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6. 10:45ㆍ카테고리 없음
共坐同行世莫知
幾人當面便逢伊
俯仰視聽曾不昧
何須向外問渠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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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會】
공좌동행세막지共坐同行世莫知라.
함께 앉었고 또 같이 댕기고 그러면서도 세상 사람은 알 수, 아지를 못하는구나, 아는 사람이 없구나.
기인당면변봉이幾人當面便逢伊요,
몇 사람이나 항상 같이 보고 같이 앉고 같이 댕기고 허면서 항상 얼굴을 같이 맞대면서 몇 사람이나 그를 만났느냐 그거거든.
부앙시청증불매俯仰視聽曾不昧여.
얼굴을 쳐들고도 얼굴을 숙이고도, 항상 보고 들으면서 잠깐 동안도 매昧하지를 안해여.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는데 어째서 밖,
하수향외문거귀何須向外問渠歸고,
어찌 밖을 향해서 그를 물으면서 돌아 댕기냐 이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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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경진년 삼월 스무 이튿날 인제 용화선원 봉불奉佛 개원식開院式 날입니다.
우리는 과거 무량겁 전에 다 한자리에서 같이 공부허고 같이 살던 그러헌 도반道伴들이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을 헤어져 가지고, 그 동안에 수없이 또 만났다 헤어졌다 했겠지마는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형제 자매 도반들이 다시 이 자리에 또 모였습니다.
‘항상 얼굴을 맞대면서도 그를 만나는 사람이 몇사람이나 되느냐.’
이 ‘만남’이라고 하는 단어가 나왔습니다마는,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탄생하신 것도 중생衆生을 만나기 위해서 오신 것이고, 달마대사가 일 백 오십 세에 중국中國에 오신 것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오신것입니다.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오셔서 ‘불입문자不立文字 견성성불見性成佛이다’, ‘즉(직)지인심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이다’고 외치신 것도, 달마達磨스님 오시기 전에 이미 경전經典도 중국으로 건너왔고 불상佛像과 절도 다 건너와서 불법佛法이 융성했지마는, 부처님은 ‘불입문자不立文字 즉(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외치셨는데, 불법佛法을 경전을 연구한 것으로 착각을하고 모두 경전에 집착하고 있으니까, 경전經典이라 하는 것은 달 가리키는 손가락인데 달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고 진정 하늘에 있는 달을 보지 아니허니까, 허공에 있는 달이라고 했지마는 ‘자기가 자기의 참 면목面目을 보는 거’ 그것이 바로 불법佛法일진데는, 자기를 만나게 하는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우리에게 일러 주시기 위해서 중국에 오셨드라 그거거든.
그래서 ‘견성見性’이라 한 말도, ‘자기自己의 자성自性을 본다’ ‘자기自己의 자성自性과의 만남’이란 말이고, 자성불自性佛, 자기자성自己自性이라 하는 것이 바로 자성불自性佛인데, 이 지地, 수水, 화火, 풍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이 똥주머니 오줌 주머니 속에 법신불法身佛이 계시니 어찌 자기 이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법신불을 친견親見허지 아니하고 밖에서 불법佛法을 찾을까 보냐.
‘자기自己의 법신불法身佛을 만나게 허는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 출현出現하신 본 뜻이고,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고, 오늘 이 자리에 인제 용화선원을 창건을 해서 봉불 점안 그리고 개원식을 하는 본 뜻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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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合】
불佛, 법法, 승僧 삼보三寶를 얘기 하는데, 우리 불법에 교주이신 석가모니 부처님, 그리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팔만 사천 법문을 그것을 경전을 법이라 일컫는데, 마지막에 승僧이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범어로는 ‘상카’라고 그러는데 붓다, 담마, 상카라 그러는데 그 상카란 말은 화합和合이라는 뜻입니다.
