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24. 16:07ㆍ카테고리 없음
【감공형평鑑空衡平、거울이 비(空)며, 저울이 평平하다. 】
【經】• 應無所住ᄒᆞ야 而生其心이니라
응應함에 머무는 바 없어 그 마음이 난다.
【說誼】 不須空然逐風波하고 常在滅定ᄒᆞ야 應諸根이니 是可謂暗中有明이니라
구태여 속절없이 풍파風波를 좇지 말고 상례로(늘) 멸정滅定에 있어 제근者根(모든 근根)을 응應할지니, 이 가히 이르되, “어두운 가운데 밝음 있음” 이니라.
【說誼】 (又) 無所住者ᄋᆞᆫ 了無內外ᄒᆞ고 中虛無物호미 如鑑空衡平ᄒᆞ야 而不以善惡是非로 介於胸中也ㅣ라 生其心者ᄂᆞᆫ 以無住之心ᄋᆞ로 應之於事而不爲物累也ㅣ라
주住한 바 없음[無所住]은, 잠깐도 안팎이 없고 가운데 비어 물物 없음이 거울이 비며 저울이 평平함과 같아서, 선악시비善惡是非로 흉중胸中(가슴 가운데)에 두지 아니하는 것이라. 그 마음 냄[生其心]은, 주住(머묾) 없는 마음으로 일에 응應하여 물物의 더럽힘 되지 아니하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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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이 비었으니(平等) 만가지 차별(差別)된 색을 비출 수 있고, 저울이 평평하니 만가지 차별된 무게를 달아볼 수 있다.
어린이는 마니주摩尼珠에 오색五色이 있다고 말하나, 마니주는 본래 투명透明한 색色이다. 아무런 색이 없으니 아무런 색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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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典謂寂然不動感而遂通此與禪機似彷彿矣。
세간의 경전(유가의 경전)에 ‘적연寂然히 움직이지 않으니, 감응感應하면 천하天下에 통通한다’라고 한 말은, 불교의 선기禪機와 거의 비슷하다.
不動者非有所止而使之不動。
‘움직이지 않는다(不動)’라는 것은, 멈추게 하는 어떤 것이 있어서 그것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다.
蓋體本湛寂如太虛空乃天理之不動也。
모든 체體는 본래로 담적湛寂하기가 태허공太虛空과 같아서 이에 천리天理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感通者非有一毫意謂於其間必待有所。
‘감응하여 통한다(感通)’는 것이, 한 털끝만큼이라도 어떤 뜻이 있어서 그 사이에 반드시 (감感을)기다릴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感而通者當其感通之際若洪鐘斯扣空谷傳聲無為也無作也天理本然之勢也喻乎。
감感해서 통通한다는 것은, 그 감(感)에 통(通)하는 때를 당(當)함이 마치 큰 종을 치면 빈 골짜기에 그 소리가 전해지는것과 같아서, 함이 없고 지음이 없는 천리天理 본연本然의 기세氣勢일 뿐이다.
淨鏡之鑑萬形明珠之現五色、禪也者鏡也珠也機也者鑑也現也。
맑은 거울은 온갖 형상을 비추고 밝은 구슬은 오색五色을 나타내나니, 선禪은 이러한 거울과 구슬이고(禪者心也, 선이란 마음이다), 기機는 비춤과 나타남이다. (機者心之所應也, 기란 마음의 응應하는 바이다).
其萬形之妍醜五色之淺深雖昭昭不能自隱而鏡與珠曾何有所為也、有所作也乃至淨至明之效耳。
그 온갖 형상의 곱고 추함과 오색의 옅고 짙음은 비록 분명해서 스스로 감추지 못하나, 거울과 구슬이 어찌 작위作爲하는 바가 있겠는가? 작위하는 바가 있다면 곧 지극한 맑음과 지극한 밝음의 효험일 뿐이다.
能契此者則謂之禪機、外此則非余所知也
능히 여기에 계합하는 것을 선기禪機라 하며, 이 밖의 것이라면 내 알 바가 아니다.
- 증봉명본 [동어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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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无思也 无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사려思慮함이 없고 함(作爲)이 없으며 적연부동寂然不動해서, 감응感應하면 천하天下에 두루 통通한다.
- [주역 계사전]
* ‘재齋’: 无思也 无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