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회機會를 감사합니다.】

2018. 1. 26. 20:52카테고리 없음


【무상無常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機會、
참나를 찾을 수 있는 도량道場】


편안하게 모두 앉으십시오.

오늘 전강田岡 영신永信 대종사大宗師에 43 주기周忌 추모재追慕齋를 맞이해서,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사미沙彌 행자行者 청신사淸信士 청신녀淸信女 여러 도반道伴들이 참여參與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전강 영신田岡 永信 대종사大宗師는 16세에 출가出家하셨고 23세에 견성見性하셨으며, 당시 육대六大 선지식善知識과 법거량法擧揚을 해서 모두 인가印可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滿空 대선사大禪師의 법맥法脈을 이으셨습니다.

33세에 젊은 연세로 법보종찰法寶宗刹 양산 통도사通度寺 보광선원普光禪院에 조실祖室로 추대推戴되셨으며, 그 뒤에 여러 선원禪院의 조실을 두루 역림歷任하시고 인천 용화사龍華寺 법보선원法寶禪院에서 77세를 일기一期로 열반涅槃에 드셨습니다.

후학後學을 위한 700 여개의 육성법문肉聲法門을, 법문 테이프를 남겨 주셨습니다.

과거에 부처님 이후 가섭존자迦葉尊者로 부터서 달마達磨스님, 그 뒤로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대대代代로 잘 법맥法脈을 이어 오셨지마는, 과거에는 녹음 법문이라고하는 것이 없어서 문자文字로 법어法語가 전해 내려오기는 허지마는 육성肉聲으로 과거 조사들의 법문을 우리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조실祖室스님은 상법 수좌首座가 정성精誠을 다해서 녹음을 해 놓았기 때문에 방금 우리가 들은바와 같이 조실스님의 육성 법문을 우리는 들을 수가 있습니다.
역대歷代 선지식善知識이 계셨기 때문에 조실祖室스님이 그 법을 이어받을 수가 있었으나, 다행히 우리는 조실스님이 남겨놓으신 육성 녹음 테이프를 통해서 생생하게 조실스님의 육성 법문을 들으면서 정진精進을 헐 수 있게 되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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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 법문法門에 의해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간에 항상 화두話頭를 들고 ‘이 몸띵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 무엇고?’. 이렇게 일초 일초를 허수이 지내지 않고 화두를 들고 자기의 본성本性을 찾는 공부를 게을리 아니헌다면, 우리가 불법佛法을 믿는 본의本意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내 자신이 내 몸 안에 우리의 자성自性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데, 그러면서 어 자기 안에 불성佛性이 있는줄을 모르고 산다면 불법을 믿는다고 헐 것도 없고, 다행히 우리는 비록 말세末世가 되았다 하더라도 신심信心으로 불법佛法을 믿고, 또 이 자리에 여러 사부대중이 모여서 조실스님의 법문을 같이 듣게 되며, 같이 들으면서 참 나를 찾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아서 얼마나 다행한 가를 알수가 없습니다.

이자리에 참석해주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
우리에 자성自性은,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 가지고 있는 자성과 조끔도 차이가 없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말세末世가 되도록 우리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한 것은, 부처님 탓이 아니고 역대조사의 탓이 아니고 나 자신이 열심히 나 자신을 찾는 공부를 게을리 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비록 이 말세末世가 되았다 하더라도 정법正法을 믿고 참 나를 찾는 이 용화사 법보선원을 위시爲始해서 전국에 여러 선원禪院에서 사부대중이 열심히 정진精進을 헌다면 말세末世가 되았다고 한탄恨歎할 것이 없고, 말세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열심히 무상無常을 느끼고 열심히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정진精進을 헌다면 말세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시간은 일초 일초 쉼이 없이 지내가고 있습니다.
그 무상無常한 속에서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잎이 피고, 가을에는 단풍이 지고 오곡백과五穀百果가 무르익으며,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그렇지마는,
그 계절에는 춘하추동春夏秋冬 우리 사람에게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지마는, 한 쪽으로 보면은 무상無常한 것이지마는 그 무상한 속에서 정법正法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를 허면 지금 말법末法이라고 조끔도 한탄恨歎할 것이 없고, 비록 부처님 열반涅槃하신 뒤에 삼철년이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활구참선活句叅禪에 의해서 열심히 정진을 헌다면 지금이 바로 부처님이 살아계시고 역대조사歷代祖師가 살아계신 정법시대正法時代가 되는 것입니다.

