이 있더라’ 그 말이여. 육체肉體를 움직거리고 정신精神을 쓰고 허는, 모든 육체적인 동작動作과 모든 정신 작용作用 가운데에 항상 그 ‘한 물견’이 있더라 그 말이여.
 
그러면 육체肉體적인 동작動作은 무엇이냐 하며는, 
눈으로 보고 · 귀로 듣고 · 코로 냄새 맡고 · 혀로 맛보고 · 몸띵이로 느끼고 · 생각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우리의 뜻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허는,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허는 모든 동작과 그 정신작용, 그 가운데에 이 한 물견이 항상 소소영영昭昭靈靈허게 작용作用을 허고 있더라. 썽을 낼 때나 · 슬퍼헐 때나 · 기쁠 때에도 바로 그 한 물견의 작용이고, 앉고 · 서고 · 눕고 · 걸어가고 · 일하고 · 밥 먹고 · 옷 입고 · 똥 누고 헌 것도 바로 그 한 물견의 나타나는 동작動作이여. 
 
 
[동용중수부득動用中收不得, 동용하는 가운데서 거두어 얻지 못하니]
 
그런데 그 육체肉体적인 동작動作 · 정신精神적인 작용作用 그 가운데에 거두어 얻지 못해어. 그놈을, 그 한 물견을 찾어 보면 자최가 없다 그 말이여. 분명히 “아무개야!” 하고 부르면, “예” 하고 대답했는데, ‘그 대답한 그놈이 무엇인가, 어떻게 생겼는가?’ 하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알 수가 없다 그 말이여. 눈으로 볼라야 그 모냥을 볼 수가 없고, 귀로 들을라야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없고, 손으로 잡어볼라야 잡을 수가 없고, 생각으로 알아볼랴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어.
 
 
 
[시심마是甚麽, 이 뭣고?]
 
그러니 대관절 이것이 무엇이냐? 
「이 무엇고?」
 
언제 어데서 무엇을 허던지 항상 ‘이 무엇고?’거던. 
‘이 무엇고?’
 
속이 상할 때도 ‘이 무엇고?’
슬플 때도 ‘이 무엇고?’
기쁠 때도 ‘이 무엇고?’
근심 걱정이 있을 때도 ‘이 무엇고?’
 
밥 먹을 때도 ‘이 무엇고?’
걸어갈 때도 ‘이 무엇고?’
깜짝 놀랬을 때도 ‘이 무엇고?’
억울하고 분할 때도 ‘이 무엇고?’
 
‘이 무엇고-?’
‘금방 지금 이 뭣고 허고 있는 이놈이 무엇고?’
 
이렇게 찾는 놈을 다시 되돌려 찾고, 그 되돌려 찾은 그놈을 다시 되돌려 찾고, 이렇게 해서 잠시 동안도 그 ‘이 뭣고-?’한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망각忘却허지 않도록’ 항상 챙기고 또 챙기고 그렇게 공부를 지어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앉어서는 잘 ‘이 뭣고?’ 허다가 일어서다가 잃어버리게 허고, 일 허면서도 잘 ‘이 뭣고?’를 챙기고 허다가 누가 “아무개!” 하고 부르는 바람에 깜박 놓쳐버리고 그러지만, 놓친 줄 알면 또 챙기고 잃어버린 줄 알면 또 챙기고 해서 자꾸 챙기고 또 챙기고 이렇게 허다보면, 나중에 챙기지 안 해도 저절로 항상 ‘이 뭣고?’ 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이 독로獨露허게 될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 공부가 익숙해진 증거죠?
 
처음에는 들랴고 애쓰다가 나중에는 들랴고 안해도 저절로 들리게 되고, 그래도 ‘하! 인자 공부가 잘 되았다.’ 하고 그리 좋아하는 생각을 내지 말고, 잘될 수록에 더 정신精神을 가다듬고 ‘이 뭣고?’를 잘 단속團束을 해 나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아침에 새벽에 일어나서 한 번 든 것이 아침 먹을 때 고대로 있고, 또 점심 먹을 때 까지도 고대로 있고, 또 저녁 멀을 때 까지도 고대로 있고, 저녁 먹고 잠 들 때 까지도 고대로 있게 돼. 잠자도 꿈속에서도 ‘이 뭣고?’가 고대로 있고, 그 이튿날 잠을 딱 깨도 새로 ‘이 뭣고?’를 들지 안 해도 엊저녁에 들던 그 ‘이 뭣고?’가 고대로 알 수 없는 의심이 따악 있게 되거던. 아무리 안하고 딴 생각 좀 해 볼라고 해도 소용이 없어.
 
