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속에 변하지 않는 것】

2017. 10. 11. 05:57카테고리 없음

【변하는 속에 변하지 않는 것】


雲起南山北山雨
驢名馬字幾多般
請看浩渺無情水
幾處隨方幾處圓


운기남산북산우雲起南山北山雨요,
구름이 남산에서 일어나는데 북산에 비가 와.

여명마자기다반驢名馬字幾多般고,
'이것은 나귀다, 이것은 말이다, 이것은 소다, 이것은 돼지다', 그러헌 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 삼라만상森羅萬像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낱낱이 다른 이름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 이 말이여.

청간호묘무정수請看浩渺無情水하라.
청컨댄 저 넓고도 넓고 넓은 저 무정無情한 저 물을 보라 그 말이여.

기처수방기처원幾處隨方幾處圓고.
어느 곳에서는 모나고, 어느 곳에서는 둥근가?
물이라 하는 것은 모난 그릇에 담으면 모나게 담겨지고,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글게 담아지고, 긴 그릇에 담으면 길게 담아지고, 깊은 그릇에 담으면 깊게 담아지고, 깊은 데에, 그 깊은 데를 만나면 밑바닥부터서 차츰차츰 차 올라 가 가지고 가득 차면은 넘고, 높은 데에 처하게 되면 나차운 데로 나차운 디를 향해서 계속 떨어져 흘러 내려가고, 추위를 만나면 얼고, 더위를 만나면 녹고, 뜨거운 것을 만나면 수증기가 되고, 알고 보면 본래 한 물인데 장소와 여건에 따라서 모양도 변하고 움직임도 변합니다.

그렇지만은 그 본바탕은 변하지 않는 것이있어.
얼음이 얼었다 하더라도 분명 우리 눈으로 볼 때에는 고체가 되어 가지고 만져보면은 찹지마는, 차운 고체일 때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고, 그것이 녹아서 물이 되어서 액체가 되어 있을 때에도 그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이 있고, 그것이 증기가 되어서 기체가 되어 있어도 변하지 않는 바가 있어.

그러면 그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 습성濕性이라 하는 것이여. 습성!
젖은 성품, 습성은 액체일 때에도 그 습성 그 본질本質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고, 고체인 얼음 덩어리로 있을 때에도 젖은 그 습성은 변함이 없고, 수증기가 되아서 기체가 되어 있을 때에도 그 습성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다 그 말이여.

남산에 구름이 일어날 때나 북산에서 비가 내릴 때, 그 습성濕性에 있어서는, 그 본질本質에 있어서는 변한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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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량겁을 두고 육도를 돌고 돌아서 금생今生에 이 사바세계에 사람으로 태어나 가지고 오늘 이 시간에 이 용화사 법보전에 자리를 같이했습니다마는, 무량겁을 돌고 돌았지만 그 도는 가운데에 때로는 소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말로 태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돼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범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하늘나라에 하늘나라 사람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지옥에서 한량없는 고苦를 받는 지옥중생이 되기도 했습니다마는,

그 무량겁을 두고 육도를 윤회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도록 조금도 변하지 아니한 바가 있으니, 그것이 이름을 진여眞如라 하고, 자성自性이라 하고, 본성本性이라 하고, 참 나라 하고, 또는 일물一物이라, 또는 밑 없는 배라 하고, 구멍 없는 퉁수라 하고, 그림자 없는 나무라 하고, 천가지 만가지 이름이 있지만 그 자체는 우리가 볼 수도 없고, 만져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고, 아무리 우리의 생각으로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불법은 바로 그것을 깨닫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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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49재를 맞이한 영가도 있고 3재를 맞이한 영가도 있지만 그 영가들도 현재 우리 사부대중과 함께 법문을 듣고 계십니다. 영가라고 해서 우리와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양복을 입다가 그 양복을 벗어놓고 한복을 입었다고 해서 그 사람 성이 변한 것도 아니요, 이름이 바뀌어 진 것도 아니요, 사람이 딴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 것처럼 우리의 사대四大로 뭉쳐진 이 육체를 잠깐 벗어버리고 새 몸을 받아내기 위해서 중음신中陰身의 위치에 놓여있을 뿐입니다.
얼마 안가면 또 새로운 몸을 받아 태어날 것입니다.
헌 옷 벗어버리고 아직 새 옷을, 다른 옷을 입기 전에 잠깐 발가벗은 몸으로 있는 것입니다.

발가벗은 몸으로 있으면 오히려 뭐든 가식을, 거짓 꾸민 것을 다 벗어버렸기 때문에 그 사람이 온전히 숨김없이 잘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러헌 법문을 들어도 더 소소영영하게 잘 들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영가는, 그리고 우리 법보전에 법보단에 봉안되어있는 수천 수만의 법보 영가들도 지금 법문을 잘 듣고 계실 것입니다.


