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24. 11:07ㆍ카테고리 없음
【서방西方、동쪽 사람일지라도 다만 마음이 깨끗하면 죄가 없고, 서쪽 사람일지라도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허물이 있느니라】
인인자유충천기(人人自有衝天氣)하니
일념회광시장부(一念廻光是丈夫)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막도염화소식단(莫道拈花消息斷)하라
우여산조갱상호(雨餘山鳥更相呼)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인인자유충천기(人人自有衝天氣)
사람 사람마다 스스로 하늘을 찌르는 기상(氣像)이 있으니,
일념회광시장부(一念廻光是丈夫)로다.
한 생각 광(光)을 돌이키면 이것이 바로 대장부(大丈夫)다.
막도염화소식단(莫道拈花消息斷)하라.
꽃을 드는 소식(消息)이 끊어졌다고 말하지 말어라.
우여산조갱상호(雨餘山鳥更相呼)로다.
비갠 뒤에 산새가 서로 부르고 있구나.
사람 사람마다 하늘을 찌르는 기상(氣像)이 있다 하는 것은, 남녀노소(男女老少)와 빈부귀천(貧富貴賤)을 막론(莫論)하고 모든 사람이 각기 사람마다 하늘을 찌르는 기상이 있어. 왜 그러냐 하며는 현재 우리는 모냥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모든 상황이 다르게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마는 저 근본, 근본(根本)을 거슬러 올라가서 본다면 비로자나법신불(毘盧遮那法身佛)과 똑같은 존재였었다 그 말이여. 그래서 <화엄경(華嚴經)>에 말씀하시기를,
삼계유일심(三界唯一心)이요
심외무별법(心外無別法)이다.
삼계가 오직 한 마음이요 마음 밖에는 따른, 다른 법이 없다.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이요,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이다,
이 세 가지가 차별이 없다. 이렇게 <화엄경>에는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그 자리는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고 원래는 청정법신비로자나불(淸淨法身毗盧遮那佛)의 그 상태였었기 때문에, 이 중생이나 마음이나 부처가 다 하나였었다 그 말이여. 그렇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몇 무량겁(無量劫)을 지내오는 동안에 갖인 업(業)을 짓고 인연(因緣)을 따라서 오늘날에는 이렇게 모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가른, 다른 상황에 놓여있지마는, 그 근본(根本)을 거슬러 올라가면 똑같은 부처님이요 법신(法身)이기 때문에 다 같은 하늘을 찌르는 기상이 있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일념회광시장부(一念廻光是丈夫)다. 한 생각 탁 빛을 돌이키면 바로 부처님과 똑같은 대장부다 이것입니다.
아까 조실(祖室)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부처님이, 서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께서 출가(出家)하셔서 도(道)를 닦아서 깨달은 그런 말씀이 계셨습니다마는, 우리는 그러헌 자격이 있고 본바탕이 그러기 때문에 한 생각을 돌이키면 바로 대장부가 되고, 이 세상에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고 슬퍼헐 것도 없고 원망헐 것도 없다 이것입니다. 그 한 생각 돌이킨다고 허는 것은, 우리가 원래 비로자나법신불의 상태에서 한 생각 어긋져서 거기서 미끄러져 나와가지고 삼계(三界) 육도윤회(六道輪廻)를 이렇게 허고 있는데, 한 생각만 탁 돌이키면 바로 근본(根本)의 대장부(大丈夫) 경지로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헐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아까 조실스님께서 법문하신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참선법이라 한 것은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거나 간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떠헌 상황에서도 한 생각을 탁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듦으로 해서 장부(丈夫)의 경지(境地)로 올라가는 것이고, 그러헌 수행을 끊임없이 계속해나가다 보며는 원래 자기가 비로자나법신불이었다고 허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에 그 많은 법문(法門)을 허셨지마는, 그 많은 법문을 바로 이해하게 된다며는 바로 이 한 생각 돌이켜서 자기의 본성(本性)을 보고 본성을 깨닫고 법신불(法身佛)의 경지에 들어가는, 들어가도록 하는 많은 중생(衆生)의 근기(根機)에 따라서 그 방편(方便)을 설하신 것이기 때문에, 법문을 옳게 알아듣는다며는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고 복잡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삼천 년(3000년)이 되아서 정법시대(正法時代)가 지나가고 상법시대(像法時代)가 지나가고 지금은 말법시대(末法時代)에 접어 들어서 온 세상이 명예와 권리와 재산 모다 그런 것을 서로 자기가 차지헐라고 많은 사람들이, 온 세계가 다투고 싸우고 그러고 있습니다마는, 비록 어리석은 중생들은 그 범주(範疇)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리고 말세(末世)라 한탄하고 스스로를 전혀 그러헌 위대한 존재라고 허는 것을 망각(忘却)하고 이렇게 중생의, 업보중생(業報衆生)의 신분으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비록 자기의 고향(故鄕)을 떠나서 부모도 없는 고아(孤兒)가 되아가지고, 거지가 되아가지고 온갖, 온갖 곳을 돌아댕이면서 비렁뱅이 노릇을 허고 있지만, 자기의 고향이 어딘 줄 알고 자기의 부모가 누군 줄을 알아서 고향을 찾아가서 부모를 만난다며는 그 사람은 고아가 아니고 비렁뱅이가 아닌 거와 마찬가진 것입니다.