그렇게,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아주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간語默動靜間에 잠시도 틈이 없이 온전히 ‘이 무엇고?’ 헌 그 의심疑心이 내 마음 속이나 내 몸 밖에... 밖에나 할 것 없이 우주宇宙에 꽉 차서 더 이상 간절懇切 헐 수가 없고 더 이상 그 의심疑心이 클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르면 결국은, 
 
그래도 알 수 없는 의심 ‘이 뭣고?’
 
그런 지경에 가면 고요허다고 말을 붙여도 안 맞는 말이고, 깨끗허다고 해도 맞지 않는 말이고,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고 청정하고 뭐 ‘내와 우주가 하나’니, ‘우주가 바로 나’니, 그런 소리가 다 소용이 없어. 아무리 옆에서 흔들고 떠들고 막 욕을 해도 조끔도 흔들림이 없게 되거든. 그러다가 그런 상태로 일주일을 가서... 못가서 툭! 터지게 되는 거여. 나의 별로에...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공안公案을 갖다가 탁 대도 뭐 의심없이 탁 일르게 되거든!
 
 
이 공부는 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허면 누구라도 되는 것입니다. 바르게 못허거나 혹 바르게 허는 방법은 알아도 정말 정성스럽게 열심히 아니허면 그런 지경이 여간해서 이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바르게 하고 그리고 열심히 헌다면 누구라도 반드시 확철대오를 허게 되아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공부허실 때에는 여, 여기 있는 말을 그때마다 다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뭣고?’ 이것만 하시면 되아요. ‘이 뭣고?’ ‘이 뭣고 한 이놈이 뭣고?’ ‘이 뭣고-? 다못 그렇게만 공부를 해가면 되는 것입니다. 
 
법문 가운데에 혹 다른 공안, 공안이나 화두에 대해서 법문을 듣더라도 여러분은 ‘이 뭣고?’만 허셔야 하거든. 잘 안되더라도 그 안될수락에 ‘이 뭣고?’만 허고 잘 되더라도 될수록에 ‘이 뭣고?’만 해야지, 안된다고 ‘다른 화두로 바꽈보까?’ 무자를 했다가 정전백수자를 했다가 이 화두 저 화두 허며는 마음이 두 갈래 세 갈래가 되아서 그 공부가 올바르게 되질 아니한 것입니다. 한 번 ‘이 뭣고?’ 화두를 딱 탔으면 일대사를 요달헐 때까지 이 한 화두로써 아주 바닥을 볼 각오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뭣고?’ 알 수 없어야 공부가 옳게 되아가는 것이지, ‘하하, 이것이로구나!’ 이렇게 알아진 것이 있으면 벌써 ‘이것’이라고 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이로구나.’ 헌 망상에 벌써 떨어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진정계중자일념眞淨界中纔一念이여, 진정계眞淨界 가운데에 잠꽌 일어나는 한 생각은, 염부조이팔천세閻浮早已八千歲라, 이 중생의 사바세계에 있어선 벌써 팔천세八千歲 어긋나버린 것이다 그 말이여. 참선參禪헐 때의 한 생각은 한 생각으로 끝나지를 않습니다. 좋은 생각이나 나쁜 생각이나 딴 생각 잠깐 냈다하면 벌써 팔천세가 흘러가버린 것입니다. 
 
「이 뭣고?」
 
-  송담선사 법문 288번.
 
《역장엄삼매경力莊嚴三昧經》
 
 
그때 지륜대해변재 동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중생의 힘[力]의 인연으로 생기기 때문에 여래의 힘도 또한 생기며, 여래의 힘이 생기기 때문에 중생의 힘도 생기는 것입니까?” 
[爾時智輪大海辯才童子白佛言 世尊 云何衆生力因緣生故 如來力亦生 如來力生故 衆生力亦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지륜 동자여, 여래의 힘과 중생의 힘, 이 두 힘은 하나여서 다르지 아니하기 때문에 일계여(一界如)라고 하느니라. 중생력의 인연으로 여래의 힘이 생기고, 여래의 힘의 인연으로 중생의 힘이 생기기 때문에 여래의 일체지를 깨닫게 되느니라.” 
[佛言 如是 智輪童子 如來力 衆生力 此之二力一不異故 名爲一界如 衆生力因緣 如來力生 如來力因緣 衆生力生 是故 如來一切智覺]
 
그때 지륜대해변재 동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여래ㆍ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의 일체종지가 생겨납니까?” 
[爾時 智輪大海辯才童子白佛言 世尊 云何如來 多陁阿伽度 阿羅呵 三藐三佛陁一切種智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륜 동자여, 12인연이 생기기 때문에 여래ㆍ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의 일체종지가 생기느니라. 지륜 동자여, 12인연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안(眼)ㆍ색(色)ㆍ이(耳)ㆍ성(聲)ㆍ비(鼻)ㆍ향(香)ㆍ설(舌)ㆍ미(味)ㆍ신(身)ㆍ촉(觸)ㆍ의(意)ㆍ법(法)이다. 이 인연을 알기[智] 때문에 일체종지가 생기느니라.”
[佛言 十二因緣生故 智輪童子 如來 多陁阿伽度 阿羅呵 三藐三佛陁一切種智生 智輪童子 十二因緣者 所謂眼 色 耳 聲 鼻 香 舌 味 身 觸 意 法 此因緣智故 一切種智生 言因緣智故 恐因緣生故]
 
