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川暮 網署收, 산천은 저무는데 그물을 거둔다]

2024. 5. 18. 07:57짧은 글

조락공강潮落空江



당나라 때 이영李郢이 쓸쓸한 송강역松江驛 물가에서 저물녘에 배를 대다가 시 한 수를 썼다.


조각배에 외론 객이 늦도록 머뭇대니
꽃이 피어 있는 수역水驛의 가을일세.

세월에 놀라다가 이별마저 다한 뒤에
안개 물결 머무느니 고금의 근심일래.

구름 낀 고향 땅엔 산천이 저무는데
조수 진 텅 빈 강서 그물을 거두누나.

여기에 예쁜 아씨 옛 노래가 들려오니
노 젓는 소리만이 채릉주采菱舟로 흩어진다.

片帆孤客晚夷犹 紅蓼花前水驛秋
歲月方驚離別盡 烟波仍駐古今愁
雲陰故國山川暮 潮落空江網署收
還有吴娃舊歌曲 棹聲遙散采菱舟



참으로 적막하고 쓸쓸한 광경이다.
조각배를 탄 나그네가 물가를 쉬 떠나지 못하는 것은 강가의 붉은 여뀌 꽃 때문만은 아니다. 둘러보니 지나온 세월은 덧없고 사랑하던 사람들은 내 곁을 다 떠났다. 산천은 자옥한 구름 속에 가뭇없이 저물고, 썰물 진 빈 강에서 어부들은 말없이 낮에 쳐둔 그물을 거둔다. 환청인가 싶게 먼 데 노 젓는 소리가 가냘프게 들리는 것만 같다. 사공은 나를 빈 강가에 내려놓고 찌꺽 찌꺽 노를 저어 저문 강 저편으로 사라진다.


청나라 때 김성탄金聖嘆이 ‘산천은 저무는데, 그물을 거둔다'고 한 제5, 6구를 읽고 이런 평을 남겼다.

"하루가 끝난 뒤는 이와 같을 뿐이다. 일생이 끝난 뒤도 이와 같을 뿐이고, 한 시대가 끝난 뒤도 이와
같음에 지나지 않는다."


이덕무는 김성탄의 평을 보고 또 평을 남겼다.

"내가 이 말을 듣고 망연자실 드러누워 천정을 우러러보며 드넓은 흉금에 감탄하였다.” 《청비록淸脾>에 나온다.


하루가 이렇게 가고, 한 인생이 이렇게 가고, 한 시대도 이렇게 물러나는 것이다. 목전의 일로 일희일비 一喜一悲하며 사생결단하던 다툼이 머쓱해진다.

좀 전의 노랫가락은 환청이었을까? 그는 아주 먼 길을 돌아서 처음 자리에 다시 섰다. 하지만 그런가? 어둠이 곧 찾아들겠지만 금세 새벽은 온다.

사공은 부지런히 노를 저어 물가에 다시 배를 댈 게고 어부는 힘차게 새 그물을 칠 것이다. 고운 아가씨는 간밤의 슬픈 가락을 잊고 새 단장에 분주하리라. 이런 반복 속에서 장강대하長江大河와 같이 하루가, 일생이, 한 시대가 흘러왔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닫히고 열리는 한 시대를 본다.


- [점검]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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