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악우遠離惡友、친근현선親近賢善】

2021. 3. 29. 15:16송담선사 법문

【모름지기 악한 벗을 멀리 여의고, 어질고 착한 분을 친히 가까이 하라】
 
 
한산정상월륜고(寒山頂上月輪孤)헌디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가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한산정상(寒山頂上)에 월륜고(月輪孤)하야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라.
차운 산 정상(頂上)에 밝은 달이 외로이 떴는데, 산하대지(山河大地)를, 허공계(虛空界)를 환허이 비추는데 한 물견도 없어. 전체가 달빛으로 가득 찼다 그 말이여.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가,
가히 귀엽구나. 천연, 천연(然無)에 값없는 보물이,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다.
오음(五陰)에, 오음의 몸띵이,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음(五陰),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이 더러운 육체(肉體) 속에 묻혀있구나. 
 
산도 있고 들도 있고 나무도 있고 강물도 있고 하지만 그게 다 별 것이 아니여. 이 사람의 몸띵이, 지수화풍 사대로 뭉쳐진, 그 분석허고 보면 천하에 더러운 것인데, 그 몸띵이 속에 값을 칠 수 없, 없을 만큼 고귀한 보물이 그 속에 묻혀있구나. 
 
한산(寒山)이라고 허는 문수보현화현(文殊普賢化現)이라고 일컫는 성인(聖人)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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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을해년(乙亥年) 유월(6월) 첫째 일요법회(日曜法會)날입니다. 이제부터 차츰 날씨가 더워져 가고 앞으로 장마철도 다가올 것입니다. 엊그제까지도 여기저기 아름답게 피던 그 화려한 강산이 꽃이 다 떨어지고 이제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행자(行者)가 절에 들어오면 맨 처음에 배우는 글이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라 헌 책을 배우는데, 그 [초심학인문(初心學人文)]에 첫째 줄에 ‘초심자는 모름지기 악한 벗을 멀리 여의고, 어질고 착한 분을 친히 가까이 하라(夫初心之人。須遠離惡友親近賢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초심학인문(初心學人文)]은 목우자(牧牛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지은 글입니다. 절에 처음 들어와서, 들어온 행자나 사미승(沙彌僧)이 배우는 글이지만, 그 글 안에는 초심행자(初心行者)로부터 견성성불(見性成佛)헐 때까지 누구라도 그 초심, 초발심, [초심문(初心文)] 속에 있는 내용을 항상 명심(銘心)해... 허며 수행을 해가야 해야... 헐만큼 그렇게 소중한 말씀들이 적혀있습니다.
 
‘악한 벗을 멀리 여의고 어질고 착한 분을 친해 가까이 허라(須遠離惡友親近賢善).’ 이건 지극히 평범(平凡)한 말이지마는, 수행 해나가는 모든 경전(經典), 수행자들이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구절(句節)입니다. 모든 경전을 엄격하게 분석을 허면 이 ‘악한 벗을 멀리 여의고 어질고 착한 이를 가까이 하라’는 두 마디 글에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속, 세속(世俗)에서도 국민학교 학생으로부터 대학생까지, 학생들도 악한 벗을 가까이 함으로 해서 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나서 잘못 된 길로 빠지기 쉬운 것이고, 결혼을 해서 살아가는 어른들도 악한 벗을 가까이 허며는 패가망신(敗家亡身) 헐 수도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회에서 활약하고 있는 학자(學者)나 정치가(政治家)나 법조계인사(法曹界人士)나 예술가(藝術家)나 다 마찬가집니다. 출가해서 도(道)를 닦는 출가인(出家人)들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여기에 이 착한 벗, 착, ‘어질고 착한’이라고 허는 것은 선지식(善知識) 또는 선우(善友), 다 그 속에 다 포함이 된 것입니다마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체중생(一切衆生)이 삼계(三界)에 뛰어나서 생사대해(生死大海)를 건너고자하면 반드시 법(法)의 배를 타야한다. 그래야 고해(苦海)를 건너갈 수가 있느니라. 법이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청량(淸凉)해서 번뇌를, 번뇌(煩惱)의 열(熱)을 제거해주는 것이다. 중생은 번뇌망상(煩惱妄想)과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불이 훨훨 타, 타서 노상 뜨거운 열 속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법(法)을 가까이 허고 그 어질고 착한 이는 항상 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법대로 행하고 법대로 생각하고 법대로 닦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질고 착한 이를 가까이 하며는 자연히 번뇌와 삼독의 독을 식혀줄 수가 있다.”
 
“그리고 법(法)이라 하는 것은 묘(妙)한 약(藥)과 같애서 중생의 맺혀있는 모든 병(病)을, 마음에 병을 고쳐줄 수가 있다. 법(法)이라 하는 것은 중생에 참다운 선지식(善知識)이니 중생을 크게 이롭게 허고 모든 고뇌를, 고뇌(苦惱)에서 벗어나게 하는 그러헌 약(藥)이다. 그러므로 일체중생... 그런데 왜 그러냐 하며는 일체중생(一切衆生)은 그 뜻과 의지력(意志力)이 결정(決定)되지 못해. 그래가지고 확고히 서덜 못해있기 때문에 금방 가까이 헌 대로 물들기가 쉬웁다 그 말이여. 자기의 의지(意志)가 굳세고 바른 사상(思想)과 신렴(信念)으로 확고(確固)히 선 사람이면 어디를 가서 어떤 사람을 만나건 거기에 물들 까닭이 없겠지만, 대부분의 중생은 그러지 못허기 때문에 가까이 헌 대로 물들게 되고, 좋은 것을 가까이 허면 좋아지고, 착한 것을 가까이 하면 착해지고 악(惡)한 것을 가까이하면 악해진다. 그래서 악한 벗을 가까이 허면 악, 악업(惡業)을 지어가지고 생사(生死)에 유전(流轉)해가지고 끝이 없어. 한량(限量)없이 끌려 빨려 들어가는 거다. 착한 벗을 가까이 허며는 신심(信心)을 일으키게 되고 공경(恭敬)허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고, 묘(妙)한 법(法)을 들어서 받아지니게 되아가지고 사람으로 하여금 삼도(三道)에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이러헌 공덕(功德)으로써 가장 수승(殊勝)한 즐거움을 받게 되느니라.” 
 
