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幽】

2019. 4. 14. 19:25송담선사 법문


【육도윤회六道輪廻、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


행년홀홀급여류行年忽忽急如流 한데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 로구나

지차일신비아유只此一身非我有 하니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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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년홀홀급여류行年忽忽急如流한데,
흘러가는 세월이 빠르기가 흘러가는 물과 같다 그말이여. 잠시도 머꾸지 않고 주야晝夜를 불철不撤하고 십 년이고 백 년이고 끝없이 흘러가 버리는데,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다.
늙은 빛이 얼른 얼른 머리 위에, 그 해가 머리, 머리 위에 올라왔다 그말이여.

어린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열 살이 되고,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마흔 살, 육십, 칠십이 언제 어떻게 흘러간 줄 모르게 이렇게 흘러갔어.
마치 저 동쪽에 뜬 해가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데, 그럭저럭하다 보면 아침해가 이 낮이 되고 그, 그럭저럭하다 보면 벌써 서산西山에 저버린다 그말이여.

지차일신只此一身도 비아유非我有인데,
다못 이 한 몸띵이도 내 것이 아니여. 내 소유所有라고 할 수가 없어.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냐.
그렇거든 이 몸 밖에 다른 무엇을 더 구할 것이 있느냐?

무상한 이 세월, 무상한 이, 이 몸띵이가 낳아 가지고 그럭저럭하다가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는 희끗희끗 흰머리가 나고, 허리는 아프고, 그러헌, 내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고 먹이고 입히고 잘 간수하고 한 이 몸띵이도 ‘내 몸띵이다, 내 것이다’하고 할 수가 없어.

내 것이면은 내가 마음대로 해야 할 텐데, 내가 내 몸띵이를 아무리 먹이고 입히고 잘 애끼고 간수를 한다 해도 제멋대로 늙어버리고 제멋대로 고장이 나고 병이 나서 아무리 오래 살고 싶어도 소용이 없이 결국은 늙어서 병들어 죽어 버리는데, 이 몸띵이도 내 몸띵이라고 할 수가 없는데, 이 몸띵이 밖에 무엇을 더 구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재산을 구하고, 명예를 구하고, 권리를 구하고 천만 가지를 구해 봤던들 뜻대로 잘 구해지지도 않지마는 설사 뜻대로 이뤄졌다 해도 나와는 사실은 아무 소용이 없어.
그것 그렇게 구해졌다 해도 실지로 내가 행복해지냐 하면은 오히려 근심과 걱정만 더할 뿐이지 행복하지도 못하고, 또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있느냐 하면은 그렇게 피땀 흘려서 벌어놓은 것이지마는, 가지고 갈 때에는, 갈 때는 한 가지도 가지고 가지 못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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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認識하는 그 찰나, 마음 먹기에 따라서】

방금 녹음 법문을 통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었는데,
‘이 몸띵이, 이 몸띵이, 이 무상한 이 몸띵이를 받아났지마는 이 몸띵이 받았을 때에 발심發心을 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에 귀의해 가지고 어쨌든지 이 몸띵이 있을 때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라’ 그러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이 몸띵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이루어졌고, 또 이 지수화풍 사대로 구성된 이 몸띵이를 부모를 의탁해서, 아버지 어머니에 의탁해 가지고 그래 신세를 지고서 이 몸띵이를 받아났습니다.
받아났지마는 최상승법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그저 잘 먹고 잘 입고, 명예와 권리 이 오욕락五欲樂이 인생의 전분 줄 알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 행복인 줄 알고 거기에 집착이 되아서 허대다가 본의 아니게 죄만 잔뜩 퍼짓고, 그래 가지고 결국은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서 업경대業鏡臺앞에 서면은 평생 동안 지은 가지가지 죄가 거기에 다 나타나고, 또 거기 염라대왕 앞에 있는 그 저울대에 떠억 달면은 그 죄를 얼마만큼 많이 지었는가, 무겁게 지었는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업業을 어떻게 짓게 되느냐 하면은, 입으로 짓고, 몸띵이로 짓고, 우리의 마음으로 짓고 이러헌, 이렇게 짓는데, 눈으로 무엇을 보면서 그 보는 그 상대 객체客體에 따라가면은 눈을 통해서 짓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은 그 듣는 그 소리로 우리의 생각이 끌려가면은 귀로 들으면서 죄를 짓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그 냄새로 끌려가면은 냄새 맡다가 죄를 짓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은 그 생각 헌 쪽으로 끌려가면은 생각하다가 죄를 짓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육경六境을 인식認識을 하는데, ‘그 인식하는 그 찰나’에 그 객체客體로 끌려가느냐, 그 객체를 만나자마자 바로 거기서 돌이켜 가지고 화두話頭를 드느냐, 여기에 따라서 업을 지어서 생사의 윤회로 떨어질 수도 있고, 거기에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이 육경六境을 만나자마자 바로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觀照하면은 생사해탈生死解脫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하 간단한 것이고 분명分明한 것이여.



