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2021. 3. 12. 13:12카테고리 없음



유록앵전신(柳綠鶯傳信)하고

화홍연소원(花紅燕訴寃)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광음여과객(光陰如過客)인데

아역일소혼(我亦一銷魂)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유록앵전신(柳綠鶯傳信)이요

버들이 푸르니 꾀꼬리가 소식(消息)을 전하고

 

 

화홍연소원(花紅燕訴寃)이다.

꽃이 붉으니 제비가 원한(怨恨)을 하소연하는구나.

 

 

광음(光陰)은 여과객(如過客)인데

세월(歲月)이 이렇게 지내가는 것은 마치 지나간 손(客)과 같은데,

 

 

아역일소혼(我亦一銷魂)이로구나.

나도 또한 언젠가는 사라질 영혼(靈魂)이로구나, 한 영혼에 불과 하구나.

 

 

(유록앵전신(柳綠鶯傳信))

(화홍연소원(花紅燕訴寃))

엄동설한(嚴冬雪寒)이 지나고 입춘(立春) ‧ 우수(雨水) ‧ 경첩(輕捷) ‧ 춘분(春分)이 지나가고, 그러니 버들은 푸릇푸릇 잎사귀 돋고 돋은 것은, 그 사이에 꾀꼬리가 소식(消息)을 전해. 봄소식을 전(傳)한하고, 꽃이 여기저기 붉게 피니 제비가 사무친 한(恨)을 하소연 하더라. 

 

 

(광음여과객(光陰如過客))

(아역일소혼(我亦一銷魂))