말세末世가 되았다고 해서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각자各自에 자성自性 부처님이 변變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시대가 철년 이철년이 지내간다 하더라도 정법을 믿고 열심히 활구참선活句叅禪을 헌다면 그때가 바로 정법시대正法時代가 되는 것입니다.

말세가 되아서 한탄할 겨를도 없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화두話頭를 놓치지 않고 챙기면서 ‘이 뭣고?’. 기쁠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속상하는 속에 빠져있지 말고 그 찰라를 발판으로 해서 자기를 찾는 ‘이뭣고’로 돌아온다면, 우리 앞에 진행進行되고 있는 춘하추동春夏秋冬이나, 우리가 전후좌우前後左右 이웃집에서 볼 수 있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현장現場이 바로 우리가 나 자신을 깨닫는 정법도량正法道場이 되는 것입니다.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늙어서 병들어 죽어가는 것을 면免할 수가 없습니다마는,

<정법을 믿고 올바르게 참나를 찾는 수행을 허는 사람은, 말세가 오히려 무상無常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機會가 많고 참나를 찾을 수 있는 도량道場이, 이보다 더 좋은 도량道場이 없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비구 비구니 사미 행자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
오늘 조실스님 43주기周忌 추모재追慕齋를 맞이해서 이 법당法堂에서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기회機會를 주셔서 대단히 감사感謝합니다.

열심히 정진을 해서 여러분도 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자성自性의 부처님을 깨닫게 되시기를 간절懇切히 바라면서 인사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성불成佛하십시다!

- 송담선사 ‘전강선사 43주기 추모재’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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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병生死病】

그 숭악한 병病에 들었으니 죽는 병과, 나는 병과 죽는 병(生死病)이, 죽으면 나고, 나면 죽고 허는 놈의 병이 얼매나 큰 병인가?
우리 중생衆生은 나서 살다가 죽으면 지옥 가, 지옥고 받는 것이 중생의 그만 그, 응, 그 악독한 그 숭악한 죄보, 과, 죄 과보, 고苦 뿐이여.
각覺 수용受容을 못하니까. 깨달지를 못했으니까, 그저 살라니 죽을 지경이요. 다 살다가 병들어 죽을라니 죽을 지경이요. 죽을 것 밖에는 없어.

그놈의 것 한 번 내가 죽어보니, 내 죽었다가 살아났은게 작년에.
작, 작년인가? 재작년이냐? 세상에 못할 건 그건디...그놈을 한번 한 시간이나 내가 참았구만. 목숨 끊어질 때. 또 안 떨어지드구만 목숨이.
가도 않고는, 여 숨은 왔다 갔다, ‘허으허 허으허’ 여기서 ‘허으허 허으’ 험서, 그 정신은 말짱한디 아! 이놈의 숨이 떨어질 딸끄닥 떨어질락 햐. 그 나중에 떨어져 죽어 가지고 내가, 나 앉어서 들어, 거 죽는 것을 봤다 그 말이여. 아 거 이상하드구만.


<‘내가 어쩠든지, 내가 어쩠든지 이 숨이 떨어지지 않고 다시 내가 살아나면 참- 내가 정진 한번 하리라. 용맹정진을, 정진만 내가 하리라.’ 그 생각 뿐이여.>


아! 그 생각 뿐이드니, 아 차츰, 아 도로 그만 어떻게 명命이 붙었든가? 내가 살아 난 일이 있다 그 말이여. 그때 다 봤지 뭐.

- 전강선사 법문 16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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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성至誠시럽게 권勸헌다.】

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다
소식기시재消息幾時在냐
명일추운모明日秋雲暮요
강상백운비江上白雲飛니라.


