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용상핍서침등寧容象逼鼠侵藤】

2021. 7. 31. 14:06카테고리 없음

【영용상핍서침등(寧容象逼鼠侵藤)이라.】

여러분은 「안수정등(岸樹井藤)」이라고 허는 법문을 [치문(緇門)] 첫 장에서 배왔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광야(曠野)를 여행할 때에 산데미같이 큰 코끼리가 썽이 나가지고 나를 짓밟아서 잡어 먹기 위해서 나를 쫓아옵니다. 도망가다가 마치 눈앞에 나타난 샘 웅뎅이를 만났습니다. 웅뎅이에 마치 칡덩쿨이 늘어져있었습니다. 그 칡덩쿨을 잡고 웅뎅이 밑으로 들어가서 대롱대롱 매달렸습니다. 저 우물 밑구녁을 보니까, 밑바닥을 보니까 거기에는 독룡(毒龍)와 독사(毒蛇)가 혀를 널름거리면서 있었습니다. 밑으로 내려가자니 독룡 독사가 기다리고 있고, 위로 올라가자니 코끼리란 놈이 우물 밖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있고, 또 팔은 점점 아퍼오고 있고, 그런데 그때 흰 쥐와 꺼멍 쥐가 그 칡넝쿨을 서로 번갈라가면서 그 칡넝쿨을 갉아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마치 그 흰쥐 검은 쥐가 이렇게 칡덩쿨을 갉아먹고 있는,

-이 쥐란 놈은 공연히 시간만 있으면 무엇을 딱딱딱딱딱 갈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송곳니가 길어나서 자기가 자기 턱을 그 송곳니가 뚫고 나가게 되기 때문에 그 송곳니가 짧아지게 허기 위해서 시간만 있으면 무엇을 긁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때마치 그 칡덩쿨에 매달려있는 벌집에서 벌이, 벌꿀이 넘쳐흘러가지고 똑 똑 떨어지는 것입니다. 아 그것이 자기 마치 입술에 똑 떨어지니까 아 그것을 딱 핥아먹어봤거든. 아 그 달콤허니 썩 좋다 그 말이여. 그래서 또 떨어지면 받아 묵고 받아 묵고 허는 가운데에 코끼리란 놈이 저 우물 밖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허는 사실도 망각(忘却)하고 저 우물 밑바닥에는 독룡 독사가 자기를 떨어지기만 허면 먹을랴고 기달코 있는 사실도 망각하고, 흰쥐와 검은 쥐가 칡넝쿨을, 칡덩쿨을 번갈라가면서 갉고 있다고 허는 사실도 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살아갈 수가 있느냐?

어떻게 해야만 살아갈 수가 있느냐? 우리의 신세가 무상살귀(無常殺鬼), 무상살귀가 우리를 뒤쫓고 있습니다. 그 무상한 그 무상살귀. 이 세상에 빈부귀천(貧富貴賤)을 막론하고 이 무상살귀에게는 당해낼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 산더미 같은 재산이 있고 하늘을 찌르는 권리와 명예가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천하를 흔드는 대문장(大文章)이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호랭이를 사로잡는 기운이 있어도 이 무상(無常) 앞에는 당해낼 길이 없습니다.

저 우물 밑에서 기달코 있는 ‘독룡 독사’는 무엇을 비유헌 것이냐? 숨 한번 거두면 우리는 삼악도(三惡道)가 기달코 있는 것입니다. ‘흰 쥐와 검은 쥐’가 무엇이냐? 무엇을 비유헌 것이냐? 해와 달인 것입니다. 밤 되았다 낮 되았다 하면서 칡덩쿨은 차츰차츰 끊어질 그 시간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칡넝쿨’은 우리에 명(命)줄인 것입니다. 우리에 명줄은 밤이 가고, 또 해가 뜨고 달이 뜨고 해가 뜨고 달이 뜨고 허는 가운데에 우리의 명이 짧아지듯이 칡덩쿨은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똑 끊어질 때, 칡덩쿨이 끊어질 때 우리는 독랴... 독사 독룡에게 잡어먹히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어떻게 허면 여기서 살아갈 수가 있느냐? 도망갈 수도 없고 떨어질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살아갈 수가 있느냐? 이것은 천칠백 공안(1700공안)에 하나인 것입니다. ‘대관절 이 몸띵이 끌고 다니는 이 주인공’ 이놈을 깨닫게 되면 바로 그 안수정등(岸樹井藤) 공안(公案)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코끼리는 쫓아오고 쥐는 칡덩쿨을 긁어먹고 있는데 그러헌 상황 속에 놓여있다고 허는 사실을 우리는 일분일촌들(1분 1초인들) 망각할 수가 있겠습니까? 물이 밭아져가는(말라져가는) 웅뎅이에 송사리 때와 같은 우리에 처지. 웅뎅이에, 칡덩쿨에 매달려있는 우리의 처지란 것을 단 일 초(1초) 동안도 망각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너무 장구(長久)한 말을 많이 했습니다. 허물을 이 주장자(拄杖子)에게 맽기고 내려갑니다.

쿵!(주장자로 법상(法床)을 치심)


- 송담선사 법문 세등 29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