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에게 다짐하는 그러헌 뜻】

2017. 8. 27. 22:04카테고리 없음

【나 자신에게 다짐하는 그러헌 뜻】



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허고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로구나
설두세작연하미舌頭細嚼烟霞味하고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로구나




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한디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로구나.
동서남북정처가 없어.
출가해서 걸망을 지고 도반과 선지식을 찾아서 일대사 인연을 요달허기 위해서 행각을 허는 분상에는 동서남북 정착함이 없어.

생애生涯는 지재일지공只在一枝筇이여.
오직 주장자 하나에 온 생애를 다 맽겨버렸다 그말여.
주장자가 동쪽으로 행하면 동쪽으로, 금년 여름에는 동쪽에서 지내다가 겨울철에는 북쪽으로 가고, 북쪽으로 갔다 남쪽으로 갔다 동쪽으로 갔다 서쪽으로 갔다 주장자하나로 생애를 맽겼는데,

설두제작연하미舌頭細嚼烟霞味여.
무엇을 먹고 사느냐? 무슨 음식을 먹고서 영양을 섭취해가지고 이 생애를 끌고 가느냐?
연하, 안개와 연기를 씹어서 먹고 거기에서 영양을 섭취헌다.

어느 산 어느 골짜기에도 안개는 끼고 끼어 있는 그 안개를 먹고 살지 쌀이나 콩이나 팥이나 무슨 고기나 그러헌, 그러헌 세속에서 말하는 영양 있는 그것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그말여.
왜 그러냐? 하루 세끼 밥을 먹되 맛없는 밥을 먹고, 옷을 입되 한오리도 걸칠 것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밥을 먹되 쌀이 없는 밥을 먹고 옷을 입되 실오래기가 없는 그런 옷을 입어.
그리고 먹는 것은 연하, 자욱히 아침에 끼었다 저녁에, 낮에는 벗겨지고 다시 해가 저물면 또 끼었다가 또 벗거지고 허는 그 자욱한 안개를 먹고 산다.

이 안개라고 허는 것은, 생사요달을 허기 위해서 입으로 물질로 된 그것을 먹고 이 영양을 섭취헌 것이 아니라, 사량분별로 따져서는 알 수 없는 공안 화두에, 화두의 대의심 그놈 하나로, 그놈에다가 나의 온갖 정성과 온갖 분심과 생명을 거기다가 걸고, 먹어도 먹은 줄을 모르고 추워도 추운줄을 모르고 더워도 더운줄을 모르고 오직 그 의단 하나에 생명을 걸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연하에, 연하를 먹고 산다.

