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의 씨앗 如來種】

2018. 9. 2. 15:29카테고리 없음

[​범성함영凡聖含靈이 공아가共我家다]


​광명적조변하사光明寂照遍河沙요,
범성함영공아가凡聖含靈共我家다.

광명光明이 적적寂寂이 비추니 온 항하사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그 광명이 적寂, 고요히 비친데,
​범성함영凡聖含靈이 공아가共我家다,
범부 성현 일체 중생이 다 나의 집이더라. 바로 참 나의 면목面目이더라.

일념불생전체현一念不生全體現이요,
한 생, 한 생각 남이 없으면 전체에 드러나.
일념불생一念不生, 한생각 일어남이 없어.
일념불생하면 전체가 나타나, 전체현全體現이다.
부처님의 면목이 바로 드러난다 그말이여.

​육근六根이 자(재)동動하면 피운자(차)被雲遮여,
벌써 안이비설신의를 통해서 한 생각이 움직이며는 그 삼천대천세계가 환-히 비치던, 비쳤던 데에 거기에 벌써 구름이 가리워져서 그 광명을 가리게 된다.

이 한 생각을 단속하는 것이,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가 독로허도록 단속을 허며는 삼천대천세가 이 비로자나법신의 대 광명이 온 세계를 두루 비추는 것이 되는거고, 한 생각 단속을 못해가지고 육근을 통해서 동動하면 벌써 그 광명光明에 구름이 가리워져서 그 광명을 덮는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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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제버(번)뇌중증병斷除煩惱重增病이요,
그러면, 우리가 일어났다 꺼졌다 헌 그 끊임없이 퍼일어나는 그 버뇌(번뇌), 버뇌망상을 끊을랴고허면, 끊어서 없앨랴고 허면은 거듭 그 병통을 더 증가시키는 것이 된다.
더 버뇌를 치성하게 허는 것이 되고,

취향진여역시사趣向眞如亦是邪다.
진여를 향해서 나아갈랴고 마음을 먹으며는 또한 이것도 삿된 것이다.

버뇌! 그 버뇌 아까 다스리는 법을 말씀을 드렸지요?
버뇌는 끊을려고 허는 것이 아니고, 진여불성은 우리가 그놈을 찾을려고 허는 것이 아니여.

​버뇌는 끊을랴고 허지 말고 화두를 들고,
진여를 찾을랴고 허지말고 화두를 들어.


화두를 념념불망念念不忘으로 들어서 타성일편이 되아서 그놈을 타파하면, 거기에서 버뇌는 끊을랴고 안해도 제절로 거기에서 끊어져 뻐리고, 진여는 찾을랴고 하지 안해도 이... 본래면목本來面目 진여불성眞如佛性은 찰나간에 드러나 버린 것이다 그말이여.

수순세간무가애隨順世間無碍여,
세간世間에 수순隨順 헌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엄마는 엄마로서, 딸은 딸로서, 아들은 아들로서,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을 충실히 허면서 바로 그 가운데에서 기쁜일을 당해도 '이뭣고', 슬픈일을 당해도 '이뭣고', 속상하는 일을 당해도 '이뭣고', 그 당하는 일을 좋다고 그놈을 탐착을 하고 싫다고 해서 없앨려고 피할려고 허지말고 닥치는대로 자기의 자기로서 도리를 다하면서 그놈을 화두를 들고서 화두드는 마음으로 그놈을 척척척척척 해결을 해 나가라 그말이여.
그렇게 해서 걸림이 없게하라 그말이여.
버리고 취할 것이 없이 닥치는대로 자기의 입장에서 가장 적절하게 모든 일을 처리를 해 나가. 그럴랴며는 그놈을 싫어서 피하지도 말고, 좋아서 탐착하지도 마라.

(열반생사등공화涅槃生死等空花),
어떻게 허며는 버릴것도 없고 취할것이 없느냐!
화두를 들고 의단이 독로허도록 터억 해 나가는 길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걸림이 없이 되면 열반涅槃이다 생사生死다 하는것이 바로 허공에 꽃과같이 되아버린다 그말이여.
허공의 꽃이 무엇이던가! 본래 없는 것이거덩.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을 허실때에 중생을 제도허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 아니여. 중생에 생사다 열반이다 하는 그 소견, 두 가지 소견(二見)을 제도허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다 그거거든.

생사生死라고 해서 두려워하고 열반涅槃이라고 해서 그놈을 좋아라고 그놈을 쫓아가면 그러헌 자세로 나아가는 동안에는 영원히 생사는 끊어지지않고 영원히 열반은 얻어지지 않는것이여.
바로 생사다 열반이다고허는 두 가지 소견을 제도해 버리면 바로 그것이 생사해탈生死解脫이요 바로 그것이 적적열반寂寂涅槃에 개합이 되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366번. (장졸수재張拙秀才 오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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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번뇌가 여래의 씨앗]

於是維摩詰問文殊師利:「何等為如來種?」
그리하여 유마힐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무엇을 여래의 씨앗(如來種)이라고 합니까?”

