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正見、금강마니보주金剛摩尼寶珠】

2019. 11. 18. 08:20전강선사 법문



​“참 법문, 이 법문法門 못 듣고 자온(조는) 것 불쌍하다.
세상에 얼매나 죄업罪業이 중重해서 이런 법문法門을 듣고 자오나?
이건 내 법문法門 아니다. 내 법문 같으면 시원찬혀.
조울라도 좋다. 에이 그까짓 놈의 법문法門 안 들어도 좋다.
그려도 괜찮지만은,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이다, 법法을 의지허제 사람을 의지하느냐’
나는 의지치 말고 법法을 의지해라.”






【부처님의 금강마니보주金剛摩尼寶珠 · 장자의 현빈玄牝 · 노자의 허무虛無 · 공자의 대학지도大學之道는, 곧 인생人生의 본각本覺이요, 佛性의 발견潑見이요, 견성見性이요, 명명덕明明德이다. 】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니라
세간소유世間所有를 아진견我盡見허니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니라




​천상천하天上天下에 무여불無如佛이제.
천상천하에는 부처님같은 어른이 없다 그말이여.

세상, 시방세계十方世界에는 비유할 디 없어.
하도높으니까.
얼마니 거룩했던지, 부처님한테 비比해서 말할 디가 없어.
과연 참 높제.

​​‘세간世間에 있는바 내가 다 일찌기 보니, 일체一切가 부처님같은 이가 없드라.’
부처님 찬讚인디, 불찬佛讚인디, 어째 그렇게 부처님이 높은고 이유가 있어.

뭐 사람은 똑같은디, 부처님도 일찌기 사람이제 사람 아님이 아니거든.
석일昔日에 동일범부同一凡夫니라.
옛날에 똑같이 다 우리 이 사바세계娑婆世界 인생과 똑같앴제, 내가 무슨 뭣이 더 높을 것이냔 말이여.
허지만은 그렇게 거룩하게 높은 도리道理가 있어.

​보배 가운데에는 금강마니보석金剛摩尼寶石이 제일第一인디, 금강마니보석金剛摩尼寶石이라는 것은 불로도 녹힐 수가 없어.
불이라는 것은 안태, 못 태울 것이 없어.
불한테 다 녹고 돌도 옥석玉石一도 구분俱焚이요, 쇠도 다 물 되어 버리고 돌도 다 타 버리고 안 탄 것이 없이 다 태운 것이 불인디, 그러헌 불로도 금강마니보주金剛摩尼寶珠는 태우덜 못혀.

그 금강마니보주金剛摩尼寶珠는 그게 ‘있다, 없다’ 하는 것이 아니고, 본래 자체가 금강보주金剛寶珠여. 그런 보배가 있어.
그놈이 어디 생겨난 원인이 있고 없고 헌 것이 아니고, 닳아 지고 무슨 뭐 때가 묻고 티끌이 찌고 그런 법法도 없고, 아무 디다가 넣놔도, 아무리 더러운 헤치깡에 빠져 있어도 금강보주金剛寶珠의 근본자체根本自體는 무흠무여無欠無餘여, 더험도 없고 덜험도 없고, 때도 더럼도 타지 않고 그런 보주寶珠가 있어.

​​그런 보주寶珠가, 금강마니보석金剛摩尼寶石같은, 보주寶珠가 우리 인생人生의 본각本覺이여.

다 있어. 누가 없는 사람이 없어.
우리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있어.
고것을 ​​불성佛性이랔햐.
개유불성皆有佛性.
부처의 성性, ​불성佛性은 마니보주摩尼寶珠과 같여.

뭘 다시 무슨 뭐 여지 없는 마니보주摩尼寶珠제 뭐.

​​고놈을 발견發見을 허면 부처님이여.
발견發見을 못허면 중생衆生이고.

부처님은 일찌기 그놈을 발견 했기 때문에 천상천하에 제일第一이여.

그러면 부처님 한 분만, 마니보주摩尼寶珠를, 그 내 본성本性를, 불성佛性을 깨달랐는가? 한 분만?
과거에 무슨 천만불千萬佛이 있고 한량限量도 없는 부처님이 계신 디 그놈만 깨달으면은 똑같제 다른 법이 없어.

우리는 그놈을 깨달지 못했기 따문에 중생衆生이여.
범부중생凡夫衆生이여.
없는 것은 아니라 있지만은, 왜 내게 딴 디가 있나?
보배寶珍 마니보주摩尼寶珠가 바다 속에가 있나, 땅속에가 있나, 금강지하에 가서 어디 있나, 비비상천非非想天에 가 있나?

내여. 내.
낱낱이 내여.
다 구족具足하게 있다 그말여.
허지만은 깨달지 못하면은 그놈을 찾지 못해 놓면은 중생衆生이여.

