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17. 16:13ㆍ송담선사 법문
【 失其旨也、離却日用、別求生涯 】
지금 이 일 밖에, 다시 다른 생애를 구하지 말아라.
胸中何愛復何憎
自愧人前百不能
除此現成公案外
且無佛法繼傳燈
가슴 가운데 무엇을 사랑하고 다시 무엇을 미워할 것인가.
스스로 사람 앞에 백가지 능치 못한 것을 부끄러워할 뿐이다.
이 현성 공안하는 이 일 밖에, 이것을 제해 놓고,
불법의 등을 계승해서 전해가는 길이 없는 것이니라.
現成公案外에,
이 공안을 현성하는, 현성공안하는 이 일밖에는,
(“두 발에 힘을 주고 탁 버텨 설 자리는 이뭣고 밖에는 없어”)
且無佛法繼傳燈이여.
불법에 법등을 계속해서 전해 나가는 길이, 이 밖에는 없는 것이다.
불법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깨달아 나가는 길이여.
한 사람이라도 자꾸 활구참선을 해서 참 자기의 면목을 깨닫는 그것이 바로 불법의 등燈을 전해나가는 것이다.
籠鷄有食湯鍋近
野鶴無糧天地寬
願入松風蘿月下
長觀無漏祖師禪
닭장속에 닭은 식량이 있지만 전골냄비가 가깝고,
들에 있는 학은 먹이를 주는 사람이 없지만 천지가 자유롭더라.
원컨대 솔바람 불고, 칡 넝쿨 사이로 비치는 밝은 달 밑으로 가서,
길이 무루의 조사선을 관하고자 하노라.
得之在心應在手
雪月風花天地久
朝朝鷄向五更啼
春來處處山花秀
得之在心應在手여,
마음에 그 본질을 얻으면 손에 응應해.
정법正法이 무엇인가를 철저히 인식을 하고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턱 화두를 거각擧却하고 일념이 대의단이 현전허도록 잡두리한 사람은 손에 응應해.
걸어가거나 손으로 뭔 일을 허거나, 밥을 짓거나 국을 끊이거나 빨래를 허거나 채전을 가꾸거나 청소를 허거나 그냥 그 자체가 바로 정진이거든.
그것이 바로 수행이여.
雪月風花天地久여,
겨울에는 눈, 달, 밝은 달에 눈 내리고, 봄바람에 아름다운 꽃이 피듯이 천지가 영원무궁토록 그렇게 순환 헌 것이다 그 말이여.
'봄 되았다. 여름 되았다. 겨울 되았다. 가을 되았다 허는 것이 그것이 바로 진리의 순환이요 진리의 표현이더라' 그거거든.
朝朝鷄向五更啼요,
아침마다 오경, 새벽마다 오경이 돌아오면 닭이 울고 봄이 돌아오면 곳곳이 울긋불긋 꽃이 피는 도리가 아니던가.
도道가 뭣인지, 정법正法이 뭣인지, 수행修行을 어떻게 허는 것인지 똑바로 모르는 사람은, 일용생활日用生活, 밥 먹고 옷 입고 세수하고 똥 누고 일 하고 목욕하고 밭 메고 빨래하고 밥 짓고 또 회사에 나가서 사무를 보고 공장에 가서 일을 허고 허는 그러헌 일용 생활日用生活을 떠나서, 따로 생애生涯를 구한다 그 말이여.
(失其旨也、離却日用、別求生涯)
'어디 저- 깊고 조용헌디 산중에 가서 전혀 아무일도 상관하지 않고, 그 속에서 아주 그냥 저녁부터 새벽, 새벽부터 저녁까지 오직 화두만 들고 철저하게 용맹정진 한번 해 봐야겄다. 그래야 무엇이 되지 이렇게 생활 속에서 이러쿵저러쿵 시비 속에서 도대체가 공부를 헌다고 해도 되지도 않고' 밤낮 그런 생각을 허게 마련이거든.
그러고 밤낮 '언젠가 선방에 가까, 언제나 한번 가행정진 언제나 한번 용맹정진.'
