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무내처生無來處요 사무거처死無去處다】

2021. 10. 15. 19:57카테고리 없음

옛날에 부처님께서 터억 법문(法門)을 허시니까 법회(法會) 때마다 허름허게 입은 나이 잡순 보살님이 와서 법문을 듣고 말없이 또 돌아가고 돌아가고 허다가, 어느 날 그 노(老) 보살님이 부처님께 특별히 여쭈어볼 말씀이 있다고 간청(懇請)을 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헐 말이 있습니까?”

“사람은 어디서 왔으며, 태어날 때는 어디서 왔으며 죽을 때는 어디로 갑니까?” 이렇게 부처님께 여쭈어봤습니다.

부처님께서 대답허시기를, “생무내처(生無來處)요 사무거처(死無去處)다. 이 세상에 태어나되 온 곳이 없고 이승을 하직(下直)허고 떠나되 갈 곳이... 가는 곳이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비유를 해서 말씀하시기를, “나무와 나무를 비비면 뜻뜻허다가 사뭇 열심히 비비면 거기서 불이 나는데 그 불이 어디서 왔겠느냐? 두 나무를 비벼서 비빈 그 인연(因緣)으로 불이 생겨났지마는 다 타고 나면 그 불이 어디로 가겠느냐?” 이 말은 참 부처님께서 허셨어도 묘(妙)하게 비유를 해서 말씀허셨는데,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해가지고 살면 거기서 애기가 태어나는데 엄마 아빠가 같이 합(合)헌 그 인연(因緣)으로 태어난 것이지 그 애기가 어디서 왔겠느냐? 그 인연으로 왔다가 인연으로 가는 것이니 오되 오는 바가 없고 가되 가는 바가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허셨고,

또 예를 드시기를, “큰 북이 있는데 그 북을 북채로 떵! 치면 거기서 치는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가 어디서 왔느냐? 치고 난 다음에는 소리가 울린 다음에 한참 있다가 없어지는데 그 소리가 어디로 가겠느냐? 인연(因緣) 따라서 왔다가 인연이 다허면 가는 것이니, 그래서 그 소리가 오는 곳이 없듯이 사람도 또한 온 바가 없이 오고 간 바가 없이 가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허셨습니다.

또 예를 들어서 말씀허시기를, “화가(畫家)가 그림을 그리되 종이나 벽이나 또 거기다 물감과 붓과 물감으로 그 그리고, 무슨 그림을 그리냐 하는 것은 그 화가의 마음에 달려있어. 산을 그리고 싶으면 산이 나오는 거고, 소를 그리고 싶으면 소가 나오는 것이고, 돼지를 그리고 싶으면 돼지를 그리고, 이쁜 여자를 그리고 싶으면 여자를 그리고, 그것이 전부 화가의 마음에 따라서 온갖 종류에 그림이 거기에 나타나듯이, 우리가 어떠헌 애를 낳고 또 낳아가지고 어떻게 자라느냐하는 것은 자기가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통해서 마음먹은 대로 자기의 인생이 펼쳐지는 것이고, 자기가 선(善)을 지으면 천당(天堂)에 갈 것이고 악(惡)을 지으면 지옥(地獄)에 갈 것이고 또 축생의... 축생(畜生)으로 태어날 인연을 지으면... 업을 지으면 축생으로 태어날 것이고 열심히 도를 닦으며는 견성성불(見性成佛)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 오되 지은 바를 따라서 이 세상에 오게 되는 것이고 내생(來生)에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은 지은 바에 따라서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허는 것이지. 그래서 이것이 바로 인과법(因果法)인데, 인과법을 바르게 믿고 철저히 살아가면 자기가 지은대로 가는 것이어서 악(惡)을 짓고 남을 해꼬자 허는 사람은 그 인연 따라서 육도(六道)에 가서 무량겁을 윤회(輪廻)를 허는 것이고, 정말 불법(佛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그 최상승법에 의해서 열심히 염불을 허거나 경을 읽거나 참선을 허면 다 견성, 서가모니부처님이나 미륵불처럼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해서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제도(濟度)허게 되는 것이다.