그때 지륜대해변재 동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무량한 여래ㆍ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의 일체지안(一切智眼)ㆍ일체지색(一切智色)ㆍ일체지이(一切智耳)ㆍ일체지성(一切智聲)ㆍ일체지비(一切智鼻)ㆍ일체지향(一切智香)ㆍ일체지설(一切智舌)ㆍ일체지미(一切智味)ㆍ일체지신(一切智身)ㆍ일체지촉(一切智觸)ㆍ일체지의(一切智意)ㆍ일체지법(一切智法)입니까?”
[爾時 智輪大海辯才童子白佛言 世尊 無量如來 多陁阿伽度 阿羅呵 三藐三佛陁 一切智眼 一切智色 一切智耳 一切智聲 一切智鼻 一切智香 一切智舌 一切智味 一切智身 一切智觸 一切智意 一切智法]
 
이와 같이 여쭙고 나자 부처님께서 지륜대해변재 동자에게 말씀하셨다.
[如是問已 佛報智輪大海辯才童子言]
 
“모든 중생들의 일체중생안ㆍ일체중생색ㆍ일체중생이ㆍ일체중생성ㆍ일체중생비ㆍ일체중생향ㆍ일체중생설ㆍ일체중생미ㆍ일체중생신ㆍ일체중생촉ㆍ일체중생의ㆍ일체중생법은 한량없는 것이니라.
[無量一切衆生 一切衆生眼 一切衆生色 一切衆生耳 一切衆生聲 一切衆生鼻 一切衆生香 一切衆生舌 一切衆生味 一切衆生身 一切衆生觸 一切衆生意 一切衆生法]
 
지륜 동자여, 여래ㆍ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는 일체지안ㆍ일체지색ㆍ일체지이ㆍ일체지성ㆍ일체지비ㆍ일체지향ㆍ일체지설ㆍ일체지미ㆍ일체지신ㆍ일체지촉ㆍ일체지의ㆍ일체지법이니라.
[如是智輪童子如來多陁阿伽度 阿羅呵 三藐三佛陁一切智眼 一切智色 一切智耳 一切智聲 一切智鼻 一切智香 一切智舌 一切智味 一切智身 一切智觸 一切智意 一切智法]
 
무량한 여래는 일체지안ㆍ일체지색ㆍ일체지이ㆍ일체지성ㆍ일체지비ㆍ일체지향ㆍ일체지설ㆍ일체지미ㆍ일체지신ㆍ일체지촉ㆍ일체지의ㆍ일체지법이니라.
[無量如來 一切智眼 一切智色 一切智耳 一切智聲 一切智鼻 一切智香 一切智舌 一切智味 一切智身 一切智觸 一切智意 一切智法]
 
이와 같이 일체 중생들도 또한 일체지안ㆍ일체지색ㆍ일체지이ㆍ일체지성ㆍ일체지비ㆍ일체지향ㆍ일체지설ㆍ일체지미ㆍ일체지신ㆍ일체지촉ㆍ일체지의ㆍ일체지법이니라.”
[如是一切衆生亦一切智眼 一切智色 一切智耳 一切智聲 一切智鼻 一切智香 一切智舌 一切智味 一切智身 一切智觸 一切智意 一切智法]
 
부처님께서 지륜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냐? 어떤 색(色)이든 중생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겠느냐?”
[佛告智輪 於汝意云何 頗有一色不爲衆生眼見者不]
 
지륜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색이든지 중생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없고 색이라면 다 볼 수 있습니다.”
[智輪言 世尊 無有一色不爲衆生眼所見者 但令是色悉皆睹見]
 
부처님께서 지륜에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세간 가운데 있는 이와 같은 색으로, 또한 중생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있느냐?”
[佛言 智輪 而世閒中有如是色 亦爲衆生眼不見不]
 
지륜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어떤 색이든 중생이 볼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智輪言 世尊 無如此色衆生不見]
 
부처님께서 지륜에게 말씀하셨다. “지륜이여, 이와 같이 어떤 색이든 세간 가운데서 모든 지혜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없느니라. 지륜 동자여, 이러한 방편은 반드시 알아야 하느니라. 무량한 일체 중생들의 눈은 이와 같이 모두 지혜의 눈이며, 무량한 모든 중생들의 색(色)은 이와 같이 모두 지색(智色)이니라.
[佛言 智輪 無如此色於世閒中 亦一切智眼不見者 智輪童子 此之方便 當知 無量一切衆生眼 如是 一切智眼 無量一切衆生色 如是 一切智色]
 
