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당應當 법계法界의 성품性品을 관觀하라】

2021. 10. 13. 17:54송담선사 법문

【송담선사 법문 복전암 55번의 간략한 내용】


[게송]


○ 약인욕료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만약 사람이 삼세(三世)에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할진댄, 응당(應當) 법계(法界)의 성품(性品)을 관(觀)하라. 일체가 다 마음으로 이루어졌느니라.


○ 전단목주중생상(栴檀木做衆生像) 급여여래보살형(及與如來菩薩形)
만면천두수각이(萬面千頭雖各異) 약문훈기일반향(若聞熏氣一般香)
전단향나무로 중생(衆生)의 모습을 잘 조각(彫刻)을 하고 또 그 전단향나무로 여래(如來) 부처님 상(像)도 원만(圓滿)하게 거룩하게 잘 조성(造成)해 모시고 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나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과 같은 그런 보살(菩薩)의 모습도 거룩하게 잘 모셨다 그 말이여. 많은 부처님도 조성하고 많은 중생의 모습도 조성하고 많은 보살의 모습도 조성을 해서 만 가지 얼굴과 천 가지 머리 모양새는 다 다르지만, 그 곁에 가서 그 향내를 맡아보면 부처님 모습으로 조성한 거나 중생의 모습을 조성을 했거나 보살의 모습을 조성을 했거나 향내는 내나 전단향(旃檀香) 향내가 나더라 이거거든.


○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 인거황천명재가(人去黃泉名在家)
채득백화성밀후(採得百花成蜜後) 부지신고위수감(不知辛苦爲誰甘)
기러기가 해변가에 모래밭에서 수천 수백 마리가 놀다가 후루루~ 날아서 저 하늘 갓으로 날아가 버렸는데, 기러기가 놀던 모래사장에는 기러기 발자국만 남아있고, 사람은 이승을 하직(下直)하고 황천(黃泉)으로 갔는데 ‘아무개!’ 한 그 이름만 집에 남아있구나. 벌들이 수백 마리가 온갖 꽃으로 꽃으로 다니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그 꽃에서 꿀을 따다가 벌통 집에다가 가뜩 채워놨는데, 사람들은 그 벌통에서 꿀을 옴막 따다가 다 팔거나 먹어버린다 그 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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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내용]


*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할진대는 응당 법계(法界)의 성품(性品)을 관(觀)하라. 모든 부처님이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 <화엄경> 가운데에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이, 마음과 부처님과 모든 중생이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이다, 이 세 가지가 차별이 없다.」 마음이 부처요 부처와 중생, 중생도 마음을 떠나서 존재한 것이 아니고, 또 마음도 부처님을 떠나서 존재한 것이 아니고, 부처님도 마음을 떠나서 존재한 것이 아니여. 그래서 마음과 부처님과 모든 중생도 다 그 근본(根本)을 관찰해보면 다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입니다.

그러면 왜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분명히 차별(差別)이 있는데 왜 세 가지가 다 평등(平等)하고 똑같으냐하며는, 겉보기에는, 중생(衆生)의 눈으로 볼 때에 겉보기에는 차별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마는 중생의 그 본체(本體) 근본(根本)을 관찰해보면 분명히 그 속에 부처님이 계시고 그 속에 마음이 계시거든. 부처님은 어디서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깨달아가지고 부처님이 되셨어. 그래서 부처님은 온전히 청정(淸淨)한 마음 그대로, 그것을 깨달아가지고 그대로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부처님이라고 우리는 존경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과 부처님과 중생은 차별이 없고 평등하다」고 이렇게 <화엄경>에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 그 「법계(法界)의 성품(性品)」이란 게 그 진상(眞相), 실제(實際). 그걸 관찰해보면 다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중생도 마음으로 이루어졌고 모든 불보살도 마음으로 이루어졌고, 착한 사람도 마음으로 이루어졌고 악한 사람도 마음으로 이루어졌고,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일체(一切), 심지어는 새와 나비와 짐승까지도 그 본성(本性)을 살펴보면 다 진여불성(眞如佛性)으로 이루어졌다. 사람에 있어서는 ‘자성(自性)’이라고 하기도하고 또 ‘천성(天性)’이라 하기도 하고 또 부처님 같은 분은 또 그걸 ‘불성(佛性)’이라고도 하고 ‘자성(自性)’이라고도 하고 ‘진여(眞如)’라고도 ‘실상(實相)’이라고도... 이름은 천 가지 만 가지 이름이 있지마는, 그 본체, 근본체(根本體)를 살펴보면 다 같은 불성(佛性)이고 자성(自性)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우리가 비록 이 사바세계에 말세(末世)에 태어나서 이렇게 태어났지마는, 이 태어날 때는 반드시 부모(父母)를 가자(假藉)해서 이 몸을 받아서 태어나는데 이 육체(肉體)는 분석을 해보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이루어졌으나 이 육체를 끌고 다니는 우리의 주인공(主人公)은 불에 넣어도 타지도 않고 물에 넣어도 젖지도 않고 아무리 병(病)이 나서 죽어서 썩어문드러졌다 하더라도 이 육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은 죽고 살고 하는 것이 없어. 그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생을 가지고 같이 밥 먹고 옷 입고 눕고 자고 하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살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자성(自性)의 부처님인줄 모르고 그것을 영 푸대접 하고서 이 몸뚱이가 자긴 줄 알고 잘 먹이고 잘 입히고 그 몸뚱이를 어떻게든지 이쁘게 만들려고 갖은 방법으로 그것에만 관심을 쏟는데...


* 이 세계도 다 마음으로 이루어졌고 일체중생도 마음으로 이루어졌고 빈부귀천(貧富貴賤) 노소남녀(老少男女) 일체가 다 마음으로 이루어졌으니, 한 사람이 그 자기의 마음을 깨달으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니, 부처란 말이 ‘깨닫는다’는 뜻이고 ‘부처님’ 하면 ‘깨달은 어른’이라 그 말인데, 다른 것을 깨달은 게 아니여. 하늘의 이치, 지구의 이치, 무슨 그런 것을 깨닫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의 마음을 깨달라.」 자기 마음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져볼 수 없으나, ‘아무개야!’ 하고 부르면 ‘예!’ 하고 대답할 줄 아는 놈, 욕하면 성낼 줄 아는 놈, 칭찬하면 기뻐할 줄 아는 놈, 바로 그 그놈이 자기의 자성불(自性佛), 자성(自性)으로부터서 그러한 작용(作用)이 나오니,

썽이 날 때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가?’ 기쁠 때에 ‘대관절 이 기뻐할 줄 아는 이놈이 무엇인가?’ 슬플 때 ‘이 슬퍼할 줄 아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 뭣고?’  이렇게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일어나는 그 근본(根本)을 관조(觀照)하는 것이 이것이 바로 불교의 최상승법인 참선법(參禪法)이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종교에도 상관이 없고 빈부귀천에도 상관이 없고 자기가 자기의 본성(本性)을 깨달으면 그 자기의 본성이 바로 우주(宇宙)의 진리(眞理)고 우주법계가 자기 본성으로부터서 나왔음에 각자 자기의 본성을 돌이켜서 자꾸 닦으면 그 마음이 본래의 본성, 청정(淸淨)한 본성(本性)으로 돌아가게 되면 모든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다 하나가 될 것임에 세계의 평화도 바로 여기에서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