참선법(參禪法)이라 하는 것은 비록 우리가 무량겁(無量劫)을 삼계(三界)와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허고 있지마는, 한 생각을 바로 돌이켜서 자기의 본성(本性)을 찾게 된다며는 우리나... 우리는 언제나 부처님의, 자신이 부처님인줄 깨닫게 되고, 모든 눈으로 보고 ‧ 듣고 ‧ 만나는 모든 것이 바로 그것이 자기의 본고향(本故鄕)의 소식(消息)인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비갠 뒤에 산새들이 이런 소리로 울고 저런 소리로 울고 서로 이리 날아가고 저리 날아가고 헌 그러헌 모습들이 바로 부처님께서 백만대중(百萬大衆) 앞에서 연꽃을 듦으로, 들으니 가섭존자(迦葉尊者)가 미소(微笑)를 허셨습니다. -그것이 삼처전심(三處傳心)에 하나입니다마는- 그 소식(消息)이 삼천 년이 지냈으니까 끊어져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산에 가면 꽃이 피고 산새가 우는 그 속에 부처님의 삼처전심(三處傳心)에 소식(消息)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은 대단히 어려운 모다 공부라고 생각을 하겠습니다마는, 자기 한 마음을 돌이켜서 본성(本性)을 찾게 되면 거기에 극락세계(極樂世界)가 있고 거기에서 삼세제불(三世諸佛)을 친견(親見)할 수 있다고 생각헌다면 우리는 말세를 한탄할 것이 없고 우리가 중생이라고 포기헐 일이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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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법보재(法寶齋)를 맞이해서 잠깐 법보재에 관한 말씀을 허겠습니다. 법보재는 이 법보단(法寶壇) 법보전(法寶殿)은 조실스님께서 ‘어떻게 하면 모든 신도(信徒)들에게 자기의 본 고향(故鄕)을 찾고 자기의 본성(本性)을 찾게 헐 수 있을까?’ 그렇게 심사숙고(深思熟考) 허시다가 우리의 조상을, 조상(祖上)의 영가(靈駕)를 이 법당(法堂)에 모시고, 그리고 다 모든 신남신녀(信男信女)가 ‘법보가족’이 됨으로 해서 이 자리에 모여서 정법(正法)을 듣고, 처음에 올 때는 조상을 편안허게 모시고 조상의 영가를 극락세계로,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으로 천도(薦度)해드리기 위하... 위해서 왔지마는, 그러다보니 여기서 정법을 듣고 참선(參禪)을 해서 진짜 도솔천내원궁과 극락세계가 저 하늘나라에나 또는 ‘서쪽으로 십만팔천국토(十萬八千國土)를 가면 거기에 있다’고 경전에는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십만팔천국토라고 허는, 서방(西方)으로 가면 있다고 <아미타경(阿彌陀經)>에 그렇게 쓰여 있지만,
육조(六祖) 혜능선사(慧能禪師)는 ‘십만팔천국토’를 어떻게 풀이를 허셨느냐하며는, ‘십악(十惡)을 끊으면 바로 십만국토(十萬國土)를 건너가고 팔정도(八正道)의 반대인 팔, 팔사(八邪), 여덟 가지 삿된 것을 뛰어넘으면 팔천국토(八千國土)를 건너간 것이다.’ 십만팔천국토가 엄청나게 먼 디에 있다고 생각을 하겠으나 십만팔천국토는 입으로, 몸으로 짓는 네 가지와 입으로 짓는...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살(殺) ‧ 도(盜) ‧ 음(淫), 입으로 짓는 망어(妄語) ‧ 기어(綺語) ‧ 양설(兩舌) ‧ 악구(惡口), 마음으로 짓는 탐(貪) ‧ 진(瞋) ‧ 치(癡). 이 열 가지 악(惡)을 끊으며는 거기에서 십만국토를 지내가는 거고, 팔정도의 반대인 팔사를 끊어서 팔정도를 행하게 되며는 거기서 팔천국토를 건너간다. 