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를 놓친다고? 의심이 안 난다고?】

2021. 8. 5. 12:18카테고리 없음

【천하추수(天下秋隨)가 일엽래(一葉來)라】





안중동자목전인(眼中瞳子目前人)이요
수저금오천상일(水底金烏天上日)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일곡양곡무인회(一曲兩曲無人會)헌디
우과야당추수심(雨過夜塘秋水深)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안중동자(眼中瞳子)가 목전인(目前人)이여.
눈 가운데 동자(瞳子)가 눈앞에 사람이여. 사람에 눈동자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동자가 들어있는데, 그 동자가 누구냐 하면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이거든. 눈앞에 있는 사람의 영상(映像)이 그려진 거여.


수저금오(水底金烏)가 천상일(天上日)이라.
저 물 밑에 금 까마귀는 하늘 위에 해더라. 물속에 비친 금 까마귀, 하늘에 있는 태양의 별명(別名)이 ‘금 까마귀’, ‘금오(金烏)’라 그러고 달의 별명은 ‘옥토끼(玉兎)’라 그러는데, 물속에 있는 금 까마귀가 다른 게 아니라 저 하늘에 떠있는 해가 거기에 비춘 것이다.


일곡양곡무인회(一曲兩曲無人會)헌디
한 곡조(曲調) 타고 두 곡조를 타도 아무도 그 곡조를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


우과야당(雨過夜塘)에 추수심(秋水深)이라.
비 지난 밤 연못에는 가을 물만 깊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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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끔 용화선원이나 이 세등선원이나 또는 회룡선원이나 또 흥천사 반야선원이나 이 선방에서 공부를 해가는 이 공부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사십구 년(49년) 동안에 설하신 어느 경전을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해서 공부를 해 가느냐 허며는 사십구 년(49년) 동안에 설하신 어떠헌 경전도 소의경전을 삼지를 않고 있습니다. 법화종(法華宗)은 <법화경(法華經)>을 소의경전으로 하고, 화엄종(華嚴宗)은 <화엄경(華嚴經)>을 소의경전으로 하고, 또... 그렇지만, 이 선방에서는 그러헌 경전을 의지처로 해서 공부를 허는 것이 아니라 교외별전(敎外別傳), 사십구 년(49년) 동안 설허신 그 교(敎) 밖에 특별히 전(傳)하신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선지(禪旨), 선지를 닦아 증득(證得)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교외별전(敎外別傳)을 세 번에 걸쳐서 전하셨는데, 첫째 「영산회상(靈山會上)에 거렴화(擧拈花).」 영산회상에서 연꽃을 떠억 드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시기 위해서 법상(法床)에 떠억 올라가시니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습니다. 그 꽃비가 내린 그 꽃 한 송이를 부처님께서는 손에 잡고 떠억 들어서 대중(大衆)에게 보이셨습니다. 아무도 그 부처님께서 꽃을 들으신 도리(道理)를 이해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직 가섭존자(迦葉尊者) 한 사람이 그 부처님께서 꽃을 드신 것을 보시고 삐긋이 웃으셨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열반묘심, “정법안장열반묘심(正法眼藏涅槃妙心)을 가섭(迦葉)에게 전(傳)하노라.” 이렇게 사자후(師子吼)를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부처님께서 법을 설허시기 위해서 떠억 등단(登壇)을 허시니까, 가섭존자가 누데기를 입고 그 법회에 떡 참석을 했습니다. 가섭존자를 불러서 부처님 법좌(法座) 옆에 자리를 비켜주시면서 나란히 앉게 허셨습니다. 이것이 「다보탑전(多子塔前)에 분반좌(分半座)」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두 번째 법을 전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는 부처님께서 사라쌍수간(沙羅雙樹間)에 열반(涅槃)에 드셨는데, 다른 모든 제자들은 그 열반도량(涅槃道場)에 참석을 했는데 가섭존자 한 분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디에서 참선을, 도(道)를 닦고 계셨기 때문에 육 일(6일) 만에사 도달을 했습니다. 물론 가섭존자도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證得)한 성현(聖賢)이라 신족통(神足通)으로 날아서 당장 눈 한번 깜박헐 사이에 참석을 헐 수가 있었지만, 너무너무 부처님을 존경하는 까닭으로 신통력을 쓰지 아니하고 직접 두 다리로 걸어서 참석을 허셨기 때문에 육 일(6일)이라고 허는 시간이 걸렸던 것입니다. 부처님 다리, 발 있는 편에 서서 부처님께 떠억 삼배(三拜)를 올렸습니다. 육 일(6일) 전에 열반에 드신 부처님께서 관(棺) 밖으로 두 다리를 쑤욱 뻗어내셨습니다. 뻗어서 그 보였었습니다. 그것이 「곽시쌍부(槨示雙趺)」라 하는 것입니다.