 
그 예로서 옛날에 화씨국(華氏國)에 왕(王)이 있었는데, 그 왕은 힘세고 아주 강력한 하얀 코끼리 한 마리를 떠억 길렀어. 그 코끼리는 어디에다 쓸랴고 코끼리를 길렀냐하며는, 적(賊)이 오며는 그 적한... 적을 갖다가 밟아 죽이는 디에도(데도) 쓰고, 국민 가운데 큰 죄(罪)를 지으면 그 코끼리를 시켜가지고 그 죄인(罪人)을 밟아 죽여. 그런데 그러헌 소용(所用)으로 흰 코끼리를 길르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코끼리의... 가 살고 있는 집에 불이 났습니다. -소가, 소가 살고 있는 집은 오양간이라 그러고, 말이 살고 있는 집은 마구간이라 그러고, 근데 코끼리가 살고 있는 집은 뭐라고 부르는가 잘 모르겠는데- 하여칸 코끼리가 살고 있는 그 집에 불이 나가지고 코끼리를 매 둘 자리가 마땅치 않으니까 절 근처에 원두막이 있어서 그래서 그 절 가까이에 있는 원두막에다가 코끼리를 매 두게 되았다 그 말이여. 
 
그런데 그 코끼리가 항상 그 절에 비구(比丘)스님네들이 경(經)을 외우고 법구게(法句偈)를 외우고 헌 소리를 항상 들었어. 그래가지고, 근데 그 법구게 내용이 ‘착한 일을 허며는 천상(天上)에 태어나고 악한 일을 허며는 지옥(地獄) 구뎅이에 떨어진다’고 허는 그런 내용에 게송(偈頌)을 항상 들었다 그 말이여. 그래가지고 그 법문(法門)을 듣고서 그 꺼떡허면 사람을 밟아 죽이는 짓만 여러 해를 해오던 그 코끼리가 그 마음이 유순(柔順)해지고, 그래가지고 그렇게 되았다 그 말이여. 그래가지고 코끼리가 마음속으로 자비심(慈悲心)을 일으키게 되았어. 그런데 나중에 죄인(罪人)이 생겨가지고 왕이 코끼리를 시켜서 그 죄인을 짓밟으라고 시키니까, 그전 같으면 다짜구로 쫓아가서 밟아서 짓이겼을 텐데, 아 그 밟아 죽이지를 않고 죄인 가까이 가가지고 쓱쓱쓱쓱 코끼리로 얼굴로 몸띵이로 이리 저리 냄, 냄새만 맡어보고 혀 끄트리로 삭삭 여기저기 핥으고 그리고는 도무지 죽일라고 허지를 않아. 
 
그래 왕이 그 광경을 보고 마음에 겁이 났다 그 말이여. 아, 저놈이 어떻게 오뉴월 보리단술 변허듯이 뚝 변해갖고 죽이라고 허는 죽이는 그 죄인은 죽이지 않고 냄새만 쓱쓱쓱쓱 맡고 혀로 싹싹 핥아주고 뱅뱅 이래 돌기만 허니까 아 이상해서 대신(大臣)을 모아가지고 “이 어떻게 된 일이냐?” 의논(議論)을 헌 결과 그 지혜(智慧) 있는 신하(臣下)가 말허기를, “그 오양간에 불이 나가지고 코끼리를 절 근처에다가 매 놨더니 그놈이 염불소리를 듣고 마음이 착해져갖고 차마 사람을 죽이지 못한 거 같습니다.” 왕이 들어보니 과연 그렇겄다 그 말이여. “그렇다며는, 이놈을 다시 이용(利用)헐라며는 천상 소돼지를 죽이는 도살창(屠殺場) 근처에다 갖다 매라.” 이래가지고 코끼리를 날이면 날마다 수십 마리 수백 마리씩 죽이는 도살창 근처에다가 갖다가 매 놨다 그 말이여. 그러니 도끼로 소 대가리를 찍어서 죽이고 “음메~”하면서 쓰러지고 돼지를 배를 가르면 “꽥, 꽥”허고 날마다 그것을 구경을 했다 그 말이여. 그러고 난 다음에 떠억 갖다가 죄, 죄인이, 죄수(罪囚)가 나와서 그놈을 사형(死刑)을 허게 될, 되았는데, 갖다 놓니까 이놈이 악심(惡心)이 아주 맹렬(猛烈)해져가지고 여지없이 사람을 잘 짓밟아 죽였다 그 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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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고,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그 아들을 공동묘지(共同墓地) 가까운 집에서 길르니까 날마다 사람 죽어, 죽은, 죽여서 갖다 땅 파고 묻고 “아이고~, 아이고~”하고 날마다 그런 행동을 해서, 그 다음에는 ‘천상 여기다 두어갖고는 저놈이 안 되겄다’ 그래가지고 시장(市場), 이사를 가는데 마치 간 곳이 장터 가까운 곳에 가니까 날마다 “이거 사시오, 저거 사시오. 여기 열 냥 내시오, 닷 냥만 하시오.” 맨 장사들 흉을 낸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이리저리 궁리한 끝에 서당(書堂) 가까이에 옮겨가지고 갖다 놓니까 날마다 글 읽는 흉내를 내고 “하늘 천, 따 지요” 그래 쌌는다 그 말이여. “이 되았다.” 그래가지고 거기서 차츰차츰 해가지고 맹자(孟子)라고 허는 공자(孔子)님 버금가는 그러헌 유교(儒敎)에 성현(聖賢)이 되았습니다. 
 