금조今朝에 상별相別이다.
언제든지 금조今朝제 잉?
이 몸 받아가지고 있다가 그 죽는 날이 금조今朝여.
오늘 아침이제 어디 무슨 뭐, 하루 살다가 그날 죽었다고 그날 아침을 금조今朝라고 한 것 아니여.
금조今朝에 상별相別이다. 이 몸 받아가지고는 죽는 날 아침에 있단 말이여.
저녁이든지 아침이든지 낮이든지 또 그날 그날 그날자를 가르킨 것이여.
살다가 금조今朝에 그만 상별相別을 해버리는구나.
내 몸띵이를 내가 이별허기도 하고 내 몸띵이 밖의 부부지간도 이별되고 자석도 이별되고 손자도 이별되고 며느리 그저 일가 친척 다 할 것 없이 이별된다. 이별뿐이여.
만날 하는소리 이별. 금조 이별 이거 밲에는 남아있는 게 없다. 인생살이가 그뿐이여.
벌써 이 몸 받아 남에 이별밖에없어.

소식기시문消息幾時聞이냐.
내 낯반대기도 고 낯반대기 오늘 아침에 가지고 이별한 낯반대기 다시는 보지 못혀. 영별永別이여.
아 고 낯반대기 고 콧배기 고대로 지나고 다시 만나?
똑 고대로 고고 콧배기 고 낯반대기 고 쎗바닥 고 그 낯짝 지니고 나올 것인가?
고놈 한 번 가졌다가 내버린 뒤에는 다시는 없어.
재상봉이, 두번다 상봉相逢 못햐. 어디가 있을 것인가.
그러면 낯 내 낯바닥만 그런가? 내 부부지간도 그렇고 내 자식도 손자도 일가 친척도 다 그렇지?
하나도 다시 만나 보지 못혀. 이런 놈의 영별이여.

소식기시재消息幾時在냐.
다시 어디 가서 어떻게 되어있는지 소식을 언제 어디서 만날 것이냐. 어디서 한 번 있을 것이냐, 소식이.
그 얼굴도 아니고 그 낯반대기도 콧구녁도 아니고 손도 발도 뭐 어디 가서 어디 만나볼 것이냐.
영별永別이여. 모도 영별永別이여.

금일추운모今日秋雲暮다.
이와같이 늦는 추운 가을 구름은 저물어 부렀다. 가을날은 이렇게 저물어부러. 이렇게 가는 판, 가는 이별 장면 밲에는 없다 그 말이여.
척 다 가버리고 추, 가을날이 저물어버렸구나.
가을은 모도 쓰러지는 단풍 떨어지는 단풍 모도가 다 인자참 절실해버린 단풍 그놈 그놈이 부닥쳐와.
우리 인생살이 다 해버린걸 가을이라 햐.
가을이 이렇게 버쩍 닥쳐왔구나. 인생살이 참 험악하다.

백운白雲은 강상비江上飛니라.
백운白雲은 강상江上에서 나느니라.
좋다! 백운강상비白雲江上飛가. 그놈은 그대로 두지.

우리가 백운강상비白雲江上飛 도리를 확철대오해서 깨달라 증證허면은, 그놈이 바로 우리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요, 이무애理無碍요 사무애事無碍요 사사무애事事無碍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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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처럼 늙기를 기대리지 말라 그말이여.
팔십이 되도록 까장 기다리지 말라 그말이여.
여그 팔십된 이 어른도 한 분 또 있구만?
세상에 조끔 젊었을 때에 애껴라.
좀 광음光陰을 애껴.
그 젊을 때에 그 무신 잠 온다고 다 자 주고, 그 술 먹고 싶다고 가서 술 한잔썩 먹고, 그 지랄허고 싶으다고 지랄 말고 한 번 잘해봐라.
내가 지성시럽게 권勸헌다.

득력得力도 못허고 공부 문에 들어와서 차일此日 피일彼日허다가 늙어버렸구나.
노인老人은 불수不修요 파거破車는 불행不行이란 말씀, 여지 없는 말씀이다.
좀 잘 듣고 좀 잘 좀 모도 좀, 이렇게 이 만헌 인연이, 이 이 앉어서 도 닦을 만한 인연이, 손발을 놀리고 가만히 앉어서 공부할만한 인연이, 쪼금만헌 일을 시켜도 고 일도 모도 안헐라고허는 고 인연이, 이런 때가 있겠는가?

