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21. 20:28ㆍ짧은 글
[지견知見]
【宗鏡】 若著見聞覺知ᄒᆞ면 不解如來妙義ᄒᆞ리니 悟無我人壽命이라도 還同陽燄空花ᄒᆞ리라 楞嚴애 云ᄒᆞ샤ᄃᆡ 知見에 立知ᄒᆞ면 即無明本이오 知見에 無見ᄒᆞ면 斯即涅槃이라 ᄒᆞ시니
만약 견문각지見聞覺知에 착著(집착)하면 여래如來의 묘의妙義를 알지 못하리니, 아我와 인人과 수명壽命이 없는 것을 알아도 도리어 양염陽燄(아지랑이)과 공화空花(허공꽃)와 같으리라. <능엄楞嚴>에 이르시되, “지견知見에 지知를 세우면 곧 무명無明의 근본根本이고, 지견知見에 견見이 없으면 이 곧 열반涅槃이라.” 하시니, 【양염陽燄은 양기陽氣가 섬섬 노는 것이니 거짓 것이라.】
【宗鏡】 只如法相不生時ᄂᆞᆫ 還信解麽아 大千沙界ㅣ 海中漚ㅣ오 一切聖賢ᄋᆞᆫ 如電拂이로다
오직 법상法相이 나지 아니한 시절時節은 도리어 알았는가? 대천사계大千沙界가 바다 가운데 물거품이요, 일체성현一切聖賢은 번개 떨침과 같도다.
【說誼】 取法이 元是迷니 悟空도 亦非眞이니라 悟心斯亡處ㅣᅀᅡ 是得涅槃時니라 只如法相不生ᄋᆞᆫ 作麽生道오 目前에 絕纖塵커니 號誰ᄒᆞ야 爲聖賢이리오
법法을 취取함이 본디 이 모롬(迷)이니, 공空 아롬(悟)도 또한 진眞 아니니라. 안(‘알았다’ 하는) 마음 없는 곳이라야사 이 열반涅槃을 득得한(얻은) 때 이니라. 오직 법상法相이 나지 아니함은 어찌 이르리오? 눈 앞에 가는 티끌도 없거니 누구를 이름지어 성현聖賢이라 하리오?
【頌】 法空非我ㅣ며 道非親ᄒᆞ니 樹倒藤枯ᄒᆞ야 笑轉新이로다 風掃止啼黃葉盡ᄒᆞ니 千林全體露天眞ᄒᆞ도다
법法이 비어서 내가 아니며, 도道가 친親치(친하지) 아니하니 남긔(나무)가 거꾸러지며 등藤(덩굴)이 시들어 웃음이 더욱 새롭도다. 바람이 울음 그치게 하는 누런 잎을 쓸어서 없게하니, 천 수풀의 왼(온전한) 체體가 천진天眞을 나투었도다.
【說誼】 空有ㅣ 已兩亡ᄒᆞ고 一亦不掛懷ᄒᆞ니 大千ᄋᆞᆯ 爲自身이라 所以笑轉新이니라 快然ᄒᆞ야 不爲方便惑ᄒᆞ니 本地風光이 觸處彰ᄒᆞ도다
공空과 유有가 이미 둘이 없고 하나도 또한 마음에 걸리지 아니하니, 대천大千(대천세계)을 제 몸 삼은지라 이런 까닭으로 웃음이 가장 새로우니라. 쾌연快然하여 방편方便에 혹惑(미혹)이 되지 아니하니, 본지本地의 풍광風光이 다다른 데(觸處)에 나투었도다(드러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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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견입지知見立知、즉무명본即無明本이요,
지견무견知見無見、사즉열반斯即涅槃이라.
“지견知見에 입지立知하면 즉무명본即無明本이요, 지견知見에 무견無見하면 사즉열반斯即涅槃이라.”
- <금강경 삼가해> 종경선사宗鏡禪師.
지견립知見立、지즉무명본知即無明本이요,
지견무知見無、 견사즉열반見斯即涅槃이라.
지견知見을 세우면 지知는 곧 무명無明의 근본이요,
지견知見이 없으면 견見은 이것이 곧 열반涅槃이라.
- 우안선사遇安禅師의 파능엄破楞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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僊巖遇安禪師。因看楞嚴經。至知見立知。即無明本。知見無見。斯即涅槃。乃破句讀云。
선암우안선사僊巖遇安禪師가 <능엄경楞嚴經>을 보다가 “知見立知, 即無明本, 知見無見, 斯即涅槃.”에 이르러서 이에 능엄경의 이 구句를 부숴버리고 구句를 다시 읊어 이르되,
知見立 句 知即無明 句
本知見無 句 見斯即涅槃 句
지견知見을 세우면 지知가 곧 무명無明이요,
본래本來로 지견知見이 없으면 견見이 이 열반涅槃이라.
- 楞嚴經疏解蒙鈔-明-錢謙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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