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힐소설維摩詰所說, 불가사의해탈법문不可思議解脫法門》

2020. 3. 15. 20:34글뭉치


《維摩詰所說經》一名不可思議解脫上卷

譯 三藏鳩摩羅什譯





佛國品第一







如是我聞: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一時佛在毘耶離菴羅樹園,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비야리의 암라수원에서

與大比丘眾八千人俱,菩薩三萬二千
대비구 대중 8천명과 함께 머무르셨다. 보살 대중은 3만2천 명이 있었는데,

眾所知識,大智本行,皆悉成就;
모든 대중들이 아는 분들로서, 마하반야(大智)와 그것을 얻기 위한 수행(本行)을 모두 성취하였다.

諸佛威神之所建立,為護法城,受持正法;
모든 부처님들의 위신력의 가피를 받으며, 불법을 보호하는 성곽이 되어 정법을 받아 지녔다.

能師子吼,名聞十方;眾人不請,友而安之;紹隆三寶,能使不絕;
능히 사자후처럼 설법하여 그 명성이 시방세계에 널리 알려졌으며, 사람들이 청하지 않아도 벗이 되어 그들을 편안하게 해주었으며, 삼보를 이어가 융성하게 하여 끊어지지 않게 할 수 있었으며,

降伏魔怨,制諸外道,悉已清淨,永離蓋纏;心常安住,無礙解脫;
마군의 괴롭힘을 항복시키고 온갖 외도를 제압하였으며, 다 이미 청정해져서 5개와 10전의 번뇌를 영원히 벗어났으며, 마음은 항상 안주하여 걸림 없이 해탈하였으며,

念、定、總持,辯才不斷;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及方便力,無不具足;
염, 정, 총지, 변재가 끊어지지 않았으며,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바라밀과 방편의 힘을 원만히 갖추지 않음이 없었으며,

逮無所得不起法忍,已能隨順轉不退輪;
무소득과 불기법인에 이르렀으며, 세간법에 따르면서 불퇴전의 법륜을 굴렸으며,

善解法相,知眾生根;蓋諸大眾得無所畏、
법상을 잘 풀이하고 중생의 근기를 알았으며, 모든 대중을 덮어 가려주고 4무소외를 얻었다.

功德智慧,以修其心;相好嚴身,色像第一,捨諸世間所有飾好;
공덕과 지혜로써 그 마음을 닦았으며, 상호가 그 몸을 장엄하여 그 모습이 제일이라, 세간의 온갖 장식을 버렸으며,

名稱高遠,踰於須彌;深信堅固,猶若金剛;法寶普照,而雨甘露;
그 명성이 높이 멀리 일컬어져 수미산을 뛰어넘었으며, 깊은 믿음이 견고하여 마치 금강석과 같았으며, 불법의 보배로 널리 비추어 주고 설법의 감로를 뿌려주며,

於眾言音,微妙第一;深入緣起,斷諸邪見,
세상의 온갖 말소리 중에서 미묘하기가 제일이었으며, 연기법에 깊이 깨달아 들어가 모든 사견들을 끊어버렸으며,

有無二邊,無復餘習;
유와 무 양변은 그 습기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演法無畏,猶師子吼,其所講說,乃如雷震,無有量,已過量;
불법을 연설함에 두려움이 없음은 마치 부처님이 외침과 같았으며, 그 강설하는 소리는 우레가 진동함과 같으면서, 헤아릴 수 없어 이미 헤아림의 한계를 넘어섰다.

集眾法寶,如海導師,了達諸法深妙之義;善知眾生往來所趣及心所行;
온갖 법보를 모았기에 마치 항해사 같으며, 온갖 법의 깊고 오묘한 의미를 통달하였으며, 중생이 오고가는 세계와 그 심리행위를 잘 알았다.

近無等等佛自在慧、十力、無畏、十八不共;關閉一切諸惡趣門,
대등한 것이 없는(無等等) 부처님의 자재한 지혜와 10력, 4무소외, 18불공법에 가까웠으며, 삼악도의 문빗장을 걸어 잠갔으면서도,

而生五道以現其身;為大醫王,善療眾病,應病與藥,令得服行;
5도에 태어나 중생의 몸으로 나타내며, 대의왕이 되어 온갖 병을 잘 치료하며, 병에 따라 약을 주어서 먹고 해탈하게 하였으며,

無量功德皆成就,無量佛土皆嚴淨;其見聞者,無不蒙益;諸有所作,亦不唐捐;
한량없는 공덕을 모두 성취하였으며, 한량없는 불국토를 모두 청정하게 장엄하였으며, 그를 보고 듣는 자는 이익을 얻지 않은 자가 없었으며, 갖가지 하는 바도 헛되지 않았으니,

如是一切功德、皆悉具足
이상과 같은 온갖 공덕을 다 원만하게 갖추고 있었다.

其名曰:等觀菩薩、不等觀菩薩、等不等觀菩薩、定自在王菩薩、法自在王菩薩、法相菩薩, 光相菩薩、光嚴菩薩、大嚴菩薩、寶積菩薩、辯積菩薩、寶手菩薩、寶印手菩薩、常舉手菩薩、常下手菩薩、常慘菩薩、喜根菩薩、喜王菩薩、辯音菩薩、虛空藏菩薩、執寶炬菩薩、寶勇菩薩、寶見菩薩、帝網菩薩、明網菩薩、無緣觀菩薩、慧積菩薩、
寶勝菩薩、天王菩薩、壞魔菩薩、電德菩薩、自在王菩薩、功德相嚴菩薩、師子吼菩薩、雷音菩薩、山相擊音菩薩、香象菩薩、白香象菩薩、常精進菩薩、不休息菩薩、妙 生菩薩、華嚴菩薩、觀世音菩薩、得大勢菩薩、梵網菩薩、寶杖菩薩、無勝菩薩、嚴土菩薩、金髻菩薩、珠髻菩薩、彌勒菩薩、文殊師利法王子菩薩,如是等三萬二千人。
그들의 이름은 등관보살, 부등관보살, 등부등관보살, 정자재왕보살, 법자재왕보살, 법상보살, 광상보살, 광엄보살, 대엄보살, 보적보살, 변적보살, 보수보살, 보인수보살, 상거수보살, 상하수보살, 상참보살, 희근보살, 희왕보살, 변음보살, 허공장보살, 집보거보살, 보용보살, 보견보살, 제망보살, 명망보살, 무연관보살, 혜적보살, 보승보살, 천왕보살, 괴마보살, 전덕보살, 자재왕보살, 공덕상엄보살, 사자후보살, 뇌음보살, 산상격음보살, 향상보살, 백향상보살, 상정진보살, 불휴식보살, 묘생보살, 화엄보살, 관세음보살, 득대세보살, 범망보살, 보장보살, 무승보살, 엄토보살, 금계보살, 주계보살, 미륵보살, 문수사리법왕자보살 등 3만 2천 명이었다.

復有萬梵天王尸棄等,從餘四天下,來詣佛所,而為聽法;
또 대범천왕 시기 등 그 이하 1만명의 범천왕들이 다른 4대주로부터 찾아와 부처님께 절하고 가르침을 듣고자 하였다.

復有萬二千天帝,亦從餘四天下,來在會坐;
또 1만 2천 명의 제석천들도 다른 4대주로부터 찾아와 이 법회에 앉아 있었다.

并餘大威力諸天、龍神、夜叉、乾闥婆、阿脩羅、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等,悉來會坐;
그 밖에 대위력을 갖춘 여러 천인, 용신,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들도 이미 법회에 와서 앉아 있었다.

諸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俱來會坐。
그리고 많은 비구와 비구니, 우바새와 우바이도 함께 법회에 와서 앉아 있었다.

彼時佛與無量百千之眾,恭敬圍繞,而為說法,譬如須彌山王顯于大海,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한량없는 백천 명의 대중들에게 공경히 둘러싸인 가운데 그들을 위해 설법하려 하시는데, 그 모습은 마치 수미산이 거대한 바다 가운데 우뚝 솟아 드러남 같았으며,

安處眾寶師子之座,蔽於一切諸來大眾。
온갖 보물로 장식된 사자좌에 편안히 앉아 계시는데, 여러 곳에서 온 모든 대중들을 덮고 있었다.

爾時毘耶離城有長者子,名曰寶積,與五百長者子,俱持七寶蓋,來詣佛所,頭面禮足,各以其蓋共供養佛。
그때에 비야리성에 장자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보적이었다. 그는 5백 세가 장자의 아들들과 함께 저마다 7보로 꾸민 보개일산(寶蓋)을 들고 법회에 와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의 발에 정례하고는 각자 그 일산을 부처님께 모두 공양하였다.

佛之威神,令諸寶蓋合成一蓋,遍覆三千大千世界,而此世界廣長之相,悉於中現;
부처님은 신통위력으로 모든 보개일산들을 합하여 하나로 만들어서, 3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었다. 그러자 이 세계의 광대한 모습이 그 안에 모두 나타났다.

又此三千大千世界諸須彌山、雪山、目真隣陀山、摩訶目真隣陀山、香山、寶山、金山、黑山、鐵圍山、大鐵圍山,大海江河,川流泉源,及日月星辰、天宮、龍宮、諸尊神宮,悉現於寶蓋中;又十方諸佛,諸佛說法,亦現於寶蓋中。
또 이 3천대천세계의 모든 수미산, 설산, 목진린타산, 마하목진린타산, 향산, 보산, 금산, 흑산, 철위산, 대철위산, 큰 바다와 강, 시내와 수원, 그리고 해와 달과 별, 천궁과 용궁, 온갖 존귀한 신들의 궁전이 모두 그 보개 일산 안에 나타났다. 또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과 그 부처님들이 설법하시는 모습도 보개일산 안에 나타났다.

爾時一切大眾。覩佛神力,歎未曾有!合掌禮佛,瞻仰尊顏,目不暫捨。
그때에 모든 대중들이 부처님의 신통위력을 보고는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라 찬탄하고, 합장하여 부처님께 예배하였다. 그리고는 존엄한 얼굴을 우러러보며 눈을 잠시도 떼지 못하였다.

於是長者子寶積即於佛前,以偈頌曰:
장자의 아들 보적은 곧 부처님 앞에서 게송을 읊었다.
「 「目淨脩廣如青蓮,
티 없이 맑은 눈은 길고 넓어 푸른 연꽃 같고,
 心淨已度諸禪定,
마음이 청정함은 이미 모든 선정 뛰어넘었네,
 久積淨業稱無量,
오랜 겁에 쌓은 정업이 한량없다 찬탄 받고,
 導眾以寂故稽首。
중생을 열반으로 이끄시니 머리 조아려 예배합니다.
 既見大聖以神變,
이미 보았나이다 대성께서 신통변화로,
 普現十方無量土,
시방의 한량없는 국토들을 두루 나타내심을.
 其中諸佛演說法,
그 속의 모든 부처님들 설법하고 계시오니,
 於是一切悉見聞。
모든 이들 다 보고 듣나이다.
 法王法力超群生,
법왕은 법력이 중생을 초월하옵고,
 常以法財施一切,
항상 법의 재물로써 모두에게 보시하오며,
 能善分別諸法相,
온갖 법상을 능히 잘 분별하시되,
 於第一義而不動,
제일의에서 움직이지 않으시며,
 已於諸法得自在,
이미 모든 법에 자재하시기에,
 是故稽首此法王。
그러므로 이 법왕께 머리 조아려 예배합니다.
 說法不有亦不無,
“모든 법은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면서,
 以因緣故諸法生,
인연으로 모든 법이 생겨나며,
 無我無造無受者,
나도 없고 짓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지만,
 善惡之業亦不亡。
선악의 업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설법하시네.
 始在佛樹力降魔,
처음 보리수 아래서 지혜의 힘으로 마군을 항복시키고,
 得甘露滅覺道成,
감로의 열반을 얻어 깨달음의 도를 이루시니,
 已無心意無受行,
이미 심의식이 없고 수음과 행음이 없으시며,
 而悉摧伏諸外道。
모든 외도를 다 꺾어 굴복시켰네.
 三轉法輪於大千,
3천대천세계에 법륜을 세 번 굴리시니,
 其輪本來常清淨,
그 법륜은 본래 영원히 청정한지라,
 天人得道此為證,
천상과 인간세계는 도를 얻고 이로써 증명 삼으니,
 三寶於是現世間。
3보가 이리하여 세간에 나타났네.
 以斯妙法濟群生,
이 묘법으로 중생을 제도하시니,
 一受不退常寂然,
한 생을 받아 물러남 없이 영원히 적연합니다.
 度老病死大醫王,
늙음과 질병과 죽음을 건너 해탈케 하는 대의왕이시여,
 當禮法海德無邊。
마땅히 불법의 바다 그 공덕의 끝없음에 예배합니다.
 毀譽不動如須彌,
비난과 칭찬에 마음 움직이지 않음은 수미산 같고,
 於善不善等以慈,
선인과 악인에게 평등하게 자비로우며,
 心行平等如虛空,
심리와 행위가 평등함은 허공과 같으시니
 孰聞人寶不敬承。
그 누가 사람 중의 보배를 듣고서 경배하지 않으리요.
 今奉世尊此微蓋,
지금 세존께 이 조그만 일산들을 바치자,
 於中現我三千界,
그 안에 우리 3천대천세계와,
 諸天龍神所居宮,
온갖 천신과 용신 등이 사는 궁전과,
 乾闥婆等及夜叉,
건달바 등과 야차까지 나타내시니,
 悉見世間諸所有,
그 속의 세간 온갖 것 모두 보았아온데,
 十力哀現是化變,
중생이 가엾어 10력으로 이런 변화 나타내셨네.
 眾覩希有皆歎佛,
대중들은 보고서 희유한 일이라며 모두 부처님을 찬탄하고,
 今我稽首三界尊。
이제 저희들은 3계의 세존께 머리 조아려 예배하나이다.
 大聖法王眾所歸,
대성이신 법왕은 중생들의 귀의처라,
 淨心觀佛靡不欣,
청정한 마음으로 부처님 뵙고서 기뻐하지 않음 없고,
 各見世尊在其前,
저마다 자기 앞에 세존이 계심 보오니,
 斯則神力不共法。
이는 곧 부처님의 신통능력 불공법이옵니다.
 佛以一音演說法,
부처님은 한 음성으로 법을 설하시건만,
 眾生隨類各得解,
중생은 부류 따라 저마다 이해하고는,
 皆謂世尊同其語,
모두들 말하기를 세존의 말씀이 자기 말 같다 하니,
 斯則神力不共法。
이는 곧 부처님의 신통능력 불공법이옵니다.
 佛以一音演說法,
부처님은 한 음성으로 법을 설하시건만,
 眾生各各隨所解,
중생들은 저마다 이해한 바에 따라,
 普得受行獲其利,
널리 받아 행하여 그 이익을 얻으니,
 斯則神力不共法。
이는 곧 부처님의 신통능력 불공법이옵니다.
 佛以一音演說法,
부처님은 한 음성으로 법을 설하시건만,
 或有恐畏或歡喜,
어떤 이는 두려워하고 어떤 이는 기뻐하며,
 或生厭離或斷疑,
어떤 이는 염리심을 내고 어떤 이는 의심을 끊으니,
 斯則神力不共法。
이는 곧 부처님의 신통능력 불공법이옵니다.
 稽首十力大精進,
10력을 갖추시고도 대정진하심에 머리 조아려 찬탄합니다.
 稽首已得無所畏,
이미 4무소외를 얻으셨음에 머리 조아려 찬탄합니다.
 稽首住於不共法,
18불공법에 머무심에 머리 조아려 찬탄합니다.
 稽首一切大導師,
온갖 중생세계의 대도사이심에 머리 조아려 찬탄합니다.
 稽首能斷眾結縛,
온갖 번뇌의 속박을 능히 끊으셨음에 머리 조아려 찬탄합니다.
 稽首已到於彼岸,
저 언덕에 이르셨음에 머리 조아려 찬탄합니다.
 稽首能度諸世間,
모든 세간의 중생을 능히 제도하심에 머리 조아려 찬탄합니다.
 稽首永離生死道。
영원히 생사의 길에서 벗어나셨음에 머리 조아려 찬탄합니다.
 悉知眾生來去相,
중생이 6도에 오고가는 모습을 모두 다 아시고,
 善於諸法得解脫,
모든 법에서 훌륭히 해탈하셨으며,
 不著世間如蓮華,
세간에 집착 없으심이 마치 연꽃과 같으시고,
 常善入於空寂行,
항상 공적의 삼매행에 잘 들어가시며,
 達諸法相無罣礙,
모든 법상에 통달하여 걸림이 없으셔서,
 稽首如空無所依。」」
허공처럼 의지한 바 없으심에 머리 조아려 찬탄합니다.

爾時長者子寶積說此偈已,白佛言:
그때에 장자의 아들 보적은 이상의 게송을 다 읊고 나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世尊!是五百長者子,皆已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願聞得佛國土清淨,唯願世尊說諸菩薩淨土之行!」
“세존이시여! 우리들 5백 세가의 장자의 아들들은 모두가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겠다고 발심했습니다. 불국토의 청정에 대해서 듣기를 원하옵니다. 오직 원하오니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의 정토수행에 대해 설하여 주소서.”

佛言:「善哉!寶積!乃能為諸菩薩,問於如來淨土之行。諦聽,諦聽!
善思念之,當為汝說!」於是寶積及五百長者子受教而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다! 보적이여! 네가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여래에게 정토 수행에 대해 물을 수 있다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그리고 잘 사념하여라. 내 마땅히 그대들을 위해 설하겠노라.” 이에 보적을 비롯한 5백 세가의 장자의 아들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자 귀 기울였다.

佛言:「寶積!眾生之類是菩薩佛土。
所以者何?菩薩隨所化眾生而取佛土,隨所調伏眾生而取佛土,隨諸眾生應以何國入佛智慧而取佛土,隨諸眾生應以何國起菩薩根而取佛土。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보적이여! 중생의 무리가 곧 보살의 불국토이니라. 왜냐하면 보살은 교화할 중생에 따라서 불국토를 취하기 때문이며, 조복할 중생에 따라서 불국토를 취하기 때문이며, 온갖 중생들이 마땅히 어떠한 불국토의 경계로써 부처의 지혜로 깨달아 들어가야 하는가에 따라서 불국토를 취하기 때문이며, 온갖 중생들이 마땅히 어떠한 불국토의 경계로써 보살의 선근을 일으켜야 하는가에 따라서 불국토를 취하기 때문이다.

所以者何?菩薩取於淨國,皆為饒益諸眾生故。譬如有人,欲於空地,造立宮室,隨意無礙;若於虛空,終不能成!菩薩如是,為成就眾生故,願取佛國,願取佛國者,非於空也。
왜냐하면 보살이 청정한 불국토를 취함은 다 온갖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하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비어있는 땅 위에 궁실을 짓고자 하면 뜻대로 아무런 장애가 없겠지만, 만약 허공에 짓고자 한다면 끝내 지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보살도 이와 같아서 중생을 성취시키기 위하기 때문에 불국토를 취하고자 원하는 것이요, 불국토를 취하고자 원함은 공허한 목적에서가 아니다.

「寶積當知!直心是菩薩淨土,菩薩成佛時,不諂眾生來生其國;
보적이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은 마음(直心)이 보살의 정토이니, 보살이 부처가 될 때 아첨하지 않는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深心是菩薩淨土,菩薩成佛時,具足功德眾生來生其國;
깊은 마음(深心)이 보살의 정토이니, 보살이 부처가 될 때 선행 공덕을 원만히 갖춘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菩提心是菩薩淨土,菩薩成佛時,大乘眾生來生其國;
보리심이 보살의 정토이니, 보살이 부처가 될 때 대승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布施是菩薩淨土,菩薩成佛時,一切能捨眾生來生其國;
보시가 보살의 정토이니, 보살이 부처가 될 때 온갖 것을 버릴 수 있는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持戒是菩薩淨土,菩薩成佛時,行十善道滿願眾生來生其國;
지계가 보살의 정토이니, 보살이 부처가 될 때 10선업도를 행하여 서원을 가득 채운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忍辱是菩薩淨土,菩薩成佛時,三十二相莊嚴眾生來生其國;
인욕이 보살의 정토이니, 보살이 부처가 될 때 32상으로 장엄한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精進是菩薩淨土,菩薩成佛時,勤修一切功德眾生來生其國;
정진이 보살의 정토이니 보살이 부처가 될 때 온갖 공덕을 부지런히 닦는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禪定是菩薩淨土,菩薩成佛時,攝心不亂眾生來生其國;
선정이 보살의 정토이니, 보살이 부처가 될 때 마음을 거두어들여 어지럽지 않는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智慧是菩薩淨土,菩薩成佛時,正定眾生來生其國;
반야지혜(智慧)가 보살의 정토이니, 보살이 부처가 될 때 정정正定의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리라.

四無量心是菩薩淨土,菩薩成佛時,成就慈悲喜捨眾生來生其國;
4무량심이 보살의 정토이니, 보살이 부처가 될 때 자무량심, 비무량심, 희무량심, 사무량심을 성취한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四攝法是菩薩淨土,菩薩成佛時,解脫所攝眾生來生其國;
4섭법이 보살의 정토이니, 보살이 부처가 될 때 섭수 교화되어 해탈한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方便是菩薩淨土,菩薩成佛時,於一切法方便無礙眾生來生其國;
방편이 보살의 정토이니, 보살이 부처가 될 때 온갖 법에 방편이 걸림이 없는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三十七道品是菩薩淨土,菩薩成佛時,念處、正勤、神足、根、力、覺、道眾生來生其
國;
37조도품이 보살의 정토이니, 보살이 부처가 될 때 4념처, 4정근, 4신족, 5근, 5력, 7각지, 8정도를 닦은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迴向心是菩薩淨土,菩薩成佛時,得一切具足功德國土;
회향심이 보살의 정토이니, 보살이 부처가 될 때 모든 공덕을 다 갖춘 국토를 성취하느니라.

說除八難是菩薩淨土,菩薩成佛時,國土無有三惡八難;
8난을 없애는 법을 설함이 보살의 정토이니, 보살이 부처가 될 때 그 나라에는 3악도와 8난이 없느니라.

自守戒行、不譏彼闕是菩薩淨土,菩薩成佛時,國土無有犯禁之名;
자신은 계행을 잘 지키면서 남의 잘못을 비난하지 않음이 보살의 정토이니, 보살이 부처가 될 때 그 나라에 계율을 범했다는 소리가 없느니라.

十善是菩薩淨土,菩薩成佛時,命不中夭,大富梵行,所言誠諦,常以軟語,
眷屬不離,善和諍訟,言必饒益,不嫉不恚,正見眾生來生其國。
10선업도가 보살의 정토이니, 보살이 부처가 될 때 목숨이 요절하지 않고, 크게 부유하면서도 청정한 행을 닦으며, 하는 말은 성실하면서 지키고, 항상 부드러운 말을 쓰며, 권속들이 헤어지는 일이 없고, 소송다툼을 잘 화해시키며, 말을 하면 반드시 이익을 주고, 질투하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정견을 갖춘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如是,寶積!菩薩隨其直心,則能發行;隨其發行,則得深心;隨其深心,則意調伏;隨意調伏,則如說行;隨如說行,則能迴向;隨其迴向,則有方便;隨其方便,則成就眾生;隨成就眾生,則佛土淨;隨佛土淨,則說法淨;隨說法淨,則智慧淨;隨智慧淨,則其心淨;隨其心淨,則一切功德淨。
이와 같다! 보적이여! 보살은 그 곧은 마음에 따라서 곧 행원을 일으킬 수 있고, 그 행원에 따라서 깊은 마음을 얻는다. 그 깊은 마음에 따라서 망념의식이 조복되고, 망념의식이 조복됨에 따라서 말하는 대로 행하게 된다. 말하는 대로 행함에 따라서 회향할 수 있고, 그 회향에 따라서 방편을 얻게 된다. 그 방편에 따라서 중생을 성취하게 되며, 중생을 성취함에 따라서 불국토가 청정해진다. 불국토가 청정함에 따라서 설법이 청정해지며, 설법이 청정함에 따라서 지혜가 청정해진다. 지혜가 청정함에 따라서 그 마음이 청정해지고, 그 마음이 청정함에 따라서 모든 공덕이 청정해지느니라.

是故寶積!若菩薩欲得淨土,當淨其心;隨其心淨,則佛土淨。」
그러므로 보적이여! 만약 보살이 정토를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 그 마음이 청정함에 따라서 불국토가 곧 청정해지기 때문이다.“

爾時舍利弗承佛威神作是念:「若菩薩心淨,則佛土淨者,我世尊本為菩薩時,意豈不
淨,而是佛土不淨若此?」
그때에 사리불은 부처님의 위신력을 입어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만약 보살의 마음이 청정해지면 불국토도 청정해진다고 하는데, 우리 세존께서 본래 보살이었을 때 어찌 마음이 청정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지금의 이 불국토는 이처럼 청정하지 않을까?’

佛知其念,即告之言:「於意云何?日月豈不淨耶?而盲者不見。」
부처님께서는 그의 생각을 알고 곧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생각에 어떠한가? 해와 달의 광명은 청정한데도 어찌하여 장님은 보지 못 하는가?”

對曰:「不也,世尊!是盲者過,非日月咎。」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장님의 허물이지 해와 달의 잘못이 아닙니다.”

「舍利弗!眾生罪故,不見如來佛土嚴淨,非如來咎;
“사리불이여! 중생의 죄악 때문에 여래의 불국토가 장엄하고 청정함을 보지 못하는 것이지, 여래의 잘못이 아니다.”

舍利弗!我此土淨,而汝不見。」
“사리불이여! 나의 국토는 청정하건만 그대가 보지 못하는 것이니라.”

爾時螺髻梵王語舍利弗:「勿作是意,謂此佛土以為不淨。所以者何?我見釋迦牟尼佛土清淨,譬如自在天宮。」
그때에 나계범왕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그런 생각을 하여 이 부처님의 나라가 청정하지 못하다 말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제가 보기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의 불국토는 청정하기가 마치 타화자재천궁과 같기 때문입니다.”

舍利弗言:「我見此土丘陵坑坎、荊蕀沙礫、土石諸山、穢惡充滿。」
사리불이 말하였다. “제가 보기에 이 나라는 구릉과 가시나무와 모래와 자갈, 그리고 흙과 돌과 온갖 산과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螺髻梵王言:「仁者心有高下,不依佛慧,故見此土為不淨耳!
舍利弗!菩薩於一切眾生,悉皆平等,深心清淨,依佛智慧,則能見此佛土清淨。」
나계범왕은 말하였다. “그대의 마음에는 높다 낮다는 분별심이 있고, 부처님의 지혜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를 보고 청정하지 않다고 여길 뿐입니다.
사리불이여! 보살이 온갖 중생에 대해 모두 평등하고, 깊은 마음이 청정하며, 부처님의 지혜에 의지하면, 이 불국토가 청정함을 볼 수 있습니다.”

於是佛以足指按地,即時三千大千世界,若干百千珍寶嚴飾,譬如寶莊嚴佛,無量
功德寶莊嚴土,一切大眾歎未曾有!而皆自見坐寶蓮華。
이리하여 부처님께서 발가락으로 땅을 누르시니, 즉시 3천대천세계가 백천 가지의 진귀한 보배로 장식된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마치 보장엄불의 한량없는 공덕의 보장엄불국토 같았다. 모든 대중들은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라고 찬탄하였다. 그리고 모두들 자신이 보배 연꽃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佛告舍利弗:「汝且觀是佛土嚴淨?」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지금 이 불국토가 장엄 청정함을 보는가?”

舍利弗言:「唯然,世尊!本所不見,本所不聞,今佛國土嚴淨悉現。」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예!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본래 본 적이 없고 본래 들은 적이 없는 일로서, 지금 불국토의 장엄 청정함이 모두 나타나 있습니다.”

佛語舍利弗:「我佛國土常淨若此,為欲度斯下劣人故,示是眾惡不淨土耳!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불국토는 항상 청정함이 이와 같건만, 이런 근기가 하열한 사람들을 제도하고자 하기 때문에, 이 온갖 악으로 가득 찬 청정하지 않은 땅을 보여 줄 뿐이다.

譬如諸天,共寶器食,隨其福德,飯色有異。
“비유하면 천인들이 한 보배그릇에서 함께 밥을 먹는다 해도 자신들의 복덕에 따라서 저마다 밥의 빛깔이 다른 것과 같으니라.”

如是,舍利弗!若人心淨,便見此土功德莊嚴。」
“이와 같다! 사리불이여! 만약 사람의 마음이 청정하면, 곧 이 땅이 공덕으로 장엄된 것임을 볼 수 있느니라.”

當佛現此國土嚴淨之時,寶積所將五百長者子皆得無生法忍,八萬四千人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부처님께서 이 국토의 장엄 청정함을 나타내셨을 때, 보적이 이끄는 5백 세가의 장자의 아들들은 모두 무생법인을 얻었고, 8만 4천 명의 사람들도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다.

佛攝神足,於是世界還復如故;求聲聞乘三萬二千天及人,知有為法皆悉無常,遠塵離垢,得法眼淨;八千比丘,不受諸法,漏盡意解。
부처님께서 신족통을 거두어들이시자 이 세계는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성문승을 구하는, 3만2천 명의 천인들과 사람들은 유위법이 모두 무상함을 알았고, 번뇌를 멀리 떠나고 법안이 청정해짐을 좀 얻었다. 또 8천 명의 비구들은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고 번뇌가 다하여 의식의 속박에서 해탈했다.





















《維摩詰〔所說〕-【宋】*所說經所說經》方便品第二







爾時毘耶離大城中有長者,名維摩詰,已曾供養無量諸佛,
그때에 비야리 큰 성에 장자가 있었는데, 이름이 유마힐이었다. 그는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님께 공양하였고

深植善本,得無生忍;辯才無礙,遊
戲神通,逮諸總持;
선근을 깊이 심어 뻗어가게 하였으며, 무생법인을 얻었고, 변재가 막힘없었으며, 신통에 유희 자재하였고, 온갖 총지를 이루었으며,

獲無所畏,降魔勞怨;入深法門,善於智度,通達方便,大願成就;
무소외를 얻었고 마군과 번뇌와 원망을 항복받았으며, 깊은 법문에 들어가서 반야바라밀을 잘 운용하였으며, 방편에 통달하고 위대한 서원을 성취하였으며,

明了眾生心之所趣,又能分別諸根利鈍,久於佛道,心已純淑,決定大乘;
중생들의 마음의 취향을 분명하게 알고, 또한 중생들의 근기가 예리한지 우둔한지를 능히 분별하였다. 오랫동안 불도에 마음이 이미 훌륭하게 익숙하였기에 결정코 대승의 길을 걸어갔으며,

諸有所作,能善思量;住佛威儀,心大如海,諸佛咨嗟!弟子、釋、梵、世主所敬。欲度人故,以善方便,居毘耶離;
모든 일을 함에는 잘 생각하고 헤아렸으며, 부처님의 위의에 머무르고 마음은 바다와 같이 커서 모든 부처님들이 찬탄하며, 제자들과 제석천, 범천과 세간 국왕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사람을 교화 제도하고자 훌륭한 방편으로 비야리에 살고 있었다.

資財無量,攝諸貧民;奉戒清淨,攝諸毀禁;以忍調行,攝諸恚怒;
그는 재부가 한량없어 수많은 빈민들을 섭수하여 교화하였으며, 계율을 깨끗하게 지킴으로써 계율을 범하는 중생들을 섭수하여 교화하였으며, 인욕의 조복행으로써 성내는 중생을 섭수하여 교화하였으며,

以大精進,攝諸懈怠;一心禪寂,攝諸亂意;以決定慧,攝諸無智;
큰 정진으로써 게으른 중생들을 섭수하여 교화하였으며, 선정의 적정에 마음을 전일함으로써 마음이 산란한 중생들을 섭수하여 교화하였으며, 반야지혜로써 지혜 없는 중생들을 섭수하여 교화하였다.

雖為白衣,奉持沙門清淨律行;雖處居家,不著三界;示有妻子,常修梵行;
비록 재가자이지만 사문의 청정한 계율행을 받들어 지켰으며, 비록 세속에 살지만 3계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처자가 있음을 보여주지만 항상 청정한 범행을 닦았으며,

現有眷屬,常樂遠離;雖服寶飾,而以相好嚴身;雖復飲食,而以禪悅為味;
권속이 있음을 나타내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기를 항상 좋아하였으며, 비록 보석 등으로 몸을 단장하지만 상호로써 몸을 장엄하였으며, 비록 음식을 먹기는 하지만 선정의 희열로써 맛을 삼았으며,

若至博奕戲處,輒以度人;受諸異道,不毀正信;雖明世典,常樂佛法;
만약 도박장이나 오락 장소에 이르면 그때마다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함이었으며, 외도의 가르침을 받는다 해도 올바른 믿음을 깨뜨리지 않았으며, 세간의 학문에 밝았지만 항상 불법을 좋아하였다.

一切見敬,為供養中最;執持正法,攝諸長幼;一切治生諧偶,雖獲俗利,不以喜悅;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그 존경은 공양 가운데 제일이었으며, 시종 바른 불법의 길을 걸어가면서 어른들과 아이들을 섭수하여 가르쳤으며, 생계를 도모하는 사업에 종사하면서는 어떤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면서 비록 세속의 이득을 얻을지라도 그것을 기뻐하지는 않았으며,

遊諸四衢,饒益眾生;入治政法,救護一切;入講論處,導以大乘;
여러 거리들을 노닐면서는 중생에게 이익 되는 일을 하였으며, 공직에 나아가서는 법을 바르게 하여 모든 사람들을 구제하고 보호하였으며, 학술을 강론하는 곳에 나아가서는 대승의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이끌었으며,

入諸學堂,誘開童蒙;入諸婬舍,示欲之過;入諸酒肆,能立其志;
학당에 나아가서는 철모르는 아이들을 순순히 깨우쳐주었으며, 유곽에 들어가서는 음욕의 허물을 가르쳐 보여주었으며, 술집에 들어가서는 능히 자신의 뜻을 세우고 있었다.


若在長者,長者中尊,為說勝法;若在居士,居士中尊,斷其貪著;
만약 장자의 무리 중에 있으면 장자들 중에서 존중받고 그들을 위하여 수승한 불법을 설하였으며, 만약 거사의 무리 중에 있으면 거사들 중에서 존중받고 그들의 탐욕과 집착을 끊게 하였으며,

若在剎利,剎利中尊,教以忍辱;若在婆羅門,婆羅門中尊,除其我慢;
만약 왕족의 무리 중에 있으면 왕족들 중에서 존중받고 인욕을 가르쳤으며, 만약 바라문의 무리 중에 있으면 바라문들 중에서 존중받고 그들의 아만을 없애게 하였으며,

若在大臣,大臣中尊,教以正法;若在王子,王子中尊,示以忠孝;
만약 대신의 무리 중에 있으면 대신들 중에서 존중받고 정법을 가르쳤으며, 만약 왕자의 무리 중에 있으면 왕자들 중에서 존중받고 충효를 가르쳤으며,

若在內官,內官中尊,化政宮女;若在庶民,庶民中尊,令興福力;
만약 내관의 무리 중에 있으면 내관들 중에서 존중받고 궁녀들을 교화하여 바르게 했으며, 만약 서민의 무리 중에 있으면 서민들 중에서 존중받고 그들에게 복덕의 힘을 일으키도록 해주었으며,

若在梵天,梵天中尊,誨以勝慧;若在帝釋,帝釋中尊,示現無常;
만약 범천의 무리 중에 있으면 범천들 중에서 존중받고 뛰어난 지혜를 깨우쳐 주었으며, 만약 제석천의 무리 중에 있으면 제석천들 중에서 존중받고 무상함을 알게 해 주었으며,

若在護世,護世中尊,護諸眾生。
만약 세상을 보호하는 4천왕의 무리 중에 있으면 4천왕들 중에서 존중받고 온갖 중생을 보호하였다.

長者維摩詰,以如是等無量方便饒益眾生。
장자 유마힐은 이와 같은 한량없는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여 불법의 이익을 얻게 하였다.

其以方便,現身有疾。
그는 방편으로써 몸에 병이 있음을 나타냈다.

以其疾故,國王大臣、長者居士、婆羅門等,及諸王子并餘官屬,無數千人,皆往問疾。
그 병 때문에 국왕, 대신, 장자, 거사, 바라문 등과 여러 왕자들 그리고 그 밖의 관리 등 무수한 사람들이 모두 가서 문병하였다.

其往者,維摩詰因以身疾,廣為說法:
그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유마힐은 몸의 병을 구실로 널리 설법하였다.

「諸仁者!是身無常、無強、無力、無堅、速朽之法,不可信也!
“여러분! 이 몸은 무상하고 강하지 못하고 무력하고 견고하지 못하고 빨리 썩어 가는 것이니, 믿어서는 안 됩니다.

為苦、為惱,眾病所集。諸仁者!如此身,明智者所不怙;
몸은 고통이요 번뇌요, 온갖 병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몸을 지혜가 밝은 사람은 믿고 의지하지 않습니다.

是身如聚沫,不可撮摩;是身如泡,不得久立;是身如炎,從渴愛生;
이 몸은 거품덩이와 같으니 집을 수도 만질 수도 없습니다. 이 몸은 물거품과 같으니 오래 지탱할 수 없습니다. 이 몸은 불꽃과 같으니 갈애로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是身如芭蕉,中無有堅;是身如幻,從顛倒起;是身如夢,為虛妄見;
이 몸은 파초와 같으니 그 속에 견고한 실체가 없습니다. 이 몸은 허깨비와 같으니 뒤바뀐 생각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이 몸은 꿈과 같으니 허망한 견해로 된 것입니다.