지륜대해변재 동자여, 다시 세간 가운데 어떤 소리든 모든 중생들의 이식(耳識)으로 듣지 못하는 것이 있겠느냐?”
[復次 智輪大海辯才童子 於世閒中 頗有一聲亦爲一切衆生耳識不聞者不]
 
지륜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소리든지 중생의 귀로 듣지 못하는 것은 없습니다.”
[智輪言 世尊 無如是聲不爲衆生耳不聞者]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륜이여, 이와 같이 어떤 소리도 세간 가운데서 모든 지혜의 귀로 듣지 못하는 것은 없느니라.
[佛言 智輪 無如是聲於世閒中 亦一切智耳不聞者]
 
지륜 동자여, 이러한 방편은 반드시 알아야 하느니라. 무량한 일체 중생들의 귀는 이와 같이 모든 지이(智耳)며, 무량한 모든 중생의 소리는 이와 같이 모든 지혜의 소리니라.
[智輪童子 此之方便 當知無量一切衆生耳 如是 一切智耳 無量一切衆生聲 如是 一切智聲]
 
지륜대해변재 동자여, 다시 세간 가운데 어떤 향(香)이라도 일체 중생의 코로 맡을 수 없는 게 있겠느냐?”
[復次 智輪大海辯才童子 於世閒中 頗有一香亦爲一切衆生鼻中不嗅者不]
 
지륜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향은 중생의 코로 맡을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智輪言 世尊 無如是香不爲衆生鼻不嗅者]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륜이여, 이와 같은 향은 세간 가운데서 모든 지혜의 코로 맡을 수 없는 것은 없느니라.
[佛言 智輪 無如是香於世閒中 亦一切智鼻不熏者]
 
지륜 동자여, 이러한 방편은 반드시 알아야 하느니라. 무량한 일체 중생들의 코는 이와 같이 모든 지혜의 코이며, 무량한 일체 중생들의 향은 이와 같이 모든 지혜의 향이니라.
[智輪童子 此之方便 當知無量一切衆生鼻 如是 一切智鼻 無量一切衆生香 如是 一切智香]
 
지륜대해변재 동자여, 다시 세간 가운데 어떤 한 맛[味]이라도 일체 중생의 혀로 맛볼 수 없는 것이 있겠느냐?”
[復次 智輪大海辯才童子 於世閒中 頗有一味亦爲一切衆生舌中不嘗者不]
 
지륜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어떤 맛도 중생의 혀로 맛볼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智輪言 世尊 無如是味不爲衆生舌不嘗者]
 
부처님께서 지륜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맛은 세간 가운데서 모든 지혜의 혀로 맛볼 수 없는 것은 없느니라.
[佛言 智輪 無如是味於世閒中 亦一切智舌不嘗者]
 
지륜 동자여, 이러한 방편은 반드시 알아야 하느니라. 무량한 일체 중생들의 혀는 이와 같이 모든 지혜의 혀이며, 무량한 모든 중생들의 맛[味]은 이와 같이 모든 지혜의 맛이니라.
[智輪童子 此之方便 當知無量一切衆生舌 如是 一切智舌 無量一切衆生味 如是 一切智味]
 
지륜대해변재 동자여, 다시 세간 가운데에 어떤 촉감[觸]이라도 모든 중생들의 몸으로 느낄 수 없는 것이 있겠느냐?”
[復次 智輪大海辯才童子!於世閒中 頗有一觸亦爲一切衆生身中不覺者不]
 
지륜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촉감에 중생의 몸으로 느낄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智輪言 世尊 無如是觸不爲衆生身不覺者]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륜이여, 이와 같은 촉감으로, 세간 가운데서 모든 지혜의 몸으로 느낄 수 없는 것은 없느니라.
[佛言 智輪 無如是觸於世閒中 亦一切智身不覺者]
 
지륜 동자여, 이러한 방편은 반드시 알아야 하느니라. 무량한 일체 중생들의 몸은 이와 같이 모든 지혜의 몸이며, 무량한 모든 중생들의 촉감은 이와 같이 모든 지혜의 촉감이니라.
[智輪童子 此之方便 當知無量一切衆生身 如是 一切智身 無量一切衆生觸 如是 一切智觸]
 
지륜대해변재 동자여, 다시 세간 가운데에 어떤 법이라도 모든 중생의 뜻[意]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있겠느냐?”
[復次 智輪大海辯才童子 於世閒中 頗有一法亦爲一切衆生意中不知者不]
 