그런디 그놈 깨달은 방법이, 자! ​공자님 말씀에도​ “대학지도大學之道는 재명명덕在明明德이니라, ​​대학大學의 도道는 명덕明德을 밝히는디 있느니라”
명덕을, 본래 명덕明德인디 명덕을 어떻게 밝히나?
본래本來 마니보주摩尼寶珠는 고대로 있다 그말여, 내 불성佛性은 고대로 있다 그말여. 명덕明德은, 그 명덕明德을 밝히는 디 있다 그말여.
명덕을, ​​내게 있는 명덕明德을 견성見性허데끼 깨달라 봐 버리면 아 그만 대학지도大學之道여, 재명명덕在明明德이여.
부처님과 다를 것이 없어. 똑같어.

​장자莊子는 현빈玄牝​을 말했는디, ​​현빈玄牝이라는 것은 가물 현玄 자, 암소 빈牝 자인디, 현빈 역시 마니보주摩尼寶珠여.
천하天下에 도무지 알 사람이 없다.
그놈은 어쨌튼지 알기만 알면은 천하에 대성大聖이니라.
그렇게 해 놨어.
아 그놈 봐 버리면은 마니보주摩尼寶珠여.
뭐 다를 것이 있나?

​노자老子는 아! 노자의 무無여. ​​허무虛無여. ​“허虛해서, 비어서 없다” 그대로 ‘없다’ 그말여.
그 자체, 근본자체根本自體 없는 놈을 아 그놈을 갖다가서 그렇게 말했거든. 그없는, 본래 없는 근본 자체.

​​노자老子의 허무虛無나, 장자莊子의 현빈玄牝이나, 공자孔子의 대학지도大學之道나 명덕明德이나, 우리 부처님의 견성見性, 내 참선禪해서 견성見性이나 다를 것이 뭣이 있냔 말이다.
하나 다를 것이 없지.


———

​깨달라 버리면 똑같지만은, ​방법方法이 틀렸어!
무슨 방법이 틀렸냐 하면, 우리 부처님 그 깨달는 법은, ​​마니보주摩尼寶珠를, ​​마니보주와 같은 내 본각성本覺性을 깨달는 방법方法은, 아 공안公案 의심疑心이, 그 공안公案이 하나 딱 있어.
공안법公案法이 있어서 공안公案을 딱 말해놓고, 있다 없다, 무슨 뭐 뭐 밝다 어둡다, 무슨 크다 적다, 무슨 그 자체를 근본 자체를 조끔도 말한 배 없고, 아무리 말로 해 주었자 언설로 불가통不可通이며, 동작으로 보일 수 없는 거요, 세상없는 도리道理로라도 가르칠 수가 없는 도리기 따문에, 공안을 딱 말을 해놓고서는,

- 공안公案이라는 것은, 내 늘 아침마당 하는 공안,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대기 이빨이에 털 났느니라.” 그 그대로 평상화平常話인디 그대로 해 놨지만은 이 평상화란 것은 불가사의 평상화不可思議平常話라, 그것이 따질 수도 없네. 따져보니 뭣혀? 이리저리 사량분별思量分別 해봤던들 뭣혀?
사량분별思量分別, 따지고 그런 것이 붙지 못하게 되아 번졌어. 판대기 이빨에 털 난 것이 어디 있나?-

그 공안公案을 말해 놓고는, 그 무슨 그 현빈玄牝이다, 무슨 대학지도大覺之道다 무슨 허무虛無다 그렇게 딱 지정指定을 해 놓지 않고, 아까 고 그대로 ‘판치생모板齒生毛’ ‘판대기 이빨 털 났느니라’는 그걸 갖다 격외格外라 그만 그말여.

격, 보통 말과 달라 격格 밖이여. 격 밖에 딱 말을 해 놓고는, 그놈을 그대로 대의大疑를 해라!
바로 깨달랐으면 바로 봐버리면 그대로 관선觀禪인디, 바로 그 도리道理를 듣고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를 해 버렸으면은 그만 그대로 그 관선觀禪이여. 관觀이여.
그대로 관觀밖에 없어.
허지만 그 관觀이 그대로 깨달지 못허면, 관이... 그 어떤 것이 관이여? 어떻게 관을 할 것이여?
무슨 도리를 붙여서 볼 것이여. 안 되거든. 못혀.

그러니 부처님이, 부처님도 6년이나 가만히 그 참, 참선叅禪을 허시다가 6년만에 대오大悟라 그랬지. 6년만에 대오여.
그때 당시當時에 부처님께서 화두話頭를 의심疑心을 했던지 관觀을 했던지 무엇을 했던지 그것 말할 것 뭐 있나.

6년만에 확철대오廓撤大悟를 턱! 했다. 대오니 그 대오가 우리가 알 수가 있나?
부처님이 허신 그 대오를, 금강마니보주金剛摩尼寶珠를 우리가 못 본거와 똑같제. 봤음사 허지마는 금강마니보주金剛摩尼寶珠를 못 봤지. 내 본각성本覺性을 보들 못했으니 알 수가 있나?
그저 대오大悟라, ‘밝은 별을 보고 대오大悟를 허셨다’ 이뿐이제.