공자(孔子)님 법(法)은 공자님의 손자인 자사(子思)에게 전(傳)해지고, 자사의 법이 맹자(孟子)에게 전해지고, 맹자에서 인자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川)에게 전해지고, 또 정명도 정이천에서 인자 주자(朱子)로, 요렇게 해서 유교(儒敎)의 법통(法統)이 전해왔는데, 물론 인자 또 여러 갈래로 갈라졌지마는 우리 한,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그 아까 말한 그러헌 법통으로 전해진 주자학(朱子學)이 한국에 전해진 것입니다. 그 한국에 전해진 그 주자학이 맹자를 거쳐서 전해왔어. 그만큼 그 맹자는 참 유교에 있어서 우리나라, 아, 불교에서 말하면 뭐 달마대사(達磨大師)와 같은 그런 참 성현에, 조사에, 조사(祖師)로 추앙을 받을 만한 아성(亞聖)인데, 그 맹자의 어머니, 우리나라 율곡선생(栗谷先生)도 신사임당(申師任堂)과 같은 그런 훌륭한 어머니의 정성(精誠)에 의해서 그렇게 율곡 선생과 같은 그런 훌륭한 분이 참 나왔는데, 애들의, 자손 자녀들의 교육은, 그 교육에 있어서 어느 지방에서 어느, 어떠헌 상황에서 가리키느냐, 사느냐 한 것이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허는 것을 현실적으로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자녀의 교육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학생이나 일반사람들도 자기가 사귀는 친구, 어떠헌 친구를 사귀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고, 또 어느 절에 다니면서 어떠헌 스님의 법문(法門)을 듣느냐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다 스님네는 다 훌륭한 분들이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그 스님이 설교(說敎)를 헐 때 어떠헌 교(敎)를 위주로 하는 법문을 허시느냐, 또는 염불(念佛)이나 기도를, 기도(祈禱)나 주력(呪力)을 주로 하는 그러헌 법문을 설하느냐, 또 참선(參禪)을 위주로 한 법문을 설하느냐, 참선도 의리선(義理禪)을 설(說)하느냐 활구선(活句禪)을 설하느냐에 따라서 그 신도(信徒)들은 많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체중생은 그 의지력, 그 성격이 결정적으로 서있지를 못하기 때문에, 축생(畜生)도 오히려 경 읽는 소리를 듣고 법문(法門)을 듣고 자비심(慈悲心)을 내거든... 내고 그 죽이고 고함지르고 허는 그런 것을 보고는 그렇게 포악해지는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마땅히 악한 것을 보고는 그걸 멀리허고 그것을 빨리 그것을 버리도록 하고, 좋은 것을 보고는 적극적으로 가까이해서 항상 정법(正法)을 듣고 정법을 믿는 도반과 선지식을 가까이해서, 자기도 중도에 공부를 중단하는 일이 없고 또 삿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그렇게 해서, 이 몸띵이 있을 때, 이 몸띵이를 잃어버리기 전에 공부를 득력(得力)을 해놔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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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말씀에, “마치 나무가 물에, 나무토막을 물에다가 내려 놓면 그 나무가 흐름에 따라서 내려가는데, 그 물이, 물에 떠내려간 나무가 중간 언덕에 걸리지 아니하고 또 사람에게 그놈을, 사람이 그놈을 건져내는, 내지를 않고, 사람이 건져버리지 않거나, 또는 귀신(鬼神)에 가로막는 바가 되지 않고, 또 물이 빙빙 도는 그런 쏘의 속에 들어가지 않거나, 또 나무가 가다가 중간에 썩어, 썩어버리지 않는다면, 내가 보증하노니 이 나무는 결정코 바다에 들어가고야 만 말 것이다.” 이렇게 말씀허셨습니다. 
(佛言 夫爲道者 猶木在水 尋流而行 不觸兩岸 不爲人取 不爲鬼神所遮 不爲泂流所住 亦不腐敗 吾保此木 決定入海 學道之人 不爲情欲所惑 不爲衆邪所嬈 精進無爲 吾保此人 必得道矣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27장.)
 
그러면 양쪽언덕에 걸리지 않는다[不觸兩岸]고 허는 것은, 생사(生死)니 열반(涅槃)이니 허는 그러헌 생각에 집착이 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사는 나쁜 것이고 열반은 좋은 것이다.’ 대부분 상식적으로 그렇게 생각 헙니다마는, ‘생사다 열반이나... 열반이다’ 하는 생각은 방편설(方便說)로서 초심자들에게 ‘어쨌든지 생사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어쨌든지 열반의 저 언덕으로 가야한다’고 허는, 발심(發心)허도록 허는, 무상(無常)을 느끼고 발심을 허도록 허기 위한 그러헌 단계에서 법문이 될지언정, 화두(話頭)를 들고 본격적으로 ‘참선(參禪)허는 마당에는 버려야할 생사(生死)도 없고 취(取)해야 할 열반(涅槃)도 없, 없다’ 이것입니다. 
 
