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있기는 있으되, 사실은 없다】

2023. 9. 23. 05:35송담선사 법문

【있기는 있으되, 사실은 없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모든 유위법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다.
꿈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다.
풀 끝에 이슬과 같고 번쩍허다 사라지는 번갯불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니라.
마땅히 이와 같이 달관達觀을 헐지니다.
 
 
우리의 생사고生死苦는, 중생은 생사고, 생사에 고...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으로 해서 무량겁無量劫을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허는데, 그 원인原因은 ‘모든 법法이, 함이 있는 법이 꿈과 같고 꼭두각시와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갯불과 같다’고 하는 것을 깨닫지를 못허기 때문에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을 못 외우신 분이 안계시겠지만은, <반야심경般若心經>에 근본根本 뜻과... 뜻이, 그 첫 줄에 나오는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다.‘

공空이다...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다.
오온五蘊이 다 공空한 뜻을 비추어보면, 
-‘오온五蘊’이라는게 무엇이냐하며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인데, ‘색色’은 우리의 가깝게 말하면 육체肉體고, ‘수상행受想行’은 우리의 정신작용精神作用이고, 끝어리 ‘식識’은 정신작용을 일으키는 그 본체本體, 본식本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마디로 쉽게 말해서, 우리의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이, 또 정신작용精神作用이 그것이 공空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있는 것으로 착각錯覺을 해가지고 거기에 집착執著을 허는 디에서 모든 슬픔과 고통과 원망이 일어나는 것인데, 그것은 공空한 것이다.
-이 ‘공空했다’고 허는 뜻은, 대단히 깨달라야만 확실히 아는 것이지 이론적으로 설명허기도 어렵고 이론적으로 알아갖고는 ‘비추어 본다, 조견照見’이라고 허는 것에 계합契合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공했다’고 허는 것을 무식하게 쉽게 말하면 ‘없다’헌 말과 아주 가까웁습니다마는, 쪼끔 뜻이 다릅니다.
 
‘있기는 있으되 사실은 없다’고 허는거여.
 
그림자도 분명히 있지 없는 것은 아닌데, 그림자라고허는 것은 그 본래는 그것이 공空한 것이거든.
그림자도 그렇고, 물거품도 그렇고, 꿈도 그렇고, 환幻도 그렇고, 그런 것은 우리 중생衆生의 눈에는 분명히 있는 것으로 보이나 사실은 그것은 공空한 것이여. 공한 것을 실지로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이 그것이 중생衆生의 소견所見이고, 확실히 그것은 본래本來 공空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깨달으 허면... 깨달게 되면은 생사生死가 없는 도리道理를 바로 깨닫게 되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해탈解脫이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참선參禪허는 것도 그 이치理致와 계합契合을 허기 위해서 참선을 허는 것이고, 경經을 읽는 것도 그 이치와 확실히 그것을 요달了達허기 위해서 부처님이 경을 설하셨으니, 경을 읽는 것도 그 도리를 깨달라야만 되는 것인데, 무식허거나 유식허거나 무슨 직업을 가졌거나 간에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참선법參禪法이여.
 
‘이 몸띵이 끌고 다니는 이것이 무엇인고?’
 
앉아서나 서서나 걸아 갈 때나 밥 먹을 때나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미운생각이 났거나 원망하는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바로 그 생각을 돌이켜서 ‘이 뭣고?’
이렇게 험으로 해서 미운 생각도 없어지고 원망하는 생각도 없어지고 슬픈 생각도 거기에서 없어지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것은 열심히 헌 사람은 누구라도 그것을 체험을 허시게 될 것입니다.
열심히 해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간에 이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허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결국에는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허게 되는 것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68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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蛇虎無意於害人、嘗倚高岡臥平陸、行人驚相告而遠之。蓋知其有齧人之毒、不容不望影而避之也。
독사와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려는 데에는 뜻이 없다.
일찍이 높은 곳에 의지하고 평평한 육지에 누워있을 뿐이건만, 길가는 사람이 경계하여 서로 말하며 그것을 멀리한다. 다 그들이 사람을 물어뜯는 독이 있음을 알아서, 그림자 조차도 용납하거나 보려하지 않으며 그것을 피한다.

菩薩之視幻法亦然。何謂幻法、乃實無而有者是也。既曰實無必何所有。
보살菩薩이 환법幻法을 보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무엇을 일러 환법이라 하는가? 다만 ‘실제로는 없으되 있는 것’이 이것이다. 이미 실제로 없다고 말하면서 필경 무엇이 있다는 것인가?