그 도리道理를 가섭迦葉한테 불가불不可不 보여야 할텐디, 가섭 제자, 제자 중에는 그 가섭迦葉제자 참 제일第一 수제자首第子요, 당신 부처님 보담도 연, 연세가 얼매가 높으신지 말 할 수 없는 분인디, 아 거다가 연꽃을 들어 보이니깐 -그 연꽃은 무슨 연꽃이냐 하면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셔서 설법상說法床에 올라 와 설법說法허니깐 제석궁중帝釋宮中에서 꽃비를 내루어서 우담바라優曇鉢華(우담발화)를 내려 주신 꽃이여.
그래서 그게 부처님 책상에 마침 선상禪床에 우담화優曇華가 있으니까, 그 우담바라를 척 들어서 보이니까 아 그놈들어 보이는디- 그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를 해버렸다.

언하言下에 그만 턱 봐 버리면, 그대로 깨달라 버리면, 바로 봐 버리면, 바로, 바로 본 도리道理가 깨달은 도리 아닌가.
턱 깨달라 버렸다 그말이여.

그러면 그걸 말로 허지 않고 ‘무슨 도리道理요, 무슨 도리요’ 그것이 무슨 그거 ‘현빈玄牝’이니 무슨 뭐 ‘허무虛無’니 무슨 뭐 ‘대학지도大學之道’니 무슨 ‘재명덕在明德’이니, 그렇게 무슨 이치를 붙여서 말허는 법이 없고, 미소微笑를 떡- 했다. 피이익 웃었어.

아 그거 그 격외格外, 그만 그 어느 그 행동에 벌써 보면 안다 그말여.
벌써 부처님은 턱그덕 알고서는,
“여시여시如是如是타! 백만중百萬衆이 설법說法 그 이 회상會上에 모도 모였다마는 승당자升堂者, 깨달은자 이 당에 -승당升堂이라는건 오를 승升자 집당堂자 인디- 당堂에 오른 자者가 -당堂은 법상法床에 오른자, 법상法床에 올랐으니까 ‘조실祖室에 올랐다, 조실祖室 되었다’ 그말이여- 승당자升堂者가 너로구나! 네가 옳게 깨달랐구나!”
그 인가印可를 했다 그말이여.

그놈을 바로 그 주장자柱杖子 척! 들 때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를 못했으면 어쩔 수 있나?
하루를 갈란지 이틀을 갈런지 일년을 갈런지 10년을 갈런지, 일생一生을 갈란지 이 금생今生 일생一生 못하면 또 후생後生까장 또 후생에 못하면 내후생來後生까장 그놈 밖에 없제.
무슨 도리道理냔 말이다.
주장자柱杖子를 들어 보이는, 부처님 바로 보이는 도리道理를 바로 봤으니, 시간時間도 뭣도 없이 그대로 봤으니, 아! 거기서 그만 인가印可 얻었제. 만약 그때에 바로 보지 못했으면, 몇 억천만 년을 나갈런지 알 수가 있나.

그러면은 하루 ,이틀,사흘, 나흘 암만 해야 보덜 못하고 깨달들 못하면, 거그서 가만히 공관空觀만 하고 있을 것인가?
무슨 허무관虛無觀을 할것인가, ‘비어서 없다는 관’ 을 붙일 것인가, 아주 밝고 또 밝은 관觀을 붙일 것인가, 거다가 무슨 이상시러운 색상관色相觀을 붙일 것인가, 상견관相見觀을 붙일 것인가, 부처다 할 것인가?

고래 놓면은 고런 것은 따지는 선禪이고, 모도 해석선解釋禪이고, 그걸 갖다가 인자 아무것도 없는 걸 관觀한다면은 묵조默, 묵조默照고 ‘묵묵히 비추는 것’이고, 고것이 다 ‘패궐敗闕’이여. ‘불조패궐佛祖敗闕’이란 것이 그게 누累, ‘누累’ 란 건 ‘허물이다’ 그말이여.

숭악凶惡한 허물, 만 년 천 년을 가다가 그놈을 오래 오래 묵조默照를 헌다든지 명관明觀을 헌다던지 무관無觀을 헌다든지 오래오래 허면은 거그서 변화變化가 생기고 오통五通이 다 생기고 오통오력五通五力이 다 생기고 하늘에 올라 가는 재주도 있고 땅속 들어 가는 재주도 있고 공중에 잠자는 재주도 있고 공중 누각을 짖는 재주도 있고 별 기가맥힌 신통神通이 다난다.

그러지만은 고것이 이름, 말허자면 ‘누累’ 기따문에, 허물이기 따문에, 패궐敗闕 모도 그 못된 허물 그것이기 따문에, 필경 그런 것은 아니다 그말여. 참선叅禪은 아니여.

