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는 오직 내게、산창하山窓下】

2019. 11. 9. 17:55송담선사 법문


【도재유아부재타道在唯我不在他】



도재유아부재타道在唯我不在他한데
불수구원불구천不須求遠不求天이니라.
수심정좌산창하收心靜坐山窓下하야
주야상참조주선晝夜常叅趙州禪이니라.




도재유아부재타道在唯我不在他요,
불수구원불구천不須求遠不求天이니라.
도道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즉 내게 있는 것이다.
그러니 모름지기 멀리 구하지도 말고 또 하늘에서 구하지도 말아라.

도道라고 허면 깊은 진리眞理를 탐구하는 것이라, 그래서 저 경전 속에서 찾고, 여러 가지 어려운 책속에서 찾고, 철학적으로 연구하고, 그런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도道는 내게 있어.

눈으로 볼 때, 귀로 들을 때, 코로 향내를 맡을 때, 입으로 음식 맛을 볼 때, 몸으로 춥고 더운 것을 느낄 때, 홀연히 한 생각이 일어날 때, 바로 ‘그 때’에 ‘거기서’ 도道를 찾는것이지 저 일어나는 생각, 눈으로 보는 그 찰나, 귀로 듣는 그 찰나를 여의고 딴 데에서 도道를 찾지를 말아라.

수심정좌산창하收心靜坐山窓下에,
마음을 거두어 산창山窓 아래 고요히 앉아서,

주야상참조주선晝夜常趙州禪이다.
밤낮으로 항상 조주선趙州禪, 조사선祖師禪을 참구叅究 할지니라.

산창하山窓下,
산창山窓이라 하니까 저- 깊은 산중山中에, 산중만을 말한것이 아니여.
어디고 있는 그 자리가, 마음을 거두어서 앉으면 그 자리가 바로 산창하山窓下여.
그 자리가 바로 선방禪房이고 선불장選佛場이거든.

밤낮, 밤이나 낮이나 항상 자기의 본참공안本叅公案을 참구叅究할지니라.

시심마是甚麽, ‘이뭐꼬’ 하는 사람은 ‘이뭐꼬?’
‘무無’ 자字를 하는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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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임신년 11월 첫째 일요법회날입니다.
조실스님의, 계축년은 조실스님께서 갑인년 12월에 열반涅槃에 드셨으니까 열반하시기 일년 전에 설하신 법문입니다. 녹음을 통해서 경청敬聽을 했습니다마는, 활구참선, ‘활구참선活句叅禪 밖에는 확철대오廓撤大悟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길이 없다.’

우리가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불러서 극락세계를 발원하는 분도 많고 그렇지만, 참선叅禪을 하는 사람은 옛날 선지식들이 모두가 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서 태어나기를 발원發願을 했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하며는, 도솔천 내원궁에는 장차 부처님으로 출세出世허실 성인聖人들이 거기에서 대기를 하고 계시는 곳이기 때문에, 그리고 도솔천 내원궁은 극락세계와 비교해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곳이여.

삼계三界가 온통 불과 수재와 화재와 병재와 온갖 그런 재란이 일어나서, 일어난다 하더라도 도솔천 내원궁에는 미치지를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 모든 장차 성불成佛해서 출세出世하실 부처님이 거기에 계신 곳이기 때문에 극락세계보다도 오히려 도솔천 내원궁에 가서 왕생往生하기를 모다 발원을 했던 것입니다.

진리眞理에 입각해서 보면 우리의 ‘바로 원각본궁圓覺本宮이 바로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이라고 조실스님께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서 태어나기를 발원을 할라면, 평소에 대승大乘 십선계十善戒를 잘 지키면서 참선을 해야한다.
활구참선을 해서 자기의 본성本性, 자기의 본성을 깨달으면, 살아서 벌써 도솔천 내원궁에 통通하는 것이고, 더군다나 이승의 인연이 다해서 숨을 거둔다며는 바로 도솔천 내원궁에 직행을 허게 된다’고 우리는 믿는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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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진오입시비단尋眞誤入是非端하야
불각다년작소단不覺多年作笑端이로구나.
몽파시지신세환夢罷始知身世幻하니
서심종로백운단誓心終老白雲端이로구나.




