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諸法)이 공(空)한 이치를 요달(了達)하기 위해】

2021. 5. 19. 18:08카테고리 없음


신위정법장(身爲正法藏)이요
심위무애등(心爲無閡燈)이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조료제법공(照了諸法空)하면
명왈도중생(名曰度衆生)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신위정법장(身爲正法藏))
이 몸은 정법(正法)이 들어있는 창고요,


(심위무애등(心爲無閡燈))
마음은 걸림이 없고 막힘이 없는 등불이다.


(조료제법공(照了諸法空))
이 모든 법이 공(空)한 이치를 깨달으면,


명왈도중생(名曰度衆生)이다.
이것을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헌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 게송(偈頌)은 <화엄경(華嚴經)>에 있는 게송입니다.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뭉쳐진 이 육체는 이 속에 정법(正法)이 들어있는 창고(倉庫)요,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활동하는 이 마음은 멀고 가깝고를 막론하고 맥힘이 없이 비추는 그러헌 등불이다. 모든 법이 공(空)한 줄을 확실히 요달(了達)하면, 그것이 바로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헌 것이다.

우리 밖에, 막 깨닫고 나서 많은 세계에 우주에 모든 사람과 짐승을 설법(說法)을 해서 제도허는, 우리는 대부분 중생제도를 그렇게 생각하는데, <화엄경>에서 말씀하시기는, ‘제법(諸法)이 공(空)한다고 허는... 공했다고 허는 그 이치를 확실히 요달(了達)허면 그것이 바로 중생을 제도헌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허신 것입니다. 이 게송만 가지고 설명을 해도 한량없는 시간이 걸리겠습니다마는, 자기, 제법이 공한 도리를 깨닫기 위해서 많은 경전들에, 경전을 통해서 부처님께서 법문을 허셨고, 우리 용화사에서도 조실(祖室)스님의 법문에 의지해서 참선(參禪)을 허는데, 화두(話頭)를 타가지고 그 화두를 참구(參究)해나가는 그것이 바로 결국에 가서는 제법이 공한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 참선을 허는 것입니다.


.......
그리고 중생제도(衆生濟度)가 자기, 자기 마음을 깨달음으로 해서 무량중생(無量衆生)을 제도하는 것이고 제도할 수 있는 힘도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석 달 동안 더위에, 그 무더위 속에서도 낙오자(落伍者) 없이 각 선원(禪院)에서 다 정진(精進)을 허시다가 해제를 맞, 맞추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이셔서 이렇게 해제법요식을 모든 도반과 선배와 후배, 그리고 여러 어머니, 할머니, 아버지, 형제자매 여러분들과 이 자리에서 해제법요식을 맞게 되는 것을 산승은 대단히 감사허게 생각하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내년 백중날에 또 이렇게 만나서 해제법요식을 갖게 될는지 산승도 그동안에 어떻게 될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고, 또 이 가운데 참석하신 여러분들 가운데에도 이승을 하직(下直)해서 이렇게 만나게 될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만나게 되고 안 만나게 되는 것이 그것을 걱정헐 일이 아니라,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그 기쁜 마음으로 화두를 들면서 이 법요식을 마치고,