해가 뜨고 달이 지고, 이렇게 광음(光陰)이, 세월이 흘러가는 것은 지나가는 손과 같애. 과객(過客)이라 하는 것은 잠시 왔다가 또 떠나고, 또 새 손님이 왔다 또 떠나고,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거든. 이 몸도 이 세상에 왔다가 잠시 울다가 웃다가 성내다가 그렇게 사라져갈 한낱 영혼(靈魂)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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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육체보다도 눈에는 안보이지만 이 몸띵이를 끌고 다니는 영가가 더 소중헌 것이냐? 한 예를 들면, 사람들은 그 집을 겉으로 보기에 근사허게 지은 집을 참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내부, 내부공간(內部空間)이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체(形體)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형체는 그 내부 비어있는 그 공간을 위해서 벽돌도 필요하고 대들보도 필요하고 기와도 필요하고 벽도 필요헌 것입니다. 그 건축자재를 최고에 아주 대리석, 금은보석으로 지었다 하더라도 그 내부가, 내부공간이 전혀 없이 무엇으로 꽉 차있다면 그 집은 집이 아닙니다. 아무, 집으로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여. 또 그릇에다가 비유하면, 그 그릇을 옥으로 맨들았건, 금으로 맨들았건, 보석으로 만들았다 하더라도 그 그릇 안에 공간이 없다면 그것은 그릇이 아닙니다. 아무 그릇으로서는 소용이 없는 것이여. 공간(空間)에 비어있는 디가 있어야 그것은 그릇의 작용(作用)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몸띵이가 아무리 삼단(三段)이 같고 육부(六府) 삼정(三停)을 갖추고 겉으로 보기에 아주 훌륭허다 하더라도, 그 심성(心性)이 바르지 못하고 삿되고 정신(精神)이 온당치 못하다면 어찌 그 사람을 훌륭한 인격자(人格者)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일반 중생(衆生)들은 그 속 내용보다도 겉치레에 굉장히 신경을 쓰고 거기다가 투자를 많이 합니다. 우리 법보재자들은 외형(外形)보다도 훨씬 더 내용(內容)이 가치가 있는 것이고 소중한 것이라고 허는 것을 잘 아시고 계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공장건물을 참 크고 잘 지었... 짓고 그 내부에다가 기계시설을 잘 허고 그래놨다 하더라도, 그 공장을 움직이고 그 기계를 작동을 시킬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좋은 건축, 건물과 좋은 기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잘 먹고 잘 입고 운동을 해서 튼튼한 몸을 만드는 것은 좋은 공장건물을 지은 거와 같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지식(知識)을 쌓는 것은 공장안에 좋은 기계설비(器械設備)를 잘 해논(해놓은) 거와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새 학교 교육은 육체를 튼튼히 허고 지식을 쌓는 교육에 지내지 못하고, 정말 그 사람의 정신(精神), 그 사람의 인격(人格)을 바로 허는 그러헌 교육(敎育)에는 별로 투자를 아니허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좋은 대학 나온 사람 많고 지식을 쌓은 사람 학... 많으나 참사람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은 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러헌 골이 빈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나와서 정치를 하고, 그런 사람들이 나와서 사업을 하고, 그런 사람들이 나와서 설치기 때문에, 물질문명(物質文明)은 발달이 되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평화롭고 좋은 세상이 되아가지 못하고 있는 원인(原因)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용화선원은 그러헌 디에(데) 착안(着眼)을 해서 전강(田岡)조실스님께서 이 주안(朱安)에 용화선원(龍華禪院)을 창설(創設)을 하시고, 또 살아있는 사람  뿐만이 아니라 영가들까지라도 편안허게 있다가 좋은 곳으로 가서 태어나도록. 그 영가가 다시 또 사람 몸을 받아나더라도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도록. 그렇게 험으로써 그 집안이 편안하고 그 집안이 복(福)을 받고 그 집안이 번창(繁昌)을 하도록. 이렇게 대자비심(大慈悲心)을 일으켜서 이러헌 제도를 마련허신 것이 바로 용화선원이요 용화선원 법보전에 만년위패(萬年位牌)제도인 것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서는 출가(出家)한 사람은 수좌(首座)로서 와서 정진(精進)하고, 속가(俗家)에 계신 보살님네들은 이 선방(禪房)에 와서 정진을 하시고, 또 줄곧 와서 계실 수 없는 사람을 위해서는 또 시민선원을 해서 허고, 와서 직접 참선(參禪)을 못허시더라도 법문(法門)을 듣고 그 법문에 의해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참나를 닦아 깨달을 수 있도록, 그러헌, 그렇게 바로 불조(佛祖)의 중생을 제도하려는 뜨거운 지혜(智慧)와 자비(慈悲)의 정신을 받들어서 이렇게 용화선원을 창설하고 운영(運營)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법보전 만년위패에 모심으로 해서 그렇게 많은 집안에 우환이 끓고 그러던 집안이 편안해지고 헌 실예(實例)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을 잘 받드는 것은 저 유교(儒敎)에도 그러헌 예법(禮法)이 다 전해 내려와서 오늘날까지도 우리 한국 사람들은 하나의 신앙(信仰)이 되아있어, 있어왔습니다. 요새는 다른 종교들이 들어와서 영가제사를 잘 지내지 않고 인제 그러헌 가정도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마는, ‘영가는 육체가 없는 사람’이고 우리는, ‘우리 살아있는 사람은 육체가 있는 영가’인 것입니다. 육체가 있고 없는 차이만 있지 우리의 영가, 우리의 심성(心性)은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또 사람이나 축생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자기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사람 탈을 쓰고 나오면 사람이고, 업을 많이, 악업(惡業)을 지어서 축생(畜生)탈을 쓰고 나오면 소도 되고 돼지도 되고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업을 짓느냐에 따라서 천당에도 가고 지옥에도 가고 소도 되고 말도 되고 되는 것이지, 영원히 사람만 되라는 법도 없고 영원히 짐승 되라는 법도 없습니다. 

 

육도윤회(六道輪廻)는 자기의 지은 업에 따라서 받는 것이지, 누가 그렇게 억지로 맨드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에 가고 싶으면 온갖 못된 짓을 많이 허면 지옥에 틀림없이 가는 것이고, 착한 일을 많이 허면 반드시 천당에 가게 되아있어. 인간으로 태어나되 머리가 좋게 태어날랴며는 금생(今生)에 지혜를 닦고, 부자가, 내생(來生)에는 반드시 부자가 되고 싶으면 금생(今生)에 보시(布施)를 많이 허고, 자기가 짓기에 달렸어. 반죽을 묽게 헐라면 물을 많이 치믄 그 반죽이 물... 송편 같은 것을 빚을 때 물을 많이 부으면 송편이 질죽허니 되는 거고, 물을 쪼끔 치고 가루를 많이 넣면 송편이 딱딱허고 그런 반죽이 될 것이다 그 말이여. 짜게 먹고 싶으면 소금을 많이 넣고, 싱거웁게 먹고 싶으면 소금을 적게 넣면 되는 거와 마찬가지여. 콩을 많이 먹고 싶으면 콩을 많이 심고 팥을 많이 먹고 싶으면 파를... 팥을 많이 심으면 되는 거여. 심는 대로 나는 것이여.

