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7. 20:08ㆍ카테고리 없음
【但恐不做做之不己】
거심진속윤회업(擧心盡屬輪廻業)이요
동념무비생사근(動念無非生死根)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요여태허무향배(要與太虛無向背)인댄
상탄일개철혼륜(常呑一箇鐵渾侖)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거심진속윤회업(擧心盡屬輪廻業)이요
마음을 일으키면 다 그것이 윤회(輪廻)의 업(業)이 되는 것이고,
동념무비생사근(動念無非生死根)이다.
생각이, 생각을 일으키면 생사(生死)의 뿌리 아닌 것이 없다.
좋은 생각이 일어나거나 나쁜 생각을 일으키거나, 불법(佛法)에 관계된 생각을 일으키거나 또는 조사(祖師)에 어록(語錄)에 관계된 어떤 공안(公案)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거나 어떠헌 마음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그것은 윤회(輪廻)의 업(業)이 되는 것이고, 어떠헌 생각을 움직이거나 어떤 생각이 일어난다하더라도 생사(生死)의 근원(根源) 아닌 것이 없다. 이것은 철저하게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精進)허는 사람에 지극히 필요한 말입니다.
요여태허무향배(要與太虛無向背)ㄴ댄
태허(太虛)와 같이, 태허와 더불어 향배(向背)가 없고자 할진대는,
‘태허’는 진무심(眞無心)의 경계(境界)고, 부처님의 마음과 조끔도 차이가 없는 그런 경계와 합치(合致)가 되고자 할진대는,
상탄일개(常呑一箇)철륜... 철혼륜(鐵渾侖)이다.
항상 한 덩어리의 둥글둥글한 쇳덩어리를, 쇠뭉치를 삼킨 거와 같이 할지이다. 무쇠덩어리를 삼키는 거와 같이 할지니다.
입에 넣어서 아무리 씹어봤자 깨지지도 아니헐 것이고 씹히지도 아니할 뿐만 아니라 아무 맛도 없을 것이요, 그것을 꿀떡 삼켜놨으니, 그것이 속에 들어가니, 주먹팅이 만 한 쇳덩어리를 삼켜놨으니 속이 어떻겠냐 그 말이여. 아무리 소화제를 먹은들 그것이 녹을 까닭도 없고 아무리 몸부림을 쳐봐도 어떻게 해결될 가망이 없다 그 말이여. 우리가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화두(話頭) 하나를 떠억 받아가지고 그 화두에 대한 참구가, 참구(參究)허는 모습이 마치 이와 같이 해야 할 것이다. 잠시도 쇳덩어리를 삼켜서 그놈이 위(胃), 위장 안에 가서 떠억 있으니, 그것이 누운(눕는)다고 해서 그것이 편안헐 것이며 돌아댕인다고 해서 해결될 것이며 어찌할 수가 없이 그놈이 가슴속에, 위 속에 들어앉은 거와 같이 화두에 대한,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의단(疑團)이 잠시도 여읠라야 여읠 수 없는,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간에, 밥을 먹으나 소지(掃地)를 허나 화장실을 가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묵직한 그놈이 위장에, 위장 속에 들어있는 것처럼 화두에 대한 의단이 그렇게 되아야 할 것이다.