「영산회상(靈山會上)에 거렴화(擧拈花)」, 「다보탑전(多子塔前)에 분반좌(分半座)」, 그리고 「곽시쌍부(槨示雙趺)[雙樹下槨示雙趺]」, 이 삼처(三處)에서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으로 이 법(法)을 보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나를 깨달라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최상승법(最上乘法)에 근본(根本)인 것입니다. 꽃을 들으신 도리와, 자리를 노나서 앉으신 것과, 관 밖으로 두 다리를 뻗어 보이신 이 도리는 경전에는 씌어있지 않습니다. 경전에 쓰여 있는 도리로는 이 최상승법을 해석헐 수가 없습니다. 오직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한 그 지혜(智慧)의 눈으로써 만이 이 도리는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눈 가운데 동자(瞳子)는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이요, 물속에 금 까마귀는 하늘 우에 떠있는 해다.」 이 도리는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눈 속에 있는 동자는 눈앞에 사람이요, 물속에 있는 금 까마귀는 하늘에 떠있는 태양이다.’ 사량분별심으로 아는 것이 아니여. 그 도리를 다시 말하면, 「우과야당(雨過夜塘)에 추수심(秋水深)이다, 비 지낸, 비가 내린 뒤에 집 앞에 연못에는 가을 물이 깊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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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억강남삼월리(常憶江南三月裡)헌디
자고제처백화향(鷓鴣啼處百花香)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인간노도삼봉진(人間路到三峰盡)헌디
천하추수일엽래(天下秋隨一葉來)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상억강남삼월리(常憶江南三月裡)허니
항상 저 강남(江南)에 삼월(三月)을 생각하니,


자고제처백화향(鷓鴣啼處百花香)이로구나.
자고(鷓鴣)새 우는 곳에는 일 백 꽃이 난만(爛漫)히 피었더라.


인간노도삼봉진(人間路到三峰盡)한데,
인간의, 인간이 가는 길이 삼봉(三峰)에 이르러서 다했어. ‘삼봉’이란 산은 바다 가에 절벽으로 탁 서있는 산인데, 인간이 사람이 그 삼봉에 도달허면 거기는 절벽이기 때문에 절벽 끝에는 새파란 바다가 있기 때문에 길이 거기서 끊어진 것이다.

‘이 무엇고?’ 선지식으로부터 받은 화두(話頭) 하나를 가지고 앉아서도 ‘이 뭣고?’ 서서도 ‘이 뭣고?’ 누워서도 ‘이 뭣고?’ 밥을 먹으면서도 ‘이 뭣고?’ 똥을 누면서도 ‘이 뭣고?’ 세수를 하면서도 ‘이 뭣고?’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서 ‘이 뭣고?’ 하고 화두를 들면서, 간절히 화두를 들면서 언제 잠이든, 드는 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눈이 딱 떠졌단 말이여. 눈이 떠져서 아직 일어나기도 전인데, 몸을 일으키기도 전인데 눈을 딱 뜨자 어제 저녁에 들, 누워서 들었던 그 화두가 고대로 들어져 있는 것을 안다 그 말이여. 아직 도량석(道場釋)이 시작허지 안했기 때문에 함부로 일어나서 부시럭 부시럭 헐 수는 없고 가만히 일어나서 그 자리에서 앉었는데, 그 화두가 새로 들지 안했는데 어제 저녁에 잘 때 들었던 그 화두가 고대로 들어져 있다.