그래가지고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다.
천봉, 바로 천봉아리 속을 향해서 들어가고 다시 또 만봉아리를 향해서 간다.
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이틀을 그렇게 지내고 그 수 없는 것을 보고, 수 없는 것을 듣고, 수 없는 생각이 일어나는 그것들이 모다 안이비 설신의를 통해서 우리 앞에 제출되는 모든 것은 바로 그것이 천봉우리고 만봉우리다 그말이여.
그 봉우리 봉우리 넘을 때마다 거기에서 피렴심도 느끼지 아니하고 소득심도 갖지를 아니하고 만족심도 갖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의단이 독로해서 그 의단을 향해서 목숨을 걸어가는 디에다가 비유하는 게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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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계해년 가을철 산, 가을산철해제일을 맞이했습니다. 금방 조실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수행 납자가 어떠헌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정진을 해가야 헐 것인가에 대해서 너무 감격스럽게 법문을 들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용화사 선방 대중과 또 도봉산 원효암 대중, 그리고 여러 용화사 모다 돈독히 조실스님의 법을 믿고 정진하는 신도 여러분도 참석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특히 오재 천도식을 맞이한 민병태 영가를 위해서 좋은 법문을 설해 달라고허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언제나 이 용화사 법보 선원 법요식에는 사부 대중은 말할것도 없고 이 법보전에 만년위패 법보재자 여러 영가들도 동시에 청혼을 해서 이 법요식에 법문을 듣도록 마련이 되아 있습니다마는, 특히 이 5재를 맞이하는 민병태영가는 이 해제법문을 잘 듣고 과거 무량겁에 지은 선악무기의 업, 업연이 봄눈 녹듯이 녹고 온갖 원한을 다 풀어버리고 도솔천 내원궁이나 또는 극락세계에 왕생을 하고, 다시 이 사바세계에 인연이 있어서 인도환생을 하게 되면 다시 불법문중에 귀의해서 일대사인연을 요달해서 무량중생을 제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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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일대사 인연 일대사 인연의 근원을 살펴볼 것 같으면 사람사람이 본래 다 갖춰져 있는 것이여.
본래 갖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낱낱이 다 원만하게 다 이루어져 있는 것이여.
새로 닦고 새로 깨닫을 것이 없이, 닦지 않고 깨닫기 이전에 진묵겁전에 다 성불해 마쳐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주먹을 피었다가 손, 피어서 손바닥을 만들고 그 손바닥을 다시 쥐어서 주먹을 만들고 헌 것처럼 조끔도 힘을 들일 것이 없어.
따라서 눈으로 보는 것은 전부가 다 화엄경이요, 귀로 듣는 것은 전부가 다 법문이요, 안이비설신의를 통해서 작위하는 모든 행동은 다 그것이 불사요, 무엇은 좋고 무엇은 나쁘고 그런 것이 아니라, 보고 듣고 행하고 느끼고 허는, 그리고 말하고 냄새 맡고 허는 주관적인 것이나 객관적인 것이 전부가 다 부처님의 일이요 부처님의 불사요 설법이요 경전이요.

그래서 부처와 조사가 이 세상에 출현허셔서 중생을 위해서 법을 설하시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먼저 수행을 해서 닦아 가지고 깨달은 뒤에 중생을 제도헌다고 헐 때에 부처와 조사의 허물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원만허게 이루어져 있고 새로 닦을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건마는 우리는 심, 마음이, 마음의 원숭이가 나부대고 뜻의 말이 날뛰는 바람에 탐진치 삼독의 종이 되아가지고 망령되이 인아상을 내고, 일어나는 생각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느끼고 그럴때 마다 얼음위에다가 물을 찌뜨린거와 같애서 점점 얼음덩어리는 커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 본래성불인데 무엇 때문에 우리는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를 허느냐?
그래가지고 한생한생 거듭 될 때 마다 업은 점점 더 깊어지고 얼키고 설켜서 자기의 영광, 자기의 신령스러운 빛은 그 업으로 인해서 가리워져 가지고 캄캄한 칠통, 칠야 삼경처럼 되아가서 영원히 헤어날 길이 없는 까닭은 무엇이냐?

사람을 만나지 못한 탓으로, 첫째는 그 문제를 해결헐 자신, ‘자기’라고 허는 사람을 만나지를 못했고,
둘째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바른 길을 가르쳐 주는, 줄 수 있는 ‘본분작가’를 만나지 못한 탓으로,
우리는 이렇게 본래 불보살 불조와 조끔도 차등이 없는 그러헌 불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대사를 요달치 못하고 오늘날까지 이렇게 무량겁을 생사의 고해속에 빠져서 왔고, 금생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다시 또 미래제가 다허도록 생사의 윤회는 긋칠날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쇠로 지어붓은 그러한 굳은 결심과 의지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이 문제는 해결하기가 어렵다 이것입니다. 대분심과 대신심과 대의단을 가지고, 이 생사윤회를 계속 치성허게 만들고 있는 우리의 마음 속에 원숭이와 뜻 속의 말, 그 원숭이와 망아지를 때려잡어야 하는 것입니다.