거다가 인자 무슨 뭐 신선神仙이라고 할랑가 뭣이라고 헐랑가. 영랑신선이니 무슨 신선이니 모도 그런 것이라고 할런지 모르지만은, 참선법叅禪法은 아니다.
참선법叅禪法이라 하는것은, 깨달지 못하면 여하약하如何若何 막론莫論하고 그만 ‘의심疑心’이다.

​​‘의심疑心’ 하나가 뭐냐 하면, ‘그 무슨 도리道理인고?’
‘어째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그 판치생모 라니.
불법,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깐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으니, 어째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고 의심疑心 하나, 그 의심 하나가 바로 탁 깨달라 보아야지 깨달지 못하면 항상 의심疑心이 있다.

고놈을 깨달지 못허고 따져서 이놈을 상량商量해서 뭘 때려 붙여서 허면, 백번 떼고 백번 붙이고 천번 떼고 천번 붙이고 억만년을 붙이고 떼봤던들 항상 그 자리에서 그 누집, 허물, 패궐처敗闕處에서 거 모도 못된 묵조默照나 외도선外道禪 고런 것 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기 따문에, 이 부처님 우리 참선법叅禪에는 대번에 내게 마니보주摩尼寶珠, 내게 본래 갖추아져 있는 내 본각대의本覺大意, 꼭 내게 있는 그놈, 기어니 찾아내는 법法이 있는디, 기어니 찾아 내는 법法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이니라.

​‘의심疑心’이란 놈이 그놈이 뭐냐 하면, ‘불(火)’이다.
불, 불 그놈이 일체를 다 녹이고 태우고 하지마는 마니보주摩尼寶珠는 못 태우데끼.
화두의심話頭疑心 하나, ‘알수 없는 놈’ 을 해 들어 가면은, 언제든지 그 놈만 또 거각擧覺하고 또 거각하고 계속해서 염염상속念念相續을 해서 화두話頭를 거각擧覺해 나갈 것 같으면은,

-처음에야 그리 되나? 한 철 해도 안 되고 두 철 해도 안 되고 10년을 해도 안 된 사람도 있고 40년 50년 해도 안 된 사람이 있고, 그냥 곧 그저 한 달 해도 된 사람이 있고 3일에도 된 사람이 있고 그건 사람의 근기의 차별로 응 그렇게 되는 건디-

어- 알 수 없는 의심疑心만 독로獨露허다가, 의심 탁 그 알 수 없는놈 그놈 푹 뚫어져 버리면, 깨달라 뻔지면, 고것이, 그 불이 일체一切 마니보주摩尼寶珠는 못 태우지만은 일체제상一切諸相을 다 일체걸 다 태운 거와 마찬가지로, 번뇌망식煩惱妄識, 한 번혀 두 번혀 그렇게 오래오래 해서 그 알 수 없는 의심疑心에 가서 일체망념一切妄念은 그대로 있지마는, 뭉쳐져 있지마는 알 수 없는 놈 따문에, ‘알 수 없는 그 불’ 때문에 못 들어 와.
오다가도 타버려.

​다 태워 번지면, 그 망념妄念 그놈 다 타져 뻔지면 아! 그 각覺 밖에는 없어.
거그는 그 불로는, 태울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는 마니본각摩尼本覺을 어떻게 할 수 없어.
본각本覺 그놈 그대로 나왔는디 의심疑心 그놈이 본각本覺에 가서는 붙을 것도 없어. 본각本覺 바로 깨달라 버렸는디 거 가서 무슨 의심疑心이 붙었나?
의심이 하나 붙을 것이 없이 ‘백천공안百千公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이다. 일백 천 가지 만 가지의 공안公案을 한 뀌엄지에 다 뀌여 버린다.

제불묘리諸佛妙理가 원통무애圓通無碍다.
모든 부처님의 묘리妙理가 둥그렇게 깨달라서 걸림이 없다.
청산녹수靑山綠水가 어디 산에 걸릴까 보냐. 참, 녹수청산綠水靑山에 임자재任自在다.
아 그러헌 도리道理인디 그러헌 보배도리寶貝道理가, 그러헌 본각도리本覺道理가 그 내게 갖춰져 있는 이것을 우리가 믿고 들어 왔으니, 퇴태頹惰(퇴타)를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

언제 생겨 난 우린디.
우리 중생衆生이, 이 ​​본각本覺을 가진 중생衆生이 깨달지 못했으니 중생인디,
-중생衆生이란건 다 들어간 것이여. 중생이거든. 여러 중衆자 날 생生 자, 불성佛性있는 건 다 중생이제, 뭐 꿈적 꿈적헌 건 다 중생이제 뭐.-
깨달지 못했으니 그걸 중생衆生이라 하고, 턱 깨달라 번지면 부처(佛)고. 아! 이놈 하나 깨달라 버리는 그, 그 일 밖에는 없다.