지금 당장에, 지끔 이 일분 일초 당장 눈앞에 거기서 탁 챙겨야 하는것이지.
어찌 밤 낮, 언제? 다음 철에, 내년에?
보살님네들은 아들 딸 여워놓고 대학에나 보내 놓고 어떻게 해 보까. 밤낮 뒤로 미루거든.
그런 생각 헐 때 바로 그 자리서 “이 뭣꼬”로 들어가야지, 어찌 지끔을 내놓고 언제를 기다리고 있느냐 그말이여.
정법正法, 참선叅禪, 정진精進에 대한 참 뜻(旨)을 아는 사람은,
뒤로 미루지 않어. <뒤를 기다리지를 안해. 바로 지끔 현재 이 말을 들을 때 바로 그때 턱 화두를 들고 들어.>화두를 탁 챙기면 그때 바로 정진에 들어간 거거든.
그런 사람이라야 나중에 여러 가지 좋은 계기가 오며는 공부를 잘 헐 수 있는 것이지, 지금 이 시간을 놓치고 밤낮 이 시간은 불평불만하고 게으름 부리고 그리고 언제 좋은 때를 기다리는 사람은 5년 후에도 마찬가지고, 10년 후에도 마찬가지고, 30년 후에도 마찬가지고, 숨이 끊어져서 죽어도 마찬가진거여.
그게 바로, 불법이라는 게 뒤로 미루는 법이 아니거든.
속담에 '나중에 보잔 놈 무섭지 않다'고 밤낮 나중으로 미루거든 그 사람은 나중이 되아 봤자 별 볼일이 없어.
그 참뜻을 안 사람은 모든 지혜, 모든 경계에서 바로 잡어서 써야 하는거거든.(得其源也、機境上、 把得便用)
앉아서는 앉아서 “이뭣고” 섰을 때는 섰을 때 “이뭣고” 일 할때는 일 할때 “이뭣고” 밥 먹을 때는 밥 먹을 때 “이뭣고” 똥 눌 때는 똥 눌때 “이뭣고” 누가 자기를 욕하면 욕할때 바로 이뭣고로 돌아오거든, 칭찬허면은 뭐 칭찬헌다고 흐뭇허고 좋아 헐 것 뭐 있어.
옛날 성현의 말씀에, '칭찬 허는 놈은 도둑놈이고 나를 비방하고 욕 허는 사람은 바로 나의 스승이다.'
공연히 나 별로 잘 헌것 없는데 칭찬허면 공연히 입이 쫙 찢어지문서 흐뭇하게 생각하고 아 그 사람 좋은사람 이드라 그러거든. 칭찬허는 사람 좋아 허지 말어.
나를 험담하고 나를 비방하고 욕허고 나의 잘못을 똑바로 지적해 주고 헌 사람은 정말 그 사람이 고마운 사람이고 그 사람이 나의 존경할 만한 스승이여.
이렇게 생활을 해나가고 이렇게 닦아간 사람은,
두두정묘국頭頭淨妙國이요 물물物物이 상주진신常住眞身이여.
모든 것이 다 극락세계요 선불장이요 도솔천이요 모든 것이 다 상주진신常住眞身이여、다 불보살 화현이더라 그거거든.
어디 죽어서 극락에 갈걸 뭘 바래느냐 그 말이여. 생각만 탁 그렇게 돌이켜셔 살아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부처님이요 만나는 사람마다 관세음보살이요 만나는 사람마다 다 선지식인데.
일체성시불성一切聲是佛聲이요,
모든 소리는 나를 칭찬허는 소리나 나를 험담한 소리나 개짖는 소리나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나 자동차 소리나 기차소리 일체 소리가 다 부처님의 설법이고,
일체색시불신一切色是佛身이여,
모든 눈으로 볼수 있는 것들은 다 부처님의 몸뚱이더라그거거든.
촉처천진觸處天眞이요,
부딪힌 것마다 다 천진불이요, 뭣이 좋네 나쁜네 그것 뭘 가릴 것 뭐 있느냐 그 말이여.