심원과 의마를 때려 죽임으로써 망상 진뢰를 제거하고, 제거해야허는데 그일이 얼마만큼 어려우냐 허면, 급히 흘러가는 그, 그 급수, 급히 흘러가는 여울물에 배를 갖다가 대는 거와 같해.
물결이 세지 아니헌데 배를 띄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나, 물살이 센 디다가는 물살 따라서 배도 따라서 흘러 내려갈려고 하기 때문에 거기에다가 배를 댄다고 허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 그말이여.

그래서 위태롭고 위태로운 것도 돌아 보지 아니하고 인아 시비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밥먹고 옷입는 것도 이렇게 돌아 보지 아니하고 오직 염염 상속해서 잠깐도 한눈팔 겨를이 없이 발에다가 힘을 주고 버티면서 그 배를 대는데 잠깐 사이도 딴 생각을 낼 겨를이 없다.

어떠헌 사람이 머리를, 내 머리를 잘라 갈려고 잘라가고 손발을 잘라가고 심장과 간장을 도려내서 죽음에 이르른다 할지라도 이 배를 기어코 댈려고 하는 그 마음을 쉬지 아니헌 것처럼, 이러헌 정도로 정진을 지어가지 아니헌다면 어찌 공부를 헌다고 헐수가 있겠는가?

말법에 이르러서 성현 가신 때가 멀어.
말세가 되아가지고 이 정법을 믿는 마음이 철저허지를 못해가지고, 화두를 타가지고 정진을 헌다 헐지라도 이러저리 사량분별로 따지고, 보고 듣고 알고 그러헌 마음속에 그러헌 것으로써 살림을 삼아가지고, 금년도 이럭저럭 또 내년도 이럭저럭 한 철 한 철 철은 지내가지만 정진속에 사량계교와 천착으로써 세월을 보내는 그러헌, 그러헌 수행은 안광이 땅에 떨어질 때에 참으로 그것을, 그러헌 정진력을 써먹을 수가 있느냐?

사량계교와 겨우 체중현 도리, 그러헌 얻은바를 가지고 생사문제를 당적헐 수 있다면 세존은 무엇 때문에 6년동안에 설산고행을 하셨으며, 달마대사는 소림에서 9년동안을 왜 묵무언 하셨으며, 장경선사는 7개포단을 앉아서 뚫었으며, 향림은 왜 40년에사 타성일편을 했으며, 조주는 30년에사 부잡용심을 헌 필요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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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참선은 한철 두철 열심히 허면, 이 사량분별이 끊어지고 번뇌망상이 없어지고 이 몸뚱이가 이 세상에 있는 것 마져도 잊어버려.
그래 가지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밥먹되 밥맛을 모르고 이러헌 경지에 이르러서 어떠헌 공안을 보나 하나도 맥힘이 없어. 자기 나름대로.

조주 무자도 맥힐 것이 없고 판치생모도 맥힐 것이 없고 정전백수자를 들어봐도 하나도 의심이 안 간다그말이여.
부처라고허나 중생이라고 허나 된장이라고허나 똥이라고허나 천상천하 두두물물이 무엇을 봐도 그것이 다 바로 그것이 자기요 자기, 자기와 부처와 이 법계가 하나도 걸릴 것이 없다 그말여.

이 도리는 이게 체중현 도리여.
공리, 공리라고... 여기에 이르러서 만약에 바른 선지식을 받아서 점검을 받지 못하면 자기도 ‘초견성이다’ ‘한소식했다’ 해가지고 그러헌 그 체중현의 경지에서 보면 1,700공안이 하나도 의심이 없고 맥힐 것이 없으나, 현중현 도리에 가서는 이빨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그말이여.

바른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면 그 체중현 도리로써 자기의 살림을 삼어가지고, 그것으로써 일대사 문제를 요달했다고 생각을 허게 되지만, 현중현 도리에 나아가서는 그것 가지고는 되지를 않혀.