【實能幽- 실實로 ‘유幽에 능能하다’】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
마음이 경계境界를 따라서 굴러가.
마음이 일만 경계를 따라서 굴러가는데,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다.
굴러가는 곳에 실로 능히 그윽하다.
‘굴러가는 곳’이라는 게 크게 말하면은 ‘육도六途를 윤회輪廻하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소가 되기도 하고, 말이 되기도 하고, 지옥에 가기도 하고, 아귀가 되기도 하는, 천당에 가기도 하고, 아수라가 되기도 하고, 또 인간이 되기도 하는 그 육도윤회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선 당장 우리가 금생今生에, <지금 이 찰나에 일념一念에다가 그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를 붙여서 보자면, 바로 육근六根이 육경六境을 상대하는 바로 그 찰나刹那에다가 맞출 수가 있습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생사심生死心이고,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다. 이렇게 볼 때에 <육도윤회六道輪廻는 바로 육근六根이 육경六境을 상대하는 그 찰나찰나가 바로 육도윤회六道輪廻다.>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최상승 학자는 항상 시방세계十方世界도 일념一念 속에서 봐야 하고, 육도윤회六道輪廻도 일념一念 속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生死도 바로 일념一念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아까 말한 눈으로 청황적백 어떠한 색상을 볼 때에 바로 그 찰나가 바로 전처轉處, 경계를 따라 굴르는 곳인데, 그 구를 때에 어떻게 해야 능히 ‘그윽(幽)’할 수가 있느냐?
구르는 곳마다 실로 능히 그윽하다. ‘그윽하다(幽)’하는 것은 ‘생사에 휩쓸려 끌려가지 아니한 것’을 말하는 거여.

깨달은 사람은 바로 깨달은 그 낭연독존朗然獨存한 그 경계에서 벗어나지 않겠지만 우리 아직 깨닫지 못한 이 중생은,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참선叅禪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눈으로 무엇을 보자마자 바로 화두話頭를 들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화두를 들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잠깐 사이도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염념불망念念不忘 염념불매念念不昧로 화두를 거각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허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해 나갈 따름인 것입니다.

그렇게 일념一念 일념一念을 그렇게 단속해서 일구월심日久月深해 나가면 마침내는 화두話頭가 순수무잡純粹無雜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아서, 낮에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다닐 때나 일을 할 때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그 화두話頭가 매昧하지 않도록.

처음에 잘 안되니 지어서라도, 억지로라도 지어서 자꾸 챙기고 또 챙기고 하다 보면 나중에는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독로하게 되고, 망상妄想을 끊을려고 안 해도 제절로 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말이여.

설사 눈으로 무엇을 보아서 ‘저것이 산이다’, 잠깐 사이에 저게 산인 줄 보이지만 산으로 쫓아가지 안 해.
‘산이 높다, 푸르다, 저 산에 구름이 끼었다’ 그렇, 그렇게 이리저리 따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산을 보자마자 처꺽 화두를 들어버린다 그말이여.

나중에는 산을 봐도 산이 보이지 아니하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 아니하고, 사람을 봐도 사람이 보이지 아니하고, 하늘을 봐도 하늘이 보이지 아니하고, 다못 의단疑團이 독로할 뿐이다 그말이여.
눈을 뜨고 있지마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어.
귀를 막지 않고 열어놓고 있지마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게 돼. 그래서 이 몸띵이가 이 세상에 있는 것조차도 인식을 못해. 시간이 가는 줄도 몰라.