시비 가릴 것 없어. (雌黃無分)
우리는 이러헌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이것이 바로 법보제자의 생애요, 참선 최상승법을 믿는 불자의 태도가 아니고 무엇이던가.
그렇게 닦아가면, 생활해 나가는데 얼마나 생기가 약동을 헐것이냐 이말이여.
좋은 일을 당허면 좋은 일을 당한대로 좋고 또 어려운 일을 당하면 어려운 일을 당하면 어려운 일을 당한 속에서 다 발심을 허거든.
정신을 차리면 아무리 어려운 속에서도 반드시 솟아날 구멍이 있어. 어떠헌 어려운 속에서도 반드시 귀인을 만나게 돼 있어. 그 귀인이 바로 불보살 화현신이 아니던가.
이 귀인이 바로 불법을 믿고 발심을 해서 이러헌 마음으로 살아가면 무엇이 그렇게 부러울것이 있어. 시기심도 없어져 버리고 질투심도 없어져 버리고 모든 사람을 보면 모두가 다 반갑고 모두가 다 고맙고 그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모르는 가운데 정진력이 생기고 수행력이 쌓여서 복과 해를 겸존한 삼십이상과 팔십 종호를 갖춘 부처님이 그렇게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 말이여.
한 생각 일어날때마다 그 생각이 바로 시비에 흔들림을 받지 않고 바로 화두를 드는 정법으로 돌아오는 것이, 그것이 바로 32상호를 닦는 방법이요 80종호를 구비하는 방법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 말이여.
경전에는 무량겁을 부처님은 그렇게 닦으셨어.
그래서 삼명육통을 구족하시고 32상과 80종호를 다 갖추신것이고 무량겁이 무엇이냐.
'하이고 무량겁을 닦아야 한데 우리가 죽을날이 며칠, 얼마 안 남았는디 언제 그 짓을 해야' 허지만,
일념즉시 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이거든.
한 생각이 바로 무량겁이지, 한 생각 내 놓고는 무량겁이 존재 허지를 안해. 그래서 언제나 한 생각을 바로 단속을 해나가면 그것이 바로 무량겁이여.
오늘 칠석날 산승에 이 보잘 것 없는 말씀을 깊이 명심을 해서 부귀영화에 너무 집착하고 연연허지 말고 형편이 좀 어려워지고 사업이 좀 잘못 되아도 그까짓것, 그까짓것이 무엇이냐?
꿈속에 얻었다가 꿈한번 꾼것이지 꿈속에 있었던 일이 좋으면 뭣허고 궂으면 뭣허냐.
당장 꿈깬 이 마당에 이 찰나를 내가 이뭐꼬를 하자 이렇게 단속을 해나가면 그까짓것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칠석날이니 다 목욕재게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모다 오셨어. 이어서 법요식이 진행이 되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또 축원을 허게 되겠습니다. 이 공덕으로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을 성취하고 성취헌 그 우에 이뭐꼬를 해서 대도 성취 허기를 바랍니다.
日行嶺上莫尋山
身在海中休覓水
妙峰頂上一轉身
十方無處不逢渠
일행영상막심산日行嶺上莫尋山이요,
날마다 재를 넘어 댕기고 있으니 산을 찾지마라.
그 재가 산에 있는데 그 산을 넘어 댕기면서 어찌 또 산을 찾을 것이 뭐 있느냐.
신재회중휴먹수身在海中休覓水다,
몸이 바다 가운데 떠억 있으면서 뭘 물을 찾을 거 있느냐. 물 쉬기를, 물 찾기를 쉬어 버려라 그거거든.
묘봉정상妙峰頂上에 일전신一轉身하면,
그 묘고봉은 수미산인데, 이 세계 최고 높은 산이거든. 수미산 봉우리에 한번 몸을 굴려.
(시방무처불봉거十方無處不逢渠),
시방에 그를 만나지 않은 곳이 없으리라.
이뭐꼬를 해서 타성,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아 순수 무잡해서 더 이상 의심이 더 클 수가 없고 더 이상 간절 헐 수가 없어.