심진오입시비단尋眞誤入是非端이여,
불각다년작소단不覺多年作笑端이다.
진리眞理를 찾다가, 참나를 찾다가 그릇 시비是非 속에 들었어.
우리가 본래 저 무시겁無始劫 이전은 한 생각 동動해서 근본무명根本無明, 지말무명枝末無明으로 떨어져서 이렇게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해 왔지마는, 한 생각 일어나기 전, 전에는 우리도 비로자나 부처님과 한 자리에서 손에 손을 맞잡고 지내었다 그말입니다.

진리眞理속에 있다가 한 생각 동動한 탓으로 해서 무량겁無量劫을 이렇게 생사유전生死流轉을 해 왔어.
해 오다가 다행히 부처님, 또는 부처님의 진리, 부처님 법法을 만나 가지고 다시 우리 본고향本故鄕을 찾는 공부를 하다가 또 한 생각 잘 못해 가지고 다시 또 세월을, 한 생각 자칫 미끄러지면 몇 생生을 곤두박질을 친다 그말이거든.

그래 가지고 흥망성쇠興亡盛衰와 생노병사生老病死 속에 이리저리 뒹굴다가 많은 고통을 받고 많은 성현들로부터 꾸지람을 듣고 웃음을, 웃음거리가 되아 오다가, 금생今生에 어쩌다가 그 꿈을 깼다 그말이여.
꿈을 깨 가지고 보니, 세상은 말세末世가 되았고 이 몸은 늙었다 그말이거든.

이리저리 모든 부모와 처자와 권속 애정에 얽히고 섥혀서, 이 마음은 있지마는 여러가지 여건이 걸려서 뚝 끊기가 어렵고, 몸은 병病이 들고 이렇게 된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몽파시지신세환夢罷始知身世幻하니)
기왕 꿈을 깨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환幻인줄 알고 확실히 무상無常한 것을 요달了達했다면,

서심종로백운단誓心終老白雲端이여.
맹세코, 요 목숨이 다 할 때까지, 또는 세세생생에 이 환상幻想, 허망한 환상에 속지 않고 진리眞理로 돌아가고만 말겠다.
우리의 본고향本故鄕으로, 진리의 본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하는 그러한 서약을 날마다 부처님 앞에 하게 되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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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 생각 동動해 가지고, 미끄러진 탓으로해서 육도윤회六道輪廻를하고, 지금도 역시 생노병사生老病死 속에 있지마는,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중생衆生의 견지見地에서 볼 때 그런것이고, 진리眞理에 입각立脚해서 보면 이 삼계三界가 다 비로자나법신毘盧遮那法身의 체體여, 몸뚱이다 그말이여.

비로자나법신불毘盧遮那法身佛의 몸띵이요, 우리의 귀로 들을수 있는 것은 전부가 법신불法身佛의 설법說法이요, 그러니 눈을 통해서 들어온 것, 귀를 통해서 들어온 것이 전부가 다 부처님의 진신眞身이요 부처님의 설법說法이라고 헌다면,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 잎이 피고, 가을에 단풍이 들고, 겨울에 눈 내리는 것이 부처님 경전經典 아닌 것이 없고, 부처님의 진신眞身 아닌 것이 없다 그말이거든.

부처님께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시는 세계나, 역대 조사가 보신 세계나, 또 우리 중생이 보는 모든 세계가, 세계 자체는 고대로지마는,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서 다 다르다 그 말이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부처님의 법신法身, 비로자나불의 진신眞身을 친견親見을 하고, 어떻게 해야 우주법계宇宙法界에 가뜩 차 있는 경전經典을 바로 볼수가 있느냐?

무엇을 보던지 무슨경전을 듣던지, 자기에게 와서, 자기의 눈이나 귀나 코나 혀나 몸이나 생각에 와서 부딪히는 모든 것을 당當할 때에 ‘자기自己를 향向해서, 그놈에 즉해서’ 자기로 돌아와야한다 그거거든.