사람에게, 나무토막이 흘러가다가 그 나무토막이 쓸 만 허다 해가지고 사람이 그걸 건져버리면 그 나무는 바다에까지 가지를 못하는데[不爲人取], 그것은 무엇에다가 비유해서 허신 말씀이냐하며는, 선업(善業)에 착(着)한 바가 되지 아니헌 것을 말입니다. 이 인간세상이나 하늘나라 인천(人天)에서는 선업(善業)을 주장을 하고 좋은 업 쌓는 것을 대단히 거개(擧皆) 좋은 것으로 칭찬을 하고 그럴랴고 모다 노력들을 헙니다. 물론 악(惡)한 업(業) 보다는 선업이 좋은 것이고 사람으로서 해야 한다며는 선업을 해야 하겠지마는, 최상승법(最上乘法)에 발심해가지고 화두를 들고 정진(精進)허는 마당에는 선업에 집착할 것도 없어. 그러면 악한 짓도 허지 말고 착한 짓도 허지 말고 아무것도 허지 말고 가만 있으라는 게 아니라, 물론 무엇을 했다 하며는 선업을 해야 하는... 허되, 그 선업에도 집착한 마음을 갖지 말아라 이것입니다. 좋은 일을 허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라 이거거든. 무심(無心)으로 해라 이것입니다. 좋은 일을 허면서 ‘내가 이러헌 좋은 일을 했다’ 하는 집착심(執著心)을 가지고 그것을 남에게 자랑을 헐랴고 그러고, 그런 선업에 집착헌 것, 그것도 깨달음을 얻는 데에는 장애(障礙)가 되는 것이다 그 말이거든.
 
그다음에 귀신에 가로막는 바가 되지 않는다[不爲鬼神所遮]는 말은, 사견(邪見)에 빠지는 것이여. 사견. 사견, 귀신. 정진을 허다가 무엇이 귓전에 무엇을 일러주고, 꿈에 무엇을 어떻게 어떻게 하고, 정진허고 있는데 무엇이 휙 지내가고, 무슨 귀신들린 그러헌, 정진허다가 흔히 심지(心志)가 약(弱)하고 그러며는 열심히 정진허다보면 식(識)이 맑아지며는 마귀(魔鬼)가 날리는 그 기운에 접(接)해가지고, 그래가지고 무엇이 보이기도 하고 무엇이 알아지기도 하고 허며는 그게 아주 공부가 잘된 것처럼 착각을 해가지고 그러는 수가 있는데, 그게 다 평소에 ‘무엇이 좀 알아졌으면’, ‘무슨 신통력(神通力)을 얻었으면’ 그러헌 생각을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마귀가 날리는 그런 기운이 자기에게 붙게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철저한 정법을 믿는 바른 생각을 가지고 정진을 해야지, 잠깐이라도 잘못된 삿된 생각을 가지며는 금방 그런 기운이 들어붙게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다음에 물이 빙빙 도는 쏘의 흐름에 그놈이, 나무토막이 들어가면 밤낮 그 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허제 흐름 따라서 내려가질 못하는데, 이것은 삼계(三界)의 쏘, 삼계의 쏘에 머무는 거여. 삼계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가 삼계(三界)ㄴ데, 정말 최상승법에...을 믿고 실천허는 사람은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집착허는 마음을 아니가져야지 집착허는 마음을 가지며는 삼계유전(三界流轉) 헐 수밖에는 없는 것이여. 좋은 것을 만나도 ‘이 뭣고?’요, 악한 것을 만나도 ‘이 뭣고?’요, 명예나 권리나 지위 부귀 영화를 만나도 ‘이 뭣고?’요, 일체처 일체시에 흥망성쇠(興亡盛衰)와 생로병사(生老病死) 모든 경계(境界)에 거기에 내가 마음을 일으켜서 집착(執著)허지 말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항상 화두를 들고 화두(話頭)에 대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허도록 잡두리를 해나가야 한다 그 말이여. 이것이 삼계(三界)의 회류(廻流)에 머무르는 바가 되지 아니한 것이다[不爲泂流所住] 그 말이거든.
 
그 다음에 불부패(不腐敗)하면, 나무가 가다가 썩어져버리면 그냥 부서져서 바다에까지 가지를 못할 것이다. 수행자가 썩어진다고 허는 것은, 이승(二乘)의 멸진정(滅盡定)에 집착(執著)을 해가지고 거기에 머물러버린 거여. 화두에 대한 철저한 의단(疑團)을 거각(擧却)허고 의단으로 정진을 해나가지 아니허면, 고요하고 편안한 디에 맛들여가지고, 그래가지고 그러헌 방향으로 공부를 해가면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지는 거여. 무기공에 떨어지면 시간 가는 중도 모르고, 배가 고픈 중도 모르고, 밥 먹을 중도 모르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 내지 세 시간 네 시간도 꼼짝 안하고 고대로. 그래가지고 자기는 삼매(三昧)에 들었다고 좋아하고, 누가 그것을 일어나라고 깨우거나하면 그걸 싫어하고 진심(瞋心)을 내고 그러는데, 그 무기공이라 하는 것은 대단히 깨달음을 가로막는 무서운 마경(魔境)이다 그 말이여. 
 
