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너머 저쪽、행복(幸福)의 규정(規定)】

2021. 2. 12. 05:39카테고리 없음

【행복이 있다 말들 하기에】

 



사서순환난부한(四序循環暖復寒)헌디
미후심연육화촌(獼猴深戀六華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이성안색증무가(耳聲眼色曾無暇)하고 

염념나지시사문(念念那知是死門)이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사서순환난부한(四序循環暖復寒)한디,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四時), 사서(四序) 네 계절이 돌고 돌아. 
그래 가지고 따뜻한 봄이 더운 여름이 되고, 더운 여름이 서늘한 가을이 되고, 서늘한 가을이 다시 추운 겨울이 돌아오다. 


미후심연육화촌(獼猴深戀六華村)이로구나. 
잔나비는 깊이 육화촌(六華村)을 그리워하고 있다. 원숭이는 여름 가을에 여섯 가지 모다 고운 꽃이 피고 꽃 핀 뒤에는 맛있는 열매가 맺어서 마음껏 뛰어 놀면서 그 맛있는 과일을 이것도 따먹고 저리... 저것도 따먹고 허면서 그렇게 즐기고 놀다가, 추위가 돌아와서 눈이 덮이고 따먹을 과일도 다 없으니까 그 때 그 육화촌의 맛있는 과일을 항상 그리워허고 있더라 그 말이여. 


이성안색증무가(耳聲眼色曾無暇)여, 
귀로 들리는 모든 소리, 눈으로 보는 모든 색상, 보고 듣는 가운데 잠시도 겨를이 없어.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생각 생각이 죽음의 문을 향해서 달리고 있는 것을 어찌 알까보냐? 
밤낮 맛있는 육화촌에 온갖 맛있는 과일만을 그리워하다가 그러는 동안에 시시각각으로 죽음을 향해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이 게송(偈頌)은 인생(人生)이 이 세상에 나와서 오욕락(五欲樂),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재산(財産)에 대한 거, 예쁜 사랑하는 사람, 명예(名譽), 권리(權利), 또 안락(安樂), 수면(睡眠) 그것을 향해서 어려서부터 공부헐 때 목표를 거기에다 설정을 허고 있다 그 말이야. 
- 좋은 학교 들어가고, 좋은 학교 졸업허면 거기에서 명예가 생기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예쁘고 아리따운 이성과 결혼을 하고, 좋은 아들을 낳고, 또 차츰 좋은 자리로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 
모든 사람이 그런 육화촌六華村을, 육화촌의 맛있는 과일을 그리워하는 원숭이처럼 일생동안을 오욕락(五欲樂)에다가 목표를 설정을 하고 그것을 향해서 노력을 허고 있다. 그러나 그러헌 것들이 구경究竟의 목적이 될 수가 없고, 우리에게 영원永遠한 행복幸福을 갖다 주는 것들이 아니야. 

———

마치, 독일의 ‘붓세(Busse, karl)’라고 하는 시인(詩人)이 저 산 너메, 
<산 너머 저쪽>이라고 허는 제목의 시(詩)를 읊기를,  

산 너머 저쪽 하늘 멀리  
행복이 있다고 말하기에  
남 따라 찾아갔다가  
아! 눈물만 흘리고 돌아왔도다.  

산 너머 저쪽 더 멀... 멀리에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기에. 

이러헌 시(詩)에 말하듯이, 
- 무언가 내년(來年)에는 무엇이 잘 되겠지. 다음에는 무엇이 잘 되겠지. 뭣 재수가 있어서 사업이 잘 되겠지. 내년에는 더 좋은 학교에 들어가겠지. 내년에는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겠지.- 
항상 저 산 너메(너머에) 행복을 구하듯이, 그러면서 설마에 속고 그러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 말이여. 


물론 우선 무엇이 안 되어도 장래에다 희망을 걸고 노력을 하는 것 그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현재에 우선 목적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면 좋은 학교에 들어가 보면 우선은 기쁘고 좋지마는, 학교를 졸업하고 또 좋은 직장이 기다리... 좋은 직장에 들어갈 일이 걱정이여. 마음먹은 대로 들어간 사람도 있지마는 마음먹은 대로 안 들어간... 못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그 말이여. 또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들어가서는 우선 좋지마는 또 얼마 안가서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를 바래고 더 많이 월급을 타기를 바래고, 사업을 허는 사람은 그 사업이 잘 되아서 사업이 번창하기를 바래나,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 그 말이여. 

