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있어야 물이 맑은 것을 바야흐로 알 수가 있고】

2021. 1. 6. 18:03송담선사 법문


【구름이 없어야 하늘 높은 것을 알게 되더라.】


가가문전통장안(家家門前通長安)허고
처처녹양감계마(處處綠楊堪繫馬)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수인유월방지정(水因有月方知淨)허고
천위무운시견고(天爲無雲始見高)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가가문전(家家門前)에 통장안(通長安)하고
처처녹양감계마(處處綠楊堪繫馬)다.
집집마다 문 앞에로부터, 문 앞에 있는 그 길로부터 서울 장안(長安)으로 통하고, 곳곳마다 푸른 버드나무에는 말을 맬만허더라.

아무리 산간벽지(山間僻地) 시골 해변 어... 도시 어디 어느 집이라도 문 밖에 나가면 그 길로부터 서울 장안으로 길이 연결이 되어 있더라 그 말이여.
그리고 곳곳에 어디에 있는 버드나무, 푸른 버드나무든지 다 타고 가던 말을 가다가 그 매 둘 수가 있더라 그 말이여.


수인유월방지정(水因有月方知淨)이요,
물은 달이 비추어야 그 물이 맑은 것을 바야흐로 알 수가 있고


천위무운시견고(天爲無雲始見高)여.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어야 비로소 그 하늘 높은 것을 볼 수가 있더라.

........

물은 달이 있음으로 해서 달빛이 비추어 주어야 그 물이 맑은 것을 알 수가 있듯이, 사람은 어려운 일을 만나봐야 자기의 사람됨을 스스로 알 수가 있는 것이고 자기의 그릇이 얼마만큼 된 것인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좋은 일도 당해봐야, 부자가 되아봐야 그 사람의 인간성이 참으로 드러나는 것이고, 또 어려운 일을 당해봐야 그 사람의 끈기를 알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달이 비추지 아니하면 껌껌허면 그 물이 썩 맑은지 탁(濁)한지를 알 수가 없다가, 밝은 달빛이 환히 비추어줌으로 해서 물의 청탁(淸濁)을 가려낼 수가 있고, 하늘에 구름이 꽉 차 있으면 그 하늘이 얼마만큼 넓은가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늘에 구름이 한 점도 없이 쏵 없어져야 그 하늘이 얼마나 높고 푸른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재산을 많이, 부자가 된 뒤에 그 사람을 봐야 그 사람의 인간성(人間性)을 알 수가 있고 그러다가 그 재산이 쏵 없어져봐야 그 사람의 참다운 인격(人格)을 알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도(道)를 닦아 가는데 있어서도 밤낮 좋은 환경에서, 좋은 여건(與件) 하(下)에서 아주 방사(坊舍)라든지 음식이라든지 의복(衣服)이라든지 모든 여건이 좋은 디에서만 정진(精進)을 허면 참 공부가 일취월장(日就月將)해서 금방 큰 도를 깨달을 것 같지만, 도(道)라고 허는 것은 그러헌 좋은 환경에서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주(衣食住)가 부족하기도 하고 주변이 시끄럽기도 하고 어떠헌 어려운 일을 육체적(肉體的)으로나 정신적(精神的)으로나 환경적(環境的)으로나 어려운 상태에 놓여서 봐야 자기의 수행력(修行力)이 얼마나 된가를 가늠할 수가 있고 그런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한 번 정진(精進)을 해봐야 거기에서 참으로 힘이 있는 정진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너무 좋은 환경에서만 자라고 좋은 부모 밑에서 부모덕으로 호강만 하고 자란 사람은 커서 별 볼 일이 없습니다. 조끔 어려운 일을 당하면 감내를 못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가정에 태어나서 피나는 참 고생도 해보고 고통도 해보고 그래야 어려운 사람의 사정도 알고, 그 사람이 나중에 성공하게 되면 많은 사람의 사정을 알아서 널리 덕을 베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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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금강경(金剛經)>에 말씀하시기를,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요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다’.
모든 함이 있는 법은, 함이 있는 법, 유위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은 무위법(無爲法)의 반대가 되는 말인데, 유위법이, 함이 있는 법이라 하는 것은 반드시 어떠헌 원인(原因)이 있어서 생겨났다가 그 조건(條件)이 흩어지면 그것이 또 없어지고, 생겨났다 없어지고 생겨났다 없어지고 허는 그것이 모두다 ‘유위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함이 있다.