방금 조실(祖室)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우리는 잘 들었습니다. 결제법문(結制法門)은 조실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더 이상 들을 수 없을만한, 우리의 가슴속에 석 달 내내 잠시도 잊지 못할 만큼 그러헌 뼈에 사무치는 그런 법문을 들어서 산승(山僧)도 그러헌 마음으로 또 한 철을 지내고자 합니다마는, 여러분들도 석 달 동안을 그 조실스님의 법문이 잠시도 망각(忘却)허지 않도록 본참화두에 대해서 정진(精進)을 허시기를 바라고, 더 이상 산승이 무슨 헐 말씀이 없어서, 고인(古人)의 이러헌 게송(偈頌)을 읊음으로 해서 석 달 동안을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도록, 그날그날에 공양(供養)허는 것, 죽이면 죽, 밥이면 밥, 국수면 국수, 찰밥이면 찰밥, 나온 대로 그것을 잘 공양을 하고, 공양을 하면서도 화두(話頭)에 의단(疑團)이 흩어지지 않도록 잡두리 허면서 석 달 동안이 하루처럼 그렇게 정진허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우리가 이렇게 정진을 허는 데에는 철저한 신심(信心), 철저한 분심(憤心), 그리고 화두에 대한 철저한 의단(疑團)이 아니고서는 구경(究竟)의 목적지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고인(古人)의 말씀에, 우리가 철저한 신심(信心)이라하는 것이 무엇이냐? 신심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인생을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오욕락(五欲樂)을 버리고 그리고 이 수행을 한눈 팔지 아니하고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해나가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신심에 대해서 말씀을 좀 드리고자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수행해나가는데 보탬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서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신심(信心)은, 자기 몸 가운데에 있는 그 주인옹(主人翁), 주인공(主人公)은 삼세(三世)의 제불(諸佛)과 조끔도 모자람이 없는 그러한 털끝만큼도 차등(差等)이 없는 그런 것이라고 하는 것을, 첫째 그것을 철저히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第一要信自己方寸心中一箇喜怒哀樂底主人翁覿體與三世諸佛不欠一毫髮]
둘째 신심이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며는, 무량겁(無量劫)으로부터 오늘날까지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모든 것과,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를 싫어하며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미워하는 것과, 우리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량겁을 두고 오면서 익혀진, 물든 습염(習染), 습기(習氣) 그것으로 인(因)해서 생사(生死)에 윤회(輪廻)를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철저히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第二要信從無量劫來與聲色愛憎 染習流注結成一種生死無常 於四大身中念念遷流新新不住]
세 번째 신심이라 하는 것은, 고인(古人), 고조사(古祖師)에 일언반구(一言半句)가 마치 큰 칼과 같아서, 얼마나 잘 드냐 하며는 터럭도 거기에 지나가면 잘라져버리고 종이도 거기에 지내가면 잘라져버리고 누구든지 손이나 무엇이 거기에 닿아지기만 해도 잘라져버리는 것처럼, 그 큰 칼을 함부로 거기에 접촉하게 되며는 자기의 명근(命根), 목숨을 잃게 된다. 그래서 고인의 한 말씀 반 구절이라도 고인의 공안(公案)에 대한 법문을 함부로 천착(穿鑿)을 하고 분석(分析)을 하고 그것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그러한 짓을 하지 말라 이것입니다. 그런 짓을 함으로 해서 자기의 깨달음의 혜명(慧命)을 거기에서 잃게 되기 때문에 고인의 일언반구에 공안에 대해서 함부로 하지 말아라. [第三要信古人垂慈留下一言半句如倚天長劍 等閑拶透端的會斷人命根]
네 번째는, 일용공부(日用工夫)는 다맛 자기가 짓지 아니할까 그것을 두려워해. 잠깐 동안이라도 한눈을 팔고 딴 데에 정신을 팔며는 바로 그것이 공부를 짓지 않는 것이여. 그래서 공부를 짓되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항상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그것을 잘 잡두리 해서 잠깐도 끊어짐이 없도록, 그래서 생각 생각이 정미(精微)롭게 그것을 참구(參究)를 해나가라. 참구를 해나가되 이론적으로 따지거나 교리적으로 따지거나 철학적으로 따지거나 어떠한 상식적으로 따져서, 그것을 따져서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다맛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알 수 없는 의단으로 그것을 잡두리를 해나가라. 그렇게 해나가면 결정코 확철대오할 수 있는 그러한 때가 오리라고 하는 것을 그것을 깊이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第四要信日用工夫但恐不做做之不己 念念精專決有透脫之期]
다섯 번째에 믿음은, 생사는 끝이 없어. 생사는 끝이 없으되, 보통 조그마한 일이 아니다. 만약 결정적인 뜻, 결정지(決定志)를 분(憤)내서 그것을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것을 기약(期約)하지 아니하면 영원히 삼도(三途)에, 지옥(地獄) ‧ 아귀(餓鬼) ‧ 축생(畜生)의 삼악도(三惡道)의 고통을 면(免)치 못하리라고 하는 것을 깊이 믿어야 한다 이것입니다. [第五要信生死無常不是小事 若不奮決定志以期獨脫 其三途苦趣曾無自免之方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