타성 일편이 되면은 의단이 타파가 되아서 바로 자기의 본래 면목을 보게 될 것이다.
- 송담선사 478번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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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少來來慣遠方
幾廻衡岳渡瀟湘
一朝踏着家鄕路
始覺途中日月長
자소내내관원방自少來來慣遠方,
젊어서부터 쭈욱 저 먼 타관으로 타관으로 방황을 허는데 아주 익숙해졌어.
기회형악도소상幾廻衡岳渡瀟湘고,
몇 번이나 형산을 돌고, 몇 번이나 소상강을 건넜던가.
저 타관으로 타관으로 젊어서부터 타향살이로, 나그네로 방황을 하면서 몇 번이나 형산을 돌고 몇 번이나 소상강을 건넜드냐 이거여.
'젊어서부터' 라고 허는 말은, 저 무량겁 이전부터 오늘날까지 본심왕本心王을 등지고 자기 마음의 고향을 등지고 육도윤회를, 천상에 갔다가 인간계에 왔다가 축생계에 떨어졌다 아귀도에 떨어졌다 지옥고에 떨어져서 무량겁을 그렇게 육도를 돌고 돌면서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으면서 오늘날까지 왔더라 이거거든.
일조답착가향로一朝踏着家鄕路하니,
하루아침에 고향,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밟으니,
시각도중일월장始覺途中日月長이로구나.
비로소 그 타향살이로 타향으로 돌고도는 그 세월이 길고 긴 것을 알게 되었더라.
<무엇 때문에 부모형제가 있는 고향을 떠나게 되었는가. '좀 더 고향에, 돈을 좀 벌어볼까, 무슨 공부를 좀 해 볼까, 남부럽지 않게 좀 잘 살아볼 수 있는 길은 없을까' 하고 조그마한 ‘이양利養을 구하기 위해서’ 부모가 계신 고향을 떠났더라 그거거든.>
그래가지고 타향으로가니 낯설고 기반이 없어노니 발 붙일곳이 마땅치 안해. 그래서 또 다른데로 가고 가서보니 또 마땅치 않아 또 다른데로 가고.
이리갔다 동서남북을 그렇게 헤메면서 저 끝없는 타향살이로 타향살이를 하면서 수없는 고초를 겪은, 그러다가 문득 좋은 친구를 만나. 어진 선배를 만나가지고 직장도 구하고 살 길을 얻어.
그것이 바로 무엇에다 비유했냐하며는, 육도윤회를 하다가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을 구하기 위해서 육도를 돌고 돌다가 다행히 어느날 불법을 만났더라 이거거든. 어느 선지식을 만나서 법문을 듣고, 어느 도반을 만나서 소개를 받고. 그래가지고 정법을 믿게 되어서 자성을 깨닫는 참선을 하다가보니 정말 그동안 생사고뇌 속에서 헛되이 많은 세월을 보낸 것을 깨닫게 되었더라.
- 송담선사 법문 479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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離相寂滅分第十四
【若當來世後五百歲、其有衆生、得聞是經、信解受持、是人即爲第一希有】
冶父: <行住坐臥、着衣喫飯、更有甚麼事。>
佛法、只在日用、行住坐臥處、着衣喫飯時、一切時一切處、一一呈露靡遺、旣然如是、信解受持-何難之有、雖然信解、亦何希有。
<冰不熬火不寒、土不濕水不乾。金剛、脚踏地、幡竿、頭指天。若人、信得及、北斗、面南看。>
說誼: 氷不熱、至頭指天、平常總不動着、只如平常底道理、作麼生道。行船、宜擧棹、走馬、即加鞭、若遇飢來飯、還因困即眠。
君今欲識平常道、北斗南星位不別、只如不別底道理、且作麼生道。
雨中、看好月、火裏、汲清泉、直立頭垂地、橫眠脚指天。
【만약 내세 오백년이 지난 후를 당해서, 그때 어떤 중생이 있어 이 經의 설법을 듣고 이를 믿고 해득하여 받아들여 호지한다면, 이 사람은 곧 가장 희유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걷고 머물고 앉고 눕고, 옷 입고 밥먹는 일 이외에 다시 무슨 일이 있는가?>
불법이란 오직 일용생활의 행주좌와 하는 곳과 옷입고 밥먹고 하는 때에 있을 따름이니, 모든 시간 모든 처소에 하나하나 뚜렷히 드러나 남김이 없다. 이미 이와 같다면 이를 믿고 이해하고 받아들여 간직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또 비록 그렇게 믿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슨 희유한 일인가?