지륜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법은 중생의 뜻으로 알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智輪言 世尊 無如是法不爲衆生意不知者]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륜이여, 이와 같이 법은 세간 가운데서 모든 지혜의 뜻으로 알 수 없는 것은 없느니라.
[佛言 智輪 無如是法於世閒中 亦一切智意不知者]
 
지륜 동자여, 이러한 방편은 반드시 알아야 하느니라. 무량한 일체 중생의 마음은 이와 같이 모든 지혜의 마음이며, 무량한 일체 중생들의 법은 이와 같이 모든 지혜의 법이다.
[智輪童子 此之方便 當知 無量一切衆生心 如是 一切智心 無量一切衆生法 如是 一切智法]
 
이와 같이 모든 중생심은 모든 지혜의 마음이라는 것과 모든 중생들의 법은 모든 지혜의 법이라는, 이러한 두 가지는 하나여서 서로 다름이 없는 것이니라.
[如是 一切衆生心者 一切智心者 一切衆生法者 一切智法者 此之二種 一無有異]
 
다시 지륜대해변재 동자여, 모든 중생의 눈과 모든 중생의 색(色), 나아가 모든 중생의 뜻과 모든 중생의 법(法)은 모든 지혜의 눈과 모든 지혜의 색이고 나아가 모든 지혜의 뜻과 모든 지혜의 법인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두 변(邊)이 하나의 법계이니라.
[復次 智輪大海辯才童子 如一切衆生眼 一切衆生色 乃至一切衆生意 一切衆生法 一切智眼 一切智色 乃至一切智意 一切智法 如是二邊是一法界]
 
지륜이여, 이와 같은 무량한 모든 중생들의 눈은 이와 같이 모든 지혜의 눈이며, 나아가 무량한 모든 중생들의 뜻과 법은 이와 같이 모든 지혜의 뜻과 법이니라.
[智輪 如是 無量一切衆生眼 如是一切智眼 乃至無量一切衆生意法 如是一切智意法]
 
그러므로 여래의 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의 안지(眼智)ㆍ안번뇌지(眼煩惱智)ㆍ안적멸지(眼寂滅智)ㆍ안번뇌적멸지ㆍ색지(色智)ㆍ색번뇌지ㆍ색적멸지ㆍ색번뇌적멸지이니라.
[如是 如來 多陁 阿伽度 阿羅呵 三藐三佛陁眼智 眼煩惱智 眼寂滅智、眼煩惱寂滅智 色智 色煩惱智 色寂滅智 色煩惱寂滅智]
 
이지(耳智)ㆍ이번뇌지ㆍ이적멸지ㆍ이번뇌적멸지ㆍ성지(聲智)ㆍ성번뇌지ㆍ성적멸지ㆍ성번뇌적멸지이니라.
[耳智 耳煩惱智 耳寂滅智 耳煩惱寂滅智 聲智 聲煩惱智 聲寂滅智 聲煩惱寂滅智]
 
비지(鼻智)ㆍ비번뇌지ㆍ비적멸지ㆍ비번뇌적멸지ㆍ향지(香智)ㆍ향번뇌지ㆍ향적멸지ㆍ향번뇌적멸지이니라.
[鼻智 鼻煩惱智 鼻寂滅智 鼻煩惱寂滅智 香智 香煩惱智 香寂滅智 香煩惱寂滅智]
 
설지(舌智)ㆍ설번뇌지ㆍ설적멸지ㆍ설번뇌적멸지ㆍ미지(味智)ㆍ미번뇌지ㆍ미적멸지ㆍ미번뇌적멸지이니라.
[舌智 舌煩惱智 舌寂滅智 舌煩惱寂滅智 味智 味煩惱智 味寂滅智 味煩惱寂滅智]
 
신지(身智)ㆍ신번뇌지ㆍ신적멸지ㆍ신번뇌적멸지ㆍ촉지(觸智)ㆍ촉번뇌지ㆍ촉적멸지ㆍ촉번뇌적멸지이니라.
[身智 身煩惱智 身寂滅智 身煩惱寂滅智 觸智 觸煩惱智 觸寂滅智 觸煩惱寂滅智]
 
의지(意智)ㆍ의번뇌지ㆍ의적멸지ㆍ의번뇌적멸지ㆍ법지(法智)ㆍ법번뇌지ㆍ법적멸지ㆍ법번뇌적멸지는 하나이며 서로 다르지 않느니라.
[意智 意煩惱智 意寂滅智 意煩惱寂滅智 法智 法煩惱智 法寂滅智 法煩惱寂滅智 一無有異]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에 모든 중생들의 눈은 모든 지혜의 눈이며, 나아가서 모든 중생들의 법은 모든 지혜의 법으로, 이는 하나의 법계이니라.
[以無異故 一切衆生眼者 一切智眼 乃至一切衆生法者 一切智法者 是一法界]
 