거기서 그 본각本覺 하나 깨달지 못하고, 아무리 천만 가지 누집漏集에 꺼꾸러져서 다 해 봐라. 그 다 해 봐.
이까짓 놈의 몸띵이도 일체를 성취하는, 일체一切를 이루는 몸뚱아리 요것도 썩어져 뻐리고 땅 흙되어 뻐리고 물 되어 뻐리고 뭐 있나?
아무것도 없는 것인디, 천만 가지 다 해 논 것은 어디가 있노?

깨달지 못한, 아까 그러헌 무슨 ​​​​명덕明德같은 거, 그것은 방법方法이 틀렸어.
‘재명덕在明德’이라 헌 놈은 가만히 명덕明德을 관觀허고 있어.
일체망상一切妄想이 없는 디를 관觀하고 있어.
망상妄想은 아니니께 못된 마음은 거다가 붙이들 않고는 밝은 마음만 관觀하고 있으니, 밝은 마음 관觀하는 놈이 그놈이 도둑놈이여.

밝은 마음을 관하고 있는 그놈에 가서 별놈이 다 들어 와. 그놈 관해 봤던들 밝은 무슨 이치理致가 하나 나오니, 이치 그놈 하나를 또 보고 앉었으니, 그놈의 이치理致 보고 앉었는 그놈이 어디 뭐 별 이상스러운 구렝이를 다 청해 들이고, 일체번뇌망상一切煩惱妄想이 다 들어 오제. 뭔 소용이 있나?
그게 그 또 그 아무것도 없는 공空만 관觀허드래도 그 공관空觀 아닌가. 공空에 떨어진 공관空觀 아닌가.


​현빈玄牝도 마찬가지, 허무虛無도 마찬가지.
고것을 사선死禪이랔햐.
선禪을 붙이면 ‘죽은 참선’이라 한다 그말이여.
그놈도 오래오래 할 것 같으면, 일체망상一切妄想없는 곳에 가서 정定에 들면, 일체망상一切妄想이 없이 정定에만 딱 들어 놓으면 거기에서 오통五通이 나온다. 거기서도 신통神通이 나와. 안 나온게 아니여.

하늘 일을 다 보기도 허고, 하늘 일을 다 듣기도 허고, 일체 사람 마음을 다 알기도 허고, 전생前生 일 금생今生 일 후생後生 일 삼세三世 일을 다 알기도 허고, 천상천하天上天下 백억만리百億萬里밖이라도 일념지간一念之間에 눈 한 번 뜨기도 전에 갔다 왔다 할 수 있고, 이런 오통五通은 나지마는 누진통漏盡通은 못 난다.

아까 그 누, 더러울 누累자, 불조패궐처佛祖敗闕處, 그 견성見性 못헌 것, 본각本覺을 보지 못한 것이 있기 따문에, 그래서 이런 오통五通은 아무리 있지만 육통六通을 못하기 따문에, 육신통六神通을 못하기 따문에 그것은 ‘죽은 참선’, ‘사선死禪’ 이기 때문에, 결국은 매昧해 버리고, 결국은 타락墮落해 버리고 도로 마찬가지여.

멏 억만 년 받았닼 하드래도 그까짓 억만 년이 숫자로 다하면 그만이제, 억만 년 마지막 간 날은 하루나 한 시간이나 같제. 그때 그 시간에 생각해보제. 죽을 때 생각해보제.
다를 것이 뭣이 있나.

​그러니 참선, 활구참선법活句禪法, 이 화두참선법話頭叅禪法, ‘어째 판치생모板齒生毛랔 했는고’,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깐, 어찌 판치생모板齒生毛랔 했는고?’ 이놈만 그저 하루 사분정진四分精進, 하루 네번씩 정진, 그게 정중참선靜中叅禪인디, 정중靜中에 네번썩 참선叅禪만 그렇게 잘하면은 요중선鬧中禪이 되는 것이여.

​요중선鬧中禪이라는 것은 참선叅禪허고 일어나서, 밥먹을 때든지 갈 때든지 올때든지 동작動作을 해도 동작 가운데에 화두話頭가 그대로 가만히 항상을, 항상 자리잽혀 있는 것이여.
사분정진四分精進 앉아 하는 것은, 요중鬧中에 잘 허자는 것이여.
갔다 왔다 하는 가운데 잘허자는 것이여.
그래서 정중선靜中禪 보담도 요중선鬧中禪이란 것이 훨씬 힘이 있는 것이여.

그러헌 ​​​​​참선법禪法을 깨달라서 그 본각本覺을 깨달랐기 따문에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제일第一이다’, ‘부처님은 천상천하에 제일이다’ 아 그말이여.

우리, 우리인들 일초一超에 직립여래지直入如來地니, 한 번 깨달으면 부처님 깨달은 그 지경地境에 바로 올라가는 것이니 우리는 깨달으면 부처 아닌가?
우리도 깨달은 부처와 똑같제.