아까 양쪽 언덕에 걸렸어도 큰물이 물줄기가 흘려 내려오면 다시 또 떠내려갈 수도 있고, 사람이 건졌다가도 다시 집어넣며는 또 흘러내려갈 수가 있고, 귀신이 막거나 쏘에 들어갔다가도 어떻게 허다보면 다시 또 흘러내려갈 수도 있지만, 그 자체가 썩어서... 썩어버리면 그건 천하 없는 일이 있어도 그건 바다에 도달 헐 수가 없어. 그 무기공이라 하는 것은, 참 부처님 말씀에 “공견(空見), 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해버리고, 부정(否定)해버리는 그러헌 사견(邪見)인데, 사견도 가지가지 사견이 있지마는 모든 사견 가운데에 그 공견(空見)이라고 허는 것이 가장 무거운 사견(邪見)이다” 그러셨어. “만약 사람이 아견, 아견(我見)에 집착허면, 집착(執著)허기를 수미산(須彌山)만큼 그렇게 크게 집착을 헌다 허더라도 나는 그것을 두려워 허거나 탓을 허지 않겠다. 헐뜯고 비방을 허지 않겠다 그 말이여. 그러나 공견(空見)에 집착을 허기를 터럭에 십육 분의 일(1/16)만큼 쬐끔 그렇게 집착을 헌다 허더라도 나는 그것을 허락을 허지 않겠다.” 공견이라 하는 것은 그렇게 두려워해야할 무서운 사견이다 그 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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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육조(六祖)스님이라고 허는 중국 당(唐)나라 때 참 글자는 하나도 배우지를 못하고 속가(俗家)에서 나무꾼으로서 나무를 해다가 팔아서 홀로계신 어머니를 봉양(奉養)을 허고 그렇게 생계(生計)를 살아가다가, 노총각이 되아가지고 어느 날 어떤 스님이 와서 <금강경(金剛經)> 읽는 소리를 듣고 보리심(菩提心)을 발(發)해가지고, 그래가지고 출가(出家)해서 오조(五祖)스님 밑에서 인가(印可)를 받아가지고 달마(達磨)스님으로 부터서 여섯 번째 법통(法統)을 잇고 부처님으로부터는 삼십삼 대(33代)의 그 법통을 이으신 큰 조사(祖師)이신데, <육조단경(六祖壇經)>에, “공부허는 사람은 첫째로 공(空)에 집착을 허지 말아라. 만약 공에 집착한 마음으로 고요허게 앉아서 공부를 해나가면 아무리 오래오래 해봤자 그것은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지는 것이다. 무기공에 떨어지며는 그것은 깨달음을 얻기가 어려우니라.”하는 그러헌 법문이 있고, 
 
또 육조스님의 제자인 영가선사(永嘉禪師)는, “무기(無記)라고 허는 것은 무엇이냐하며는, 선도 아, 선(善)이나 악(惡)에 인연(因緣)허지 아니헌 것을 말하는데, 선도 착(着)허지 않고 악도,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거. 보통 중생의 성품은 선(善) ‧ 악(惡) ‧ 무기(無記) 삼성(三性)인데, 착허지 아니허면 악하고, 선도 악도 아니면 그것은 무기, 무기여. 무기는 겉으로 보면 쯧, 그냥 괜찮은 것 같은데 악(惡)보다도 더 나쁜 것이 무기(無記)여. 악은 언젠가 그 마음을 돌이키면 착할 수도 있는 거, 착해질 수도 있지만, 선도 아니고,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무기적인 사람은 그 사람은 영 좋아질 가망이 극히 희박한 거거든. 
 
그래서 사람이 철저하게 선허거나 그렇지 않으면 악, 악한 사람은 어떠헌 동기(動機)를 만나면 한 생각 돌이키며는 착해질 수도 있는데, 보통 선을 봐도 좋아할 중도 모르고 악을 봐도 나쁜 중도 모르고, 그렇다고 해서 악한 짓 허는 것도 아니고 착한 짓 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어디를 가더라도 아무 물의(物議)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하고 그저 그러면, 모든... 모르는 사람들은 “그 사람 참 착하다”고,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라”고, 어디를 가나 평판(評判)이 괜찮혀. 그러나 그 썩 칭찬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대부분 오장육부(五臟六腑)를 약하게 타고나고, 그래가지고 기(氣)가 하나도 없어. 기가 하나도 없어가지곤 뭔 기운이 하나도 없으니까 선을 봐도 쯧, 그만, 악한 걸 봐도 그만, 가만 주는 것이나 묵고 가만있으니까 착한 것 같지마는, 어려서부터 더군다나 그러며는 그 애기는 반드시 관심을 가지고 육체적인 정신적인 건강을 살펴봐야 하는 거야. 
 
그래서 이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선악을 인연허지 아니하고 그런 것은 그것이 진심(眞心)이 아니여. 참 마음이, 우리가 추구해야할 진심이 아니고, 다만 이것은 혼주(昏住)라 그랬어, 혼주. 혼혼해가지고 맹허니 그냥 그렇게 우두커니 그렇게 있는 거다 그 말이여. 그러헌 성격이나 그렇게 살아간 사람은 쯧, 별로 그게 별 문제는 없을랑가 모르지만, 이 사회에서도 큰 인물이 되거나 큰일은 헐 그릇이 못되는 거고, 이 도문(道門)에 있어도 그렇게 되아가지고서는 선방(禪房)에 평생을 걸망지고 댕겨도 별 무리는 없어. 쯧, 그저... 그러나 공부를 그러헌 식으로 한 숫갈 주, 한 숫갈 주면 우두커니 앉아서 끄벅 끄벅, 죽비(竹篦)치면 일어나서 또 그냥 화장실에 가고, 공양목탁 치면 그냥 와서 한 숫갈 먹고, 공부를 허는 것인지 안한 것인지 대관절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가 없거든. 
 