목탁석(木鐸釋)을 헐 때, 딸딸딸 목탁소리가 나면서 불도 정식으로 켜고 이불도 개서 다 넣고 목침(木枕)도 치우고 그러면서도 그 화두가 고대로 들어져 있어. 세수허기 위해서 칫솔과 수건을 들고 나갈 때도 고대로 들어져 있어. 세면장(洗面場)에 들어가서, 변소에 가서 오줌을 누어도 고대로 화두가 들어져 있어. 목욕탕에 가서 세수, 칫솔질을 허면서도 그 화두가 고대로 들어져 있어. 세수를 허면서 잠깐 그 화두를 놓쳐버려. 다시 또 화두를 떠억. 이 화두라 하는 것은 처음에는 잊어버린 때가 많고 금방 있었던 것이 금방 누가 불러서 대답허는 바람에 깜박 잊어버리기도 하고 이렇게 자최 없이 나왔다 들어갔다 허지만, 그래도 또 챙기고 또 챙기고 허며는 잊어버리는 시간은 차츰 적어지고 들려있는 시간이 많게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화두를 주삼야삼(晝三夜三)에 들고 또 들고 들고 또 들고. 망상이 일어나는 것을 전혀 성화(成火)댈 필요가 없고, 망상 때문에 공부가 되느니 안 되느니 그러헌 생각조차도 헐 필요가 없어. 자꾸 들면 화두는 떡 들고 있는데도 이 생각 저 생각이 스쳐가는 것이지 그것 때문에 공부를 못허는 것은 없어. 밖에 나가서 화두를 들고 있어도 봄이면 봄바람이 내 몸을 스쳐가고 가을이면 가을바람이 스쳐가고, 스쳐간다고 해서 뭐 해로울 것이 있느냐 그 말이여. 바람이 시원, 바람이 시원허게 귓가를 스쳐가며는 그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공부허는 것이지 뭘 그것 때문에 공부를 바람 분다고 공부를 못혀?

번뇌망상(煩惱妄想)이 일어나는 것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 무슨 생각이 지내간 생각이 일어나건 미래의 생각이 일어나건, 무슨 좋은 생각이 지내가건 기분 나쁜 생각이 지내가건, 누가 옆에서 떠들 건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 말이여. 바람 스쳐가듯이 그냥 놔둬버리고 나는 오직 그 화두에 관한 화두(話頭)에 의심(疑心)만을 떠억 관(觀)해나간 것뿐인 거여. 옆에서 떠들거나 기차소리가 나거나 비행기소리가나거나 뭔 상관이 있느냐 그 말이여. 떠억 앉어서 공부를 하다가 졸리면 나가서 한 오 분(5분) 포행(布行)을 해서 잠을 깨가지고 들어와서 하고, 앉아서도 하고 서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밥 먹으면서도 하고.

이 화두가 언제 잘 나가냐 하면 밥 먹을 때. 죽비만 치며는 남에게 뒤질세라 정신없이 막, 먹는 것이 아니라 막 그냥 침도 바르기도 전에 막 삼키고 그러는데 그때에는 화두가 달아나버려. 어째서 밥을 먹는데 화두가, 화두를 놓치느냐 그 말이여. 밥 먹은데 화두를 놓치며는 어디에 떨어지냐 하며는 아귀보(餓鬼報)를 받게 된다 그 말이여. 밥 먹는데 화두를 놓쳐버리고 그 맛있게 먹는데에 탐착(貪著)을 했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 사람은 아귀보를 받게 된다 그 말이여. 정든 부모와 고향을 등지고 출가(出家)해서 참선(參禪)헌다 해가지고 겨우 아귀보를 받고 말거여?