생겨날 때는 생겨난 원인이 있고 또 없어질 때는 없어질 또 원인이 있어서, 그러면 이 몸띵이,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는 우리의 몸띵이도 이것이 유위법의 범주(範疇)를 벗어나지를 못하고, 또 이 세계(世界), 해나 달이나 별이나 지구나 산천초목(山川草木)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이것도 영원성(永遠性)이 없는 것이여. 반드시 그 원인이 있어서 결합이 되았다가 그 결합이 될 만한 원인이 무너지면 다 다시 흩어져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띵이도 영원히 있을 것 같지만 다 언젠가는 이것이 없어질 때가 오고 저 태양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러면 우리의 몸띵이도 유위법이요, 온 세계에 모든 것이 유위법이요, 우리의 생각, 생주이멸(生住異滅), 무슨 생각이 일어났다가 그 생각에 발저... 어느... 발... 발전을 허다가 결국은 그 생각이 또 사그라져 없어지는데, 그 우리의 생각에 생주이멸, 끊임없는 그 생주이멸의 되풀이를 허면서 쉴 사이가 없습니다. 이것도 또한 유위법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유위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다.’ 꿈과 같은 것이며, 꼭두각시 환상과 같은 것이며, 물거품 같은 것이며,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이 꿈, 꿈이라 하는 것도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꼭 실지(實地)처럼 느껴지지만 깨놓고 보면 간 곳이 없고, 환상도 그 환상에 사로잡혀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실지, 실상(實相)처럼 보이지만 정신을 차려놓고 보거나 다른 사람이 볼... 보게 되며는 실지(實地)로 그것이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또 물거품, 물에 어떤 충격을 가하면 거기에 물거품이 생기는데 물거품이라는 것이 어디서 나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냔 말이여. 물이, 물이 있는 곳에 잠시 물거품이 생겼다가 금방 다시 없어져부리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물거품 자체는 그것이 어디까지나 참 유위법에 지나지 못하고,

그림자라 하는 것도 어떤 물체가 있을... 있는데, 그 물체(物體)에 광선(光線)이 비추면 그 광선의 반대쪽에 그림자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 그림자라 하는 것은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고 또 영원한 것이 아니라 물체와 광선이 만났을 때에 그 그림자라고 허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그림자는 본래 있는 것도 아니요 영원성이 있는 것도 아니여. 그래서 역시 꿈과 같은 것이요, 환상과 같은 것이요, 물거품과 같은 것이요, 또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이것이 다 허망무실(虛妄無實)한 것이다 그 말이여.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니,
이슬, 풀끝에 이슬과 같고 또 번쩍허는 번갯불과 같은 것이다.

이슬이 풀끝에 맺혀있을 때 햇볕이 비치며는 찬란한 보석처럼 빛나지만 그것이 어찌 실다운 것이겠느냐 그 말이여. 바람이 불어서 풀잎이 움직이게 되며는 찰나(刹那)간에 그렇게 찬란하게 빛났던 보석 같은 이슬덩어리가 떨어져 없어져버리고 말어.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응당 이와 같이 관(觀)을 지을 지니다. 이와 같이 달관(達觀)을 할 것이다.

명예와 권리와 재산과 일... 그밖에 오욕락(五欲樂)이라고 허는 것이, 그것이 내 마음대로 얻어지면 기가 맥히게 참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부러워허지만, 그리고 그것을 한동안 마음껏 누리고 그것을 즐길 때에는 이 세상에, 이 세상이 온통 나를 위해서 존재헌 것처럼 느껴지고 이 세상에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싶으지만, 그러헌 것들이 잠시 반짝거리는 풀끝에 이슬과 같은 것이요, 번쩍허다 말아버리는 번갯불과 같은 것이요, 그림자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환상과 같고 그리고 꿈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것을 위해서 우리의 몸과 목숨을 바칠만한 상대는 되지 못한 것을 우리는 잘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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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귀원최적담(問一歸源最的談)이여
작가친대칠근삼(作家親對七斤衫)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여염입수간불견(如鹽入水看不見)헌디
긱착방지자미함(喫着方知滋味鹹)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문일귀원최적담(問一歸源最的談)
작가친대칠근삼(作家親對七斤衫))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스님께 묻기를,

“만법(萬法)이 귀일(歸一)하니 일귀하처(一歸何處)니잇고?,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하고 여쭈니까, 조주스님이 대답허기를,

“내가 청주 땅에서 베적삼을 하나 맨들았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었느니라.”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 참 동문서답(東問西答)이 되아서, 우리는 ‘왜 모든 법이 다 하나로 돌아가는데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가느냐’ 하고 묻는데 대해서 엉뚱하게 ‘내가 청주 땅에서 적삼을 하나 맨들았는데 무게가 일곱근이다.’ 도저히 우리 중생(衆生)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써는 종잡을 수가 없고 이빨이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이것을 사량분별로 따질라고 하며는 이것은 엉토당토 않고 말이 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최상승학자(最上乘學者)는,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은 여기에서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거각(擧却)할 따름인 것입니다.


여염입수간불견(如鹽入水看不見)이나,
소금을 물에다 넣으면 그 물에 녹아버린 소금을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긱착방지자미함(喫着方知滋味鹹)이다.
맛을 보면 바야흐로 짭짤한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소금을 아무리 많이 타도 눈으로 봐가지고는 도저히 맹물인지 소금물인지 짠지 싱거운지를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정월에 간장을 모다 담으시게 되겠지만, 짜고 안 짠 것은 눈으로 봐가지고는 알 수가 없으나 맛을 보아야 비로소 얼마만큼 짜다고 허는 것을 스스로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못다 한 말을 주장자(拄杖子)에 부탁을 하고 내려가겠습니다.

(주장자) 쿵!


- 송담선사 법문 259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