그러한 일들이 평생동안 쉴 사이 없이, 자기가 그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늙어가고 자기의 아들딸이 또 그러헌 과정을 밟으면서 늙어가고, 또 그 다음 손자손녀가 또 그 다음... 그렇게 그런 과정을 밟아서 늙어간다 그 말이여. 
전인前人이, 앞사람이 농사(農事)를 짓다가 그 논밭을 자손에게 물려주고 죽어가고, 또 그 자손이 그 논밭을 또 갈고 벌어 묵고 살다가 또 뒷사람한테 물려 준 것이, 

---


옛날에 어떤 사람이 산에 가서 곰을 만났어. 곰이 다가오니까 도망 갈 수도 없고 마치 거기에 아람드리 그 나무가 있으니까 나무 뒤로 우선 피했다 그 말이여. 
곰이 나무를 가운데다 놓고 두 손으로 이렇게 사람을 잡을라고 허니까 자기도, 자기가 곰 손을 이렇게 탁 잡고, 나무를 가운데다 놓고 곰과 사람이 이렇게 마주 잡고 딱 서 있다 그 말이여. 
놓자니 돌아와서 자기를 잡아먹을 것이고 도망 갈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 있는 힘을 다하고 땀을 흘리면서 그렇게 떨고 있는데, 마치 저기 사람이 지내간다 그 말이여. 

“여보시오, 이리 좀 오시오. 여기 내가 곰을 한 마리 잡었는데, 이거 나 혼자는 힘이 모자라고 당신 이리 와서 요것 좀 잡으시오. 내가 마을에 가서 그 도끼나 무슨 밧줄을 가지고 와서 이놈을 잡아 가지고 둘이 잡어서 웅담(熊膽)을 팔아먹읍시다.” 

긍게 그 사람이 ‘웅담’이란 말을 듣고 그 교대(交代)를 해 가지고 곰을 딱 잡고 있다 그 말이여. 
“옳다! 되었다”하고 그 사람은 도망가 가지고 다시는 안 와버려. 

그 사람도 가만히 이렇게 잡고 있다가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해도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온다 그 말이여. 그러자 마치 또 사람이 지내가니까 그 사람을 불러 가지고 자기가 당한 것처럼 또 그 사람한테 곰을 냄겨주고 또 도망갔어. 

이것이 마치 이 지구 땅에, 이 지구상에서 태어나가지고 농사짓고 살고, 장사하고 살고, 또는 회사에 다니고 살다가 늙으믄 후손(後孫)한테 그런 모든 것들을 냄겨주고 죽어가고, 그러헌 형상을... 그러한 곰을 잡고, 아! 그 웅담은 욕심이 나지만 그 이 그놈을 잡고 놓기만 하면 그놈이 나를 죽일 테니 놓지도 못하고 버리자니 아깝고, 계속 붙잡고 있자니 힘든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마치 그와 같다 그 말이여. 

———

사람들이 큰 부자 되기를 다 바라지마는, 부자가 되고 보면 정말 그렇게 행복한 것도 아니여. 되기 전에는 큰 부자가 되면은 좋은 집도 사고, 좋은 차도 사고, 마음대로 세계에 유람도 댕기고, 얼마든지 참 남부럽지 않게 행복허게 살 것 같지마는, 큰 부자가 되고 보면은 사실은 그렇게 행복한 것도 아니다 그 말이여. 또 큰 부자가 된다, 되고자 욕심을 낸다 해서 저마다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인생으로 태어나서 목적으로 해야 할 ‘행복(幸福)의 규정(規定)’이 오욕락(五欲樂)이 될 수가 없다 그 말이여. 오욕락은 조끔도 영원성(永遠性)이 없고 정말 나를 행복(幸福)하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여. 


