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13. 21:25ㆍ카테고리 없음
[궁극적인 해방、깊고 진중한 사랑]
[188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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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갈이 시기란 새들이 깃털을 바꾸는 시기로, 사람의 경우로 말한다면 역경과 불행 같은 일이 닥치는 어려운 시기를 뜻하지. 우린 이런 털갈이 시기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거기서 벗어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런 일들은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것도 웃어넘길 일도 아니어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숨을 필요가 있단다. 사정이 그렇다면 받아들여야겠지.
어떤 사람이 그림 공부에 혼신을 다하는 모습을 용서할 수 있다면, 책에 대한 애정 역시 렘브란트에 대한 애정만큼 신성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거야.
이 둘은 서로를 보완한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하지만 어쩌겠니?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은 기필코 밖으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한 사람의 영혼 속에서 그토록 큰 불이 타오르는데 아무도 거기 와서 몸을 녹이려 하지 않는 거야. 지나가는 사람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가느다란 연기만 보고 가던 길을 계속 간단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면의 이러한 불길을 유지하고 자신 안에 소금을 간직하면서 참을성 있게, 조급해 안달이 나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겠지. 누군가가 찾아와 곁에 앉거나 머무르고 싶어 할지 모르는 그 순간을 말이야.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누구든 조만간 닥칠 이 순간을 기다려야 할 거야.
요즈음에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이런 상태가 이미 상당 기간 지속 되었는데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지 몰라 하지만 만사가 제대로 풀리지 않더라도 이후로는 상황이 나아질 수도 있겠지. 나로선 그런 기대조차 하지 않고 실제로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가 나아진다면 난 그걸 큰 득으로 여기면서 흡족한 마음으로 말하겠지.
“결국 그런 거였어! 그러니까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던 거야”라고.
난 지금 네게 펜 가는 대로 아무 글이나 쓰고 있단다.
내게서 게으름뱅이 같은 모습 외에 네가 다른 모습을 볼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게으름뱅이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 말이다. 나태하거나 비굴한 성격이거나 천성이 야비해서 게으름뱅이로 간주되는 사람이 있지. 너 역시 나를 그런 사람으로 여긴다 해도 할 수 없겠지.
그런데 또 다른 유형의 게으름뱅이도 있단다. 어쩔 수 없이 게으름뱅이가 된 사람, 행동으로 옮기고 싶은 엄청난 욕구에 시달리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야. 무언가를 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지. 무언가에 갇힌 듯한 이 사람에게는 생산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무언가가 부족하단다. 불가피한 상황들이 그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거야. 자신이 무얼 할 수 있는지 늘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지.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이렇게 느낀단다. '그래도 난 무언가에 쓸모가 있으며, 나의 존재 이유를 느낄 수 있어. 내가 아주 다른 사람도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아! 어떻게 하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될까? 무엇을 할 수 있지? 내 안에 무언가가 있는데, 대체 그게 뭘까?'
이런 사람은 전혀 다른 유형의 게으름뱅이야. 나를 이들 가운데 한 명으로 간주해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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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에 갇힌 새]
봄에 새장에 갇힌 새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함을 알고 있단다. 그런데 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걸 분명히 느끼면서도 속수무책인거야. 그게 무얼까? 좀처럼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생각들은 있어. "다른 새들은 둥지를 짓고 새끼를 낳아서 기르지." 그는 혼자 이렇게 말하며 새장의 창살에 머리를 부딪는단다. 하지만 새장은 그대로 있고, 새는 슬픔으로 미쳐버릴 것만 같지.
"저 놈은 게으름뱅이야" 라고, 지나가는 새가 내뱉는단다. "놀고 먹는 놈이지" 이런 말을 듣고도 새장에 갇힌 새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하나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 건강은 양호하며 햇빛을 받으면 명랑한 기분에 젖기도 해. 그러다가 철새가 이동하는 계절이 오면 갑작스레 우울증이 찾아든단다. "하지만 부족한 게 없는 새잖아"라고, 새장 속의 새를 돌보는 아이들은 말하지. 그렇지만 그는 폭풍우 가득 실은 하늘을 내다보며 내면에서 솟구치는 운명에 대해 저항을 느낄 따름이야. "난 새장 안에 있다. 새장 안에 있어. 그러니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 이 바보들아! 난 필요한 모든 걸 가졌어! 아, 제발 내게 자유를 다오. 다른 새들처럼 말이야."
게으른 그 남자는 이 게으른 새와 비슷해.
사람들은 이따금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지. 끔찍한, 아주 끔찍한 새장과도 같은 무언가에 갇혀서.
하지만 해방이, 궁극적인 해방이 있음을 잘 안단다. 정당하든 그렇지 않든 더럽혀진 명성과 장애물, 주변상황, 불운, 이 모두가 사람들을 죄수로 만들지. 무엇이 우리를 유폐하고 산 채로 매장하는지 늘 알 수 있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창살이나 새장, 벽의 존재를 느낄 수는 있단다.
이 모두가 상상이며 환상일까? 그렇지는 않을 거야. 나 자신에게 물어본단다. 맙소사, 이런 상황이 얼마나 오래 갈까? 영원히 계속될까?
이 감옥을 사라지게 하는 건 뭘까? 그건 바로 깊고 진지한 사랑이야.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한다면 그 숭고한 힘과 강력한 마력으로 감옥의 문을 열 수 있겠지. 그런게 없는 사람은 생명을 잃은 채 살아가는 거야.
연민이 새롭게 태어나는 곳에 삶이 다시 피어난단다.
때로 감옥은 편견이나 오해 혹은 이런저런 것에 대한 치명적인 무지, 불신, 그릇된 수치심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
- Vincent van Gogh 빈센트 반 고흐 지음|
H. 안나 수 엮음| 이창실 옮김.
[생각의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