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1. 19:59ㆍ글뭉치
[꼭두각시 인형의 고백]
만약 신이, 내가 헝겊으로 만든 꼭두각시 인형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내가 아주 짧은 인생을 살도록 허락한다면,
아마도 내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걸 말하진 못하겠지만 나는 내가 말하는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할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할 것이다. 그들의 값어치가 아니라 그들이 지닌 의미에 따라서.
나는 적게 자고 더 많이 꿈꾸리라.
나는 안다, 우리가 눈을 감을 때마다
매 순간의 빛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다른 이들이 멈춰 있을 때 나는 걸으리라.
다른 이들이 잠들어 있을 때 나는 깨어 있으리라.
다른 이들이 말할 때는 귀를 기울이고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음미하리라.
신이 내게 한 조각의 생이라도 베푼다면, 정말로 그럴수만 있다면
옷을 간소하게 입고 태양 아래 누우리라.
내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서.
아, 내 심장을 가질 수만 있다면
얼음 위에 내 마음 속 미움들을 적어 놓으리라.
그리고 태양이 솟기를 기다릴 것이다.
내 눈물로 장미에 물을 주리라.
장미 가시가 주는 상처와
꽃잎의 붉은 입맞춤을 느끼고 싶기에.
아, 내게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생이 주어진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은 단 하루도 없으리라.
한 사람 한 사람, 각각의 여자와 남자에게
내가 그들을 얼마나 마음에 두고 있는지 알게 할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일 것이다.
나이 들면 사랑에 빠지는 걸 포기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큰 실수인가를.
사랑에 빠지는 것을 포기하는 순간 늙기 시작한다는 걸 알지 못한채.
아이들에게는 날개를 주리라.
하지만 스스로 나는 법을 배우도록 내버려 두고서.
노인들에게는 일깨워 주리라.
죽음은 노년과 함께 오는 것이 아니라
깨어있지 못함과 더불어 온다는 것을.
인간들이여, 많은 것을 나는 당신들에게서 배웠다.
모든 인간이 산 정상에서 살기를 원한다는 것을,
진정한 기쁨은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는 바로 그 길 위에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또 나는 알게 되었다. 갓난 아이가 그 작은 주먹으로 맨 처음 부모의 손가락을 꼭 움켜쥘 때
영원히 그 부모를 붙잡고 싶어 한다는 것을.
나는 또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내려다 볼 권리를 지니고 있음을 배웠다.
오직 그가 일어서는 걸 도우려고 손을 내밀 때만.
나는 아주 많은 것을 당신에게서 배웠다.
하지만 결국 그것들은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나를 여행가방 안에 집어 넣으면
불행히도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야만 하니까.
- <마음 챙김의 시(류시화)>
———
• 조니 웰치.
‘백년동안의 고독’ 의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가 병상에서 최후로 쓴 시로 신문에 게재되었으나,
무명의 복화술사 조니 웰치가 자신의 조수인 꼭두각시 인형을 위해 쓴 시라는 것이 밝혀졌다.
* 복화술사: 인형을 손에 끼고서 마치 그 인형이 말하는 것처럼 입을 움직이지 않고 말하는 사람.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나는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넘어지거나 불에 델까
두려워 하며 살지는 않으리라.
나는 나의 날들을 살기로 선택할 것이다.
매 삶이 나를 더 많이 열게 하고
스스로 덜 두려워 하고
더 다가가기 쉽게 할 것이다.
날개가 되고,
빛이 되고 약속이 될 때까지
가슴을 자유롭게 하리라.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으리라.
씨앗으로 내게 온 것은
꽃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로 가고
꽃으로 내게 온 것은 열매로 나아가는
그런 삶을 선택 하리라.
- 도나 마르코바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새벽 3시에 쓴 시.
———————
[역설逆說]
처음 침묵 속에 앉아 있으려 할 때
그토록 많은 마음 속 소음과 만나게 되는 것은 역설이다. 고통의 경험이 고통을 초월하게 하는 것은 역설이다. 고요함에 머무는 것이 오히려 충만한 삶과
존재로 이끄는 것은 역설이다.
우리의 마음은 역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들이 분명하기를 원한다.
안전이라는 환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분명함은 커다란 자기만족을 안겨 주기에.
하지만 우리 각자에게는 역설을 사랑하는
존재의 더 깊은 차원이 있다. 겨울 한가운데에 이미
여름의 씨앗이 자라고 있음을 아는.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기 시작한다는 것을 아는.
삶의 모든 것이 밝았다 어두웠다 하면서
무엇인가로 되어 간다는 것을 아는.
어둠과 빛이 늘 함께 있으며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과 맞물려 있음을 아는.
고요함 속에 앉아 있을 때 우리는 더없이 깨어난다.