지륜 동자여, 비유하면 세간의 지혜로운 사람이 스스로 고통을 알고 스스로 즐거움을 알며, 스스로 고통스럽지 아니함을 알고 스스로 즐겁지 않은 것을 아는 것과 같으니, 왜냐하면 몸이 스스로 받기 때문이니라.
[智輪童子 譬如世閒智慧之人自知於苦 自知於樂 自知不苦 自知不樂 何以故 身自受故]
 
지륜 동자여, 이와 같이 여래ㆍ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는 모든 중생들의 안지ㆍ색지ㆍ이지ㆍ성지ㆍ비지ㆍ향지ㆍ설지ㆍ미지ㆍ신지ㆍ촉지ㆍ의지ㆍ법지ㆍ번뇌지ㆍ적멸지와 또한 번뇌적멸지도 다 아느니라.
[智輪童子 如是 如來 多陁阿伽度 阿羅呵 三藐三佛陁 一切衆生眼智 色智 耳智 聲智 鼻智 香智 舌智 味智 身智 觸智 意智 法智 煩惱智 寂滅 智亦煩惱寂滅智盡知]
 
왜냐하면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었기 때문이니라. 모든 중생들은 12인연으로 지(智)에 들어가니, 이것을 여래라고 하며 일체중생입(一切衆生入)이라고 하느니라.
[何以故 一切種智得故 一切衆生十二入智 此名如來名 一切衆生入]
 
이 여래색과 여래의 모든 신업(身業)은 3세의 지혜행을 따르며, 여래의 모든 구업(口業)과 모든 의업(意業)도 3세의 지혜행을 따르느니라. 여래는 받은 모든 일체종지를 현전에 다 아시며, 여래는 일체지(一切智)로 바르게 아시며, 일체종지로 바르게 아시고, 여래는 일체종지로 유위행(有爲行)을 아시느니라.
[此如來色 如來一切身業 三世隨智慧行 如來一切口業 一切意業 亦三世隨智慧行 如來一切受 一切種智現前悉知 如來一切智正知 一切種智正知 如來以一切種智知有爲行]
 
여래는 일체지와 일체종지로 아시고 나서 그 속에서 모든 중생들의 4온(蘊)과 색(色)을 여의었으니, 이것을 여래라고 하며, 일체 중생들의 색음(色陰)이라고 하며, 이것을 여래색(如來色)이라고 하느니라.
[如來一切智 一切種智知已 彼中亦一切衆生四陰離色 此名如來名 亦一切衆生色陰 亦此名如來色]
 
이와 같이 색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여래ㆍ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를 일체지ㆍ일체견ㆍ일체촉ㆍ일체각이라고 하느니라.”
[以如是名色故 如來 多陁阿伽度 阿羅呵 三藐三佛陁 名一切智 一切見 一切觸 一切覺”]
 
 
 
- <역장엄삼매경力莊嚴三昧經> 권중卷中
수隋 천축삼장天竺三藏 나련제나사那連提耶舍 역譯.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에서.
 
 
 
 
 
 
 
 
 
 
 
 
 
 
 
 
 
 
 
《전도顚倒의 근원根源》- 本覺之性本朙 晦昧爲空離本朙
 
 
『隨汝諦觀하라 汝身佛身에 稱顚倒者는 名字何處하야 號爲顚倒오 于時에 阿難이 與諸大衆과 瞪瞢瞻佛하사와 目睛이 不瞬하야 不知身心이 顚倒所在하더니』 

너를 좇아 자세子細히 보아라. 네 몸과 부처 몸에 전도顚倒하다 이름은, 어느 곳을 이름지어서 부름을 전도顚倒하다 하느뇨? 그때 아난阿難이 모든 대중大衆과 멍하니 아득히 부처님을 보아 눈자위도 깜짝하지 아니하여 신심身心의 전도顚倒 있는 데를 알지 못하더니,

[將與原窮顚하야本하시어 庶幾反悟이어시늘 而大衆이 迷瞢하야 不知所在로다]

[장차 더불어 전도顚倒의 근원根源을 추심推尋하여 궁구窮究하시어 돌이켜 알게(깨닫게) 하고자 하시거늘, 대중大衆이 어질하여 있는 데를 알지 못하도]
『佛興慈悲하시어 哀愍阿難及諸大衆하시어 發海潮音하시어 遍告同會하시되 諸善男子아 我가 常說言하되 色心諸緣과 及心所使와 諸所緣法이 唯心所現이라 하노니 汝身汝心이 皆是妙明眞精妙心中엣 所現物이어늘 云何汝等이 遺失本妙한 圓妙明心과 寶明妙性하고 認悟中迷하느냐』 

