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2. 08:36ㆍ카테고리 없음
至道無難
唯嫌揀擇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것이 없는 것이다.
오직 꺼리는 것은 간택하는 것 뿐이다.
神光煊赫萬靈罔測.踞群像之深淵.啟重玄之大宅.臨濟用金剛王.發雷轟霆震之令.望影尤難.德山遣木上座奮風馳電走之威.追縱莫及.陶形鑄象不居其有功.負海擎山似覺其無力.黃面漢四十九年有手只好拿空.白拈賊千七百個有口惟堪掛壁.最見成.難委悉.擬向當陽指似伊.早是門前起荊棘.
神光이 밝게 빛남을 온 生靈들이 헤아리지 못하니 群象의 가장 깊은 곳에 웅거하며, 중후하고 현묘한 세계를 啓示하도다.
臨濟가 금강왕보검을 써서 천둥벽력같은 영을 내리니 그 모습을 바라보기 더욱 어렵고, 德山이 방망이를 날려 바람처럼 번개처럼 몰아치는 위세를 떨치니 추종할 수 없구나. 질그릇틀이나 쇠를 녹여붓는 틀에 공이 있다 할수없고 바다를 지고 산을 드는 것도 힘이 있다 할 수 없다.
부처님이 사십구년간 설법한 것은 손이 있으나 허공을 잡기에 알맞고 白拈賊의 천칠백명은 입이 있으나 오직 입을 걸어둘 만할 뿐이다.
가장 잘 드러난 것일수록 알기 어려우니, 분명하게 들어보이려 하더라도 벌써 이것은 문앞에 가시밭이다.
祖師道至道無難唯嫌揀擇.義解者謂.此兩句乃一篇之要綱.一銘之本旨.然信之一言全該悟證.非信行之信也.如法華之諸子於會權入實之際作信解品以述其懷.吾祖目之曰至道.唯佛證之曰菩提.眾生昧之曰無明.教中彰之為本覺.皆一心之異名也.至若遍該名相涉入色空.異轍殊途.千條萬目豈乖優劣靡隔悟迷莫不由斯而著.如趙州之柏樹子.楊岐之金剛圈.密庵之破沙盆.東山之鐵酸饀.異端並起邪法難扶則知至道之話行矣.該通事理.融貫古今說個無難.早成剩語.然聖凡染淨.極目全真揀擇情生.迥乖至體.是謂惟嫌揀擇也.下文雖殊悉稟其意
祖師가 이른 至道無難 唯嫌揀擇을 義解者가 말하기를, 이 두 귀절이 이 한편의 근본요점이며 이 銘의 근본 宗旨라 하겠다. 그러니 信이라는 한마디 말은 깨달음과 증득함을 전부 갖춤이지 믿어서 실행하는 믿음은 아닌 것이다.
法華의 모든 아둘이 방편을 모아서 진실에 들어갈 즈음에 [信解品]을 지어서 그 本懷를 말하여 놓은 것과 같다.
우리 祖師는 지목하녀 至道라 하였고, 부처님은 증득하여 菩提라 하였도 중생은 昧하여 無明이라 하였으며 敎中에서 밝히기를 本覺이라 하였으니 이 모두 한 마음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만약 名相을 두루 該攝하고 色空을 涉入함에 이르러서는 다른 轍則과 길이 천차만별이라, 어찌 優劣과 통하고 막힘과 悟迷를 어길 수 있겠는가. 모두가 이것을 말미암아 나타난 것이다.
저 趙州의 栢樹子와 楊岐의 金剛圈과 密菴의 破沙盆과 東山의 鐵酸饀 등 異端이 한꺼번에 벌어지는 것을 삿된 법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줄 알면至道의 말을 알아서 실행할 수 있다.
事理를 갖추어 통하고 古今을 원융하개 관철하면 이 無難이런 말은 벌써 쓸데없는 군소리이다. 그러한 즉 성인으과 범부와 물듦과 깨끗함이 눈에 미치는 데까지 온통 참됨이며 간택하려는 생각이 나면 지극한 本體를 멀리 어김이라, 그래서 오직 간택하는 것만 꺼릴 뿐이라 하였다.
아래의 글은 비록 다르나 그 뜻은 그대로 옮겨진 것이다.
辟曰.
依稀相似彷彿不同.且至道二字任你意解.謂無難之旨須相應始得.自非心開神悟妙契冥符迥絕見知超出言象者.望無難之旨不翅天淵.法根境相對差別互陳.不能當處解脫.擬將個無難不揀擇的道理存乎胸臆.又豈止於認賊為子矣.故於此不能忘言.
偈曰.
至道不應嫌揀擇 莫言揀擇墮凡情
快須擉瞎娘生眼 白日挑燈讀此銘
闢曰
엇비슷하게 닮기만 하였지 같지는 않다. 아직은 至道 二字를 네가 임의대로 뜻으로 해석하는데 맡기나, 어렵지 않다는 의지는 모름지기 相應하여야 한다. 스스로 마음이 열려 신령스럽게 말과 형상을 초월하지 못한 이가 어렵지 않다는 의지를 바란다면 어찌 하늘과 연못의 차이 뿐이랴. 法과 根의 경계가 서로 상대가 되어 차별이 서로 벌어져서 當處에 해탈을 못함이니, 저 어렵지 않음과 간택하지 않는 도리를 가슴에 지니려 한다면 어찌 도둑을 잘못 알아 자식을 삼는 것에만 그치랴. 그래서 능히 말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偈曰
지극한 도는 간택함을 꺼리지 않나니
간택하는 것이 범상한 뜻에 떨어진다 말하지 말라.
어머니가 낳아준 눈 잃고는
대낮에 등불을 돋우며 이 銘을 읽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