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버리고 달아나다]

2022. 12. 2. 10:42짧은 글

○ 不達如來의 圓頓制하고, 秖將空有하야 競頭爭하도다. 葉公이 好畫도 還如此하야 才見眞龍코 却自驚하니라.

여래如來의 원만히 몰록 깨닫는 법을 알지 못하고, 오직 공空과 유有를 가지고 서로 머리를 다투며 다투도다. 섭공葉公이 그림 즐김도 다시 이와 같아서, 진실眞實의 용龍을 갓 보고는 도리어 제 스스로 놀라느니라.


【섭공葉公이 용龍 그리기를 즐겨하더니, 진실眞實로 용龍이 나타나니 도리어 붓을 버리고서 두려워 달아나느니라】


- [남명집언해]



* 용이 좋아 그림을 그렸다하면 늘 용龍을 그려 남에게 주기를 즐겨하던 사람이 있었더니, 하늘에서 용이 지켜보다가 그의 집으로 내려와 그의 앞에 문득 진실로 모습을 나투니, 용을 그리워하던 사람은 도리어 두려워 붓을 던져버리고 멀리 달아나더라.

“세상은 온통 공空이요 마음 뿐”이라 말하며 자신도 늘 공空을 깨달아 한 번 친견親見하고자 하였으나, 진실로 공空한 부처의 경계境界를 마주하게 되면 도리어 두려워서 다시 참선하기를 두려워 함이, 마치 용 그리기를 좋아하던 섭공이 도리어 진실한 용의 꼬리를 보고서 붓을 버려버리고 달아남과 같음이라.
또한 세상을 살아감에 어지러운 일들에 치여 누구나 외딴 집에 홀로 들어가 고요히 정진하고자 하나, 진실로 들어가 홀로 정진하다보면 그 고요하고 적막함에 눌려 다시금 번잡한 마을의 일들을 그리워한다. 고요함을 즐김은 청복淸福이다. 그러나 그 복을 누릴 수 있음도 또한 그 사람의 큰 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