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승화강水昇火降、콩팥이라는 물이 담긴 솥에 생각이라는 불을 지지며】

2021. 6. 29. 13:14카테고리 없음


[세등선원 8번 법문의 간략한 내용]


*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법문(法門)에 대한 말씀.
- 잘 들으며는 약(藥)이 될 수도 있고 잘못 들으며는 오히려 긁어서 부스럼을 내는 그러한 위험성도 있는 것입니다.

- 법문을 듣고서 다못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의심(疑心)이 돈발(頓發)을 해서 꽉 막혀가지고 막힌 그 의심 하나만이 현전(現前)을 한다고하며는 그 사람은 법문을 참 옳게 들은 것이고, 그렇지를 못하고 이리저리 분별하고 사리상량(邪理商量)을 붙여서 따지고 이런다며는 그것은 법문을 옳게 들은 사람이 못되는 것이여.


* 세상에 공부는 많이 듣고 알고 있어서 많이 기억을 하고 머릿속에 알고, 많이 알고 있어야 그 사람이 ‘유식하다’ 그러고 ‘참 훌륭한 학자’라 그러지마는, 이 참선공부는 많이 알고 있는 그러한 것은 오히려 병(病)이요 공부가 옳게 되어간 것이 아니다. 비유를 해서 말하자며는 세속(世俗)에 공부는 병 속에다가 많은 것을 담는 공부라 하겠지마는, 이 불법(佛法)에 참선(參禪)공부는 이미 들어있는 것도 다 쏟아 내버려야, 될 수 있으면 쏵 쏟아서 추호(秋毫)도 냄새까지도 나지 아니할 정도로 깨끗이 부셔내는 공부다 그 말이여. 그래서 고인(古人)네가 말씀하시기를, “불조(佛祖)가 나와서 설법(說法)을 해도 깨닫자 생각도 아니 하고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와 잡으러 와도 두려워 할 줄도 모르고 철두철미(徹頭徹尾) 똥 멍청이, 천치, 바보가 된다며는, 깨달을 줄도 모르고 죽인다고 해도 두려울 줄도 모르고 그렇게 철저히 바보가 된다며는 내가 너를 인가(印可)하리라.” 이렇게까지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 다 썩은 나무둥치가 되어가지고, 나무둥치가 썩지 아니한 나무둥치는 나무꾼이 불을 때기 위해서 끌텅(그루터기)을 캐가기라도 하지마는 완전히 버근버근하니 썩어 문드러져버린 그러한 나무둥치는 나무꾼도 그것을 돌아다보지도 않고 아무 쓸모없는 물건이다 그 말이여. 그러한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가지고 오직 자기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을 간절히 지어가야, 그래야 그 사람에게는 깨달을 분(分)이 있는 것이다 그 말이여. 잘난 척하고 똑똑한 척 하고 유식한 척하고 이러한 것은 우리 공부를 해나가는데 있어서 장애가 될 뿐이지 아무 이익이 없는 것이여.


* 번뇌망상 일어나는 놈이나 ‘이 뭣고?’ 들은 놈이나 내나 그놈이 깨닫지 못했으면 그것이 중생심(衆生心)이고, 버릴려고 하며는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버릴려고 한 그 생각도 역시 번뇌망상이여. 중생심이여. 버릴려고 하지를 말고 일어나는 그 생각으로 ‘이 뭣고?’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렇게만 들어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 쥐 잡아먹는 쥐.
어떤 사람이 쥐를 잡기 위해서 쥐를 한 마리를 산 채로 잡어가지고 그 쥐를 통에다가 가둬 놓고는 2-3일을 굶겼다. 굶겨 놓으니까 이 쥐란 놈이 배가 고파서 발광(發狂)을 하는데, 거기다가 다른 쥐를 한 마리를 잡아가지고는 그 쥐 고기를 썰어서 넣어줬는데 워낙 이놈이 쥐가 배가 고프니까 쥐 고기를 먹기 시작했는데, 그래 또 조금 있다 또 조금 주고 주고 해서 완전히 그 쥐로 하여금 쥐 고기를 먹는 것을 습관을 들여가지고 나중에는 산 쥐를 갖다가 넣어주었다 그 말이여. 그러니 배가 고프니까 산 쥐도 잡아먹었어. 그래서 여러 마리를 쥐를 잡아 먹고는 아주 쥐잡아먹는 아주 선수가 되었다 그 말이여. 그런 다음에 그 쥐를 밖으로 해방(解放)을 시켜주었는데, 그 쥐란 놈이 이제는 쥐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쥐구멍으로 들어가서 잡아먹고 그래가지고는 온 집안에 있는 쥐를 다 잡아먹었다 그 말이여. 고양이는 쥐가 구멍에서 나와야 잡아먹지마는 쥐구멍에 들어갈 수는 없다 그 말이여. 몸뚱이가 크고 쥐구멍은 작아서. 그래서 고양이도 잘 못 잡아먹는 쥐를 쥐는 지 몸뚱이가 작으니까 맘대로 쥐구멍으로 이 구멍 저 구멍 다니면서 쥐는 쥐는 다 잡아먹어버렸다 그 말이여. 다 잡아먹고 더 잡아먹을 것이 없으니까 배가 터져서 죽었어.