밥을 떠서 떠억 입에다 넣고 바로 반찬이나 국을 마시지 말고 맨밥으로 한 삼십 번(30번) 내지 오십 번(50번)을 씹으라 그 말이여. 목구녁을 딱 닫아놓고. 그렇게 씹다보면 처음에는 고소허다가, 한 이십 번(20번) 씹으면 고소허고 한 삼사십 번(30-40번) 씹으면 그 밥이 다디 달아지는 것이여. 침 속에 있는 지아스타(Diastase) 라고 허는 그 음식을 소화시키는 엿기름과 같은 성분이 충분히 밥에 섞여지기 때문에 밥이 아주 꼬숩다 못해서 나중에는 다디 달아지는데, 그때에 김치가 되았건 콩나물이 되았건 나물이 되았건 그것을 그때사 집어넣고 다시 한 이십여 번을 씹어서 잘 섞어서 그래가지고 삼켜보라 그 말이여. 그 밥이 속에 들어가서 금방 소화가 되아가지고 여지없이 그 속에 있는 영양을 잘 섭취허고 꼭 필요 없는 찌꺼기만을 딱 대변으로 배설(排泄)을 허게 돼. 한 숟가락을 그렇게 헌 다음에 또 둘쨋 번 숟가락을 또 이 밥을 따악 떠서 목구먹을 딱 닫아놓고 한 삼사십 번(30-40번)을 씹어.....(녹음 끊김).....

..... 의원(醫員)이 좋은 곳만 있다 하며는 백사(百事)를 제쳐놓고 쫓아가서 침을 맞고 뜸을 뜨고 약을 화제(和劑)를 내서 약을 먹고 야단들이다 그 말이여. 이것이 모다 공양을 들 때에 여법하게 들지를 못하고, 공양을 드는 동안에 화두를 놓쳐버리고 그렇게 속식(速食)을 허고, 그리고 무슨 대중공양이 들면 간식을 많이 하고, 소화는 잘 안 되는 디에다 눈에 띠였다하며는 또 먹고, 만두다 국수다 그런 찰밥이다 별식(別食)이 나오면 먹고 토할지언정 막 퍼 넣거든. 이래가지고서야 어찌 도 닦는 수행인(修行人)이라 할 것이냐 그 말이여. 그러니 공부는 그렇게 해서 잘 못허고 화두는 놓쳐버리고 아귀보 밖에는 무엇을 받을 것이냐 그 말이여.

이러헌 사소한 얘기를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절대로 이것이 사소(些少)한 일이 아니라 수행허는 사람은 제일 첫째 번으로 명심(銘心)을 해야 할 그러헌 중대(重大)한 문제여. 「밥 잘 먹고, 똥 잘 누어야」 승속(僧俗)을 막론(莫論)하고 모든 일이 잘 되아가지, 이 일이 잘못되면 절대로 백만사(百萬事)가 옳게 되는 법이 없어요.


인간노도삼봉진(人間路到三峰盡)이여.
인간이 삼봉에, 인간에 가는 길이 삼봉(三峰)에 이르러서 길이 끊어져. 화두를 들고 또 들고 해서 그 의심이 커질 대로 커져서 간절허고 간절허다 못해 그 의심이 툭! 일조(一朝)에 터질 때가 와. 마치 풍선을 불고 또 불고 불고 또 불다 보며는 더 이상 풍선이 커지지... 커질 수가 없는 때에 이르르면 그 풍선이 터지듯이, 화두(話頭)에 대한 의단(疑團)이 간절하고 더 간절허다 못해 더 이상 간절헐 수 없을 때에 이르르면 그 의단이 툭 터지는 것이다 그 말이여.


천하추수(天下秋隨)가 일엽래(一葉來)라.
천하에 가을이 오동잎 하나 떨어진 디에서 가을 소식(消息)이 전해지는 것이여. 온 천하가 다 단풍이 져야만 가을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오동이파리 하나 떨어짐으로부터 천하에 가을은 오는 것이다 그 말이여.