자기自己를 향向해서 돌아오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좋은 경전經典을 보고서 온갖 시비是非와 망상妄想을 일으켜 가지고 업業을 지어서 생사윤회生死輪의 과果 밖에는 받을 것이 없다 그말이여.

<화엄경華嚴經>이나 <법화경法華經>이나 <금강경金剛經>, 우리가 마냥 많이 듣고 보고허는 그런 좋은 경전도, 그 경을 보면서 바로 거기서 자기로 돌아오는, 그렇게 보지를 않고 그 경으로 쫓아가서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그렇게 본다면, 팔만장경八萬藏經을 다 읽는다해도 아무 이익이 없다 했습니다.

조사祖師들의 게송, 오도송悟道頌을 다 보면 춘하추동春夏秋冬 사 시절에 일어나는 경계境界에 즉即해서 자신의 깨달은 경계를 읊은 것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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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좌심산만사경獨坐深山萬事輕하고
엄관종일학무생掩關終日學無生이로다.
생애점검무여사生涯點檢無餘事하야
일완신다일권경一椀新茶一卷經이로다.




독좌심산만사경獨坐深山萬事輕이여.
홀로 깊은 산에 앉았으니 만사萬事가 다 가뿐하다

엄관종일학무생掩關終日學無生이여.
종일토록 사립문을 닫고 무생無生을 배와.
‘생사없는 도리를 배운다’ 그것은, 본참공안本叅公案을 들고 참선叅禪을 헌다는 말씀이여.

생애점검무여사生涯點檢無餘事여.
일평생 동안, 자기의 모든 것을 떠-억 이렇게 낱낱이 살펴보건데 남은 일이 없어. 아무 이렇다 할 일이 없어.

일완신다일권경一椀新茶一卷經이여.
한 잔의 새로운 차 한잔이요, 한권의 경經이여.
참선하는 스님네는 옛날부터 엽차나 작설차 이런 차를 공양끝에도 드시고, 또 졸리며는 또 차도 한잔씩 드시기도하고, 또 경을 보되 한권의 경이거던.
그 경은 무슨 경이냐 하며는, 펴봐도 한 글자도 없어.
그 경은 종이나 먹으로 만들어진 경이 아니여.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이여.
그러되 항상 광명光明을 놓는 그러한 경전經典이여.

소소영영昭昭靈靈한 한 물건.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항상 소소영영한, 우리의 육체肉体로 앉고 서고 눕고 밥먹고 옷입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모든 동작動作과, 우리의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에 걸림이 없이 오고 가고 하는 이 소소영영昭昭靈靈한 놈.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에 걸림이 없는 이 소소영영昭昭靈靈한 놈이 바로 한권의 경經이여.

우리 참선叅禪하는 사람은 어떤 종이나 먹으로 글자로 된 그런 경經을 읽는 것이 아니라, 펴 봐도 한 글자도 없어. 그런데 항상 소소영영昭昭靈靈한 놈.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主人公, 그기... ‘이 뭐꼬?’ 화두話頭를 들 때 그 경經을 읽는거라 그말이여



창窓 밖에 달이 훤허이 밝을 때,
귀뚜라미 소리가 울 때,
강변에는 서리가 내려서 모든 나무잎이 누렇고 벌겋게 물들을 때,
기러기가 떼를지어 울고 지나갈 때,

바로 거기에서 자기의 본참공안本叅公案을 들고, 자기의 일생 동안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경經을 읽어라 그러거든.