 

누가 딱 있어가지고 착한 일 많이 헌 사람을 벌을 주고 나쁜 짓 헌 사람을 무슨 좋게 해주고 그러헌 어떠헌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여. 반드시 자기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받게 되는 것이여. 일호(一毫)도 어김이 없고 틀림이 없어. 그런데 이런 말씀을 허면, ‘그렇지 않더라. 아무개는 그렇게 착하고 그런대도 가난허게 살고 집안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렇게 못된 짓을 많이 해도 잘만 살더라’고, 이런 경우를 여러분은 보실 것입니다마는,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전생에 지어 논(놓은) 업(業)에 따라, 업이 있기 때문에, 금생에는 비록 착해도 전생에 악한 일을 해놓은 것이 있으면 그놈이 더 무거우면 그놈 먼저 받, 받게 되는 것입니다. 금생에 나쁜 짓을 해도 괜, 잘 사는 사람은 그래도 전생에 좋은 일을 해 논 것이 있기 때문에 그놈 먼저 받느라고 우선 그런 것이지, 언젠가는 악한 짓 헌 것은 반드시 금생에나 내생에나 그 다음에 언젠가는 꼭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생에 지어서 금생에 받는 것은 현생보(現生報)라 그러고, 금생에 받, 지어가지고 이 다음 생에 받게 되는 것은 순생보(順生報)라 그러고, 금생에 지어가지고 몇 생 건너뛰어가지고 받는 것은 순후보(順後報)라, 받는 과보가 그렇게 다른 것입니다. 그러헌 분간(分揀)이 있어서 그런 것이지, 백판 자빠져 놀고도 돈 잘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저금을 많이 해서 통장에 두둑허니 돈이 들어있는 사람은 우선 놀고도 잘 먹고 삽니다. 또 금생에 열심히 돈을 벌어도 별로 잘 못 산 사람은 빚을 많이 지어 놔가지고 빚 갚느라고 못 먹는 수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이여. 

 

그래서 불자(佛子)는 반드시 인과(因果)에 법칙(法則)을 철저하게 믿어야 돼. 이건 과학적(科學的) 사실(事實)이여. 일호도 어김이 없는 것이고, 안 믿을라야 안 믿을 수가 없는 것이고, 이것을 안 믿는 사람은 착각에 사로잡혀 있거나 업(業)이 두터운 사람이여. 업이 두터우면 그런 인과의 법칙을 믿기를 싫어허는 거여. 자기 합리화를 해가지고 안 믿을랴고 그러는 거여. 안 믿을 수가 없는 것인데 억지로 안 믿을라고 그러거든. 그걸 믿고서는 나쁜 짓을 헐 수가 없거든.

 

 

- 송담선사 법문 47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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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짓기에 달렸어. 반죽을 묽게 헐라면 물을 많이 치믄 그 반죽이 물... 송편 같은 것을 빚을 때 물을 많이 부으면 송편이 질죽허니 되는 거고, 물을 쪼끔 치고 가루를 많이 넣면 송편이 딱딱허고 그런 반죽이 될 것이다 그 말이여. 짜게 먹고 싶으면 소금을 많이 넣고, 싱거웁게 먹고 싶으면 소금을 적게 넣면 되는 거와 마찬가지여. 콩을 많이 먹고 싶으면 콩을 많이 심고 팥을 많이 먹고 싶으면 파를... 팥을 많이 심으면 되는 거여. 심는 대로 나는 것이여.


누가 딱 있어가지고 착한 일 많이 헌 사람을 벌을 주고 나쁜 짓 헌 사람을 무슨 좋게 해주고 그러헌 어떠헌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여. 반드시 자기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받게 되는 것이여. 일호(一毫)도 어김이 없고 틀림이 없어."

 

* 짜게 먹고 싶으면 소금을 많이 넣고, 싱거웁게 먹고 싶으면 소금을 적게 넣으면 되는 거와 마찬가지여.

국 한 그릇에 소금을 치고 물을 붇는 일.

한 때에 악업惡業을 짓고 선업善業을 짓는 일.

자기 스스로가 끓인 그 국을 온전히 다 들이켜야 하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