是身如影,從業緣現;是身如響,屬諸因緣;是身如浮雲,須臾變滅;
이 몸은 그림자와 같으니 업의 인연을 따라 나타난 것입니다. 이 몸은 메아리와 같으니 여러 가지 인연들에 속합니다. 이 몸은 뜬 구름과 같으니 잠깐 사이에 변하고 사라집니다.

是身如電,念念不住;是身無主,為如地;是身無我,為如火;
이 몸은 번개와 같으니 생각 생각마다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이 몸은 주인이 없으니 대지와 같습니다. 이 몸은 자아가 없으니 불과 같습니다.

是身無壽,為如風;是身無人,為如水;是身不實,四大為家;是身為空,離我我所;
이 몸은 수명이 없으니 바람과 같습니다. 이 몸은 사람이 없으니 물과 같습니다.
이 몸은 견실하지 않으니 4대를 집으로 삼습니다. 이 몸은 공한 것이니 나와 나의 것을 떠나 있습니다.

是身無知,如草木瓦礫;是身無作,風力所轉;是身不淨,穢惡充滿;
이 몸은 지각이 없는 것이니 풀과 나무와 기왓장과 조약돌과 같습니다. 이 몸은 동작할 줄 아는 것이 없으니 풍대의 힘으로 굴러갑니다. 이 몸은 깨끗하지 않으니 더러운 것이 가득 차 있습니다.

是身為虛偽,雖假以澡浴衣食,必歸磨滅;是身為災,百一病惱;
이 몸은 거짓인 것이니, 설사 씻고 옷을 입고 밥을 먹는다 해도 끝내는 반드시 닳아서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 몸은 재난이니 4대 한 대 마다 101 가지 병을 일으켜 시달리게 할 수 있습니다.

是身如丘井,為老所逼;是身無定,為要當死;
이 몸은 함정과 같으니 늙음에 쫓기고 있습니다. 이 몸은 죽을 날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언젠가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是身如毒蛇、如怨賊、如空聚,陰界諸入所共合成。
이 몸은 독사와 같고, 원수진 도적과 같고, 회오리바람과 같으며, 5음과 18계와 12처 등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諸仁者!此可患厭,當樂佛身。所以者何?佛身者即法身也;
여러분! 이 몸은 근심하고 싫어해야 할 것이요, 마땅히 부처의 몸을 추구하기를 즐겨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의 몸은 법신이기 때문입니다.

從無量功德智慧生,從戒、定、慧、解脫、解脫知見生,從慈、悲、喜、捨生,從布施、持戒、忍辱、柔和、勤行精進、禪定、解脫、三昧、多聞、智慧諸波羅蜜生,從方便生,從六通生,從三明生,從三十七道品生,從止觀生,從十力、四無所畏、十八不共法生,從斷一切不善法、集一切善法生,從真實生,從不放逸生;

법신은 한량없는 공덕과 지혜로부터 생깁니다. 계율, 선정, 지혜, 해탈, 해탈지견으로부터 생기며, 자무량심, 비무량심, 희무량심, 사무량심으로부터 생기며, 보시 지계 인욕 온유 근행정진 선정 해탈 삼매 다문 지혜 등 갖가지 바라밀로부터 생기며, 방편으로부터 생기며, 6신통으로부터 생기며, 3명으로부터 생기며, 37조도품으로부터 생기며, 지관으로부터 생기며, 10력 4무소외 18불공법으로부터 생기며, 온갖 불선법을 끊고 온갖 선법을 모으는 것으로부터 생기며, “진실로부터 생기며, 방일하지 않음으로부터 생깁니다.

從如是無量清淨法生如來身。
이와 같이 한량없는 청정한 법으로부터 여래의 몸은 생기는 것입니다.

諸仁者!欲得佛身、斷一切眾生病者,當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여러분! 부처의 몸을 얻어 모든 중생의 병을 끊고자 한다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如是長者維摩詰,為諸問疾者,如應說法,令無數千人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이와 같이 장자 유마힐은 문병하러 온 모든 이들을 위하여 근기에 알맞게 설법하여, 무수한 사람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게 하였다.






































《維摩詰所說經》弟子品第三







爾時長者維摩詰,自念:「寢疾于床,世尊大慈,寧不垂愍?」
그때에 장자 유마힐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내가 병으로 침상에 누워 있는데 대자대비하신 세존께서는 어찌하여 가엾게 여기시지 않으실까?

佛知其意,即告舍利弗:「汝行詣維摩詰問疾。」
부처님께서는 유마힐의 그런 생각을 아시고 곧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도록 하라.”

舍利弗白佛言:「世尊!我不堪任詣彼問疾。所以者何?憶念我昔,曾於林中宴坐樹下,
사리불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회상해 보니, 저는 예전에 숲 속 나무 밑에서 정좌하고 있었습니다.

時維摩詰來謂我言:『唯,舍利弗!不必是坐,為宴坐也。
그때에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여보세요! 사리불님! 반드시 이렇게 앉아 있어야 정좌인 것은 아닙니다.

夫宴坐者,不於三界現身意,是為宴坐;
정좌란 몸과 의식을 3계에 나타내지 않는 것이 정좌이며,

不起滅定而現諸威儀,是為宴坐;
멸진정에서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일상생활의 여러 위의를 나타내는 것이 정좌이며,

不捨道法而現凡夫事,是為宴坐;
무루도법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범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나타내는 것이 정좌이며,

心不住內亦不在外,是為宴坐;
마음이 안에도 머물지 않고 밖에도 머물지 않는 것이 정좌이며,

於諸見不動,而修行三十七品,是為宴坐;
62견에 대하여 동요하지 않으면서 37조도품을 닦는 것이 정좌이며,

不斷煩惱而入涅槃,是為宴坐。
번뇌를 끊지 않고서도 열반에 드는 것이 정좌입니다.


若能如是坐者,佛所印可。』
만약 이와 같이 앉을 수 있다면 부처님께서 인가하시는 바입니다.

時我,世尊!聞說是語,默然而止,不能加報!故我不任詣彼問疾。」
세존이시여! 그때에 저는 이러한 말을 듣고서 말문이 막혀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佛告大目犍連:「汝行詣維摩詰問疾。」
부처님께서는 대목건련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도록 하라.”

目連白佛言:「世尊!我不堪任詣彼問疾。所以者何?憶念我昔入毘耶離大城,於里巷中為諸居士說法。
대목건련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저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회상해 보니, 저도 비야리 큰 성으로 들어가 거리에서 많은 거사들을 위해 설법하고 있었습니다.

時維摩詰來謂我言:『唯,大目連!為白衣居士說法,不當如仁者所說。夫說法者,當如法說。
그때에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여보세요! 대목건련님! 재가거사를 위해서 하는 설법은 그대가 설한 바와 같아서는 안 됩니다. 설법이란 마땅히 진정한 불법대로(如法)설해야 합니다.

法無眾生,離眾生垢故;
진정한 불법에는 중생이 없으니 중생의 더러움을 떠났기 때문이며,

法無有我,離我垢故;法無壽命,離生死故;
진정한 불법에는 아(我)가 없으니 아라는 더러움을 떠났기 때문이며, 진정한 불법에는 수명이 없으니 태어남도 죽음도 떠났기 때문이며,

法無有人,前後際斷故;
진정한 불법에는 사람(人)이란 것이 없으니 앞 생각은 이미 지나갔고 뒷 생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아 끊어졌기 때문이며,

法常寂然,滅諸相故;法離於相,無所緣故;
진정한 불법은 영원히 적멸하니 모든 상이 소멸하였기 때문이며, 진정한 불법은 상을 떠나 있으니 반연할 대상(所緣)이 없기 때문이며,

法無名字,言語斷故;法無有說,離覺觀故;
진정한 불법은 이름이 없으니 언어로 표현할 길이 끊어졌기 때문이며, 진정한 불법은 언설이 없으니 분별하는 지각과 관념(覺觀)의 경계를 떠났기 때문이며,

法無形相,如虛空故;法無戲論,畢竟空故;
진정한 불법은 형상이 없으니 허공과 같기 때문이며, 진정한 불법은 희론이 없으니 필경에 공하기 때문이며,

法無我所,離我所故;法無分別,離諸識故;
진정한 불법은 나의 것(我所)이 없으니 나의 것을 떠났기 때문이며, 진정한 불법은 분별이 없으니 식을 떠났기 때문이며,

法無有比,無相待故;法不屬因,不在緣故;
진정한 불법은 서로 비교됨이 없으니 상대성이 없기 때문이며, 진정한 불법은 인연에 속한 것이 아니니 인연에 있지 않기 때문이며,

法同法性,入諸法故;法隨於如,無所隨故;
진정한 불법은 법성과 같으니 온갖 세간법에 들어가기 때문이며, 진정한 불법은 여여함을 따르니 따름이 없기 때문이며,

法住實際,諸邊不動故;法無動搖,不依六塵故;
진정한 불법은 실제에 머무르니 양변에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며, 진정한 불법은 동요함이 없으니 6진 경계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며,

法無去來,常不住故;法順空,隨無相,應無作;
진정한 불법은 가고 옴이 없으니 항상 머물지 않기 때문이며, 진정한 불법은 공을 따르고 무상을 따르고 무작에 상응하기 때문입니다.

法離好醜,法無增損,法無生滅,法無所歸;
진정한 불법은 아름다움도 추함도 떠났으며, 진정한 불법은 늘어남도 줄어듦도 없으며, 진정한 불법은 생겨남도 소멸함도 없으며, 진정한 불법은 귀납할 것이 없습니다.

法過眼耳鼻舌身心;法無高下,法常住不動,法離一切觀行。
진정한 불법은 안. 이. 비. 설. 신. 의 6근을 넘어섰으며, 진정한 불법은 높음도 낮음도 없으며, 진정한 불법은 영원히 존재하면서 움직이지 않으며, 진정한 불법은 온갖 관행을 떠났습니다.

唯,大目連!法相如是,豈可說乎?夫說法者,無說無示;其聽法者,無聞無得。
여보세요! 대목건련님! 불법의 진상(法相)이 이와 같은데 어찌 설할 수 있겠습니까? 무릇 진정한 불법을 설함이란 설할 것도 없고 가리켜 보일 것도 없으며, 그 진정한 불법을 들음이란 들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습니다.

譬如幻士,為幻人說法。當建是意,而為說法。當了眾生根有利鈍,善於知見無所罣礙,
비유하면 마치 마술사가 마술로써 만들어낸 사람을 위하여 설법함과 같습니다. 응당 이러한 관념을 세우고 설법해야 합니다. 마땅히 중생의 근기에는 예리함과 우둔함이 있음을 알아야 하며, 지견을 잘 알아서 걸림이 없어야 합니다.

以大悲心讚于大乘,念報佛恩不斷三寶,然後說法。』
대비심으로 대승을 찬탄하며,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할 것을 생각하고 3보가 끊어지지 않도록 한 다음에 설법해야 합니다.’

維摩詰說是法時,八百居士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我無此辯,是故不任詣彼問疾。」
유마힐이 이와 같이 설법하였을 때, 8백 명의 거사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런 변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佛告大迦葉:「汝行詣維摩詰問疾。」
迦葉白佛言:「世尊!我不堪任詣彼問疾。
부처님께서는 대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도록 하라.”
대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所以者何?憶念我昔,於貧里而行乞,
왜냐하면 회상해 보니, 저는 옛날 가난한 마을에서 걸식하고 있었습니다.

時維摩詰來謂我言:『唯,大迦葉!有慈悲心而不能普捨豪富,從貧乞。
그때에 유마힐이 저에게 다가와 말하였습니다. ‘여보세요! 대가섭님! 자비심이 있으면서도 두루 평등하게 베풀지 못하고, 부잣집은 내버려두고 가난한 집만 다니면서 걸식하다니요,

迦葉!住平等法,應次行乞食;
대가섭님! 평등한 법에 머물러 마땅히 차례차례 걸식해야 합니다.

為不食故,應行乞食;為壞和合相故,應取揣食;為不受故,應受彼食;
음식남녀의 욕구를 끊기 위하여 마땅히 걸식해야 하며, 화합상을 깨뜨리기 위하여 마땅히 주먹밥(揣食)을 먹어야 하며, 받는 나도 없기 때문에 마땅히 그 음식을 받아야 합니다.

以空聚想,入於聚落;所見色與盲等,所聞聲與響等,所嗅香與風等,所食味不分別,
공관으로써 마을에 들어가야 합니다. 색상(色)을 보더라도 장님이나 다름없어야 하며, 소리를 듣더라도 메아리나 다름없이 여겨야 하며, 냄새를 맡더라도 바람이나 다름없이 여겨야 하며, 먹더라도 분별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며,

受諸觸如智證,
온갖 접촉을 감수하더라도 지혜를 증득하듯이 해야 합니다.

知諸法如幻相;無自性,無他性;本自不然,今則無滅。
온갖 법은 환상과 같음을 알지니, 자성도 없고, 타성도 없어서, 본래 그 자체가 진정으로 생겨나지도 않으며 지금 소멸함도 없습니다.

迦葉!若能不捨八邪、入八解脫,以邪相入正法;以一食施一切,供養諸佛,及眾賢聖,然後可食;
대가섭님! 능히 8사도를 버리지 않고서도 8해탈에 들어가고 삿된 모습으로도 정법에 들어가며, 한 끼의 밥으로도 온갖 중생에게 베풀며 모든 부처님들과 성현들에게 공양한 다음에야 먹을 수 있습니다.

如是食者,非有煩惱,非離煩惱;非入定意,非起定意;
이와 같이 먹는 사람은 번뇌가 있음도 아니고 번뇌를 떠났음도 아니며, 선정의 삼매에 들어감도 아니고 선정에서 나옴도 아니며,

非住世間,非住涅槃。
세간에 머무름도 아니고 열반에 머무름도 아닙니다.

其有施者,無大福,無小福;不為益,不為損,是為正入佛道,不依聲聞。迦葉!若如是食,為不空食人之施也。』
보시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큰 복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없고 작은 복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없으며, 보시를 받는 자신에 대해서는 이익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고 손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으니, 이렇게 함이 바르게 불도에 들어가는 것이며 성문의 도에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가섭님! 이와 같이 먹는다면 남의 보시를 헛되이 먹지 않는 것입니다.

時我,世尊!聞說是語,得未曾有,即於一切菩薩,深起敬心,復作是念:『斯有家名,辯才智慧乃能如是!其誰聞此不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我從是來,不復勸人以聲聞、辟支佛行。是故不任詣彼問疾。」
그때에 저는,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설하는 말을 듣고서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교설이라 생각하고는 모든 보살들에 대해서 깊이 공경하는 마음이 일어났으며, 또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재가에 있으면서 변재와 지혜가 이럴 수가 있는데, 그 누가 이를 듣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지 않겠는가.’ 저는 이때부터 다시는 성문, 벽지불의 수행을 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佛告須菩提:「汝行詣維摩詰問疾。」須菩提白佛言:「世尊!我不堪任詣彼問疾。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도록 하라.” 수보리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所以者何?憶念我昔,入其舍,從乞食,時維摩詰取我鉢,盛滿飯,謂我言:『唯,須菩提!若能於食等者,諸法亦等,諸法等者,於食亦等;如是行乞,乃可取食。
왜냐 하면 회상해 보니, 저는 옛날 그의 집에 들어가 걸식하였습니다. 그때에 유마힐은 저의 발우에 밥을 가득 채우고는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여보세요! 수보리님! 만약 음식에 평등할 수가 있으면 온갖 법에도 평등할 수 있습니다. 온갖 법에 평등할 수 있으면 음식에도 평등합니다. 이와 같이 걸식한다면 음식을 취해도 됩니다.

若須菩提不斷婬怒癡,亦不與俱;不壞於身,而隨一相;不滅癡愛,起於明脫;以五逆相而得解脫,亦不解不縛;不見四諦,非不見諦;非得果,非不得果;非凡夫,非離凡夫法;非聖人,非不聖人;雖成就一切法,而離諸法相,乃可取食。
수보리님! 만약 음욕(婬)과 성냄(怒)과 어리석음(癡)을 끊어버리지도 않고 그것들과 함께 하지도 아니하며, 신견을 깨뜨려 없애지 않고서도 한 모습(一相)을 따를 수 있으며, 어리석음과 탐욕을 없애 버리지 않고서도 지혜와 해탈을 일으키며, 5역죄를 범하는 모습으로 해탈을 얻고서도 해탈한 것도 아니요 결박된 것도 아니며, 4성제를 보는 것도 아니고 4성제를 보지 않는 것도 아니며, 과위를 증득한 것도 아니고 과위를 증득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범부가 아니면서도 범부의 법을 떠난 것도 아니며, 성인이 아니면서도 성인 아닌 것도 아니며, 비록 온갖 법(一切法)을 성취했으면서도 온갖 법의 상에서 떠났다면, 비로소 음식을 취해도 됩니다.

若須菩提不見佛,不聞法,彼外道六師:富蘭那迦葉、末伽梨拘賒梨子、刪闍夜毘羅胝子、阿耆多翅舍欽婆羅、迦羅鳩馱迦旃延、尼犍陀若提子等,是汝之師。因其出家,彼師所墮,汝亦隨墮,乃可取食。
수보리님! 만약 부처도 집착해서 보지 않고 가르침도 집착해서 듣지 않으며, 저 6사외도인 부란나가섭, 말가리구사리자, 산자야비라지자, 아기다시사흠바라, 가타구타가전연, 니건타야제자 등을 그대의 스승으로 삼아 그들을 따라서 출가하고 그 스승이 타락하는 바에 그대도 따라서 타락한다면, 비로소 음식을 취해도 됩니다.

若須菩提入諸邪見,不到彼岸;住於八難,不得無難;同於煩惱,離清淨法;汝得無諍三昧,一切眾生亦得是定;其施汝者,不名福田;供養汝者,墮三惡道;為與眾魔共一
手作諸勞侶,汝與眾魔,及諸塵勞,等無有異;於一切眾生而有怨心,謗諸佛、毀於法,不入眾數,終不得滅度。汝若如是,乃可取食。』
수보리님! 만약 온갖 사견 속에 들어가면서도 저 언덕에 이르지 않으며, 8난의 경계에 머물면서도 장애가 없는 경계를 얻으려 하지 않으며, 번뇌에 처해 있으면서도 청정한 법도 떠나며, 그대가 무쟁삼매를 얻을 경우 모든 중생도 역시 그러한 삼매를 얻으며, 그대에게 보시하는 자에게 그대가 복전이 될 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대에게 공양을 올리는 자가 3악도에 떨어지기도 하며, 많은 악마와 더불어 손을 잡아 온갖 번뇌(勞)의 벗이 되며, 그대가 온갖 마군과 모든 번뇌(塵勞)와 똑같이 하나가 되며, 모든 중생에게 원한을 품으며, 모든 부처를 비방하고 정법(法)을 훼손하고 승가(眾數)에 동참하지 않고 마침내 열반(滅度)을 얻지 않는다면, 그대가 비로소 음식을 취해도 됩니다.’

時我,世尊!聞此語茫然,不識是何言?不知以何答?便置鉢欲出其舍。維摩詰言:『唯,須菩提!取鉢勿懼。
그때에 저는, 세존이시여! 이 말을 듣고 망연자실하여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곧 발우를 내려놓고 그 집을 나오려 했습니다. 그러자 유마힐이 말하였습니다. ‘여보세요! 수보리님! 두려워하지 말고 발우를 드십시오.

於意云何?如來所作化人,若以是事詰,寧有懼不?』我言:『不也!』維摩詰言:『一切諸法,如幻化相,汝今不應有所懼也。所以者何?一切言說不離是相;至於智者,不著文字,故無所懼。何以故?文字性離,無有文字,是則解脫;解脫相者,則諸法也。』維摩詰說是法時,二百天子得法眼淨,故我不任詣彼問疾。」
그대 생각은 어떠합니까? 여래께서 만드신 화신의 사람(化人)을 만약 내가 이러한 일로 나무란다면 그가 설마 두려워할까요?’ 저는 말하였습니다. ‘아닙니다.’ 유마힐이 말하였습니다. ‘온갖 모든 법(一切諸法)은 마술로 변화시켜낸 헛된 모습(幻化相)과 같으니, 그대는 지금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언어문자(言說)도 그런 헛된 모습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에 이르러서는 언어문자의 모습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언어문자도 본성이 그런 헛된 모습을 멀리 떠나서 언어문자의 모습에 대한 집착이 없음이 곧 해탈이요, 해탈의 모습이 곧 온갖 모든 법이기 때문입니다.’ 유마힐이 이러한 법을 설하였을 때, 2백 명의 천인들은 법안정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佛告富樓那彌多羅尼子:「汝行詣維摩詰問疾。」
부처님께서는 부루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도록 하라.”

富樓那白佛言:「世尊!我不堪任詣彼問疾。所以者何?憶念我昔於大林中,在一樹下為諸新學比丘說法。
부루나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회상해 보니, 저는 예전에 커다란 숲 속의 한 나무 아래에서 초학 비구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었습니다.

時維摩詰來謂我言:『唯,富樓那!先當入定,觀此人心,然後說法。無以穢食置於寶器,
그때에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여보세요! 부루나님! 마땅히 먼저 선정에 들어가 이 사람들의 심리를 살핀 다음에 설법해야 합니다. 더러운 음식을 보배 그릇에 담지 마십시오.

當知是比丘心之所念,無以琉璃同彼水精。汝不能知眾生根源,無得發起以小乘法。彼自無瘡,勿傷之也;
마땅히 이들 초학 비구들이 마음속에서 생각하는 바를 이해해야 합니다. 귀한 유리를 보통의 수정과 같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그대는 중생의 근기(根源)도 알지 못하고, 소승법으로 가르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 자신들은 부스럼이 없는데 상처를 내지 마십시오.

欲行大道,莫示小徑;無以大海,內於牛跡;無以日光,等彼螢火。
큰 길을 가려고 하는 이들에게 작은 길을 가리켜 보여 주지 마십시오. 큰 바닷물을 소 발자국에 넣을 수 없으며, 햇빛을 저 반딧불과 동등하게 여길 수 없습니다.

富樓那!此比丘久發大乘心,中忘此意,如何以小乘法而教導之?我觀小乘智慧微淺,猶如盲人,不能分別一切眾生根之利鈍。』
부루나님! 이들 초학 비구들은 대승의 마음을 일으킨 지 오래지만, 보살도를 행하여오는 도중에 보리심의 발원을 잊은 것인데, 어떻게 소승의 가르침으로 이들을 가르쳐 이끌고자 합니까? 제가 보기에는 소승은 지혜가 미천함이 마치 장님과 같아 모든 중생의 근성의 예리함과 우둔함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時維摩詰即入三昧,令此比丘自識宿命,曾於五百佛所植眾德本,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即時豁然,還得本心。
그때에 유마힐은 곧 삼매에 들어가 신통력으로 이 초학 비구들로 하여금 스스로 과거생(宿命)을 알게 하였습니다. 이에 초학 비구들은 일찍이 5백 분의 부처님께 온갖 선근 공덕을 심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회향하였음을 즉시에 활짝 깨닫고는 본래의 마음으로 되돌아왔습니다.

於是諸比丘稽首禮維摩詰足。時維摩詰因為說法,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復退轉。我念聲聞不觀人根,不應說法,是故不任詣彼問疾。」
그리하여 초학 비구들은 유마힐의 발에 정례하였습니다. 그때에 유마힐이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에서 다시는 물러서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저는 생각하기를, ‘성문은 사람들의 근기를 살피지 않고 설법해서는 안 된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佛告摩訶迦旃延:「汝行詣維摩詰問疾。」
부처님께서는 마하가전연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도록 하라.”

迦旃延白佛言:「世尊!我不堪任詣彼問疾。
가전연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所以者何?憶念昔者,佛為諸比丘略說法要,我即於後,敷演其義,謂無常義、苦義、空義、無我義、寂滅義。時維摩詰來謂我言:『唯,迦旃延!無以生滅心行,說實相法。
왜냐하면 회상해 보니, 예전에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을 위하여 간략히 불법의 요점을 설하셨을 때, 저는 곧 이어서 나름대로 그 의미를 풀이하여 ‘무상의 의미, 괴로움(苦)의 의미, 공의 의미, 무아의 의미, 적멸의 의미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여보세요! 가전연님! 생멸하는 심리로써 실상법을 설하여서는 안됩니다.

迦旃延!諸法畢竟不生不滅,是無常義;
가전연님! 온갖 법은 결코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 것, 이것이 무상의 의미입니다.

五受陰,洞達空無所起,是苦義;
5온은 공하여 일어난 일이 없음을 철저하게 이해하는 것, 이것이 괴로움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諸法究竟無所有,是空義;
온갖 법은 궁극에 있는 일이 없는 것, 이것이 공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於我、無我而不二,是無我義;
아와 무아에 있어서 둘이 아닌(不二) 것, 이것이 무아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法本不然,今則無滅,是寂滅義。』
온갖 법은 본래 생겨나지 않으니 지금도 소멸함이 없는 것, 이것이 적멸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說是法時,彼諸比丘心得解脫。故我不任詣彼問疾。」
이러한 설법을 하였을 때에, 저 여러 비구들은 마음에서 해탈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佛告阿那律:「汝行詣維摩詰問疾。」
부처님께서는 아나율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도록 하라.”

阿那律白佛言:「世尊!我不堪任詣彼問疾。所以者何?憶念我昔於一處經行,
아나율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회상해 보니, 예전에 제가 어느 곳을 경행하고 있었습니다.

時有梵王,名曰嚴淨,與萬梵俱,放淨光明,來詣我所,稽首作禮問我言:『幾何阿那律天眼所見?』我即答言:『仁者!吾見此釋迦牟尼佛土三千大千世界,如觀掌中菴摩勒果。』
그때에 엄정이라는 범왕이 1만 명의 범천인들과 함께 밝은 빛을 내면서 제가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그들은 저의 발에 정례하고는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나율의 천안은 어느 정도까지 볼 수 있습니까?’ 저는 곧 대답했습니다. ‘그대여! 저는 이 석가모니부처님의 불국토인 3천대천세계를 마치 손바닥에 있는 암마륵의 열매를 보듯이 봅니다.’

時維摩詰來謂我言:『唯,阿那律!天眼所見,為作相耶?無作相耶?假使作相,則與外道五通等;若無作相,即是無為,不應有見。』
그때에 유마힐이 저에게로 와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보세요! 아나율님! 천안으로 보는 바는 상을 지음이 있습니까? 상을 지음이 없습니까? 만약 상을 짓는다면, 외도들의 5신통과 같습니다. 만약 상을 지음이 없다면, 곧 무위이니 응당 보는 바가 있지 않아야 합니다.’

世尊!我時默然。彼諸梵聞其言,得未曾有!即為作禮而問曰:『世孰有真天眼者?』維摩詰言:『有佛、世尊,得真天眼,常在三昧,悉見諸佛國,不以二相。』 於是嚴淨梵王及其眷屬五百梵天,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禮維摩詰足已,忽然不現!故我不任詣彼問疾。」
세존이시여! 저는 그때에 말문이 막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범천들은 이 말을 듣고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말이라 하고 유마힐에게 예배하고는 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진정한 천안을 가지고 있습니까?’ 유마힐은 대답하였습니다. ‘부처님이신 세존만이 진정한 천안을 얻었습니다. 항상 삼매에 계시면서 모든 부처의 나라를 보시되, 이 두 가지 상(二相)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엄정 범왕과 그의 권속 5백 명의 범천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고 유마힐의 발에 정례한 다음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佛告優波離:「汝行詣維摩詰問疾。」
부처님께서는 다시 우바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도록 하라.”

優波離白佛言:「世尊!我不堪任詣彼問疾。
우바리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所以者何?憶念昔者,有二比丘犯律行,以為恥,不敢問佛,來問我言:『唯,優波離!我等犯律,誠以為恥,不敢問佛,願解疑悔,得免斯咎!』我即為其如法解說。
왜냐하면 회상해 보니, 예전에 두 사람의 비구가 계율을 범하고 부끄럽게 여기면서도 감히 부처님께 여쭙지도 못하고 저에게 와서 말하였습니다. ‘여보십시오! 우바리님! 저희들은 계율을 범하였습니다. 진심으로 부끄럽게 여기고 감히 부처님께 나아가 여쭙지 못하오니, 저희들의 의심과 뉘우침을 풀어 주셔서 이 허물을 면하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곧 그들에게 불법의 도리대로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時維摩詰來謂我言:『唯,優波離!無重增此二比丘罪!當直除滅,勿擾其心。
그때에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여보세요! 우바리님! 이 두 비구의 죄를 가중시키지 마십이오. 마땅히 곧은 마음으로써 죄를 없애야 합니다. 그 두 사람의 마음을 혼란시키지 마십시오.

所以者何?彼罪性不在內、不在外、不在中間,如佛所說,心垢故眾生垢,心淨故眾生淨。心亦不在內、不在外、不在中間,如其心然,罪垢亦然,諸法亦然,不出於如如
왜냐하면 저 죄의 본성은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으며, 또 중간에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과 같이 마음이 더러우므로 중생도 더럽고, 마음이 청정하므로 중생도 청정합니다.
또 이 마음은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으며, 그 중간에도 있지 않습니다. 마음이 그러하듯이 죄도 또한 그와 같고, 온갖 법도 그와 같아서 여여함(如如)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優波離,以心相得解脫時,寧有垢不?』我言:『不也!』維摩詰言:『一切眾生心相無垢,亦復如是。
우바리님! 마음의 본래 모습(心相)으로 해탈을 얻었을 때에도 설마 마음에 더러움이 있을까요? 저는 대답하였습니다. ‘없습니다.’ 그러자 유마힐은 말하였습니다. ‘온갖 중생의 마음의 본래의 모습에 더러움이 없음도 이와 같습니다.

唯,優波離!妄想是垢,無妄想是淨;顛倒是垢,無顛倒是淨;取我是垢,不取我是淨。
여보세요! 우바리님! 망상이 더러움(垢)이요, 망상 없음이 청정함입니다. 전도된 생각(顛倒)이 더러움이요, 전도된 생각 없음이 청정함입니다. 아상을 취함이 더러움이요, 아상을 취하지 않음이 청정함입니다.

優波離!一切法生滅不住,如幻如電,諸法不相待,乃至一念不住;諸法皆妄見,如夢、如炎、如水中月、如鏡中像,以妄想生。其知此者,是名奉律;其知此者,是名善解。』
우바리님! 온갖 법이 생멸하면서 머무르지 않음은 마치 허깨비나 번갯불과 같으며, 온갖 법은 상대적이 아니며, 심지어 한 생각 사이에도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온갖 법은 모두 망견으로 있음이 마치 꿈과 같고 아지랑이 같고 물속에 비친 달과 같고 거울 속에 비친 영상과 같아서, 망상으로부터 생겨납니다. 이와 같은 도리를 아는 사람이야말로 잘 이해한 사람이라고 이름 합니다.

於是二比丘言:『上智哉!是優波離所不能及,持律之上而不能說。』我即答言:『自捨如來,未有聲聞及菩薩,能制其樂說之辯,其智慧明達,為若此也!』時二比丘疑悔即除,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作是願言:『令一切眾生皆得是辯。』故我不任詣彼問疾。」
그때에 두 사람의 비구가 말하였습니다. ‘참으로 높은 지혜를 가진 분이군요! 이는 우바리님이 감히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계율을 잘 지킨다 해도 이렇게 설하지는 못합니다.’ 저도 대답하였습니다. ‘여래를 제외하고는 어떤 성문이나 보살도 이 유마힐의 막힘없는 변재를 따를 자가 없습니다. 그 지혜가 밝고 통달함이 이와 같습니다.’ 그때에 두 사람의 비구는 의심과 죄책감에서 벗어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다고 발원하고, 온갖 중생이 모두 이러한 변재를 얻을 수 있게 하겠다는 서원을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를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佛告羅睺羅:「汝行詣維摩詰問疾。」
부처님께서는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도록 하라.”

羅睺羅白佛言:「世尊!我不堪任詣彼問疾。
라후라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所以者何?憶念昔時,毘耶離諸長者子來詣我所,稽首作禮,問我言:『唯,羅睺羅!汝佛之子,捨轉輪王位,出家為道。其出家者,有何等利?』我即如法為說出家功德之利。
왜냐하면 회상해 보니, 예전에 비야리성의 여러 장자의 아들들이 제가 있는 곳에 와서 저의 발에 정례하고는 저에게 물었습니다.
‘여보세요! 라후라님! 당신은 부처님의 아들로서 전륜왕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배우시는데, 출가에는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불법의 도리대로 출가의 공덕과 이익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時維摩詰來謂我言:『唯,羅睺羅!不應說出家功德之利。所以者何?無利無功德,是為出家;有為法者,可說有利有功德。夫出家者,為無為法,無為法中,無利無功德。
그때에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여보세요! 라후라님! 출가의 공덕이나 이익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익이나 공덕이라는 관념이 없음이 진정한 출가이기 때문입니다. 유위법이라면 이익이나 공덕이 있다 할 수 있겠지만, 출가란 무위법으로서, 무위법에는 이익이나 공덕이라는 관념이 없습니다.

羅睺羅!出家者,無彼無此,亦無中間;
라후라님! 출가란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으며, 그 중간도 없습니다.

離六十二見,處於涅槃;
62견을 멀리 떠났으며, 열반에 처하는 것이니,

智者所受,聖所行處;
이것은 지혜로운 이가 누리는 것이며, 성인이 행하는 경지이며,

降伏眾魔,度五道,淨五眼,得五力,立五根;
온갖 마군의 괴롭힘을 항복시켰으며, 5도를 뛰어넘어 다시는 윤회하지 않고, 5안을 청정하게 하였고, 5력을 얻었으며, 5근을 바르게 세웠습니다,

不惱於彼,離眾雜惡;摧諸外道,超越假名;
남을 괴롭히지 않고 온갖 잡다한 악을 떠났으며,
온갖 외도들을 꺾었으며, 가명의 속박을 초월하였으며,

出淤泥,無繫著;無我所,無所受;無擾亂,內懷喜;
진흙수렁을 벗어났고 속박을 벗어났으며, 나의 것이라는 집착이 없고, 감수도 없습니다. 어지러움이 없고 안으로는 늘 희열을 간직하고서,

護彼意,隨禪定,離眾過。
자신의 의념을 보호하며, 선정 경계에 따라 머무르며, 온갖 잘못을 떠나 버립니다.

若能如是,是真出家。』
만약 이상과 같이 할 수 있다면, 이것이 진정한 출가입니다.’

於是維摩詰語諸長者子:『汝等於正法中,宜共出家。所以者何?佛世難值!』
이때에 유마힐은 장자의 아들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들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계시는 정법 가운데에서 함께 출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는 기회를 만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諸長者子言:『居士!我聞佛言,父母不聽,不得出家。』
장자의 아들들은 말하였습니다. ‘거사님! 저희들이 듣기에는 부모님의 허락이 없으면 출가할 수 없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만....’

維摩詰言:『然!汝等便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是即出家,是即具足。』
그러자 유마힐이 말하였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그대들이 지금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다면, 이것이 곧 진정한 출가이며, 구족계를 받은 것이 됩니다.

爾時三十二長者子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故我不任詣彼問疾。」
그때에 32 명의 장자의 아들들은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佛告阿難:「汝行詣維摩詰問疾。」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도록 하라.”

阿難白佛言:「世尊!我不堪任詣彼問疾。所以者何?憶念昔時,世尊身小有疾,當用牛乳,我即持鉢,詣大婆羅門家門下立。時維摩詰來謂我言:『唯,阿難!何為晨朝,持鉢住此?』我言:『居士!世尊身小有疾,當用牛乳,故來至此。』
아난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회상해 보니, 예전에 세존께서 몸에 좀 병이 나셔서 우유를 자시고자 하셨기에, 저는 곧 발우를 들고 큰 바라문의 집 문 앞에 가서 서 있었습니다. 그때에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여보세요! 아난님! 무슨 일로 이렇게 이른 아침에 발우를 들고 여기에 있습니까?’ 저는 대답하였습니다. ‘거사님! 세존께서 몸에 좀 병이 나셔서 우유를 자시고자 하시기에 이곳에 이르렀습니다.

維摩詰言:『止,止!阿難!莫作是語!如來身者,金剛之體,諸惡已斷,眾善普會,當有何疾?當有何惱?默往,阿難!勿謗如來,莫使異人聞此麁言;無令大威德諸天,及他方淨土諸來菩薩得聞斯語。
유마힐은 말하였습니다. ‘그만! 그만! 아난님! 그런 말을 하지 마세요. 여래의 몸이란 금강석처럼 무너지지 않는 몸으로, 모든 악업을 이미 끊었고 온갖 선행공덕을 두루 모았는데, 무슨 병이 있을 수 있겠으며 무슨 괴로움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잠자코 돌아가십시오! 아난님! 그대는 부처님의 시자로서 부처님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외도들이 이런 저속한 말을 듣게 하지 마십시오. 또 큰 위덕을 갖춘 여러 천인들과 타방 불국토에서 온 보살들이 이런 말을 듣게 하지 마십시오.

阿難!轉輪聖王,以少福故,尚得無病,豈況如來無量福會普勝者哉!
아난님! 전륜성왕은 약간의 복덕으로도 오히려 병에 걸리지 않는데, 하물며 여래는 무량겁 동안 한량없는 복덕을 닦아 모아 두루 광대하면서도 가장 뛰어난 분인데 어찌 병이 있겠습니까?