아무리 이 세상이 성현聖賢이 가신 때가 오래 되어서 말세가 되었다 하더라도, 온 세계가 시비是非와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불이 훨훨타서 전쟁으로 피바다가 된다 하더라도, 종교싸움, 사상싸움, 경제싸움, 명예 권리에 대한 싸움, 우리의 가까운데로부터 온 나라가, 온 세계가 온통 그러펀 싸움이 쉴날이 없지마는, 그러헌 속에서 우리는 달도 볼수가 있고, 귀뚜라미 소리도 들을수 있고, 산의 새 소리도 들을수 있고, 서리가 내리면 단풍이 들고, 기러기도 하늘에 날아갈 바로 거기에서 우리는 화두를 들고 떠억 참 나를 찾는다면, 부처님 생존해 계시던 정법시대나 지금이나 그 점에 있어서는 조금도 다름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 당시當時에도 낮에는 태양이 빛나고 밤에는 달이 밝았을 것이고, 가을이 오면 단풍이 졌을것이고, 기러기도 울며 지내갔을 것이다 그말이여.

정법正法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정법正法시대나 말법末法시대나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정법을 아는 사람은 정말 우리가 이 몸띵이를 받아나서 이 정법을 만나게 된 그 복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우리는 뼛속 깊이 감사하고 다행多幸으로 생각하게 되는것입니다.

지금 세상이 날로 혼탁混濁하고 탐진치貪瞋癡가 날로 치성해서 살아가기가 대단히 힘들고 어려운 세상이 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법正法을 믿고 참선叅禪을 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어려운것도 우리에게는 채찍이 될 수가 있고, 온통 세상이 혼란하고 탐진치 불이 우리의 주변 까지 타들어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철저하게 무상無常을 깨닫고 발심發心에 좋은 계기가 되어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세상과 또 출세간出世間에 선악善惡 인과因果가 다 자기의 한 생각으로 조차 일어난 것이지 원인을 그 책임을 다른 사람한테 물을 필요가 없는것입니다.
전부가 다 내 자신의 한 생각으로 인해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첫째, 이러한 세상에 태어난것 자체가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는 것이고, 내가 한 생각 최초에 일어난 근본무명根本無明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생사 윤회生死輪廻를 허며 또 이 말세末世에, 이 오탁악세五濁惡世에 또 태어났겠습니까?

모든 원인原因이 자기가 한 생각 동動함으로 인해서 행幸과 불행不幸, 흥망성쇠興亡盛衰, 생노병사生老病死 이러헌 선악인과善惡因果를 받게 된다고 하는 것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깨닫는다면, 그 원인을 알기 때문에 무슨 병病을 앓더라도 ‘이 병病이 왜 생겼는가 그 원인을, 근원을 확실히 알면’ 그 병은 고칠수가 있는것입니다.
그 원인을 모르고서 아무리 좋다는 약藥을 이것저것 먹어봤자 낫기가 어려운것이고,

그래서 명의名醫를 만나서 그 병病의 원인原因을 알아야, 그래야 그 병을 고칠수가 있는것이지.
그와같이 우리 자신이 오늘날 여기에 까지, 이 말세까지 온 원인을 안다면, 그것이 우리 자신의 한 생각으로 인해서 여기에까지 온 것을 안다면, 한 생각을 돌이키면 바로 생사生死없는 근원根源으로 돌아갈수가 있는것입니다.

한 생각 돌이키는, 한 생각으로 인因해서 이렇게 되었으니, 한 생각 돌이켜서 우리의 생사없는 근원根源으로 돌아갈라고하는 그 노력이 바로 활구참선活句叅禪이요 정법正法인 것입니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에 온갖 법문法門이 많지마는, 중생衆生의 근기根機가 천차만별千差萬別이기 때문에 49년동안 모다 여러 가지 각도에서 여러 가지 중생들을 위해서 많은 법문을 하신 것 뿐이고, 그 팔만대장경을 완전히 다 보고 읽고 확연하게 부처님의 본 뜻을 안다면, ‘이 뭐꼬?’ 하나 밖에는 없는것입니다.

그러나 그 참선법叅禪法을 믿고 열심히 하다보면 혹 어떠헌 경계를 보고, 또는 조사 스님네의 게송을 보거나 경전을 보거나 홀연히 나름대로 견처를 얻을 때가 있을수가 있습니다.

