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뼈를, 살을 오리고 심장 속에 심어준】

2021. 10. 10. 16:40카테고리 없음

공좌동행세막지(共坐同行世莫知)라
기인당면변봉이(幾人當面便逢伊)리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부앙시청증불매(俯仰視聽曾不昧)하라
하수향외문거귀(何須向外問渠歸)리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공좌동행세막지(共坐同行世莫知)
기인당면변봉이(幾人當面便逢伊).
함께 앉고 같이 걸어가, 같이 행해. 그러면서도 세상 사람은 그것을 알지 못하더라 그 말이여. 누구와 함께 앉으며 누구와 함께 걸어 가냐? 이 몸띵이를 끌고 다니는 그 주인공(主人公)과 나는 앉을 때도 같이 앉고 걸어갈 때도 같이 행하고 밥을 먹을 때도 그 주인공과 같이 밥을 먹고, 그러면서도 세상 사람들은 밥 먹을 때 밥을 쳐다보고 맛이 있고 없는 것이나 분별(分別)을 내고, 앉을 때도 ‘자리가 따뜻허다.’ ‘자리가 차다.’ 자기 주인공은 망각헌 채 그러고 산다 그 말이여. 몇 사람이 그 행주좌와(行住坐臥) 속에서 주인공(主人公)을 만나고 있는가 그 말이지.


부앙시청증불매(俯仰視聽曾不昧)여.
화두를 들고, 항상 화두를 들고 그 화두와 더불어서 하나가 되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수수... 순수무잡허게 그렇게 정진(精進)을 해나가는 사람만이 자기 주인공(主人公)과 항상 같이 살 수가 있다. 그것을 매(昧)허지 아니허게 된다 그 말이여.


(하수향외문거귀(何須向外問渠歸))
어찌 진리(眞理)를 밖에서 그것을 구헌다고 될 것이냐 그 말이여.


.......

우리가 생사(生死)를 면(免)헐라면 참나를 깨달으는 길 밲에는 없습니다. 참나를 깨달을랴면 올바른 방법으로 참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이 되아가지고, 또 불법을 믿는 불자(佛子)로서 나를 깨닫는 수행을 허지 않는다면 어찌 그것을 참다운 불자라 하며 어찌 참다운 부처님의 제자(弟子)라 하겠습니까? 이것은 누가 깨닫게 해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몸이 튼튼허고 경을 줄줄 외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다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이 깨달음에 나아가는 방편(方便)이라 할진댄 그 여러 가지 방편 중에서 최고에 방편, 가장 간단하고도 쉬우며 오직 이 간단헌 방법으로 일체망상(一切妄想)을 극복하고 일체망상을 즉(即)해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방법이 바로 화두(話頭)요 ‘이 뭣고?’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형제자매 도반(道伴)여러분! 산승(山僧)이 여러분에게 정말 팔십 년(80년) 동안 살아오면서 전강(田岡) 대종사(大宗師)로부터서 즉접 내 뼈를, 살을 오리고 심장 속에 심어준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고대로 여러분에게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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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한바탕 추위가 뼈에 사무치지 아니하면 어찌 매화꽃 향기를 맡을 수가 있겠는가? 삼동(三冬)에 뜻뜻해가지고 싱겁게 매화꽃이 피면 그 매화꽃에 향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개 강추위를 헌 끝에 매화꽃이 피어야 그 향내가 진동헌다는 것입니다. 정말 신심과 분심과 대의단으로 열심히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하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도록 열심히 정진(精進)을 해서 다 같이 확철대오(廓徹大悟)헐 것을 기약(期約)을 하면서 법상(法床)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


- 송담선사 법문 복전암 5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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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내용]


* 우리 세계(世界)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고,
우리 몸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우리의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다.
한 번 생겨난 것은 얼마동안 변하다가 결국은 없어져버리는 것이고,
세계나 우리의 몸뚱이나 우리의 마음도 다 마찬가지다 이것입니다.


* 화두(話頭)라고 하는 것은 깨달음으로 가는 표를 끊은 거와 같은 것이고 깨달음에 나아가는 나침반(羅針盤)과 같은 것이어서, 올바르게 받고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해나감으로 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사도(邪道)에 떨어지지 아니한 그러한 소중하고도 소중한 것입니다.


* 화두를 하는 데에는,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는 첫째 대신심(大信心)이 있어야 하고 둘째에 대분심(大憤心)이 있어야 하고 셋째에 화두에 대한 대의단(大疑團)이 있어야 합니다.


* 1700공안 가운데 가장 최초(最初)의 화두고 구경(究竟)의 관문(關門)이요 가장 근본적(根本的)인 화두(話頭)가 바로 ‘시삼마(是甚麽)’화둡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화두’라고 하는 단어가 없었고,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중국(中國)으로 건너와서 그 달마대사로부터 여섯 번째 법(法)을 이어받은 육조혜능선사((六祖慧能禪師)에 이르러서 이 ‘이 뭣고?’ -그때는 화두라고 이름은 안 붙였지만- 공부해나가는 데 있어서 이 ‘이 뭣고?’를 제자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이 임제(臨濟)스님에 의해서 체계화(體系化) 되고 대혜종고선사(大慧宗杲禪師)에 이르러서 완성(完成)이 되았습니다.


* ‘이 뭣고?’를 바로 해나가면 일체 흥망성쇠(興亡盛衰)와 시비(是非)와 시비쟁론(是非爭論) 속에서 거기에 끌려가지 않고 의연(毅然)하게 수행인의 자세를 유지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의단(疑團). ‘이 뭣고?’라고 한 글자가 아니고, 참 ‘이 뭣고?’한 글자만 안 잊어버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 뭣고?’ 했을 때 알 수 없는, ‘이 뭣고?’ 하고 난 뒤에 그 알 수 없는 의심(疑心) 그것을 관(觀)하는 것입니다. 의심은 없이 ‘이 뭣고-’ ‘이 뭣고-’ ‘이 뭣고-’ 그렇게 글자를 외워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알 수 없는 의단, ‘이 뭣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간화선(看話禪)에 요지(要旨)고 바로 해나가는 방법인 것입니다. 이 화두를 올바르게 들고 올바르게 의심(疑心)을 타악 관(觀)해나가면 팔만사천번뇌(八萬四千煩惱)와 마군(魔軍)이가 침범(侵犯)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 우리가 생사(生死)를 면(免)하려면 참나를 깨닫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참나를 깨달을려면 올바른 방법으로 참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이 되어가지고, 또 불법을 믿는 불자(佛子)로서 나를 깨닫는 수행을 하지 않는다면 어찌 그것을 참다운 불자라 하며 어찌 참다운 부처님의 제자(弟子)라 하겠습니까? 이것은 누가 깨닫게 해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몸이 튼튼하고 경을 줄줄 외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다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이 깨달음에 나아가는 방편(方便)이라 할진댄 그 여러 가지 방편 중에서 최고에 방편, 가장 간단하고도 쉬우며 오직 이 간단한 방법으로 일체망상(一切妄想)을 극복하고 일체망상을 즉(即)해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방법이 바로 화두(話頭)요 ‘이 뭣고?’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형제자매 도반(道伴)여러분! 산승(山僧)이 여러분에게 정말 80년 동안 살아오면서 전강(田岡) 대종사(大宗師)로부터서 직접 내 뼈를, 살을 오리고 심장 속에 심어준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고대로 여러분에게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