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7. 19:04ㆍ카테고리 없음
대중에게 보임
- 주장자(拄杖子)를 들고 대중(大衆)을 부르고서 말하기를,
“보았느냐? 사람마다 눈에 동자(瞳子)가 있으니 장님이 아니므로 반드시 보았을 것이다.”
- 주장자를 한 번 치고서 말하기를,
“들었느냐? 낱낱이 가죽 밑에 피가 있어서 죽은 놈이 아니므로 반드시 들었을 것이다.”
“이미 보았고 이미 들었다면 이것이 무엇이냐?”
- 주장자로 ㊀를 하고,
“보고 들은 것은 그만두고 다만 육근(六根)이 갖추어지기 전과 소리와 물질이 나타나지 아니했을 때 아직 듣지 못한 들음과 아직 보지 못한 봄은 바로 그러한 때를 당하여 필경 무엇으로써 증험(證驗)하겠는가?”
- 주장자로 Ⓘ를 하고,
“내가 지금 그대들과 이 일을 보임(保任, 保護任持)하노니 마침내 헛되지 않느니라.”
- 주장자로 ㉤를 하고,
“삼십 년 뒤에 부디 소식(消息)을 잘못 전(傳)하지 말라.”
- 주장자를 의지하고서 법좌(法座)에서 내려오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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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 일을 말하자면 다만 본인이 적실히 간절(懇切)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간절한 마음이 있기만 하면 참 의심(疑心)이 곧 생길 것이다. 참 의심이 생길 때 점차(漸次)에 속하지 않고 당장에 번뇌(煩惱)가 끊어지고 혼침(昏沈)과 산란(散亂)이 모두 제거되어 한 생각도 나지 않고 앞뒤가 끊어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절(時節)에 이르기만 하면 틀림없이 결과를 얻겠지만 만일 이 생각이 간절하지 않아서 참 의심이 생기지 않으면 설령 그대들이 앉아서 방석을 백천만 개나 헤어뜨리더라도 여전히 한낮에 삼경(三更)을 칠 것이다.
미혹(迷)한 가운데 깨달음(悟)이 있고 깨달았다가 다시 미혹한다. 바로 미혹함과 깨달음 둘 다 잊어버리고 나(我)와 경계(境界)를 함께 버려야 납승문하(衲僧門下)에 비로소 말할 자격이 있을 것이다.
대중이여! 이미 미혹함과 깨달음 둘 다 잊고 사람과 경계를 함께 잊었다면 같이 이야기하는 놈은 누구냐? 어서 일러라! 어서 일러라!
만일 이 일을 말하자면 마치 만 길이나 되는 높은 산을 오르는데 한 걸음 한걸음 올라가 거의 상봉(上峯)에 이르러 오직 두어 걸음 남았을 뿐인데 절벽이어서 손으로 잡을 수도 없고 발붙일 수도 없는 것과 같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순전히 강철로 쳐서 만들어진 놈이라야 몸도 목숨도 버리고 왼쪽으로 보고 오른쪽으로 보면서 보아 오고 보아 감에 올라가는 것으로써 목표를 삼고서 비록 천생(千生) 만겁(萬劫)과 만난(萬難) 천마(天魔)를 겪더라도 그 마음 그 뜻은 더욱 더 강해질 것이다.
만일 근본이 진실하지 못한 범범한 무리라면 어찌 절벽만 바라보고 그칠 뿐이겠는가. 바람 소리만 듣고도 물러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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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示眾>
拈拄杖召大眾云,
還見麼。人人眼裏有睛。不是瞎漢。決定是見。
以拄杖卓一下云,
還聞麼。箇箇皮下有血。不是死漢。決定是聞。既見既聞。是箇甚麼。
以拄杖㊀,
見聞即且止。只如六根未具之前。聲色未彰之際。未聞之聞。未見之見。正恁麼時。畢竟以何為驗。
以拄杖Ⓘ,
吾今與汝保任斯事。終不虗也。
以拄杖㉤,
三十年後。切忌妄通消息
靠拄杖下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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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論此事。只要當人的有切心。纔有切心。真疑便起。真疑起時。不屬漸次。直下便能塵勞頓息。昏散屏除。一念不生。前後際斷。纔到者般時節。管取推門落臼。若是此念不切。真疑不起。饒你坐破蒲團百千萬箇。依舊日午打三更。
迷中有悟。悟復還迷。直須迷悟兩忘。人法俱遣。衲僧門下。始有語話分。大眾。既是迷悟兩忘。人法俱遣。共語話者。復是阿誰。速道速道。
若論此事。如登萬仞高山。一步一步將搆至頂。唯有數步壁絕攀躋。到者裏。須是箇純鋼打就底。捨命𢬵身。左睚右睚。睚來睚去。以上為期。縱經千生萬劫。萬難千魔。此心此志。愈堅愈強。若是根本不實。泛泛之徒。何止望崖。管取聞風而退矣。
- [고봉화상선요] 통광스님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