文殊師利言:「有身為種,無明有愛為種,貪恚礙為種,四顛倒為種,五蓋為種,六入為種,七識處為種,八邪法為種,九惱處為種,十不善道為種。以要言之,六十二見及一切煩惱,皆是佛種。」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몸이 있음(有身)이 여래의 씨앗이며, 무명(無明)과 유애(有愛)가 씨앗이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씨앗이며, 4전도(四顚倒)와 5개(五蓋)가 씨앗이며, 6입(六入)이 씨앗이며, 7식처(七識處)가 씨앗이며, 8사법(八邪法)이 씨앗이며, 9뇌처(九惱處)가 씨앗이며, 10불선도(十不善道)가 씨앗이니, 요약하여 말하면 62견과 온갖 번뇌가 모두 부처의 씨앗입니다.

曰:「何謂也?」答曰:「若見無為入正位者,不能復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그것은 무슨 말입니까?”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만약 무위(無爲)를 보고 정위(正位)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다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譬如高原陸地,不生蓮華,卑濕淤泥乃生此華;
비유하면 고원의 육지에서는 연꽃이 생장하지 않지만, 낮고 습한 수렁이라야 이 연꽃이 생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如是見無為法入正位者,終不復能生於佛法;煩惱泥中,乃有眾生起佛法耳!
이와 같이 무위법을 보고 정위에 든 사람은 마침내 다시는 불법을 생장시킬 수 없으며, 번뇌의 수렁 속에서라야 중생이 있어 불법을 일으킬 수 있을 뿐입니다.

又如殖種於空,終不得生!糞壤之地,乃能滋茂。
또 마치 허공에 씨앗을 뿌리면 영원히 싹이 나지 못하고, 기름진 토양에서 비로소 무성하게 생장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如是入無為正位者,不生佛法;起於我見如須彌山,猶能發于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生佛法矣!
이와 같이 무위의 정위에 들어간 사람은 불법을 생장시키지 않습니다. 아견(我見)을 수미산만큼이나 높게 일으키면 오히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켜 불법을 생장시킬 수 있습니다.

是故當知,一切煩惱,為如來種。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온갖 번뇌가 여래의 씨앗입니다.

譬如不下巨海,不能得無價寶珠。如是不入煩惱大海,則不能得一切智寶。」
비유하면 거대한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값없는 보배구슬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번뇌의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일체지의 보배구슬을 얻을 수 없습니다.

爾時大迦葉歎言:「善哉,善哉!文殊師利!快說此語。誠如所言,塵勞之疇為如來種;
그때에 대가섭이 감탄하여 말하였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문수사리님. 통쾌하게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실로 말씀하신 대로, 번뇌의 무리가 여래의 씨앗입니다.

- <유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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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圓俊長老法華後跋]

夫淸鏡濁金。元非異物。渾波湛水。同出一源。其本同而末異者。在乎磨與不磨動與不動耳。
凡聖愚不肖 性亦如是但以迷悟爲別。
孰云愚智有種。以至愚望大覺。勢絕霄壤。及乎一念回機。便同本覺。

………
[누가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에 종자(種)가 있다고 말하나]
- 원준 장로가 베낀 법화참문 뒤에 쓴 글.-

대저 맑은 거울(淸鏡)과 흐린 쇠(濁金)는 원래(元來)로 다른 물건이 아니다.
흐린 파도(渾波)와 맑고 고요한 물(湛水)은 같은 한 근원(一源)에서 나왔다.
그 근본(本)이 같으면서도 그 끝(末)이 다른것은, 연마하느냐(磨) 연마하지 않느냐(不磨), 동하느냐(動) 동하지 않느냐(不動)에 있을 뿐이다.
무릇 성스러움(聖)과 어리석어 현명하지 못함(愚不肖)의 성품도 또한 이와 같아서 다못 미혹하느냐(迷) 깨닫느냐(悟) 로써 그 차별(別)를 삼을 뿐이다.

​누가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에 종자(種)가 있다고 말하는가.
어리석음(愚)이 큰 깨달음(大覺)에 도달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형세가 하늘과 땅으로 (크게 멀어져)끊어져 있는것이지, ​한 생각 기틀을 돌이켜버림에 있어서는 문득 본각本覺과 한가지니라.(同)

- 『사명당대사집』 四溟堂大師集卷之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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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善護念、無住。
提得起、放得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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