더군다나 후배, 다른 사람이 공부를 해가지고 자기에게 왔을 때에 그 사람이 ‘바른 깨달음을 얻었느냐 안 얻었느냐?’ 그것을 점검허는디에 나가서 자기의 경지와 같으니까 옳다고 일러줄 수 밖에는 없는데 그렇게 되았을 때에 자기만 잘못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눈을 멀게 허게 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그르치게 맨들고 나가서는 불법까지 망하게 허기 때문에, 이 참선이라는 것이 최상승법이지만 바르게 닦지를 못하고 바르게 깨닫지를 못하면 저 망하고 남 망하게 가고 마침내는 불법까지 망하게 허는 그런 중대한 죄과를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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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산철 두 달 동안에 조실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어떻게 수행을 해가야 하고 어떠헌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지어가야하는것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정말 차라리 안헐려면 몰라도 일단 이 문제, 이 일대사 문제를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치고 정진을 해 나가는 마당에는, 득소위족, 조그마한 작은 것을 작은 것으로써 작은 견처를 가지고 만족을 삼지를 말고, 고조사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을 진대는 스스로 자기의 견해를, 자기의 견처를 용감하게 부정을 해버리고, 언제나 처음 발심헐 때의 그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정진을 해가야 할 것입니다.

고인의 견처, 견처와 견지에 이르지 못하면 스스로 자기의 견처를 부정해버릴줄 아는 사람이라야 진정한 발심수행인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이 말씀하시기를, 좋은 병에다가 악지악각, 악한 알음, 악한 깨달음, 마치 우리가 구경의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어떠한 견처도 스스로 그것을 간직하고 있으면, 좋은 병에다가 썩은 변질한 고약한 음식을 담은 거와 같애서, 그 병속에는 아무것도 어떠헌 좋은 음식을 담는다 하드라도 그 병 속에 담어져 있는 변질된 고약한 악취가 나는 음식 때문에 새로 담은 음식까지고 먹지 못하게 되는디에 다가 비유를 하셨습니다.

그 병 속에 좋은 음식을 담을려면 먼저 그 병속에 들어 있는 변질된 물질을 까꾸로 다 쏟아 버리고, 열번 스무번 완전히 그 속에서 그 냄새가 없어질 때까지 몇 번이고 씻고 또 씻고 그 소독을 해서 그래도 또 냄새가 나면 그것을 삶고 해 가지고라도 기어코 그 병을 깨끗이 해야, 완전 소독을 해야 그런 연후에라사 거기에 어떠헌 좋은 음식을 담아도 그 음식이, 음식을 먹을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어떠헌 견처라도 남아 있으면 그것이 장애가 되아가지고 진정한 깨달음은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법문을 듣고 최상승 법을 듣는다 하더라도 자기 속에 조그마한 견처라도 남아 있으면 그, 그러한 견처로 인해서 어떠한 좋은 법도 들어갈 수가 없고 좋은 법문을 들어도 바로 자기 식으로 변질이 되아서 올바른 깨달음은 얻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최상승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자기 속에 그러헌 불견법견, 어떠헌 경전에 있는 말씀이고 어떠헌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있는 그러헌 것도 깨끗이 버려 버리고 언제나 초심, 초심인으로써의 마음가짐과 지조를 가지고 정진을 해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바른 깨달음을 얻었어도 그 깨달았다고 하는 소견을 가져서는 아니되거든 바른 깨달음 아닌 그러헌 견처를 가지고서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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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신성고취此身誠苦聚 허고
삼계진화택三界眞火宅 이로구나
여아구출몰汝我俱出沒 헌디
겁해종난측劫海終難測 이로구나



차신此身은 성고취誠苦聚요,
이 몸띵이는 정말 이 괴로움의 뭉탱이다 그말이여.
온갖 괴로움이 뭉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말이여.
몸뚱이도 그렇고 우리의 마음도 그렇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어.
여가 안아프면 저가 아프고 저가 안아프면 여가 아프고, 오장 육부가 다 그렇고, 우리의 마음도 이 걱정 아니면 저 근심 저근심 아니면 이 걱정, 내 일신 뿐만 아니라 부모 걱정 자식걱정 남편걱정 사업걱정 가정걱정, 전체가 이 고통 고민의 뭉탱이다 그말이여.
그리고 온 이 세계는 참으로 불집이여. 불집. 불이 훨훨훨훨 불이 타고 있는 불집이여.