行矣,阿難!勿使我等受斯恥也。外道、梵志,若聞此語,當作是念:「何名為師?自疾不能救,而能救諸疾?」仁可密速去,勿使人聞。
돌아가십시오! 아난님! 우리들이 이 치욕을 당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만약 외도인 바라문(梵志)이 이 말을 들었다면 응당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어떻게 스승이라고 하는 거야? 자신의 병도 고칠 수 없는 주제에 어떻게 병든 남들을 고칠 수 있다는 거야?’ 그대는 은밀히 빨리 가십시오, 남이 듣게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當知,阿難!諸如來身,即是法身,非思欲身。佛為世尊,過於三界;佛身無漏,諸漏已盡;佛身無為,不墮諸數。如此之身,當有何疾?當有何惱?』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아난님! 모든 여래의 몸은 법신이지 망상과 욕념으로 이루어진 더러운 몸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으로 3계의 생사윤회를 벗어 나셨습니다. 부처님의 몸에는 번뇌가 없고 어떠한 번뇌도 이미 끊어져 다했습니다. 부처님의 몸은 무위이니, 온갖 수량적 범위(諸數)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여래의 몸에 무슨 병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時我,世尊!實懷慚愧,得無近佛而謬聽耶!即聞空中聲曰:『阿難!如居士言。
但為佛出五濁惡世,現行斯法,度脫眾生。行矣,阿難!取乳勿慚。』
그때에 저는, 세존이시여! 진실로 부끄러움을 품으면서, 부처님 몸에 병이 있다고 생각하다니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면서도 잘못 알아들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했습니다. 그러자 공중에서 이런 말이 들렸습니다. ‘아난이여! 거사의 말과 같습니다. 부처님이 5탁악세에 출현하셔서 이런 법을 나타내 보이심은 중생을 해탈하게 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가십시오! 아난이여! 부끄러워하지 말고 우유를 탁발하십시오.’

世尊!維摩詰智慧辯才,為若此也。是故不任詣彼問疾。」
세존이시여! 유마힐의 지혜와 변재는 이와 같이 뛰어납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가서 문병 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如是五百大弟子各各向佛說其本緣,稱述維摩詰所言,皆曰:「不任詣彼問疾!」
이와 같이 5백 명의 대제자들은 각각 부처님에게 자신이 예전에 유마힐거사를 만났던 일을 말하고, 유마힐이 했던 말을 칭찬하고는 모두 말하였다. “저희들은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維摩詰所說經》菩薩品第四




於是佛告彌勒菩薩:「汝行詣維摩詰問疾。」
그때에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도록 하라.”

彌勒白佛言:「世尊!我不堪任詣彼問疾。所以者何?憶念我昔為兜率天王及其眷屬,說不退轉地之行。
미륵보살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회상해 보니, 예전에 제가 도솔천왕과 그 권속들을 위하여 불퇴전 지위에 도달하는 수행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時維摩詰來謂我言:『彌勒!世尊授仁者記,一生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為用何生,得受記乎?過去耶?未來耶?現在耶?若過去生,過去生已滅;若未來生,未來生未至;若現在生,現在生無住。
그때에 유마힐이 저에게 와서 말하였습니다. ‘미륵님! 세존께서는 그대에게 수기 주시기를 한 생에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는데, 어느 생으로써 수기를 받으렵니까? 과거의 생입니까, 미래의 생입니까, 현재의 생입니까? 만약 과거의 생이라고 한다면 그 과거의 생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만약 미래의 생이라고 한다면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만약 현재의 생이라고 한다면 현재의 생은 머무름이 없습니다.

如佛所說:「比丘!汝今即時,亦生亦老亦滅。」若以無生得受記者,無生即是正位,於正位中,亦無受記,亦無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것은 부처님께서 ‘비구여! 그대는 지금 이 시간에도 찰나찰나 태어나고 늙어가고 죽어가고 있다’ 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만약 무생으로써 수기를 받은 것이라면, 무생은 곧 정위이므로 이 정위에서는 수기를 받음도 없으며,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도 없습니다.

云何彌勒受一生記乎?
도대체 어떻게 미륵님은 한 생에 수기를 받는 것입니까?

為從如生得受記耶?為從如滅得受記耶?
여여한 법성(如如)이 생겨남으로부터 수기를 받는 것입니까, 아니면 여여한 법성이 소멸함으로부터 수기를 받는 것입니까?

若以如生得受記者,如無有生;
만약 여여한 법성이 생겨남으로써 수기를 받는다면, 여여한 법성은 생겨남이 없습니다.

若以如滅得受記者,如無有滅。
만약 여여한 법성이 소멸함으로써 수기를 받는다면, 여여한 법성은 소멸함이 없습니다.

一切眾生皆如也,一切法亦如也,眾聖賢亦如也,至於彌勒亦如也。
온갖 중생이 다 여여하고, 온갖 법도 여여하며, 모든 성현들도 여여하며, 미륵님까지도 마찬가지로 여여합니다.

若彌勒得受記者,一切眾生亦應受記。
그러므로 만약 미륵님이 수기를 받았다고 하면, 온갖 중생도 응당 수기를 받은 것이 됩니다.

所以者何?夫如者不二不異,
왜냐하면 여여한 법성은 둘이 아니고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若彌勒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一切眾生皆亦應得。
만약 미륵님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면, 온갖 중생도 응당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다.

所以者何?一切眾生即菩提相。
왜냐하면 온갖 중생이 보리상이기 때문입니다.

若彌勒得滅度者,一切眾生亦應滅度。
만약 미륵님이 열반을 얻는다면, 온갖 중생도 마땅히 열반을 얻습니다.

所以者何?諸佛知一切眾生畢竟寂滅,即涅槃相,不復更滅。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온갖 중생이 궁극에는 적멸하여 그대로 열반상이므로, 다시 하나의 적멸을 얻는 것이 아님을 철저히 알기 때문입니다.

是故,彌勒!無以此法誘諸天子,實無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亦無退者。
그러므로 미륵님! 이런 수행법으로써 천인들을 유혹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킴도 없고, 보리심에서 물러남도 없습니다.

彌勒!當令此諸天子,捨於分別菩提之見。
미륵님! 이 모든 천인들로 하여금 보리라고 분별하는 허망한 지견을 버리게 해야 합니다.

所以者何?菩提者不可以身得,不可以心得;
왜냐하면 보리라는 것은 몸으로도 얻을 수 없고, 마음으로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寂滅是菩提,滅諸相故;
적멸이 보리이니, 모든 모습(相)이 소멸하였기 때문입니다.

不觀是菩提,離諸緣故;
관찰하지 않는 것(不觀)이 보리이니, 온갖 반연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不行是菩提,無憶念故;斷是菩提,捨諸見故;
행온이 일어나지 않는 것(不行)이 보리이니, 기억하여 생각함(憶念)이 없기 때문입니다. 끊어 버리는 것(斷)이 보리이니, 모든 견해를 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離是菩提,離諸妄想故;障是菩提,障諸願故;
떠나는 것(離)이 보리이니, 모든 망상잡념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막아버리는 것(障)이 보리이니, 모든 바램욕구를 막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不入是菩提,無貪著故;順是菩提,順於如故;
들어가지 않는 것(不入)이 보리이니, 탐착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르는 것(順)이 보리이니, 여여부동함(如)에 따르기 때문입니다.

住是菩提,住法性故;至是菩提,至實際故;
머무는 것(住)이 보리이니, 법성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이르는 것(至)이 보리이니, 실제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不二是菩提,離意法故;等是菩提,等虛空故;
둘이 아닌 것(不二)이 보리이니, 의식과 법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無為是菩提,無生住滅故;知是菩提,了眾生心行故;
무위가 보리이니, 생겨나고 머무르고 소멸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知)이 보리이니, 중생의 심리행위를 비추어서 분명하게 알기 때문입니다.

不會是菩提,諸入不會故;不合是菩提,離煩惱習故;
만나지 않는 것(不會)이 보리이니, 6근과 6진이 서로 접촉하여 만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달라붙지 않는 것(不合)이 보리이니, 번뇌의 습기를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無處是菩提,無形色故;假名是菩提,名字空故。
처소가 없는 것(無處)이 보리이니, 물질적인 형상이나 색깔(形色)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명이 보리이니, 이름과 문자(名字)는 공하기 때문입니다.

如化是菩提,無取捨故;無亂是菩提,常自靜故;
허깨비 같은 것(如化)이 보리이니, 취하거나 버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지러움이 없는 것(無亂)이 보리이니, 항상 스스로 고요하기 때문입니다.

善寂是菩提,性清淨故;無取是菩提,離攀緣故;
적멸(善寂)이 보리이니, 자성은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취함이 없는 것(無取)이 보리이니, 식심이 6진 경계에 반연하여 취하는 것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無異是菩提,諸法等故;無比是菩提,無可喻故;
다르지 않는 것(無異)이 보리이니, 모든 법은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비유할 길이 없는 것(無比)이 보리이니, 비유하여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微妙是菩提,諸法難知故。』
요컨대 미묘한 것이 보리이니, 사량 분별이나 온갖 세간적인 지식(諸法)으로는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世尊!維摩詰說是法時,二百天子得無生法忍。故我不任詣彼問疾。」
세존이시여! 유마힐이 이와 같은 불법을 설하였을 때, 2백 명의 천인들은 무생법인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佛告光嚴童子:「汝行詣維摩詰問疾。」
부처님께서는 광엄동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도록 하라.”

光嚴白佛言:「世尊!我不堪任詣彼問疾。
광엄동자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所以者何?憶念我昔出毘耶離大城,時維摩詰方入城,我即為作禮而問言:『居士從何所來?』答我言:『吾從道場來。』我問:『道場者何所是?』答曰:『直心是道場,無虛假故;
왜냐하면 회상해 보니, 예전에 제가 비야리 큰 성을 나가는데 유마힐이 마침 성문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물었습니다. ‘거사님 어디서 오십니까?’ 그는 저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도량에서 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도량이 어느 곳입니까?’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곧은 마음(直心)이 도량이니 거짓이 없기 때문입니다.

發行是道場,能辦事故;深心是道場,增益功德故;
발심하여 선행을 함(發行)이 도량이니,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깊은 마음(深心)이 도량이니, 공덕을 증대시키기 때문입니다.

菩提心是道場,無錯謬故;布施是道場,不望報故;
보리심이 도량이니, 잘못된 관념 언행이나 마도 외도의 갈림길에 들어서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시가 도량이니, 보답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持戒是道場,得願具故;忍辱是道場,於諸眾生心無礙故;
지계가 도량이니, 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욕이 도량이니 온갖 중생에 대하여 마음이 거리낌이 없기 때문입니다.

精進是道場,不懈退故;禪定是道場,心調柔故;
정진이 도량이니, 게을러 물러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정이 도량이니 마음이 조복되고 부드러워지기 때문입니다.

智慧是道場,現見諸法故;慈是道場,等眾生故;
반야지혜(智慧)가 도량이니, 온갖 법의 사리를 즉시 비추어보기 때문입니다.
자무량심이 도량이니, 모든 중생에게 평등하게 대하기 때문입니다.

悲是道場,忍疲苦故;喜是道場,悅樂法故;
비무량심이 도량이니 피곤함과 괴로움을 잘 참아내기 때문입니다.
희무량심이 도량이니, 불법을 기뻐하며 즐기기 때문입니다.

捨是道場,憎愛斷故;神通是道場,成就六通故;
사무량심이 도량이니, 사랑과 미움이라는 관념을 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신통이 도량이니, 6신통을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解脫是道場,能背捨故;方便是道場,教化眾生故;
해탈이 도량이니, 등지고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방편이 도량이니,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입니다.

四攝是道場,攝眾生故;多聞是道場,如聞行故;
4섭법이 도량이니, 중생을 섭수하기 때문입니다.
많이 보고 들음(多聞)이 도량이니, 불법을 보고 들은 대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伏心是道場,正觀諸法故;三十七品是道場,捨有為法故;
마음을 조복함(伏心)이 도량이니, 온갖 법을 바르게 관찰하기 때문입니다.
37조도품이 도량이니, 유위법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諦是道場,不誑世間故;緣起是道場,無明乃至老死皆無盡故;
4제(四諦)가 도량이니, 세간을 속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기가 도량이니, 12인연인 무명에서 늙음과 죽음(老死)까지 그 모두가 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諸煩惱是道場,知如實故;眾生是道場,知無我故;
온갖 번뇌가 도량이니, 여실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중생이 도량이니, 무아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一切法是道場,知諸法空故;降摩是道場,不傾動故;
온갖 법이 도량이니, 모든 법은 공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군을 항복시키는 것이 도량이니, 움직여 기울지 않기 때문입니다.

三界是道場,無所趣故;師子吼是道場,無所畏故;
3계가 도량이니, 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자후가 도량이니,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力、無畏、不共法是道場,無諸過故;三明是道場,無餘礙故;
10력, 4무소외, 18불공법이 도량이니, 모든 잘못이 없기 때문입니다.
3명이 도량이니, 어떠한 남은 장애도 없기 때문입니다.

一念知一切法是道場,成就一切智故。
한 생각(一念)에 온갖 법을 아는 것이 도량이니, 일체지를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如是,善男子!菩薩若應諸波羅蜜教化眾生,諸有所作,舉足下足,當知皆從道場來,住於佛法矣!』
이상과 같이,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모든 바라밀에 의지하여 중생을 교화한다면, 온갖 일을 행함이 일거수일투족까지 모두가 도량으로부터 나오고 불법에 머무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說是法時,五百天、人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故我不任詣彼問疾。」
이런 불법을 설했을 때 5백 명의 천인들은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佛告持世菩薩:「汝行詣維摩詰問疾。」
부처님께서는 지세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도록 하라.”

持世白佛言:「世尊!我不堪任詣彼問疾。所以者何?憶念我昔,住於靜室,時魔波旬,從萬二千天女,狀如帝釋,鼓樂絃歌,來詣我所。與其眷屬,稽首我足,合掌恭敬,
於一面立。
지세보살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회상해 보니, 예전에 저는 조용한 방에 있었습니다. 그때에 마왕 파순이 1만 2천 명의 천녀를 거느리고 마치 제석천의 모습처럼 가장하고,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 부르며 제가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권속과 함께 저의 발에 정례하고는 공경히 합장한 채 한쪽에 섰습니다.

我意謂是帝釋,而語之言:『善來憍尸迦!雖福應有,不當自恣。
저는 마음속으로 이 천인이 제석천이라고 생각하고 말하였습니다. ‘잘 오시었소! 교시가여! 그대가 비록 큰 복덕이 있어 그 복보를 응당 누려 가지더라도, 이렇게 너무 방자해서는 안 됩니다.

當觀五欲無常,以求善本,於身命財而修堅法。』
마땅히 5욕의 즐거움은 무상하다고 관찰하고, 선근(善本)을 구하며, 지금의 이 신체와 목숨과 재물을 이용하여 견고한 법을 닦아야 합니다.

即語我言:『正士!受是萬二千天女,可備掃灑。』
그러자 그는 곧 말하였습니다. ‘보살(正士)이여! 이 1만 2천 명의 천녀를 받으셔서, 씻고 닦는 일 등을 시중들게 하십시오.’

我言:『憍尸迦!無以此非法之物要我沙門釋子,此非我宜。』
저는 교시가에게 말하였습니다. ‘교시가여! 불법에 맞지 않는 이런 것을 받으라 하지 마십시오. 저는 출가한 사문이자 부처님의 제자로서 이는 저에게 마땅한 것이 아닙니다.

所言未訖,時維摩詰來謂我言:『非帝釋也,是為魔來嬈固汝耳!』
제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때에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제석천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왕이 일부러 와서 그대의 도심을 교란하고 그대의 청정한 계행을 파괴하고자 하는 것일 뿐입니다.

即語魔言:『是諸女等,可以與我,如我應受。』
그리고는 곧 마왕 파순을 향하여 말하였습니다. ‘이 천녀들은 나에게 주어도 되오. 나 같은 재가자는 받아 청소 등의 봉사를 시켜도 마땅하오.’

魔即驚懼,念:『維摩詰將無惱我?』
마왕은 곧 놀라 두려워하며 생각하기를, ‘이 유마힐이 장차 나를 괴롭히지는 않을까?’ 하고는

欲隱形去,而不能隱;盡其神力,亦不得去。
곧 모습을 감추어 달아나려 했지만, 도무지 모습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의 신통능력을 다해 보았지만, 역시 달아날 수가 없었습니다.

即聞空中聲曰:『波旬!以女與之,乃可得去。』
바로 그때 홀연히 공중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파순아! 천녀들을 그에게 공양해 주어야만 떠나갈 수 있느니라.’

魔以畏故,俛仰而與。「爾時維摩詰語諸女言:『魔以汝等與我,今汝皆當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마왕은 두려웠기 때문에, 내키지 않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천녀들을 주었습니다. 그때에 유마힐은 천녀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마왕이 그대들을 나에게 주었으니, 이제는 그대들 모두가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即隨所應而為說法,令發道意。
그리고는 곧 그들 각자의 근기에 마땅한 바에 따라 교법을 설하여 보리도심(道意)을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復言:『汝等已發道意,有法樂可以自娛,不應復樂五欲樂也。』
그런 다음 또 말하였습니다. ‘그대들은 이미 보리도심을 일으켰습니다. 이제는 스스로 즐겨할 만한 법락이 있게 되었으니, 마땅히 다시는 세간의 5욕락을 즐겨 심취해서는 안 됩니다.’

天女即問:『何謂法樂?』答言:『樂常信佛,樂欲聽法,樂供養眾,樂離五欲;
그러자 천녀들은 물었습니다. ‘무엇을 법락이라고 합니까?’
유마힐이 답하였습니다. ‘항상 부처님을 공경하며 신앙하기를 즐겨하고, 불법을 듣고자 하기를 즐겨하며, 대중에게 공양하기를 즐겨하며, 5욕을 떠나기를 즐겨하며,

樂觀五陰如怨賊,樂觀四大如毒蛇,樂觀內入如空聚;
5음을 원수와 같다고 관하기를 즐겨하며, 4대를 독사와 같다고 관하기를 즐겨하며, 6근을 텅 빈 마을과 같다고 관하기를 즐겨하며,

樂隨護道意,樂饒益眾生,樂敬養師;
보리도심(道意)을 따르고 보호하기를 즐겨하며, 중생을 이롭게 하기를 즐겨하며, 스승을 공경하고 공양하기를 즐겨하며,

樂廣行施,樂堅持戒,樂忍辱柔和,樂勤集善根,樂禪定不亂,樂離垢明慧;
보시를 널리 행하기를 즐겨하며, 계율을 굳게 지키기를 즐겨하며, 인욕과 온유화목하기(柔和)를 즐겨하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선근을 모으기를 즐겨하며, 선정을 닦아 어지럽지 않도록 하기를 즐겨하며, 번뇌의 더러움을 떠나 지혜를 밝게 하기를 즐겨하며,

樂廣菩提心,樂降伏眾魔,樂斷諸煩惱,樂淨佛國土,樂成就相好故,修諸功德;
보리심을 넓히기를 즐겨하며, 수많은 마군을 항복시키기를 즐겨하며, 온갖 번뇌를 끊기를 즐겨하며,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기를 즐겨하며, 상호를 성취하기 위하여 온갖 공덕을 닦기를 즐겨하며,

樂嚴道場;樂聞深法不畏;樂三脫門,不樂非時;
도량을 장엄하기를 즐겨하며, 심원한 불법을 듣고 두려워하지 않기를 즐겨하며, 3해탈문을 즐겨하며, 그 때가 아님(非時)을 즐겨하지 않습니다.

樂近同學,樂於非同學中,心無恚礙;樂將護惡知識,樂親近善知識;
학우를 친근히 하기를 즐겨하며, 학우가 아닌 사람들 가운데 있어도 마음에 싫어하거나 거리낌이 없기를 즐겨하며, 악지식도 보호하기를 즐겨하며, 선지식을 친근히 하기를 즐겨하며,

樂心喜清淨,樂修無量道品之法。是為菩薩法樂。』
마음이 청정함을 기뻐하기를 즐겨하며, 한량없는 조도품의 법을 닦기를 즐겨하는 것입니다. 이상의 것들이 보살의 법락입니다.’

「於是波旬告諸女言:『我欲與汝俱還天宮。』
그때에 마왕 파순은 이 천녀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그대들과 함께 천궁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諸女言:『以我等與此居士,有法樂,我等甚樂,不復樂五欲樂也。』
천녀들은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이미 우리들을 이 거사님에게 주었습니다. 법락이 있어서 우리들은 대단히 즐겁습니다. 다시는 5욕락을 즐겨하지 않겠습니다.’

魔言:『居士可捨此女?一切所有施於彼者,是為菩薩。』
마왕은 말하였습니다. ‘거사님! 이 천녀들을 버릴 수 있으시지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남에게 보시하는 자가 보살입니다.

維摩詰言:『我已捨矣!汝便將去,令一切眾生得法願具足。』
유마힐은 말하였습니다. ‘나는 이미 버렸습니다! 그대가 곧 데리고 가십시오. 그대들은 온갖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하는 바램이 이루어지도록 하십시오.

於是諸女問維摩詰:『我等云何,止於魔宮?』
그때에 천녀들은 유마힐에게 물었습니다. ‘저희들은 어떻게 마왕의 궁전에 머물 수가 있단 말입니까?’

維摩詰言:『諸姊!有法門名無盡燈,汝等當學。無盡燈者,譬如一燈,燃百千燈,冥者皆明,明終不盡。
유마힐이 말하였습니다. ‘자매들이여! 이제 법문이 하나 있으니 그 이름을 무진등이라고 합니다. 그대들은 이 법문을 마땅히 배워야 합니다. 무진등이란 비유하자면, 한 등불로 백천 개의 등에 불을 밝히면 어둠이 모두 밝아지고 그 밝음이 끝내 다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如是,諸姊!夫一菩薩開導百千眾生,令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於其道意亦不滅盡,隨所說法,而自增益一切善法,是名無盡燈也。
이와 같이 자매들이여! 한 사람의 보살이 백천의 중생들을 깨우쳐 이끌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도록 하면, 그 보리도심도 영원히 이어지면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설한 법이 전파됨에 따라 온갖 선법도 따라서 저절로 자꾸만 늘어날 것입니다. 이것을 무진등법문이라고 합니다.

汝等雖住魔宮,以是無盡燈,令無數天子天女,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為報佛恩,亦大饒益一切眾生。』
그대들이 비록 마왕의 궁전에 있다 하더라도, 만약 이 무진등법문으로써 무수한 천인 천녀들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게 한다면, 이야말로 부처님의 깊은 은혜를 갚는 것이요, 또한 모든 중생들에게 크게 이익을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爾時天女頭面禮維摩詰足,隨魔還宮,忽然不現。世尊!維摩詰有如是自在神力,智慧辯才,故我不任詣彼問疾。」
그때에 천녀들은 유마힐의 발에 정례하고는 마왕을 따라 마궁으로 돌아가 홀연히 사라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유마힐은 이와 같은 자재한 신통력과 지혜와 변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佛告長者子善德:「汝行詣維摩詰問疾。」
부처님께서는 장자의 아들 선덕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도록 하라.”

善德白佛言:「世尊!我不堪任詣彼問疾。所以者何?
선덕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憶念我昔自於父舍設大施會,供養一切沙門、婆羅門,及諸外道、貧窮、下賤、
孤獨、乞人。期滿七日,
회상해 보니, 예전에 저는 부친의 저택에서 큰 보시 법회를 열어 모든 사문과 바라문, 그리고 수많은 외도와 가난한 사람, 비천한 사람, 의지할 데 없는 사람, 거지들에게 공양하였습니다. 그 기간이 다 차는 7일째 되는 날,

時維摩詰來入會中,謂我言:『長者子!夫大施會不當如汝所設,當為法施之會,何用是財施會為?』
그때에 유마힐이 큰 보시 법회 중에 와서는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장자의 아들이여! 큰 보시 법회는 그대가 베푸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됩니다. 마땅히 법보시 법회를 열어야 합니다. 어찌하여 이같이 재물보시 법회를 열고 있는 것입니까?’

我言:『居士!何謂法施之會?』
저는 말하였습니다. ‘거사님! 무엇을 법보시 법회라고 합니까?’

答曰:『法施會者,無前無後,一時供養一切眾生,是名法施之會。』
‘법보시 법회라는 것은, 시간상으로 앞뒤의 차이가 없어 일시에 온갖 중생에게 공양하는 것이니, 이것을 법보시 법회라고 합니다.

曰:『何謂也?』
저는 말하였습니다.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요?

『謂以菩提,起於慈心;以救眾生,起大悲心;以持正法,起於喜心;以攝智慧,行於捨心;
보리를 얻게 하고자 함으로써 자무량심(慈心)을 일으키며, 온갖 중생을 구원하고자함으로써 비무량심(悲心)을 일으키며, 정법을 지님으로써 희무량심(喜心)을 일으키며, 지혜를 섭수함으로써 사무량심(捨心)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以攝慳貪,起檀波羅蜜;以化犯戒,起尸羅波羅蜜;
인색함과 탐욕심을 섭수 교화하기 위함으로써 보시바라밀을 일으키며, 계율 범함을 교화하기 위함으로써 지계바라밀을 일으키며,

以無我法,起羼提波羅蜜;以離身心相,起毘梨耶波羅蜜;
무아의 법으로써 인욕바라밀을 일으키며, 몸과 마음의 상을 떠남으로써 정진바라밀을 일으키며,

以菩提相,起禪波羅蜜;以一切智,起般若波羅蜜。
보리의 적멸실상(菩提相)으로써 선정바라밀(禪波羅蜜)을 일으키며, 일체지로써 반야바라밀을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教化眾生,而起於空;不捨有為法,而起無相;
중생을 교화하면서도 공해탈문을 일으키며, 유위법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무상해탈문(無相)을 일으키며,

示現受生,而起無作;護持正法,起方便力;
생사윤회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면서도 무작해탈문(無作)을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정법을 영원히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방편의 힘을 일으키며,

以度眾生,起四攝法;以敬事一切,起除慢法;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4섭법을 일으키며, 온갖 것을 공경 존중하고 섬김으로써 아만심을 없애며,

於身命財,起三堅法;於六念中,起思念法;
신체(身), 생명(命), 재산(財)에 대해서는 3견법을 닦아 증득하며, 6념에 대해서 생각 생각 올바른 사념(正思念)을 일으키며,

於六和敬,起質直心;正行善法,起於淨命;
6화경에 대해서, 질박하고 정직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온갖 선법을 바르게 행하여 생명을 청정하게 장엄하며(淨命)

心淨歡喜,起近賢聖;不憎惡人,起調伏心;
마음이 청정하고 환희함으로써 현인과 성인을 친근히 하며, 악한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조복할 마음을 일으키며,

以出家法,起於深心;以如說行,起於多聞;
출가법으로써 깊은 마음(深心)을 일으키며, 부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고자 불법을 많이 보고 들어 해박하며,

以無諍法,起空閑處;趣向佛慧,起於宴坐;
무쟁삼매법(無諍三昧法)으로써 공적하고 한가한 곳에서 일어나며, 부처님의 지혜로 나아가고자 정좌(宴坐)를 행하며,

解眾生縛,起修行地;以具相好,及淨佛土,起福德業;
중생의 망상 집착의 속박(縛)을 풀어주기 위해서 수행을 일으키며, 부처님의 32상 80종호를 구족하고 불국토를 청정 장엄하게 하기 위하여 광대한 복덕선업을 일으키며,

知一切眾生心念,如應說法,起於智業;知一切法,不取不捨,入一相門,起於慧業;
온갖 중생의 마음속의 생각과 갖가지 심리적 요구를 이해하여 알고, 마땅함에 따라 교법을 설하기 위하여, 지혜의 업(智業)을 일으키며, 온갖 법을 알고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일상문에 들어가기 위하여 지혜의 업(慧業)을 일으키며,

斷一切煩惱、一切障礙、一切不善法,起一切善業;以得一切智慧、一切善法,起於一切助佛道法。
온갖 번뇌, 온갖 장애, 온갖 불선법을 끊어버리고, 온갖 선업을 일으키는 것이니,
요컨대 온갖 지혜와 온갖 선법을 얻음으로써 불도의 성취에 도움이 되는 온갖 조도품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如是,善男子!是為法施之會。若菩薩住是法施會者,為大施主,亦為一切世間福田。』
이와 같이 선남자여! 이런 것들이 진정한 법보시 법회입니다. 만약 보살이 이런 법보시 법회에 언제나 머물러 행한다면 그는 대시주가 되고, 또한 모든 세간의 복전이 될 것입니다.

「世尊!維摩詰說是法時,婆羅門眾中二百人,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我時心得清淨,歎未曾有!稽首禮維摩詰足,即解瓔珞價直百千以上之,不肯取。
세존이시여! 유마힐이 이러한 가르침을 설했을 때, 바라문들 중의 2백 명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습니다.
저는 그때에 마음이 청정해져서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찬탄하고 유마힐의 발에 정례하고는, 곧 백천 이상의 가치가 나가는 영락을 풀어서 바쳤으나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我言:『居士!願必納受,隨意所與。』
그래서 제가 말하였습니다. ‘거사님! 원하오니 꼭 받으시어 당신의 뜻대로 주고 싶은 이에게 주십시오.’

維摩詰乃受瓔珞,分作二分,持一分施此會中一最下乞人,持一分奉彼難勝如來。
一切眾會皆見光明國土難勝如來,又見珠瓔在彼佛上變成四柱寶臺,四面嚴飾,不相障蔽。
유마힐은 곧 영락을 받더니 똑같이 두 몫으로 나눈 뒤, 한 몫은 그 법회에 온 사람 중에 가장 비천한 거지에게 주고, 나머지 한 몫은 저 난승여래에게 바쳤습니다. 법회의 모든 대중은 광명국토의 난승여래를 보았으며, 또 그 영락이 부처님에게서 기둥이 네 개인 보배 대좌로 변화되고 그 사면이 각종의 진귀한 보배로 장식되어 장엄하면서도 서로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時維摩詰現神變已,作是言:『若施主等心施一最下乞人,猶如如來福田之相,無所分別,等于大悲,不求果報,是則名曰具足法施。』
그때에 유마힐은 신통변화를 나타내고 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만약 보시를 하는 사람이 평등한 마음으로 가장 비천한 거지에게 보시하더라도 여래의 복전에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으니, 분별함이 없고 평등하게 대비심으로 보시를 행하며 그 과보를 바라지 않는다면, 이것을 다 갖춘 법보시라고 부릅니다.’

城中一最下乞人,見是神力,聞其所說,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故我不任詣彼問疾。」
비야리성에서 가장 비천한 한 거지는 유마힐의 이런 신통능력을 보고, 또한 그 설법을 듣고는 다른 사람들과 다 함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如是諸菩薩各各向佛說其本緣,稱述維摩詰所言,皆曰:「不任詣彼問疾!」
이와 같이 모든 보살들도 저마다 부처님께 자신들의 유마힐과의 지난 인연(本緣)을 말씀드리고, 유마힐이 설한 바를 칭찬하면서, 모두 그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維摩詰經》卷上







































《維摩詰所說經》卷中

姚秦三藏鳩摩羅什譯




文殊師利問疾品第五







爾時佛告文殊師利:「汝行詣維摩詰問疾。」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도록 하라.”

文殊師利白佛言:「世尊!彼上人者,難為詶對。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 상인은 상대하기가 어렵습니다.

深達實相,善說法要,辯才無滯,智慧無礙;一切菩薩法式悉知,諸佛祕藏無不得入;降伏眾魔,遊戲神通,其慧方便,皆已得度。雖然,當承佛聖旨,詣彼問疾。」
실상반야를 깊이 통달하고, 불법의 요지를 잘 설하며, 변재가 걸림이 없고, 지혜는 막힘이 없습니다. 모든 보살의 법식을 다 알고 있으며, 모든 부처님의 비밀(祕藏)에 깊이 들어가지 않음이 없으며, 온갖 마군을 항복시키고 신통에 유희하며, 그 지혜와 방편을 모두 이미 성취하였습니다. 비록 그러하더라도 부처님의 분부(聖旨)를 받들어 그에게 가서 문병하겠습니다.

於是眾中諸菩薩、大弟子、釋、梵、四天王等,咸作是念:「今二大士,文殊師利、維摩詰共談,必說妙法!」即時八千菩薩、五百聲聞、百千天、人皆欲隨從。
이리하여 많은 보살과 대제자들, 제석천, 범천, 4천왕들은 모두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제 두 보살(大士)이신 문수사리와 유마힐이 만나 함께 이야기하면 반드시 묘법을 설할 것이다. 그래서 즉시 8천 명의 보살들과 5백 명의 성문들, 백천 명의 천인들 모두가 따라가고자 하였다.

於是文殊師利與諸菩薩、大弟子眾及諸天、人,恭敬圍繞,入毘耶離大城。
그래서 문수사리는 수많은 보살과 대제자와 천인들이 공경하게 둘러싼 가운데 비야리 큰 성으로 들어갔다.

爾時長者維摩詰心念:「今文殊師利與大眾俱來!」即以神力空其室內,除去所有及諸侍者;唯置一床,以疾而臥。文殊師利既入其舍,見其室空,無諸所有,獨寢一床。
그때에 장자 유마힐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지금 문수사리님이 대중과 함께 나를 보러오고 있으니, 신통력으로 방을 깨끗이 비워야겠다.’ 그리고는 방안에 있는 것을 치우고 시자들까지도 내보내고, 텅 빈 방안에는 오직 침상 하나만을 놓아두고 앓는 몸을 눕혔다. 문수사리보살이 그 집에 들어가자 방안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고, 침상 하나에 홀로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時維摩詰言:「善來,文殊師利!不來相而來,不見相而見。」
그러자 그때에 유마힐이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문수사리님! 오는 상이 없이 오고, 보는 상이 없이 봅니다.”

文殊師利言:「如是!居士!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거사님.

若來已,更不來;若去已,更不去。所以者何?來者無所從來,去者無所至,
만약 와버렸다면 다시는 오지 않고, 만약 가버렸다면 다시는 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는 것은 그 어디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가는 것은 그 어디로 가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所可見者,更不可見。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또다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且置是事,居士!是疾寧可忍不?療治有損,不至增乎!
자, 이런 이야기는 그만두겠습니다.
거사님, 이 병은 어찌 견딜 만하십니까? 치료가 되어 좀 덜하십니까, 더하지는 않았습니까?

世尊慇懃致問無量,居士是疾,何所因起?其生久如?當云何滅?」
세존께서는 특별히 저더러 대신 가서 정성스럽게 위문하고 부처님의 무한한 관심을 표시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거사님, 이 병은 무엇 때문에 생겼으며, 또 얼마나 오래되었고,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겠습니까?”

維摩詰言:「從癡、有愛,則我病生。
유마힐이 말하였다. “어리석음(癡)으로 말미암아 애착(愛)이 있기에 나의 병은 생겼습니다.

以一切眾生病,是故我病;若一切眾生病滅,則我病滅。
온갖 중생이 병이 났으므로 나도 병이 났습니다.
만약 온갖 중생이 병이 나지 않을 수 있다면, 나의 병은 사라집니다.

所以者何?菩薩為眾生故入生死,有生死則有病;若眾生得離病者,則菩薩無復病。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해 생사윤회에 들어가며, 생사윤회가 있다면 병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중생이 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보살도 다시는 병이 나는 일이 없습니다.

譬如長者,唯有一子,其子得病,父母亦病。若子病愈,父母亦愈。
비유하자면 장자에게 외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이 병에 걸리면 그 부모도 병을 앓고, 만약 아들의 병이 나으면 부모도 낫는 것과 같습니다.

菩薩如是,於諸眾生,愛之若子;眾生病則菩薩病,眾生病愈,菩薩亦愈。
보살도 이와 같아서 모든 중생에 대하여 내 자식처럼 사랑합니다. 중생이 병이 나면, 보살도 병이 나고, 중생이 병이 나으면 보살도 병이 낫습니다.

又言是疾,何所因起?菩薩病者,以大悲起。」
또 말하였다. “또 묻기를 이 병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느냐고 했는데, 보살이 병이 난 것은 대비심으로 일으킨 것입니다.”

文殊師利言:「居士此室,何以空無侍者?」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거사님, 이 방은 어째서 텅 비어 있으며 시자도 없습니까?”

維摩詰言:「諸佛國土亦復皆空。」
유마힐이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의 불국토도 모두 공(空)합니다.”

又問:「以何為空?」
또 물었다. “무엇을 공(空)이라고 합니까?”

答曰:「以空空。」
답하였다. “공(空)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又問:「空何用空?」
또 물었다. “공한 바에야 왜 다시 비워야 합니까?”

答曰:「以無分別空故空。」
답하였다. “공을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킴이 없기 때문에 공도 비워버립니다.”

又問:「空可分別耶?」
또 물었다. “공을 분별할 수가 있습니까?”

答曰:「分別亦空。」
답하였다. “분별함도 공합니다.”

又問:「空當於何求?」
또 물었다. “그렇다면 공은 어디서 구해야만 합니까?”

答曰:「當於六十二見中求。」
답하였다. “62견(見)속에서 구해야 합니다.”

又問:「六十二見當於何求?」
또 물었다. “62견은 또 어디서 구해야 합니까?”

答曰:「當於諸佛解脫中求。」
답하였다. “모든 부처님들의 해탈 속에서 구해야 합니다.”

又問:「諸佛解脫當於何求?」
또 물었다. “모든 부처님들의 해탈은 어디서 구해야 합니까?”

答曰:「當於一切眾生心行中求。
답하였다. “온갖 중생의 마음의 작용(心行) 속에서 구해야 합니다.

又仁所問:『何無侍者?』一切眾魔及諸外道,皆吾侍也。
또 그대는 왜 시자가 없느냐고 물었지만, 모든 마군과 온갖 외도들이 모두가 나의 시자입니다.