<얼음은 뜨겁지 아니하고, 불은 차갑지 아니하며
흙은 축축히 젖어있지 아니하고, 물은 메마르지 아니함이라.
금강력사는 발로 땅을 밟고 서 있고, 깃발 장대는 끝이 하늘을 가르킴이라.
만약 사람들이 여기에 믿음이 미친다면,
북두칠성을 남쪽을 향하여서 보리라.>
함허 설: 얼음이 뜨겁지 아니하다는 말에서 장대끝이 하늘을 가르킨다는 말에 이르기까지,모든 일이 동착動着하지 않은 평상平常이니, 그렇다면 이 평상한 도리를 어떻게 말해야 할것인가?
배를 움직이려면 노를 들어올려야 하고
말을 달리려면 채찍질 해야한다.
배고플 때가 되면 와서 밥먹고
문득 고단하면 잠잔다
그대 지금 평상한 도리를 알고 싶은가?
북두성, 남두성 자리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이 다르지 아니한 도리는 또 어떻게 말할 것인가?
비오는 가운데 달구경 하기좋고,
불 속에서 맑은 샘물 길어오네.
꼿꼿이 섰는데 머리 땅에 드리우고,
가로 누웠는데 다리는 하늘을 가르키네.
———————
【是故、須菩提。菩薩、應離一切相、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冶父:<是、卽此用、離此用.>
說誼:旣云離相發心、心與相、相去多少。
冲虛妙粹、廣大靈明、離諸幻妄、名之爲心、日用是非人我、現前色香味觸、俱是虛妄、 皆名爲相。
然、相非外來、全是自心起用、伊麽則此心、卽此用、離此用。若道卽此用、爭奈絶相離名、若道離此用、爭奈不礙諸相。畢竟作麽生道。
若人、識得心、大地無寸土。所以、道、於一毛端、現寶王刹、坐微塵裏、轉大法輪。
冶父: <이는 이 用에 即한 것인가, 이用을 떠난 것인가?>
함허 설: 이미 相을 떠난 發心이라고 한다면, 마음心과 상相이 서로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冲虛하고 妙粹하며 廣大하고 靈明하며 모든 환의 망상을 여읜 것>을 이름하여 [마음]이라 하고,
<日用하는 가운데서 오는 옳고 그름, 나와 남이라는 차별>과, <눈 앞에 나타나는 색, 향기, 맛, 감촉> 하는 두 가지 모두가 이 허망한 것이니, 모두 이름하여 [相]이라한다.
그러나 相은 밖에서 온 것이 아니며, 오로지 이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이렇다면 이 마음이 이 작용에 즉한 것인가, 이 작용을 여읜 것인가?
만약 이 작용에 즉한 것이라고 한다면 '相을 끊고 이름을 여읜다'는 것은 어찌할 것이며,
만약 이 작용을 여읜 것이라고 한다면, '모든 상에 걸리지 않는다' 라는 것은 어찌할 것인가.
필경에는 어찌 이르면 되겠는가?
만약 사람이 마음을 얻어 알게되면 대지에 한 마디의 땅도 없으리라.
그런 까닭에 이르기를, '한 터럭 끝에 寶王刹을 나타내고, 미진 속에 앉아서 대 법륜을 굴린다'고 한 것이다.