그래서 일찍이 부처님을 비롯한 모든 성현(聖賢)들은 우리가 목숨을 바쳐서 획득해야 할 영원한 ‘행복의 규정’을, 

‘밖에서 찾지 말아라. 자기 안에서 찾으라’ 고 설파(說破)를 하신 것입니다.  

 

 

_______

 

 

흉중하애부하증(胸中何愛復何憎)하면, 
자괴인전백불능(自愧人前百不能)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재차현성공안외(除此現成公案外)에 
차무불법계전등(且無佛法繼傳燈)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흉중(胸中)에 하애부하증(何愛復何憎)이며, 

자괴인전백불능(自愧人前百不能)이다. 
가슴 가운데에 무엇을 사랑하며, 다시 무엇을 미워 할까보냐? 

생각 생각이 죽음의 문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 우리의 신세(身世). 

 

지금 새해를 맞이해서 오늘이 1월 3일인데, 어릴 때는 무척 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설이 돌아와서 때때옷을 입고 세뱃돈을 타고 허면은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 나이가 차츰차츰 들어가서 세뱃돈도 타는 시기가 넘어가고, 나이만 자꾸 넘어가면 오히려 설 돌아오는 것이 별로 기쁠 것도 없다 그 말이여. 죽음을 향해서, 한 해,...한 살 더 먹으면은 우리에게는 이미 죽을 날짜가 다 정해져갖고 있고, 다맛 언제 죽을런지만 모르지 이미 죽을 날짜가 다 정해 있다고 봐도 틀림이 없어. 한 살 더 묵고 하루하루 지내가는 것이 죽을 날에 다가가는 것인디 무엇이 그렇게 설이라고 즐거울 것이 있으며, 그러헌 마당에서 이미 사형언도(死刑言渡)를 받은, 받고 있는 사람이 무엇을 누구를 예뻐하고 누구를 미워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그 말이여. 저 사람도 죽어가고 있고, 나도 죽어가고 있는데, 죽을 날이 가까와지면 무엇인가 자기가 해야 할 마무리 지을 일에 대해서 모든 것을 신경을 쓰고 정돈을 하고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이 낫지, 누구를 트집을 잡아서 미워하고 과거에 자기에게 조금 섭섭히 했다고 해서 그것을 미워하고 미운 생각을 품고 죽어 가면 될 것이냐 그 말이여.


자괴인전(自愧人前)에 백불능(百不能)이여, 
아무것도 남 앞에 내 놓을만한 것이 없는 것을 스스로 부끄... 부끄러워 할 뿐이다 그 말이여. 

세속世俗 사람은 각기 자기의 장기, 자기의, 남이 가지고 있지 않는 특별히 참 잘한 것을, 잘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떠억 내놓고 으시대고 그것을 자랑삼아서 그 떳떳하고 보람 있게 이렇게 살아가는데, 사실은 박사학위를 몇을 가졌건, 또는 높은 권리를 했건, 많은 재산을 가졌건, 죽어 가는 입장에 뭐 그렇게 그 놈을 코에다 걸고 으시대고 남을 업신여기고 헐만한 거리가 되지를 못하는 것이지.

그러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참으로 허망한 것인 줄 깨달으면 그 사람이 인간 중에 상등인(上等人)이여. 죽어 갈 때 일생을 그 놈을 붙잡고 행세를 하다가 죽어갈 때 그걸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하고 그냥 한(恨)을 품은 채 이렇게 죽어가기 보다는, 죽기 전에 ‘그런 것들이 무상(無常)하고 허망(虛妄)한 것이다.’그리 생각하고 그런 것에 대한 집착(執著)을 떠나서 그런 권리를 설사 자기가 부릴 수 있는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정의(正義)에 입각(立脚)해서 잘 행사를 하고, 큰 재산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적절히 다른 사람을 위해서, 대중(大衆)을 위해서 적절히 잘 쓰고 그러려니와, 

 

그러헌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서 떠억, 

‘정말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 정말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이고, 불법(佛法)이요, 참나를 찾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이다. 오직 이것만이 참 나를 찾아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길이고, 이것이 바로 온 세계를 극락정토(極樂淨土)로 맨드는 평화사업(平和事業)이다.’