所以者何?眾魔者樂生死,菩薩於生死而不捨;
왜냐하면 온갖 마군들은 생사를 좋아하지만, 보살은 생사를 버리지 않고,

外道者樂諸見,菩薩於諸見而不動。」
외도는 갖가지 견해들을 좋아하지만, 보살은 갖가지 견해들에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文殊師利言:「居士所疾,為何等相?」 維摩詰言:「我病無形不可見。」
又問:「此病身合耶?心合耶?」
答曰:「非身合,身相離故;亦非心合,心如幻故。」
又問:「地大、水大、火大、風大,於此四大,何大之病?」
答曰:「是病非地大,亦不離地大;水、火、風大,亦復如是。而眾生病,從四大起,以其有病,是故我病。」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거사님의 앓는 병은 어떤 모습(相)입니까? 유마힐이 말하였다.
“나의 병은 형상(形)이 없으므로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또 물었다. “이 병은 몸과 관계된 병입니까, 아니면 마음과 관계된 병입니까?” 답하였다. “몸과 관계된 병이 아니니, 몸의 모습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음과 관계된 병도 아니니, 마음은 허깨비(幻)와 같기 때문입니다.” 또 물었다. “지(地), 수(水), 화(火), 풍(風) 이 4대(大) 중에서 어느 대의 병입니까?” 답하였다. “이 병은 지대가 일으킨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대와 관계를 떠난 것도 아닙니다. 수대, 화대, 풍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중생의 병은 4대로부터 일어나고, 중생에게 병이 있기 때문에 나도 병이 난 것입니다.”

爾時文殊師利問維摩詰言:「菩薩應云何慰喻有疾菩薩?」
그때에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보살은 병이 있는 보살을 어떻게 위로하고 깨우쳐주어야 합니까?”

維摩詰言:「說身無常,不說厭離於身;
유마힐이 말하였다. “몸은 무상하다고 설하여도 몸을 싫어하여 떠나라고는 설하지 않고,

說身有苦,不說樂於涅槃;
몸에는 괴로움이 있다고 설하여도 열반을 좋아하라고는 설하지 않으며,

說身無我,而說教導眾生;
몸은 무아(無我)라고 설하여도 중생을 가르치고 이끌 것을 설하고,

說身空寂,不說畢竟寂滅;
몸은 공적(空寂)하다고 설하여도 영원히 적멸하다고는 설하지 않습니다.

說悔先罪,而不說入於過去;
과거에 범한 죄를 뉘우치도록 설하여도 과거로 들어가라고는 설하지 않습니다.

以己之疾,愍於彼疾;
자기의 병의 고통을 미루어 남의 병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어 동정하며,

當識宿世無數劫苦,當念饒益一切眾生;
과거세 무수겁(無數劫)을 지나오며 병의 고통이 있었음을 마땅히 알고서 온갖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려고 생각해야 합니다.

憶所修福,念於淨命,
지난 날 지은 선행복덕을 기억하여 청정한 생명을 생각하며,

勿生憂惱,常起精進;
근심과 번뇌를 일으키지 말고 항상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當作醫王,療治眾病。
훌륭한 의왕(醫王)이 되어서 온갖 중생의 병을 치료하겠다고 발심해야 합니다.

菩薩應如是慰喻有疾菩薩,令其歡喜。」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병이 있는 보살을 위로하고 깨우쳐서 그로 하여금 기뻐하도록 해야 합니다.“

文殊師利言:「居士!有疾菩薩云何調伏其心?」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거사님, 병이 있는 보살은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調伏) 합니까?”

維摩詰言:「有疾菩薩應作是念:『今我此病,皆從前世妄想顛倒諸煩惱生,無有實法,誰受病者!
유마힐이 말하였다. “병이 있는 보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나의 이 병은 모두가 전생의 망상(妄想)과 전도(顚倒)와 번뇌들로부터 생긴 것이지, 결코 실체적인 존재(實法)가 없는 것인데, 누가 이 병의 고통을 받겠는가?

所以者何?四大合故,假名為身;四大無主,身亦無我;
왜냐하면 이 몸은 4대가 화합한 것이기에 몸이라고 임시로 이름(假名)하였을 뿐, 4대에는 주재자(主)가 없고, 몸에도 실체적인 나(我)가 없기 때문입니다.

又此病起,皆由著我。是故於我,不應生著。』
또 이 병이 일어난 것은 모두 이 몸이 나라고 집착(著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에 대하여 집착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既知病本,即除我想及眾生想。當起法想,
이미 병의 근본을 알았으니, 곧 아상(我想)과 중생상(眾生想)을 없애고, 법상(法想)을 일으켜야 한다.’

應作是念:『但以眾法,合成此身;起唯法起,滅唯法滅。
또 이런 사념을 해야 합니다. ‘온갖 인연(衆法)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이 몸은 , 생겨난 것도 오직 인연이 모였으므로 생겨난 것이요, 소멸하는 것도 오직 인연이 흩어지므로 소멸하는 것이다.

又此法者,各不相知,起時不言我起,滅時不言我滅。』
또 이 법은 각종의 요소가 서로 알지 못하여, 생겨날 때에는 나가 생겨난다고 말하지 않으며, 소멸할 때는 나가 소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彼有疾菩薩為滅法想,當作是念:『此法想者,亦是顛倒,顛倒者是即大患,我應離之。』
저 병이 있는 보살은 법상(法想)도 없애기 위해서 마땅히 이런 사념을 해야 합니다. ‘이런 법상도 전도(顚倒)된 것이다. 전도된 것은 바로 크나큰 병이므로 나는 응당 이것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

云何為離?離我、我所。
어떻게 떠나는가? 그것은 나(我)와 나의 것(我所)을 떠나는 것이다.

云何離我、我所?謂離二法。
어떻게 나와 나의 것을 떠나는가? 그것은 두 개의 법(二法)을 떠나는 것을 말한다.

云何離二法?謂不念內外諸法行於平等。
어떻게 상대적인 두 개의 법을 떠나는가? 그것은 안(內)과 밖(外)의 온갖 법이라는 관념이 없이 평등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云何平等?謂我等、涅槃等。
무엇이 평등한가? 나(我)가 평등하고 열반(涅槃)이 평등하다는 것을 말한다.

所以者何?我及涅槃,此二皆空。
왜냐하면 나와 열반 이 둘은 모두가 공하기 때문이다.

以何為空?但以名字故空。如此二法,無決定性,
무엇을 공하다 하는가? 다만 임시적인 이름(名字)에 불과하기 때문에 공한 것이다. 이와 같은 상대적인 두 개의 법(二法)은 결정되어 있는 본성(決定性)이 없다.

得是平等;無有餘病,唯有空病;空病亦空。
이러한 평등의 이치를 증득하였다면 나머지 모든 병은 없어지고, 오직 공에 집착하는 병(空病)만 있는데, 공에 집착하는 병 또한 공한 것이다.’

是有疾菩薩以無所受而受諸受,
이 병이 있는 보살은, 감수하는(受) 일이 없이 온갖 감수를 받아들이며,

未具佛法,亦不滅受而取證也。
불법을 갖추지 않으며, 또한 모든 감수(受)를 없애지도 않고 공적(空寂)의 증득도 취하지 않습니다.

「設身有苦,念惡趣眾生,起大悲心,
설령 자기의 몸에 병의 고통이 있더라도 3악도의 중생들이 받는 고통을 생각하고 무한한 대비심을 일으키기를,

我既調伏,亦當調伏一切眾生;
‘나는 이미 병의 고통을 조복(調伏)하였으므로, 온갖 중생들의 고통도 조복해야 한다.’라고 해야 합니다.

但除其病,而不除法,為斷病本而教導之。
다만 그 병은 제거하지만 이 수행법은 없애지 않으며, 병의 근원을 끊어 없애기 위하여 온갖 중생을 가르쳐 이끌어야 합니다.

何謂病本?謂有攀緣,從有攀緣,則為病本。
무엇을 병의 근원이라고 하는가? 대상에 대하여 마음이 작용을 일으킴(攀緣)을 말하는데, 대상에 따라 마음이 작용을 일으킴이 있음으로부터 곧 병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何所攀緣?謂之三界。
무엇을 대상으로 마음이 작용을 일으키는가? 3계 안의 온갖 경계를 대상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云何斷攀緣?以無所得,若無所得,則無攀緣。
어떻게 이 마음이 대상에 대하여 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끊는가? 아무것도 구할 바가 없다(無所得)는 것으로써 끊는 것이니, 만약 아무것도 구할 바가 없다면 마음이 대상에 대하여 작용을 일으킴이 없습니다.

何謂無所得?謂離二見。何謂二見?謂內見外見,是無所得。
무엇을 아무것도 구할 바가 없다고 하는가? 상대적인 견해(二見)를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상대적인 견해라고 하는가? 안의 견해(內見), 밖의 견해(外見)이니, 이들을 떠나는 것이 아무것도 구할 바가 없는 것(無所得)입니다.

文殊師利!是為有疾菩薩調伏其心,為斷老病死苦,是菩薩菩提。若不如是,己所修治,為無慧利。譬如勝怨,乃可為勇。如是兼除老病死者,菩薩之謂也。
문수사리님, 이것이 병이 있는 보살이 그 마음을 조복하는 것이며, 중생의 늙음. 질병. 죽음의 고통을 끊어 없애는 것이며, 보살의 보리대도(菩提大道)입니다. 만약 이와 같지 않다면 자기가 닦고 다스렸던 것이 지혜의 이익이 되지 못합니다. 비유하면 원수와 싸워 이겨야만 용사라고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자신과 중생의 늙음과 질병의 고통을 함께 없애는 자를 보살이라고 합니다.

「彼有疾菩薩應復作是念:『如我此病,非真非有,眾生病亦非真非有。』
저 병이 있는 보살은 응당 다시 이런 사념을 해야 합니다. ‘나의 이 병은 진실한 것도 아니요 실제로 있는 것도 아닌 것과 같이, 중생의 병도 진실한 것도 아니요 실제로 있는 것도 아니다.’

作是觀時,於諸眾生若起愛見大悲,即應捨離。
이와 같이 관할 때에 중생들에 대해서 애견(愛見)의 대비심을 일으켰다면, 응당 대비심을 놓아버려야 합니다.

所以者何?菩薩斷除客塵煩惱而起大悲。愛見悲者,則於生死有疲厭心。若能離此,無有疲厭,在在所生,不為愛見之所覆也。
왜냐하면 보살은 객진번뇌(客塵煩惱)를 끊어 없애고 대비심을 일으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애견의 대비심(愛見悲)에는 생사에 대해 피곤해 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니, 만약 이를 떠날 수가 있으면 피곤해 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없으며, 어떠한 곳에 태어나더라도 애견(愛見)에 덮이지 않습니다.

所生無縛,能為眾生說法解縛,
태어남에도 속박이 없고,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여 속박으로부터 해탈하게 할 수 있습니다.

如佛所說:『若自有縛,能解彼縛,無有是處!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자기가 속박되어 있으면서 남의 속박을 풀어줄 수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若自無縛,能解彼縛,斯有是處。』
만약 자기가 속박되어 있지 않으면서 남의 속박을 풀어 줄 수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옳은 일이다.’ 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是故菩薩不應起縛。
그러므로 보살은 응당 속박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何謂縛?何謂解?
무엇을 속박이라 하며, 무엇을 해탈이라고 하는가?

貪著禪味,是菩薩縛;以方便生,是菩薩解。
선정의 즐거운 맛(禪味)에 탐착하는 것이 보살의 속박이요, 훌륭한 방편으로써 대비심을 일으키는 것이 보살의 해탈입니다.

又無方便慧縛,有方便慧解;無慧方便縛,有慧方便解。
또 방편이 없는 지혜는 속박이며, 방편이 있는 지혜는 해탈입니다. 지혜가 없는 방편은 속박이며, 지혜가 있는 방편은 해탈입니다.

何謂無方便慧縛?謂菩薩以愛見心莊嚴佛土、成就眾生;於空、無相、無作法中,而
自調伏,是名無方便慧縛。
무엇을 방편이 없는 지혜는 속박이라고 하는가? 보살이 애견심을 가지고서 불국토를 장엄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며,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의 법속에 머물고 있으면서 스스로 조복하는 것, 이것을 방편이 없는 지혜는 속박이라 합니다.

何謂有方便慧解?謂不以愛見心莊嚴佛土、成就眾生,於空、無相、無作法中,以自調伏,而不疲厭,是名有方便慧解。
무엇을 방편이 있는 지혜는 해탈이라고 하는가? 애견심을 가지지 않고서 불국토를 장엄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며,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에 머물고 있으면서 자기의 마음을 조복하되 피로해 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것, 이것을 방편이 있는 지혜는 해탈이라고 합니다.

何謂無慧方便縛?謂菩薩住貪欲、瞋恚、邪見等諸煩惱,而植眾德本,是名無慧方便縛。
무엇을 지혜가 없는 방편은 속박이라고 하는가? 보살이 탐욕과 성냄과 사견(邪見) 등의 온갖 번뇌들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온갖 선근 공덕을 증식하는 것, 이것을 지혜가 없는 방편은 속박이라고 합니다.

何謂有慧方便解?謂離諸貪欲、瞋恚、邪見等諸煩惱,而植眾德本;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名有慧方便解。
무엇을 지혜가 있는 방편은 해탈이라 하는가? 온갖 탐욕과 성냄과 사견 등의 번뇌들을 떠나서 온갖 선근공덕을 증식시키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회향(廻向)하는 것, 이것을 지혜가 있는 방편은 해탈이라고 합니다.

文殊師利!彼有疾菩薩,應如是觀諸法,
문수사리님! 저 병이 있는 보살은 응당 이상과 같이 모든 법(諸法)을 관해야 합니다.

又復觀身無常、苦、空、非我,是名為慧;雖身有疾,常在生死,饒益一切,而不厭倦,是名方便。
또 다시 관하기를, 이 몸은 무상하며 괴로움이며 공하며 무아(非我)라고 관하는 것, 이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비록 몸에 병이 있고 항상 생사윤회 속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되, 싫어하거나 피로해 하지 않는 것, 이것을 방편이라고 합니다.

又復觀身,身不離病,病不離身,是病是身,非新非故,是名為慧;
또 다시 몸을 관하기를, 몸은 병을 떠날 수 없는 것이며, 병도 몸을 떠나서 있을 수 없으며, 이 병이 바로 몸으로서 새로운 것도 아니요 오랜 것도 아니라고 관하는 것, 이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設身有疾,而不永滅,是名方便。
설령 몸에 병이 있더라도 영원히 없애지 않는 것, 이것을 방편이라고 합니다.

「文殊師利!有疾菩薩應如是調伏其心,
문수사리님, 병이 있는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자기의 마음을 조복해야 합니다.

不住其中,亦復不住不調伏心。
그 병 속에도 머무르지 않고, 또한 마음을 조복하지 않음에도 머무르지 않습니다.

所以者何?若住不調伏心,是愚人法;若住調伏心,是聲聞法。是故菩薩不當住於調伏、不調伏心,離此二法,是菩薩行。
왜냐하면 만약 마음을 조복하지 않음에 머문다면 이것은 어리석은 사람의 법이며, 만약 마음을 조복함에 머문다면 이것은 성문(聲聞)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마땅히 마음을 조복함에도 머물러서는 안 되고 조복하지 않음에도 머물러서는 안 되는 것이니, 이 두 가지 법을 떠나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在於生死,不為污行;住於涅槃,不永滅度,是菩薩行;
생사윤회 속에 있으면서도 염오의 업행(汚行)을 일으키지 않고, 열반에 머물러 있어도 영원히 멸도(滅度)하지 않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非凡夫行,非賢聖行,是菩薩行;
범부의 행도 아니고, 성현의 행도 아닌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非垢行,非淨行,是菩薩行;
더러운 행도 아니고, 청정한 행도 아닌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過魔行,而現降眾魔,是菩薩行;
비록 모든 마군의 행을 초월했지만, 온갖 마군을 항복시키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求一切智,無非時求,是菩薩行;
일체지(一切智)를 구하지만, 시간적인 제한 없이 언제 어디서나 구하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觀諸法不生,而不入正位,是菩薩行;
비록 온갖 법이 본래에 공(空)하여 불생(不生)이라고 관하지만, 정위(正位)에 들어가지 않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觀十二緣起,而入諸邪見,是菩薩行;
비록 12연기를 관하지만, 온갖 사견(邪見)으로 들어가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攝一切眾生,而不愛著,是菩薩行;
비록 중생을 감싸 안고 있지만, 애착하지 않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樂遠離,而不依身心盡,是菩薩行;
비록 멀리 떠나기를 즐겨 하지만, 몸과 마음의 다함에 의지하지 않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行三界,而不壞法性,是菩薩行;
비록 3계에 출입하지만, 법성(法性)을 파괴하지 않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行於空,而植眾德本,是菩薩行;
비록 공(空)을 행하지만, 온갖 선근공덕을 증식하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行無相,而度眾生,是菩薩行;
비록 무상(無相)을 행하지만, 중생을 교화 제도하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行無作,而現受身,是菩薩行;
비록 무작(無作)을 행하지만, 생사의 몸을 받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行無起,而起一切善行,是菩薩行;
비록 무기(無起)를 행하지만, 온갖 선행을 일으키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行六波羅蜜,而遍知眾生心、心數法,是菩薩行;
비록 6바라밀을 행하지만, 온갖 중생의 본체의 마음(心)과 심리작용 상태(心數法)를 두루 아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行六通,而不盡漏,是菩薩行;
비록 6신통을 갖추어 행하지만, 번뇌(漏)를 다 끊어버리지 않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行四無量心,而不貪著生於梵世,是菩薩行;
비록 4무량심을 행하지만, 범천의 세계에 태어나려고 탐착하지 않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行禪定解脫三昧,而不隨禪生,是菩薩行;
비록 선정과 해탈과 삼매를 행하지만, 4선 8정의 경계에 따라 태어나지 않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行四念處,而不永離身受心法,是菩薩行;
비록 4념처(四念處)를 행하지만, 신체(身)와 감수(受)와 심념(心)과 법(法)을 마침내 영원히 떠나고자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보살의 행입니다.

雖行四正勤,而不捨身心精進,是菩薩行;
비록 4정근(四正勤)을 행하지만, 심신의 노력을 버리지 않고 정진하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行四如意足,而得自在神通,是菩薩行;
비록 4여의족(四如意足)을 행하지만, 이미 자재한 신통을 얻은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行五根,而分別眾生諸根利鈍,是菩薩行;雖行五力,而樂求佛十力,是菩薩行;雖行七覺分,而分別佛之智慧,是菩薩行;雖行八聖(正)道,而樂行無量佛道,是菩薩行;
비록 5근(五根)을 행하지만, 중생의 근들(諸根)의 예리함과 둔함을 분별하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비록 5력(五力)을 행하지만, 부처님의 10력(十力)을 구하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비록 7각지(七覺支)를 행하지만, 부처님의 지혜를 분별하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비록 8정도(八正道)를 행하지만, 한량없는 불도(佛道)를 즐겨 행하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行止觀助道之法,而不畢竟墮於寂滅,是菩薩行;
비록 지관(止觀)의 조도법을 행하지만, 마침내 적멸(寂滅)에 떨어지지 않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行諸法不生不滅,而以相好莊嚴其身,是菩薩行;
비록 온갖 법은 생겨나는 것도 아니요 소멸하는 것도 아님을 행하지만, 상호(相好)로써 그 몸을 장엄하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現聲聞、辟支佛威儀,而不捨佛法,是菩薩行;
비록 성문이나 벽지불의 위의(威儀)를 나타내지만, 부처님의 법을 버리지 않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隨諸法究竟淨相,而隨所應為現其身,是菩薩行;
비록 온갖 법의 궁극적인 청정상(淨相)을 따르지만, 어떤 몸으로 응하여 제도해 주어야 할지에 따라서 그 몸을 나타내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觀諸佛國土永寂如空,而現種種清淨佛土,是菩薩行;
비록 모든 부처님의 국토가 허공처럼 영원히 적멸함을 관하지만, 갖가지 청정한 불국토를 나타내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得佛道轉于法輪,入於涅槃,而不捨於菩薩之道,是菩薩行。」
비록 불도를 얻었고 법륜을 굴리고 열반의 경계에 들어갔지만, 보살도를 버리지 않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說是語時,文殊師利所將大眾,其中八千天子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이상과 같이 설했을 때, 문수사리가 이끌고 왔던 대중들 중에서 8천 명의 천인들은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다.























《維摩詰〔所說〕-【宋】【聖】*所說經所說經》不思議品第六







爾時舍利弗見此室中無有床座,作是念:「斯諸菩薩、大弟子眾,當於何坐?」
長者維摩詰知其意,語舍利弗言:「云何仁者!為法來耶?求床座耶?」
舍利弗言:「我為法來,非為床座。」
그때에 사리불은 이 방안에 의자(床座)가 없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모든 보살들과 수많은 대제자들은 어디에 앉아야 하지?’ 장자 유마힐은 그의 생각을 알고는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어찌 된 것입니까? 그대는 법을 구하기 위하여 온 것입니까, 아니면 앉을 자리를 위해서 온 것입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저는 법을 구하기 위해서 왔지, 앉을 자리를 위해서 온 것은 아닙니다.”

維摩詰言:「唯,舍利弗!夫求法者,不貪軀命,何況床座?
유마힐은 말하였다. “여보세요! 사리불님! 진정으로 법을 구하는 사람은 신명(軀命)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물며 의자는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夫求法者,非有色、受、想、行、識 之求,
진정한 불법을 구하는 사람은 색, 수, 상, 행, 식에서 구하지 않으며,

非有界、入之求,
18계나 12입에서 구하지 않으며,

非有欲、色、無色之求。
욕계, 색계, 무색계에서 구하지 않습니다.

唯,舍利弗!夫求法者,不著佛求,不著法求,不著眾求;
여보세요! 사리불님! 진정한 불법을 구하는 사람은 부처(佛)에게 집착하여 구하지 않고, 법(法)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으며, 승단(僧)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습니다.

夫求法者,無見苦求,無斷集求,無造盡證、修道之求。
진정한 불법을 구하는 사람은, 괴로움(苦)을 봄이 없이 구하고, 괴로움의 원인(集)을 끊음 없이 구하며, 열반(盡:滅)의 증득을 지음 없이 구하며 도(道)를 닦음 없이 구합니다.

所以者何?法無戲論,
왜냐하면 진정한 불법은 희론(戱論)이 없기 때문입니다.

若言我當見苦、斷集、證滅、修道,是則戲論,非求法也。
만약 말하기를 나는 마땅히 괴로움(苦)을 보고, 괴로움의 원인(集)을 끊고, 열반(滅)을 증득하고, 도(道)를 닦는다고 한다면, 이것은 희론이지 진정한 불법을 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唯,舍利弗!法名寂滅,若行生滅,是求生滅,非求法也;
여보세요! 사리불님! 진정한 불법은 적멸(寂滅)이라고 하는데, 만약 생멸(生滅)을 행한다면, 이것은 생멸을 구하는 것이지 진정한 불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法名無染,若染於法,乃至涅槃,是則染著,非求法也;
진정한 불법은 물듦이 없는 것(無染)이라고 하는데, 만약 법에 물들고, 더 나아가 열반에 물든다면, 이것은 물들어 집착하는 것(染著)이지 진정한 불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法無行處,若行於法,是則行處,非求法也;
진정한 불법은 행하는 곳(行處)이 없는데, 만약 법을 행함이 있다면, 이것은 곧 행하는 곳이지 진정한 불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法無取捨,若取捨法,是則取捨,非求法也;
진정한 불법은 취하거나 버림이 없는데, 만약 법을 취하거나 버린다면, 이것은 취하거나 버리는 것이지 진정한 불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法無處所,若著處所,是則著處,非求法也;
진정한 불법은 처소가 없는데, 만약 처소에 집착한다면, 이것은 처소에 집착하는 것이지 진정한 불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法名無相,若隨相識,是則求相,非求法也;
진정한 불법은 상(相)이 없는 것(無相)이라고 하는데, 만약 상(相)에 따라 분별한다면, 이것은 상(相)을 구하는 것이지 진정한 불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法不可住,若住於法,是則住法,非求法也;
진정한 불법은 머물러서는 안 되는데, 만약 법에 머문다면, 이것은 법에 머무는 것이지 진정한 불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法不可見、聞、覺知,若行見、聞、覺知,是則見、聞、覺知,非求法也;
진정한 불법은 보고 듣고 감각하고 지각해서는 안 되는데, 만약 보고 듣고 감각하고 지각함을 행한다면, 이것은 보고 듣고 감각하고 지각하는 것이지 진정한 불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法名無為,若行有為,是求有為,非求法也。
진정한 불법은 무위(無爲)라고 하는데, 만약 유위를 행한다면, 이것은 유위를 구하는 것이지 진정한 불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是故,舍利弗!若求法者,於一切法,應無所求。」
그러므로 사리불님, 만약 진정한 불법을 구하는 사람이라면, 온갖 법에서 마땅히 구함이 없어야 합니다.”

說是語時,五百天子於諸法中得法眼淨。
이상과 같이 설했을 때 5백 명의 천인들은 온갖 법에 대하여 법안정(法眼淨)을 얻었다.

爾時長者維摩詰,問文殊師利:「仁者遊於無量千萬億阿僧祇國,何等佛土有好上妙
功德成就師子之座?」
그때에 장자 유마힐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그대는 무량천만억(無量千萬億) 아승기(阿僧祇) 불국토를 유행(遊行)하는데, 어느 불국토에 가장 훌륭하고 가장 묘한 공덕이 성취된 사자좌(師子座)가 있습니까?

文殊師利言:「居士!東方度三十六恒河沙國,有世界名須彌相,其佛號須彌燈王,今現在。彼佛身長八萬四千由旬,其師子座高八萬四千由旬,嚴飾第一。」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거사님! 이 세계로부터 동쪽 방향으로 36개 항하강들의 모래알 수만큼이나 많은 불국토를 지나서 수미상(須彌相)이라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 나라 부처님은 명호가 수미등왕(須彌燈王)이며 지금 현재도 설법 중이십니다. 그 부처님의 신장은 8만4천 유순(由旬)이며, 그 사자좌(師子座)의 높이도 8만4천 유순인데, 장식된 아름다움이 제일입니다.”

於是長者維摩詰現神通力,即時彼佛遣三萬二千師子座,高廣嚴淨,來入維摩詰室,
그리하여 장자 유마힐이 신통력을 나타내자, 즉시에 그 부처님이 3만2천 개의 높고 넓고 장엄하며 깨끗한 사자좌들을 보내, 유마힐의 방으로 들어왔다.

諸菩薩、大弟子、釋、梵、四天王等,昔所未見。其室廣博,悉皆包容三萬二千師子座,無所妨礙。於毘耶離城,及閻浮提四天下,亦不迫迮,悉見如故。
그 사자좌들은 보살들과 대제자들. 제석천. 범천. 4천왕 등이 이전에 본 적이 없는 것이었고, 그 방은 넓고도 커서 3만2천 개의 사자좌들을 다 받아들이고도 방해됨이 없었으며, 비야리성과 염부제(閻浮提) 4천하도 좁아지거나 답답해짐 없이 어디를 보아도 예전 그대로였다.

爾時維摩詰語文殊師利:「就師子座。」與諸菩薩上人俱坐,當自立身如彼座像。
그때에 유마힐이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사자좌에 앉으십시오. 모든 보살 상인(上人)들과 함께 앉으시되, 마땅히 스스로 자신을 저 사자좌상과 서로 맞추어 세워야 합니다.”

其得神通菩薩,即自變形為四萬二千由旬,坐師子座。
이미 신통력을 얻은 보살들은 곧 스스로 몸을 4만2천 유순의 높이로 변하게 해서 사자좌에 앉았다.

諸新發意菩薩及大弟子皆不能昇。
새로 발심한 보살들이나 대제자들은 아무도 올라갈 수 없었다.

爾時維摩詰語舍利弗:「就師子座。」
그때에 유마힐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사자좌에 오르십시오.”

舍利弗言:「居士!此座高廣,吾不能昇。」
사리불이 말하였다. “거사님! 이 자리는 높고 넓어 제가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維摩詰言:「唯,舍利弗!為須彌燈王如來作禮,乃可得坐。」
유마힐이 말하였다. “여보세요! 사리불님! 수미등왕여래(須彌燈王如來)께 예배하면 앉을 수 있습니다.

於是新發意菩薩及大弟子即為須彌燈王如來作禮,便得坐師子座。
그리하여 새로 발심한 보살과 대제자들이 수미등왕여래에게 예배하자 곧 사자좌에 앉을 수 있었다.

舍利弗言:「居士!未曾有也,如是小室,乃容受此高廣之座,於毘耶離城,無所妨礙,又於閻浮提聚落、城邑,及四天下諸天、龍王、鬼神宮殿,亦不迫迮。」
사리불이 말하였다. “거사님, 지금까지 없었던 일입니다. 이렇게 작은 방에 이렇게 높고 넓은 사자좌들을 받아들여도, 비야리성에 대해서 방해하는 것이 없고, 또 염부제의 마을과 성읍과 그리고 4천하의 모든 천상세계. 용. 귀신의 궁전에 대해서도 좁아지게 하지 않습니다.”

維摩詰言:「唯,舍利弗!諸佛菩薩,有解脫,名不可思議。若菩薩住是解脫者,以須彌之高廣內芥子中無所增減,須彌山王本相如故,而四天王、忉利諸天不覺不知己之所入,唯應度者乃見須彌入芥子中,是名住不思議解脫法門。
유마힐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사리불님! 모든 불보살에게는 하나의 해탈법문이 있는데 그것을 불가사의(不可思議)라고 부릅니다. 만약 보살이 이 해탈법문에 머무르면, 높고도 넓은 수미산을 겨자씨 안에 넣어도 그 겨자씨가 늘어나거나 수미산이 줄어드는 것이 없는데, 수미산의 본래 모습이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미산 중에 거주하는 4천왕이나 도리천(忉利天)의 모든 천인들은 자기가 겨자씨 안에 들어가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며, 오직 이런 신통을 보고 제도를 얻어야 할 자만이 수미산이 겨자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는데, 이것을 불가사의한 해탈법문이라고 이름 합니다.

又以四大海水入一毛孔,不嬈魚、鼈、黿、鼉水性之屬,而彼大海本相如故,諸龍、鬼神、阿修羅等,不覺不知己之所入,於此眾生亦無所嬈。
또 4대해(四大海)의 바닷물을 하나의 털구멍에 넣어도 물고기와 자라와 큰 자라, 악어 등의 수중 생물들을 괴롭히지 않는데, 저 대해는 본래 모습이 이와 같기 때문이며, 용. 귀신. 아수라들도 자기가 털구멍 속에 들어가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며, 이들 중생들에 대해서도 괴롭히는 일이 없습니다.


又,舍利弗!住不可思議解脫菩薩,斷取三千大千世界,如陶家輪,著右掌中,擲過恒河沙世界之外,其中眾生,不覺不知己之所往。又復還置本處,都不使人有往來想,而此世界本相如故。
또 사리불님,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무는 보살은 3천대천세계를 움켜쥐기를, 마치 도공이 흙덩이 하나를 파서 오른쪽 손바닥에 움켜쥐듯이 하여, 항하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세계들을 지나서 밖으로 내던져버리지만, 그 속의 중생들은 자기가 어디로 갔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합니다. 또 다시 본래 있던 곳에 되돌려놓아도 사람들로 하여금 갔다 왔다는 생각이 있게 하지 않는데, 이 세계의 본래 모습이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又,舍利弗!或有眾生,樂久住世而可度者,菩薩即延七日以為一劫,令彼眾生謂之一劫;
또 사리불님, 혹 어떤 중생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기에 그렇게 제도해야 할 사람이라면, 보살은 곧 7일을 1겁으로 늘려 그 중생으로 하여금 1겁이라고 말하게 합니다.

或有眾生不樂久住,而可度者,菩薩即促一劫以為七日,令彼眾生謂之七日。
혹은 어떤 중생이 오래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지 않기에 그렇게 제도해야 할 사람이라면, 보살은 곧 1겁을 7일로 줄여서 그 중생으로 하여금 7일이라고 말하게 합니다.

又,舍利弗!住不可思議解脫菩薩,以一切佛土嚴飾之事,集在一國,示於眾生。
또 사리불님,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무는 보살은 모든 불국토의 장엄한 사물들을 한 나라에 집중하여 중생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又菩薩以一佛土眾生置之右掌,飛到十方遍示一切,而不動本處。
또 보살은 한 불국토의 중생들을 오른쪽 손바닥에 올려놓고 시방세계로 날아다니며 그 중생들에게 온갖 불국토를 보여 주지만, 본래 있던 곳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又,舍利弗!十方眾生供養諸佛之具,菩薩於一毛孔,皆令得見。
또 사리불님, 시방의 중생들이 부처님들께 드리는 공양거리를 보살은 하나의 털구멍에서 다 볼 수 있게 합니다.

又十方國土所有日、月、星宿,於一毛孔普使見之。
또 시방세계에 있는 해와 달과 성좌(星座)들을 하나의 털구멍에서 두루 볼 수 있게 합니다.

又,舍利弗!十方世界所有諸風,菩薩悉能吸著口中,而身無損,外諸樹木,亦不摧折。
또 사리불님, 보살은 시방세계의 모든 바람을 남김없이 입 안에 빨아들여도 몸을 상하는 일이 없으며, 밖의 모든 나무들도 꺾어지지 않습니다.

又十方世界劫盡燒時,以一切火內於腹中,火事如故,而不為害。
또 시방세계의 겁수가 다하여 불탈 때, 모든 불을 뱃 속에 빨아들여도, 불타는 일은 여전하지만 아무런 해를 입지는 않습니다.

又於下方過恒河沙等諸佛世界,取一佛土,舉著上方,過恒河沙無數世界,如持鍼鋒舉一棗葉,而無所嬈。
또 아래쪽 방향으로 항하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부처님들의 세계를 지나, 한 불국토를 취하여 들고서 위쪽 방향으로 항하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불국토를 지나는 것이, 마치 대추나무 잎사귀 하나를 바늘 끝으로 찔러 드는 것처럼 가뿐하지만, 중생들은 괴롭힘을 받는 일이 없습니다.

又,舍利弗!住不可思議解脫菩薩,能以神通現作佛身,或現辟支佛身,或現聲聞身,或現帝釋身,或現梵王身,或現世主身,或現轉輪王身。
또 사리불님,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무는 보살은 신통력으로 부처의 몸을 나타내거나, 성문의 몸을 나타내거나, 벽지불의 몸을 나타내거나, 제석천의 몸을 나타내거나, 범천의 몸을 나타내거나, 인간세상의 왕의 몸을 나타내거나, 전륜성왕의 몸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又十方世界所有眾聲,上中下音,皆能變之,令作佛聲,演出無常、苦、空、無我之音。及十方諸佛所說種種之法,皆於其中普令得聞。
또 시방세계의 모든 갖가지 소리들을, 그것이 높은 소리이거나 중간 소리이거나 낮은 소리이거나, 모두 부처님의 음성으로 바뀌게 하여, 무상(無常). 고(苦). 공(空). 무아(無我)의 가르침의 소리와,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설하신 갖가지 가르침을 연출하여, 다 그 소리 속에서 널리 듣게 할 수 있습니다.

舍利弗!我今略說菩薩不可思議解脫之力,若廣說者,窮劫不盡。」
사리불님! 내가 지금 보살의 불가사의한 해탈의 힘에 관하여 간략하게 말하였는데, 만약 자세히 말하고자 한다면 한 겁수의 시간을 다하여도 다 말할 수 없습니다.”

是時大迦葉聞說菩薩不可思議解脫法門,歎未曾有,
이때에 대가섭(大迦葉)이 보살의 불가사의한 해탈법문을 설하는 것을 듣고는 여태까지 이런 일들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찬탄했다.

謂舍利弗:「譬如有人,於盲者前現眾色像,非彼所見;一切聲聞聞是不可思議解脫法門,不能解了,為若此也!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장님 앞에 여러 가지 색상(色像)을 펼쳐 나타내도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이, 모든 성문은 이 불가사의한 해탈의 법문을 들어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智者聞是,其誰不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我等何為永絕其根,於此大乘,已如敗種!一切聲聞聞是不可思議解脫法門,皆應號泣,聲震三千大千世界;一切菩薩應大欣慶,頂受此法。若有菩薩信解不可思議解脫法門者,一切魔眾無如之何。」
지혜로운 자라면 그 누가 이를 듣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어찌하여 이 선근을 영원히 끊어버릴까요? 이 대승에 있어서 이미 썩은 종자와 같은 모든 성문은 누구나 이 불가사의한 해탈의 법문을 들으면 응당 큰 소리로 목놓아 울어서, 그 울음소리는 3천대천세계를 진동시켜야 합니다. 모든 보살은 응당 이 법을 크게 기뻐하고 경사로 여기며 머리꼭대기에 이고 받아야 합니다. 만약 어떤 보살이 불가사의한 해탈의 법문을 믿고 이해한다면 모든 마군의 무리가 그를 어찌하지 못합니다.

大迦葉說是語時,三萬二千天子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대가섭이 이렇게 말하였을 때 3만2천 명의 천인들은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다.

爾時維摩詰語大迦葉:「仁者!十方無量阿僧祇世界中作魔王者,多是住不可思議解脫菩薩。以方便力,教化眾生,現作魔王。
그때에 유마힐은 대가섭에게 말하였다. “그대여! 시방의 무량아승기의 세계에서 마왕이 된 자의 대부분은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무르는 보살들입니다. 그들은 방편의 힘으로써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마왕의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又,迦葉!十方無量菩薩,或有人從乞手足耳鼻、頭目髓腦、血肉皮骨、聚落城邑、妻子奴婢、象馬車乘、金銀琉璃、車磲、馬碯、珊瑚、琥珀、真珠珂貝、衣服飲食,如此乞者,多是住不可思議解脫菩薩,以方便力,而往試之,令其堅固。
또 가섭님, 시방의 무량한 보살이나 어떤 사람이 그에게 손. 발. 귀. 코, 머리. 눈. 뇌수, 피. 살. 가죽. 뼈, 마을. 성. 읍. 아내. 자식. 하인. 하녀와, 코끼리. 말수레나, 온갖 탈것들, 금. 은. 유리. 차거. 마노. 산호. 호박. 진주, 의복. 음식 등을 구걸한다면, 이와 같이 구걸하는 사람은 대부분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무는 보살들로서, 방편의 힘으로써 그에게 가서 시험하고, 그로 하여금 견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所以者何?住不可思議解脫菩薩,有威德力,故現行逼迫,示諸眾生,如是難事;凡夫下劣,無有力勢,不能如是逼迫菩薩。譬如龍象蹴踏,非驢所堪,是名住不可思議解脫菩薩智慧方便之門。」

왜냐하면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무는 보살은 위덕의 힘을 갖추고 있기에 핍박을 행하여 중생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려운 일은 범부는 하열하고 세력이 없어서 이와 같이 보살을 핍박할 수 없습니다. 비유하면 용이나 코끼리가 밟는 것은 당나귀가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무는 보살의 지혜의 방편이라고 합니다.”