법문은 원래 입으로 설說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부득이不得已해서 입을 빌려서 설說하게 되고 귀를 통해서 듣게될 뿐입니다마는,
참 법은 입을 통하지 아니하고 설說해지는 것이고 귀를 통하지 아니하고 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영가는 입도 없고 귀도 없지만 입과 귀를 통해서 설하고 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가는 더욱 법문을 실實다웁게 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전국에 많은 분들이 우리 용화사 법보전에 만년 위패를 모시고 조상이나 비명非命에 간 영가나 한을 남기고 허공계虛空界를 방황彷徨하고 있는 많은 영가들을 용화사에 모시고 모심으로써 많은 영가들이 돌아갈 곳을 찾고 의지할 곳을 찾아서 한恨을 풀고 좋은 곳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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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는 저 하늘 갓으로 날아갔는데 기러기 놀다 간 발자취는 모래사장에 남아 있듯이, 사람은 저 황천黃泉길로 떠나갔는데 그 사람의 이름만 집에 남아있습니다.
억겁을 두고 한번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 빠짐없이 다 또 그 몸을 버리고 떠나갔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우리 모든 사람도 언젠가는 이 몸을 벗어버리고 또 다음 새로운 몸을 받기 위해서 이승을 하직하게 될 것입니다.
알고 보면 태어났다고 해서 기뻐할 것도 없고 이승을 하직했다고 해서 조금도 슬퍼헐 것이 없건마는, 사람은 정情이 있는 존재가 되야서 한 번 보고 두 번 보면 정情이 들게 되고 하루 이틀 살다보면 애착愛着이 생기고 정과 애착으로 인해서 기뻐헐 것도 없는 곳에 기뻐하고, 슬퍼헐 것도 없는 터에 슬픔으로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

우리 불법佛法은 생사윤회 속에서 생사生死 없는 도리道理를 깨닫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불법을 올바르게 믿고 올바르게 실천해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영원한 참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참 사람은 생사 속에서 바로 생사가 없는 열반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복福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허면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참 나를 깨달을 수가 있는가?
금방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信心]- 첫째 철저하게 무상無常을 깨달라라. 정말 이 세상에 모든 존재는 삼라만상과 모든 동물과 만물에 영장인 사람까지라도 무상無常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렇게 무상한 줄을 철저히 깨닫고 그 무상無常한 가운데에 영원한 것을, 영원한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믿어라.

물과 얼음과 증기, 수증기, 모냥은 장소(處)와 때(時)에 따라서 이리저리 바뀌지만, 바뀌어지지 아니한 변함 없는 습성濕性이 있듯이, 생로병사生老病死와 흥망성쇠興亡盛衰와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는 이 무상無常함 속에서 변함 없는 참 나가 있으니, 있다고 하는 사실.
부처님과 역대조사는 바로 그것을 깨달은 선각자이다.
우리도 부처님의 법에 의해서 선지식의 지도에 의해서 깊이 믿고 철저하게 수행을 허면 우리도 생사 속에서 영원을 살 수가 있다. 부처님이 될 수가 있다.-
이렇게 믿어야 한다 이것입니다.

[憤心]- 무상함을 깨닫고 참 나를 깨닫, 깊이 있다고 하는 것을 믿었으면 용맹심과 분발심이 없으면 정진이 나아가지를 않는 것이니 정말 용맹심과 분심憤心을 내라.
'과거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를 해결해 가지고 생사 없는 영원을,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나아가서는 일체중생을 제도하고 계시는데, 왜 나는 오늘날까지 범부凡夫의 고해苦海를 해탈解脫하지 못하고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 속에 빠져서 몸부림을 치고있는가?'
이를 악물고 분발심을 내서 시간을 아껴서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疑心]- 공부를 허는데에는 참선叅禪이 제일이니 부처님께서 오십, 사십 구년 동안 설하신 팔만장경이 그 방대한 법문이 있지만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서 방편方便으로 많은 법문을 설하셨지마는 궁극窮極에 부처님께서 설하시고자 하는 바는 방편법이 아니라 최상승법最上乘法 하나일 뿐인 것입니다.

《최상승법이라 하는 것은 바로 내가 나를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깨닫는 데에는 일체방편이 필요가 없는 것이니.
오직 한가지, 견문각지見聞覺知, 눈으로 볼 때 귀로 들을 때 모든 것을 감각할 때 그리고 뜻으로 알 때, 바로 그때의 그 인연을 여의지 아니하고 그 인연에 즉即해서 참 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175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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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法在世間、不離世間覺、
離世覓菩提、恰如求兔角
불법은 세간에 있으니 세간을 떠나지 않고 깨닫는다.
세간을 떠나서 보리를 찾음은 흡사 토끼의 뿔을 구함과 같다.

- 육조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