부처님께서 자비를 일으키시어 아난阿難과 모든 대중大衆을 어여삐 여기시어 해조음海潮音을 내시어 -조潮는 밀물이니 바다의 밀물이 념念 없으되 모름지기 시절時節을 잃지 아니하나니, 이는 연緣 없는 자비慈悲로 기機를 응應하여 이르시어 청請 기다리지 아니하심을 표表하니라- 모든 회會에 널리 이르시되, “선남자善男子들아 내 항상 이르되, ‘색色과 심心의 여러 연緣과 마음이 부리는 것과 모든 연緣하는 법法이 오직 마음이 나툰 것이라’ 하노니, 네 몸과 네 마음이 다 이 묘명진정묘심妙明眞精妙心 가운데에 나툰 물物이거늘 어찌 너희 등等이 본래미묘本來微妙한 원묘명심圓妙明心과 보명묘성寶明妙性을 잃어버리고 아는(悟, 깨달음) 중中에서 어림(迷, 미혹함)을 잡느냐[認]?”

[示倒無別處하야 唯心所現인 줄을 하야 使卽心而悟也하시니라 色은 總擧五根六塵也이요 心은 總擧六識八識也하시니라 諸緣은 卽根識의 所緣諸法也이라 心所使는 卽善惡業行과 靜作思想也이라 諸所緣法은 廣擧山山河大地와 明暗色空과 眞妄性相과 邪正因果하시니 悉無自體하야 唯心所現인 것이 如鏡中像이 全體是鏡이니 然則汝今幻妄身心이 皆是妙明心鏡에 所現이라 全體는 是心이어늘 直不卽幻妄而悟妙體하고 反乃遺本妙而執幻妄하나니 是가 認悟中之迷호미니 此卽顚倒所在也이라 妙心則一이어늘 而稱謂多異者는 依法하야 隨用之異也이라 此는 明心所現物이 如鏡故로 稱妙明眞精也이시고 又明迷本逐末故로 稱本妙明心也이시니라 所謂本妙者는 本來自妙하야 不假修爲也이라 心之與性은 乃體用을 互稱也하시니 心則從妙起明하야 圓融照了호미 如鏡之光故로 曰圓明妙心이라 하시고 性則卽明而妙하야 凝然寂湛호미 如鏡之體故로 曰寶明妙性이라 하시니라]

[거꾸러짐이 다른 곳이 없어서 오직 마음이 나툰 것인 줄을 보이시어 마음에 나아가[即] 알게 하시니라. 색色은 오근五根과 육진六塵을 다 들어서 이르시고 심心은 육식六識과 팔식八識을 다 들어서 이르시니라. 여러 연緣은 곧 근根과 식識과의 연緣하는 여러 가지의 법法이라. 마음이 부리는 것은 곧 선善과 악惡의 업행業行과 정靜과 작作의 사상思想이라. -작作은 일으키는 것이라- 모든 연緣하는 법法은 산하대지山河大地와 명암색공明暗色空과 진망성상眞妄性相과 사정인과邪正因果를 널리 들어 이르시니, 다 제 체體가 없어 오직 마음이 현現한 것이 거울 중中에(가운데) 상像이 전체全體가 이 거울인 것과 같으니, 그러면 네 이제 환망幻妄한 몸과 마음이 다 이 미묘微妙하게 밝은 마음 거울에 현現한 것이라. 전체全體는 이 마음이거늘 바로 환망幻妄에 나아가 미묘微妙한 체體를 알지 못하고 도리어 본래本來의 미묘微妙를 버리고 환망幻妄을 잡나니, 이것이 ‘아는 중中의 어림을 잡음(認悟中迷)’이니, 이 곧 전도顚倒가 있는 곳이라. 미묘微妙한 마음은 하나이거늘 이르는 것이 많이 다름은 법法을 붙어(의지하여) 씀(用)을 좇음이 다름이라. 이는 마음의 물物 나툼이 거울과 같음을 밝히신 전차로 묘명진정妙明眞精이라 이르시고, 또 근원根源을 모르고 끝(末)을 좇음을 밝히신 전차로 본묘本妙한 명심明心이라 이르시니라. 이르신 본묘本妙는 본래本來 제 미묘微妙하여 닦음을 빌리지 아니한 것이라. 마음과 성性은 체體와 용用을 서로 이르시니, 마음은 미묘微妙를 좇아 밝음이 일어나 두렷이 녹여 비춤이 거울의 광명光明과 같은 전차로 이르시되 원묘명심圓妙明心이라 하시고, 성性은 밝음에 나아가 미묘微妙하여 응연擬然히 고요하며 맑음이 -응연擬然은 엉긴 모양이라- 거울의 체體와 같은 전차로 이르시되 보명묘성寶明妙性이라 하시니라.] 