그런데 이 화두(話頭)도, 내나 이 화두 들고 있는 놈이 지가 깨닫지 못했으니 중생심(衆生心)이지 화두 든다고 해서 그것이 별것이냐 그 말이여. 그러나 이 ‘무자(無字)’, 또는 ‘이 뭣고?’, 또는 ‘판치생모(板齒生毛)’ 이 화두는 중생심으로 화두를 들지마는 오직 이 화두로써 일체망상(一切妄想) 일어나는 놈을 이놈이 다 잡아먹거든. 그래가지고 다 잡아먹고 더 이상 일어날 망상이 없고 이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으로 가득 차게 되며는 밥을 먹어도 ‘이 무엇고?’ 옷을 입어도 ‘이 뭣고?’ 똥 눌 때도 ‘이 뭣고?’ 걸어갈 때도 ‘이 뭣고?’ 차를 탈 때도 ‘이 뭣고?’ 앉아서도 ‘이 뭣고?’ 누워서도 ‘이 뭣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간절해서 산을 보나 물을 보나 전체가, 이 세계(世界)가 이 자기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으로 가득 차서 더 이상 이 의심이 커질 수가 없고 간절할 수가 없을 때에 이 화두가 툭 터질 것이다 그 말이여. 마치 쥐는 쥐는 다 잡아먹고 더 잡아먹을 쥐가 없고 그래가지고는 배 터져 죽듯이, 이 화두도 의심이 커지고 커지고 해서 더 이상 커질 수가 없게 되며는 지가 터질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이 ‘조주(趙州)에 뜻’을 깨닫고, ‘무량겁래(無量劫來)로 내려오는 나의 마음’을 깨닫고, ‘불조(佛祖)의 뜻’을 깨달아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는 것이다 그 말이여.


* 물론 화두를 들고 자꾸 정진하게되며는 정신(精神)도 집중(集中)이 되고 정신(精神)이 통일(統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 안 되는 것은 아니나, 정신통일 하는 그것은 중간에 그러한 통일도 되는 것뿐이지 ‘통일되게 하기 위해서 이것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말이여. 그렇다며는 시계를 보고는 ‘시계’ ‘시계’ 그렇게만 해도 그것도 정신이 한 군데 모여지니까 그러면 ‘시계’ ‘시계’하고 앉았어도 될 것이 아니냐 그 말이여. 그런 것이 아니여. 알 수 없는 의심, 의심(疑心)에 가서 문제가 달려있는 것이여. 의관(疑觀), 알 수 없는 의심관(疑心觀)이라야지, 무엇이고 한 군데만 정신을 집중하면 되는 것은 아니여. 의심이라야, 그 의심이 간절해서 전체(全體)가 의심(疑心)이 되었을 때 의심이라야 의심아래에 깨닫는 것이지 화두를 들되 의심 없는 화두는 그게 옳게 공부한 것이 아니여.