열심히 허기 때문에, 열심히 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어떤뜻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바로 그 자리에서 잠깐 감동을 해서 웃을 수도 있고 울 수도 있거니와, 그 경계에 빠져서 자기도 한 소식消息 했다 해가지고 그 경계를 버리지 못하면, 자기에게 속고 자기를 속이고 불조佛祖를 속이고 불조佛祖, 불법佛法을 멸망滅亡하게까지 할 그러헌 안타까운 그런 것이 되고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기지사一期之事, 정말 확철대오廓撤大悟를 해서 선지식의 인가印可를 받아서 조사祖師와 똑같은 경지에 이르기 전에는, 일기지사一期之事로 번뜩 어떠헌 경계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스스로, 조사祖師와 같은 경지境地가 아닌 것을 알고서 버리지 않고 그런 경계에 집착해 가지고 그것을 자기의 살림살이로 알고 그럭저럭 지낸다면, 이것은 그 동안 애써서 공부한 본의本意도 간곳 없고 자기의 공부는 거기서 끝나버려.

거기서 끝날 뿐만 아니라 그러헌, 아까 조실스님께서 말씀하신 체중현體中玄의 경계, 아무 공안公案이라도 닥치는 대로, 눈에 띄는대로 경계를 잡아서 일르고, 동문서답東問西答하고, 무슨 물음을 물어도 말을 하고 방棒을 하고 손뼉을 치고, 이렇게해서 자기는 그것으로써 쾌활하고 걸림이 없을 것 같지마는, 그것은 체중현의 경계 밖에는 아니된 것이고, 정말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 참 깨달음이라고 하는 조실스님의 말씀을 우리는 명심을 하고, 정진精進을 하되 실實다웁게 정진을 하고, 공안公案을 참구叅究 하되 실답게 참구를 해야, 깨달을 때에는 실다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것입니다.

실實답게 참구究하고 실實답게 정진精進을 해서 실다운 깨달음을 얻지 아니하면, 청춘靑春을 버리고 인생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출가出家해서 도道를 닦는다 해도 마침내는 지옥地獄 밖에는 갈곳이 없는 것이 참으로 이 도道라고 하는 것입니다.



보약補藥, 사람들은 몸을 건강하게 하고 또 늙지 않고 언제 까지나 젊음을 유지허기 위해서 어쨌든지 좋은 약이라 하면은 닥치는대로 먹을랴고 그럽니다.
그러나 보약을 잘못 먹어 가지고 오히려 무서운 병을 유발하는 경우도 많은 것입니다.

요새 약藥이라하면, 돈 있는 사람은 가리지 않고 곰의 쓸개다, 독사다, 황구렁이다, 심지어는 송장 뼈도 다 고아 먹고, 별별 약을 다 먹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수명을 연장할수도 없는거고, 어떠한 주사를 맞아가지고 자기의 힘을 보강 한답시고 계속 맞어봤자 오히려 병病을 재촉하는 결과 밖에는 안되는것입니다.

입으로 먹는 약도 그렇지만, 도道를 닦는것도, ‘요새 10년 20년 30년 닦어봤자 견성성불見性成佛헌 사람이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다. 자기 시킨대로 하면 견성見性은 문제없이 단 시간내에 할 수가 있다’ 해 가지고 삿된 방법으로 사람을 현혹하고, 그래 가지고 금방 인가印可를 해가지고 그러헌 사람들이 있습니다마는,

도道는 금방 툭 터져가지고 견성見性했다고 그래 가지고 큰 소리를 치고, 목적이 큰소리를 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여.

10년 20년 30년을 닦아도 콱 맥혀서 아무것도 얻은바가 없다고 하더라도, 올바른 방법으로 여법如法하게 실實답게 정진精進을 하면, 금생今生에 견성見性을 못했다 하더라도 조금도 후회할 것도 없고 원망할것도 없고, 마지막 살아서 어떠헌 경계를 당해도 흔들린 바가 없고, 자기를 원망하지 않고 남을 원망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본참공안本公案을 향해서 철저하게 참구究해 나갈지언정, 명예나 권리나 재산에 흔들림을 받지 않고, 마지막 숨이 딱 끊어질때 까지도 떠억 화두를 들고 숨을 거둘 수 있다면, 절대로 그 사람은 허송세월한 사람이 아니여.