이렇게 깨달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재산이 없어도, 학식이 없어도, 이 세상에 내놓을만한 아무 것도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상등인(上等人)이여. 정말 상등인이다 그 말이거든. 

오직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화두(話頭)를 받아서, 그 화두 하나를 가지고 생사 없는 진리(眞理)를 향해서 등불을 삼고 지팽이를 삼고 꾸준히 나아간다 그 말이여. 늙어 가는 것도 두려울 것 없고, 세월이 지내간 것도 두려울 것이 없고, 온 세상이 탐욕(貪欲)과 진심(瞋心)의 불바다가 되아서 훨훨 타더라도, 이 화두 하나만을 가지고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정진(精進)해 나간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어. 먹고 사는 것은 형편대로, 넉넉하면 넉넉하게 살고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간략하게 살고 그 뿐이라 그 말이여.

이 공안(公案)이, 공안이,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성성적적(惺惺寂寂)하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도록 그렇게 잡두리 해나간 외에는 불법(佛法)의 법을 전(傳)하는 등(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여. 그렇게 해 나가는 디에(데에) 그것이 불법(佛法)이고, 그것이 바로 법등(法燈)을 전해 나가는 가장 요긴(要緊)한 방법(方法)이다 이거거든.

요새 참 여러분의 자녀들이 대학 진학하기 위해서 시험을 치르고 모다 발표를 해서 합격해서 기쁨에 넘치는 가정도 있을 것이고, 또 마음먹은 대로 합격을 못해서 온통 우울한 가정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또 후기도 있고, 또 전문대도 있고, 또 금년에 안 되면 내년도 있으... 있으니만큼, 너무 대학에 마음먹은 대로 안 들어갔다고 해서 그렇게 슬퍼하고 걱정하고 절망하고 그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차라리 전기에 안 된 것이 후기에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도 있고, 또 금년에 안 되어서 낸년(來年)에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도 있고, 인생살이라 하는 것이 우선 좋아도 나중에 안 좋을 수도 있고, 우선은 안 좋아도 나중에 그것이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는 수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그런 것 때문에 상심허실 것도 없고, 못 들어간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위안(慰安)을 주고 잘 달래서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차기에 대비해서 잘 계획을 세워서 공부허도록 그렇게 허시기를 바랍니다.  

———

인생(人生)이 그렇게 좋은 대학에 갈랴고 그러고, 모다 그런 것이 무엇 때문에 그러하냐? 
한마디로 말하면 ‘행복(幸福)허게 살기 위해서’ 그런 것이거든.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좋은 사람과 결혼을 하고 큰 부자가 되고 헌 것도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위해서 그러거든. 그러면 행복이라 하는 것이 코앞에 무엇이 자기 욕심(欲心)껏 마음먹은 대로 된다고 헌 것은 우선 좀 기쁜 것뿐이지, 그 자체가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幸福’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야. 대학에 못 들어가면 당장 아주 인생이 거기서 끝이 난 것처럼 야단들이지만, 전혀 그것은 생각이 그릇된 것이다 그 말이거든. 

인생은 긴... 

무량겁(無量劫) 이전(以前)부터서 무량겁 미래(未來)를 향(向)해서 긴 여행(旅行)을 허고 있는 거거든. 한평생 살다가, 산다고 허는 것이 한 평생 긴 여행을 하고 있는 거거든. 그 여행이 힘들고 고생스러운 여행도 있을 것이고, 힘이 들지만 행복, 기쁨을 느끼는 여행도 있을 것이고, 아주 모든 일이 수월허게 모든 것이 맞아 떨어져서 아주 편안한 여행을 할 수도 있으나, 잠꽌이거든. 

좋은 여관(旅館)에 잠을 자나 산에서 움막에서 하룻밤을 지새나, 생각 나름으로 산 속에 움막에 지냈어도 하룻밤을 즐겁게 지낼 수도 있고, 좋은 여관에 호텔에 들어가서 잠을 자도 하룻밤 자는 동안에 불행(不幸)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어서,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딱 중심(中心)을 잡고 그 상황에서... 에 즉(即)해서 그 시간을 바르게 보람 있게 지내도록 노력을 해야지, 조금 무엇이 마음에 안 맞다고 그것이 바로 자기의 불행(不幸)인 것처럼 절망을 하고 남을 원망하고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거거든.  


