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達, 즉即해서 ‘이 뭣고?’]

2023. 8. 21. 10:00짧은 글

[어떤 것이 통달한 삶인가?]


○ [行至非道之處] 問 經云 行於非道 通達佛道。 答 行非道者 不捨名 不捨相。 通達者 即名無名 即相無相。 又云 行非道者 不捨貪 不捨愛。 通達者 即貪無貪 即愛無愛。 行非道者 即苦無苦 即樂無樂 名為通達。 不捨生 不捨死 名為通達。 行非道者 即生無生 不取無生 即我無我 不取無我 名為通達佛道。 若能即非無非 不取無非 是名通達佛道。 以要言之 即心無心 名為通達心道。

묻되, “경經[維摩經]에 이르길, ‘비도非道(逆道之道)를 행行하면 불도佛道에 통달通達한다.’고 합니다.”

답하되, “‘비도非道를 행한다’는 것은 이름[名]을 버리지 않고 모양[相]을 버리지 않는 것이요, ‘통달通達’이라는ㅡ것은, 이름에 있어[即名] 이름이 없고[無名] 모양에 있어[即相] 모양이 없는[無相] 것이다. 

또 말하자면, ‘비도非道를 행한다’는 것은 탐貪을 버리지 않고 애愛도 버리지 않는 것이요, ‘통달通達’이라는 것은, 탐貪에 있어[即貪] 탐貪이 없으며[無貪]  애愛에 있어[即愛] 애愛가 없는[無愛] 것이다.  

비도非道를 행行하는 자가 고통에 즉即해서 고통이 없으며 즐거움에 즉即해서 즐거움이 없으면 이름하여 통달通達했다고 하며, 생生을 버리지 않고 사死를 버리지 않음을 통달通達했다고 한다. 

비도非道를 행行하는 자는 생生에 있어[即] 생生이 없으되 생生 없음[無生]도 취하지 아니하고, 나[我]에 있어[即] 나가 없으되 나 없음[無我]도 취取하지 않나니, 이름하여 불도佛道를 통달通達했다고 한다.

만약 아님[非]에 있어 아님이 없으되[無非] 아님 없음(無非)도 취取하지 않을 수 있다면[不取無非], 이것이 이름하여 불도佛道를 통달通達함이다. 

그것을 요약해서 말하면, ‘마음에 즉해서 마음이 없음[即心無心]을 마음의 도道에 통달通達했다[通達心道]’고 이름한다.

* 行於非道 通達佛道: 維摩詰言 若菩薩行於非道 是為通達佛道。 - <維摩詰所說經>


○ [究盡一切存在] 問 云何達一切法。 答 即物不起見 名為達 即物不起心 即物不起貪 即物不起惱 悉名為達。 即色無色 名達色。 即有不有 名達有。 即生無生 名為達生。 即法無法 名達法。 逢物直達 此人慧眼開 亦可觸物不見相異無異 名為達。

묻되, “어떻게 해야 일체법一切法에 달[達]합니까?” 

답하되, “물物에 즉即하여 견해[見]를 일으키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달[達]이라 하며, 물物에 즉即하여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물物에 즉即하여 탐심[貪]을 일으키지 않으며, 물物에 즉即하여 번뇌[惱]를 일으키지 않는 것을 다 이름하여 ‘달[達]’이라 한다. 

색色에 즉即해서 색이 없음[無色]을 이름하여 ‘색色에 달[達色]했다’ 하고, 있음[有]에 즉即해서 있지 아니함[不有]을 이름하여 ‘있음에 달[達有]했다’고 하며, 남[生]에 즉即해서 남이 없음[無生]을 이름하여 ‘남에 달[達生]했다’고 하고, 법法에 즉即해서 법이 없음[無法]을 이름하여 ‘법에 달[達法]했다’고 한다.

물物(어떠한 사건)을 만남에 곧바로 달[達]하면 이 사람은 혜안慧眼이 열린 것이며, 또한 물物을 부딪힘[觸]에 상相의 다름[異]과 다름 없음[無異]을 보지 않으면 이름하여 달[達]이라 한다.

- [달마어록]


* 그렇다면 결국에 무엇이 “達一切法,  일체법一切法에 ‘달達’하는 방법“이라는 말이냐?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즉即해서 ‘이 뭣고?’

일체一切의 법法(處, 時)에 즉即해서 달達하여 통通하면, 곧 통달通達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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