죽음이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설사 숨이 가쁘고 가슴이 답답하더라도, 그 속에서도 화두를 떠억 들고서 숨을 딸깍 마칠 수 있다면, 설사 그 사람이 ‘훌륭한 도인이다, 선지식이다, 견성을 했다’ 그러한 소리를 듣지 못하고 마쳤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훌륭한 수행자라고 나는 믿습니다.

그렇게 일생을 지냈다면 금방 몸을 바꿔나서, 바꿔서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해 가지고 다시 불법佛法을 만나 가지고 또 정진精進을 하게 될것이고, 또 그 분이 도솔천兜率天 내원궁內院宮에 태어나기를 간절히 원을 했고 발원 했다면 도솔천兜率天 내원궁內院宮에 틀림없이 가서 왕생을 할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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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계신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들도 또 마찬가지입니다.
마을에는 사업도 해야하고 관공서 회사에 직장생활도 해야하고, 또 가정에서 살림도 해야하고, 아들 딸 손자손녀도 길러야하고, 여러 가지 각자 처지에 따라서 하실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 하실 일이, 속에서, 일을하면서 생활을 하면서 그 속에서 항상 화두話頭를 들고 참구叅究를 해 나가고, ‘이 뭐꼬?’
앉아서도 ‘이 뭐꼬?’ 서서도 ‘이 뭐꼬?’ 소지를 하면서도 ‘이 뭐꼬?’ 빨래를 하면서도 ‘이 뭐꼬?’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간에 항상 화두를 들어.

손님이 오면 영접하고 이야기하고 담소하면서도 항상 허리를 펴고 속으로는 ‘이 뭐꼬?’, ‘이 뭐꼬?’ 하면서 이야기도 하고 ‘이 뭐꼬?’ 하면서 차도 마시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그때는 양치하고 세수하고서 떠억 30분 또는 한시간, 새벽에 일찍 일어나신 분은 두시간, 정말 조용한 시간을 타서 정진을 하고, 이렇게 하루하루를 지내신다면 그러헌 생활이 한달 두달 일년 잇해 쌓이고 보면, 수행력修行力이 몸에 베서 자기의 모든 성격도 개선이 되고, 신심信心도 나날이 돈독敦篤해 지고, 사람, 보고듣는 모든 경계가 담담淡淡한 가운데 거기서 다, 사람죽은 것을 보고 무상無常을 깨닫고 터억 의단疑團이 돈독해지고, 세속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보고서 정말 더 깊이 발심發心을 하고, 울 일 당하면 울면서, 웃을일을 당하면 웃으면서, 그 속에서 화두話頭를 거각擧覺하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면, 그분 계신곳이 바로 선방禪房이여.

그러면서 한해 두해 지나다보면 흰 머리도 더 불어나고, 얼굴의 주름살도 불어나고, 몸의 기운도 차츰 떨어지지만, 그 속에서 한 생각을 단속團束(잡도리)하고 자꾸 정진精進을 해서 수행력修行力이 쌓이면, 봄에 꽃 필 때만 좋은 것이 아니라, 가을에 단풍질 때도 그런데로 흥취興趣가 있듯이, 중년이 말년이 되고 말년 노년이 되아서 그런 속에서 떠억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을 할 수 있다면 그러헌 할머니 그러헌 할아버지는 정말 그 얼굴에서, 그 눈에서 한마디 한마디 하시는 말씀 속에 풍기는 것이, 저 절에 계시는 노스님이나 선지식 뵈온거나 마찬가지로 그 풍기는, 설사 머리를 안 깍고 세속에 계시더라도 그 어른에서 풍기는 것이 참- 마음을,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시고, 우리마음을 돌아보게 해주시고,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는 정말 오래오래 사시기를 바라게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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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산종일무인도雲山終日無人到한데
독와선창세미경獨臥禪窓世味輕이로구나.
기습송화금기일飢拾松花今幾日인고
고표일납과평생孤瓢一衲過平生이로구나.



