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찾다가 저 죽을 이름이여. 】

2023. 5. 28. 08:34짧은 글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웠다.
…..

- 김소월 [진달래꽃] 초혼.




【찾다가 저 죽는다.】



아까 조실스님께서 법문 하실 최초에 말씀이,

“까마득한 옛날에 소를 잃어버린 사람이 소를 찾으러 나섰다”고 말씀을 하시고, 그 말씀 바로 다음에,
“소를 찾다니, 그 소가 코 밑에 있거늘 무슨 소를 어디 가서 찾느냐?”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득이해서 비유(譬喩)를 해서 ‘소를 찾는다’ 말씀을 하시고, 부득이해서 ‘내가 나를 찾는다’고 표현을 했을지언정, 우리가 찾어야 할 소는 일찍이 잃어버린 바가 없는 것이고, 우리가 찾아야 할 마음, 우리가 찾아야 할 ‘내’는 잊어버린 때가... 잃어버린 때가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나와 더불어 있는 것이고, 언제나 나를 잠시도 떠나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찾는 것 자체가 이미, 찾을 때 잃어버린 것입니다. 찾기 때문에 그 소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헌 물견을 잃어버렸을 때에 온 집안을 찾고 뒤지고 합니다. 농  속을 찾고 서랍을 찾고 가방 속을 뒤집니다. 안방 바깥방 웃방을 전부 찾고 맙니다. 그러나 하루 종일 찾다가 찾다가 마침내 자기 호주머니 속에, 안 호주머니 속에서 나온, 또는 가장 찾기 쉬운 그러헌 곳에 있는 것을 발견(發見)한 경험이 있는 분이 많을 줄 생각합니다. 언제나 나에 가장 가까운 것은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찾을 수록에 점점 못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다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눈이 눈 자체는 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저 사람 눈은 잘 생겼다, 이쁘게 생겼다’, 자기의 눈은 어떻게 생겼다. 대충 자기의 눈이 고리눈이 되았나, 또는 눈이 크냐, 또는 눈이 뱁새눈이냐, 대충 다른 사람 눈도 알지마는 자기의 눈 모습도 짐작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눈은 실상 한 번도 보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짐작을 하고 있어도 실지(實地)로는 본 바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눈을 볼 수 있었다면 여러분은 거울을 통해서, 또는 반사허는 어떠헌 물체를 통해서 영상(映像)을 보았을 뿐인 것입니다. 혹 사진에 나타나거나 거울을 통해서 보았을 뿐 눈 자체는 절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영상, 그림자 그런 것뿐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통해서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다 볼 수 있고, 모든 음성(音聲)을 다 들을 수가 있고, 우리의 손을 통해서 모든 것을 다 만질 수가 있고 그렇지마는, 만질 줄 알고 눈을 통해서 볼 줄 알고 귀를 통해서 들을 줄 아는 그놈은 여러분은 틀림없이 한 번도 본 일이 없고 들은 일이 없고 만져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그것을 들은 일이 있고 본 일이 있고 만져볼 수가 있어다하면, 그것은 그것에 그림자요 영상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허기 위해서 여기에 모였느냐? 그 볼라야 볼 수 없고 들을라야 들을 수 없는 그놈. 아까 조실스님이 소로, 소에다가 비교한 그놈. 내가 ‘내’라고 생각허고 있지마는, ‘이것이 나로구나’ 하면 그것은 ‘나’가 아니여. 나의 그림자요, 거짓 나여. 우리는 거짓 나를 난줄 알고 그것을 애끼고 다듬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도적놈이 어디서 가장... , 어떤 사람이 아들을 잃어버렸는데, 아들이 어디를 간다고 해가지고 돌아온단 날 돌아오질 아니하고 몇 해가 지내도 소식이 알 수가 없는데, 하루는 어떤 사람이 돌아와서, 그 이리보고 저리봐도 꼭 아들같이 생긴 사람이 왔다 그 말이여. 그래서 ‘그 아들이 여러 해를 지나니까 커가지고 저렇게 변했는구나’ 이리 생각하고 아들인줄 알고 얼마를 울고 붙들고 반가와서 그래서 살다가보니, 아 그놈이 사기를 쳐 먹고 살림을 다 지 앞으로 해가지고는 홀랑 팔아묵고 도망갔다 그 말이여. 숭악헌 사기 강도를 자기 아들인줄 알고 반가이 맞어가지고 같이 살다가 옴막 살림을 다 떨리고 가슴속에 깊은 상처만 입었다 이 말씀이여.



