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친 버드나무][천국의 빛]

2017. 11. 4. 14:08카테고리 없음

[1882년 7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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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언급한 가지 친 늙은 버드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내가 그린 수채화 가운데 단연 최고란다.
수수한 풍경을 담은 그림이야. 죽은 커다란 나무 뒤로 개구리밥으로 뒤덮인 연못이 있고, 철로가 교차하는 라인 철도 회사의 창고가 보이지. 더 멀리 연기가 피어오르는 검은 건물들과 푸른 풀밭, 잿길이 있고, 구름들이 앞 다투어 달음질치는 하늘도 보여. 회색 구름들은 이따금 가장자리가 하얗게 빛나며 짙푸른 하늘 한 귀퉁이를 쏜살같이 지나간단다. 작업복 차림에 손에는 붉은 삼각기를 든 건널목지기가 이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은 정말이지 서글픈 날씨군’이라고 혼자 중얼거린다고 상상해봐. 난 바로 이런 느낌을 그림에 담고 싶었단다.

지금 네게 보여주려는 데생들에 대해서는 한 가지 생각뿐이란다. 내가 같은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제대로 발전하고 있음을 네가 이 그림을 보면서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야. 상업적 가치에 대해서는 한 가지 사실만 말할 수 있을 뿐이지. 그것을 다른 그림들처럼 정해진 경로대로 팔 수 없다면 몹시 의아해 할 거라고.
당장 팔릴지 더 기다려야 할지는 네게 맡기겠다.

성실하고 끈질긴 작업만이 이 모두가 헛되지 않기 위한 확실한 방법이겠지.

자연에 대한 느낌과 사랑은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에겐 조만간 반향을 불러일으키고야 말 거야. 자연에 완전히 몰입해서 자신의 모든 지성을 동원해 그 느낌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작품 속에 표현하는 것이 화가의 의무겠지. 상업적인 판매를 목적으로 일하는 건 그리 올바른 방법이 아닐 뿐더러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우롱하는 짓이 될 거야.

내가 아는 이곳 화가들 중에는 수채화와 채색화를 그리는 데 온 힘을 바치고서도 출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 이런 모습을 목격할 때면 “여보게, 잘못은 자네 데생에 있어”라고 가끔 생각하지. 그러므로 내 경우에 곧바로 수채화나 유화를 그리지 않았던 걸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단다. 분발하면 뒤늦은 출발을 틀림없이 만화할 수 있을거야. 그 날이 오면 거침없는 손으로 데생을 하고 원근을 표현하게 될 거다.

너라면 이런 나를 완고한 인간이라 여기지 않겠지. 하지만 이곳 화가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 “자넨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해야 돼”라고 그들은 말하지. 자신들이 바라는 대로 내가 당장 그렇게 하지 않거나 반론을 제기하면 그들은 묻고 따지는 거야. “그러니까 자네가 나보다 더 잘 안단 말이지?”라고.
5분 뒤면 양편 모두 진퇴양난으로 팽팽히 맞서게 되는 수도 있지. 이 경우 최상의 결말은 양편이 평정을 되찾아 입을 다물고 사과의 말이 나오기 무섭게 재빨리 물러서는 거야. 나라면 이렇게 말하겠어. “저런, 화가들은 가족과 비슷하군”이라고. 이해가 상충되는 사람들의 끔찍한 결합이거든. 각자의 의견이 다른데 단지 몇 명만, 그것도 다른 구성원을 괴롭히기 위해 편리하다고 느낄 때에만 생각이 일치한단다. 아우야, 내 생각엔 ‘가족’이라는 말의 정의가 늘 타당성을 지니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 평화가 우리 가족 사이에 언제까지나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해보지만 말이야.

대충 이것이 가지 친 버드나무가 전해주는 느낌이야. 하지만 이 수채화에는 검정색이 변이된 색조 밖에는 사용되지 않았어. 스케치에서 가장 검게 묘사된 부분이 수채화 속에서 가장 위력적인 모습을 드러낸단다. 짙은 녹색, 갈색, 회색의 색조로 말이지.

그럼 잘 지내거라. 내게서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순과 온갖 악의를 들추어 내며 의심하는 사람들을 향해 언젠가 웃어줄 날이 있을 거야(나라는 사람은 자연과 학문, 일의 친구며, 무엇보다 그저 사람들의 친구이니 말이다).


‘오늘은 정말이지 서글픈 날씨군’

“여보게, 잘못은 자네 데생에 있어”

성실하고 끈질긴 작업만이 이 모두가 헛되지 않기 위한 확실한 방법이겠지.

- 빈센트 반 고흐 | H. 안나 수 엮음 | 이창실 옮김.
생각하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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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11월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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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감에 빠졌을 때 인적이 끊긴 해안을 걸으면 얼마나 좋은지 몰라.
길고 흰 줄무늬 파도가 치는 청회색 바다를 바라보며 말이다.
그러나 위대한 것, 무한한 것, 신을 만날 수 있는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 먼 곳을 찾아 나설 필요는 없지.
난 대양보다 더 깊고 무한하며 영원한 것을 보았다고 생각해.
갓난아이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 기뻐 소리칠 때, 혹은 요람을 비추는 햇빛을 보고 웃을 때, 그 눈에서 표현되는 무엇이란다.
'천국의 빛'이 있다면 '여기서' 찾아볼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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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ncent van Gogh 빈센트 반 고흐 지음|
H. 안나 수 엮음| 이창실 옮김.
[생각의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