운산종일무인도雲山終日無人到요.
저 구름 깊은 산에 종일토록 사람이, 온 사람이 없어.
아무도 올 사람이 없더라.

독와선창세미경獨臥禪窓世味輕이요
홀로 선창禪窓에 누웠으니 세상 맛이 가벼워.
저 구름 깊은 산에 아무도 오는 사람도 없고 올 사람도 없는데, 홀로 그 선창禪窓 가에 떠억 누웠으니 ‘세상 맛이 가볍다’는 말은, 세상 흥망성쇠가 전혀, 아무 그게 무심無心하다 그거거던.

도道를 닦는 사람은, 저 깊은 산중에, - 이건, 이 게송은 부휴선사浮休禪師라고 헌 서산西山 스님 당시의 대 도사의 게송인데, 그때 시대는 스님네가 깊은 산중에 그렇게 모다 사셨다 그말이여.- 이 깊은 산중 아니라도, 설사 도회지 자동차 소리가 나고 기차 소리가 나고 별별 소리가 다 난다하더라도,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精進하면 앉았거나 누웠거나 깊은 산중에 선창禪窓에 떠억 눕고 앉은거나 똑 같은 것이다 그말이여.

기습송화금기일飢拾松花今幾日이냐.
양식糧食이 떨어져서, 배가 고프면 송화松花, 소나무에 노란 꽃가루가 열리는데 그것을 털어서 수비水飛를 해 가지고 그놈을 이렇게 물에 타서 요렇게 먹는단 말이여.
요기가 되고, 솔잎도 이렇게 썰어서 먹기도하고.

배 고파서 송화松花 가루를 주워 모은지가 며칠이나 되냐.
여러 날을 식량이 떨어져서 아마 산중에서 그렇게 송화가루로 요기를 하셨던 모양이지.

고표일납과평생孤瓢一衲過平生이다.
표주박 물 하나와 누더기 한 벌로 이렇게 평생平生을 지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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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세상이 모다 발달이 되고 그래서, 산중의 스님네들도 옛날처럼 그렇게 식량이 떨어지고 궁핍허고, - 물론 깊은 지리산이나 태백산에 깊은 산중에 토굴에 계신 스님네는 혹 그렇게 궁핍하게 지내시는 스님도 혹 있을는지 모르나 - 요새는 스님네 살기가, 음식이나 의복이나 모든 것이 퍽 풍부해서 수행하기에는 대단히 별 불편함이 없는 세상이 되았습니다.

먹는 것이 풍부하고 입을것이 흡족해서,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꼭 도를 닦아가는 데에 꼭 좋으냐?
옛날에 먹을것이, 식량이 부족하고, 내복도 못입고, 양말 한 켤레 생기며는 그것을 누덕누덕 이렇게 기워서 멍석처럼 맨들아 가지고 한 켤레 가지고 밤에 빨아 널었다가 새벽에 신고, 이렇게 궁핍하게 살았을때가 오히려 수행에는 더 보탬이 되었는가?
이것은 관점에 따라서 다를것입니다마는,

그러나 다 옛날은 옛날대로 그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배고프고 추운데에서 오히려 신심信心, 도심道心이 더 분발奮發되는 거라고 말씀도 하셨습니다마는, 지나치게 못 먹고 지나치게 못 입고 지나치게 수면睡眠이 작으면 그것이 도道를 닦아 가는데 방해, 퇴타頹惰하는 원인이 되는 수도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런게 너무 적게 먹어가지고 영양실조가 된다던지, 너무 못 입어 가지고 감기 촉한觸寒이 되어서 냉방이 생긴다던지, 또 너무 가행정진을 해 가지고 잠을 너무 부족하게 해 가지고 그것이 쌓여 가지고 결국은 깨닫기 전에 몸에 죽을 병이 걸린다던지, 이렇게까지는 허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너무 잘 먹어 가지고 몸이 누룩돼아지처럼 살이 찌고, 너무 두텁게 입고 너무 좋은 옷을 입어가지고 사치에 빠지고, 또 잠이 부족하면 병病이 난다니까 잠을 너무 많이자고 이러한 것도 수행자로써 삼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설사 세상이, 옛날에는 백리百里고 천리千里고 걸어서 걸어서 남쪽에서 북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렇게 선지식을 찾고 도반道伴을 찾아서 그렇게 순전히 걸어서 당기는 그러한 때에도 있었고, 도토리와 보리쌀 꽁보리밥으로 간신히 그렇게 끼니를 이어오면서 수행한 때를 생각해서, 그런때도 도인들도 많이 나왔고 그랬습니다.