冶父:<得之在心、應之在手、(在、一作於) 雪月風花、天長地久。朝朝鷄向五更啼、春來處處山花秀>
說誼:失其旨也、 離却日用、別求生涯、得其源也、機境上、把得便用。
伊麽則頭頭、淨妙國土、物物、常住眞身。一切聲、是佛聲、一切色、是佛色、觸處天眞、雌黃無分。鷄向五更啼、處處山花秀、可得雌黃麽。
야부: <마음에 그 본질을 얻으면 손에 응하고,
눈 내리는 가운데 달이요 바람 가운데 꽃이더라.
하늘은 길고 땅은 오래 되었구나.
아침아침마다 닭은 오경이 되면 울고, 봄이 오면 도처에 있는 산에는 꽃이 피어나네.>
함허 설:
그 뜻을 잃어버리면,
일용생활을 떠나서 따로 다른 생애를 구하게 되고,
그 근원을 얻으면,
機緣과 경계 위에서 잡아 얻어서 바로 써 버린다.
이렇게 되면 頭頭가 청정한 묘한 국토요,
物物이 언제나 참 몸으로 머문다.
일체 소리가 이 부처님의 소리요, 일체의 색이 이 부처님의 색이니 부딪히는 곳마다 천진하야 시비를 가릴것이 없다.
닭은 오경이 되어 울고, 곳곳마다 산 꽃이 빼어난데 어찌 시비를 가릴 수 있겠는가?
——————
【須菩提、菩薩、爲利益一切衆生、應如是布施】
수보리야! 보살은 모든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마땅히 이와 같이 보시하여야 하느니라.
說誼:識浪、內湧則境風、作而常動、智水、內凝則風塵、息而常靜、靜無靜相、眞明自照、是謂無住生心、是眞菩薩住處。
由是、發心之者、凡於應用之際、但當無念而應、不應着意攀緣、着意、墮魔坑、非眞菩薩住處也、所以然者、菩薩發心、只爲益生、自若有住、豈能令他無住, 所謂有諸己然後、求諸人、無諸己然後、非諸人是也。
所謂無念無住、正似秋天野水、森羅自顯、豈同寒灰枯木、一於忘懷者哉。
忘懷는 沈鬼窟、亦非菩薩住處也、若眞住處、不依有住而住、不依無住而住、亦不依中道而住、如是而住也。
함허 설:識의 물결이 가슴 안에서 용솟음치면 경계의 바람이 일어나 늘 動하게 되고, 智慧의 물이 안에 엉긴 즉 바람과 티끌이 쉬어 항상 고요하다.
고요하되 고요한 相이 없어야 진실로 밝게 자신을 비춤(眞明自照)이라 이를 '머무는 바 없이 생하는 마음(無住生心)'이라 말하며 이것을 '참으로 보살이 머무는 곳(眞菩薩住處)'이라 한다.
이로 말미암아 發心한 사람은, 무릇 응應하여 쓸 때에 다만 마땅히 무념無念으로써 응하고, 마땅히 뜻에 집착하여 반연攀緣하지 말지니, 뜻에 집착하면 마의 구덩이에 떨어짐이라 이는 참다운 보살이 머물 곳이 아니다.
그러한 이유는, 보살의 발심은 다못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한 것’이니 스스로 머무름(집착)이 있다면 어찌 능히 다른 이로 하여금 머무름이 없게 할 수 있겠는가?
이른바 '모두 자기에게 있은 연후에 모든 다른 사람에게도 구하고, 모두 자기에게 없은 연후에는 모든 사람에게도 구할것이 아니니라' 한 것이 이것이니라.
이른바 무념無念, 무주無住라는 것은 흡사 가을 하늘과 들물에 삼라만상이 스스로 드러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어찌 차가운 재와 고목처럼 생각을 잊은 자와 같겠는가?
생각을 잊어버리는 것은 귀신 굴속에 잠기는 것이라 또한 보살의 머무는 곳이 아니다.
만약 참답게 머무는 곳일진댄, 머물 곳 있음에 의지해서 머물지도 않으며, 머물 곳 없음에 의지해서 머물지도 않으며, 또한 中道에 의지해서 머물지도 않으니, 이와 같이 머무는 것이 진정한 머물 곳이니라.
- [금강경 오가해 설의]
*직시현금 갱무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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