『晦昧하야 爲空하야 空과 晦暗의 中에 結暗하야 爲色하니 色이 雜妄想하야 想相으로 爲身하야 聚緣이 內로 搖코 趣外하야 奔逸하는 昏擾擾相을 以爲心性하니 一迷爲心하여서는 決定惑爲色身之內하고 不知色身과 外洎山河와 虛空大地가 咸是妙明眞心中物인 줄을 하나니 譬如澄淸한 百千大海ᄅᆞᆯ 棄之하고 唯認一浮漚體하야 目爲全潮하며 窮盡瀛渤틋 하야 汝等이 卽是迷中에 倍人일새 如我의 垂手로 等無差別하니 如來說爲可憐愍者이니라』

어두워서 공空이 되어, 공空과 어두움과의 중中에(중간에) 어두움이 맺어서 색色이 되니, 색色이 망상妄想을 섞어 상想과 상相으로 몸이 되어 모든 연緣이 안으로 흔들고 밖으로 내닫는 어둑한 어지러운 상相을 심성心性으로 삼으니, 한 번 어질하여 마음을 삼아서는 결정決定하게 혹惑하여 색신色身 안으로 삼고, 색신色身과 밖의 산하山河와 허공대지虛空大地에 이르기까지 다 이 미묘微妙하게 밝은 진실眞實의 마음 중中(가운데)의 물物인 줄을 알지 못하나니, 견주건댄 맑은 백천百千의 대해大海를 버리고서 오직 하나의 뜬 거품을 체體로 잡아 이름을 전조全潮(전체의 바다)라 하며 ‘영瀛과 발渤이 다하니라’ 하듯 하니 [영발瀛渤은 큰 바다이라], 너희들이 곧 이 미혹迷惑한 중中에서 배倍한 사람일새 나의 드리운 손과 한가지라 차별差別이 없으니 여래如來가 이르되 어여쁜(가엾은) 것이라 하나니라.

[正原迷倒之由也하시니라 圓妙明心은 本非空色이라 全一眞角而已어늘 由妄塵이 瞥起하야 成晦昧相하야 於是에 轉覺體하야 爲頑空하며 晦妙明하야 爲妄色하니 空色이 旣立하면 想相이 競生하며 色想이 雜和하야 遂爲身相하야 妄有緣氣가 於中에 積聚하야 內則隨想搖蕩하고 外則逐境奔逸하나니 此는 特雜妄緣塵의 昏擾之相이어늘 而人이 以爲自心體性하나니 得非迷哉아 旣一迷此하면 則決定以心으로 爲在幻質之內하고 曾不知妙明眞心이 範圍天地하며 包呑萬象한 줄을 하야 乃認之於蕞爾身中하나니 何異棄彼無邊刹海하고 認一浮漚하야 以爲全潮之體와 溟渤之量이리오 此가 則以正으로 爲倒하야 一倍瞻視之人故로 引垂手之事하샤 結之하시니 明其以正으로 爲倒也하시니라]

[미혹迷惑하며 거꾸러진 전차로 정正히 근원根源 걷어 이르시니라. 두렷이 미묘微妙한 밝은 마음은 본래本來 공空과 색色이 아니라 전혀(온전히) 한 진각眞覺일 따름이거늘, 망진妄塵이 문득 일어남을 말미암아 어두운 상相이 이루어져 이에 각체覺體 옮아 완頑한 공空이 되며 미묘微妙한 밝음이 어두워 망색妄色이 되니, 공空과 색色이 이미 서면 상想과 상相이 다투어서 나며 색色과 상想이 섞여 신상身相이 되어 망妄히 있는 연기緣氣가 그 중中에 모여 안으로는 상想을 좇아 흔들고 밖으로는 경境을 좇아 내닫나니, 이는 오직 망妄을 섞은 연진緣塵의 어둑하며 어지러운 상相이거늘 사람이 제 마음의 체성體性으로 삼나니, 아니 미혹迷惑하느냐? 이미 한 번 이에 미혹迷惑하면 결정決定하게 마음으로 환질幻質의 안에 있음으로 삼고 미묘微妙하게 밝은 진심眞心이 하늘과 땅을 범위範圍하며 -범範은 쇠를 불리는 거푸집이요, 위圍는 테두리라- 만상萬象을 꾸려서 머금은 줄을 알지 못하여 적은 몸 안에 아나니, 어찌 저 갓 없는 찰해刹海를 버리고 하나의 뜬 거품을 잡아 전조全潮(전체 바닷물)의 체體와 명발溟渤(아득한 바다)의 양量(분량)으로 삼음과 다르리오? -명溟은 바다이라- 이 곧 정正으로 거꾸러짐을 삼아 한가지로 배倍하게 보는 사람인 전차로 손 드리우신 일을 끌어와 결結하시니, 정正으로 거꾸러짐 삼음을 밝히시니라.]

  •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 이권二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