이 참선은 점진(漸進)이 아니여. 점진적으로 차츰차츰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비약적(飛躍的)인 것이여. 확철대오(廓徹大悟)라 하는 것은 돈오(頓悟)여 돈오. 확철대오, ‘몰록 깨달라버리는 것’이지 차츰차츰 알아들어가는 공부가 아니여. 그래서 어떻게 허면 확철대오를 헐 수 있느냐하면 사량분별심을 써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자꾸 분별하고 분석하고 사량(思量)하고 복탁(卜度)해서 따져서 알아들어가는 한에는 확철대오는 없는 것이여. 화두라 하는 것은 사량분별심으로 따져서 알아들어가는 것이 아니여.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나 ‘판치생모(板齒生毛)’나 ‘조주무자(趙州無字)’나 또는 ‘시삼마(是甚麽)’나 문헌(文獻)에 오른 공안(公案)이 천칠백(1700)인데 어느 공안이 되았건 어떠헌 선지식으로부터 한 화두(話頭)를 간택(揀擇)을 받았으면 공부가 잘 되거나 공부가 잘 안된다고 느껴지거나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막론하고 화두에를... 화두를 탓허지를 마. 화두를 탓허지를 말고 오직 그 화두 하나에 의심(疑心)만을 들고 관조(觀照)해나가는 것이여.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판치생모?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 무자(無字)를 하는 사람은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그 알 수 없는 생각뿐이어야 하는 거여. ‘이 무엇고’를 하는 분은 ‘이 무엇고?’ ‘「이」 허는 이놈이 무엇고?’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의심(疑心)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疑心)만을 묵묵히 관조(觀照)허는 거여. 보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 ‘이 뭣고?’ 헌 의심을 이렇게 떠억 봐. 관조허는 거여. 그 의심이 있는 동안에는 거기다 자꾸 ‘이 뭣고?’ ‘이 뭣고?’ 자꾸 거기다가 덮치기로 자꾸 안해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여. 간절한 의심을 내기 위해서 있는 디에다 자꾸 덮치기로 들어쌓면 못쓰는 것이여. 오히려 그 정경(定境)이 흩어지는 거여. 그러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그 의심(疑心)을 묵묵히 관조(觀照)허는 거여. 그러다가 그 의심이 희미해지거나 없어지면 그때에사 다시 ‘이 뭣고?’ 이렇게 드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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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참선공부를 허는 사람은 먹는 음식도 너무 작게 먹어서도 아니 되고 너무 많이 먹어서도 아니 되고 적당허니 이 몸을 유지해나갈 만큼 적당허게 먹어. ‘적당허게 먹는다’는 것은 지혜롭게 먹어야 하는 것이여. 지혜롭게 음식도 먹어야 하고 이 육체의 관리도 지혜롭게 해나가야 되는 것이여. 어리석게 허면 자기 딴은 열심히 헌다고 허는 것이 탈을 내고야만 마는 것이여. 어떻게 허는 것이 지혜롭게 허고 어떻게 허는 것이 어리석게 허는 것인가 그 분간(分揀)을 못허기 때문에 선지식(善知識)을 여의고 공부를 허면 도(道)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힘은 얻기도 전에 탈부터 나기 때문에 ‘선지식(善知識)을 여의지 말고 공부를 해라.’

달마(達磨)스님께서도 [혈맥론(血脈論)]에 「불인사오자(不因師悟者)는 만중희유(萬中希有)라」 「불급심사(不急尋師)하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스승 없이 공부해가지고는 만 명 가운데에도 하나도 도업(道業)을 성취(成就)허는 사람이 있기가 어렵다」 하신 것이고,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이렇게 달마스님, 우리 참선허는 사람에게는 생불(生佛)과 같은 존재이신 달마(達磨)스님께서 그렇게 간곡(懇曲)히 말씀을 허신 것입니다.

참선(參禪)이라는 게 다른 것이 아니여. 밥을 먹을 때나 ‧ 옷을 입을 때나 ‧ 똥을 눌 때나 ‧ 앉아서나 ‧ 누울 때나 ‧ 차를 탈 때나 ‧ 걸어갈 때나, 누구한테 억울한 말을 듣고 주먹 같은 놈이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를 때나 ‧ 슬플 때나 ‧ 괴로울 때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한 생각 단속(團束)허는 것이 참선이여. 눈으로 무엇을 볼 때 ‧ 귀로 무엇을 들을 때 ‧ 코로 냄새를 맡을 때 ‧ 혀로 맛을 볼 때 ‧ 손으로 무엇을 만질 때 ‧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 한 생각 일어난 딱 그때에 화두(話頭)를 떠억 드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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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간형불애아(鏡裏看形不礙我)하고
미목분명비별인(眉目分明非別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경리견수형(鏡裏見誰形)이며
곡중문자성(谷中聞自聲)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경리간형불애아(鏡裏看形不礙我))
거울 속에 모습을 보고 나에 걸리지... 나를 의심허지를 말아라. 거울 속에 비친 그 사람이 누구냐 그 말이여. 자기의 얼굴이 아니고 그것이 무엇이냐?