옛날 부처님께서 ‘이 삼계가 화택이다’ 그러셨는데, 정말 이 말세가 되고 보니 저, 온세계가 만드느니 무기만 만들어 무기가 순 그게 불인데, 불, 불덩어린데 맨, 새로 맨들지 안해도 이 삼계가 고대로 화택인데다가, 이 세상에서 제일 머리 좋은 천재만을 골라 가지고 그 사람들을 시켜서 만드느니 원자탄 수소탄 레이져 무기 그러헌 무서운 불로써 온 세계를 갖다가 찰나간에 잿더미를 맨들아 버리는 그러헌 무서운 무기만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그러헌 무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무기를 만들고 또 상대방을 그놈, 그 태워죽임으로써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그 무기를 맨드는데, 결국에 가서는 그 무서운 무기로 인해서 상대방도 타죽고 나도 타죽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에 귀의해서 ‘상대방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을 찾아야만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이르를 텐데, 상대방을 죽이고 나만 살려고 나를 지킬려고 맨드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나도 죽고 남도 죽게하는 결과가 올것이 빤합니다.
10년후에 올지 20년후에 올지 백년후에 올지 그것은 알수가 없지만 현재 세계 정세의 되아가는 걸세로 보아서는 그 시간이 점점 가속도가 붙어서 언제 올것이라고허는 것에 대해서는 전연 추측을 불허하고 있습니다.

그러헌 상황속에서 우리는 과거에 얼마나 깊은 복과 인연을 지었음인지 이 최상승법을 믿고 또 그것을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다행스럽고 감사하고 경행한 일이나 이 문제는 범범한 생각을 가지고서는 결판이 나기가 어렵습니다.
정말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아니한 셈치고 목숨을 바쳐서 해야만 이 문제는 해결이 나는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불보살이 다 그러셨고 과거의 모든 고조사들도 역시 다 그러렸습니다.
더군다나 이 말세에 태어난 우리 근기가 약한 우리들은 과거의 불보살과 고조사의 몇십배 몇백배를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해제를 맞이해서 ‘나 자신에게 다짐하는 그러헌 뜻’에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4부대중을 위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온세계와 인류, 다시 우리에게 가까이 눈을 돌려보면 우리 조계종 종단 그리고 우리 자신, 멀리 생각허나 가까이 생각허나 우리는 시간을 아껴서 일분 일초를 아껴서 정말 이를 악물고 다시 우리 정진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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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무인문千古無人聞 헌디
만산공두견萬山空杜鵑 이로구나
목동일성적牧童一聲笛 헌디
기우과석양騎牛過夕陽 이로구나



(천고무인문千古無人聞 헌디, 만산공두견萬山空杜鵑 이로구나)
천고千古에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디,
만산에는 공연히 두견새만 울고 있구나.
밤새도록 두견이는 울고 있는데 아무도 그 두견새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목동일성적牧童一聲笛에 기우과석양騎牛過夕陽이라.
목동이는 한소리 젓대를 불면서 소를 타고 석약을 지내가는 구나.

조실스님께서 생존시에 즐겨 읊으시던 게송이었습니다.

법보단에 모셔있는 만년 위패 법보제자 모든 영가 우리의 선망부모와 오늘 오재를 맞이한 민병태 영가는 이 법문을 들은 인연으로 속성 정각하시기를 바랍니다.


- 송담선사 법문 217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