그러헌 혼주(昏住), 혼주는, 그리고 속으론 ‘그까짓 거 잘하면 뭣해. 그까짓 거 뭐 그냥 그렇고 그런 거지 뭐.’ 전혀 남 허는 일에 관심도 안 갖고, 사람이 성, 성성적적(惺惺寂寂)해야지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져서 우두커니 그렇게 앉어 있는 게 아니거든. 성성해야 돼. 눈동자가 또록 또록허니 살아있어야지, 시장에 그 생선, 생선 눈, 눈처럼 (대중 웃음) 손을 갖다 앞에다 이렇게 이렇게 해도 아, 아무 동요(動搖)가 없거든. 똑! 눈이 살아있어야 해. 참선허는 데는 눈이 똑 눈이 살아있어야지 죽은 생선 눈 갖고 안 되거든. 그래서 이 공견(空見)이라 하는 거, 공견에 떨어지며는 안 되는 거고. 
 
그래서 이 공부는 지극히, 아까 조실스님 법문에도 ‘천하에 쉬운 것이고 간단한 것이라’ 이런 말씀을 허셨는데, 이 공부가 그렇게 복잡한 것도 없는 것이고 천하에 간단헌 것인데, 언제 어데서라도 딱 챙기면 되는 것이여. 보통 저 일년, 이태, 삼년을 해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공부가 된 것 같지 않고 그래서 많, 대부분 많은 분들로 부터서 “어째서 이렇게 공부가 진취(進就)가 없고 만날 공부가 되지 않고 성성적적허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지 아니하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허지를 않으니, 이렇게 뭣이 공부가 잘된...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 그래가지고 그런 문의를 해온 분을 종종 만납니다마는, 이 공부라 하는 것은 세속(世俗)에 공부와 달라서, 세속에 모든 공부는 무얼 헌 만큼, 허면 헌 만큼 결과가 나타나고 자꾸 향상(向上)이 된 것을 느낄 수가 있고, 이만큼 했다고 허는 것을 스스로 짐작헐 수가 있고, 남에게 보여줄 것이 있고 그러는데, 천상 이 참선(參禪)은 해갈수록 콱 맥혀서 알 수 없을 뿐이지, ‘나는 삼 년을 해서 이만큼 공부를 했다’고 그 내 놓을 수가 없다 그 말이여. 
 
그래서, 그러나 내놓을 것이 없다고 해서 공부가 잘, 잘못된 것이 없어. 오히려 ‘공부를 했더니 무엇이 나타났다’, ‘무엇이 알아졌다’, 그전에 공부 안 헐 때는 잘 모르겄더니 공부를 허니까, ‘내일 누가 오겄구나’허면 그게 알아지고, 저 사람을 보면 ‘저건 나쁜 놈이다’, ‘좋은 사람이다’ 헌 것을 짐작이 가고, 또 어린애들보면 ‘애는 앞으로 큰 사람이 되겄다’ 그런 것도 알 수가 있고, 또 ‘앞으로 이 증권을 사놓면 부자가 되겄다.’ 그런 것도 알아지고, 이 참선공부란 게 무엇이 알아지고 얻어지고 그런 것이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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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의도취일의단(萬疑都就一疑團)하야
의래의거의자간(疑來疑去疑自看)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수시나룡타봉수(須是拏龍打鳳手)라야
일권권도철성관(一拳拳倒鐵城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만의도취일의단(萬疑都就一疑團)이여.
만 가지 의심을 다 이 한 의단(疑團) 속으로 몰아붙여야 한다 그 말이여. 
 
우리는 공부를 해 나가는 데나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허거나, 무엇을 해도 눈으로 보고 뭘 들으며는 아지 못하는 것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불교에 경전에 있는 경구(經句)가 되았건, 무엇이든지 아지 못한 것을 만나면 그것을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알랴고 허지 말고 무슨 의심이 되았건 즉각 자기(自己)의 본참화두(本參話頭)로 그 의심을 돌려야 한다 그 말이여. 세속적인 거나 불교에 어떤 것에 대해서 그 의심을 난 것을 따져서 알아봤자 깨달음에는 아무 소용이 없고, 어떠헌 의심이 되았건 그 의심은 돌이켜서 화두에 의심으로 돌이켜야 한다 그 말이여. 그렇게 해가지고 의심해 오고 의심해 가.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간에 그저 ‘이 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를 그렇게 의심을 험, 해서 스스로 그 의단(疑團)을 관조(觀照)해라 그 말이거든. 눈에 띈 데로 거기에 의심을 허고, 이것, 닥치는 대로 무엇을 알랴고 그러고 따질랴고 그러고, 언제 의단이 독로허게 되겄냐 그 말이여. 
 
 
(의래의거의자간(疑來疑去疑自看))
밥이 맛이 있으며는, 있어도 ‘이 뭣고?’요, 밥이 잘못 되아도 ‘이 뭣고?’요, 반찬이 짜도 ‘이 뭣고?’요, 반찬이 싱거와도 ‘이 뭣고?’요, 찰밥을 봐도 ‘이 뭣고?’요, 팥죽을 봐도 ‘이 뭣고?’요, 일체처 일체시에 그저, 화장실에 가도 ‘이 뭣고?’요, 차를 타도 ‘이 뭣고?’요, 알 수 없는데, 별로 재미는 없지마는 자꾸 챙기고 또 챙기고 해서 간절한 의심이 독로허도록 잡두리 해나가면 나중에는 챙기지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챙겨져갖고 있게 된 때가 오고야만 마는 것이다 그 말이여. 
 
 
수시나룡타봉수(須是拏龍打鳳手).
모름지기 용(龍)을 때려잡고 봉(鳳)을 때려잡을만한 그러헌 장부(丈夫)에 기상(氣像)을 가져야한다 그 말이여. 
 