이렇게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분명히 말씀을 허셨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신 바와 같이 육조스님은 일자무식(一字無識)인 그런 총각인데, 총각인데 어느 스님의 경 읽는,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其心)’이라고 허는 <금강경(金剛經)>에 한 구절을 읽는 것을 듣고서 깨달라가지고 부처님으로부터 서른세 번째(33번째) 법(法)을 전해, 전(傳)해 받으신 생불(生佛)과 같은 그런 존재이십니다. 일자무식이지마는 확실히 깨달으셨기 때문에, 생불이 중생(衆生)을 위해, 교화(敎化)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화현(化現)으로 나타나신 분이시기 때문에, 십만팔천국토를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고 갈파(喝破)를 허신 것입니다.
실지로 서방 십만팔천국토에 있다면 우주선이나 로켓트(rocket)를 타고 서쪽으로 날아가면 거기에 극락세계가 있겠습니까? 또 저 천당 도솔천내원궁이 실지로 저 하늘 높이 거기에 있다면 우주선을 타고 한 없이 날아가면 거기가 도솔천이 있는 것을 발견하겠습니까? 극락세계가... 세계나 도솔천내원궁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고 그렇게 확실히 믿고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서 참나를 찾는 참선공부를 해야만 진리에 맞는 극락세계, 진리에 맞는 도솔천내원궁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이고, 그것은 우주선(宇宙船)이나 로켓트(rocket)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한 생각 돌이키는 디에 바로 참다운 진리(眞理)의 극락세계와 도솔천내원궁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는 것이 바로 정법(正法)을 믿는 것이 되겠습니다.
모든 방편(方便)은 거짓말이 아니라 중생(衆生)의 근기(根機) 따라서 인도(引導)하기 위한 아주 좋은 방편이므로, 그것을 비방(誹謗)하고 부정(否定)헌 것이 아니라 그 방편의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래가지고 정법문중(正法門中)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조실스님께서는 이 법보전을 짓고 여기에, 맨 처음에 일 번(1번)에 조실스님의 아버지 어머니의 영가를 여기다 모시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 따라서 차츰차츰 조실스님을 신(信)하는 많은 청신사(淸信士) 청신녀(淸信女) 여러분들이 거기에 다 이 법보영가(法寶靈駕)에 모시게 되아가지고 오늘날 이렇게 많은 법당에 앞 벽, 옆 벽 가득 차게 이렇게 법보영가를 모시게 된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비구(比丘) ‧ 비구니(比丘尼) ‧ 사미(沙彌) ‧ 사미니(沙彌尼) ‧ 청신사(淸信士) ‧ 청신녀(淸信女) 형제자매 법보가족 여러분은, 이런 의미에서 정법을, 정법문중에 동참(同參)한 ‘한 가족’이요 ‘법보가족’이면서 ‘정법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원래 삼계만령(三界萬靈) 지령지성(至靈至聖), 육도법계(六道法界)의 모든 영가(靈駕), 영가들이 그 근본(根本)에 있어서는 우리... 나에, 나 자신에 선망부모(先亡父母)가 되겠습니다. 무량겁(無量劫)을 오면서 수없이 태어났다가 또 몸을 바꾸고 또 태어났다가 몸을 바꾸면서 새로 태어날 때마다 부모를 만나지 않고서는 태어날 수가 없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다보니 어떠헌 영가나 어떠헌 사람이나 우리의 아버지나 어머니 아닌, 한 번 두 번 이상 어머니 아버지 아니었던 영가도 없고 어머니 아니었던 사람도 없고 그런 것입니다. 비록 김씨, 이씨, 박씨, 모다 성(姓)씨는 다르지마는 그 깊이 들어가서 그 영가의 본 성을 따지고 보면 김씨에 시조(始祖)나 박씨에 시조나 저 올라가며는 다 한 할아버지요 한 할머니가 되겄습니다.