_______


본참공안몰심사(本參公案沒心思)하야  
철벽은산백부지(鐵壁銀山百不知)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의래의거의무간(疑來疑去疑無間)하면  
고목개화만고지(枯木開花滿枯枝)리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본참공안몰심사(本參公案沒心思)하야,
‘이 뭣고?’ 화두를 탄분은 ‘이 뭣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타신 분은 ‘판치생모?’,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한 분은 ‘정전백수자?’, 

‘마삼근麻三斤’을 하는 분은 ‘마삼근?’ 
각자 자기가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은 그 화두가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이여.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몰심사(沒心思)여. 완전히 거기에 몰입(沒入)을 해 가지고 다른 일체 생각이 거기서 다 끊어져야 한다 그 말이여. 앉으나, 서나, 누우나, 밥을 먹으나, 옷을 입으나, 화장실을 가나, 세수를 하나, 차를 타나, 일체 일을 허거나, 귀로 무슨 소리를 듣거나,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본참공안에 대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허도록. 

앞도 끊어지고 뒷도 끊어져서 은산철벽(銀山鐵壁)이 되아서 아무것도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량복탁(思量卜度)이 없어. 


그렇게 해서, 의래의거의무간(疑來疑去疑無間)이여. 
의심, 의심(疑心)해 가고 의심해 와 가지고 의심과 의심이 끊어진 사이가 없어. 항상 의단이 독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도록. 그렇게 해 가면, 

 

 

고목개화만고지(枯木開花滿枯枝)여. 
마른 남긔(나무)에 꽃이 피어 가지고 마른 가지에 그 꽃이 가득 차게 되듯이,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잎이 다 지고 앙상한 가지가 마치 죽은 나무처럼 그러나, 입춘우수(立春雨水)가 지내면은 물이 오르고 파릇파릇 잎이 돋우고 꽃이 만발(滿發)을 해서 환-히 고운 꽃이 피고 향내를 풍기듯이, 우리가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을 해 나간 때는 마치 부모초상(父母初喪)을 만난 사람처럼, 눈으로 무엇을 보아도 ‘이 뭣고?’요, 귀로 무슨 소리를 들어도 ‘이 뭣고?’요 해서, 아무 기쁨도 없고 다못 생각 생각이 화두만을 들고 나가니, 인생이 이래도 그것을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헐 것인가? 슬픈 일을 당해도 슬퍼 헌 중도 모르고, 기쁜 일을 당해도 기쁜 중을 모르고 인생의 사는 맛이 오욕락(五欲樂)을 즐기는 맛으로 사는데 오욕락을 다 버려버렸어. 부모 형제도 다 버리고 세상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에도 다 내 일이 아닌 것처럼 다 버려버리고 사니, 마치 죽은 나무와 같고 나무토막과 같고 돌덩어리와 같다 그 말이여. 

그러나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아. 
화두를 들지 안 해도 저절로 의단이 터-억.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의심이 깊을 수가 없고 더 이상 간절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일주일을 못 가서 툭 터지게 되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게 되고, 불조(佛祖)의 면목(面目)을 보게 되고, 우주(宇宙)의 진리(眞理)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이것은 부처님을 위시(爲始)해서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몸소 실천을 해서 깨달음의 경지(境地)에 들어간 그 경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도리(道理)라, 이것은 우리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여.  


———

선방禪房에 어떤 분이 ‘견성見性을 한 경지境地가 어떤 것인가’ 그것을 질문해 왔습니다. 