- 송담선사 법문 복전암 5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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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生死는 어느 곳에서 왔습니까?】

부처님 당시에 노파, 늙은 할머니 한 분이 와서 부처님께 질문을 허기를,

“생生 사死는 어느 곳에서 왔습니까?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어디서 왔으며 죽은 뒤에는 어느 곳으로 갑니까?”

하고 여쭈어 봤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생무내처生無來處요 사무거처死無去處니라.
이 세상에 태어나되 온 곳이 없고, 이 세상에서 죽어가되 가는 곳이 없느니라.
비유컨댄 두 나무와 나무를 맹렬히 비비면 거기서 불이 일어나는데, 그 불이 다 타면, 다 타버리면 다시 불이 없어진다. 그러면 이 불은 어느 곳에서 왔으며 어느 곳으로 갔겠느냐.
인연이 합하므로써 불이 일어났다가 인연이 다함으로써 불이 꺼지는 것이다. 모든 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북을 치면 소리가 나는 것도 마찬가지요,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종이와 채색과 손과 화가의 마음이 합해져서 그림이 이루어진 것과 같은 것이다.
몸띵이와 입과 뜻, 이 삼업三業으로 지은 업業의 인연因緣으로 해서 육도윤회를 헌 것이지 어디서 온 곳도 없고 간 곳도 없느니라.”

노파가 그 부처님 말씀을 듣고서 법안法眼을 얻었어.
지혜智慧의 눈을 떴어.

- 송담선사 법문 429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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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問曰何謂魔事.
또 물어 말하길, “무엇을 일러 마魔의 일이라 합니까?”

佛言魔有四事何謂爲四, 一曰身魔身犯衆惡五陰六衰不順佛法, 二曰欲塵魔愛欲情態無有休息,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魔에는 네 가지 일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하면, 하나는 몸의 마[身魔]이니 몸으로 온갖 악으로 오음五陰과 육쇠六衰를 범하여서 부처님의 법法에 순응順應하지 않는 것이요, 둘은 욕진마애욕의 번뇌마[欲塵魔]이니 애욕의 정태(情態)가 쉼이 없는 것이다.

三日死魔生諸想著不興法念四, 曰天魔及與官屬來試乞求無有厭足意止意斷魔則降伏
셋은 죽음의 마[死魔]이니, 모든 생각에 집착을 내면서 법法의 생각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다. 넷은 하늘의 마[天魔]이니 그의 권속들과 함께 와서 시험하여 빌고 구함에 (자신의)의지(意止: 사념처)와 의단(意斷: 사정근)이 충분히 만족함이 없으면 항복하게 되는 것이다.

譬如兩木相揩則自生火還燒其木, 火不從水出不從風出不從地出. 其四魔者亦復如是, 皆由心生不從外來
비유하면 양쪽의 나무를 서로 비비면 저절로 불이 일어나 도리어 그 나무를 태우는데, 그 불은 물에서 나오지도 않았고 바람에서 나오지 않았으며 땅에서도 나오지 않은 것과 같다. 그 네 가지 마魔라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두가 마음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譬如畫師畫作形像隨手大小, 雖因緣合有彩有板有筆, 畫師不畫不能成像, 四魔如是心已堅固便無所起則無四魔
비유하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형상을 그릴 적에 손에 따라서 크게도 작게도 되나니, 비록 인연이 합하여 물감이 있고 물감 판자가 있고 붓이 있다 하더라도, 그림 그리는 사람이 그리지 아니하면 형상을 이룰 수 없는 것처럼, 네 가지의 마魔도 이와 같아서 마음이 이미 견고하여 곧 일어나는 바가 없으면 네 가지 마도 없는 것이다.

所以者何五陰無處四大本無十二因緣無有端緖. 曉了如是則無魔事, 計我人有壽命墮魔見縛分別, 無身乃降伏魔
왜 그런가하면, 오음은 처소가 없고 사대는 근본이 없으며 십이인연은 단서端緖가 없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분명히 깨달아 알면 마魔의 일이란 없는 것이며, 나와 남의 수명壽命이 있다고 헤아리면 마의 견해에 묶여서 분별에 떨어질 것이니, 몸이 없어야 비로소 마를 항복하게 된다.


- <불설초일명삼매경(佛說超日明三昧經)> 상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