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煩惱의 근본根本, (능엄경 속의 '이 뭣고?')]

2021. 10. 16. 18:33카테고리 없음


[네가 보리菩提를 닦되 만약 '번뇌煩惱의 근본根本'을 자세히 보지 아니하면]

阿難!汝今欲令見聞覺知遠契如來常樂我淨,應當先擇死生根本,依不生滅圓湛性成,以湛旋其虛妄滅生,伏還元覺得元明覺,無生滅性為因地心,然後圓成果地修證。

아난아, 네가 이제 보고 • 듣고 • 아는 견문각지(見聞覺知)로 심원(深遠)한 여래(如來)의 상락아정(常樂我淨)에 계합(契合)하고자 할진대는, 반드시 먼저 생사(生死)의 근본(根本)을 분간하고(擇去) 생멸(生滅)하지 아니하는 원만하고 맑은 성(圓湛性)을 의지하여 이룰지니, 맑음으로써 그 허망한 멸생(滅生)을 돌이켜 항복(降伏)하여 원래(元來)의 각(覺)으로 돌아가고, 원래로 밝은 각(元明覺)인 생멸(生滅)이 없는 성(性)을 얻어서 인지(因地)의 마음을 삼은 후에야사 과지(果地)의 닦아 증함(修證)을 원만히 이루리라.


如澄濁水貯於淨器,靜深不動,沙土自沈清水現前,名為初伏客塵煩惱;去泥純水,名為永斷根本無明。明相精純,一切變現不為煩惱,皆合涅槃清淨妙德。

흐린 물을 맑히되 고요히 있는 그릇에 담듯 하니, 고요함이 깊어서 움직이지 아니하면 모래와 흙은 제 스스로 잠기고 맑은 물은 현전(現前)하나니, 이를 이름하여 ‘처음 객진번뇌客塵煩惱를 항복(降伏)함’이요, 앙금을 버려서 순전히 물만 남게 함은 그 이름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을 영원히 끊음’이라 하느니라. 밝은 상(明相)이 정미롭고 순수(精純)하여 일체의 변하여 나투는 것(變現)이 번뇌(煩惱)가 되지 아니하여 다 열반청정묘덕(涅槃清淨妙德)에 합(合)하리라.

【견문각지(見聞覺知)는 여섯 수용(受用)하는 근(根)이라. 상락아정(常樂我淨)은 열반묘덕(涅槃妙德)이라. 생사근본(生死根本)은 오탁업용(五濁業用)이라. 망(妄)을 돌이켜 진(眞)에 맞게 하고자할진댄, 먼저 생사(生死)의 거짓 근원을 간택해버리고 생멸(生滅)하지 아니하는 원만(圓滿)하고 맑은 성(性)을 의지하여 공(功)을 이룰지니, 흐린 물을 맑히되 모름지기 가만히 있는 그릇에 담듯 하니, 맑음으로 허망(虛妄)을 돌이켜 항복(降伏)하여 본래(本來)의 각(覺)에 돌아가게 함이 가만히 있게 함으로 그 모래와 흙을 잠기게 하여 맑은 물로 현전(現前)케 하듯 함이라, 이는 객진번뇌(客塵煩惱)를 처음 항복할 따름이요 처음 돌이켜 항복케 할 뿐이언정 진실로 생멸(生滅) 없는 성(性)이 아니니라. 본원진명(本元眞明)한 각(覺)이 생멸(生滅)이 없는 성(性)을 얻음에 미치면 무명(無明)의 근본(根本)이 영원히 끊어져 각(覺)의 맑고 밝은 상(相)이 이에 정미롭고 순수하여 일체가 변하여 나툼에 번뇌(煩惱)가 되지 아니하나니, 흙 앙금을 걸러내어서 버린 뒤에 그 흐림이 없듯이 하여야사 가히 인지(因地)의 마음을 삼으리라. 인심(因心)이 이와 같으면 과지(果地)의 닦아 증함(修證)이 원만하지 아니함이 없으며 열반묘덕(涅槃妙德)에 맞지 아니함이 없으리니, 이런 까닭으로 인심(因心)을 살피지 아니하지 못함이라.】



[誰作誰受, 누가 짓고 누가 받는가?]

第二義者,汝等必欲發菩提心,於菩薩乘生大勇猛,決定棄捐諸有為相,應當審詳煩惱根本,此無始來發業潤生誰作?誰受?

‘제 이의(第二)의 뜻은, 너희가 반드시 보리심(菩提心)을 발(發)하여 보살(菩薩)의 승(乘)에 나아가 큰 용맹(勇猛)을 내어서 유위상(有爲相)을 결정코 버리고자 할진댄,반드시 번뇌(煩惱)의 근본(根本)을 자세히 살펴보되, ‘이것이 비롯함이 없이 옴으로(無始以來) 업(業)을 발(發)하여 생(生)을 불어나게 하나니, (이 업은)누가 지으며 누가 받는고?’ 하라.



阿難!汝修菩提,若不審觀煩惱根本,則不能知虛妄根塵;何處顛倒處尚不知,云何降伏取如來位?

아난(阿難)아,네가 보리(菩提)를 닦되 만약 번뇌(煩惱)의 근본(根本)을 자세히 보지 아니하면, 허망(虛妄)한 근진(根塵)이 어느 곳이 전도(顚倒)된 곳인 줄을 능히 알지 못하리니, (전도된)곳을 오히려 알지 못허거니 어찌 항복(降伏)하고 여래(如來)의 지위(位)를 취(取)하리오.

【무명(無明)이 업(業)을 발(發)하거든 애취(愛取)가 생(生)을 부르며, 육식(六識)이 능히 짓거든 뢰야(賴耶, 아뢰야식)가 능히 받나니,[뢰야賴耶는 장식(藏識)이라하는 말이니 제법의 종자를 머금어 감추어 있는 것이라.] 숨어서는 번뇌(煩惱)의 근본(根本)이 되고 발(發)하여서는 허망한 근(根)과 진(塵)이 되나니, (그러므로 번뇌의 근본을)깨달아야사 가히 항복(降伏)을 받으며, 항복을 받아야사 가히 과(果)를 취(取)하리라.】


- <능엄경> 권 4.




* 誰作誰受?
(보고 듣고 아는, 이 견문각지見聞覺知로 업業을 발發하여 생生을 짓나니)
누가 지으며 또 누가 받은가?

이 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