견성見性한 경지境地는 ‘자기가 깨달라 봐야 아는 것’이지, 그 ‘물이 더웁고 차운 것은 자기가 마셔 봐야 얼마나 차웁고 얼마나 뜨거운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보고 물어봐서 ‘어떻다’고, ‘얼마만큼 뜨겁다’고 말해 봤자 소용이 없는 것이여. 깨달음의 경지도 정말 그렇게 궁금하고 알고 싶으면, 폐침망찬(廢寢忘餐)하고 어쨌든지 간절히 간절히 정진(精進)을 해서 스스로 탁! 깨쳐 봐야 할 일이더라 그거거든. 궁금한 것을 나보고 물어봐서 어떻게 하냐 그 말이여. 정말로 궁금하거든, ‘깨달음의 경지가 얼마나 좋고 대관절 그 경지가 어떠헌 것인가?’ 그것이 궁금허면 정말 알뜰히 정진을 허는 수 밲에는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참으로 깨달음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냐?’
또 ‘깨닫기 위해서는 정말 ‘이 뭣고?’만 허면 꼭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냐?’ 

또 ‘또 자기가 그러헌 방법으로 허면 자기가, 자기도 깨달을 수 있... 있는가?’ 그러헌 것들이 정말 의심이 난다고 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건 부처님의 말씀이나 역대 조사에 법문(法門)에 의지해서 있다고 믿을 수 밲에는 없는 것이고, 또 자기... 자기의 근기(根機)라고 할까, 그릇이 ‘자기도 열심히만 하면 깨달을 수 있냐 없냐? 깨달을 수 없으면 아예 그만두고 인생을 달리 다른 길을 찾아보고, 꼭 깨달을 수 있다면 자기도 한바탕 해 보겠다’ 이런 말인데, 깨닫... 우리는 남녀노소(男女老少), 빈부귀천(貧富貴賤), 또 지식(知識)의 유무(有無)를 막론(莫論)하고 깨달을 수 있는 능력(能力), 자격(資格)은 누구나 다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다 불성(佛性)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누구든지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여. 또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찾기 때문에, 바르게 열심히만 찾으면 꼭 찾고 마... 마는 것이여. 


방법(方法)이 틀리면 안 되아. 

또 방법이 바르더라도 열심히 허지 않고 조금 허다 말다하면 그것도 안 돼. 
또 아무리 열심히 허더라도 방법이 잘못 되아 있으믄 또 안 된다 그 말이여. 방법이 바르고 그리고 열심히만 헌다면 누구든지 깨달을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믿어야만 되는 것이여. 

 

 

_______

 

 

월마은한전성원(月磨銀漢轉成圓)하고 

소면서광조대천(素面舒光照大千)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연비산산공착영(連譬山山空捉影)호되 

고륜본불낙청천(孤輪本不落靑天)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월마은한전성원(月磨銀漢轉成圓)이여. 
달이 돌고 은하(銀河)를, 하늘을 돌고 돌다 보면 점점 둥그러워져. 

초생달이 하룻밤 지내면 조끔 더 커지고 또 커지고 해서 보름이 되면은 완전히 둥근... 둥글게 된다 그 말이여. 그래 가지고, 

 

 

소면서광조대천(素面舒光照大千)이여. 
그 하-얀 얼굴로 밝은 빛을 발산(發散)해서 대천세계(大千世界)를 비추어. 


연비산산공착영(連譬山山空捉影)이여. 
그 밝은 달이 산중(山中) 옹달샘에도 그 비춰 가지고, 원숭이가 달이 떨어졌다고 물속의 달을 건지자고 원숭이끼리 팔에 팔을 연결을 해가지고 그 물 속에 떨어진 그 달을 건질랴고 허는 그 경전에 그런 설화(說話)가 있는데, 


고륜본불낙청천(孤輪本不落靑天)이다. 
그 하늘에 뜬 휘향창 밝은 발이... 달이 다맛 물 있는 곳마다 그 달 그림자가 비추는 것뿐이지, 청천(靑天)에서 그 달이 떨어져 버린 것이 아니더라. 

이 세상에 흥망성쇠(興亡盛衰)와 생노병사(生老病死) 속에서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생겨났다 없어지고 생겨났다 없어지고, 사람도 태어났다 죽고 태어났다 죽고, 사람들이 허는 사업(事業)도 잘 되다가 망(亡)하고 잘되다가 망하고 망하다가 잘되고, 나라도 생겨났다가 얼마 지내다가 나라가 없어지기도 하고, 또 새나라가 태어나... 생겨나기도 하고.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절(四時節)이 돌고 돌 듯이, 인생의 흥망성쇠(興亡盛衰)도 또한 그렇더라. 