또 해제했다고 해서 다음 결제 때까지 석 달이 남아있습니다. 그 석 달 동안을 그럭저럭 지내시지 말라고 허는 당부(當付)를 드리고자 합니다. 그럭저럭 지낸다고 허는 것은 절도(節度) 없는 생활, 석 달 동안 너무 얽매여서 그 더위 속에서 정진을 헌 것을, 힘들게 정, 정진허셨으니까 ‘좀 느긋허게. 좀 수월허게 허리라.’ 그렇게 마음을 가지실 수도 있으나, 입방선(入放禪)은 안 허더러도 앉아서도 ‘이 뭣고?’ 서서도 ‘이 뭣고?’ 걸어가면서도 ‘이 뭣고?’ ‘이 뭣고?’만 잘 챙기고, 심호흡(深呼吸)을 허면서 ‘이 뭣고?’를 잘 챙기신다며는 꼭 죽비(竹篦)를 치지 않더라도 그것이 바로 입선(入禪)이 되는 거고, 꼭 선방에 들어가서 반가부좌, 가부좌를 허지 않고 산책을 허거나 마당에 풀을 뽑거나 전혀 행주좌와(行住坐臥)에 국집(局執)허지 않고 터억 정신 차려서 화두(話頭)만 잘 챙기신다면 훌륭한 정진(精進)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석 달 동안 지혜롭게 건강관리 허시면서 행주좌와 간에 화두를 잘 챙기면서 정진하시고, 석 달 뒤에 또 이 결제 때 다시 또 만나게 되기를 바래면서 게송하나를 읊고자 합니다.





삼계지중분요요(三界之中紛擾擾)함이
지위무명불료절(只爲無明不了絶)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일념불생심징연(一念不生心澄然)하면
무거무래불생멸(無去無來不生滅)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삼계지중분요요(三界之中紛擾擾),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삼계(三界) 가운데에 업(業)에 따라서 여기서 태어나서 저가 나고 저기서 태어났다 여기서 살면서 그렇게, 허공 속에, 탁한 공기 속에 문지가 움직이듯이 삼계 중생들이 그렇게 왔다 갔다 몸부림치면서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허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위무명불료절(只爲無明不了絶)이다.
다못 무명(無明)을 요달(了達)해 끊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무명을 요달해서 끊는다고 허는 것은,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사람 짐승 모든 것이 그것을 제법(諸法)이라 그러는데, 제법이 우리 눈에는 분명히 있다고, 있는 걸로 느껴집니다. 형상도 있고 빛깔도 있고 있는데, 다맛 업(業)의 인연(因緣)으로 인해서 그런 것이 이루어지고 변해가지고 없어지고 헐 뿐이지 그 근본자체(根本自體)는 태어날 것도 없고 멸할 것도 없고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없는 것입니다. 생로병사와 성주괴공(成住壞空)이 분명히 중생의 눈에는 있는데 그 본질(本質)에 들어가서는 그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 이치를 깨닫는 것이 제법이, 제법(諸法)이 공(空)한 것을 요달(了達)했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건 말로써 해결 되는 것이 아니고, 본참공안(本參話頭), ‘이 뭣고?’ 또는 ‘무(無)’자 화둘... 화두,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은 그 화두를 열심히 참구함으로서, 올바르게 참구함으로서 그것을 타파(打破)하게 되며는 제법이 공(空)한 이치를 화~ 확철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념불생(一念不生) 심, 심징연(心澄然)이다.
한 생각이 남이 없으면, 그 마음이 맑은 물처럼 그렇게 맑아, 허공과 같이 맑아지는 것이니, 그렇게 되며는,


무거무래불생멸(無去無來不生滅)이다. 불생멸이다.
가는 것도 없고 올 것도 없고, 그래서 생멸(生滅)이 없어. 생사(生死)가 끊어지니 그것을 열반(涅槃)이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야만 꼭 열반한 것이 아니고, 살아있으면서도 제법이 공한 도리를 깨달으면, 불생불멸(不生不滅)의 깨달음, 이치를 깨달으면 그것이 바로 열반(涅槃)이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는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살아있을 때 가장 공부허기가 좋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만큼 살아있고 이만큼 건강할 때 일 분, 일 초를 아껴서 ‘이 뭣고?’를 열심히 허셔서 이 생사 없는 이치를 금생(今生)에 결단코 요달(了達)을 허셔서, 여태까지 오는 것만 해도 무량겁(無量劫)을 왔으나 앞으로 무량겁 생사윤회(生死輪廻)를 금생에 결정코 요달(了達)허게 되기를 모두가 다 같이 다짐하면서 법상(法床)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


- 송담선사 법문 695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