쟁개양안睜開兩眼해라.
눈을 딱 떠라 두 눈을 딱 떠라 그 감지 마라.

척! 권두拳頭해라.
권두를 쥐어라. 이놈을 쥐라고 했어. 딱 쥐어. 앞에다 놔. 용맹스런 거동이지. 권두를 딱해라.

수기척량竪起脊梁해라.
이척량을 세워라. 이걸 세워. 이러지 마라.
여여 그 편이 나왔어. 수기척량해라.
척량을 세워라.

이전지시(의전제기依前提起)해라.
화두는 똑 고대로 잡드리를 해라.
‘이뭣꼬?’ 아! 당장 ‘뭣꼬’ 헌 놈이 있지않나!
‘이 뭣꼬?’, ‘뭣꼬?’ ‘이 뭣꼬?’, ‘이 뭣고?’헌 ‘이’그놈이 의심이여. 이 ‘이’ 고것이 의심이라. ‘이’ 헌 놈이 뭐냔 말이여. 그 거기서 당장에 의심을 짊어지고 들어가.

‘이 뭣꼬?’ 끄집어 올라고 말고.
‘밥 먹고 옷 입고 가고 오는 이놈이 뭣인고?’ 그러지 말고, 당장 ‘시 심마’ ‘이 뭣꼬?’ 글않은가?
무척 간단하고 무척 그자리 거그서 ‘이뭣꼬’를 찾는다. 원 세상에 ‘이뭣꼬’헌 그놈이 참으로 신령스럽고 영특하고 얼마나 거그서 그대로 즉 현, 그대로 이뭣꼬인디, 아 그놈의 물건을 모르다니.

그놈이 이뭣꼬만 하나?
인자 그놈이 밥 먹자 옷 입자 가자 오자 그저 이 원수 그저 일체회고 그저 뭐 천하만상을 그놈이 다 만들어내고 다 그려내고 하늘 땅 그저 우주 만물에 그저 일체의 모양을 그놈이 다 새겨내고 만들어내고 헌 놈이란 말이여. 허! 그것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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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이우는함월주海底泥牛啣月走허고
암전석호는포아면巖前石虎抱兒眠이니라.

해저이우海底泥牛는 함월주啣月走다.
바다밑에 달 달을 물고 달아나, 바다밑에 이우는 바다밑에 진흙소는 달을 물고 달아난다.
아! 이 멍청이들아 그걸 못 알아 듣나? 응?
바다밑에 진흙소가 달을 물고 달아난다는 걸 못 알아 들어?
거그서 찾기 따문에 죽고. 왜 찾아!
기가 맥혀서. 내가 설허다가도 웃을 일이지.

암전석호巖前石虎 포아면抱兒眠이다.
바위 앞에 돌 호랭이는 아이를 아듬고 존다.
아 이런놈의 꼴좀 보소! ‘아이 아듬고 존다’ 왜 찾아!
아 돌앞에 ‘바위 앞에 돌호랭이가 아이를 안고 존다’ 헌놈이 심마오?
그것 참 나.
원 중생衆生이라고 중생衆生이라고 해도 중생衆生이란 것이 원 이렇게도 미迷해버려서, 응?
왜 제 낯반대기를 모르고 미迷해버릴까.

——

철사찬입금강안鐵蛇鑽入金剛眼이여
곤륜기상노사견이니라.

철사찬입금강안崑崙騎象鷺鷥牽이다.
철사는 쐬, 쐬 뱀이는 금강눈을 뚫고 들어간다.
그 쐬 뱀 이란놈이 어디 있으며 쐬 뱀 그놈이 금강 눈을 뚫고 들어간 놈이 어느 곳에 있는가 그것이.
그 고봉스님이 그 그렇게 모도 설 했는디 그 거짓말인가? 그것 거짓말이라니 어디 거짓말이 있을수가 있나.