譬之太虛纖塵不立、由病在眼亂華叢。然了幻者、自責眼中之病、不了幻者、惟嫌空裏之華。
그것을 비유해보면, 큰 허공에는 섬진纖塵(가는 먼지)도 세울 수가 없는데 병病으로 말미암아 눈에 어지러운 꽃뭉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환幻임을 깨친 자는 눈 가운데 병病을 스스로 탓할 뿐이요, 환幻임을 깨치지 못한 자는 오직 허공 속의 꽃을 꺼려하는 것이다.

至若水底月、鏡中像、皆幻有也。迷人執有必欲遠離、惟其所離展轉成有。達人知幻、不作離想。雖不故離自無所著。
물 밑의 달과 거울 가운데의 형상으로 말할것 같으면 모두가 환幻으로 있는 것이다. 미혹한 사람은 그 ‘있음’에 집착해서 반드시 멀리 여읠려고 하나, 그 때문에 여읠려는 그것이 전전히(도리어 더욱) ‘있음’을 이룬다. 통달한 사람은 환幻임을 알아 여읠려는 생각을 짓지 않는다. 비록 짓지 않아도 여의기 때문에 스스로 집착하는 바가 없다.

故教中有“知幻即離不作方便”。惟知幻之知不涉情妄、乃超悟之心全體是知也。以其知之至當、故不待離而離矣。
그러한 까닭에 교敎 가운데에는 “환幻인줄 알면 여의리니, 방편方便을 짓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오직 환幻인줄 아는 그 앎은, 정망情妄(망령된 알음알이)에 포섭되지 아니하고 나아가 깨달은 마음도 초월하니 전체全體(온전한 체, 妄과 悟)가 이 앎인 것이다. 그러한 앎은 지극히 당연한 까닭에, 여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여의게 된다.

然不作方便、即能離所離之心、皆方便也。良由洞悟自心、照了諸幻、惟其照了、全是遠離、更不待別有所離而離矣。
그래서 방편을 짓지 아니하니, 곧 여의는 자와 여의려는 대상의 마음이 다 그대로 방편方便이 되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을 사무치게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환幻을 비추어 깨치니, 오직 그 비추어 깨침이 온전히 이 멀리 여의는 것이라, 다시 따로이 여읠 바 있음을 기다리지 않고서 여의게 되는 것이다.

猶望蛇虎而避者、蓋真知其有齧人之毒、自然念念遠離、豈待別作方便而後離也。
마치 독사와 호랑이를 보고 피하려는 자는 다 그것들이 사람을 물어 뜯는 독毒이 있음을 진실로 알아서, 자연히 생각 생각 멀리 여읠 것이니, 어찌 따로 방편方便을 지은 후에야 여의기를 기다리겠는가?

 其不具此真正悟知者、於四大五蘊亦未嘗不言是幻。頃焉對違順境、瞥爾情生與諸幻塵同時起滅
그 참다운 바른 깨달음의 앎을 갖추지 못한 자도, 사대四大와 오온五蘊이 또한 미상불未嘗不(아닌게 아니라) 바로 환幻이라고 말하지만, 갑자기 순경계와 역경계를 대하면 잠깐 사이에 정情이 생겨나 모든 환幻과 더불어 티끌이 함께 때때로 일어나고 멸한다.
 
備嘗眾苦厭足、心生必欲遠離、重增幻見或。不正悟其諸幻因緣、安有可離之理哉。
이러한 갖가지 중생의 고통을 맛보면 족히 싫어하여 반드시 멀리 여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 그것은 거듭 환幻만을 증장하여 그 견해를 미혹하게 할 따름이다. 그 모든 환幻의 인연因緣을 바로 깨닫지도 못했는데, 어찌 가히 그것을 여읠 이치가 있겠는가?

惟識達之者、不起離幻之念、但勤究己之功。己躬一明百千幻妄悟歸真寂、其離之一言不勝其贅矣
오직 식識을 통달한 자는 환幻을 여의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서, 다만 부지런히 자기의 공부를 궁구해 나갈 뿐이다. 자기가 몸소 한번 백천百千의 환망幻妄을 깨달아 밝혀서 진적真寂에 돌아가면, 그 ‘여읜다’라는 한 말도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 중봉명본 <동어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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