이렇게 해 나가면 그, 밤에 자되 꿈속에서도 화두話頭가 들리고, 잠이 깊이 들었을 때에도 오직 화두話頭만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들려져 갖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렇게 되기를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렇게 가면 어떠헌 찰나에 그 의단이 툭 터져버리게 되는 거여.
통을, 통 밑구녁이 빠져서 그 통에 담아논 것이 확 쏟아져 나오듯이.

이것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祖師들이 이렇게 해 가지고 다 깨달음을 얻으신 것입니다.

망상妄想을 끊을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거여.
망상을 끊을려고 하면 ‘끊을려고 하는 그 생각’이 바로 망상이 되기 때문에 망상을 끊을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거여.
마치 일어나는 파도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자꾸 손으로나, 판때기로 그 파도를 없이 허기 위해서 그 물을 누른다든지,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이리저리 친다든지, 이래봤자 그 파도가 없어지기 커녕은 오히려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


우리가 정말 이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법을 믿는다면 맨 처음에 무엇을 믿느냐하면은, ‘내가 바로 부처다.’ ‘내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生死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煩惱도 없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부처님한테 무슨 생사生死가 있어? 생사 없는 열반涅槃의 경지를 요달了達한 분이 바로 부처님인데, 부처님한테는 번뇌煩惱도 없고 생사生死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내가 바로 부처다’ 그렇게 딱 믿고 대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번뇌도 없는 것이다.’

-‘지금 그러면 우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는 무엇이며, 어머니한테 받아난 이 육체로 해서 생이 있고, 늙음이 있고, 병이 있고 마침내는 육 칠 십 살다가 결국은 죽는데, 그 죽음이 있는데 이 있는 죽음,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가 매昧했기 때문에, 매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진 것이다.’

이렇게 여러분은 우선 알아야 하고 또 그렇게 확실히 조리 있게 알면 그것을, 그것이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서 화두話頭를 들어야 한 번을 들어도 여지없이 화두가 들어지는 것입니다.

화두話頭를 들고 또 들고 해서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그놈을 들어 나가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認識되아진 번뇌煩惱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우리의 중생의 무명無明으로 인해서 없는 생사生死가 있는 것처럼 보일 이 생사生死일망정 바로 거기서 생사가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중생은 그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의 전5식前五識과 6식六識과 7식, 8식, 이, 이런 식識으로 해서 일생을 살아가고, 식識으로 해서 업을 짓고, 식識으로 해서 일체 그 생사윤회를 허는데, 그 일어나는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 이 십팔경계十八境界에 있어서 염념불망念念不忘으로 화두話頭를 단속해 나가면,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고, 그 의단疑團이 독로해 가지고 그것이 툭! 터져 버리면 그 자성을 깨닫게 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게 되는데,

그 자기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바로 깨닫자마자, 그 깨닫기 전의 중생의 그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 그 식識이 부처님의 지智로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지智가 딴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식識이 찰나 간에 변해 가지고 지智로 변하는 것이여.
식識이 지智로 변하는 것이지, 식識이 없어지고 지智가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 도리를 잘 인식認識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을 떠나서 부처님이 없어.>
우리의 중생의 마음을 버리고서 그 부처님이 어디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여. 중생의 마음, 그것이 바로 일념무생一念無生하는 도리를 요달了達해 버리면 거기에서 바로 성불成佛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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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적조변하사光明寂照徧河沙하면
범성함령공아가凡聖含靈共我家로구나

일념불생전체현一念不生全體現이라
육근자동피운차六根纔動被雲遮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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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적조변하사光明寂照徧河沙요
범성함령공아가凡聖含靈共我家다.
광명光明이 적적寂寂이 비추니, 온 항하사恒河沙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두루 그 광명이 고요히 비치는데,

범성함령凡聖含靈이 공아가共我家다.
범부, 성현 일체 중생이 다 나의 집이더라. 바로 그 참나의 면목面目이더라 그거거든.

일념불생전체현一念不生全體現이요,
한 생각 남이 없으면 전체에 드러나.
일념불생一念不生, 한 생각 일어남이 없어. 일념불생하면 전체가 나타나, 전체현全體現이다. 부처님의 면목이 바로 드러난다 그말이여.