마음이 침묵할 때 우리의 귀는 존재의 함성을 듣는다.
본래의 자기 자신과 하나됨을 통해
우리는 모든 것과 하나가 된다.
- 거닐라 노리스.
* 우리의 산 나이가 곧 우리의 죽은 나이이다.
우리가 죽어온 만큼, 더 깊이 사는 법을 배운다.
———————
《새의 자유》
자유로운 새가 있었다. 다른 새들과 마찬가지로 하늘을 날고, 열매를 따 먹고, 맑은 목청을 자랑했다.
그런데 그 새에게는 한가지 습관이 있었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작은 돌 하나씩을 모았다.
그리고 자신이 모은 돌들을 분류하면서 즐거운 일이 떠오르면 웃고, 슬픈 일이 기억나면 울었다.
새는 언제나 그 돌들을 가지고 다녔다. 그 돌들을 결코 잊은 적이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새는 더 많은 돌들을 갖게 되었고, 늘 그런 식으로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며 돌들을 분류했다. 마침내 돌들이 무거워져서 새는 하늘을 나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으며 어느 날은 더 이상 날 수 없게 되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하늘 높이 날던 새는, 이제 땅 위를 걸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혼자서는 한 걸음도 움직이기 힘들었다. 열매를 따 먹을 수도 없었다. 이따금 내리는 비에 겨우 목을 축일 뿐이었다.
하지만 새는 끝까지 견디며 자신의 소중한 돌들을 지켰다. 얼마 후 새는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숨졌다. 그 새를 떠올리게 하는 한 무더기의 쓸모없는 돌들 만이 뒤에 남았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뒤돌아보는 새는 죽은 새다. 모든 과거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날개에 매단 돌과 같아서, 지금 이 순간의 여행을 방해한다.
몇해전 네팔에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때의 일이다.
포카라를 출발해 일주일 넘게 걸어 3,800미터의 묵티나트로 가는 여정이었다. 사과 산지로 유명한 중간 지점의 좀솜마을은 작은 공항이 있는 산악지대의 요충지라서 여행자가 많고 숙소도 다양했다. 우리 일행은 공항부근의 작은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는데, 여주인이 볼에 밥풀이 붙은 욕심쟁이었다. 방은 지저분하고, 음식은 열악했다. 나중에는 비싼 가격 때문에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트레킹 코스의 숙소는 하룻밤 묵는 곳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침 일찍 배낭을 메고 다시 출발했다. 다음 마을인 무스탕왕국 초입의 카그베니까지는 마른 강바닥을 따라 반나절 넘게 걸어야 했다.
얕은 물길도 통과하고, 흔들다리도 건너고, 목에 종을 매단 노새들의 행렬과도 마주치는 그 길은, 멀리 안나푸르나, 다올라기리, 닐기리 등 신비롭게 솟은 히말라야 영봉들을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코스였다.
황량한 풍경 속에 노란 민들레와 청보리가 반갑게 나타나고, 안을 기웃거리고 싶게 만드는 소박한 티베트 사원들도 있었다.
그런데 일행 중 한 명이 걷는 내내 좀솜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일을 우리에게 상기시켰다. 그는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과 불쾌한 감정, 그리고 그 이전 마을들에서의 또 다른 경험들을 비교하느라 현재의 여정을 즐길 수 없었다.
카그베니에서 점심을 먹고 고지대의 묵티나트로 올라가는 가파른 오르막길에서도, 그는 카그베니 식당의 불결함과 바가지요금을 지적했다.
지구상에서도 보기드문, 광대한 황량함에 탄성을 지르게 되는 계곡들은 그의 트레킹 일기에 기록되지 않았다.
그토록 빼어난 절경을 그토록 저렴한 비용으로 누릴 수 있는 지역은 세상에 많지 않다. 히말라야 설산들에 둘러싸여 100원에 향기로운 차를 마시는 것을 상상해 보라. 어떤 찬사의 말로도 그 고마움과 감동을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의 트레킹은 무거운 베낭과 부정적인 기억들에 짓눌린 여정이었다. 그가 마음을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그를 끌고 가고 있었다. 숨이 턱에 차는 가파른 길, 발바닥의 물집, 불편한 게스트하우스와 맛없는 음식의 경험등을 다 포함하는 것이 트레킹이다.
좋은 것만 기대하면 트레킹은 불가능하다. 그가 계속 불평을 늘어놓자 일행들은 하나 둘 그와 거리를 두고 걷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트레킹 일정 내내 그는 외톨이가 되었다.
마음이 과거에 일어난 일들에 분노를 느낄 수록 현재를 사랑하기가 더 어렵다. 마음의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과거의 일을 계속 곱씹으면서, 그것에 의해 왜곡된 인식으로 자기 자신과 세상을 대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늘 화가 나 있는 사람이 영적 스승을 찾아와 말했다.