《維摩詰所說經》觀眾生品第七








爾時文殊師利問維摩詰言:「菩薩云何觀於眾生?」
그때에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보살은 중생을 어떻게 관합니까?”

維摩詰言:「譬如幻師,見所幻人,菩薩觀眾生為若此。如智者見水中月,如鏡中見其面像,如熱時焰,如呼聲響,如空中雲,如水聚沫,如水上泡,如芭蕉堅,如電久住,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예를 들면, 마술사가 마술로써 만들어 낸 사람을 보는 것과 같이, 보살이 중생을 관하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물속의 달을 보는 것과 같이, 거울 속에서 자기의 얼굴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이, 더운 날의 아지랑이와 같이, 부르는 소리의 메아리와 같이, 허공중의 뜬구름과 같이, 물거품덩이와 같이, 물위의 거품방울과 같이, 파초의 단단함과 같이, 번개가 오래 머무는 것과 같이,

如第五大,如第六陰,如第七情,如十三入,如十九界,菩薩觀眾生為若此。
제5대(第五大)와 같이, 제6음(第六陰)과 같이, 제7정(第七情)과 같이, 제13입(十三入)과 같이, 제19계(十九界)와 같이, 보살이 중생을 관하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如無色界色,如焦穀牙,
무색계(無色界)의 물질(色)과 같이, 불에 그슬린 곡식의 싹과 같이,

如須陀洹身見,
수다원(須陀洹)의 신견(身見)과 같이,

如阿那含入胎,
아나함이 다시 태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如阿羅漢三毒,
아라한의 3독(毒)과 같이,

如得忍菩薩貪恚毀禁,
인욕바라밀을 얻은 보살이 탐욕하고 원망하여 계율을 범하는 것과 같이,

如佛煩惱習,
부처님의 번뇌습기와 같이,

如盲者見色,
장님이 색깔을 보는 것과 같이,

如入滅盡定出入息,
멸진정에 들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과 같이,

如空中鳥跡,
공중을 날아간 새의 자취와 같이,

如石女兒,
석녀(石女)의 아이와 같이,

如化人起煩惱,
사람 그림자의 번뇌와 같이,

如夢所見已寤,
자기가 이미 깨었음을 꿈속에서 보는 것과 같이,

如滅度者受身,
열반한 자가 다시 몸을 받는 것과 같이,

如無烟之火,
연기 없는 불과 같이,

菩薩觀眾生為若此。」
보살이 중생을 관함은 이와 같습니다.”

文殊師利言:「若菩薩作是觀者,云何行慈?」
문수사리가 물었다.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관한다면, 어떻게 자(慈)를 행합니까?”

維摩詰言:「菩薩作是觀已,自念:『我當為眾生說如斯法。』是即真實慈也。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보살은 이와 같이 관을 하고 나서 스스로 사념하기를, ‘나는 마땅히 중생을 위하여 이와 같은 법을 설해야 한다. 이것이 진실한 자(慈)이다’라고 합니다.

行寂滅慈,無所生故;
적멸의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생겨남이 없기 때문입니다.

行不熱慈,無煩惱故;
뜨겁지 않는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번뇌가 없기 때문입니다.

行等之慈,等三世故;
평등한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3세가 없기 때문입니다.

行無諍慈,無所起故;
논쟁이 없는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논쟁이 일어남이 없기 때문입니다.

行不二慈,內外不合故;
둘이 아닌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안과 밖이 서로 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行不壞慈,畢竟盡故;
무너지지 않는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만유현상은 끝내는 무너져 다하기 때문입니다.

行堅固慈,心無毀故;
견고한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자심(慈心)이 파괴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行清淨慈,諸法性淨故;
청정한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온갖 법성은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行無邊慈,如虛空故;
끝없는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허공처럼 끝없기 때문입니다.

行阿羅漢慈,破結賊故;
아라한의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번뇌의 도적을 파괴하였기 때문입니다.

行菩薩慈,安眾生故;
보살의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온갖 중생을 안락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行如來慈,得如相故;
여래의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온갖 법의 진실한 모습(如相)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行佛之慈,覺眾生故;
부처님의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중생을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行自然慈,無因得故;
자연스러운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원인 없이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行菩提慈,等一味故;
보리의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평등하여 일미(一味)이기 때문입니다.

行無等慈,斷諸愛故;
대등할 것이 없는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온갖 욕애를 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行大悲慈,導以大乘故;
대비(大悲)의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대승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行無厭慈,觀空無我故;
만족함이 없는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무아(無我)의 공(空)을 관하기 때문입니다.

行法施慈,無遺惜故;
법보시(法施)의 자를 행하는 것이니, 남겨 두어 아까워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行持戒慈,化毀禁故;
지계(持戒)의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계율을 범한 자(毁禁)들을 교화하기 때문입니다.

行忍辱慈,護彼我故;
인욕(忍辱)의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남과 나를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行精進慈,荷負眾生故;
정진(精進)의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중생을 교화 제도하는 무거운 짐을 지기 때문입니다.

行禪定慈,不受味故;
선정(禪定)의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선열미(禪悅味)에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行智慧慈,無不知時故;
지혜(智慧)의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올바른 때를 모르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行方便慈,一切示現故;
방편(方便)의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온갖 모습으로 나타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行無隱慈,直心清淨故;
숨김이 없는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곧은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行深心慈,無雜行故;
깊은 마음의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다른 것이 섞임이 없는 행이기 때문입니다.

行無誑慈,不虛假故;
속임이 없는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허위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行安樂慈,令得佛樂故。
안락한 자(慈)를 행하는 것이니, 중생에게 부처님의 안락을 얻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菩薩之慈,為若此也。」
보살의 자(慈)는 이상과 같습니다.

文殊師利又問:「何謂為悲?」答曰:「菩薩所作功德,皆與一切眾生共之。」
문수사리가 또 물었다. “무엇을 비(悲)라고 합니까?”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보살이 지은 공덕을 다 모든 중생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何謂為喜?」答曰:「有所饒益,歡喜無悔。」
“무엇을 희(喜)라고 합니까?” 답하였다. “남을 이롭게 함이 있다면, 기뻐하고 후회하지 않는 것입니다.”

「何謂為捨?」答曰:「所作福祐,無所悕望。」
“무엇을 사(捨)라고 합니까?” 답하였다. “지은 복덕에 대해, 희구하고 바라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文殊師利又問:「生死有畏,菩薩當何所依?」
문수사리가 또 물었다. “생사에 두려움이 있는 보살은 무엇에 의지해야 합니까?

維摩詰言:「菩薩於生死畏中,當依如來功德之力。」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보살이 생사의 두려움에 있을 때에는 여래의 공덕의 힘에 의지해야 합니다.”

文殊師利又問:「菩薩欲依如來功德之力,當於何住?」
문수사리가 또 물었다. “보살이 부처님의 공덕의 힘에 의지하고자 할 때에는 어디에 머물러야 합니까?”

答曰:「菩薩欲依如來功德力者,當住度脫一切眾生。」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보살이 여래의 공덕의 힘에 의지하고자 할 때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시키는 일에 머물러야 합니다.”

又問:「欲度眾生,當何所除?」
또 물었다. “중생을 제도 해탈시키고자 한다면 무엇을 제거해야 합니까?”

答曰:「欲度眾生,除其煩惱。」
답하였다. “중생을 제도 해탈시키고자 한다면 그 번뇌를 제거해야 합니다.”

又問:「欲除煩惱,當何所行?」
또 물었다. “번뇌를 제거하고자 하면 무엇을 행해야 합니까?”

答曰:「當行正念。」
답하였다. 정념(正念)을 행해야 합니다.

又問:「云何行於正念?」
또 물었다. “어떻게 하면 정념을 행할 수 있습니까?”

答曰:「當行不生不滅。」
답하였다. “생겨나지 않음과 소멸하지 않음을 행해야 합니다.”

又問:「何法不生?何法不滅?」
또 물었다. “어떤 법이 생겨나지 않습니까? 어떤 법이 소멸하지 않습니까?”

答曰:「不善不生,善法不滅。」
답하였다. “불선(不善)은 생겨나지 않고, 선법(善法)은 소멸하지 않습니다.”

又問:「善不善孰為本?」
또 물었다. “선과 불선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答曰:「身為本。」
답하였다. “몸(身)을 근본으로 합니다.”

又問:「身孰為本?」
또 물었다. “몸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答曰:「欲貪為本。」
답하였다. “욕탐을 근본으로 합니다.”

又問:「欲貪孰為本?」
또 물었다. “욕탐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答曰:「虛妄分別為本。」
답하였다. “허망한 분별을 근본으로 합니다.”

又問:「虛妄分別孰為本?」
또 물었다. “허망한 분별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答曰:「顛倒想為本。」
답하였다. “전도된 생각(顚倒想)을 근본으로 합니다.”

又問:「顛倒想孰為本?」
또 물었다. “전도된 생각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答曰:「無住為本。」
답하였다. “머무름이 없음(無住)을 근본으로 합니다.”

又問:「無住孰為本?」
또 물었다. “머무름이 없음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答曰:「無住則無本。文殊師利!從無住本,立一切法。」
답하였다. “머무름이 없음은 근본이 없습니다. 문수사리님, 이 머무름이 없음이 근본이 되어 온갖 법(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時維摩詰室有一天女,見諸大人聞所說法,便現其身,即以天華,散諸菩薩、大弟子上。華至諸菩薩,即皆墮落,至大弟子,便著不墮。一切弟子神力去華,不能令去。
그때에 유마힐의 방안에는 한 천녀(天女)가 있어서, 여러 보살. 성문. 천인들이 유마거사가 설법하는 것을 듣는 것을 보고는 곧 몸을 나타내 하늘 꽃을 보살들과 부처님의 대제자들 위에 뿌렸다. 꽃이 보살들에 이르러서는 곧 모두 떨어져 버렸지만, 대제자들에 이르러서는 그들의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제자들은 신통력으로 꽃을 떼어내려 하였으나 떼어낼 수 없었다.

爾時天女問舍利弗:「何故去華?」答曰:「此華不如法,是以去之。」
그때에 천녀가 사리불에게 물었다. “왜 꽃을 떼어내려고 하십니까?”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이 꽃은 법답지(如法) 못하므로 떼어내려고 합니다.”

天曰:「勿謂此華為不如法。所以者何?是華無所分別,仁者自生分別想耳!
천녀가 말하였다. “이 꽃을 법답지 못하다고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이 꽃은 아무런 분별이 없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분별하는 생각을 일으킨 것일 뿐입니다.

若於佛法出家,有所分別,為不如法;若無所分別,是則如法。
만약 불법에 의지하여 출가하고서 분별하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법답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분별함이 없다면, 그것은 법다운 것입니다.

觀諸菩薩華不著者,已斷一切分別想故。
저 보살들을 보십시오, 꽃이 달라붙지 않는 것은 이미 분별하는 생각을 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譬如人畏時,非人得其便;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두려운 마음이 있을 때에는 귀신 등의 비인(非人)이 그를 이용할 틈새를 얻기 쉬운 것과 같습니다.

如是弟子畏生死故,色、聲、香、味、觸得其便也。
이와 같이 제자들은 생사를 두려워하고 있으므로, 색. 성. 향. 미. 촉이 이용할 틈새를 얻는 것입니다.

已離畏者,一切五欲無能為也;
이미 두려움을 떠난 사람에 대하여는 모든 5욕이 그를 어찌 할 수 없습니다.

結習未盡,華著身耳!結習盡者,華不著也。」
번뇌의 습기(結習)가 아직 끊어져 다하지 않아 꽃이 몸에 달라붙은 것뿐입니다. 번뇌의 습기가 끊어져 다한 이는 꽃이 달라붙지 않습니다.”

舍利弗言:「天止此室,其已久如?」
사리불이 말하였다. “그대 천녀는 이 방에 머문 지는 이미 얼마나 오래되었습니까?”

答曰:「我止此室,如耆年解脫。」
천녀가 답하였다. “제가 이 방에 머문 지는, 나이 많고 덕망이 있는 장로(耆年)께서 해탈하신 것만큼 오래되었습니다.”

舍利弗言:「止此久耶?」
사리불이 말하였다. “여기에 머문 지가 오래되셨군요?”

天曰:「耆年解脫,亦何如久?」
천녀가 답하였다. “장로께서 해탈하신 지도 얼마나 오래되셨습니까?”

舍利弗默然不答。
사리불은 묵묵히 대답하지 않았다.

天曰:「如何耆舊大智而默?」
천녀가 말하였다. “왜 장로께서는 큰 지혜가 있으면서도 침묵하십니까?”

答曰:「解脫者無所言說,故吾於是不知所云。」
사리불이 답하였다. “해탈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에,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天曰:「言說文字,皆解脫相。
천녀가 말하였다. “언어와 문자야말로 모두가 해탈의 모습입니다.

所以者何?解脫者,不內、不外,不在兩間,文字亦不內不外,不在兩間。是故,舍利弗!無離文字說解脫也。
왜냐하면 해탈이란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으며 그 둘 사이에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자도 이와 같아서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으며 그 둘 사이에도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리불님, 문자를 떠나서 해탈을 말하지 마십시오.

所以者何?一切諸法是解脫相。」
왜냐하면 온갖 모든 법은 그대로가 해탈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舍利弗言:「不復以離婬、怒、癡為解脫乎?」
사리불은 말하였다. “그렇다면 음욕(婬)과 분노(怒)와 어리석음(癡)을 떠나지 않은 것도 해탈이 아니겠습니까?”

天曰:「佛為增上慢人,說離婬、怒、癡為解脫耳;若無增上慢者,佛說婬、怒、癡性,即是解脫。」
천녀가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증상만이 있는 사람을 위해서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떠나는 것이 해탈이라고 설하셨을 뿐입니다. 만약 증상만이 없는 자라면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자성이 곧 그대로 해탈이라고 하셨습니다.”

舍利弗言:「善哉,善哉!天女!汝何所得?以何為證?辯乃如是!」
사리불이 말하였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천녀여, 그대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깨달았기에 변재가 이와 같습니까?”

天曰:「我無得無證,故辯如是。所以者何?若有得有證者,即於佛法為增上慢。」
천녀가 대답하였다. “저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고, 깨달은 것도 없기 때문에 변재가 이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얻었다든가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은 불법에서는 증상만이 되기 때문입니다.

舍利弗問天:「汝於三乘,為何志求?」
사리불이 천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3승(三乘) 가운데 어느 것을 구할 뜻이 있습니까?”

天曰:「以聲聞法化眾生故,我為聲聞;以因緣法化眾生故,我為辟支佛;以大悲法化眾生故,我為大乘。
천녀가 대답하였다. “성문법으로 중생을 교화하므로 저는 성문이 되기도 하며, 12인연법으로 중생을 교화하므로 저는 벽지불이 되기도 하며, 대비법(大悲法)으로 중생을 교화하므로 저는 대승이 되기도 합니다.

舍利弗!如人入瞻蔔林,唯嗅瞻蔔,不嗅餘香。
사리불이여, 마치 첨복(瞻蔔) 숲에 들어가면, 오직 첨복의 향기만 맡을 뿐, 다른 향기는 맡을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如是,若入此室,但聞佛功德之香,不樂聞聲聞、辟支佛功德香也。
이와 같이, 만약 이 방에 들어오면 오직 부처님의 공덕의 향기만 맡을 뿐, 성문이나 벽지불의 공덕의 향기를 맡기를 즐겨하지 않습니다.

舍利弗!其有釋、梵、四天王,諸天、龍、鬼神等,入此室者,聞斯上人講說正法,皆樂佛功德之香,發心而出。
사리불이여, 제석천왕. 대범천왕. 4천왕천. 기타 여러 천신들. 용(龍). 귀(鬼). 신(神) 등으로서 이 방에 들어온 자는 이 유마힐 상인(上人)이 강설하는 정법을 듣고, 모두가 부처님 공덕의 향기를 즐기며 대승심을 일으킨 다음에 방을 나갑니다.

舍利弗!吾止此室,十有二年,初不聞說聲聞、辟支佛法,但聞菩薩大慈大悲,不可思議諸佛之法。
사리불이여, 저는 이 방에 머문 지가 이미 12년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성문과 벽지불의 법을 설하는 것을 듣지 않았고, 오직 보살의 대자대비와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들의 법만을 들어 왔습니다.

舍利弗!此室常現八未曾有難得之法。
사리불이여, 이 방에는 아직까지 있은 적이 없었던 얻기 어려운 법 여덟 가지가 항상 나타납니다.

何等為八?此室常以金色光照,晝夜無異,不以日月所照為明,是為一未曾有難得之法;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이 방은 항상 금색 빛이 비추어 낮과 밤이 다름이 없으며, 해와 달이 비춤을 밝음으로 삼지 않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아직까지 있은 적이 없었던 얻기 어려운 법입니다.

此室入者,不為諸垢之所惱也,是為二未曾有難得之法;
이 방에 들어온 자는 온갖 번뇌에 의해 괴롭혀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아직까지 있은 적이 없었던 얻기 어려운 법입니다.

此室常有釋梵四天王、他方菩薩來會不絕,是為三未曾有難得之法;
이 방에는 항상 제석천주. 대범천왕. 4천왕천, 그리고 타방국토의 보살들이 끊임없이 와서 모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 아직까지 있은 적이 없었던 얻기 어려운 법입니다.

此室常說六波羅蜜不退轉法,是為四未曾有難得之法;
이 방에서는 항상 6바라밀과 불퇴전(不退轉)의 법을 설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네 번째 아직까지 있은 적이 없었던 얻기 어려운 법입니다.

此室常作天人第一之樂,絃出無量法化之聲,是為五未曾有難得之法;
이 방에서는 항상 천인의 제일가는 음악을 지어, 한량없는 불법 교화의 소리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아직까지 있은 적이 없었던 얻기 어려운 법입니다.

此室有四大藏,眾寶積滿,賙窮濟乏,求得無盡,是為六未曾有難得之法;
이 방에는 네 개의 크나큰 창고가 있는데, 온갖 보배가 가득 차 있어서 궁핍을 구제하되 구하는 대로 얻게 하여도 다함이 없습니다. 이것이 여섯 번째 아직까지 있은 적이 없었던 얻기 어려운 법입니다.

此室釋迦牟尼佛、阿彌陀佛、阿閦佛、寶德、寶炎、寶月、寶嚴、難勝、師子響、一切利成,如是等十方無量諸佛,是上人念時,即皆為來,廣說諸佛秘要法藏,說已還去,是為七未曾有難得之法;
이 방에는,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아촉불. 보덕. 보염. 보월. 보엄. 난승. 사자향. 일체리성 등 이와 같은 시방의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들이 이 유마힐 상인이 염(念)할 때면 곧 모두 오셔서, 모든 부처님의 비밀한 요체의 법장(秘要法藏)을 널리 설하시고, 설하시고나서는 되돌아가십니다. 이것이 일곱 번째 아직까지 있은 적이 없었던 얻기 어려운 법입니다.

此室一切諸天嚴飾宮殿,諸佛淨土,皆於中現,是為八未曾有難得之法。
이 방에는 모든 천상세계의 장엄하고 화려한 궁전이나 모든 부처님들의 정토가 다 그 가운데 나타납니다. 이것이 여덟 번째 아직까지 있은 적이 없었던 얻기 어려운 법입니다.

舍利弗!此室常現八未曾有難得之法,誰有見斯不思議事,而復樂於聲聞法乎?」
사리불이여, 이 방에는 여덟 가지 아직까지 있은 적이 없었던 얻기 어려운 법이 항상 나타나는데, 누가 이런 불가사의한 일을 보고서도 다시 성문법을 즐길까요?”

舍利弗言:「汝何以不轉女身?」
사리불이 말했다. “그대는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습니까?”

天曰:「我從十二年來,求女人相了不可得。當何所轉?
천녀가 대답하였다. “저는 지난 12년 동안 여인의 상(相)을 구해 보았지만 마침내 얻을 수 없었는데, 무엇을 바꾸어야 한단 말입니까?

譬如幻師化作幻女,若有人問:『何以不轉女身?』是人為正問不?」
예컨대 마술사가 마술로써 허깨비 여인을 만들어냈는데, 만약 어떤 사람이 묻기를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는가?’ 라고 묻는다면, 이 사람은 바르게 질문한 것일까요?”

舍利弗言:「不也!幻無定相,當何所轉?」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허깨비에게는 정해진 상(定相)이 없는데 어디를 바꾸어야겠습니까?”

天曰:「一切諸法亦復如是,無有定相,云何乃問不轉女身?」
천녀가 말하였다. “온갖 법도 이와 같아서 정해진 상이 없는데,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느냐고 물으십니까?”

即時天女以神通力,變舍利弗令如天女,天自化身如舍利弗,而問言:「何以不轉女身?」
즉시 천녀는 신통력으로 사리불을 천녀와 같은 모습으로 바꾸고, 천녀 자신은 몸을 사리불과 같은 모습으로 바꾸고는 물었다.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으십니까?”

舍利弗以天女像而答言:「我今不知何轉而變為女身?」
사리불이 천녀의 모습을 하고 답하였다. “나는 지금 어떻게 여인의 몸으로 바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天曰:「舍利弗!若能轉此女身,則一切女人亦當能轉。
천녀가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만약 당신이 그 여인의 몸을 바꿀 수가 있으면, 모든 여인들도 응당 몸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如舍利弗非女而現女身,一切女人亦復如是,雖現女身,而非女也。
사리불께서 여인이 아니지만 여인의 몸을 나타내고 있는 것과 같이, 모든 여인들도 이와 같아서, 비록 여인의 몸을 나타내고 있지만 여인은 아닙니다.

是故佛說一切諸法非男、非女。」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온갖 법은 ‘남자도 아니며 여자도 아니다’라고 설하신 것입니다.”

即時天女還攝神力,舍利弗身還復如故。
천녀는 곧 신통력을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사리불의 몸은 본래와 같이 되었다.

天問舍利弗:「女身色相,今何所在?」
천녀는 사리불에게 물었다. “여인의 몸 색상(色相)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舍利弗言:「女身色相,無在無不在。」
사리불이 답하였다. “여인의 몸 색상은 있는 곳도 없고 있지 않는 곳도 없습니다.”

天曰:「一切諸法,亦復如是,無在無不在。夫無在無不在者,佛所說也。」
천녀가 말하였다. “온갖 법도 이와 같아서, 있는 곳도 없고 있지 않는 곳도 없습니다. 있는 곳도 없고 있지 않는 곳도 없다는 것은 부처님이 설하신 것입니다.”

舍利弗問天:「汝於此沒,當生何所?」
사리불이 천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곳에서 죽으면 어디에 가서 태어날 것입니까?

天曰:「佛化所生,吾如彼生。」
천녀가 말하였다. “부처님의 화신이 태어나시는 것처럼 저도 그렇게 태어납니다.

曰:「佛化所生,非沒生也。」
사리불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화신으로 태어나시는 것은, 죽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지요?”

天曰:「眾生猶然,無沒生也。」
천녀가 말하였다. “중생도 그와 같아서 죽어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舍利弗問天:「汝久如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사리불이 천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앞으로 얼마나 오래 지나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까?”

天曰:「如舍利弗還為凡夫,我乃當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천녀가 말하였다. “만약 사리불께서 범부로 되돌아간다면, 저는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입니다.”

舍利弗言:「我作凡夫,無有是處。」
사리불이 말하였다. “4과 나한을 증득한 내가 범부로 되돌아가는 것은 그럴 도리가 없습니다.”

天曰:「我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亦無是處。所以者何?菩提無住處,是故無有得者。」
천녀가 말하였다. “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도 그럴 도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보리(菩提)는 머무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얻는다는 것도 없습니다.”

舍利弗言:「今諸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已得當得,如恒河沙,皆謂何乎?」
사리불이 말하였다. “현재에 모든 부처님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고, 과거에 이미 얻은 부처님들과 미래에 얻을 부처님들이, 항하강의 모래알 수처럼 많다는 것은 다 무엇을 말합니까?”

天曰:「皆以世俗文字數故,說有三世,非謂菩提有去來今。」
천녀가 말하였다. “이것은 모두 세속의 문자와 숫자를 빌렸기 때문에 3세가 있다고 설한 것이지, 보리에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天曰:「舍利弗!汝得阿羅漢道耶?」
천녀는 물었다. “사리불이여, 당신은 아라한도를 얻었습니까?”

曰:「無所得故而得。」
사리불이 말하였다.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얻었습니다.”

天曰:「諸佛、菩薩亦復如是,無所得故而得。」
천녀는 말하였다. “모든 불보살님도 이와 같아서,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얻었습니다.”

爾時維摩詰語舍利弗:「是天女已曾供養九十二億佛,已能遊戲菩薩神通,所願具足,得無生忍,住不退轉;以本願故,隨意能現,教化眾生。」
그때에 유마힐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이 천녀는 지금까지 92억 분의 부처님들께 공양을 올렸고, 이미 보살의 신통에 유희할 수 있으며, 소원을 모두 이루었고, 무생법인을 증득하였으며, 이미 불퇴전의 경지에 머무르고 있으며, 그 본원력 때문에 뜻대로 갖가지 모습을 나타내어 갖가지 중생을 교화할 수 있습니다.”






















《維摩詰所說經》佛道品第八







爾時文殊師利問維摩詰言:「菩薩云何通達佛道?」
그때에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보살은 어떻게 해야 불도(佛道)에 통달합니까?”

維摩詰言:「若菩薩行於非道,是為通達佛道。」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만약 보살이 비도(非道)를 행한다면, 이것이 불도에 통달하는 것입니다.”

又問:「云何菩薩行於非道?」
또 문수사리가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비도를 행하는 것입니까?”

答曰:「若菩薩行五無間,而無惱恚;至于地獄,無諸罪垢;
유마힐이 답하였다. “만약 보살이 5무간죄를 짓더라도 번뇌와 성냄이 없고, 지옥도에 들어가더라도 모든 죄악의 더러움이 없습니다.

至于畜生,無有無明憍慢等過;
축생도에 들어가더라도 무명(無明)과 교만심 등의 허물이 없습니다.

至于餓鬼,而具足功德;
아귀도에 들어가더라도 공덕을 갖추고 있으며,

行色、無色界道,不以為勝。
색계나 무색계의 청정한 도를 행하더라도, 뛰어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示行貪欲,離諸染著;
탐욕하는 행위를 나타내 보이더라도 모든 집착을 떠났습니다.

示行瞋恚,於諸眾生,無有恚閡;
성내는 행위를 나타내 보이더라도, 모든 중생에 대하여 진정으로 성내고 장애를 끼침이 없습니다.

示行愚癡,而以智慧,調伏其心。
어리석은 행위를 나타내 보이더라도 지혜로써 중생의 마음을 다스립니다.

示行慳貪,而捨內外所有,不惜身命;
간탐하는 행위를 나타내 보이더라도 안과 밖의 모든 것을 버려서, 몸과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습니다.

示行毀禁,而安住淨戒,乃至小罪,猶懷大懼;
계율을 범하는 행위를 나타내 보이더라도 청정한 계율에 안주하고, 심지어 작은 죄에도 오히려 큰 두려움을 품습니다.

示行瞋恚,而常慈忍;
분노하는 행위를 나타내 보이더라도 항상 자비롭게 참습니다.

示行懈怠,而懃修功德;
게으른 행위를 나타내 보이더라도 부지런히 공덕을 닦습니다.

示行亂意,而常念定;
산란한 마음의 행위를 나타내 보이더라도 언제나 선정 중에 있습니다.

示行愚癡,而通達世間、出世間慧;
어리석은 행위를 나타내 보이더라도 세간과 출세간의 지혜에 통달해 있습니다.

示行諂偽,而善方便,隨諸經義;
아첨하거나 거짓된 행위를 나타내 보이더라도 훌륭한 방편으로 모든 경전들의 의미에 따릅니다.

示行憍慢,而於眾生,猶如橋梁;
교만한 행위를 나타내 보이더라도 중생에게는 마치 교량과 같습니다.

示行諸煩惱,而心常清淨;
온갖 번뇌의 행위들을 나타내 보이더라도 마음은 항상 청정합니다.

示入於魔,而順佛智慧,不隨他教;
마군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더라도 부처님의 지혜에 따르지 다른 가르침에는 따르지 않습니다.

示入聲聞,而為眾生,說未聞法;
성문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더라도 중생을 위하여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한 대승의 묘법을 설합니다.

示入辟支佛,而成就大悲,教化眾生;
벽지불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더라도 대자비를 이룩하여 중생을 교화합니다.

示入貧窮,而有寶手,功德無盡;
가난한 모습을 나타내 보이더라도 보배손이 있어 보시하는 공덕이 다함이 없습니다.

示入刑殘,而具諸相好,以自莊嚴;
신체장애자의 모습을 나타내어 보이더라도 내면에는 모든 상호(相好)공덕을 갖추어 자신의 몸을 장엄했습니다.

示入下賤,而生佛種姓中,具諸功德;
하천한 집안이나 계급으로 태어남을 나타내 보이더라도 항상 부처의 종성 가운데 태어나서 온갖 공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示入羸劣醜陋,而得那羅延身,一切眾生之所樂見;
빼빼마르고 약하며 못생기고 온전하지 않은 모습을 나타내 보이더라도 이미 금강불괴(金剛不壞)의 몸을 얻어서 모든 중생이 즐겨 바라보는 대상이 됩니다.

示入老病,而永斷病根,超越死畏;
늙고 병든 모습을 나타내 보이더라도 이미 영원히 병의 뿌리를 끊고 죽음의 두려움을 초월했습니다.

示有資生,而恒觀無常,實無所貪;
생계를 도모하고 있음을 나타내 보이더라도 항상 무상(無常)을 관하여 실제로 탐내는 것이 없습니다.

示有妻妾采女,而常遠離五欲淤泥;現於訥鈍,而成就辯才,總持無失;
아내와 첩과 채녀(采女)가 있음을 나타내 보이더라도 항상 5욕의 수렁을 멀리 떠나 있고, 어눌하고 주춤하는 것같이 보이면서도 변재(辯才)와 총지(總持)를 성취하여 잃음이 없습니다.

示入邪濟,而以正濟,度諸眾生;現遍入諸道,而斷其因緣;現於涅槃,而不斷生死。
사악한 수단으로 제도하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더라도 정당한 길로 온갖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며, 6도에 두루 들어가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더라도 그 생사의 인연을 끊었고, 열반에 드는 것을 나타내 보이더라도 생사를 끊어 없애지는 않습니다.

文殊師利!菩薩能如是行於非道,是為通達佛道。」
문수사리님, 보살이 이상과 같이 비도(非道)를 행할 수 있다면, 이것이 불도에 통달하는 것입니다.”

於是維摩詰問文殊師利:「何等為如來種?」
그리하여 유마힐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무엇을 여래의 씨앗(如來種)이라고 합니까?”

文殊師利言:「有身為種,無明有愛為種,貪恚礙為種,四顛倒為種,五蓋為種,六入為種,七識處為種,八邪法為種,九惱處為種,十不善道為種。以要言之,六十二見及一切煩惱,皆是佛種。」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몸이 있음(有身)이 여래의 씨앗이며, 무명(無明)과 유애(有愛)가 씨앗이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씨앗이며, 4전도(四顚倒)와 5개(五蓋)가 씨앗이며, 6입(六入)이 씨앗이며, 7식처(七識處)가 씨앗이며, 8사법(八邪法)이 씨앗이며, 9뇌처(九惱處)가 씨앗이며, 10불선도(十不善道)가 씨앗이니, 요약하여 말하면 62견과 온갖 번뇌가 모두 부처의 씨앗입니다.

曰:「何謂也?」答曰:「若見無為入正位者,不能復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그것은 무슨 말입니까?”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만약 무위(無爲)를 보고 정위(正位)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다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譬如高原陸地,不生蓮華,卑濕淤泥乃生此華;
비유하면 고원의 육지에서는 연꽃이 생장하지 않지만, 낮고 습한 수렁이라야 이 연꽃이 생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如是見無為法入正位者,終不復能生於佛法;煩惱泥中,乃有眾生起佛法耳!
이와 같이 무위법을 보고 정위에 든 사람은 마침내 다시는 불법을 생장시킬 수 없으며, 번뇌의 수렁 속에서라야 중생이 있어 불법을 일으킬 수 있을 뿐입니다.

又如殖種於空,終不得生!糞壤之地,乃能滋茂。
또 마치 허공에 씨앗을 뿌리면 영원히 싹이 나지 못하고, 기름진 토양에서 비로소 무성하게 생장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如是入無為正位者,不生佛法;起於我見如須彌山,猶能發于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生佛法矣!
이와 같이 무위의 정위에 들어간 사람은 불법을 생장시키지 않습니다. 아견(我見)을 수미산만큼이나 높게 일으키면 오히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켜 불법을 생장시킬 수 있습니다.

是故當知,一切煩惱,為如來種。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온갖 번뇌가 여래의 씨앗입니다.

譬如不下巨海,不能得無價寶珠。如是不入煩惱大海,則不能得一切智寶。」
비유하면 거대한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값없는 보배구슬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번뇌의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일체지의 보배구슬을 얻을 수 없습니다.

爾時大迦葉歎言:「善哉,善哉!文殊師利!快說此語。誠如所言,塵勞之疇為如來種;
그때에 대가섭이 감탄하여 말하였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문수사리님. 통쾌하게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실로 말씀하신 대로, 번뇌의 무리가 여래의 씨앗입니다.

我等今者,不復堪任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乃至五無間罪,猶能發意生於佛法,而今我等永不能發。
우리 소승인들은 지금 다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5무간죄를 지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오히려 발심하여 불법을 일으킬 수 있지만, 지금 우리들은 영원히 무상도심(無上道心)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譬如根敗之士,其於五欲不能復利。如是聲聞諸結斷者,於佛法中無所復益,永不志願。
비유하면 5근이 망가진 사람은 5욕의 즐거움에 대하여 다시는 누릴 수 없는 것처럼, 성문으로서 모든 번뇌를 끊어 버린 자는 불법에서 다시 대승불법의 이익을 누리지 못하고 영원히 위로 불과를 구하는 서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是故,文殊師利!凡夫於佛法有返復,而聲聞無也。
그러므로 문수사리님, 범부는 불법에 있어서 퇴보하거나 진보하는 일(反復)이 있지만 성문은 그런 일이 없습니다.

所以者何?凡夫聞佛法,能起無上道心,不斷三寶。正使聲聞終身聞佛法,力、無畏等,永不能發無上道意。」
왜냐하면 범부는 불법을 들으면 무상도심(無上道心)을 일으킬 수 있어서 3보를 끊어지게 하지 않겠지만, 설사 성문은 불법을, 특히 10력과 4무소외 등을 종신토록 들어도 무상도심을 영원히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爾時會中有菩薩,名普現色身,問維摩詰言:「居士!父母妻子、親戚眷屬、吏民知識,悉為是誰?奴婢僮僕、象馬車乘,皆何所在?」
그때에 이 법회 대중에 보현색신(普賢色身)이라는 보살이 있었는데 유마힐에게 물었다. “거사님, 부모. 처자. 친척. 권속(眷屬). 관리와 주민(吏民). 벗(知識)은 다 누구이며, 노비와 심부름꾼, 코끼리와 말, 수레는 모두 어디에 있습니까?”

於是維摩詰以偈答曰:
이에 유마힐은 게송(偈頌)으로 답하였다.



「 「智度菩薩母,
方便以為父,
 一切眾導師,
 無不由是生。
반야바라밀은 보살의 어머니요
방편을 아버지로 삼나니
중생의 도사인 모든 부처님
이들로부터 태어나지 않음이 없네.

 法喜以為妻,
 慈悲心為女,
 善心誠實男,
 畢竟空寂舍。
법의 기쁨을 아내로 삼고
자비심을 딸로 삼으며
선한 마음과 성실을 아들로 삼고
궁극에서의 공적을 집으로 삼네.

 弟子眾塵勞,
 隨意之所轉,
 道品善知識,
 由是成正覺。
제자는 온갖 번뇌들이니
뜻대로 보리로 전환하고
37조도품은 선지식이라
이로 인해 정각을 이루네.

 諸度法等侶,
 四攝為伎女,
 歌詠誦法言,
 以此為音樂。
모든 바라밀법문이 평등한 도반이고
4섭이 기녀(伎女)되어
경전(法言)을 노래하고 읊고 외우니
이것을 음악으로 삼네.

 總持之園苑,
 無漏法林樹,
 覺意淨妙華,
 解脫智慧果。
총지(總持)의 화원에는
무루법(無漏法)이 숲나무요
깨달은 의식은 깨끗하고 묘한 꽃이요
해탈과 지혜는 열매라네.

 八解之浴池,
 定水湛然滿,
 布以七淨華,
 浴此無垢人。
8해탈법문의 목욕탕에
선정의 물이 고요히 가득하고
7각지의 꽃을 펼쳐서
때(垢) 없는 이 사람을 목욕시키네.