미목분명비별인(眉目分明非別人)이여.
눈썹 생긴 것 허며 눈동자 허며 얼굴모습이 분명해서 딴 사람이 아니더라.


(경리견수형(鏡裏見誰形))
거울 속에 얼굴은 그것이 누구에 얼굴이겠냐?


(곡중문자성(谷中聞自聲))
저 산골짜기에 들어가서 소리를 지르면, ‘아무개야!’하고 소리를 지르면 산에 산울림이 또 ‘아무개야’ 허고 똑같이 흉내를 내고, ‘네끼놈!’ 하고 욕을 허면 산울림도 ‘네끼놈.’ 허고 욕을 헌다 그 말이여. 그 소리가 누구에 소린가?

거울 속에 비친 그 얼굴만이 자기 얼굴이고 산골짜기에 들어가서 고함을 치면 그 되돌아오는 소리가 제 소리일 뿐만이 아니라,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견문각지(見聞覺知)허는, 보고 ‧ 듣고 ‧ 깨달아 아는 것이, 일월성진(日月星辰)과 산천초목(山川草木)과 삼라만상(森羅萬象)과 두두물물(頭頭物物)이 그것이 다 그게 누구에 모습이며 누구에 소식(消息)이냐 그 말이여. 어째서 자기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왜 남인 줄 알고 따로 찾을 것이냐 이 말이여.

화두를 놓친다고? 의심이 안 난다고? 화두를 들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바로 말하면 화두를 놓치지가 어려운 거여. 눈을 떠도 거기에 있고 눈을 감아도 거기에 있고, 귀를 막아도 거기에 있고 귀를 열어도 거기에 있고, 손 닿는 것, 발 닿는 거, 천상천하(天上天下), 동서남북(東西南北), 사방(四方) 사유(四維) 상하(上下),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가... 어찌 화두(話頭)를 어떻게 해서 놓쳐? 금년 삼동(三冬)에 화두를 놓칠라야(놓치려야) 놓칠 수 없고 안 볼라야(안 보려야) 안 볼 수 없도록 이렇게 공부를 다구쳐 나가기를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

이렇게 다구쳐 나가는데 거기에 무슨 시비(是非)가 있으며, ‘니가 잘 허고, 내가 잘 허고’ 뭘 그럴 일이 있으며, 언제 한화잡담(閑話雜談)헐 겨를이 있어. 대중(大衆)이 살아가자니 규칙(規則)을 세워야 허기 때문에 시간 맞춰 목탁치고 시간 맞춰 죽비는 치지마는, 분심(憤心)과 신심(信心)과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분상(分上)에는 목탁을 치거나 죽비를, 방선죽비(放禪竹篦)를 치거나 입선죽비(入禪竹篦)를 치거나 종을 치거나 상관이 없는 거여. 다못 대중을 따라서 규칙을 지킬 뿐이지 방선을 허거나 입선을 허거나 무슨 상관이 있어. 다못 알 수 없는 의단이 눈앞에 있을 뿐이지.

밥이 되면 된 대로 한 숟갈 먹고, 밥이 질면 진 대로 한 숟갈 먹고, 반찬이 짜면 한 숟갈 먹고,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죽이면 죽, 밥이면 밥, 국수면 국수, 만두면 만두, 해주는 대로 먹고 석 달이 하루같이 이렇게 공부를 해서, 내년 정월(正月)에 해제(解制)가 될 때 정말 도(道)에 힘을 얻어서 번쩍거리는 눈동자로 한 사람도 낙오자(落伍者)가 없이 도(道)에 힘이 팔만, 사지백체(四肢百體)와 오장육부(五臟六腑)와 팔만사천모공(八萬四千毛孔)에서 도(道)에 향기(香氣)가 풍기도록 알뜰히 정진을 허기를 재삼(再三) 당부(當付)를 하고 말을 맺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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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담선사 법문 세등 36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