​‘천상천하天上天不에 무여불無如佛 시방세계十方世界에 비比할 수가 없구나.’
‘세간世間에 있는 나를 다 보아도 부처님 같은 이는 없고나.’
그 깨달은 각覺 하나 밖에는 없다.


그러면 부처님이 처음 출세하실 때에 모태에 나오셔서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니라’ 그 말씀이 그 본각本覺을 말씀헌 것이여. 내 당신 깨달은 본각本覺을 그 말씀을,
​​​‘일체중생一切衆生이 다 그와 같은 본각本覺이 있느니라. 이놈만 깨달으면 느그도 다 나와 똑같다. 나는 선각자다, 먼첨 깨달은 자다. 아 느그는 지금 지금도 지금이라도 툭깨달으면 나와 똑같은 것 아니냐’

———

확철대오를 해 버리면 그 깨달은 도리는 ‘전전, 전전봉주다’​, ‘전전주봉箭箭鋒이다’, 활살로, 활살로 가지고 서로 활을 쏘면 양쪽 활량(활쏘는 사람)이 활을 가지고 서로 활을 쏘면, 활을 탁 쏘면 활살, 활살이 서로 제대로 맞아 가지고 탁 맞음서(箭鎽相拄) 그대로 거그 툭 떨어져 버린다. 깨달은 법法이 그래 인경人境이 뚝 떨어져 버린다.

“견성見性을 했습니다.”
“그 견성을 했으면 네 견성헌 도리道理를 한 번 일러봐라”
“쥐가 괴(고양이) 밥 먹었습니다”
그 쥐가 괴 밥을 먹었다 하니까 그 어디 그 말이 되야?
그말이 우습제.
그러지만 법문法門이란, 법담法談이란 것은 터럭 끝만큼도 조리條理 없는 말이 없어. 아무때나 동문서답東問西答이 없어.

-그까짓것 그 인가印可 안헌 것이니 내가 말좀 허면 어때.
강사講師들은 평생에 책 펴 놓고 다 해석解釋헌디.
내 그놈 해석解釋헐 터니, 늘 해석 내가 해주제, 한 번만 내가 하나?-

​‘쥐가 괴(고양이) 밥 먹었다’ 하니까 쥐란 놈은 괴 밥인디, 쥐가 괴 밥 아닌가!
쥐, 쥐란 놈이 저 쑥 나오면 “아따 저놈 저 괴 밥 봐라 저! 괴양이 저놈 잡아 먹을, 잡아 먹을 놈 저기 있구나.”

괴양이는 쥐 잡는 것이 제 목적目的이여.
쥐 잡을라고 구녁만 딱 보고 있다가 ‘언제든지 저놈이 나오제 안 나올랴고’ 그때까장 기달고 있다가, 나오면 탁 차버린 것이여.

근께 쥐가 괴양이 밥을 먹었으니, ‘괴양이 밥’이 ‘쥔’디, 쥐란 놈이 ‘괴앵이 밥’을 먹었으니,
‘제가, 제가 저를 집어 생킨 도리道理여’

알겠어?
그만하면 알제. ‘제가 저를 생킨 도리여.’
제게서, 제가 들어서 ‘하날이다, 땅이다, 우주만물宇宙萬物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이다’ 천하天下에 모든 건립상建立相을 ‘내’가 들어서 모도 말해 논 거 아닌가?
이거 이름 다 붙여 놓고?

그러니 내가 내라는 그 아상我相, 내마음까장 내 마음을 내가 집어 생겨 버려 깨달라 버렸어.
내가 나를 그만 먹어 버렸으니, 고것이 ‘인경양구탈人境兩俱奪’ 이라고 혀.
일체경계一切境界가 내게서부터 나왔는디 ‘내’도 집어 돌려 버렸으니 생켜, 생켜 버렸으니 ‘나(我)도 없고 경계(境界)도 없다’ 그말이여.

해석解釋허자면 그말이여.
학자學者한테 해석헌건 아니여.
“부중선사不重先師의 도덕道德이요, 선사의 도덕道德을 중重히 여긴게 아니다.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다, 나를 위해 설파說破한 게 아니다”
[我不重先師道德佛法、祇重他不為我說破]

요렇게 된 말인디, 그러기 때문에 ​뜻밖에​ ‘쥐가 괴 밥 먹었습니다’ 그랬지.
그러니까 ‘제가 저를 제가 저를 알아 깨달라 버렸습니다.’ 헌게 내가 나를 깨달아 버렸으니 내게서 나온 삼라만상森羅萬象 우주만상宇宙萬象은 그 그까짓 것 뭐 뭐 물건이니, 저 짝 물건이니 인人과 경境이, ‘사람과 경계境界가 한목 없어져 뻐린 곳’ 아닌가!

그까짓 뜻으로 인가印可를 혀?
그 내 밤낮 헌 말이 그말이여.
일체一切가 다 없고, 일체가 다 없어져 없어 공空해져서, 그 공空까장도 없어진 곳에 나가서,
“구주노상狗走路上에는 낙매화落梅花하리라, 개 달아난 질(길) 위에는 매화가 떨어질리라.” 그것도 누累를 밝힌 말이여.

