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산중생일수(圓覺山中生一樹)

2022. 1. 17. 20:44전강선사 법문



원각산중생일수(圓覺山中生一樹)하여
개화천지미분전(開花天地未分前)이로구나.

비청비백역비흑(非靑非白亦非黑) 인댄
부재춘풍부재천(不在春風不在天)이니라.


내가 나를 알고 내가 나를 깨달는 법이 참선법(參禪法)이요 이 법은 참으로 쉬운 것이다.

원각산(圓覺山) 가운데에 한 나무가 났으니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에 그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에 빛은 푸르지도 않고 희도 않고 또한 검도 않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절(四時節)에도 관계가 없고 춘풍(春風)에도 있지 않고 하늘에도 있지 않다. 그 나무가 천지미분전(天地未分前)에 원각산(圓覺山) 가운데 있었다.
원각산은 어디 있으며 원각산 가운데에 그 나무는 어디 있을까? 원각산 한 가운데에 있나, 아니면 변두리에 있나? 살림살이 있는 대로 털어내 놓아서 그 나무 있는 곳을 잡아 일러 보아라.

원각산중(圓覺山中)의 먼 곳이니, 천지미분전(天地未分前)이니, 봄이니 가을이니, 희다느니 검다느니, 그렇게 찾을 것 없이 그대로 한 마디 일러서 보일 것이다. 한 마디에 있으니, 그 나무가 다 있지 누구에게 없겠는가?

서산스님께서 「한 물건이 여기 있으니, 근본으로 좇아오면서 소소(昭昭)하고 영영(靈靈)하다.」 최고로 깨끗하고 밝아서 더할 수 없는 것을 소소(昭昭)라고 하는데 그 물건이 생겨난 때도 없고 없어지는 때도 없도다. 원각산 가운데에 한 나무가 있는데 천지미분전에 있었다. 봄바람에도 있지 않고 하늘에도 있지 않고, 희도 검도 푸르지도 않다. 똑같이 그 물건을 말한 것이다.

내게 한 물건이 있는데 근본으로 좇아오면서 소소하고 영영하다. 어떻게나 밝고 깨끗하고 맑던지 ‘소소(昭昭)’라고 했다. 또 ‘신령(神靈)’하다는 것을 둘을 놓아 참으로 신령하다. 난 때가 없으니 멸(滅)하는 때도 없다. 그러니 무슨 본(本)으로 좇아왔다하니 무슨 본이 있겠는가? 또 원각산중(圓覺山中)에 일수(一樹)가 있었으면 천지미분전(天地未分前)은 무엇인가? 천지미분전은 퍽 깊고 원대(遠大)한가? 천지미분전도 없지 무슨 천지미분전이 있으며, 본으로 좇아왔다는 것도 말하자니 그런 말이 나온 것이다. 그것이 할 수 없는 패궐(敗闕)이고 허물이다. 이런 물건이 이름도 없고 상(相)도 없느니라.

그러면 일물(一物) 자리를 무엇을 가리켜서 일물이라고 했는고? 어떤 고인(古人)인지는 모르겠으나 고인이 이르되, 「옛 부처가 생기기 전에 응연(凝然)히 한 상(相)이 둥글었다. 고불미생전(古佛未分前)에 이러한 원상(圓相, ○)을 하나 갖추어 놓았다. 원(圓) 중에는 불(佛)도 없으며 불(佛) 가운데는 원(圓)도 없느니라. 이런 원상을 하나 그려놓았으나 도대체 둥그렇게 그려놓은 이름을 뭐라고 붙여야 옳겠는가? ‘나무 말’이라고 붙여놓으면 나무 말에는 각각 뱀 다리가 넷이 붙었느니라. 그 무슨 소릴까? 고불미생전에 한 상을 그려놓았는데 그것을 ‘나무 말이다’ 해놓고 목마(木馬)에 가서 각각 네 발이 달렸어?

입야타(入也打)니라, 거기에 들어가도 죽느니라. 불입야타(不入也打)니라, 거기에 들어가지 아니해도 죽느니라. 참선법이 이렇다면 깨쳐도 죽고 깨치지 아니해도 죽는다. 깨달으면 살고 못 깨달으면 죽는 것이 아니다. 들어가도 죽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죽으니 원상(圓相) 같은 길쭉한 것은 원각대지(圓覺大智)라고도 할 수 있고 본각대지(本覺大智)라고도 할 수 있고...

  • 전강선사 675번의 법문 낭독하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