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22. 13:48ㆍ카테고리 없음
[붉은 일몰의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소나무들]
[1889년 12월 10일]
여동생
가을에 이곳의 전원은 무척 아름다워. 큰 화폭의 그림 열두 점을 작업하고 있지. 주로 올리브나무 숲을 그리고 있단다. 하나는 하늘이 온통 분홍색이고, 다른 하나는 녹색과 오랜지색. 세 번째 그림에는 크고 노란 해가 있지.
그리고 해질녘의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초췌한 모습의 키 큰 소나무들이 있어.
이 편지를 쓰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지금 작업하고 있는 그림에 몇 차례 붓질을 했단다. 그래, 이 그림은 붉은색, 오렌지색, 노란색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초췌한 모습의 소나무들을 담고 있지.
어제는 아주 신선한 그림(순수하고 밝은 색조였지)이었는데 편지를 쓰다가 그림을 보면서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어.아무튼 난 마음속으로 '이건 아닌데'라도 되뇌고 있었지.
그래서 팔레트에 있는 색깔 하나를 취했는데, 흰색과 녹색, 약간의 심홍색을 섞으면 나오는 더럽고 뿌연 흰색이었어.
이 녹색 톤의 물감을 하늘에 마구 칠했단다.
그러자 멀리서 보니 이것이 다른 색들에 섞여들면서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지는 거야.
어쩌면 그림을 망치고 더럽힌다는 인상을 줄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바로 불행不幸과 병病이 우리 자신과 우리의 건강에 선사膳賜하는 무엇이 아닐까?
이렇게 운명이 정한 파멸의 길을 가며 실제로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사는게 아닐까?
행복에 대해 어렴풋한 개념과 욕구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평안하고 건강하다고 생각되는 삶보다 말이야.
무어라 말할 수 없구나.
- Vincent van Gogh 빈센트 반 고흐 지음|
H. 안나 수 엮음| 이창실 옮김.
[생각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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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자극시킬 무언가를 해보기도 하고, 재미있는 것을 일부러 찾아서 보기도 하고.
그러나 한 번 내게 찾아온 그 검고 끈적한 기운들은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이제야 좀 깨달았다.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 버릴 그 감정들을 먼저 없애버리려고 발버둥 쳐봤자 소용없다는 걸.
그러나 평소에 하던 것들을 평소처럼 하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마음 속 동굴에서 '다 싫다'는 목소리가 메아리쳐도 지금껏 해왔던 것들을 묵묵히, 억지 부리듯이 해야 한다.
그러면 나를 덮었던 무기력함은 서서히 옅어지다 이내 내게서 완전히 떠난다.마치 구름이 걷히면 파란 하늘이 조금씩 넓어져 가듯.
- 반 고흐가 동생 태호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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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계속 싸워 나가야 해.
때가 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 1882년 1월 7-8일. <고흐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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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이런 식으로 지나가버리고 흘러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일할 수 있는 기회도 한 번 가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맹렬히 작업하고 있다.
- 1889년 9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