그 뿌리는 한 뿌리에서 나와가지고 김씨도 되고 박씨도 되고 그렇게 되았, 되았으므로 가지 끄트리에서 보면 다 딴 가지인 것 같지마는 그 뿌리로 돌아가서 보면 한 뿌리가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법보전에 모신 모든 영가는 각자 우리 할머니다 우리 아버지다 그렇게만 생각허실 것이 아니라,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 할아버지, 할머니’요 ‘한 가족’이라고 생각을 허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삼 월(3월) 십육 일(16일)에는 우리 모두가 각자 성(姓)은 달라도 저 근본(根本)에 가서는 우리 한 할아버지요 한 할머니요 한 가족이 우리의 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영가 천도재(薦度齋)를 모시고 한 가족이 모여서 오늘 이런 법보재 천도법요식(薦度法要式)을 거행(擧行)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헌 말들이 오늘 법보재를 기(期)했으니까 이런 말씀을 허게 됩니다마는, 사실은 법문은 조실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이미 법문은 끝났고, 나는 오늘 이 시간에는 여러분의 얼굴을 두루 다 보고 여러분도 산승(山僧)의 얼굴을 이렇게 봐 주시면, 그러, 그리고서 마음으로 ‘한 형제간이요 한 가족이고 한 도반(道伴)’이라고 이렇게 생각허신다면 그것으로서 산승이 이 높은 자리에 올라간, 올라온 목적은 달성이 되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긴 얘기를... (대중 박수)
오늘 법보재를 맞이해서 형제자매 도반여러분. 이렇게 만나게 되니 한 없이 기쁘고 이 감격을 뭐라고 말씀을 헐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서 제가 당부(當付)허고 싶은 것은, 이 좋은 날이고 감격스러운 날이지마는 우리는 원래 생사(生死)가 없고 원래 온 세계가 진리(眞理)의 나타남이고, 산이 푸른 산이나 붉은 꽃이나 산새 우는 것이나 중생의 세계에서 서로 다투고 싸운 것들까지도 다 근본에 들어가서 보며는 다 그것이 진리의 모습이 그렇게 표현된 것뿐입니다. 봄에 꽃이 피는 것이나 가을에 꽃이 지고 겨울에 잎이 지는 것이나 그것이 근본은 똑같은 것입니다. 꽃핀다고 꼭 좋을 것도 없고 또 꽃이 지고 잎이 진다고해서 그것이 꼭 슬퍼헐 것도 없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분, 산승을 비롯해서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또 육체를 버리고 또 새로운 몸을 받아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인연 따라서 태어나기도 하고 인연이 다하며는 또 몸을 버리게 되나, 버린 것이 꼭 슬픈 것만이 아니고 일단은 헌 옷을 벗어야 또 새 옷을 입게 되겄습니다. 새 옷을 벗기(입기) 위해서 헌옷 벗는 다며는 헌옷 벗은 것을 어찌 기분 나쁘게 생각하고 슬퍼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 뭣고?’를 열심히 해야 슬퍼헐 것도 없고 기뻐헐 것도 없고 언제나 진리(眞理)의 경지(境地)에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나면 사바세계를 살고 또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면 도솔천내원궁에서 살고 또 극락세계(極樂世界)를 가면 극락세계에서 살고 혹 인연 따라서 지옥(地獄)에 가더라도 지옥에 가서도 터억 심호흡(深呼吸)을 하면서 ‘이 뭣고?’를 하면 지옥중생들은 그 공덕(功德)으로 그 고통에서 해탈(解脫)허게 될 것입니다.
