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1. 20:55ㆍ카테고리 없음
오조홍인대사(五祖弘忍大師)의 [최상승론(最上乘論)]
• 오조홍인대사(五祖弘忍大師)께서 [최상승론(最上乘論)]이라고 하는 아주 훌륭한 법문을 남기셨는데, 그 가운데 일부를 여러분에게 소개함으로 해서 「우리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수행을 해야 할 것인가?」 그런 데에 말씀을 하고자 합니다.
“무엇을 가리켜서 무기심(無記心)이라고 합니까?”
[問曰。何名無記心。] 하고 질문을 하는 데에 대해서 오조 홍인대사께서는,
“마음공부를 할 때에 밖에 경계, 머트러운 생각이 조끔 잠잠해서 조용해지면 조용하게 그런 경지(境地)를 들여다 보고 있는데, 행주좌와(行住坐臥) 가운데에 조용한 경지에 빠져서 그것을 들여다 보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확실하게 청정본연(淸淨本然)의 자기(自己)의 면목(面目)을 바로 보는 것이 아니고 그냥 고요한 데에 빠져있는 경계(境界)야. 그것을 갖다가 ‘무기에 빠졌다’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러한 이것을 ‘무기심’이라 하는데, 이것은 생사(生死)의 대병(大病)에 빠져있는 것이다. 생사대병(生死大病)을 면(免)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생사고해(生死苦海)에 침몰(沈沒) 해가지고 하일(何日)에 득출(得出)이리오, 어느 날에 거기서 뛰쳐나올 기약(期約)이 있겠느냐? 가련하고 가련하다. 그러니 노력허고 노력할지니라.” [ 答曰。諸攝心人為緣外境麁心小息。內鍊真心心未清淨時。於行住坐臥中恒懲意看心。猶未能了了清淨獨照心源。是名無記心也。亦是漏心猶不免生死大病。況復總不守真心者。是人沈沒生死苦海。何日得出。可憐。努力努力。]
또 홍인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경(經)에 이르되, ‘중생이 만약 그 정성(精誠)스러운 마음이 안으로부터 돈발(頓發)하지 아니한 자는, 삼세(三世)에 비록 항하사(恒河沙)의 모든 부처님을 만난다 하더라도 무소능(無所能)이니라, 어찌 할 바가 없느니라.’ 또 경에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마음을 스스로 깨달라서 자기(自己)가 자기를 제도(濟度)해야지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만약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가 있다’ 하고 말을 한다면 과거에 모든 부처님이 항하사 무량(無量)의 수없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무슨 연고로 우리들은 아직도 성불(成佛)을 못했을 것이냐? 다못 이것은 정성이 안으로 부터서 돈발하지 못했을 연고로 생사고해(生死苦海)에 침윤(浸潤)한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해서 부지런히 본심(本心)을 깨달라서 잠깐 동안도 한눈을 팔지 말지니라.” [經云。眾生若情誠不內發者。於三世縱值恒沙諸佛無所能為。經云。眾生識心自度。佛不能度眾生。若佛能度眾生者。過去諸佛恒沙無量。何故我等不成佛也。只是情誠不自內發。是故沈沒苦海。努力努力。勤求本心勿令妄漏。]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미래는 아직 돌아오지 아니했어. 다못 지금 우리가 현재에 이 최상승법을 만났으니, 분명히 서로 권고(勸告)해서 선배는 후배에게 권고하고 후배는 선배를 따라서 밀고 끌면서 결정코 내가 이제 말한 이 법을 깊이 이해해가지고 확실하게 자기의 본심(本心)을 지킬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최고에, 제일(第一)에 도(道)니라. 지극한 정성(精誠)스러운 마음을 발(發)하지 못해가지고 막연하게 성불하기를 바래고 자재해탈(自在解脫)을 얻고자 한다면 이것은 될 일이 아니고, 그럭저럭 속심(俗心)을 버리지를 못하고 명예나 이끗을 탐구해서 그렇게 그럭저럭 지낸다며는 당래(當來)에 대지옥(大地獄)에 떨어져서 가지가지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니, 그때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노력하고 노력할지니라.” [過去不知。已過亦不及。今身現在有遇得聞妙法。分明相勸決解此語。了知守心。是第一道。不肯發至誠心求願成佛受無量自在快樂。乃始轟轟隨俗貪求名利。當來墮大地獄中。受種種苦惱。將何所及。奈何奈何。努力努力。]
수행하는 사람은 다맛 헤어진 옷을 입고, 누데기를 입고, 먹는 것은 산해(山海)의 진미(珍味)라든지 고량진미(膏粱珍味)가 아니고 거칠고 머트러운 음식을 먹으면서, 요연히 본래의 자기 참 마음을 지키되, 거짓 바보가 되어가지고 말귀도 못 알아들은 사람 같은 그런 바보가 되어가지고 자기의 본심을 향해서 수행을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힘은 최고로 적게 들이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도업(道業)을 성취(成就)할 수 있으니, 이런 사람이야말로 대정진인(大精進人)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세간 사람은 이러한 이치를 알지를 못하고서 무명심(無明心) 가운데에 갖은 고통을 겪으면서 널리 상(相)에 나타나는 그러한 선(善)을 닦음으로 해서 해탈도(解脫道)를 바래니, 그러다가 결국은 생사고(生死苦)에서 벗어날 기약(期約)이 없느니라. 요연히 바른 생각을 잃지 아니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만이, 이것이 대력보살(大力菩薩)이라.” [但能著破衣飱麁食。了然守本真心。佯癡不解語。最省氣力而能有功。是大精進人也。世間迷人不解此理。於無明心中。多涉艱辛廣修相善。望得解脫。乃歸生死。若了然不失正念而度眾生者。是有力菩薩。]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 부처님께서도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말씀하시기를, 이십억이(二十億耳)라고 하는 그이가 너무 정진을 용맹정진을 해가지고 먹는 거, 입는 거, 잠자는 거, 일체를 제한을 해가지고 자발적(自發的)으로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했는데 도대체 깨달음을 얻지를 못해. 그래가지고 너무 비관(悲觀)을 해가지고 있을 때,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서 이십억이를 만나서,
“니가 세속에 있을 때 무엇을 잘했느냐?”
“저는 거문고를 잘 탔습니다.”
“그래 거문고를 잘 탔으면 거문고 줄을 너무 팽팽하게 급하게 그렇게 조이며는 소리가 어떻더냐?”
“소리가 끊어져서 정말 아름다운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거문고 줄이 끊어질까 두려워서 너무 느슨하게 매면 어떻더냐?”
“느슨하게 매면 비록 줄은 끊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제 음가(音價)가 나질 않습니다.”
“그래, 도 닦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니라. 너무 급하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급하게 조여 들면 병(病)이 나거나 해가지고 제대로 공부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느슨하게 정진을 해나가면 그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느니라. 수행도 거문고 줄 고르듯이 불급불완(不急不緩)해서 적절하게 해나가야 육체적인 병(病)도 나지 아니하고 정신적인 해태(懈怠)도, 해태에도 떨어지지 않고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느니라.”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송담선사 법문 644번의 간략한 내용.
(전체법문은 ‘선우의 거울’ hyozo.tistory.com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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