 象馬五通馳,
 大乘以為車,
 調御以一心,
 遊於八正路。
5신통을 달리는 코끼리와 말로 삼고
대승도를 수레로 삼아
한마음으로써 다스리고 몰아
8정도의 길에서 노니네.

 相具以嚴容,
 眾好飾其姿,
 慚愧之上服,
 深心為華鬘。
32상으로 외모를 장엄하고
80종호로 자태를 장식하며
참괴(慚愧)의 옷을 입고
깊은 마음을 꽃다발로 삼네.

 富有七財寶,
 教授以滋息,
 如所說修行,
 迴向為大利。
재부로는 7각지(七覺知) 재보가 있고
가르쳐줌으로써 이자가 불어나고
가르침대로 수행하여서
회향함이 큰 이익이네.

 四禪為床座,
 從於淨命生,
 多聞增智慧,
 以為自覺音。
4선 8정을 침상과 자리로 삼고
청정한 생명으로부터 생겨나며
많이 보고 들어 지혜 늘려서
자기를 깨닫게 하는 법음으로 삼네.

 甘露法之食,
解脫味為漿,
 淨心以澡浴,
 戒品為塗香。
감로법은 식사요
해탈의 맛은 진액이 되며
맑은 마음으로 목욕하고
계품(戒品)은 바르는 향이 되네.

 摧滅煩惱賊,
 勇健無能踰,
 降伏四種魔,
 勝幡建道場。
번뇌의 도적을 꺾어 없애니
그 용감함은 뛰어넘을 자 없어
네 가지 마군을 항복시키고
승리의 깃발을 도량에 세우네.

 雖知無起滅,
 示彼故有生,
 悉現諸國土,
 如日無不見。
온갖 법은 생멸이 없는 줄을 알면서도
불법을 보여주기 위해서 묘유(妙有)를 일으켜
온갖 국토를 다 나타내니
마치 태양을 보지 못하는 자 없음과 같네.

 供養於十方,
 無量億如來,
 諸佛及己身,
 無有分別想。
시방삼세의 무량억(無量億) 분의
여래에게 공양을 올리면서도
그 모든 부처들과 나의 몸을
분별하는 생각이 없네.

 雖知諸佛國,
 及與眾生空,
 而常修淨土,
 教化於群生。
비록 모든 부처의 나라와
중생이 공한 줄 알지만
항상 정토를 닦아서
중생을 교화하네.

 諸有眾生類,
 形聲及威儀,
 無畏力菩薩,
 一時能盡現。
온갖 중생 무리의
형태와 음성과 위의들을
두려움 없는 힘의 보살은
일시에 다 나타낼 수 있네.

 覺知眾魔事,
 而示隨其行,
 以善方便智,
 隨意皆能現。
온갖 마군의 일을 깨달아 알기에
그의 행을 따르는 모습을 보이고
훌륭한 방편의 지혜로써
뜻대로 모두 나타낼 수 있네.

 或示老病死,
 成就諸群生,
 了知如幻化,
 通達無有礙。
혹은 늙고 병들고 죽음을 보여서
온갖 중생을 성취시키지만
환화(幻化)와 같음을 또렷이 알고
통달하여 걸림이 없네.

 或現劫盡燒,
 天地皆洞然,
 眾人有常想,
 照令知無常。
혹은 겁(劫)이 다해 타서
천지가 모두 텅 빈 것을 나타내어
항상하다는 생각을 가진 뭇 사람에게
지혜광명 비추어 무상을 알게 하네.

 無數億眾生,
 俱來請菩薩,
 一時到其舍,
 化令向佛道。
무수억(無數億)의 중생들이
모두 와서 보살을 청한다면
일시에 그들의 집에 이르러
교화하여 불도로 향하게 하네.

 經書禁呪術,
 工巧諸伎藝,
 盡現行此事,
 饒益諸群生。
경서와 주술과
기술과 온갖 기예 등
이런 일을 행함을 다 나타내어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네.

 世間眾道法,
 悉於中出家,
 因以解人惑,
 而不墮邪見。
세간의 온갖 종교의 법술에서
모두 그 가운데서 출가하여
이로써 사람의 미혹을 풀어 주지만
사견(邪見)에 떨어지지 않네.

 或作日月天,
 梵王世界主,
 或時作地水,
 或復作風火。
혹은 해나 달이나 천인이 되고
대범천왕이나 세계의 제왕이 되며
혹은 흙이나 물이 되고
혹은 바람이나 불도 되네.

 劫中有疾疫,
 現作諸藥草,
 若有服之者,
 除病消眾毒。
질병이 있는 겁수 중에는
화신을 나투어 온갖 약초가 되니
만약 이를 복용한 자라면
온갖 병과 독이 없어지네.

 劫中有飢饉,
 現身作飲食,
 先救彼飢渴,
 却以法語人。
기근 있는 겁수 중에는
화신을 나투어 음식이 되어
먼저 그들의 기갈을 구제한 뒤
불법을 사람들에게 설하네.

 劫中有刀兵,
 為之起慈心,
 化彼諸眾生,
 令住無諍地。
전쟁이 있는 겁수 중에는
그들 위해 자비심을 일으켜
저 중생들을 교화하여
다툼 없는 땅에 살게 하네.

 若有大戰陣,
 立之以等力,
 菩薩現威勢,
 降伏使和安。
만약 큰 전쟁 진영이 있다면
쌍방의 중간에 서서 동등한 힘으로써
보살의 화신은 위세(威勢)를 나타내
항복시켜 화평하게 하네.

 一切國土中,
 諸有地獄處,
 輒往到于彼,
 勉濟其苦惱。
모든 국토 중에서
지옥이 있는 곳은 어느 곳이나
늘 찾아가 그곳에 이르러
힘써 그들의 고뇌를 구제하네.

 一切國土中,
 畜生相食噉,
 皆現生於彼,
 為之作利益。
일체 국토 중에서
축생들이 서로 잡아먹으면
그곳에 태어남을 모두 나투어
그들 위해 이익을 짓네.

 示受於五欲,
 亦復現行禪,
 令魔心憒亂,
 不能得其便。
재가자로서 5욕 받음을 보이지만
또한 선정을 행함을 나타내고
마군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여
그가 이용할 틈새를 얻지 못하게 하네.

 火中生蓮華,
 是可謂希有,
 在欲而行禪,
 希有亦如是。
불속에서 연꽃이 피는 것을
희유하다고 말할 만하지만
욕망 속에서도 선정을 행함의
희유함 역시 그와 같다네.

 或現作婬女,
 引諸好色者,
 先以欲鉤牽,
 後令入佛道。
혹은 음녀가 됨을 나타내
모든 호색자를 인도하되
먼저 욕정의 낚시로 끌어당긴 뒤
불도에 들어가게 하네.

 或為邑中主,
 或作商人導,
 國師及大臣,
 以祐利眾生。
혹은 도움의 영도자가 되고
혹은 기업가가 되며
국사(國師) 와 대신이 되어
중생을 도와 이롭게 하네.

 諸有貧窮者,
 現作無盡藏,
 因以勸導之,
 令發菩提心。
모든 빈궁한 자들에게
다함없는 곳간이 됨을 나타내
그들에게 베풀고 이끌어
보리심을 일으키게 하네.

 我心憍慢者,
 為現大力士,
 消伏諸貢高,
 令住無上道。
아견심(我見心)으로 교만한 자를
대력사(大力士)로 나투어
갖가지 우쭐댐을 없애고 굴복시켜
무상도에 머물게 하네.

 其有恐懼眾,
 居前而慰安,
 先施以無畏,
 後令發道心。
두려움이 있는 중생이 있으면
그의 앞에 머물며 위안하여
먼저 무외보시를 하고
그 뒤에 도심을 일으키게 하네.

 或現離婬欲,
 為五通仙人,
 開導諸群生,
 令住戒忍慈。
혹은 음욕을 떠났음을 나타내
5신통의 선인(仙人)이 되어
온갖 중생을 이끌어 깨우쳐
계율과 인욕과 자비에 머물게 하네.

 見須供事者,
 現為作僮僕,
 既悅可其意,
 乃發以道心。
봉사를 필요로 하는 자를 보면
종이나 하인 됨을 나타내
이미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마침내 도심을 일으키게 하네.

 隨彼之所須,
 得入於佛道,
 以善方便力,
 皆能給足之。
그가 필요로 하는 바에 따라
얻어 불도에 들어가도록
정교한 방편의 힘으로
모두 공급하여 만족시킬 수 있네.

 
如是道無量,
 所行無有涯,
 智慧無邊際,
 度脫無數眾。
이와 같은 원칙들은 한량이 없고
행함이 끝이 없으며
지혜 또한 끝없이 무한하여서
무수한 중생을 교화 해탈시키네.

 假令一切佛,
 於無量億劫,
 讚歎其功德,
 猶尚不能盡。
가령 모든 부처들이
무량억겁의 세월 동안
보살이 교화한 공덕을 찬탄해도
오히려 다할 수 없네.

 誰聞如是法,
 不發菩提心,
 除彼不肖人,
 癡冥無智者。」」
그 누가 이와 같은 법을 듣고도
보리심을 일으키지 않겠는가
오직 저 사람 같지 않은 사람으로
우매하고 지혜 없는 자만 그러리라.

























《維摩詰所說經》入不二法門品第九







爾時維摩詰謂眾菩薩言:「諸仁者!云何菩薩入不二法門?各隨所樂說之。」
그때에 유마힐은 수많은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이여, 어떻게 보살은 불이법문에 들어갑니까? 각자 좋아하는 대로 말씀해 보십시오.”

會中有菩薩名法自在,說言:「諸仁者!生滅為二。法本不生,今則無滅,得此無生法忍,是為入不二法門。」
법회 가운데 법자재(法自在)라는 보살이 있어 말하였다. “여러분, 생(生)과 멸(滅)은 둘이 됩니다. 그러나 온갖 법은 본래 생겨나지 않으므로 지금 곧 소멸함도 없습니다. 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 것, 이것이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德守菩薩曰:「我、我所為二。因有我故,便有我所;若無有我,則無我所,是為入不二法門。」
덕수(德守)보살이 말하였다. “나(我)와 나의 것(我所)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나가 있기 때문에 나의 것이 있습니다. 만약 나가 없으면 나의 것도 없으니,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不眴菩薩曰:「受、不受為二。若法不受,則不可得;以不可得,故無取無捨、無作無行,是為入不二法門。」
불순(不眴)보살이 말하였다. “감수함(受)과 감수하지 않음(不受)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만약 법을 감수하지 않으면, 얻을 수가 없습니다.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으며, 지음도 없고 행함도 없으니,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德頂菩薩曰:「垢、淨為二。見垢實性,則無淨相,順於滅相,是為入不二法門。」
덕정(德頂)보살이 말하였다. “더러움(垢)과 깨끗함(淨)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만약 더러움의 진실한 본성을 보면, 더러운 모습도 없고 깨끗한 모습도 없어서 진여의 적멸상(滅相)에 따르니,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善宿菩薩曰:「是動、是念為二。不動則無念,無念則無分別。通達此者,是為入不二法門。」
선숙(善宿)보살이 말하였다. “움직임(動)과 생각(念)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만약 움직이지 않으면 생각이 없게 되고 생각이 없게 되면 분별이 없습니다. 이것을 통달하는 것,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善眼菩薩曰:「一相、無相為二。若知一相即是無相,亦不取無相,入於平等,是為入不二法門。」
선안(善眼)보살이 말하였다. “일상(一相)과 무상(無相)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만약 일상이 바로 무상임을 알고, 무상도 취하지 않으면 평등에 들어가니,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妙臂菩薩曰:「菩薩心、聲聞心為二。觀心相空,如幻化者,無菩薩心、無聲聞心,是為入不二法門。」
묘비(妙臂)보살이 말하였다. “보살의 마음과 성문의 마음이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만약 마음의 모습이 마술로 변화된 것과 같아 공(空)하다고 관하면, 보살의 마음도 없고 성문의 마음도 없으니,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弗沙菩薩曰:「善、不善為二。若不起善、不善,入無相際而通達者,是為入不二法門。」
불사(弗沙)보살이 말하였다. “선(善)과 불선(不善)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만약 선의 관념과 불선의 관념을 일으키지 않으면, 무상의 본제(無相際)에 들어가 통달하니,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師子菩薩曰:「罪、福為二。若達罪性,則與福無異,以金剛慧決了此相,無縛無解者, 是為入不二法門。」
사자(師子)보살이 말하였다. “죄(罪)와 복(福)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만약 죄의 본성이 본래 공(空)하다는 것을 통달하면, 복과 차이가 없으며 금강과 같은 지혜로써 그러한 모습(相)을 분명히 깨달아서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니, 이것이 절대적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師子意菩薩曰:「有漏、無漏為二。若得諸法等,則不起漏、不漏想,不著於相,亦不住
無相,是為入不二法門。」
사자의(師子意)보살이 말하였다. “유루(有漏)와 무루(無漏)는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만약 온갖 법의 평등한 공성을 얻으면, 유루나 무루의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그러한 상(相)에 집착하지도 않고 상이 없음에도 머무르지 않으니,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淨解菩薩曰:「有為、無為為二。若離一切數,則心如虛空,以清淨慧無所礙者,是為入不二法門。」
정혜(淨解)보살이 말하였다.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는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만약 모든 상대적인 관념(數)을 떠나면, 마음은 허공과 같아져 청정한 지혜로써 걸림이 없으니,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那羅延菩薩曰:「世間、出世間為二。世間性空,即是出世間。於其中不入、不出、不溢、不散,是為入不二法門。」
나라연(那羅延)보살이 말하였다.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만약 세간의 본성이 공(空)하다는 것을 통달하면 그대로 출세간이며, 그 가운데에서 들어가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으며 넘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니, 이것이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善意菩薩曰:「生死、涅槃為二。若見生死性,則無生死,無縛無解,不生不滅,如是解者,是為入不二法門。」
선의(善意)보살이 말하였다. “생사와 열반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만약 생사의 본성이 공하다는 것을 보면, 생사가 없으며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생겨나지도 않으며 소멸하지도 않습니다. 이와 같이 이해하는 것,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現見菩薩曰:「盡、不盡為二。法若究竟,盡若不盡,皆是無盡相;無盡相即是空,空則無有盡不盡相。如是入者,是為入不二法門。」
현견(現見)보살이 말하였다. “다함(盡)과 다하지 않음(不盡)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그러나 만유(法)는 만약 그 궁극의 실상을 철저히 이해하면, 다하거나 다히지 않거나 모두 다함이 없는 모습입니다. 다함이 없는 모습이 바로 공(空)이며, 공이라면 다함과 다하지 않는 모습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들어가는 것,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普守菩薩曰:「我、無我為二。我尚不可得,非我何可得?見我實性者,不復起二,是為入不二法門。」
보수(普守)보살이 말하였다. “아(我)와 무아(無我)는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그러나 아(我)를 찾아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 비아(非我)를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아의 본성(實性)이 공(空)한 것을 본 사람은 다시는 이 둘을 일으키지 않으니,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電天菩薩曰:「明、無明為二。無明實性即是明,明亦不可取,離一切數,於其中平等無二者,是為入不二法門。」
전천(電天)보살이 말하였다. 명(明)과 무명(無明)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그러나 무명의 본성(實性)이 바로 명이며, 명 또한 취해서는 안 되므로, 모든 상대적인 관념(數)을 떠나서 그 가운데에서 평등하여 상대적인 둘이 없으니,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喜見菩薩曰:「色、色空為二。色即是空,非色滅空,色性自空。如是受、想、行、識、識空為二,識即是空,非識滅空,識性自空,於其中而通達者,是為入不二法門。」
희견(喜見)보살이 말하였다. “색(色)과 그 색이 공함(色空)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그러나 색은 그대로가 공한 것으로서, 색이 소멸함으로써 공한 것이 아니라 색의 본성이 본래 공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수(受). 상(想). 행(行). 식(識)도 그대로가 공인 것입니다. 식(識)과 공(空)이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그러나 식은 그대로가 공한 것이지, 식이 소멸했기 때문에 공한 것이 아니라 식의 본성이 본래 공한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통달하는 것,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明相菩薩曰:「四種異、空種異為二。四種性即是空種性,如前際、後際空,故中際亦空。若能如是知諸種性者,是為入不二法門。」
명상(明相)보살이 말하였다. “지. 수. 화. 풍 4대종의 각각 다름과 공종(空種)의 다름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그러나 4대종의 본성 그대로가 공종의 본성입니다. 전제(前際)와 후제(後際)가 공하기 때문에 중제(中際)도 공한 것입니다. 만약 이와 같이 모든 종(種)의 본성을 알 수 있다면,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妙意菩薩曰:「眼、色為二。若知眼性,於色不貪、不恚、不癡,是名寂滅。如是耳聲、鼻香、舌味、身觸、意法為二,若知意性,於法不貪、不恚、不癡,是名寂滅,安住其中,是為入不二法門。」
묘의(妙意)보살이 말하였다. “눈(眼)과 색상(色)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만약 눈의 본성이 공하다는 것을 알면, 색상에 탐착하지 않고, 성을 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으니, 이것을 적멸(寂滅)이라고 이름합니다. 이와 같이 귀(耳)와 소리(聲), 코(鼻)와 냄새(香), 혀(舌)와 맛(味), 신체(身)와 감촉(觸), 의식(意)과 법(法) 등이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만약 의식의 본성이 공하다는 것을 알면, 법에 대해서 탐착하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어리석지도 않으니, 이것을 적멸이라고 이름합니다. 그 속에 안주하는 것,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無盡意菩薩曰:「布施、迴向一切智為二。布施性即是迴向一切智性,如是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迴向一切智為二,智慧性即是迴向一切智性,於其中入一相者,是為入不二法門。」
무진의(無盡意)보살이 말하였다. “보시(布施)와 이를 일체지(一切智)로 회향함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그러나 보시의 본성이 공하여 곧 일체지의 본성에 회향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와 이들을 일체지로 회향함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그러나 지계 내지는 지혜의 본성이 공하여 곧 일체지의 본성에 회향되는 것이므로, 그 가운데 일상(一相)에 들어가는 것,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深慧菩薩曰:「是空、是無相、是無作為二。空即無相,無相即無作;若空、無相、無作,則無心意識。於一解脫門即是三解脫門者,是為入不二法門。」
심혜(深慧)보살이 말하였다. “공(空)과 무상(無相) 및 무작(無作)이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그러나 공하다면 상(相)이 없으며, 상이 없다면 지음(作)이 없습니다. 만약 공하며 상이 없으며 지음이 없다면, 심(心). 의(意). 식(識)이 없으니 그중 어느 하나의 해탈문으로 깊이 들어가도 곧 3해탈문이니,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寂根菩薩曰:「佛、法、眾為二。佛即是法,法即是眾,是三寶皆無為相,與虛空等,一切法亦爾。能隨此行者,是為入不二法門。」
적근(寂根)보살이 말하였다. “부처님(佛)과 가르침(法)과 승단(衆)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곧 가르침(法)이며, 가르침은 곧 승단으로서 셋이 하나입니다. 이 3보는 모두 무위(無爲)의 모습(相)으로서 허공과 같습니다. 온갖 법도 그러하니 이를 따라 행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心無礙菩薩曰:「身、身滅為二。身即是身滅。所以者何?見身實相者,不起見身及見滅身,身與滅身無二無分別,於其中不驚、不懼者,是為入不二法門。」
심무애(心無礙)보살이 말하였다. “신체와 신체의 소멸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그러나 신체가 그대로 신체의 소멸입니다. 왜냐하면 신체의 실상(實相)을 보는 사람은 신체를 보지 않고 신체의 소멸을 보지 않아서, 신체와 신체의 소멸은 상대적인 둘이 없고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上善菩薩曰:「身、口、意善為二。是三業皆無作相,身無作相,即口無作相;口無作相,即意無作相;是三業無作相,即一切法無作相。能如是隨無作慧者,是為入不二法門。」
상선(上善)보살이 말하였다. “몸(身). 입(口). 의식(意)의 선행(善)들은 각각 달라서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그러나 이 3업(三業)은 모두 본래 공(空)하여 짓는 모습이 없습니다.(無作相) 몸에 짓는 모습이 없음은 바로 입에 짓는 모습이 없음입니다. 입에 짓는 모습이 없음은 바로 의식에 짓는 모습이 없음입니다. 이 3업의 짓는 모습이 없음은 곧 온갖 법에 짓는 모습이 없음입니다. 이와 같이 지음 없는 지혜에 따를 수 있는 것,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福田菩薩曰:「福行、罪行、不動行為二。三行實性即是空,空則無福行、無罪行、無不動行。於此三行而不起者,是為入不二法門。」
복전(福田)보살이 말하였다. 복행(福行)과, 죄행(罪行)과, 부동행(不動行)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행의 본성은 바로 공(空)입니다. 공에는 복행이 없고 죄행이 없으며 부동행이 없습니다. 이 세 가지 행에 대해 망상집착을 일으키지 않는 것,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華嚴菩薩曰:「從我起二為二。見我實相者,不起二法;若不住二法,則無有識。無所
識者,是為入不二法門。」
화엄(華嚴)보살이 말하였다. “아(我)로부터 차별(二)이 일어나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그러나 아의 실상이 본래 공함을 보면 상대적인 차별법(二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만약 상대적인 차별상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식별이 없고 식별대상도 없으니,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德藏菩薩曰:「有所得相為二。若無所得,則無取捨。無取捨者,是為入不二法門。」
덕장(德藏)보살이 말하였다. “얻을 것이 있는 상(有所得相)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만약 얻을 것이 없다면,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는 것,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月上菩薩曰:「闇與明為二。無闇、無明,則無有二。所以者何?如入滅受想定,無闇、 無明,一切法相亦復如是,於其中平等入者,是為入不二法門。」
월상(月上)보살이 말하였다. “어둠(闇)과 밝음(明)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그러나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으면 상대적인 둘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컨대 멸수상정(滅受想定)에 들면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는 것과 같이, 온갖 법의 모습도 그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의 평등으로 들어가는 것,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寶印手菩薩曰:「樂涅槃、不樂世間為二。若不樂涅槃、不厭世間,則無有二。所以者何?若有縛,則有解。若本無縛,其誰求解?無縛無解,則無樂厭,是為入不二法門。」
보인수(寶印手)보살이 말하였다. “열반을 좋아함과 세간을 좋아하지 않음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만약 열반을 좋아하지도 않고 세간을 싫어하지도 않는다면, 상대적인 둘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속박이 있다면 해탈이 있지만, 만약 본래에 속박이 없다면 그 누가 해탈을 구하겠습니까?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면 좋아함도 없고 싫어함도 없으니,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珠頂王菩薩曰:「正道、邪道為二。住正道者,則不分別是邪是正,離此二者,是為入不
二法門。」
주정왕(珠頂王)보살이 말하였다. “정도(正道)와 사도(非道)는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그러나 정도에 머무는 사람이라면, 이것은 삿되고 저것은 바르다고 분별하지 않습니다. 이 상대적인 둘을 떠난 것,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樂實菩薩曰:「實、不實為二。實見者尚不見實,何況非實!所以者何?非肉眼所見,慧眼乃能見,而此慧眼,無見無不見,是為入不二法門。」
낙실(樂實)보살이 말하였다. “진실(實)과 진실 아님(不實)은 상대적인 둘이 됩니다. 그러나 진실을 보는 자는 오히려 진실도 보지 않는데 하물며 진실이 아님은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육안이 보는 것이 아니고, 지혜의 눈으로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지혜의 눈은 봄도 없고 보지 않음도 없으니,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如是諸菩薩各各說已,問文殊師利:「何等是菩薩入不二法門?」
이와 같이 여러 보살들이 각각 설하고 나자 유마힐은 문수사리(文殊師利)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보살이 절대적인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文殊師利曰:「如我意者,於一切法無言無說,無示無識,離諸問答,是為入不二法門。」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제 의견 같아서는, 온갖 법에 대해서 언설도 없고, 가리켜 보임도 없고, 식별도 없으며, 모든 질문과 대답을 떠난 것,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於是文殊師利問維摩詰:「我等各自說已,仁者當說何等是菩薩入不二法門?」
이에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우리들은 각자가 말하였으니 그대도 말하셔야 합니다. 어떤 것이 보살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時維摩詰默然無言。
그때에 유마힐은 침묵을 지키며 말이 없었다.

文殊師利歎曰:「善哉!善哉!乃至無有文字、語言,是真入不二法門。」
문수사리는 찬탄하여 말하였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더 나아가 문자언어까지도 없는 것, 이것이 절대적인 불이법문에 진정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說是入不二法門品時,於此眾中,五千菩薩皆入不二法門,得無生法忍。
이 입불이법문품을 설하였을 때, 이 대중 가운데 5천 명의 보살들이 모두 불이법문에 들어가 무생법인을 얻었다.

《維摩詰所說經》卷中



























《維摩詰所說經》卷下

姚秦三藏鳩摩羅什譯




香積佛品第十







於是舍利弗心念:「日時欲至,此諸菩薩當於何食?」
그때에 사리불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정오가 다 되어 가는데 이 모든 보살들이 어떻게 식사를 해야 할까?’

時維摩詰知其意而語言:「佛說八解脫,仁者受行,豈雜欲食而聞法乎?若欲食者,且待須臾,當令汝得未曾有食。」
그러자 유마힐은 사리불의 생각을 알고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8해탈에 대해 설법하셨으니, 그대도 가르침을 받아서 수행하고 계실 것인데, 어찌 욕계의 먹고자 하는 생각이 뒤섞여 있으면서(雜欲食) 불법을 듣습니까? 만약 배가 고파 먹고 싶다면,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일찍이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음식을 그대에게 드리겠습니다.”

時維摩詰即入三昧,以神通力示諸大眾,
그때에 유마힐은 곧 삼매에 들어가서 신통력으로써 모든 대중들에게 보여 주었다.

上方界分過四十二恒河沙佛土,有國名眾香,佛號香積,今現在,
위쪽 방향으로 42개 항하강의 모래알 수만큼의 불국토를 지나서 중향(衆香)이라는 불국토가 있는데, 향적(香積)이라는 부처님이 지금 현재 계셨다.

其國香氣,比於十方諸佛世界人、天之香,最為第一。
그 불국토의 향기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 세계의 인간과 천인의 향기에 비교하면 가장 제일이었다.

彼土無有聲聞、辟支佛名,唯有清淨大菩薩眾,佛為說法。
저 불국토에는 소승의 성문과 벽지불 등의 이름은 없고, 오직 청정한 대보살의 무리만이 있는데, 부처님은 이들을 위하여 설법하셨다.

其界一切,皆以香作樓閣,經行香地,苑園皆香,
그 세계의 온갖 것은 향으로써 만들어져, 누각이나 경행하는 곳인 향지(香地)와 공원이 모두 향이었다.

其食香氣,周流十方無量世界。
그 세계의 음식의 향기는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흘러 퍼지고 있었다.

時彼佛與諸菩薩方共坐食,
때마침 저 향적부처님께서 많은 보살들과 함께 앉아서 막 식사를 하고 계셨다.

有諸天子皆號香嚴,悉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供養彼佛及諸菩薩,此諸大眾莫不目見。
그곳에는 여러 천인들이 있었는데, 모두 향엄(香嚴)이라고 하며,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켜 저 부처님과 보살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있었으니, 여기 방장실의 모든 대중은 눈으로 보지 않는 자가 없었다.

時維摩詰問眾菩薩言:「諸仁者!誰能致彼佛飯?」
그때에 유마힐은 여러 보살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누가 저 향적부처님께 가서 음식을 얻어 올 수 있겠습니까?”

以文殊師利威神力故,咸皆默然。
문수사리의 위신력 때문에 모두 침묵을 지켰다.

維摩詰言:「仁此大眾,無乃可恥?」
유마힐이 물었다. “여러분, 이 대중 가운데 그럴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니 부끄럽겠지요.”

文殊師利曰:「如佛所言,勿輕未學。」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직 배우지 못한 사람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於是維摩詰不起于座,
그리하여 유마힐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居眾會前,化作菩薩,相好光明,威德殊勝,蔽於眾會,
대중들의 모임 앞에서 화신 보살을 하나 만들어내니, 그 상호가 빛나고 위덕이 뛰어나서 대중들의 모임을 압도하였다.

而告之曰:「汝往上方界分,度如四十二恒河沙佛土,有國名眾香,佛號香積,與諸菩薩方共坐食。
그리고 이 보살에게 말하였다. “너는 위쪽 방향으로 가 42개 항하강의 모래알 수만큼의 불국토를 지나면, 중향(衆香)이라는 불국토가 있고, 향적(香積)이라는 부처님께서 많은 보살들과 함께 앉아 지금 식사를 하고 계신다.

汝往到彼,如我辭曰:『維摩詰稽首世尊足下!致敬無量,問訊起居,少病少惱,氣力安不?
너는 그곳에 가서 나의 말대로 말하라. ‘유마힐이 세존의 발 아래 정례하고 한없이 공경하면서 문안 인사드립니다. 평소 생활에서 병은 적으시고 번뇌도 적으시며, 기력은 편안하신지요?

願得世尊所食之餘,當於娑婆世界施作佛事,令此樂小法者得弘大道,亦使如來名聲普聞。』」
원하오니 세존께서 잡수시고 남은 밥을 얻어다 사바세계에서 불사(佛事)를 행하여, 이 작은 법(小法)을 즐기는 자로 하여금 대도(大道)를 알아 널리 선양할 수 있게 하고, 여래의 명성도 널리 들리게 하소서.’”

時化菩薩即於會前,昇于上方,舉眾皆見其去,到眾香界,禮彼佛足,
그때에 화신 보살이 곧 모여 있는 대중들 앞에서 곧장 위쪽 방향으로 하늘 높이 솟구쳐 올라가니, 모든 대중들은 그가 가서 중향국에 도착하여 저 향적부처님의 발에 예배하는 것을 보았고,

又聞其言:「維摩詰稽首世尊足下!致敬無量,問訊起居,少病少惱,氣力安不?願得世尊所食之餘,欲於娑婆世界施作佛事,使此樂小法者得弘大道,亦使如來名聲普聞。」
또한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유마힐이 세존의 발 아래 정례하고 한없이 공경하면서 문안 인사드립니다. 평소생활에서 병은 적으시고 번뇌도 적으시며, 기력은 편안하신지요? 원하오니 세존께서 잡수시고 남은 밥을 얻어다 사바세계에서 불사(佛事)를 행하여, 이 작은 법(小法)을 즐기는 자로 하여금 대도(大道)를 알아 널리 선양할 수 있게 하고, 여래의 명성도 널리 들리게 하소서.’”

彼諸大士見化菩薩,歎未曾有:「今此上人從何所來?娑婆世界為在何許?云何名為樂小法者?」即以問佛。
저 중향국의 보살들이 화신 보살을 보고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던 일이다! 라고 찬탄하고 ‘지금 이 상인(上人)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사바세계는 어디에 있습니까? 작은 법을 즐기는 자란 무엇을 말합니까?’ 라고 곧 부처님께 물었다.

佛告之曰:「下方度如四十二恒河沙佛土,有世界名娑婆,佛號釋迦牟尼,今現在。於五濁惡世,為樂小法眾生敷演道教;
향적부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래쪽 방향으로 42개 항하강의 모래알 수만큼의 불국토를 지나서 사바라는 세계가 있는데, 석가모니라는 부처님이 지금 현재 5탁악세에서, 작은 법을 즐기는 중생을 위하여 진리의 가르침을 설하고 있느니라.

彼有菩薩名維摩詰,住不可思議解脫,為諸菩薩說法,故遣化來,稱揚我名,并讚此土,令彼菩薩增益功德。」
저곳에 유마힐이라는 보살이 있는데,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물면서 많은 보살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다. 그래서 자기의 화신 보살을 파견해 보내와 나의 이름을 칭송하고 아울러 이곳 불국토를 찬양함으로써, 저곳의 보살들로 하여금 공덕을 약간 증가시키도록 하는 것이니라.“

彼菩薩言:「其人何如,乃作是化?
​저 중향국으로 보살이 말하였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 화신 보살을 만들었습니까?

德力無畏,神足若斯!」佛言:「甚大!一切十方皆遣化往,施作佛事,饒益眾生。」
그의 공덕성취 위력은 이미 두려운 것이 없어서 신통이 이와 같이 갖추어졌습니까?”
향적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의 공덕성취 위력과 신통은 대단히 크다! 시방의 모든 불국토에 화신 보살들을 파견해 보내서 불사를 행하여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느니라.”

於是香積如來以眾香鉢盛滿香飯,與化菩薩。
그리하여 향적여래는 온갖 향기로 만든 발우에 향기 밥(香飯)을 가득 담아 화신 보살에게 주었다.

時彼九百萬菩薩俱發聲言:「我欲詣娑婆世界供養釋迦牟尼佛,并欲見維摩詰等諸菩薩眾。」
그때에 향적국의 9백만 명의 보살들은 함께 소리 내어 말하였다. “우리들도 사바세계로 가서 석가모니부처님께 공양올리고 싶습니다. 아울러 유마힐 등 여러 보살 대중도 만나보고 싶습니다.”

佛言:「可往。攝汝身香,無令彼諸眾生起惑著心。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도 좋다! 그러나 그대들의 몸에서나는 향내를 거두어들여서, 저곳의 중생들이 향내를 맡고 미혹하여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하지 말라.

又當捨汝本形,勿使彼國求菩薩者,而自鄙恥。
또 마땅히 그대들의 본래의 모습을 버려서, 저 나라에서 보살을 구하는 자들이 자기를 천하고 부끄럽게 여기도록 하지 말라.

又汝於彼莫懷輕賤,而作礙想。所以者何?十方國土,皆如虛空。
또 그대들은 저들에 대하여 오만한 심리를 품어서 도업(道業)에 장애가 되는 생각을 짓지 말라. 왜냐하면, 시방의 국토는 모두 허공과 같기 때문이다.

又諸佛為欲化諸樂小法者,不盡現其清淨土耳!」
또 모든 부처님들은 작은 법을 즐기는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그 청정한 불국토를 완전히는 나타내 보이지 않을 뿐이다.”

時化菩薩既受鉢飯,與彼九百萬菩薩俱,承佛威神,及維摩詰力,於彼世界,忽然不現,須臾之間,至維摩詰舍。
그때에 화신 보살은 이미 발우와 밥을 받았으므로 저 9백만 명의 보살들과 함께 향적부처님과 유마힐의 위력과 신통에 의지하여 향적세계에서 홀연히 사라져 찰나사이에 유마힐의 방에 이르렀다.

時維摩詰即化作九百萬師子之座,嚴好如前,諸菩薩皆坐其上。
그때에 유마힐은 즉시 9백만 개의 사자좌를 신통력으로 만들어냈는데, 장식이 훌륭함은 이전 것과 같았으며, 모든 보살들이 다 그 위에 앉았다.

時化菩薩以滿鉢香飯與維摩詰,飯香普熏毘耶離城,及三千大千世界。
그때에 화신 보살이 발우에 가득한 향기 밥을 유마힐에게 건네 드리니, 밥의 향기가 비야리성과 3천대천세계에 널리 풍겼다.

時毘耶離婆羅門、居士等,聞是香氣,身意快然,歎未曾有!
그때에 비야리의 바라문과 거사들은 이 향기를 맡고 몸과 마음이 상쾌해져서, 일찍이 경험한 적이 없는 일이라고 찬탄하였다.

於是長者主月蓋從八萬四千人,來入維摩詰舍。
그때에 장자 주월개(主月蓋)는 8만4천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유마힐의 방으로 들어왔다.

見其室中菩薩甚多,諸師子座,高廣嚴好,皆大歡喜,禮眾菩薩及大弟子,却住一面。
그들은 그 방 안에 보살들이 매우 많고, 모든 사자좌들은 높고 넓으며 훌륭하게 장엄된 것을 보고는 모두가 크게 기뻐하면서, 많은 보살들과 부처님의 대제자들에게 예배하고 방의 한쪽에 물러나 서 있었다.

諸地神、虛空神及欲、色界諸天,聞此香氣,亦皆來入維摩詰舍。
많은 지신(地神), 허공신(虛空神) 그리고 욕계(欲界), 색계(色界)의 많은 천인들도 이 향기를 맡고 모두 유마힐의 방으로 들어왔다.

時維摩詰語舍利弗等諸大聲聞:「仁者可食,如來甘露味飯,大悲所熏,無以限意食之,使不消也。」
그때에 유마힐이 사리불 등 여러 대성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드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향적여래의 감로 맛의 밥은 부처님의 대비심에 의해 훈제(熏制)된 것이므로, 한정된 의식으로 이것을 먹어 소화가 되지 않게 하지 마십시오.”

有異聲聞念:「是飯少,而此大眾人人當食?」
대중속의 어떤 다른 부파(​이부)의 성문이 생각하였다. ‘이 한 발우의 밥은 적은데 이 많은 대중 사람들이 나누어 먹어야 하는가?’

化菩薩曰:「勿以聲聞小德小智,稱量如來無量福慧!
화신 보살이 말하였다. “성문의 작은 복덕 작은 지혜로써 여래의 한량없는 복덕과 지혜를 헤아리지 마십시오.

四海有竭,此飯無盡!使一切人食,揣若須彌,乃至一劫,猶不能盡。
4대해의 물은 마르는 때가 있지만 이 한 발우의 밥은 영원히 취하여도 다하는 때가 없습니다. 가령 모든 사람들이 먹되, 한 끼 밥마다 수미산처럼 높고 크게 뭉쳐서 1겁(劫) 동안 먹어가더라도 여전히 다할 수 없습니다.