"저는 언제나 화를 내고, 사소한 일에도 감정을 억제하지 못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스승이 말했다.
"그대는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에 받은 오래된 상처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 그것 때문에 많이 약해진 것이다."
"저는 작은 일들 외에는 큰 상처를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어떻게 먼 과거의 상처들이 지금의 나를 약하게 할 수 있죠?"
스승이 옆에 놓여 있던 작은 물병을 남자에게 주며 말했다.
"손을 앞으로 뻗어 이 물병을 들고 있어보라. 무거운가?"
"아닙니다. 무겁지 않습니다."
10분 후 스승이 다시 물었다.
"무거운가?"
"조금 무겁지만 참을 만 합니다."
시간이 한참 흘러 스승은 다시 물었다.
"지금은 어떤가?"
"매우 무겁습니다. 더 이상 들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말했다.
"문제는 물병의 무게가 아니라, 그대가 그것을 얼마나 오래 들고 있는 가다. 과거의 상처나 기억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오래 들고 있을수록 그것들은 이 물병처럼 그 무게를 더할 것이다."
과거를 내려 놓고 현재를 마주하는 것이 삶의 기술이다.
오래전에 놓아버렸어야만 하는 것들을 놓아버려야 한다. 그 다음에 오는 자유는 무한한 비상이다.
자유는 과거와의 결별에서 온다.
뉴욕 어느 서점의 유리에 붙어있던 작자 미상의 글귀 하나가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 하지 않는다. 새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에도 새가 노래할 수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어느날 우리는, 생명이 넘쳐나고 빛과 소리와 색이 가득한 이 행성에 여행을 온다.
언제 다시 떠나야 할 지 알 수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삶이 우리의 기회이다.
상처에 대한 기억만 안고 이 세상과 작별하기는 아쉽지 않은가?
영적교사 페마 쵸드론은 갑자기 암 진단을 받은 한 여성의 이야기를 전한다. 평생 사소한 일에 조바심치고 불평하던 그 여성은 자신이 곧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위 사람들과 사물에 마음을 연다.
그 동안은 거들떠보지 않던 나무, 풀, 태양, 꽃, 새, 벌레들과 친해진다. 바람을 얼굴에 느끼고, 온 몸으로 비를 맞고, 사람들을 껴안고, 강아지와 달리기를 한다. 자신이 처음으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매일매일이 마지막 경험이었다.
죽음의 순간에는 진통제까지도 거부한다. 그 고통까지도 그녀에게는 소중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을 염려하며 내려다 보는 가족과 친구들을 웃는 얼굴로 위로하며 숨을 거둔다.
내려놓을수록 자유롭고,
자유로울수록 더 높이 날고,
높이 날수록 더 많이 본다.
가는 실에라도 묶인 새는 날지 못한다.
새는 자유를 위해 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 자체가 자유이다.
다시 오지 않을 현재의 순간을 사랑하고,
과거분류하기를 멈추는 것.
그것이 바람을 가르며 나는 새의 모습이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라도, 날개를 펼치고 있는 한 바람이 당신을 데려갈 것이다.
새는 날개 깃에 닿는 그 바람을 좋아한다.
-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 내려놓은 후의 자유.
<진정한 여행>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나짐 하크메트.
———————
《비 내리는 아침》
휠체어에 탄 젊은 여성이
빗방울 잔뜩 튄 검은색 비닐 우비를 입고
몸을 밀어젖히며 아침을 가로지른다.
당신은 본 적 있을 것이다.
피아니스트가 때때로 몸을 앞으로 기울여
건반을 두드린 후에
두 손을 들어 뒤로 물러나 잠시 멈췄다가
화음이 사라지려고 하는 순간
다시 몸을 숙여 건반을 두드리는 것을.
이 여성이 나아가는 방식이 그러하다.
휠체어 바퀴를 힘껏 민 다음
길고 흰 손가락을 들어
잠시 공중에 떠 있게 하다가
휠체어 속도가 마치 침묵 속으로 잠길 듯 느려지려고 하는 순간
다시 몸을 숙여 힘껏 바퀴를 민다.
그렇게 전문가다운 실력으로 그녀는
자신이 통달한 이 어려운 음악의
화음을 연주한다.
그 집중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비에 젖은 얼굴.
바람이 비의 악보를 넘기는 동안.
- 테드 쿠저
'글뭉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안찰선사同安察禪師 십현담十玄談] (0) | 2021.09.22 |
---|---|
[動用中에 收不得者] (0) | 2021.09.07 |
《보현행원품 - 한문대조》 (0) | 2020.07.07 |
《반야심경般若心經 언해》 (0) | 2020.05.30 |
《유마힐소설維摩詰所說, 불가사의해탈법문不可思議解脫法門》 (0) | 2020.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