* 무자화두(無字話頭)도 덮어놓고 ‘무(無)-’ ‘무(無)-’ 허고 무자(無字)만 들이다 보라고 가리키는 선지식(善知識)이 있거든. 그것은 화두를 옳게 지도한 선지식이 아니다 그 말이여.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그 ‘어째서?’ ‘어째서?’에다가 눈을 박아야지 ‘무(無)-’ 무만, 항시 무(無)만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화두를 옳게 한 것이 아니다 그 말이여. ‘어째서?’ ‘어째서 무(無)라 했는가?’ 그 ‘어째서?’ 라고 하는 그 알 수 없는 거기에다가 우리의 생각에 초점(焦點)을 거기다가 두어야 한다 그 말이여. ‘어째서?’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 무엇고?’ 한 그 이 ‘무엇?’ ‘무엇이냐?’ 하는 그 알 수 없는 의심, 일체 화두는 다 그 의심(疑心)에 가서 요점(要點)이 있는 것이여.


* 수승화강(水昇火降).
복식심호흡(腹式深呼吸)이라 하는 것은 호흡을 깊이 들이마셔가지고 저 아랫배까지 호흡을 들이마셨다가 조용하니 내쉬는, 깊이 들이마셔가지고 조용히 내시되, 깊이 들이마시니까 자연히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볼록해진 다음에는 또 조용하니 숨을 내쉬니까 배가 홀쪽해지는, 「숨을 마셨다 내쉬었다 하는 데에 따라서 아랫배가 볼록해졌다가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 하복부(下腹部) 단전(丹田)에다가 거기에다가 화두(話頭)를 두고 의심(疑心)을 관(觀)하라」 그 말이여. 그렇게 하며는 우리의 기운은 자연히 아랫배로 내려가가지고 머리가 시원해져서, 그래서 사람 몸에는 불기운과 물기운이 있는데, 화(火)와 수(水)인데, 우리의 모든 생각은 불기운에 해당이 되는 것이여. 그래서 생각은 아래로 써야 해. 그래서 단전에다가 생각을 거기다가 집중을 해야 불기운은 위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고, 단전 있는 데에는 우리의 그 콩팥 신장(腎臟)이 있는데 신장은 그것이 수(水)인데, 그 콩팥에다가 우리의 생각을, 생각은 화(火)인데, 생각의 불을 거기다가 지져댐으로 해서, 콩팥은 솥에 물이 담아진 거와 같애서 그 솥 밑바닥에다가 불을 갖다가 지져대니까 그 솥에 물이 끌어가지고 수증기(水蒸氣)가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러면 우리의 생각은 앞에서 밑으로 내려가고 수증기는 밑에서 뒤로 해서 올라가기 때문에, 불기운은 앞으로 해서 밑으로 내려가고 물기운은 뒤로 해서 위로 올라가니까, 물기운과 불기운이 물은 올라가고 불은 내려가서 수승화강(水昇火降)이 잘 되어가지고 몸이 건강하고 몸이 건강함으로 해서 정신이 안정이 되고 맑아져서 그래서 정진(精進)해나가는데 부작용이 없이 잘 되어가는 것이다 그 말이여.


*「들어마시며는 배가 볼록해지고 볼록해진 호흡을 2-3초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뒤로 밀어버리면서 배를 홀쪽이 하며는 그 호흡이 뒤로해서 이렇게 코로 나간다 그 말이여.」 이것을 계속 되풀이 하되 우리의 생각은 항시 아랫배 단전(丹田) 거기에 가서 생각이 있어야 한다 그 말이여.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한 거기다가 생각을 두고 ‘이 뭣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하는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疑心). 의심하는 마음. 의심이 거기에 가서 항시 있도록.


* 확철대오하게 되면 반드시 선각자(先覺者)를 찾아서 점검(點檢)을 받어야지 자기 나름대로 ‘알았다’ 해가지고는 선지식(善知識)을 찾지 아니하며는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번성독약(飜成毒藥)이라」, 제호(醍醐)라고 하는 것은 우유로 만든 최고로 맛있는 음식인데 그 맛있는 음식이 변해가지고 독약(毒藥)이 되는 격이 돼. 그 애써서 얻은 그 깨달음이 선지식을 만나지 아니하고 그것으로써 스스로 자족(自足)을 해가지고 살림을 해가며는 그 좋은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독약(毒藥)이 된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 말이여. 깨닫기 전에도 선지식(善知識)을 의지해서 공부를 해야 하고 깨달은 뒤에도 선지식(善知識)의 지시(指示)에 의해서 오후(梧後)공부를 지어가야 참 옳게 닦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 송담선사 법문 세등 8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