우리는 가짜 나를 난줄 알고, 이 몸띵이가 난줄 알고, 이몸띵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무량겁(無量劫)으로부터 지어온 업(業)에 의해서 받어나온 이 업신(業身), 이 육체, 거짓 몸띵이를 참 난줄 알고 이것을 잘 맥이고 잘 입히고 잘 거두고, 누가 조끔만 욕을 허거나 조끔만 때리거나 허며는 그 사람을 아주 사생판단(死生判斷)을 하고 죽일랴고 복수를 헐랴고 그런다 그 말이여. 그놈을 잘 믹이기(먹이기) 위해서 피나오는 노력을 해서 돈을 벌어가지고 분 바르고 연지 찍고 그 이쁘게 맨들랴 그러고, 거기에다가 비싼 돈을 주어서 울긋불긋 좋은 천으로 옷을 맨들아서 입히고, 그래가지고 보약을 믹여가지고 훤허게 맨들아가지고 향수냄새가 풀풀 나도록 단속을 해가지고 모시고, 일생을 그놈을 모시고 산다 그 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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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해야 할일. 거짓 나를 맥여 살리느니, 도독으로, 도둑놈이 가장해가지고 돌아온 그 자식을 맥여 살릴라 하지 말고, 이 몸띵이 끌고 다니는 내, 참나, 지끔 말허고 있는 이놈, 지끔 이 말씀을 듣... 들을 줄 아는 그놈, 내가 나를 찾아야 됩니다. 이것이 가장 참나를 위하는 길이고 참으로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것이 불법(佛法)입니다. 우리 부처님을 믿는 사람은 이것을 믿고 이것을 닦아야 하는 것이며, 우리 삼천오백만 민족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사십억 인구도 이 법을 믿고 닦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실한 행복에 길을 닦는 것이요 진실한 평화를 추구하는 길입니다. 이 길이 새마을 운동이요, 새마음 운동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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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는 소, 마음 소는 저 산 너메 골차기 먼 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코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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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  어찌 보덜 못헐까? 찾다가 죽는다. 허! 내가 늘 말허지. 찾다가 그만 그르쳐부러.

- 전강선사 179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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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에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바로 중생심(衆生心)인데, 여러분들은 ‘탐진치 삼독 그놈은 몹쓸 놈이요 그놈 때문에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지옥에 떨어져서 지옥고(地獄苦)를 받는다. 이 탐진치 삼독은 그것은 여지없이 짤라서 동댕이를 쳐버려야 한다’ 이렇게 생각을 허시겠습니다마는, 사실 엄격히 근원(根源)을 규명(糾明)한다면 이 탐진치 삼독 이 중생심 무명심(無明心) 그놈이야말로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그 안에 내포(內包)하고 있는 것입니다. 탐진치 삼독 무명심 그놈을 여의고 진여불성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중생심 그놈을 여일랴고 허지 말고 그놈에 즉(即)해서 그놈을 바로 봐야 허는 것입니다. 그걸 깨닫는 방법이 바로 최상승법인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이 몸띵이 끌고 다니는, 그렇게 소소영영 한 놈.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할 줄 아는, 대관절 그렇게 소소영영하면서도 돌이켜 찾어보면 어떻게 생겼는지 그걸 알 수가 없으니, 금방 듣고 말을 하고 썽을 내도 그 썽내고 말할 줄 아는 놈이 어떻게 생겼는가 무엇인가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자최가 없으니, 알 수가 없으니 이놈이 무엇인가 궁금 헐 수밲에는 없고 찾지 아니 헐래야 아니 헐 수가 없어.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고? 이 뭣고? 한 생각 한 생각 돌이켜서 그놈을 찾을 때에 탐진치 삼독, 이 무명업식은 거기에서 자최가 없어지는데, 그놈이 녹아 없어지면서 참나가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째서 탐진치 삼독 그놈을 여의고 찾지 말아라. 바로 거기에 즉해서 바로 참 나를 봐야한다. 그렇게 가깝고 바로 거기에 있고 바로 그놈인데 왜 우리는 그것을 못 만나냐? 우리 중생도 삼라만상 청황적백 모든 것을 다 보면서 눈 자체가 눈 자기 그 자체를 보지를 못허는 거와 같애. 그래서 조실스님께서 말씀을 허시기를 “찾다가 저 죽는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여지없이 바로 그 자리를 우리의 면전에다 냅다 쳐 보이는 것이여. ‘이 뭣고?’ 그렇게 가깝고 바로 거기에 있지만 목숨을 바치고 위법망구적으로 허지 않고서는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뭣고?’

- 송담선사 법문 130번.



* 莫作向外馳求.
밖을 향해서 치달려 구하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