그렇지만 달이 초생(初生)... 그믐에는 완전히 아주 칠야삼경(漆夜三更), 아주 새카매 캄캄허지만, 초하루 초이틀 나흘 하다보면 다시 또 초생 달이 생겨서 또 보름이 되고, 보름달이 열 엿새, 열 이레, 열 여드레 되면 차츰차츰 또 작아져 가지고, 또 그믐이 되면은 까맣게 없어지는 거와 마찬가지다 그 말이여. 그래서 ‘완전히 달이 둥근 달은 보름날 저녁 한 번 뿐인 거여.’


인생人生에 있어서 모든 사업事業이 번창하고 잘 된 것도, 잘 되면 한없이 영원히 잘 될 것 같지만, 또 차츰차츰 기울어져서 부도(不渡)가 나기도 하고 임자가 바뀌기도 허는 것이다 그 말인데, 달이 졌다고 해서 절망(絶望)할 것도 없어. 어두워지면은 불을 켜고 등불을 켜는 거고, 밤에 어디를 갈랴면 불을 들고 가면 되는 것이지 어두워졌다고 해서 아주 영 자기가 가야 할 길을 그만 둘 수는 없는 것이거든.

사업事業이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그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사업이 여의치 못허면 여의치 못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또 살아갈 길을 찾아가는 거고. 우리의 생활(生活)도 역시 마찬가지고, 우리 가정의 모든 일도 그때그때 상황 따라서 지혜(智慧)와 자비(慈悲)로써 잘 처리해 나가면 반드시 또 좋은 길이 있는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절망하고 삶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 그 말이여. 

학생(學生)이 성적이 떨어지고 대학(大學)에 떨어졌다고 해서 종종 자살을 하고 그러헌 문제들이 있는데, 그건 생각이 잘못 되아서 그런 것이다 그 말이여. 우리가 법문(法門)을 듣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고 하는 바른 길을 안다면, 인간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에 그렇게 민감하게 그럴 필요가 없다 그 말이여. 어려우면 어려운 속에서 지혜(智慧)와 자비(慈悲)로써 살아가고, 무엇이 잘 되면 잘 되았다고 해서 지나치게 우쭐되고 그럴 필요도 없는 거여. 그런대로 더욱 겸허(謙虛)허게 잘 살아가는... 가야만 되는 것이다 그 말이거든. 

하늘의 달은 언제나 허공(虛空) 속에 있는 것이지, 태양과 지구와 달과의 관계에 있어서 때로는 초생달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보름달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그믐달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 달 자체가 그런 것이 아니다 그 말이여. 우리도, 인생의 ‘행복불행(幸福不幸)’도 그때그때 상황 따라서 마음대로 되기도 하고 내 뜻대로 안되기도 하고, 부자가 되기도 허고 가난하기도 허고 그런 것인데, 그런 상황에 내가 잘 적응을 하고, 

여행을 헐 때 높은 산 고개를 넘어가고 절벽을 기어오를 때에는, 거기에 맞춰서 아주 ‘조심(操心)’스럽게 넘어가야 또 다시 내리막길이 있을 수도 있고 평탄(平坦)한 길도 만나는 것이다 그 말이거든. 어떠헌 상황에서도 자기의 본지(本志)가 굽히지 않고 자기 본심(本心)이 흔들리지 않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상황이 되아 있을 때, 열심히 정진(精進)을 해서 자기가 자기를 이길 수 있어야 한다 그 말이여. 그래야 어려운 일이 있을 때도 그것 때문에 내가 좌절(挫折)이 되지를 안 해. 

작년 그러께인가, <보왕삼매론십대애행(寶王三昧論十大礙行)>을 그 보시(布施)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마는, 매일 한 번씩을 읽어 보셔야 한다 그 말이여. 그렇다면 무슨 어려운 일을 당(當)하더라도 바로 중심(中心)을 잡을 수가 있어. 어려운 일을 당할 수록에 오히려 지혜(智慧)를 낼 수가 있고 용기(勇氣)를 낼 수가 있고 더욱 자비심(慈悲心)을 일으킬 수가 있더라 그거거든. 