이러헌 마음으로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이러헌 생활을 해나간다면 이 사바세계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는 썩 좋은 곳입니다. 얼마든지 우리는 보고 배울 것이 있고 깨달을 것이 있습니다. 이 사바세계를 여의고 극락세계나 도솔천내원궁을 찾지 말고, 이 사바세계에 슬퍼하고 원망하고 괴로워하고 모다 사람들이 싸와서는 안 될 사람들이 그렇게 피투성이를, 피투성이가 되아가지고 싸우고 있다 하더라도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는 우리 도반가족들은 바로 거기에서 발심(發心)을 허고 한 생각 돌이켜서 ‘이 뭣고?’를 챙긴다며는 그 공덕으로 사바세계는 차츰 극락세계로 변해가게 될 것입니다.
‘이 세계는 위대한 화가(畫家)가 있어서 그 그림을 그려놓은 것’이라고 이렇게 <화엄경(華嚴經)>에서는 표현을 했습니다. 화가는 자기 마음에 따라서 온갖 그림을 다 그릴 수가 있습니다. 지옥(地獄)도 그려볼 수도 있고 천당(天堂)도 그려볼 수도 있고 하늘나라 천, 도솔천(兜率天)도 그려볼 수도 있고 인간세계(人間世界)도 그려볼 수도 있고 축생(畜生)의 세계도 그려볼 수가 있습니다. 그려놓고 쏵 지울 수도 있습니다. 지웠다 그렸다 하는 것이 이 삼계 육도법계인 것입니다. 과거에 누군가가 그려놓은 그림이 아니라 우리들도 지금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그런,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나쁜 그림을 그려놓고 속상하기도 하고 좋은 그림을 그려놓고도 웃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려놓고, 지옥 그림을 그려놓고 실지로 자기가 지옥 속에 들어갔, 들어가 있다고 착각(錯覺)을 허면서 몸부림을 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가 그린 그림이라면 쏵 지워버릴 수도 있고 불로 탁 처질러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자유(自由)로운 화가(畫家)가, 화가노릇을 해야지, 지가 그려놓고 지가 몸부림치고 원망하고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중생(衆生)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서 다행히 정법을 만났습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났습니다. 어떠헌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 경계에 깊이 빠져서 몸부림을 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떠헌 경지를 만나고 어떠헌 사람을 만나더라도 바로 거기서 자기로 돌아올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 뭣고?’입니다.
‘이 뭣고?’를 같이 한번 해보십시다.
‘이 뭣고?’
(대중) ‘이 뭣고?’
‘이 뭣고?’
(대중) ‘이 뭣고?’
‘이 뭣고?’
(대중) ‘이 뭣고?’
‘이 뭣고?’는 말이 아니라 ‘이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심(疑心)입니다. 이 자리에 오래 다니신 분은 잘 아시겠지마는, 이제, 오늘 이 법보재에는 저 지방에서 절에 다니면서도 ‘이 뭣고?’가 무엇인중도 모른 그러헌 분도 상당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러헌 분들을 위해서 우리는 다같이 ‘이 뭣고?’를 같이 불렀습니다. ‘이 뭣고?’가 대관절 무엇이냐?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사무실에 가서 그 ‘이 뭣고?’ 참선공부 허는 내용을 자세히 해 놓은 테이프(tape)가 있으니 그것을 구해가지고 가서 열 번, 스무 번, 백 번, 인제 자꾸 들으면, 듣다보면 그 뜻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법보재에 모여서 같이 조실스님의 법문을 듣고 또 산승의 이러헌 간곡(懇曲)한 말씀을 듣고 또 순서에 따라서 천도법요식이 거행이 되겄습니다. 이러헌 공덕으로 이 법보전에 모신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원근친척(遠近親戚)과 형제자매(兄弟姉妹) 가족 모든 영가들을 위시(爲始)해서 우주법계(宇宙法界)에 꽉 차있는 우리의 선망부모 모든 영가들도 모든 고통으로 부터서 헤어나고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허시게 될 것을 산승은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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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일권경(我有一卷經)허니
불인지묵성(不因紙墨成)이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전개무일자(展開無一字)호되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이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아유일권경(我有一卷經).
내게 한 경의 경책(經冊)이 있으니
불인지묵성(不因紙墨成)이다.