승려들이 모여서 사방에서 모였으니까 ‘서로 화합해서 지내라’ 그런 뜻에서 ‘화합승和合僧’이라고 한다고 일반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마는, 물론 그런 뜻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 화합和合이란 말은,
《부처님(佛)과 법(法)과 자기 자신(自己)이 화합和合된 존재다. 부처님과 법이 화합된 것이 자기한테 있다》
그래서 스님을 ‘승가’라 그러고 ‘상카’라고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자기가 한 생각만 바로 돌이키면은, 거기에서 부처님도 친견親見하고 법法도 깨닫고 자기自己가 바로 부처님이 되는 것이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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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구, 비구니, 사미, 사미니, 청신사, 청신녀 우리가 모두가 다 부처님의 제자고 부처님의 대를 이을 그러헌 소중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고 부처님의 진정한 아들이 되고 진정한 딸이 될라면,
《‘자기自己를 통해서 부처님을 친견親見해야 하는 것’입니다.》
밖에 있는 부처님 우주 법계에도 가뜩차 계시고 절절이 부처님을 봉안했고 절절이 경전도 많이 봉안하고 있지만, 궁극에 가서 참다운 부처님은 ‘자기自己속에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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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機會】
夜夜抱佛眠이요
朝朝還共起니라
欲識佛去處인댄
只這語聲是니라
이 게송은 오십육억 칠천만년 후에 부처님 석가모니 부처님 다음 부처님으로 사바세계에 탄생하실 미륵 부처님이, 잠시 미륵보살로 보살의 몸으로 화현해서 나타나신 포대화상이라고 허는 큰 도인이 읊으신 게송입니다.
(夜夜抱佛眠이요, 朝朝還共起니라)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마다 부처를 안고 일어난다.
욕식불거처欲識佛去處인댄,
그 밤마다 부처님을 안고 자고 아침마다 같이 일어났, 그 부처님 간 곳을 알고자 하느냐.
지자어성시只這語聲是다.
바로 이 말하는 이 말소리 바로 이 놈이 그 부처님이다.
이 말씀도 아까 산승이 말씀하신, 말씀한 자기속에 있는 부처님을 단적으로 표현한 게송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팔만사천 법문이 올바르게 보고 올바르게 그 뜻을, 뜻을 안다면 한마디도 이 도리를 벗어나는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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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는 인천 서울 수원 대전 남원 전주 부산 방방 곡곡 전국에서 모다 도반들과 형제자매들이 모이셨습니다.
절을 새로 지었으니까 절 구경을 허러 오셨습니까.
부처님 불상을 새로 모셨으니까 부처님을 어떻게 조성을 했는가 보기 위해서 오셨습니까.
물이 좋고 산이 좋으니까 그 경치를 구경헐라고 오셨습니까.
반드시 어떤 ‘만남’을 위해서 오셨을 것입니다.
산승도 만나보고 여러 스님네도 만나보고 여러 도반들도 만나보고 만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헌 만남이 잠시 얼굴만 쳐다보고 웃고 인사하고 끝난다면 너무나 허무하고 보잘 것 없는 만남이 될 것입니다.
이 법회가 끝나면은 여러분에게 금박으로 된 달마상達磨像을 노놔 드리게 될것입니다.
그것을 몸에 지니시면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차가 박살이 나더라도 다치지 않는다. 도둑을 맞어도 그것을 찾게 될 것이다. 차를 어떤 도둑놈이 훔쳐가더라도 금방 소식이 와서 그 차를 찾게 된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오늘 노놔드리는 달마상이 그러헌 효용으로만 쓰여진다면은 진정한 그 달마스님을 주고 받는 본 뜻이 아닐 것입니다.
