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각을 단속團束하는 것이지, 그것이 정진精進이지】

2021. 5. 16. 19:16카테고리 없음

【정진精進】




조주공안몰심사(趙州公案沒心思)하야
은산철벽백부지(銀山鐵壁百不知)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의래의거의무간(疑來疑去疑無間)하면
고목개화만고지(枯木開花滿故枝)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조주공안몰심사(趙州公案沒心思)하야,
은산철벽백부지(銀山鐵壁百不知)다.
조주(趙州)스님에 공안(公案),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무자화두(無字話頭)ㄴ데, 그 무자화두에 마음과 생각이 거기에 다, 거기에 다 빠져버려. 알 수 없는 의단(疑團), ‘어째서 조주는 무자라... 무(無)라 했는고?’ 그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앞도 콱 막히고 뒤도 콱 막히고 은산철벽(銀山鐵壁)이 되아가지고 일체 백 가지가 다 알 수 없는 의심뿐이다 그 말이지.


의래의거의무간(疑來疑去疑無間)이요,
의심해 가고 의심해 와서 의심이 끊임이 없고 간단(間斷)이 없어. 그래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아서 그 의단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한 가운데에 오직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해서 아침부터 점심까지, 점심부터 저녁까지, 입선(入禪) 방선(放禪)에 상관없이, 밥을 먹을 때나, 오줌을 눌 때나, 소지(掃地)를 헐 때나, 세수를 헐 때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사위의(四威儀) 가운데에 그렇게 해나가면,


고목개화만고지(枯木開花滿故枝)다.
고목(枯木)이 꽃을 피어서 그 꽃이 가지마다 가득할 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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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숟갈 먹으면 정진허고 먹으면서 정진허고 석 달 동안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똑같은, 특별히 무슨 재미있는 것도 없고 특별히 무슨 기쁜 일도 없고 똑같은 생활을, 하루하루에 그 똑같은 생활을 석 달 동안을 계속해서 헌다고 허는 것은 정말 철저한 신심(信心), 활구참선에 대한 철저한 신심이 없고서는 도저히 석 달 동안을 참아내기가 어려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젊었을 때는 선방(禪房)에 다니면서 여러 도반(道伴)들과 같이 진낸 사람으로서 충분히 그 어려운 것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국수공양도 허고 만두공양도 하고 찰밥공양도 하고 목욕, 삭발목욕(削髮沐浴)도 하고 허는 그런 가운데에, 어려운 것을 국수 먹으면서 풀기도 하고 찰밥 먹으면서 풀기도하고 그러면서 한 달 두 달 그리고 석 달을 마치게 되는데,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어려우면서도 또 그 가운데에 재미도 있었던 걸로 기억이 됩니다.

지끔 삼동(三冬)이 지내고 입춘(立春) 우수(雨水)가 지내서 봄이 온가 싶더니 어제는 갑자기 또 눈이 펑펑 쏟아져서 대단히 이 결제... ‘해제(解制)에 법요식(法要式)에 참여허는데 어려우리라’ 이렇게 걱정을 했는데 밤새 비가 좀 내려가지고 눈이 또 솩- 녹았습니다. 우리의 정진(精進)도 마냥 어렵기만, 꼭 어려운 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려운 가운데 참고 견디면서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허면서 또 조실스님 법문(法門)을 들으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애를 쓰면서 해나가다 보면 또 수월하게 화두(話頭)가 들리고, 그렇게 화두가 안 들리고 애를 먹고 그러다가도 심호흡(深呼吸)을 허면서 잘 이 농담(濃淡)에 묘(妙)를 얻으면 어려운 가운데 또 화두가 잘 들려서 머리가 청쾌해지고 그렇게 또 쭉 해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엄동설한(嚴冬雪寒)을 거쳐서 앞으로 머지안허면 시냇물도 꽁꽁 얼었던 물이 녹아서, 얼음이 녹아서 또 물이 촐촐 흐르게 되고 여기저기에 나뭇가지에는 또 새싹이 트게 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정진에도, 우리의 건, 건강에도 또 이 쫙 풀려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삼동결제(三冬結制)중에는 여러 가지 법도(法度)와 규칙(規則)에 얽매여서 그렇게 정진 허다가 오늘부터 해제를 허게 되며는 또 걸망을 짊어지고 어느 선지식(善知識)을 찾거나 어느 도반(道伴)을 찾아서 우리는 여행(旅行)을 허게 됩니다마는, 결제 중에는 어려웁지마는 여러 대중이 다 같이 죽비(竹篦)를 치고 입선하고 또 죽비를 치고 방선을 해서 또 그렇게 사는 가운데에 법도 속에서 자연히 ‘대중이 내 공부를 해준다’ 이런 표현도 허게 됩니다. 혼자 토굴(土窟)에 가서 있어보면 스스로 이를 악물고 특별히 마음을 가다듬지 아니허면 새벽에 추울 때는 일어나기가 싫고 혼자 끓여먹게 되며는 괴로우면 아침 그럭저럭 건너뛰기도 하고 어제 먹던 식은 밥 있으면 그 끓여먹고 말고 이렇게 해서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규칙, 엄격한 규칙에서 벗어나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제 중에 대중과 같이 지내게 되면 아무리 추워도 일어나야하고 아무리 몸의 상태가 조끔 언짢에도 일어, 같이 목탁석(木鐸釋)을 허게 되며는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조끔 입맛이 없어도 대중과 같이 또 공양을 허게 되고, 그래서 해태(懈怠)를 부릴라야 부릴 수가 없고 대중(大衆)과 같이 법도(法度)를 따라서 생활을 헐 수 밲에는 없기 때문에 그래서 ‘대중이 내 공부 절반을 해준다’ 이런 표현을 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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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진은 결제 해제가 사실은 기후(氣候)관계로 해서 결제 해제가 부처님 때부터서 있어 왔습니다마는, 정진에는 결제 해제가, 이 우리의 ‘일대사(一大事)문제를 해결하는... 시작(始作)할 때가 결제(結制)고 일대사(一大事)문제를 해결(解決)할 때가 바로 그것이 해제(解制)’라고 허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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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지시잠시간(百年只是暫時間)이라
막파광음당등한(莫把光陰當等閒)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약요불경염노안(若要不經閻老案)인댄
직수참투조사관(直須參透祖師關)이어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백년지시잠시간(百年只是暫時間)이여,
막파광음당등한(莫把光陰當等閒)이다.
이것은 고려 말에 대선지식(大善知識)이신 나옹(懶翁)스님의 게송입니다. 백 년이라고, 인생 백 년, 많이 살아봤자 백 년(100년) 살고 그렇지 않으면 오십(50)도 못 살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백 년을 다 산다 허더라도 그것이 잠깐 동안이다 이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이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팔십(80), 그렇지 않으면 육십(60), 또 오십(50), 이삼십(2-30), 여러 계층에 도반들이 이 법당에 가뜩 계십니다마는, 우리의 인생이라 하는 것은 부처님께선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죽음이 있다고 생각을 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백년을 산다 해봤자 눈 한번 깜빡 할 사이 지나가는 것이고 그래서,