요렇게 요런 말이라도 알아 두어사 정견正見을 가지고 인자 학자學者들이 속지 않아.
이런 정견正見이라도 가져야사 학자들이 스승, 선생한테 속지 않어. 맨 속인 것뿐이니께 그것만은 알라 그말이여.

​견성見性?
공안公案?

그러면 일체一切가 없고 없는 놈까장 없는 곳에 나아가서 거기 패궐敗闕을 하나 집어 넣어 잡아 넣자며는,
“구주노상낙매화狗走路上落梅花니라, ‘개 달아난 길 위에 매화가 떨어졌느니라’”
개 달아, 개 달아, 개 달아난 길 위에 매화 떨어진 그놈을, 매화 밭에, 좋은 매화 밭에 그놈 개란 놈이, 그 더러운 개란 놈이 우수수 달아나니까 매화梅花가 뚝뚝뚝 떨어진께, 그 그 모도 추허고 잘못된 놈 아니여?

아 그놈을 갖다 제일귀第一句로 보자면, 개가 으례껏 아무데나 댕기는 놈인디, 매화 밭엔들 안 가면 어딘들 안 가리요. 맘대로 돌아 댕긴 놈 그대로 막 봐 버리면은, 또 그 말후구도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러면, “그냥 그대로 또 그만 그 밖에 나가서 한 마디 일러 봐라.”
“삼월낙매화三月落梅花니라, ‘삼월달에 매화가 떨어졌느니라’”
아 그러면 그놈을 그대로 또 말후구末後句로 볼 수 있는 것이고,

이렇닼 해서 들으면 그렇게 해주어 해, 해, 해석해 주면 들으면 알겠어?
말은 알아 듣는닼 하지만은, 견성을 못하면 그 근본당처根本當處에 가서 늘 맥혀 있기 때문에 다른 공안公案이 다 맥히는 법이여. 소용 하나 없어.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라고 허드래도 ‘인경양구탈人境兩俱奪’에 가서 뭣혀?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고 헌디 나아가서라도 ‘역무일물지해亦無一物之解’로 막 들어 가드래도 깨달지 못하면 거그거 내가 죽는다고 안혀? 거가서 공안公案이 있다고 안혀?

거가서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생모라는 것은 어떻게 해놓은 말이냐 그말이여.
무니 역무니 뭐 그런것 말해논 거여?
필경에 공안이란건 깨달라야 되는 것이여.
깨달지 않고는 도저히 되는 법이 없어.
그래서 내가 이렇게 여까장 늘 부탁하는 것이 이것이여.


허니까 화두학자話頭學者가 화두話頭허는 법法이, 견성見性을 척 허면은 활을 가지고 서로 쏘는디 활살이 서로 탁! 맞음서 양쪽 활살이 뚝 떨어진다.
그것이, 그게 양구탈兩俱奪로 볼 것인가?

자 그러면 “미제未在하니 갱도更道하라, 맞지 아니하니 다시 일러 보아라”
다시 이르라고 하니깐, 서식鼠食, “반기飯器는 이파已破입니다, 반기飯器는 이미 깨졌습니다. 판치생모板齒生毛입니다. 판대기 이빨에 털났습니다”
“반기飯器는 이미 깨졌습니다.” 반기는 이미 깨졌다는건 그게 무슨 말이여?
그것이 부사의공안不思議公案이여.
그 그런 걸 바로 봤으면 손펴고 일러 봐라.
손 쭉 펴고 일러 봐.
다시 의심疑心할 것 없이 나와서 춤 한 번 추고 일러봐라.
누가 숭보지 않을 텐게 일러 봐.

“반기이파飯器已破니라, 밥그릇은 이미 깨졌다”
“옳다.”
그 인가印可여. 인가처印可處는 그게 인가印可여.
그만 깨달라 놓면은 뭐, 어디거서 맥히고 걸릴 것이냐.
맥히고 걸릴데가 어디 있느냐!
대번 조주趙州부텀 감파勘破한다. 조주부텀 절단나.
그만 조주부텀 한 방망이 꺼리여. 그거 뭐 뭐 뭐 그것 부터 바로 봐 버렸은게.

조주趙州도 감파勘破할 것이며,
‘득인증처得人憎處다, 인증처人憎處, 사람 미워헌 곳 얻은 것을 감파勘破한다’
-인증처人憎處라는 것은, 불조패궐처佛祖敗闕處를 인증처人憎處라 그래. 아무리 별소릴 다 일러 놨드래도 불조佛祖의 패궐처敗闕處를 잡아 내는 것이 인증처人憎處여-
법법원통法法圓通혀. 법법法法이 원통圓通허다. 일체법법원통一切法法圓通, 어느 법 원통허고 원통 안험이 없어. 둥그렇게 다 깨달는다.
법법원통法法圓通이다.