所以者何?無盡戒、定、智慧、解脫、解脫知見功德具足者,所食之餘,終不可盡。」
왜냐하면 다함이 없는 계율. 선정. 지혜. 해탈. 해탈지견의 공덕을 갖춘 분이 잡수시고 남은 감로 맛의 밥은, 끝내 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於是鉢飯悉飽眾會,猶故不盡。其諸菩薩、聲聞、天、人,食此飯者,身安快樂,譬如一切樂莊嚴國諸菩薩也;又諸毛孔皆出妙香,亦如眾香國土諸樹之香。
그리하여 한 발우의 밥은 모인 대중들을 모두 배불리고도 이전 그대로여서 다하지 않았다. 그 모든 보살과 성문과 천인들은 이 밥을 먹고는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쾌락하기가, 예컨대 온갖 즐거움으로 장엄된 불국토의 보살들의 경계와 같았다. 또 모든 털구멍에서 오묘한 향기가 나는 것은 중향국(衆香國)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향기와 같았다.

爾時維摩詰問眾香菩薩:「香積如來以何說法?」
그때에 유마힐이 중향국의 보살들에게 물었다. “향적여래는 무엇으로써 설법하십니까?”

彼菩薩曰:「我土如來無文字說,但以眾香令諸天、人得入律行。菩薩各各坐香樹下,聞斯妙香,即獲一切德藏三昧。得是三昧者,菩薩所有功德皆悉具足。」
그 보살들은 말하였다. “우리 국토의 여래께서는 문자로 설법하심이 없고, 단지 온갖 향기로써 모든 천인과 사람들로 하여금 언행이 다 청정한 계율에 자연히 들어맞게 합니다. 보살들은 각각 향나무 아래에 앉아서 그 오묘한 향기를 맡기만 하면 곧 일체덕장삼매(一切德藏三昧)를 얻습니다. 이 삼매를 얻은 자는 보살이 갖추어야 할 모든 공덕이 다 갖추어집니다.”

彼諸菩薩問維摩詰:「今世尊釋迦牟尼以何說法?」
그 보살들이 유마힐에게 물었다. “지금 세존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무엇으로써 설법하십니까?”

維摩詰言:「此土眾生剛強難化,故佛為說剛強之語以調伏之。
유마힐이 말하였다. “이 세계의 중생들은 개성이 고집 세고 자기만 옳다고 생각해서 교화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준엄한 말씀을 하여 그들의 마음에 두려움이 일어나게 함으로서 조복하십니다.

言是地獄、是畜生、是餓鬼,是諸難處,是愚人生處;是身邪行,是身邪行報;是口邪行,是口邪行報;是意邪行,是意邪行報;是殺生,是殺生報;是不與取,是不與取報;是邪婬,是邪婬報;是妄語,是妄語報;是兩舌,是兩舌報;是惡口,是惡口報;是無義語,是無義語報;是貪嫉,是貪嫉報;是瞋惱,是瞋惱報;是邪見,是邪見報;是慳悋,是慳悋報;是毀戒,是毀戒報;是瞋恚,是瞋恚報;是懈怠,是懈怠報;是亂意,是亂意報;是愚癡,是愚癡報;是結戒,是持戒,是犯戒;是應作,是不應作;是障礙,是不障礙;是得罪,是離罪;是淨,是垢;是有漏,是無漏;是邪道,是正道;是有為,是無為;是世間,是涅槃。
그 말씀은 이렇습니다.
‘이것은 지옥도이며, 이것은 축생도이며, 이것은 아귀도이다. 이런 곳들은 불도수행이 어려운 곳(難處)이며, 어리석은 사람이 태어나는 곳이다.
이것은 몸이 짓는 바르지 못한 행위들이며, 이것은 몸이 짓는 바르지 못한 행위들의 과보이다
이것은 입이 짓는 바르지 못한 행위들이며, 이것은 입이 짓는 바르지 못한 행위들의 과보이다,
이것은 의식이 짓는 바르지 못한 행위들이며, 이것은 의식이 짓는 바르지 못한 행위들의 과보이다.
이것은 살생이며, 이것은 살생의 과보이다.
이것은 주지 않은 것을 갖는 것이며, 이것은 주지 않은 것을 가진 과보이다.
이것은 바르지 못한 음행이며, 이것은 바르지 못한 음행의 과보이다.
이것은 거짓말이며, 이것은 거짓말의 과보이다.
이것은 이간질하는 말이며, 이것은 이간질하는 말의 과보이다.
이것은 악담하는 말이며, 이것은 악담한 말의 과보이다.
이것은 탐심과 질투이며, 이것은 탐심과 질투의 과보이다.
이것은 성냄과 괴롭힘이며, 이것은 성냄과 괴롭힘의 과보이다.
이것은 바르지 못한 견해이며, 이것은 바르지 못한 견해의 과보이다.
이것은 인색함이고, 이것은 인색함의 과보이다.
이것은 계율 파괴이며, 이것은 계율 파괴의 과보이다.
이것은 성냄이고, 이것은 성냄의 과보이다
이것은 게으름이고, 이것은 게으름의 과보이다.
이것은 마음이 산란함이고, 이것은 마음이 산란함의 과보이다.
이것은 어리석음이며, 이것은 어리석음의 과보이다.
이것은 계율을 정리한 조문(結戒)이며, 이것은 계율을 지키는 것이며, 이것은 계율을 범한 것이다.
이것은 마땅히 해야 할 것이며, 이것은 마땅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은 성도(聖道)를 닦고 배움에 장애가 되는 것이며, 이것은 성도를 닦고 배움에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죄업을 이루는 것이며, 이것은 죄악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청정함이며, 이것은 더러움이다.
이것은 번뇌가 있는 것이며, 이것은 번뇌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邪道)이며, 이것은 정도(正道)이다.
이것은 유위(有爲)이며, 이것은 무위(無爲)이다.
이것은 세간(世間)이며, 이것은 열반(涅槃)이다.

以難化之人,心如猨猴,故以若干種法,制御其心,乃可調伏。
교화하기 어려운 사람의 마음은 원숭이와 같으므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마음을 제어해야 마침내 조복할 수 있습니다.

譬如象馬,𢤱悷不調,加諸楚毒,乃至徹骨,然後調伏。
비유하면 코끼리나 말이 야성(野性)이 사나워 길들여지지 않을 때에는, 아프게 때려서 마침내는 고통이 뼛속까지 사무쳐야 조복되는 것과 같습니다.

如是剛強難化眾生,故以一切苦切之言,乃可入律。」
이와 같이 고집 세고 자기만 옳다고 생각해서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들이기 때문에, 온갖 고통의 과보와 운명을 일러주어야 비로소 궤도(律)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彼諸菩薩聞說是已,皆曰:「未曾有也!如世尊釋迦牟尼佛,隱其無量自在之力,乃以貧所樂法,度脫眾生;斯諸菩薩亦能勞謙,以無量大悲,生是佛土。」
저 중향국의 보살들은 유마힐의 이 한 바탕의 말을 듣고 나서는 모두가 찬탄하여 말했다.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세존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이 자기의 한량없는 자재한 힘을 감추고서, 구차한 소승들이 좋아하는 법을 가지고 중생들을 교화하여 해탈하게 하시듯이, 이곳의 모든 보살들도 수고하고 겸손하면서 한량없는 대비심으로써 이 사바세계의 불국토에 태어나 부처님을 도와 이 세계의 고뇌하는 중생을 교화 제도할 수 있군요.”

維摩詰言:「此土菩薩於諸眾生大悲堅固,誠如所言。
유마힐이 말하였다. “이 국토의 보살들이 온갖 중생들에 대하여 대비심이 견고한 것은 정말로 여러분이 말씀한 대로입니다.

然其一世饒益眾生,多於彼國百千劫行。
그러나 이 사바세계의 보살이 한평생 동안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공덕의 성취는 저 다른 정토불국에서 백천(百千) 겁 동안 수행한 것보다도 많습니다.

所以者何?此娑婆世界有十事善法,諸餘淨土之所無有。
왜냐하면 이 사바세계에는 열 가지 선법(善法)이 있지만, 다른 정토들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何等為十?以布施攝貧窮,以淨戒攝毀禁,以忍辱攝瞋恚,以精進攝懈怠,以禪定攝亂意,以智慧攝愚癡,說除難法度八難者,以大乘法度樂小乘者,以諸善根濟無德者,常以四攝成就眾生,是為十。」
무엇이 그 열 가지 선법인가 하면, 보시로써 가난한 중생을 섭수(攝受)하는 것이요, 청정한 계행으로써 계율을 깨뜨린 사람을 섭수하는 것이요, 인욕으로써 성내는 중생을 섭수하는 것이요, 정진으로써 게으른 중생을 섭수하는 것이요, 선정으로써 마음이 산란한 중생을 섭수하는 것이요, 지혜로써 어리석은 중생을 섭수하는 것이요, 고난의 경계를 없애는 도법을 말하여 8난(八難)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요, 대승법으로써 소승법을 즐기는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요, 온갖 선근으로써 선근복덕이 없는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요, 4섭법으로써 중생을 성취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상이 열 가지 선법입니다.“

彼菩薩曰:「菩薩成就幾法?於此世界行無瘡疣,生于淨土。」
저 중향국의 보살이 물었다. “보살은 몇 가지 법을 성취하여야 이 사바세계에서 행위에 흠결이 없고 정토에 왕생할 수 있습니까?”

維摩詰言:「菩薩成就八法,於此世界行無瘡疣,生于淨土。
유마힐이 말하였다. “보살이 여덟 가지 법(八法)을 성취하면 이 사바세계에서 행위가 흠결이 없고 임종 시에 정토에 왕생할 수 있습니다.

何等為八?
어떤 것이 여덟 가지 법인가?

饒益眾生,而不望報;
중생을 이롭게 하고도 그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이요,

代一切眾生受諸苦惱,
온갖 중생을 대신하여 모든 고통 번뇌를 받는 것이요,

所作功德盡以施之;
지은 공덕은 남김없이 모든 중생에게 베풀어 회향하는 것이요,

等心眾生,謙下無礙;於諸菩薩視之如佛;
평등한 마음으로 온갖 중생을 대하여 겸허하고 걸림이 없으며, 모든 보살에 대하여 부처님처럼 보는 것이요,

所未聞經,聞之不疑;
아직 들어본 적이 없는 경전을 들어도 의심하지 않는 것이요,

不與聲聞而相違背;
소승도를 깔보아 서로 적대하여 등 돌리지 않는 것이요,

不嫉彼供,不高己利,而於其中調伏其心;
남이 받은 공양을 질투하지 않고 자기가 얻은 이득을 자랑하지 않으며, 더욱 그러한 가운데에서 자기의 마음을 조복하는 것이요,

常省己過,不訟彼短,恒以一心求諸功德,
항상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남의 단점을 담론하지 않으며, 항상 한 마음으로 온갖 공덕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是為八法。」
이상이 여덟 가지 법입니다.”

維摩詰、文殊師利於大眾中說是法時,百千天、人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十千菩薩得無生法忍。
유마힐과 문수사리가 대중 가운데서 이상의 법들을 설했을 때, 백천 명의 천인들은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고, 십천(十千) 명의 보살들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維摩詰〔所說〕-【宋】【聖】*所說經所說經》菩薩行品第十一







是時佛說法於菴羅樹園,其地忽然廣博嚴事,一切眾會皆作金色。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암라수원(菴羅樹園)에서 설법하고 계셨는데, 그 땅이 갑자기 넓어지고 장엄해지면서 모인 대중들은 모두 황금색이 되었다.

阿難白佛言:「世尊!以何因緣,有此瑞應?是處忽然廣博嚴事,一切眾會皆作金色。」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이런 상서로운 감응이 있어, 갑자기 이곳이 넓어지고 장엄되어서 모여 있는 대중 모두가 황금색으로 되었습니까?”

佛告阿難:「是維摩詰、文殊師利,與諸大眾恭敬圍繞,發意欲來,故先為此瑞應。」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유마힐과 문수사리가 수많은 대중들에게 공경히 둘러싸여 있으면서 이곳으로 오려는 뜻을 일으켰기 때문에, 먼저 이런 상서로운 감응을 나타낸 것이니라.”

於是維摩詰語文殊師利:「可共見佛,與諸菩薩禮事供養。」
그때에 유마힐은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지금 함께 부처님을 뵈러 가서 모든 보살들과 함께 예배하고 공양해야 합니다.”

文殊師利言:「善哉!行矣!今正是時。」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좋습니다! 갑시다!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維摩詰即以神力,持諸大眾并師子座,置於右掌,往詣佛所。到已著地,稽首佛足,右遶七匝,一心合掌,在一面立;
유마힐은 곧 신통력으로써 방장실 중의 모든 대중들과 사자좌들을 오른쪽 손바닥에 올려놓고 허공으로 솟구쳐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갔다. 도착해서 땅에 내려놓고 부처님의 발에 정례하고는 오른쪽으로 일곱 바퀴를 돈 다음 일심(一心)으로 합장하고 한쪽에 섰다.

其諸菩薩即皆避座,稽首佛足,亦繞七匝,於一面立;諸大弟子、釋、梵、四天王等,亦皆避座,稽首佛足,在一面立。
그 모든 보살들도 곧 자리에서 내려와 부처님의 발에 정례하고는 마찬가지로 일곱 바퀴를 돈 다음 한쪽에 섰다. 아울러 여러 대제자들과 제석천. 범천. 사천왕 등도 자리에서 내려와 부처님의 발에 정례하고는 한쪽에 섰다.

於是世尊如法慰問諸菩薩已,各令復坐,即皆受教。
그때에 세존께서는 예법답게 모든 보살들을 위문하고 각자에게 다시 자리에 앉으라 하시니, 곧 모두가 가르침을 받았다.

眾坐已定,佛語舍利弗:「汝見菩薩大士,自在神力之所為乎?」
대중들이 자리에 앉고 나자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보살대사(菩薩大士)의 자재한 신통력이 하는 일을 보았는가?”

「唯然,已見!」
“예, 이미 보았습니다.”

「於汝意云何?」
“그대는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世尊!我覩其為不可思議,非意所圖,非度所測。」
“세존이시여, 저는 그가 행하는 신통력이 불가사의한 것을 보았는데, 우리 보통사람들의 의식으로 탐낼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지식 범위로 추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爾時阿難白佛言:「世尊!今所聞香,自昔未有,是為何香?」
그때에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지금 맡는 향기는 예전부터 맡아본 적이 없는데, 이것은 무슨 향기입니까?”

佛告阿難:「是彼菩薩毛孔之香。」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저 중향국 보살들의 털구멍에서 나는 향기이니라.”

於是舍利弗語阿難言:「我等毛孔亦出是香。」
그때에 사리불이 아난에게 말하였다. “우리들의 털구멍에서도 이런 향기가 나고 있소.”

阿難言:「此所從來?」
아난이 말하였다. “여러분들의 이 향기는 어디서 온 것입니까?”

曰:「是長者維摩詰,從眾香國,取佛餘飯,於舍食者,一切毛孔皆香若此。」
사리불이 말하였다. “이것은 장자 유마힐이 중향국으로부터 향적부처님의 남은 밥을 얻어와, 그의 방장실에서 우리들에게 주었기에 그것을 먹은 사람들은 모든 털구멍에서 이와 같은 향기가 나는 것이오.”

阿難問維摩詰:「是香氣住當久如?」
아난은 유마힐에게 물었다. “이 향기는 몸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 수 있습니까?”

維摩詰言:「至此飯消。」
유마힐이 말하였다. “이 밥이 완전히 소화될 때까지입니다.”

曰:「此飯久如當消?」
아난이 말하였다. “이 밥은 얼마 동안 지나야 소화됩니까?”

曰:「此飯勢力至于七日,然後乃消。
유마힐이 말하였다. “이 밥의 세력은 7일 동안 간 다음에야 완전히 소화됩니다.

又阿難!若聲聞人未入正位,食此飯者,得入正位,然後乃消;
또 아난님, 만약 성문인(聲聞人)으로서 아직 정위(正位)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 밥을 먹은 자라면, 정위에 들어간 다음에야 소화가 됩니다.

已入正位,食此飯者,得心解脫,然後乃消;
이미 정위에 들어간 자로서 이 밥을 먹은 자라면, 마음의 해탈을 얻은 다음에야 소화가 됩니다.

若未發大乘意,食此飯者,至發意乃消;
만약 아직 대승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이 밥을 먹은 자라면, 그 마음을 일으킨 다음에야 소화가 됩니다.

已發意食此飯者,得無生忍,然後乃消;
이미 대승의 마음을 일으키고 이 밥을 먹은 자라면, 무생법인을 얻은 다음에야 소화가 됩니다.

已得無生忍,食此飯者,至一生補處,然後乃消。
이미 무생법인을 얻고 이 밥을 먹은 자라면, 일생보처(一生補處)에 도달한 다음에야 소화가 됩니다.

譬如有藥,名曰上味,其有服者,身諸毒滅,然後乃消。
비유하면 마치 상미(上味)라고 부르는 약이 있는데, 이것을 복용한 자는 몸 안의 모든 독이 완전히 소멸된 다음에야 약의 힘이 소멸되는 것과 같습니다.

此飯如是,滅除一切諸煩惱毒,然後乃消。」
이 밥도 이와 같아서 온갖 모든 번뇌의 독이 완전히 소멸되어 없어진 다음에야 소화가 됩니다.

阿難白佛言:「未曾有也,世尊!如此香飯能作佛事。」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향기 밥이 불사를 할 수 있다니요.”

佛言:「如是,如是!阿難!或有佛土以佛光明而作佛事,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아난이여, 어떤 불국토에서는 부처님의 광명으로써 불사를 하기도 하며,

有以諸菩薩而作佛事,有以佛所化人而作佛事,有以菩提樹而作佛事,
어떤 불국토에서는 여러 보살들로써 불사를 하기도 하며, 어떤 불국토에서는 부처님의 화신으로 나타난 사람으로써 불사를 하기도 하며, 어떤 불국토에서는 보리수로써 불사를 하기도 하며,

有以佛衣服、臥具而作佛事,
어떤 불국토에서는 부처님의 옷과 침구로써 불사를 하기도 하며,

有以飯食而作佛事,有以園林臺觀而作佛事,
어떤 불국토에서는 밥을 먹음으로써 불사를 하기도 하며, 어떤 불국토에서는 동산과 숲과 높은 누각으로써 불사를 하기도 하며,

有以三十二相、八十隨形好而作佛事,有以佛身而作佛事,有以虛空而作佛事;眾生應以此緣得入律行。
어떤 불국토에서는 32상(相)과 80수형호(隨形好)로써 불사를 하기도 하며, 어떤 불국토에서는 부처님의 몸으로써 불사를 하기도 하며, 어떤 불국토에서는 허공으로써 불사를 하기도 하나니, 요컨대 중생이 도에 들어가는 인연이 다르기 때문에 마땅히 이런 인연으로써 율행(律行)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

有以夢、幻、影、響、鏡中像、水中月、熱時炎,如是等喻而作佛事。
또 어떤 불국토에서는 꿈. 허깨비. 그림자. 메아리. 거울 속의 모습. 물속에 비친 달. 더울 때의 신기루 등 이와 같은 비유로써도 불사를 하기도 하며,

有以音聲、語言、文字而作佛事。
어떤 불국토에서는 음성. 언어. 문자로써 불사를 하기도 하며,

或有清淨佛土、寂寞無言、無說、無示、無識、無作、無為,而作佛事。
혹 어떤 청정한 불국토는 적막하여 언설이 없고, 표시도 없으며(無示), 제6의식 작용도 없고(無識), 작의(無作)가 없고 무위(無爲)로써 불사를 하기도 하느니라.

如是,阿難!諸佛威儀進止,諸所施為,無非佛事。
이와 같이 아난이여, 제불의 위의(威儀)와 나아가고 멈추는 등 하시는 모든 행위들이 불사 아님이 없느니라.

「阿難!有此四魔,八萬四千諸煩惱門,而諸眾生為之疲勞,諸佛即以此法而作佛事,是名入一切諸佛法門。
아난이여, 이 네 가지 마군(四魔)과 8만4천의 번뇌문(煩惱門)들이 있어서 온갖 중생은 이들 때문에 생사고해에 빠져 쉬지 않고 부침(浮沈)하면서 피로하지만, 모든 부처님들은 이들 번뇌를 대치하는 법문으로써 불사를 하고 있나니, 이것을 모든 부처님의 온갖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菩薩入此門者,若見一切淨好佛土,不以為喜,不貪不高;若見一切不淨佛土,不以為憂,不礙不沒;但於諸佛生清淨心,歡喜恭敬,未曾有也!
보살로서 이 법문에 들어가는 자는, 만약 어떠한 청정하고 아름다운 불국토를 보더라도 기쁨으로 여기지 않고 탐내지도 않으며 뽐내지도 않는다. 만약 어떠한 청정하지 않은 불국토를 보더라도 근심으로 여기지 않고 장애로 여기지도 않고 침울해하지도 않는다. 오직 모든 부처님에 대하여 청정한 마음을 일으키고 기뻐하고 공경하며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여길 뿐이다.

諸佛如來功德平等!為化眾生故,而現佛土不同。
모든 부처님 여래는 공덕이 절대 평등하여 둘이 아니지만, 근성이 다른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하기 때문에 불국토가 청정하거나 더러운 등 갖가지 다름을 나타내 보이신다.

阿難!汝見諸佛國土,地有若干,而虛空無若干也;如是見諸佛色身有若干耳,其無礙慧無若干也。
아난이여, 그대가 부처님들의 국토를 보면 약간 차별이 있으나 허공은 차별 없이 똑 같다. 이와 같이 부처님들의 색신을 보면 약간 차별이 있을 뿐 그 걸림 없는 지혜(無碍智)는 약간의 차별도 없어 완전히 같으니라.

「阿難!諸佛色身、威相、種性,戒、定、智慧、解脫、解脫知見,力、無所畏、不共之法、大慈、大悲,威儀所行,及其壽命,說法教化,成就眾生,淨佛國土,具諸佛法,悉皆同等,
아난이여, 모든 부처님은 색신(色身). 위덕상호(威相). 개성(種性). 계(戒). 정(定). 혜(智慧). 해탈(解脫). 해탈지견(解脫知見). 10력. 4무소외. 18불공법과 대자. 대비. 몸가짐 행동거지, 그리고 수명, 설법 교화, 중생을 성취시킴, 청정한 불국토, 모든 불법을 갖추고 있음은, 모두 다 동등하다.

是故名為三藐三佛陀,名為多陀阿伽度,名為佛陀。
그러므로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라고 부르며, 다타아가도(多陀阿伽度)라고 부르며, 불타(佛陀)라고 부르니라.

阿難!若我廣說此三句義,汝以劫壽,不能盡受;
아난이여, 만약 내가 이 세 개의 명호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말한다면, 네가 한 겁의 긴 수명 동안 듣더라도 다 들을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다.

正使三千大千世界滿中眾生,皆如阿難多聞第一,得念總持,此諸人等,以劫之壽,亦不能受。
설사 3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중생들이 모두 너 아난처럼 다문제일(多聞第一)이고,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 있는 총지의 힘을 얻었으며, 이 모든 사람들이 한 겁의 긴 수명 동안 듣더라도 다 들을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다

如是,阿難!諸佛阿耨多羅三藐三菩提,無有限量,智慧辯才不可思議。」
이와 같이, 아난이여, 모든 부처님들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한량이 없고, 지혜와 변재는 불가사의하니라.“

阿難白佛言:「我從今已往,不敢自謂以為多聞。」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지금부터 감히 제 스스로 다문제일(多聞)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佛告阿難:「勿起退意!所以者何?我說汝於聲聞中為最多聞,非謂菩薩。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물러서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 왜냐하면, 내가 그대를 성문들 중에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고 말하는 것이지, 보살들 중에서 다문제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且止,阿難!其有智者不應限度諸菩薩也;
그 얘기는 그만하기로 하자, 아난이여, 지혜가 있는 자라면 도를 얻은 모든 보살들의 경계를 일정한 범위로 추측해서는 안 된다.

一切海淵尚可測量,菩薩禪定、智慧、總持、辯才一切功德不可量也。
모든 큰 바다의 심연(深淵)은 오히려 측량할 수 있지만 보살의 선정. 지혜. 총지. 변재 등 모든 공덕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阿難!汝等捨置菩薩所行,是維摩詰一時所現神通之力。一切聲聞、辟支佛於百千劫,盡力變化所不能作。」
아난이여, 그대들은 보살이 행하는 경계 문제는 밀쳐두기로 하자. 이 유마힐이 한순간 보여준 신통의 힘은 모든 성문과 벽지불이 백천(百千) 겁 동안 온 힘을 다해 변화해내려고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爾時眾香世界菩薩來者,合掌白佛言:
그때에 중향세계에서 온 보살들이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世尊!我等初見此土,生下劣想,今自悔責,捨離是心。所以者何?諸佛方便,不可思議!為度眾生故,隨其所應,現佛國異。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이 사바국토를 처음 보고는 하열(下劣)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스스로 뉘우치고 그런 마음을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들의 방편은 불가사의하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므로 그들의 근기에 따라 불국토의 환경도 다름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唯然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음! 좋아요.”

世尊!願賜少法,還於彼土,當念如來。」
세존이시여. 원하오니 저희들에게 조금의 불법이라도 베풀어주십시오. 지니고 중향불국토에 돌아가 마땅히 여래를 늘 기억하겠습니다.

佛告諸菩薩:「有盡無盡解脫法門,汝等當學。
부처님께서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다함(盡)이 있고 다함이 없는(無盡) 해탈법문이 있으니, 그대들은 마땅히 배워야 한다.

何謂為盡?謂有為法;何謂無盡?謂無為法。
무엇을 다함이 있는 것(盡)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유위법(有爲法)을 말한다. 무엇을 다함이 없는 것(無盡)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무위법(無爲法)을 말한다.

如菩薩者,不盡有為,不住無為。「何謂不盡有為?謂不離大慈,不捨大悲;深發一切智心,而不忽忘;教化眾生,終不厭倦;於四攝法,常念順行;
보살이라면 유위법을 다하지도 않고 무위법에도 머물지 않는다. 유위법을 다하지 않는다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대자(大慈)를 떠나지 않고 대비(大悲)를 버리지 않는 것이요, 깊이 일체지심(一切智心: 보리심)을 일으켜 조금도 소홀히 하거나 잊지 않는 것이요, 중생을 교화하되 영원히 싫증내거나 피곤해 하지 않는 것이요, 4섭법(攝法)에 대해 항상 사념하고 그에 따라 행하는 것이요,

護持正法,不惜軀命;種諸善根,無有疲厭。
정법을 보호 유지하되 신명까지도 아끼지 않는 것이요, 온갖 선근을 심되 피로해 하거나 싫증내지 않는 것이요,

志常安住,方便迴向;求法不懈,說法無悋;
지향은 언제나 방편과 회향(廻向)에 안주하는 것이요, 법을 구함에 게으르지 않고 설법에 인색하지 않는 것이요,

勤供諸佛。故入生死而無所畏;
부지런히 모든 부처님들께 공양하는 것이요, 일부러 생사윤회 속에 들어가되 두려움이 없는 것이요,

於諸榮辱,心無憂喜;不輕未學,敬學如佛;
모든 영예와 모욕에 대하여 마음에 근심과 기쁨이 없는 것이요, 아직 배우지 못한 사람(未學)을 업신여기지 않고 이미 배운 사람을 부처님처럼 존경하는 것이요,

墮煩惱者,令發正念,
번뇌에 떨어진 사람으로 하여금 정념(正念)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요,

於遠離樂,不以為貴;
세속을 멀리 떠나는 즐거움에 대하여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요,

不著己樂,慶於彼樂。
자기의 즐거움을 탐착하지 않고 남의 즐거움을 축하하는 것이요,

在諸禪定,如地獄想;
갖가지 선정에 들어가 있는 것을 지옥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요,

於生死中,如園觀想;
생사윤회 속에 있는 것에 대하여 정원을 거닐며 놀 듯이 관상하는 것이요,

見來求者,為善師想;
무엇을 구하러 자기에게 찾아온 사람을 보면 훌륭한 스승으로 생각하는 것이요,

捨諸所有,具一切智想;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보시함으로써 일체지(一切智)를 갖추게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요,

見毀戒人,起救護想;
계율을 훼손하는 사람을 보면 구호하려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요,

諸波羅蜜,為父母想;
모든 바라밀을 부모라고 생각하는 것이요,

道品之法,為眷屬想。
37조도품의 법을 자기의 형제자매라고 생각하는 것이요,

發行善根,無有齊限;
발심하여 선근을 행하되 끝나는 한계를 두지 않는 것이요,

以諸淨國嚴飾之事,成己佛土;
부처님들의 정토의 가장 장엄하고 훌륭한 장식을 취하여 자기의 장래 불국정토를 이루는 것이요,

行無限施,具足相好;
한량없는 보시를 행하여 상호장엄의 과보를 갖추는 것이요,

除一切惡,淨身口意。
모든 악을 없애고 몸(身)과 입(口)과 의식(意)의 3업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요,

生死無數劫,意而有勇;
무수한 겁의 세월 동안 생사하면서 의지가 굳세며 용맹이 있는 것이요,

聞佛無量德,志而不倦。
부처님이 갖추고 있는 무량한 공덕을 듣고서 맹세코 뜻을 세워 피곤해 하지 않는 것이요,

以智慧劍,破煩惱賊;出陰界入,荷負眾生,永使解脫。
지혜의 칼로서 번뇌의 도적을 물리치는 것이요, 5음. 18계. 12입에서 벗어나고 중생을 짊어지고 영원히 해탈하게 하는 것이요,

以大精進,摧伏魔軍,
대정진(大精進)으로써 마군을 물리쳐 항복시키는 것이요,

常求無念實相智慧;
항상 무념(無念)으로써 실상(實相)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요,

行少欲知足,而不捨世法,
욕망을 줄이고 만족할 줄 앎을 실천하되 세간법을 버리지 않는 것이요,

不壞威儀法, 而能隨俗。
위의(威儀)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세속을 따를 수 있는 것이요,

起神通慧,引導眾生,
신통과 지혜를 일으켜서 중생을 이끌어 교화하는 것이요,

得念總持,所聞不忘。
염총지(念總持)를 얻어서 들은 교법을 잊지 않는 것이요,

善別諸根,斷眾生疑;
근기들을 잘 판별하여서 중생들의 의혹을 끊어주는 것이요,

以樂說辯,演法無礙。
즐거워하게 말하는 변재로써 알맞게 법을 설명하는 데 걸림이 없는 것이요,

淨十善道,受天、人福;
10선업도를 닦아 청정하여져 욕계천의 천인과 인간의 복락을 과보로 받는 것이요,

修四無量,開梵天道。
4무량심을 닦아서 색계천의 범천으로 올라가 태어나는 길을 여는 것이요,

勸請說法,隨喜讚善,得佛音聲;
법을 설하여 주도록 권청하고 또 따라 기뻐하며 훌륭하다 찬탄하여 부처님과 같은 목소리를 얻는 것이요,

身口意善,得佛威儀。
몸과 입과 의식이 완전히 선(善)하여 부처님과 같은 위의(威儀)를 얻는 것이요,

深修善法,所行轉勝;
온갖 선법을 깊이 닦아가서 행한 선법이 더욱더 뛰어난 것이요,

以大乘教,成菩薩僧;
대승을 가르쳐서 보살의 승가를 이룩하는 것이요,

心無放逸,不失眾善。
마음에 방일함이 없이 온갖 선(善)을 행하기를 잃지 않는 것이다.

行如此法,是名菩薩不盡有為。
이상과 같은 갖가지 보살법들을 행하는 것을 보살이 유위법을 다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何謂菩薩不住無為?
무엇을 보살이 무위법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가?

謂修學空,不以空為證;修學無相、無作,不以無相、無作為證;修學無起,不以無起為證。
공(空)을 닦고 배우지만 공의 증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요, 무상(無相)과 무작(無作)을 닦고 배우지만 무상과 무작의 증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요, 무기(無起)를 닦고 배우지만 무기의 증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요,

觀於無常,而不厭善本;
무상(無常)을 관찰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선근공덕(善本)을 행하기를 싫어하지 않는 것이요,

觀世間苦,而不惡生死;
세간이 괴롭다는 것을 관찰하면서도 생사의 괴로움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요,

觀於無我,而誨人不倦;
무아(無我)를 관찰하면서도 남을 가르치기에 게으르지 않는 것이요,

觀於寂滅,而不永寂滅;
적멸하다는 것을 관찰하면서도 적멸의 경계에 영원히는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이요,

觀於遠離,而身心修善;
멀리 떠나야 함을 관찰하면서도 몸과 마음으로 선법을 닦는 것이요,

觀無所歸,而歸趣善法;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을 관찰하면서도 여전히 선법으로 돌아가 행하는 것이요,

觀於無生,而以生法荷負一切;
무생(無生)의 도리를 관찰하여 알면서도 생겨나는 법으로 온갖 중생의 짐을 지는 것이요,

觀於無漏,而不斷諸漏;
번뇌가 없음(無漏)을 관찰하면서도 온갖 번뇌를 끊어 버리지 않는 것이요,

觀無所行,而以行法教化眾生;
행한 바가 없음을 관찰하면서도 행하는 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요,

觀於空無,而不捨大悲;
공(空)하여 자성(自性)이 없음을 관찰하면서도 대비심을 버리지 않는 것이요,

觀正法位,而不隨小乘;
정법위(正法位)를 관찰하면서도 소승을 따르지 않는 것이요,

觀諸法虛妄,無牢無人、無主無相,本願未滿,而不虛福德、禪定、智慧。
온갖 법은 허망하여 견고함도 없고 인아(人我)도 없으며, 주재자도 없고 형상도 없음을 관찰하면서도, 보살의 본원(本願)이 아직 성취되기 이전에는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적극적으로 복덕과 선정과 지혜를 닦는 것이다.

修如此法,是名菩薩不住無為。「又具福德故,不住無為;
이상과 같은 보살법을 닦는 것을 보살이 무위법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총괄적으로 다시 말하면, 보살은 복덕을 다 갖추었기 때문에 무위법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요,

具智慧故,不盡有為。
지혜를 다 갖추었기 때문에 유위법을 다하지 않는 것이요,

大慈悲故,不住無為;滿本願故,不盡有為。
대자비심 때문에 무위법에도 머무르지 않는 것이요, 본원(本願)을 원만히 이루기 위하므로 유위법을 다하지 않는 것이요,

集法藥故,不住無為;
법약을 널리 모으기 때문에 무위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요,

隨授藥故,不盡有為。
중생의 병증에 따라 약을 주기 때문에 유위법을 다하지 않는 것이요,

知眾生病故,不住無為;滅眾生病故,不盡有為。
중생의 온갖 병증을 알기 때문에 무위법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요, 중생의 온갖 병증을 치료하기 때문에 유위법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諸正士菩薩以修此法,不盡有為、不住無為,是名盡無盡解脫法門,汝等當學!」
모든 보살들이 이러한 법들을 닦아감으로써 유위법도 다하지 않고 무위법도 다하지 않는 것, 이것을 다함이 있고 다함이 없는 해탈법문이라고 하는데, 그대들은 마땅히 배워야 하느니라.”

爾時彼諸菩薩聞說是法,皆大歡喜,以眾妙華、若干種色、若干種香,散遍三千大千世界,供養於佛,及此經法,并諸菩薩已,稽首佛足,歎未曾有!言:「釋迦牟尼佛乃能於此善行方便。」言已,忽然不現,還到彼國。
그때에 저 중향국의 보살들은 이 설법을 듣고는 모두 크게 기뻐하여, 갖가지 색깔과 갖가지 향기의 오묘한 꽃들을 3천대천세계에 두루 흩뿌리고, 부처님과 이 경법과 아울러 모든 보살들에게 공양했다. 그리고 부처님의 발에 정례하고는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라 찬탄하고 말하였다. “석가모니부처님이시니 비로소 이 사바세계에서 훌륭한 갖가지 방편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홀연히 사라져 저들의 나라로 되돌아갔다.

ㅇㅇㅇ



















《維摩詰所說經》見阿閦佛品第十二








爾時世尊問維摩詰:「汝欲見如來,為以何等觀如來乎?」
그때에 부처님께서 유마힐에게 물으셨다. “그대는 여래를 보고자 하였는데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여래를 볼 수 있는가?”

維摩詰言:「如自觀身實相,觀佛亦然。
유마힐은 대답하였다. “제가 이 몸의 실상(實相)이 공(空)함을 보는 것과 같이 부처님을 보는 것도 그렇습니다.

我觀如來前際不來,後際不去,今則不住。
저는 여래를 과거에서도 오지 않고, 미래로도 가지 않으며, 현재에도 머물지 않는다고 봅니다.

不觀色,不觀色如,不觀色性。
색(色)을 보지 않고, 색과 성공(性空-色如)을 보지 않으며, 색의 자성(色性)을 보지 않습니다.

不觀受、想、行、識,不觀識如,不觀識性,
수(受). 상(想). 행(行). 식(識) 등을 보지 않고, 식(識) 등과 성공(識如)을 보지 않으며, 식 등의 자성(識性)을 보지 않습니다.

非四大起,同於虛空。
4대가 일어난 것이 아니며, 허공과 같습니다.

六入無積,眼、耳、鼻、舌、身、心已過;
6입은 쌓여 모임이 없으니, 안. 이. 비. 설. 신. 의(心)를 이미 초월 했습니다.

不在三界,三垢已離。順三脫門,
3계에 있지 않고, 3독의 더러움(三垢)을 이미 떠났으며, 3해탈문(三脫門)을 수순합니다.

具足三明,與無明等。
3명(三明)을 모두 갖추었지만 무명(無明)과 평등하여 다르지 않습니다.

不一相、不異相,不自相、不他相,非無相、非取相。
하나의 모습(一相)도 아니고, 다른 모습(異相)도 아닙니다. 자신만의 고유한 모습(自相)도 아니고, 타자의 모습(他相)도 아닙니다. 모습이 없는 것(無相)도 아니고, 모습을 취하는 것(取相)도 아닙니다.