달마達磨스님이 주장하신 ‘즉(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
바로 자기가 자기를 바로 깨달라서 자기가 성불하는 그러헌 법을 외치신 달마상達磨像을 산승이 서툴지마는 그것을 그려가지고 금박으로 찍어서 여러분에게 노놔드린 것은, <항상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어디서 무엇을 허시건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서 항상 ‘그 달마상達磨像을 통해서 자기自己를, 참 나를 만나도록’ 그것을 여러분에게 일깨워 드리기 위해서 이 달마상을 드리는 것입니다.>
잠시도 여윌라야 여윌수 없는 참나가 있건만 자기의 본래 면목이 있건만 눈으로 보다가 보이는 그 경계에 홀려 나가고 무슨 소리를 들으면 바로 듣는 찰라에 자기로 돌아와야 할텐데 듣는 그 소리로 쫒아 나가고.
그래서 항상 우리는 자기自己를 만날 수 있는 기회機會가 언제나 주어져 있건만 그 기회機會를 놓쳐버리고 무량겁을 돌고 돌다가 오늘에 까지 온 것입니다.
물론 이 자리에는 자기의 면목面目을 확철히 깨달은 그러헌 도반들이 꽤 많이 계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정말 우리는 불자佛子로서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일(此事)’ 밖에 따로 없는 것이고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청춘靑春과 인생人生을 다 포기한, 포기하고 머리를 깎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바쁜 시간에 어려운 시간에 수 백리를 기탄忌憚하시고 여기까지 모이신 것도 결국은 이러헌 큰 일을 위해서 이 이곳에 오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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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의 시詩에,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이러헌 시詩가 있습니다마는,
지금 이 인제용화선원 주변에 많은 진달래도 곱게 곱게 피어 있습니다.
진달래를 따서 여러분에게 드려봤자 가다가 시들어 버릴 것이고, 달마상을 노놔 드렸어도 그것이 영원히 갈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누구에게 주어질 수도 있고 잃어 버릴수도 있고 또는 불에 타서 없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 진정코 이 산승이 여러분에게 오늘 이 만남의 기념으로 여러분에게 선사하고자 헌 것은,
여러분은 항상 어데서나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괴롭고 슬플 때를 당할 때, 분하고 성이 날 때,
그럴 때 ‘자기 이름을 자기가 한 번 불러 보세요.’
‘아무개야!’
‘아무개야!’ 턱- 불르고서 자기가 대답을 해.
‘예!’
‘무슨 물견인고?’ ‘이 뭣고?’
이렇게 한 번씩 챙겨 보시라 그말이여.
- 평상시에 선방에 앉아서 자기가 큰 소리로 외치고 그건 그건 모지랜 행동이고 - 혼자 자기집에 있을 때나 산책을 할 때나 산에 가서나 진정 인생人生을 살아가는데 어려운 일을 당하면 항상 자기가 자기를 불러.
‘과연 이 니가 누구냐!’ ‘이뭣고’ 한 번씩 생각해 보시면, 외로움도 괴로움도 억울함도 분함도 슬픔도 간 곳이 없고 대의단大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때마다 우리는 여러분은 자기自己를 만날 수 있는 기회機會를 맞이허게 될 것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641번.(인제 용화선원 개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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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내꼿>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말업시 고히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약산藥山
진달내꼿
아름따다 가실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거름거름
노힌그꼿츨
삽분히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죽어도아니 눈물흘리우리다
- 김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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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수업서요> 不會
바람도업는공중에 垂直의波紋을내이며
고요히떠러지는 오동닢은 누구의 발자최임닛가
지리한장마끗헤 서풍에몰녀가는 무서은검은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보이는 푸른하늘은 누구의얼골임닛가
꼿도업는 깁흔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처서 옛 塔위의 고요한하늘을 슬치는 알 수 없는 향긔는 누구의입김임닛가
근원은 알지도못할곳에서나서
돌뿌리를 울니고 가늘게흐르는 적은시내는
구븨구븨 누구의노래임닛가
련꼿가튼발꿈치로 갓이업는바다를밟고 옥가튼손으로 끝업는하늘을만지면서 떠러지는날을 곱게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詩임닛가
타고남은재가 다시기름이됨니다 그칠줄을모르고타는 나의가슴은 누구의밤을지키는 약한등불임닛가
- 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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