막파광음당등한(莫把光陰當等閒)이여.
시간을 정말 아끼고 그럭저럭 지내지 말라 이것입니다.

우리 살아, 살아있는 것이 살아있다고 헐 수가 없을 정도로 믿을 것이 못됩니다. 오늘날까지 이만큼 산 것도 천만다행이고 오늘도 하루 일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약요불경염노안(若要不經閻老案)인댄
만약 염라대왕 앞에 심판을 받는 것을 두렵지... 그것이 두렵지 않을커든(않으려거든),


(직수참투조사관(直須參透祖師關))
바로 우리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타파(打破)허도록 일, 한 호흡, 일초 일초를 그렇게 알뜰하게 야무지게 단속(團束)을 하라, 이런 게송에 말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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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수투조사관(參禪須透祖師關)이요
묘오요궁심로절(妙悟要窮心路絶)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산승도 벌써 팔십(80)이 다 되았으니 항상 여러 연세 많으신 거사님이나 연세 많으신 보살님네를 보시면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고 바로 내 일과 연결이 되기 때문에 각별히 이렇게 노바심절(老婆心切)한 마음으로 당부(當付)에 말씀을 드린 것이니, 우리가 이 다음 철, 또 여름철에 또 만나게 될 것인지, 그동안에 자꾸 저와 비슷한 나이든 스님네가 자꾸 돌아가시게 되는 것을 보니까 이것이 나도 또 다음 철까지 살아있을는지 이렇게 또 법상(法床)에 못 올, 못 올라올는지 그건 참 아무도 장, 장담을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 속에 우리는 있는 것이고 생사(生死) 속에서 ‘이 뭣고?’를 챙기는 것이 생사해탈(生死解脫)허는 가장 묘(妙)한 법(法)이라고 허는 것을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리니, 여러 연세 많으신 보살님네들 거사님네들도 벌써 우리는 죽을 사(死)자가 이마빡에 딱 써 붙여져 있는 것이고, 벌... 본래... 벌써 염라대왕(閻羅大王)에 사자(使者)가 우리 주변에 와서 있을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 거기에서 우리가 진짜 시간을 아끼고 무상(無常)을 깨닫고 ‘이 뭣고?’를 착실히 챙겨나가는 그것이 우리 정법(正法)을 믿는 참선하는 사람의 생활이고 명심(銘心)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말을 한도 끝도 없이... 뭐 끝이 없습니다마는, 우리 한 생각을 단속(團束)하는 것이지, 그것이 정진(精進)이지, 정진이 죽비를 쳐야만 정진이 아니고 결제를 해야만 정진이 아닙니다. 한 생각,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합니다. 그것이 바로 생사(生死)입니다. 그러는 가운데에 죽을 날을 향해서 가고 있는 거고 그러는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허는 가운데 우리는, 우리의 세포는 변, 변화해서 늙어가고 있는 것입니다마는, 그 늙,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길을 걸어가면서 거기에서 생사(生死)를 해탈(解脫)허는 것이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이고 그것이 불법(佛法)이고 정법(正法)인 것입니다. 한 생각을 단속 헐 줄 아는 사람이 그 사람이 바로 신심(信心) 있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바로 정법을 믿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바로 활구참선을 옳게 해가는 것입니다. 한 생각을 단속헌다면 시비(是非)에 우리는 말려들 까닭도 없고, 시비 속에서 시비를 바로 활구참선(活句參禪)으로 돌리는 묘법(妙法)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도반여러분 형제자매여러분! 우리는 정말 이런 좋은 법을 만났습니다. 이런 좋은 법을 만났을 때 정말 알뜰히 공부를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690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