不此岸,不彼岸,不中流,而化眾生。
이 언덕에도 머무르지 않고, 저 언덕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강 중간의 흐름(​中流)에도 머무르지 않으면서 중생을 교화합니다.

觀於寂滅,亦不永滅。
항상 적멸을 관하면서도, 영원히 적멸에 들어가지는 않고 세간에 들어갑니다.

不此不彼;不以此,不以彼。不可以智知,不可以識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닙니다. 이 한 면을 붙들어 쥐어도 안 되고 저 한 면을 붙들어 쥐어도 안 됩니다. 지혜로써 이해해서도 안 되고 의식으로써 추측해서도 안 됩니다.

無晦無明,無名無相,無強無弱,非淨非穢。不在方,不離方;非有為,非無為。無示無說。不施不慳,不戒不犯,不忍不恚,不進不怠,不定不亂,不智不愚,不誠不欺,不來不去,不出不入,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습니다. 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습니다. 강함도 없고 약함도 없습니다. 깨끗함도 아니고 더러움도 아닙니다. 어떤 방위에 있지도 않고 어떤 방위를 떠나지도 않습니다. 유위법도 아니고 무위법도 아닙니다. 보여줌도 없고 설함도 없습니다. 보시도 하지 않고 아끼지도 않습니다. 계율을 지키지도 않고 계율을 범하지도 않습니다. 인욕하지도 않고 성내지도 않습니다. 정진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습니다. 선정속에도 있지 않고 산란하지도 않습니다. 지혜롭지도 않고 우둔하지도 않습니다. 진실하지도 않고 속이지도 않습니다.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습니다. 나가지도 않고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一切言語道斷。
요컨대 모든 언어로 표현할 길이 끊어졌습니다.

非福田,非不福田;非應供養,非不應供養;非取非捨。非有相,非無相。
복전도 아니고 복전 아님도 아닙니다. 공양해야 할 것도 아니고 공양하지 않아야 할 것도 아닙니다. 취하는 것도 아니고 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형상(相)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형상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同真際,等法性。
진제(眞際)와 같고 법성(法性)과 평등합니다.

不可稱,不可量,過諸稱量。
일컬을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어서 모든 일컬음과 헤아림을 뛰어넘었습니다.

非大非小,非見非聞,非覺非知,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닙니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離眾結縛。
온갖 결박을 떠났습니다.

等諸智,同眾生,
모든 지혜에 평등하고, 중생과 같습니다.

於諸法無分別。一切無失,
모든 법에 대하여 분별함이 없으며, 온갖 것을 잃음이 없습니다.

無濁無惱,無作無起,無生無滅。無畏無憂,無喜無厭無著。無已有,無當有,無今有。
5탁악세도 없고 번뇌도 없습니다. 지음(作)도 없고 일으킴(起)도 없습니다. 생겨남도 없고 소멸함도 없습니다. 두려워함도 없고 근심함도 없습니다. 기뻐함도 없고 싫어함도 없습니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으며 현재도 없습니다.

不可以一切言說分別顯示。
요컨대 어떤 언어문자로도 분별하고 나타내 보일 수가 없습니다.

世尊!如來身為若此,作如是觀。以斯觀者,名為正觀;若他觀者,名為邪觀。」
세존이시여, 여래의 몸은 이와 같으므로 이와 같이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보는 것을 정관(正觀)이라고 하고, 만약 다르게 본다면 사관(邪觀)이라고 합니다.“

爾時舍利弗問維摩詰:「汝於何沒而來生此?」
그때에 사리불이 유마힐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디에서 죽어서(沒) 이 세계로 와서 태어났습니까?”

維摩詰言:「汝所得法有沒生乎?」
유마힐이 말하였다. “그대가 얻은 법(法)에는 죽음과 태어남이 있습니까?”

舍利弗言:「無沒生也。」
사리불이 말하였다. “죽음과 태어남이 없습니다.”

「若諸法無沒生相,云何問言:『汝於何沒而來生此?』
유마힐이 말하였다. “만약 온갖 법이 생멸이 없다면, 그대는 어찌해서 나에게 ‘그대는 어디에서 죽어서 이 세계로 와서 태어났느냐?’ 고 물었습니까?

於意云何?譬如幻師,幻作男女,寧沒生耶?」
그대 생각은 어떻습니까? 비유컨대 마술사가 마술로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냈다면, 설마 그들이 죽어 태어날까요?”

舍利弗言:「無沒生也。
사리불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죽음과 태어남이 없습니다.”

汝豈不聞佛說諸法如幻相乎?」
유마힐이 말하였다. “그대는 부처님께서 온갖 법은 환상(幻相)과 같다 라고 설하신 것을 들어보지 않았던가요?”

答曰:「如是!
사리불이 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若一切法如幻相者!云何問言:『汝於何沒而來生此?』
유마힐이 말하였다. “만약 온갖 법이 환상(幻相)과 같다면, 어째서 ‘그대는 어느 곳에서 죽어서 이 세계에 와 태어났습니까?’ 라고 물었습니까?

舍利弗!沒者為虛誑法,敗壞之相;生者為虛誑法,相續之相。菩薩雖沒,不盡善本;雖生,不長諸惡。」
사리불님, 죽는다(沒)는 것은 허망부실한 법이 파괴되는 현상입니다. 생겨난다는 것은 허망부실한 법이 상속하는 현상입니다. 보살은 비록 죽더라도 선근(善本)을 없애지 않으며, 비록 태어나더라도 온갖 악을 증장하지 않습니다.“

是時佛告舍利弗:「有國名妙喜,佛號無動。是維摩詰於彼國沒,而來生此。」
이때에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묘희국(妙喜國)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부처님의 명호는 무동(無動)이다. 이 유마힐은 그 나라에서 죽어서 이곳에 와서 태어난 것이니라.”

舍利弗言:「未曾有也。世尊!是人乃能捨清淨土,而來樂此多怒害處。」
사리불이 말하였다. “일찍이 없었던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분이 청정한 국토를 버리고 성냄과 해침이 많은 이곳으로 와서 태어나 즐길 수 있다니 말입니다.”

維摩詰語舍利弗:「於意云何?日光出時與冥合乎?」
유마힐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그대 생각은 어떠합니까? 햇빛이 날 때 어둠과 결합할까요?”

答曰:「不也!日光出時,即無眾冥。」
사리불이 답하였다. “아닙니다. 햇빛이 날 때는 모든 어둠이 사라져버립니다.”

維摩詰言:「夫日何故行閻浮提?」
유마힐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태양은 무슨 까닭으로 염부제(閻浮提)로 운행하여 올까요?”

答曰:「欲以明照,為之除冥。」
사리불이 답하였다. “밝게 비춤으로써 어둠을 없애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維摩詰言:「菩薩如是!雖生不淨佛土,為化眾生故,不與愚闇而共合也,但滅眾生煩惱闇耳!」
유마힐은 말하였다. “보살도 이와 같아서 비록 청정하지 못한 불국토에 태어나지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므로 결코 중생의 어리석음의 어둠에 휩쓸려 오염되지 않고, 다만 중생의 번뇌의 어둠을 없앨 뿐입니다.”

是時大眾渴仰,欲見妙喜世界無動如來,及其菩薩、聲聞之眾。
그때에 대중들은 묘희국의 무동여래(無動如來)와 그 보살과 성문의 대중들을 목마르듯 우러르며 보고 싶어 했다.

佛知一切眾會所念,告維摩詰言:「善男子!為此眾會,現妙喜國無動如來,及諸菩薩、聲聞之眾,眾皆欲見。」
부처님께서는 모든 대중들의 모임이 생각하는 바를 아시고 유마힐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 대중들의 모임을 위하여 묘희국의 무동여래와 보살들과 성문들의 대중을 나타나게 하라. 대중들 모두가 보고 싶어 하노라.”

於是維摩詰心念:「吾當不起于座,接妙喜國,鐵圍山川溪谷江河,大海泉源,須彌諸山,及日月星宿、天龍鬼神梵天等宮,并諸菩薩、聲聞之眾,城邑聚落,男女大小,乃至無動如來,及菩提樹,諸妙蓮華,能於十方作佛事者;三道寶階從閻浮提,至忉利天,以此寶階,諸天來下,悉為禮敬無動如來,聽受經法。閻浮提人,亦登其階,上昇忉利,見彼諸天。妙喜世界成就如是無量功德,上至阿迦膩吒天,下至水際;以右手斷取,如陶家輪,入此世界,猶持華鬘,示一切眾。」
이때에 유마힐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묘희국을 이 사바세계로 이끌어와야겠다. 그 철위산(鐵圍山). 산천. 계곡. 강하(江河). 큰 바다. 수원(泉源). 수미산들과 해와 달. 별. 하늘. 용. 귀. 신. 범천 등의 궁전과 모든 보살들과 성문들, 성읍(城邑). 취락(聚落)과 남녀노소들, 더 나아가 무동여래와 보리수, 갖가지 미묘한 연꽃 등, 시방에서 불사(佛事)를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함께 옮겨와야겠다. 또 세 길의 보배 계단을 염부제(閻浮提)로부터 도리천(忉利天)까지 끌어올려, 그 계단으로 천인들이 내려와 모두 무동여래에게 예경하고 경법(經法)을 듣고 받게 하겠다. 그리고 염부제의 사람들도 그 계단으로 도리천에 올라가 저 천인들을 보게 하고, 묘희세계가 이와 같이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한 것을 보게 하겠다. 그런 다음 묘희국을 위로는 아가니타천(阿迦膩吒天)으로부터 아래로는 수륜(水際)에 이르기까지, 오른손으로 끊어 취하기를 마치 도공(陶家)이 고령토를 잡아 쥐듯이 하여 이 세계로 옮겨서 마치 꽃다발을 손에 든 것처럼 보여 주어야겠다.’

作是念已,入於三昧,現神通力,以其右手斷取妙喜世界,置於此土。
이런 생각을 하고는 삼매에 들어가 신통력을 나타내어 그 오른손으로 묘희세계를 끊어 취해서 이 사바세계 땅 위에 옮겨 놓았다.

彼得神通菩薩及聲聞眾,并餘天、人,俱發聲言:「唯然世尊!誰取我去!願見救護。」
이미 신통력을 얻은 묘희국의 보살들과 성문 대중들과 그 밖의 천인들은 함께 소리 내어 말하였다. “여보십시오! 세존이시여, 누가 우리를 집었습니까? 보시고 구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無動佛言:「非我所為,是維摩詰神力所作。」
무동불(無動佛)이 말하였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유마힐이 신통력으로 하는 것이다.”

其餘未得神通者,不覺不知己之所往。妙喜世界,雖入此土,而不增減,於是世界亦不迫隘,如本無異。
그 나머지 아직 신통력을 얻지 못한 자들은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전혀 알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였다. 묘희세계가 비록 이 사바세계 안으로 옮겨져 들어왔지만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았으며 이 묘희세계도 좁아지지 않아, 각자 본래와 같이 다름없었다.

爾時釋迦牟尼佛告諸大眾:「汝等且觀妙喜世界無動如來,其國嚴飾,菩薩行淨,弟子清白。」
그때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모든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묘희세계의 무동여래와, 그 나라의 장엄한 장식과, 보살행의 청정함과, 제자들의 3업이 청백함을 보라.”

皆曰:「唯然! 已見。」
모두가 말하였다. “예! 이미 보았습니다.”

佛言:「若菩薩欲得如是清淨佛土,當學無動如來所行之道。」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청정한 불국토를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무동여래가 행한 도를 배워야 하느니라.”

現此妙喜國時,娑婆世界十四那由他人,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皆願生於妙喜佛土。
이 묘희국이 나타났을 때, 이 사바세계의 14나유타(那由他) 명의 사람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고 모두 묘희불국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하였다.

釋迦牟尼佛即記之曰:「當生彼國。」
석가모니부처님은 곧 그들에게 수기를 주어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장래에 모두 저 나라에 태어나리라.”

時妙喜世界於此國土所應饒益,其事訖已,還復本處,舉眾皆見。
그때에 묘희세계는 이 세계에서 중생을 응당 이롭게 해야 할 일이 끝나자 본래의 처소로 되돌아갔으며, 모든 대중들은 다 그것을 보았다.

佛告舍利弗:「汝見此妙喜世界及無動佛不?」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 묘희세계와 무동불을 보았는가?”

「唯然! 已見,世尊!願使一切眾生得清淨土,如無動佛;獲神通力,如維摩詰。
사리불이 말씀드렸다. “예,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무동불 같은 청정한 불국토를 얻게 하고, 유마힐 같은 신통력을 얻게 하기를 원합니다.

世尊!我等快得善利,得見是人親近供養。其諸眾生,若今現在,若佛滅後,聞此經者,亦得善利;況復聞已信解,受持讀誦解說,如法修行。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런 좋은 공덕이익을 얻었고, 특히 유마힐 거사 이분을 뵙고 친근히 하고 공양할 수 있으니 정말 통쾌합니다. 기타의 모든 중생들이 만약 지금 현재나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이 경전을 듣는다면 역시 좋은 공덕이익을 얻을 것입니다. 하물며 듣고 나서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니고, 독송하고 해설하며, 가르침대로(如法) 수행한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若有手得是經典者,便為已得法寶之藏;若有讀誦解釋其義,如說修行,即為諸佛之所護念;其有供養如是人者,當知即為供養於佛;其有書持此經卷者,當知其室即有如來;若聞是經能隨喜者,斯人即為取一切智;若能信解此經,乃至一四句偈,為他說者,當知此人,即是受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손에 얻었다면, 그는 이미 법보의 창고를 얻은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독송하고 그 뜻을 해석하고 설한대로 수행한다면, 그는 모든 부처님들에 의해 호념(護念)받을 것입니다. 만약 이와 같은 사람을 공양한다면, 곧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라고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베껴 써서 지닌다면, 그의 방 안에는 여래가 있다고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만약 이 경전을 듣고 따라 기뻐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은 일체지로 향할 것입니다. 만약 이 경전을 믿고 이해하고, 심지어 4구게(四句偈) 하나라도 남에게 설명하여 준다면, 이 사람은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기를 받은 것이라고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維摩詰所說經》法供養品第十三







爾時釋提桓因於大眾中白佛言:「世尊!我雖從佛及文殊師利聞百千經,未曾聞此不可思議,自在神通,決定實相經典。
그때에 석제환인이 대중들 가운데에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과 문수사리로부터 백천(百千) 가지의 경법(經法)을 들었지만, 이렇게 불가사의하고 자재한 신통과 절대적인 실상의 경전을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如我解佛所說義趣,若有眾生聞是經法,信解受持讀誦之者,必得是法不疑,何況如說修行?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의의(意義)와 취지(趣旨)를 이해한 바에 따르면, 만약 어떤 중생이 이 경법을 듣고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니고 독송한다면, 그는 반드시 이 법을 얻게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설하신 그대로 수행하는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斯人即為閉眾惡趣開諸善門,常為諸佛之所護念;
이 사람은 모든 악취(惡趣)의 문을 닫아 버리게 되고, 모든 선문(善門)을 열 것이며, 항상 모든 부처님들의 호념을 받을 것이며,

降伏外學,摧滅魔怨;
외도의 학문을 항복시키고 마군을 꺾어 없앨 것이며,

修治菩提,安處道場;履踐如來所行之跡。
보리를 닦으며 도량으로 편히 여기고 생활하면서 여래께서 걸어가신 발자국을 따라 밟아갈 것입니다.

世尊!若有受持讀誦如說修行者,我當與諸眷屬供養給事;所在聚落城邑、山林曠野,有是經處,我亦與諸眷屬,聽受法故共到其所;
세존이시여, 만약 이 경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설하신 그대로 수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응당 모든 권속들과 함께 공양을 올리고 받들겠습니다.
취락이나 성읍. 숲. 광야, 그 어디이든 이 경전이 있는 곳이라면 저는 역시 권속들과 이 가르침을 듣고 받기 위하여 함께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其未信者,當令生信;其已信者,當為作護。」
아직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믿음을 일으키게 하고, 이미 믿는 사람에게는 보호자가 되겠습니다.”

佛言:「善哉,善哉!天帝!如汝所說,吾助爾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다! 좋다! 천제(天帝)여, 그대가 말한 대로 하라, 나도 그대를 도와주고 기뻐할 것이다.

此經廣說過去、未來、現在諸佛不可思議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 경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의 불가사의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자세히 설하였다.

是故,天帝!若善男子、善女人,受持、讀誦、供養是經者,即為供養去、來、今佛。
그러므로 천제여,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고 공양한다면 곧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이니라.

「天帝!正使三千大千世界如來滿中,譬如甘蔗、竹𥯤、稻麻、叢林;若有善男子、善女人,或一劫、或減一劫,恭敬尊重,讚歎供養,奉諸所安,至諸佛滅後,以一一全身舍利起七寶塔,縱廣一四天下,高至梵天,表剎莊嚴;以一切華香、瓔珞、幢幡、伎樂微妙第一,若一劫、若減一劫,而供養之。於天帝意云何,其人植福,寧為多不?」
천제여, 가령 3천대천세계 속에 여래들이 가득히 계심이, 비유컨대 사탕수수. 대. 갈대. 벼. 삼. 밀림처럼 많다고 하자. 이 모든 여래들에 대하여 만약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혹은 1겁 동안 혹은 감(減) 1겁 동안 내내 공경 존중하고 찬탄 공양하며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시봉하고, 이 모든 부처님들이 열반한 다음에는 한 분 한 분마다의 온몸 사리를 위하여 7보탑을 하나씩 세우되, 그 넓이는 하나의 4천하에 이르고 그 높이는 범천에 도달하며 그 탑의 꼭대기 당간은 장엄하다. 다시 이 모든 탑들에 대하여 가장 미묘하고 최상등급의 온갖 꽃이나 향. 영락. 당번깃발. 기악으로써 혹은 1겁 동안 혹은 감 1겁 동안 끊임없이 공양한다면, 천제여, 그대의 생각에 어떠한가? 이 사람이 심은 복덕은 많겠는가 많지 않겠는가?”

釋提桓因言:「多矣,世尊!彼之福德,若以百千億劫,說不能盡。」
석제환인이 말하였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그의 복덕은 만약 백천억 겁에 걸쳐 말하더라도 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佛告天帝:「當知是善男子、善女人,聞是不可思議解脫經典,信解受持,讀誦修行,福多於彼。
부처님께서 천제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선남자 선여인이 이 불가사의해탈경전(不可思議解脫經典)을 듣고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니고 독송하고 수행하면, 복덕은 그 보다도 많으니라.

所以者何?諸佛菩提皆從是生;菩提之相不可限量,以是因緣福不可量。」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들의 보리가 다 이 경전에서 나온 것이며, 그 보리의 모습은 한정지어 헤아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인연으로 그 복덕은 헤아릴 수가 없느니라.”

佛告天帝:「過去無量阿僧祇劫,時世有佛,號曰藥王如來、應供、正遍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師、佛、世尊。
부처님께서 천제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무량아승기겁의 ​시기에 세계에 부처님께서 계셨으니, 명호를 약왕여래(藥王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佛). 세존(世尊)이라고 하였다.

世界名大莊嚴,劫曰莊嚴,佛壽二十小劫;其聲聞僧三十六億那由他;菩薩僧有十二億。
그 세계를 대장엄(大莊嚴)이라 하고, 그 겁수를 장엄(莊嚴)이라고 하였다. 부처님의 수명은 20소겁(小劫)이며, 그 성문승(聲聞僧)은 36억 나유타이고, 보살승(菩薩僧)은 12억이었다.

天帝!是時有轉輪聖王,名曰寶蓋,七寶具足,主四天下。
천제여, 그때에 전륜성왕이 있었는데, 이름을 보개(寶蓋)라고 하였으며 7보를 갖추어서 4천하를 통치하였다.

王有千子,端正勇健,能伏怨敵。
왕에게는 1천 명의 왕자가 있었는데, 단정하고 용감하고 강건하여 적을 항복시킬 수 있었다.”

「爾時寶蓋與其眷屬供養藥王如來,
그때에 보개는 그 권속들과 함께 약왕여래에게 공양하여,

施諸所安,至滿五劫。
여래가 편안히 중생을 교화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베풀기를 만 5겁 동안이나 하였다.

過五劫已,告其千子:『汝等亦當如我,以深心供養於佛。』於是千子受父王命,供養藥王如來,復滿五劫,一切施安。
5겁이 지나자 그 1천 명의 왕자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도 응당 나처럼 깊은 마음으로 부처님께 공양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1천 명의 왕자들은 부왕의 명을 받들어 약왕여래에게 공양하여 다시 만 5겁 동안 온갖 것을 베풀어 편안하게 하였다.

其王一子,名曰月蓋,獨坐思惟:『寧有供養殊過此者?』
그 왕자들 중에 월개(月蓋)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홀로 앉아 사유하였다. ‘설마 이런 공양보다 더 뛰어난 공양이 없을까?’

以佛神力,空中有天曰:『善男子!法之供養勝諸供養。』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공중에 어떤 천인으로 나타나 말하였다. “선남자여, 법공양이 온갖 공양보다도 뛰어납니다.”

即問:『何謂法之供養?』天曰:『汝可往問藥王如來,當廣為汝說法之供養。』
왕자가 곧 물었다. “무엇을 법공양이라 합니까?” 천인이 말하였다. “그대가 약왕여래에게 가서 여쭈어보십시오. 응당 그대를 위해서 법공양을 자세히 말씀해주실 것입니다.”

「即時月蓋王子行詣藥王如來,稽首佛足,却住一面,白佛言:『世尊!諸供養中,法供
養勝。云何為法供養?』
즉시 월개 왕자는 약왕여래를 찾아갔다. 부처님의 발에 정례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온갖 공양 중에 법공양이 뛰어나다는데, 어떤 것을 법공양이라 합니까?”

佛言:『善男子!法供養者,諸佛所說深經,一切世間難信難受,微妙難見,清淨無染,非但分別思惟之所能得。
약왕여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법공양이란 모든 부처님들께서 설하신 심오한 경전으로서, 모든 세간의 중생이 믿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어려우며, 미묘하여 보기가 어렵고,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으며, 중생이 분별하고 사유함으로써 증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菩薩法藏所攝,陀羅尼印印之。至不退轉,成就六度,
심오한 경전은 대승보살의 법장(法藏)에 속하는 것으로 다라니의 실상인(實相印)으로 이를 인증하였으며, 이에 의지하여 닦고 배우면 불퇴전에 이르고 6바라밀을 성취한다.

善分別義,順菩提法,眾經之上。
깊은 의미를 잘 분별하며, 보리법에 따르며, 성불의 대법을 설하므로 모든 경전 중에 가장 높은 것이다.

入大慈悲,離眾魔事,及諸邪見。順因緣法,無我,無人,無眾生,無壽命,空、無相、無作、無起。
대자비로 들어가 온갖 중생을 제도하며, 모든 마군의 장애와 온갖 사견(邪見)을 떠나서 받지 않으며, 인연법의 보리에 따라 행하여 아(我)도 없고 인(人)도 없고 중생(衆生)도 없고 수명(壽命)도 없으며, 온갖 것이 공(空)이요 무상(無相)이요 무작(無作)이요 무기(無起)이다.

能令眾生坐於道場,而轉法輪,諸天、龍神、乾闥婆等,所共歎譽。
중생으로 하여금 도량에 앉아 법륜을 굴리게 할 수 있으니, 천인들과 용신(龍神). 건달바(乾闥婆) 등이 함께 칭찬하며,

能令眾生入佛法藏,攝諸賢聖一切智慧。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법장(法藏)으로 깊이 들어가, 모든 현자와 성인의 온갖 지혜를 다 모아 얻게 할 수 있고,

說眾菩薩所行之道,
보살들이 행하는 도법을 설하게 할 수 있으며,

依於諸法實相之義。明宣無常、苦、空、無我、寂滅之法,
온갖 법의 실상의 진의(眞義)에 따라 무상(無常). 고(苦). 공(空). 무아(無我). 적멸(寂滅)의 법문을 명백히 선양하며,

能救一切毀禁眾生;
계율을 깨고 범하는 모든 중생들을 구제할 수 있다.

諸魔外道及貪著者,能使怖畏;諸佛賢聖所共稱歎。
모든 마군 외도와 탐착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견의 그물과 애욕의 깊은 구덩이를 두려워하게 할 수 있으니, 모든 부처님과 현자와 성인이 함께 칭찬한다.

背生死苦,示涅槃樂,
생사고해를 등지고 떠나서 열반의 즐거움을 얻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으로,

十方三世諸佛所說。
시방세계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이 설하시는 것이니라.

若聞如是等經,信解受持讀誦,以方便力,為諸眾生分別解說,顯示分明,守護法故,是名法之供養。
만약 이와 같은 심오한 경전들을 듣고 나서,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니고 독송하고, 다시 방편의 힘으로 중생들을 위하여 분석하고 해설하여 분명하게 나타내 보여준다면, 법을 수호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법공양이라고 하느니라.

又於諸法如說修行,
또 모든 법문들에 대하여 설하신 대로 수행하되,

隨順十二因緣,
12인연 법칙에 수순하여,

離諸邪見,得無生忍;
모든 사견을 떠나고, 무생법인을 얻는다.

決定無我無有眾生,而於因緣果報無違無諍,
절대로 아상이 없고 중생상이 없으면서, 인연과 과보에 대하여 위배함도 없고 논쟁도 없으며,

離諸我所。
나의 것(我所)이라는 모든 집착을 떠났다.

依於義,不依語;依於智,不依識;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依於法,不依人。
불법을 닦고 배움에는 의미(義)의 깊은 이해에 의지해야지 언어문자(語)의 피상적 해석에 의지해서는 안 되며, 반야지혜(智)의 체득에 의지해야지 심의식(識)의 분별 추측에 의지해서는 안 되며, 궁극적으로 철저하게 설한 요의경전(了義經)에 의지해야지 방편으로 설한 불요의경전(不了義經)에 의지해서는 안 되며, 법(法)에 맞는 지에 의지해야지 설한 사람이 누구인지(人)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隨順法相,無所入,無所歸。無明畢竟滅故,諸行亦畢竟滅;乃至生畢竟滅故,老死亦畢竟滅。作如是觀,十二因緣,無有盡相,不復起見,是名最上法之供養。』」
법상(法相)에 수순하여, 들어감도 없고 돌아감도 없다. 무명(無明)이 마침내 소멸하였으므로 행(行) 등도 마침내 소멸한다. 더 나아가 생(生)도 마침내 소멸하므로 노사(老死)도 마침내 소멸한다. 이와 같이 관하여, 12인연이 다하는 상(盡相)이 없고 다시 상(相)을 일으키지 않으면, 이것을 최상의 법공양이라고 하느니라.”

佛告天帝:「王子月蓋從藥王佛聞如是法,得柔順忍。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천제에게 말씀하셨다. “왕자 월개는 약왕여래로부터 이와 같은 법을 듣고 유순인(柔順忍)을 얻어서,

即解寶衣嚴身之具,以供養佛,
즉시 보배로 장식된 옷과 장신구를 벗어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白佛言:『世尊!如來滅後,我當行法供養,守護正法。願以威神加哀建立,令我得降伏魔怨,修菩薩行。』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열반하신 뒤에 저는 마땅히 법공양을 행하고 정법을 지켜 나가겠습니다. 원하오니 위신력으로써 가피를 주시고 힘을 주셔서, 마군을 항복시켜 보살행을 닦을 수 있도록 하여 주소서.’

佛知其深心所念,而記之曰:『汝於末後,守護法城。』
약왕부처님께서는 그의 깊은 마음이 생각하는 바를 알고 그에게 수기를 주며 말씀하셨다. ‘그대는 말법시대에 불법의 성곽을 지킬 것이다.’

天帝!時王子月蓋,見法清淨,聞佛授記,以信出家,修集善法;精進不久,得五神通,逮菩薩道,得陀羅尼,無斷辯才。於佛滅後,以其所得神通、總持、辯才之力,滿十小劫,藥王如來所轉法輪隨而分布。
천제여, 그 때에 왕자 월개는 불법의 청정함을 보았고, 부처님의 수기를 듣고는 바른 믿음으로 출가하였다. 선법(善法)을 닦아 익히고 정진한 지 오래지 않아서 5신통을 얻었고, 보살도를 갖추었으며, 다라니를 얻었고 변재가 끊어짐이 없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는 그가 얻은 신통력과 총지(總持)와 변재의 힘으로 10소겁이 다하도록 약왕여래께서 굴리신 법륜을 따라 널리 베풀었다.

月蓋比丘以守護法,勤行精進,即於此身,化百萬億人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立不退轉;十四那由他人,深發聲聞、辟支佛心;無量眾生得生天上。
월개 비구는 정법을 수호하고 부지런히 정진함으로써 자신의 한 생애 동안에 백만억 명의 사람을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지위에 도달하게 하였다. 또 14나유타 명의 사람들이 성문과 벽지불이 되고자 깊이 발원하였으며, 한량없는 중생들이 천상에 태어날 수 있었느니라.

天帝!時王寶蓋豈異人乎?今現得佛,號寶炎如來;
제석천이여, 당시의 보개왕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그는 지금 이미 부처가 되어 명호를 보염여래(寶炎如來)라고 하며,

其王千子,即賢劫中千佛是也。
그 왕의 1천 명의 왕자들은 바로 현겁(賢劫)중에 서로 계승하여 세상에 응화하시는 1천 부처님들이다.

從迦羅鳩孫駄為始得佛,最後如來號曰樓至。
가라구손타(迦羅鳩孫駄)가 첫 번째로 부처님이 되었고, 최후의 여래는 명호가 누지(樓至)라고 한다.

月蓋比丘,即我身是。
그리고 월개 비구는 바로 지금의 나 석가모니불이니라.

如是,天帝!當知此要,以法供養於諸供養為上為最,第一無比。是故天帝!當以法之供養,供養於佛。」
천제여, 마땅히 이상의 법공양의 요점을 알고, 법공양을 모든 공양 중에서 최상이요 가장 뛰어나고 제일로서 견줄 데 없는 것으로 여겨야한다. 그러므로 천제여, 응당 법의 공양으로써 부처님께 공양해야 하느니라.”










































《維摩詰所說經》囑累品第十四







於是佛告彌勒菩薩言:「彌勒!我今以是無量億阿僧祇劫所集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付囑於汝。如是輩經,於佛滅後末世之中,汝等當以神力,廣宣流布於閻浮提,無令斷絕。
그때에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미륵이여, 내가 이제 무량 억 아승기겁에 모은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법문을 그대에게 부촉(付囑)하노라. 이와 같은 부류의 경전들을 부처가 열반한 뒤의 말법시대에 그대들이 응당 신통력으로 널리 선양하고 염부제에 유포시켜 정법이 단절되지 않게 하라.

所以者何?未來世中,當有善男子、善女人,及天、龍、鬼神、乾闥婆、羅剎等,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樂于大法;
왜냐하면 미래세에 마땅히 선남자 선여인과 천인. 용. 귀. 신. 건달바. 나찰 등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고, 대승법을 좋아하는 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若使不聞如是等經,則失善利。
만약 그들에게 이와 같은 부류의 경전을 듣지 못하게 한다면, 뛰어난 이익(善利)을 잃게 될 것이다.

如此輩人,聞是等經,必多信樂,發希有心,當以頂受,隨諸眾生所應得利,而為廣說。
이와 같은 사람들과 비인(非人)은 이런 부류의 경전을 들으면, 틀림없이 대부분 믿고 즐거워하며 희유하게 여기는 마음이 일어나 응당 이 경전을 공경히 받아들일 것이니, 그대는 온갖 중생들이 마땅히 얻어야 할 이익에 따라서 그들을 위하여 널리 설해주어라.

「彌勒當知!菩薩有二相。
미륵이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살에게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何謂為二?一者,好於雜句文飾之事;二者,不畏深義如實能入。
어떤 것이 두 가지 유형인가? 첫 번째 유형은 잡다한 글귀나 문자의 수식적인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두 번째 종류는 심오한 의미를 두려워 하지 않고 여실(如實)하게 들어가는 것이다.

若好雜句文飾事者,當知是為新學菩薩;
만약 잡다한 글귀나 문자의 수식적인 일을 좋아한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초학 보살이니라.

若於如是無染無著甚深經典,無有恐畏,能入其中,聞已心淨,受持讀誦,如說修行, 當知是為久修道行。
만약 이와 같이 더러움이 없고 집착이 없는 매우 심오한 경전에 대해 두려움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가고, 듣고 나서는 마음이 청정해지고, 받아 지니고 독송하고, 설한 대로 수행할 수 있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보살도행을 오래도록 닦아온 보살이니라.

「彌勒!復有二法,名新學者,不能決定於甚深法。
미륵이여, 또 두 종류가 있는데, 초학 보살이 매우 심오한 법에 대하여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何等為二?一者,所未聞深經,聞之驚怖生疑,不能隨順,毀謗不信,而作是言:『我初不聞。從何所來?』
무엇이 두 종류인가? 첫 번째 종류는 아직 듣지 못한 심오한 경전을 듣고는 놀라고 두려워 의심이 생겨서, 수순하지 못하고 훼방하고 믿지 않으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직 들어 본 일이 없다. 어디서 온 것인가?’

二者,若有護持解說如是深經者,不肯親近、供養、恭敬,或時於中說其過惡。
두 번째 종류는 만약 이와 같이 심오한 경전을 보호하여 지니고 해설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를 친근히 하고 공양하고 공경하려 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때때로 그의 강설 속에서 그의 허물을 비평한다.

有此二法,當知是為新學菩薩,為自毀傷,不能於深法中,調伏其心。
이상 두 종류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초학 보살이며 자기 자신을 해치고 심오한 법속에서 그 마음을 조복할 수 없는 것이니라.

「彌勒!復有二法,菩薩雖信解深法,猶自毀傷,而不能得無生法忍。
미륵이여, 또 두 종류가 있어, 보살이 비록 심오한 법을 믿고 이해하더라도 오히려 자기 자신을 해치므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을 수 없다.

何等為二?一者,輕慢新學菩薩,而不教誨;二者,雖解深法,而取相分別。是為二法。」
무엇이 두 종류인가? 첫 번째 종류는 초학 보살을 가벼이 여기고 가르쳐 교화하고자 하지 않는다. 두 번째 종류는 비록 심오한 법을 믿고 이해하지만 몸으로 힘써 행하지 않고 상(相)만 취하여 분별하는 것이다. 이상이 두 종류이니라.”

彌勒菩薩聞說是已,白佛言:「世尊!未曾有也。如佛所說,我當遠離如斯之惡,奉持如來無數阿僧祇劫所集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
미륵보살은 이렇게 설하시는 것을 듣고 나서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일찍이 없었던 일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대로 저는 응당 이와 같은 허물을 멀리 떠나고, 여래께서 무수한 아승기겁에 걸쳐 모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법문을 받들겠습니다.

若未來世善男子、善女人求大乘者,當令手得如是等經,與其念力,使受持讀誦、
為他廣說。
만약 미래세에 선남자 선여인으로서 대승법을 구하는 이가 있다면 응당 이와 같은 부류의 경전을 손에 얻게 하고, 그에게 가피하여 염력(念力)을 주어서, 받아 지니고 독송하게 하며, 남을 위하여 널리 설하도록 하겠습니다.

世尊!若後末世,有能受持讀誦、為他說者,當知皆是彌勒神力之所建立。」
세존이시여, 만약 미래 말법시대에 어떤 사람이 이런 경전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남을 위하여 설할 수 있다면, 그것은 미륵이 신통력으로써 이룩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佛言:「善哉,善哉!彌勒!如汝所說,佛助爾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다! 좋다! 미륵이여, 그대가 말한 대로하라. 부처들은 그대를 돕고 기뻐할 것이다.”

於是一切菩薩合掌白佛:「我等亦於如來滅後,十方國土廣宣流布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復當開導諸說法者,令得是經。」
이에 모든 보살들은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희들도 여래께서 열반하신 뒤에, 시방국토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법문을 널리 선양하고 유포시키겠습니다. 또한 설법하는 모든 이들을 응당 이끌어서 그들로 하여금 이 경전을 얻게 하겠습니다.”

爾時四天王白佛言:「世尊!在在處處、城邑聚落、山林曠野,有是經卷,讀誦解說者,我當率諸官屬,為聽法故,往詣其所,擁護其人,面百由旬,令無伺求得其便者。」
그때에 4천왕들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성읍과 취락. 산림. 광야 어느 곳이든, 이 경전을 독송하고 해설하는 이가 있기만 하면, 저희들은 마땅히 권속을 이끌고 법을 듣기 위해서 그곳으로 가서, 그 사람을 지키면서 주위 백 유순을 살펴, 마군이 그를 이용할 틈새를 얻으려고 엿보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是時佛告阿難:「受持是經,廣宣流布。」
그때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전을 받아 지녀서 널리 선양하고 유포하라.”

阿難言:「唯然!我已受持要者。世尊!當何名斯經?」
아난이 말씀드렸다. “예! 저는 이미 중요한 의의(要者)를 받아 지녔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경전을 무엇이라고 이름 지어야 합니까?”

佛言:「阿難!是經名為『維摩詰所說』,亦名『不可思議解脫法門』,如是受持。」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 경전을 유마힐소설(維摩詰所說)이라고 이름하며, 또 불가사의해탈법문(不可思議解脫法門)이라고 이름하니, 이와 같이 받아 지니어라.”


佛說是經已,長者維摩詰、文殊師利、舍利弗、阿難等,及諸天、人、阿修羅一切大眾,聞佛所說,皆大歡喜 , 信受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전을 설하여 마치자, 장자 유마힐과 문수사리. 사리불. 아난 등과 천인들. 아수라 등 모든 대중들이 부처님의 설하심을 듣고 저마다 크게 기뻐하고, 믿고 받아들이고 받들어 행하였다.

《維摩詰經》卷下


—————————

마하연 <유마경 강의(花雨滿天 維摩說法)> 송찬문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