참! 법문法門, 이 법문 못 듣고 자온 것 불쌍하다.
세상에 얼매나 죄업罪業이 중重해서 이런 법문法門을 듣고 자오나?
이건 내 법문 아니다. 내 법문 같으면 시원찬혀.
조울라도 좋다. 에이 그까짓 놈의 법문 안 들어도 좋다.
그려도 괜찮지만은,
‘의법의불인依法不依人이다, 법法을 의지허제 사람을 의지하느냐’
나는 의지치 말고 법法을 의지해라.
법法에, 법을 의지해서 법이 옳으면 법문法門을 들어라.
조울지 말고.

꾸뻑꾸뻑 조는 것이 뭣이냐?
그 어디서 모도 그렇게 많이 익혀 나왔노?
여태까지 뭔 지랄하다가 그렇게 익혀 나왔냐?
바다 속에 조개가 되아 가지고 잠만 자다 왔나?
바다 속에 조개란 놈이, 꼬막같은 것 고런것이 천 년을 자빠져 자고 ‘물소리 따문에 잠 한숨 못 잤다’고 그런단다.
그런 놈의 업력業力을 지었나?

법문法門 들으면서 꾸뻑꾸뻑 자온 것이 선방禪房에 나와?
왜 선방에 나와. 뭣 허러 나와.
놀기 좋고 별일 없이 그럭저럭 지내니께 선방 밥얻어, 얻어 쳐먹을라고 나왔어?
그 쳐먹는다고 해야제, 먹는다고 해도 너무 과혀.


별 신통변화神通變化, 뭐 뭐 뭐 하늘에 올라 가고 땅속 들어 가고 그까짓게 법法인가? 그것이 숭악凶惡한 저 모고같은 것도 날아댕긴디, 공중空中에 날아 댕긴디.
뭐 뭐 공중에 날라 댕기는 그까짓 뭐 그런것이 무슨 신통神通인가? 그 뭣이여?
그런것이 무슨 거그 그 비比헐 게 뭐 있어.
그건 개똥, 개똥 똥벌거지가 뱃대기 불써 가지고 돌아 댕기는 것 보제.

차별기연差別機緣을 일일명료一一明了다.
아무것도 맥히고 걸릴 것이 없다.
견성見性이라는 게 이렇가.

정요구오후생애正要求悟後生涯라.
그러고도 깨달은 뒤에 생애生涯를 해서 어쨌튼지 깨달은 후에 꼭 서로서로 꼭 그 아만심我慢心 두지 말고, 무서워서 안 대하지 말고, 그저 막 가서 법문法門묻고 서로 서로 탁마琢磨를 해야 한다. 법탁마法琢磨. 무섭다.
법탁마法琢磨를 잘못하면, 필경畢竟 매昧해 버리고 저도 매하고 남까장 또 인자 도로 그릇 가르치고 이런 법이여.
설사 깨달었닼 하드래도, 옳게 깨달지 옳게 전부 낱낱이 그 화두라도 다 탁마를 해야 헌다 그말이여.

그렇게 탁마를 내가 척 가다가 해놓고서는 원상圓相을 뭉켔다고 인자는 원상 뭉켔다고 하네. 인자는 원상 뭉켄게 그게 옳다고 그러네 나 기가 맥혀서 인자 말로 하기 싫네.
다시 법상에 올라 갈때마다 그 참 반가와서 그런 말 허다가 인자 내가 그말 안허네 이 다음부텀은 내가 원상법문圓相法門 어쨌다 소리 인자 없네.

- 전강선사 법문 23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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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混沌歌혼돈가]

嗚呼天道至于此、아! 천도가 여기에서
變易無窮玄且露。변하고 바뀜이 다함이 없어 현묘하고 신령스럽네.
雖云玄且靈、현묘하고 신령스럽다고 하지만,
不如混沌初無營。혼돈을 경영하지 않음만 못했네.
混沌若長在、혼돈이 오래 살아있었다면,
天不剖而靑。하늘이 쪼개져 푸르지 않았을 텐데.
天不靑地不黃、하늘이 푸르지 않으면 땅도 누렇지 않았을 테니,
我何爲而生。내 어찌 태어났겠는가?
我無生爾無生、나도 태어나지 못하고 너도 태어나지 못했으니,
何有是非交相爭。무슨 시비할 것이 있어 서로 다투겠는가?
寧吾爾天俱無生、차라리 나, 너, 하늘이 모두 태어나지 않고,
不如混沌未始亡。혼돈이 애초 죽지 않은 것만 못하네.
混混沌沌漭漭昧昧、혼혼돈돈 넓고 어두워
不圓不方無心無目身。둥글지도 모나지도 않고 마음도 눈도 몸도 없을 테니
思之不見我涕空浪浪。생각해도 알지 못해, 나는 눈물만 공연히 흘리네.


- 趙纘韓조찬한. (조선, 1572~1631), 박세욱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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