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5. 09:58ㆍ카테고리 없음
【疑團】
擧心盡屬輪廻業
動念無非生死根
要與太虛無向背
常呑一箇鐵渾侖
- 중봉명본 <天目中峰和尚廣錄>
거심진속윤회업擧心盡屬輪廻業이요,
마음을 일으키면 다 그것이 윤회의 업이 되는 것이고,
동념무비생사근動念無非生死根이다.
생각이, 생각을 일으키면 생사의 뿌리 아닌 것이 없다.
좋은 생각이 일어나거나, 나쁜 생각을 일으키거나, 불법에 관계된 생각을 일으키거나, 또는 조사에 어록에 관계된 어떤 공안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거나, 어떠한 마음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그것은 윤회의 업이 되는 것이고, 어떠한 생각을 움직이거나 어떤 생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생사의 근원 아닌 것이 없다.
이것은 철저하게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 사람에 ‘지극히’ 필요한 말입니다.
요여태허무향배要與太虛無向背인댄,
태허와 같이, 태허와 더불어 향배가 없고자 할진대는, –태허는 진무심의 경계고, 부처님의 마음과 조끔도 차이가 없는 그런 경계와 합치가 되고자 할진대는,
상탄일개철륜, 철혼륜常呑一箇鐵渾侖이다.
항상 한 덩어리의 둥글둥글한 쇳덩어리를, 쇠뭉치를 삼킨거와 같이 할지니다.
무쇠 덩어리를 삼킨거와 같이 할지니다. 입에 넣어서 아무리 씹어봤자 깨지지도 아니할 것이고 씹히지도 아니할 뿐만 아니라 아무 맛도 없을 것이요, 그것을 꿀떡 삼켜놨으니 그것이 속에 들어가니 주먹팅이 만한 쇳덩어리를 삼켜놨으니 속이 어떻겠냐 그말이여.
아무리 소화제를 먹은들 그것이 녹을 까닭도 없고 아무리 몸부림을 쳐봐도 어떻게 해결될 가망이 없다 그말이여.
우리가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떠억 받아가지고 그 화두에 대한 참구가, 참구허는 모습이 마치 이와 같이 해야 할 것이다.
잠시도 쉿덩어리를 삼켜서 그놈이 위, 위장 안에 가서 떠억 있으니 그것이 누운다고 해서 그것이 편안헐 것이며 돌아대닌다고 해서 해결될 것이며 어찌 할 수가 없이 그놈이 가슴 속에 위속에 들어앉은 거와 같이, 화두에 대한 본참공안에 대한 의단이 잠시도 여의라야 여읠 수 없는,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밥을 먹으나 소지를 허나 화장실을 가나 일체처 일체시에 묵직한 그놈이 위장에, 위장 속에 들어있는 것처럼 화두에 대한 의단이 그렇게 되아야 할 것이다.
.....
【信】
고인의 말씀에, 우리가 철저한 신심이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신심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인생을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오욕락을 버리고 그리고 이 수행을 한 눈 팔지아니허고 목적지에 도달헐 때까지 해나가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신심에 대해서 말씀을 좀 드리고자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수행해 나가는데 보탬이 되지 않을까 이러헌 생각에서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신심은, 자기 몸 가운데 있는 그 주인옹主人翁, 주인공은 삼세에 제불과 조끔도 모자람이 없는 그러헌 털끝만큼도 차등이 없는 그러헌 것이라고 허는 것을 첫째 그것을 철저히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學道須具足五種正信 , 第一要信自己方寸心中一箇喜怒哀樂底主人翁覿體與三世諸佛不欠一毫髮)
둘째 신심이라 하는 것은 뭣이냐 하면, 무량겁으로부터 오늘 날까지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모든 것과,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를 싫어하며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미워하는 것과, 우리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량겁을 두고 오면서 습, 익혀진 물든 습념 습기 그것으로 인해서 생사에 윤회를 허고 있다고 허는 것을 철저히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第二要信從無量劫來與聲色愛憎 染習流注結成一種生死無常 於四大身中念念遷流新新不住)
세 번째 신심이라 하는 것은, 고인의, 고조사의 일언반구가 마치 큰 칼과 같아서 얼마나 잘드냐 하면은 터럭도 거기에 지나가면 짤라져 버리고 종이도 거기에 붙지내가면 짤라져 버리고 누구든지 손이나 뭣이 거기에 다치기만해도 짤라져버린 것처럼, 그 큰칼을 함부로 어 거기에 접촉허게 되면은 자기의 명근, 목숨을 잃게 된다.
그래서 고인의 한 말씀 반 구절이라도 고인의 공안에 대한 법문을 함부로 천착을 하고 분석을 하고 그것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그런 짓을 허지말라 이것입니다. 그런짓을 함으로 해서 자기의 깨달음의 혜명을 거기에서 잃게 되게 되기 때문에 고인의 일언반구의 공안에 대해서 함부로 허지 말아라.
(第三要信古人垂慈留下一言半句如倚天長劍 等閑拶透端的會斷人命根)
네 번째는, 이런 공부는 다맛 자기가 짓지 아니할까 그것을 두려워해.
잠깐 동안이라도 한눈을 팔고 딴 디에 정신을 팔면은 바로 그것이 공부를 짓지 않는 것이여. 그래서 공부를 짓고 짓되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항상 화두에 대한 의단이 독로허도록 그것을 잘 잡두리해서 잠깐도 죽 끊어짐이 없도록, 그래서 생각생각이 정미롭게 그것을 참구를 해 나가라.
참구를 해나가되 이론적으로 따지거나 교리적으로 따지거나 철학적으로 따지거나 어떤 상식적으로 따져서 그것을 따져서 알라고 허는 것이 아니고, 다맛 의단이 독로허도록 알 수 없는 의단으로 그것을 잡두리를 해나가라.
그것에 대해서는 방금 조실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우리는 잘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 나가면 결정코 확철대오할 수 있는 그런 때가 오리라고 하는 것을 그것을 깊이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第四要信日用工夫但恐不做做之不己 念念精專決有透脫之期)
다섯 번째 믿음은, 생사는 끝이 없어. 생사는 끝이 없으되 끝이 없는 보통 조그마한 일이 아니다. 만약 결정적인 뜻, 결정지를 분내지 않, 분내서 그것을 확철대오 헌는 것을 기약허지 아니하면 영원히 삼도에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에 고통을 면치 못허리라고 허는 것을 깊이 믿어야 한다 이것입니다.
(第五要信生死無常不是小事 若不奮決定志以期獨脫 其三途苦趣曾無自免之方也)
이상 설한 다섯 가지는 산승이 더 이상 말씀을 드리지 아니해도 여기에 모이신 모든 도반들은 잘 인식을 허고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 송담선사 법문 679번.(『천목중봉화상광록 天目中峯和尙廣錄』 제2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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