종이나 먹으로 이루어져있지 않다.
전개무일자(展開無一字)허되
그 경을 펴보되 한 글자도 없어. 그러되,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이다.
항상 대광명(大光明)을 놓, 놓는구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은 종이나 먹으로 되아있지 않고 펴보되 한 글자도 없는데 항상 대광명이 놓, 광명(光明)을 놓는 그 경(經)이 무엇인가를 여러분들은 설명을 허지 안 해도 잘 아실 것입니다.
열심히 내년(來年)에 다시 이 법보재에 만날 때까지 열심히 ‘이 뭣고?’를 해서 건강한 모습, 얼굴에 환히 광명을 놓는 그러헌 모습으로 다시 만날 것을 기약(期約)하면서 법상(法床)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 (대중 박수)
- 송담선사 법문 70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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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조(六祖) 혜능선사(慧能禪師)는 ‘십만팔천국토’를 어떻게 풀이를 하셨느냐하며는, ‘십악(十惡)을 끊으면 바로 십만국토(十萬國土)를 건너가고 팔정도(八正道)의 반대인 팔사(八邪), 여덟 가지 삿된 것을 뛰어넘으면 팔천국토(八千國土)를 건너간 것이다.[心但無不淨 西方去此不遠. 心起不淨之心 念佛往生難到. 除惡即行十萬 無八邪即過八千. 但行真心 到如禪指]
使君 禮拜 又問 弟子見僧道俗 常念阿彌陀佛 願往生西方 請和尙說 得生彼否 望爲破疑 大師言 使君 聽 惠能 與說 世尊 在舍衛國 說西方引化 經文 分明去此不遠 只爲下根 說遠 說近 只緣上智 人自兩種 法無不同 迷悟有殊 見有遲疾 迷人 念佛生彼 悟者 自淨其心 所以佛言 隨其心淨 則佛土淨 使君 東方 但淨心 無罪 西方 心不淨 有愆 迷人 願生 東方西方 所在處皆一種 心但無不淨 西方 去此不遠 心起不淨之心 念佛往生難到 除十惡 卽行十萬 無八邪 卽過八千 但行直心 到如彈指
사군이 예배하고 또 물었다." 제자가 보니 스님과 도교인과 속인들이 항상 아미타불을 생각하면서 서쪽 나라에 가서 나기를 바랍니다. 청컨대 큰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저기에 날 수가 있습니까? 바라건대 의심을 풀어주소서."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사군은 들으라. 혜능이 말하여 주리라. 세존께서 사위국에 계시면서 서방정토로 인도하여 교화해 말씀하셨느니라. 경에 분명히 말씀하기를 '여기서 멀지 않다'고 하였다. 다만 낮은 근기의 사람을 위하여 '멀다' 하고, '가깝다'고 말하는 것은 다만 지혜가 높은 사람 때문이니라. 사람에는 자연히 두 가지가 있으나 법은 그렇지 않다. 미혹함과 깨달음이 달라서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을 뿐이다. 미혹한 사람은 염불하여 저곳에 나려고 하지만 깨친 사람은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그 마음이 깨끗함을 따라서 부처의 땅도 깨끗하다'고 말씀하셨느니라.
사군아, 동쪽 사람일지라도 다만 마음이 깨끗하면 죄가 없고, 서쪽 사람일지라도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허물이 있느니라. 미혹한 사람은 가서 나기를 원하나 동방과 서방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는 다 한가지니라. 다만 마음에 깨끗지 않음이 없으면 서방정토가 여기서 멀지 않고, 마음에 깨끗지 아니한 생각이 일어나면 염불하여 왕생하고자 하여도 이르기 어렵느니라. 십악을 제거하면 곧 십만 리를 가고, 팔사가 없으면 곧 팔천 리를 지난 것이다. 다만 참 마음을 행하면 도달하는 것은 손가락 퉁기는 것과 같으니라.
* ‘이 세계는 위대한 화가(畫家)가 있어서 그 그림을 그려놓은 것.
[心如工畵師 造種種五陰 一切世間中 無不從心造]’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갖가지 오음(五陰)을 짓나니(그리나니), 일체 세간 가운데에 마음으로 좇아 지어지지 아니한 것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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