육근六根이 자동纔動하면은 피운자被雲遮여.
벌써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한 생각이 움직이면은 그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가 환히 비쳤던 데에 거기에 벌써 구름이 가리워져서 그 광명光明을 가리게 된다 이거거든.

이 한 생각을 단속하는 것이,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가 독로하도록 단속을 하면은 삼천대천세계가 이 비로자나법신毘盧遮那法身의 대광명大光明이 온 세계를 두루 비추는 것이 되는 거고, 한 생각 단속을 못해 가지고 육근六根을 통해서 동動하면 벌써 그 광명光明에 구름이 가리워져서 그 광명을 덮는 것이 된다 그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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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제번뇌중증병斷除煩惱重增病이요
취향진여역시사趣向眞如亦是邪니라

수순세간무가애隨順世間無罣碍하면
열반생사등공화涅槃生死等空花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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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제번뇌중증병斷除煩惱重增病이요,
그러면 우리 그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끊임없이 퍼일어나는 그 번뇌, 번뇌망상을 끊어서 없앨려고 하면은 거듭 그 병통을 더 증가시키는 것이 된다. 더 번뇌를 치성하게 하는 것이 되고,

취향진여역시사趣向眞如亦是邪다.
진여眞如를 향해서 나아갈려고 마음을 먹으면은 또한 이것도 삿된 것이다.

번뇌, 그 번뇌 다스리는 법을 아까 말씀을 드렸죠?
<번뇌煩惱는 끊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진여불성眞如佛性은 우리가 그놈을 찾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여. 번뇌煩惱는 끊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고, 진여眞如를 찾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어.>

화두를 염염불망으로 들어서 타성일편이 되아서 그놈을 타파打破하면 거기에서 번뇌는 끊을려고 안 해도 저절로 거기에서 끊어져 버리고, 진여는 찾을려고 하지 안 해도 본래면목 진여불성은 찰나 간에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그말이여.

수순세간무가애隨順世間無罣碍여.
세간世間에 수순隨順을 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엄마는 엄마로서, 딸은 딸로서, 아들은 아들로서,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을 충실히 허면서, 바로 그 가운데에서 기쁜 일을 당해도 ‘이뭣고?’ 슬픈 일을 당해도 ‘이뭣고?’ 속상하는 일을 당해도 ‘이뭣고?’
그 당하는 일을 ‘좋다’고 그놈을 탐착을 하고, ‘싫다’고 해서 없앨라고 피헐려고 하지 말고, 닥치는 대로 자기의, 자기로서 도리를 다하면서 그놈을 화두를 들고서 화두 드는 마음으로 그놈을 척척척척척척 해결을 해 나가라 그말이여. 그렇게 해서 걸림이 없게 하라 그말이여.
버리고 취할 것이 없이, 닥치는 대로 자기의 입장에서 가장 적절히 모든 일을 처리를 해 나가.
그럴라면은 그놈을 <싫어서 피하지도 말고 좋아서 탐착하지도 마라.>

어떻게 하면은 버릴 것도 없고 취할 것이 없느냐?
<화두를 들고 의단이 독로하도록 해 나가는 길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걸림이 없이 되면 ‘열반涅槃이다’, ‘생사生死다’하는 것이 바로 허공의 꽃과 같이 되어버린다 그말이여. 허공의 꽃이 무엇이던가? 본래 없는 것이거든.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出現을 하실 때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 아니여. <중생의 ‘생사生死다’, ‘열반涅槃이다’ 하는 그 두 가지 소견所見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다.>
생사生死라고 해서 두려워하고, 열반涅槃이라고 해서 그놈을 좋아라고 그놈을 쫓아가는 그러한 자세로 나아가는 동안에는 영원히 생사生死는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열반涅槃은 얻어지지를 않는 것이여.

바로 <‘생사生死다, 열반涅槃이다’하는 그 두 가지 소견所見을 제도해 버리면 바로 그것이 생사해탈生死解脫이요, 바로 그것이 적적열반寂寂涅槃에 계합契合이 되는 것이다> 그 말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366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