나는 하근기(下根機)니까, 나는 여자니까, 나는 늙었으니까, 나는 무식허니까 그러헌 생각을 갖지 말고, 빈부귀천(貧富貴賤), 남녀노소(男女老少), 유무식(有無識)을 막론하고 일체중생(一切衆生)이 다 실유불성(悉有佛性)이여. 다 불성(佛性)이거든. 부처님과 똑같은 성불헐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져있는 그러헌 존재다 그 말이여. 그러니 어찌 스스로 자포자기(自暴自棄)를 헐 수가 있느냐 그거거든. 장부에 기상을 가지고 턱 허리를 펴고 눈을 평상(平常)으로 뜨고서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 내쉬면서 ‘이 뭣고?’ 거기에 무슨 남녀노소가 있으며, 거기에 무슨 빈부귀천이 있으며, 거기에 무른... 무슨 어리석고 영리헌 것이 거기에 있을까보냐 그 말이여. 그래야, 그렇게 해서 성성적적허게 잡두리 해나가면 자연히 의단이 독로허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된 때가 오고야만 말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럴 때는 한 주먹으로 쳐서 철성관(鐵城關)을 무너뜨리게 되고야만 만다 그 말이여. 
 
우리는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났습니다. 사바세계는 흥망성쇠(興亡盛衰)가 끝없이 전개(展開)되는 곳입니다. 고통과 즐거움과, 즐거움이 항상 기복과 굴곡을 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육체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우리의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습니다. 구리가...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습니다. 이 성주괴공과 생로병사와 생주이멸의 변화무쌍(變化無雙)한 속에서 우리는 살아갈 수밖에는 없고 그것을 면(免)헐 도리는 없습니다. 우리가 불법(佛法)을 만나지 못하고 정법을 만나지 못했으면 천상 그 성주괴공과 생로병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 떠내려 가가지고 영원한 생사유전(生死流轉)을 헐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다행히 불법을 만났고 정법을 만났기 때문에 그 속에서 생사 없는 영원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밖에서는 그것이 얻어지지 않습니다. 재산이나 명예나 권리나 지위 부귀 오욕락(五欲樂) 속에서는 그것이 얻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오욕락 속에서 살고 있어... 있지마는 그 속에는 영원한 행복은 없습니다. 
 
비록 그러한 물결 속에, 그러헌 분위기 속에 우리가 있다고는 허지만 탁! 한 생각을 돌이켜서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으로 대의단(大疑團)을 일으킴으로써 생사 없는 진리(眞理)의 세계로 우리는 나아가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금방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허면 그것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근기(根機)에 따라서 일언지하(一言之下)에 돈오(頓悟)헐 수도 있고, 석 달에 될 수도 있고, 삼 년에 될 수도 있고, 삼십 년에 될 수도 있고, 그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허면 누구든지 될 수 있다고 부처님과 모든 조사들이 다 보증(保證)을 서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몇 해를 하고 십 년을 해도 안 된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여. 문제는 ‘올바르게 허고 있느냐,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허고 있느냐’ 그것만을 우리는 점검(點檢)을 헐 따름인 것입니다.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허고 있다면, 가정에서 있거나 회사에서 있거나 공장에서 있거나 농촌에서 있거나 시장에서 장사를 허거나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정치를 허거나 사업을 허거나 그것도 상관이 없어요. 이 세상에 올 때 무엇인가는 우리는 해야 합니다. 특수한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를 해서 출가 수행자를... 가 될 수도 있습니다마는, 출가헌다고만 해서 다 공부를 잘한 것은 아닙니다. 출가했어도 정말 여법(如法)하게 최선을 다해야 되는 것이고, 세속에 있다고 해서 또 공부를 못헌 것은 아닙니다. 상황이 여러 가지로 힘들고 어렵기는 해도 그 속에서도 신심을 내고 분심을 내서 여법허게 잡두리 해나가면 세속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세속에 몸담아 있으면서도 정말 열심히 공부한 분도 많이 계십니다. 이것은 내가 해야만 되는 것이지 누가 대신 해줄 수 없습니다. 물론 죽음도 내가,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는 거고, 밥을 먹는 것도 대신 먹어줄 수도 없는 것이고, 그러긴 허지만 이 공부도 대신 해주진 못합니다. 부처님도 대신 해주지 못하고. 내가 해야 하는 거고, 이건 힘 안 들고 쉽게 허는 그런 왕도(王道)라고 허는 것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올바르게 해가면 그렇게 힘든 것도 아닙니다. 몸띵이를 들볶는 고행(苦行)을 해야만, 해야만 되는 것도 아니고, 꼭 장좌불와(長坐不臥)만 해야만 되는 것도 아니고, 단식(斷食)을 허고 그래야만 되는 아니고, 꼭 묵언(默言)을 해야 한 것도 아니여. 
 
근기는 약하고 공부는 꼭 해야겄는데 무슨 특별히 좀 애써서 해야겄다 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도해보는 분들도 있지만 그게 아니거든. 그저 배고프지 아니 헐만큼 먹고, 건강을 유지 헐만큼 쪼, 적당히 잠을 재와 주면서도 그 한 생각을 야무지게 잡두리를 해. 그렇다고 해서 용을 쓰고 허라는 게 아니여. 용쓴다고 공부 잘 되는 거 아니여. 초학자(初學者)는 용맹정진(勇猛精進) 헌답시고 용을 쓰고 막 어거지로 몰아붙여가지고 병(病)만 얻고 마는데 그런 게 아니거든. 그렇다고 해서 허는 둥 마는 둥 시지부지(흐지부지) 영감님 장에 가듯이 그러라는 게 아니거든. 정말 바른 자세로 바른 호흡법을 허면서 화두를 들되 성성(惺惺)허면서도 맹렬(猛烈)하게 들어야지 흐르멍덩헌 게 아니거든.
 