그러니 수행하신 분은 의식주 문제에 대해서 비교적 담박淡泊한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하고, 또 참선하시는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도 ‘내가 참선을 하니까 잘 먹어야한다’ 해가지고 지나치게 노상 잘 봉양하라고만 하시지 말고, 밥이 질면 진대로 되면 된대로 꼭꼭 씹어서 잡수시면서, 그저 어쨌든지 ‘이 만큼 건강할 때’ 어쨌든지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을 하셔서, 오늘 눈을 감게 될는지 일년을 더 살게 될는지 또는 10년을 더 살게 될는지 그것은 다 인연因緣에다 맡기고,

그때까지 몸이 건강하면 앉아서 열심히 하시고 또 피곤하면 누워서도 하시고, 몸이 어디가 편치 않으시며는 누워서 끙끙 앓면서도 화두를 터억 들고, 이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잠시도 방심放心을 하지 말고 정진精進을 하셔서 마지막 눈 딱 감을 때에도 “아이고 내 자식, 내 딸, 내 재산” 그런 생각 하시지말고 화두 하나만을 떠억 들고 눈을 딱 감을수 있도록, 그렇게 수행자 다웁게 멋지게 여생餘生을 마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사시면 ‘생사生死 속에서 생사없는 영원永遠을 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사生死를 여의고 도道를 찾는 것이 아니라, ‘생사 속에서 영원永遠을 찾아야’ 하거든.
‘망상妄想을 버리고 깨달음을 찾지 말고, 바로 망상 그 놈에 즉即해서 ‘이 뭐꼬?’ 를 하거든’.

그렇다면 우리는 앉으나 서나 누우나 걸어가나 생노병사와 흥망성쇠가 바로 비로자나법신불毘盧遮那法身佛을 모시고, 바로 진리眞理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되거든.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앞으로 일주일후면 또 삼동, 임신년 동안거가 시작이 됩니다.
결재에 방부를 드리실 분은 드리시고, 또 가정에서 하실분은 하시고, 또 스님네도 이 법보선원이나 또 어느선방에 가서 방부를 들이시거나 또는 자기절에서 또 지내는 분,모두 우리가 한 부처님 한 선지식 한 활구참선법에 의거해서 닦아가는 한 가족이요 한 도반입니다.

어쨌든지 열심히 정진을 하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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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금생에 지금 이렇게 산승이 간곡히 말씀드린 이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면, 후세後世에 마땅히(當然) 한恨이 만단萬端이나 될 것이다.



- 송담선사 법문 48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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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窓下>

적적산창하寂寂山窓下에 낫조름이 족足허거다.
게을니 이러나셔 습송지자고명拾松枝煮苦茗허노라니,
아이俄已오 석양夕陽 비긴 길노 적笛소ㄹ.ㅣ 두세시러라.

- 안민영.


적적寂寂한 산창山窓 아래에 낮 졸음이 족足하겄다.
게을리 일어나서 솔 가지 주워다 쓴 찻잎 달이노라니,
잠깐 사이 이미 석양夕陽이 비낀(斜) 길로 젓대(笛) 소리 두 셋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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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窓多明使我久坐
작은 창에 볕이 많으니 나로 하여금 (그 아래) 오래도록 앉았게 하는구나.

- 김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