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게 없어 책을 팔았구려>
2017. 9. 21. 14:10ㆍ카테고리 없음
<먹을 게 없어 책을 팔았구려>
내 집에 있는 좋은 물건이라고 해 봐야 [맹자孟子]라는 책 하나가 고작인데, 오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돈 2백 푼에 팔고 말았소이다.
그 돈으로 배부르게 밥을 지어 먹고는 희희낙락하며 영재(유득공의 호)에게 달려가 내 처신이 어떠냐고 한바탕 자랑했더랬지요.
영재 역시 오래도록 굶주림에 시달린 터라, 내 말을 듣고는 그 즉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팔아 버리고선 그 남은 돈으로 술을 사 와 내게 대접하더이다.
그러니 맹자孟子가 친히 밥을 지어 내게 먹이고 좌구명左丘明이 손수 술을 따라 내게 권한 것과 다를 게 무어 있겠습니까?
그날 영재와 나는 "우리가 이 책들을 팔지 않고 읽기만 했더라면 어찌 조금이나마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겠나?"라고 하면서, 맹씨와 좌씨를 칭송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때 문득, 진실로 글을 읽어 부귀를 구하는 것이 요행을 바라는 얄팍한 술책일 뿐이요, 책을 팔아 잠시나마 배부르게 먹고 술이라도 사 마시는 게 도리어 솔직하고 가식 없는 행동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외다. 족하足下(상대를 높여 부르는 말. 여기서는 이서구를 말한다)는 어떻게 생각하실는지요?
- 이덕무 선집 [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