그런디 이 호흡법(呼吸法)이라는 것이, 임제종(臨濟宗)에 선지식들은 이 호흡법에 관한 말씀을 잘 안하셨습니다. 조동종(曹洞宗)에서는 이 호흡을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허도록 간곡히 말씀을 했는데, 임제종 계통에 큰스님네는 호흡법을 별로 안 허고 의단(疑團)만을 잡두리 허도록 하셨는데, 그까지... 그러나 초학자가 자세(姿勢)를 바르게 하고 그리고 복식심호흡(腹式深呼吸)을 허면서 그러면서 화두를 들도록 허면 건강에도 좋고 화두(話頭)도 성성(惺惺)허게 잘 들어집니다. 이 호흡, 물론 체질에 따라서 호흡법이고 뭣이고 상관없이 마구잽이 막 의단만 독로허도록 맹렬히 몰아붙여도 상기병(上氣病)같은 병이 거리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는 그러헌 좋은 몸을 타고난 분도 있습니다마는, 체질에 따라서 호흡법을 모르고서 맹렬히 몰아붙였다가 금방 상기병이 걸려서 일생동안을 고생하는 예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법을 가, 알아가지고 열, 한동안 열심히 허다보면, 나중에는 호흡에 신경을 쓰지 안 해도 제절로 이렇게 호흡이 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호흡에 관, 신경을 쓰지 않고 화두만 잘 거각해서 해나가도 호흡은 저절로 단전호흡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평생 동안 단전호흡을... 에다가 백 프로(100%) 그 거기다가만 신경 쓰란 게 아닙니다. 처음에 그 호흡법을... 이 익숙해질 때까지는 그걸 잘 해가지고 잘 된 다음에는 무심(無心) 속에서 호흡은 하고 이 화두만을 간곡히 들어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 불법은 부처님 가신지 삼천 년(3000년)이 되아서 흔히들 말세(末世)라 그러고 말법시대(末法時代)라 그럽니다마는, 이 최상승법에는 정법(正法)이니 상법(像法)이니 말법(末法)이니 그런 것이 없습니다. 언제라도, 누구라도 바른 신심과 대분심으로서 턱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하고 한 생각을 돌이키며는 바로 최상승법을 행하는 것이라 그것이 바로 정법시대(正法時代)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어도 불법을 믿지 아니하고 사법(邪法)에 의지해서 그럭저럭 지낸다며는 그게 어떻게 정법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말법(末法)이거든.
 
여기서 저기서 화산이 터지고 지진이 일어나서 사람은 죽고, 여기서 저기서 싸움이 일어나가지고 같은 동족끼리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하고,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싸움을 하고 모다 야단들이고, 세계가 다 서로 자기 나라가 돈을 많이 벌고 잘 살랴고 모다 경제적인 그런 싸움들을 모다 하고 있지만, 그럴 수록에 우리는 정법을 믿고 야무지게 단속(團束)을 해나가야 헐 때가 된 것입니다. 정말 이 시대 이 땅에 정법을, 정법을 실천하고 정법을 이룩할 사명(使命)을 가지고 우리는 태어난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노력을 해가지고 큰 재벌이 된 사람도 많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고학(苦學)을 해가지고 훌륭한 정치가가 되고 훌륭한 학자가 된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헌 말세에,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같이 허망하게 죽고, 천지에 재란(災亂)이 언제 일어날지도 모를 이러헌 상황에서, 우리는 진정한 발심을 해야할 때가 온 것이고 정말 최상승법을 실천하고 이것을 널리 널리 펴야할 때를 우리는 맞이헌 것입니다. 그러한 사명감을 가지시고서 당장 오늘부터서는 정말 대신심과 대분심과 대의단을 일으켜서 정진허시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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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이요
전처실능유(轉處悉能幽)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하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이여.
마음은 모든 경계를 따라서 마음이 굴, 굴러가는데,
 
 
전처실능유(轉處悉能幽)다.
굴러가는 곳마다 다 능히 깊숙하다, 그윽하다 그 말이여.
 
경계(境界)에 따라서 집착(執著)을 허면 마음도 조용할 수가 없고 편안할 때가 없으나, 어떠헌 경계를 만나거나, 좋은 경계를 만나거나 내 마음에 안 맞는 경계를 만나거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떠억 즉각 생각을, 그 경계(境界)에 즉(即)해서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들면, 경계마다 그윽하다 그 말이여. 유수(幽邃)하다 그 말이여.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하면,
그 흐름에 따라서 그 곳, 그 때마다 성품(性品)을 인득(認得)하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다.
기뻐할 것도 없고 근심할 것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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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도 허다보면 화두가 순일해서 잘 되아가기도 허지만, 영 화두가 안 들리고 공부가 안되고 안절부절하고 답답허고 몸을 주리로 튼 것처럼 괴롭고 시간이 영 안가고 애를 먹은 그런 단계가 오기도 헙니다마는, 그럴 수록에 심호흡(深呼吸)을 하고 또 밖에 나가서 포행(布行)을 허면서 잘 선용기심(善用其心)해서 달래면서 공부를 잡두리 해나가야지, 공부가 안된다고 짜증을 내고 번뇌심(煩惱心)을 내고 그럴... 그런 게 아니거든. 한 생각 잘 잡두리해서 그렇게 해서 인생도 살아가야 하는 거고, 사업도 해나가야 하는 거고, 공부도 그렇게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더운 계절을 만나서 땀도 나고 이 참 어려운 시기가 돌아옵니다마는, 그럴 수록에 선용기심해서 지혜롭게 정진(精進)을 잘 허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 송담선사 법문 552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