해오란, 해오래비란 놈이 큰 응? 곤륜산을, 천하에 제일 큰 곤륜산을 해오라비란 놈이 탔는디, 응 쾌코리란 놈이 큰 곤륜산을 탔는디 해오라비란 놈이 마부를 오가?
거 어디 있는 말이여?
그 가운데에 일구가 있는디, 능히 죽이기도 하고 능히 살리기도하고 능히 뺏기도 허고 주기도 하고 헌 놈이 있으니 그놈 찾아내 봐라.
고놈을 찾아내면은 너 일생 참학사필이라고, 일 마쳤다고 허락해 주마.
세상에 그렇게 해놨지.

흠.

수기척량竪起脊梁하고, 척량脊梁을 추켜들고, 이뭣꼬를 그렇게 다뤄라. ‘이뭣꼬?’ ‘이뭣꼬?’ ‘이뭣꼬?’ ‘뭐꼬?’ ‘이뭣꼬?’ ‘이뭣꼬?’ 또 ‘이뭣꼬?’ ‘이뭣꼬’만 해보아라 그저.

필유입처必有入處가, 반다시 거그서 한- 번 뛰고 일어나서 춤출 때가 있을터니깐 해봐라.

(주장 자로 법상을 치시고 하좌하심)

- 전강선사 법문 24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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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常住而不滅】


今亦幸得人身 定是佛後末世 嗚呼 痛哉、是誰過歟。
이제 다행히 사람 몸을 얻었으니 참 다행한 일이나,
이 정히 부처님 가신 뒤 이렇게 말세(에사 사람몸 하나 이것 얻었으)니 오호! 가슴 쓰리고 아프구나.
이것이 뉘 허물인가!

雖然汝能反省 割愛出家 受持應器 着大法服 履出塵之逕路 學無漏之妙法、 如龍得水 似虎靠山 其殊妙之理 不可勝言。
그렇기는 그러나, 너는 반성反省하여 다시 살펴서 애집愛執을 베어 버리고 출가出家하야 바릿대를 받아 지니고 도복道服을 입고서 티끌을 벗어나는 경절문徑截門의 길을 밟아 샘이 없는 묘법妙法을 배우면, 용이 물을 얻은거와 같고 호랑이가 산을 의지한거와 같아서 그 (생사없는 법을 배우는) 수묘殊妙한 이치는 말로써 가히 할 수 없느니라.

人有古今 法無遐邇 人有愚智 道無盛衰、雖在佛時 不順佛敎則何益 縱値末世奉行佛敎則何傷。
사람(人)은 고인古人도 있고 금인今人도 있다마는 법法이 무슨 멀고 가까움이 있으며, 사람은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이 있다마는 도道는 무슨 성盛하고 쇠衰함이 있겠는가.
비록 부처님 때에 있더라도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으며, 설령 말세를 만났더라도 부처님 가르침을 봉행奉行해 나아간다면 무슨 해로움이 있겠느냐.

故 世尊云 我如良醫知病設藥、服與不服 非醫咎也。又如善噵 噵人善道、聞而不行 非噵過也。
고故로 세존이 이르시되, 나는 어진 의원과 같아서 (生死病)병을 알아 약藥을 설設해 주건만 먹고 먹지 않는것은 의원의 허물이 아니다.
또 좋은 길잡이와 같아서 사람을 선도善道로 이끌어도 듣고서 행치 않는것은 길잡이의 허물이 아니니라.

自利利人 法皆具足、若我久住 更無所益。
스스로 이롭게하고 남을 이롭게함은 법이 다 구족具足해 있으니, 만약 내가 오래 머물러 있는다 하더라도 다시 이익됨이 없느니라.

​​​​​​自今而後 我諸弟子 ​展轉行之 則如來法身 常住而不滅也。
‘지금으로부터서 이후로 내 모든 제자들이 차례로 이어서 이를 행해나간다면 여래법신如來法身이 상주常住해서 멸滅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자경서』 自警序 野雲述




*기회機會 : 인因과 연緣이 만나는 기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