_______

군금욕식무위리(君今欲識無爲理)인데 

불리천차만별중(不離千差萬別中)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군금욕식무위리(君今欲識無爲理)인댄,
여러분이 함이 없는 진리를 알고자 할진댄, 


불리천차만별중(不離千差萬別中)이니라. 
천차만별(千差萬別)의 가운데를 여의지 않느니라. 

천차만별(千差萬別)이 무엇이냐? 
인생에 생노병사(生老病死)가 바로 천차만별이요, 흥망성쇠(興亡盛衰)가 천차만별이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천차만별이요, 빈부귀천(貧富貴賤)이 천차만별이여. 천차만별 속에 영원한 진리(眞理)가 그 속에 들어 있어. 사람들은 그것을 여의고 행복(幸福)을 찾고, 그것을 여의고 진리(眞理)를 찾지마는, 진리가 바로 천차만별(千差萬別) 속에 있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소승(小乘)은 생사(生死)가 두려워서 ‘죽음을 여읠랴면 죽음을... 죽음이 싫고 두려워서 죽음을 안 당하랴면은 태어나지 말아야겄다. 태어나면은 죽게 되니까 안 태어나야만 죽음을 면헐 것이다’ 해가지고 태중(胎中)에 들어가기를 그렇게 싫어하고 미워해. 태중에 안 들어가는 데에다가 목표를 설정을 하고 공부를 허는데, 대승(大乘)에서는 그게 아니거든. 

우리 눈앞에 전개(展開)되는 삼라만상(參羅萬像)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생노병사와 흥망성쇠와 성주괴공 하는 이 자체(自體)가,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이것이 제법(諸法)인데, ‘모든 법’인데, 

제법(諸法)이 종본래(從本來)로,
본래부터,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이여. 
항상 그 자체(自体)가 스스로 열반(涅槃)의 상(相)이다 그 말이여. 
생사(生死) 없는 상(相)이여. 

불자행도이(佛子行道已)하면, 
불자가 도(道)를 행(行)해 마치면,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이다. 
‘이 몸뚱이 죽은 뒤에 내생에 부처가 된다’ 그렇게 새겨서는 안 되고,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으로 바로 그 도리(道理)를 보아 버리면’ 그것이 바로 ‘부처를 짓는 것이다, 성불成佛하는 것이다’ 그거거든. 

그래서 인생의 이 천차만별(千差萬別), 흥망성쇠, 희로애락, 생로병사를 버리고 생사 없는 진리를 찾을라고 허지 말고, 우리가 자나 깨나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이요, 생노병사(生老病死)요, 흥망성쇠(興亡盛衰)의 바로 그 속에 있거든. 거기에 즉(即)해서, 그놈을 버리고 찾지 말고 있는 그 자리에서, 있는 그 찰나(刹那) 찰나에 떡 화두(話頭)를 거각(擧却)을 허시라 그거거든. 


‘이뭣고?’


또 챙기고 또 챙기고, 그것 밖에는 영원한 진리를 찾을 길이 없어. 
영원한 진리가 저 땅속 깊이 어디 묻혀 있는 것도 아니고, 영원한 진리가 로케트(rocket)를 타고 몇 백만 리를 허공으로 올라가야, 날아 올라가야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처(處)해 있는 바로 그 자리 그 시간(時間)에, 거기를 여의고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거거든. 

‘이뭣고?’ 

이론적(理論的)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거든. 
무(無) 조건(條件)하고 ‘이 뭣고?’


자꾸 허다보면 망상(妄想)을 버릴랴고 안 해도 저절로 끊어진 때가 오고,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되어진 때가 오는 거여. 열심히 몸부림을 치고 부시대고 애를 쓰는 데에서 그렇게 되는 것이지, 그럭저럭 허다 말다 하고 그런다... 그래 가지고는 안 되거든.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마음 길이 끊을라고 해서 끊어진 게 아니라 자꾸 화두를 들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허도록 잡두리 해 나가는 디에서 저절로 끊어지는 거다 그 말이여. 


새해를 맞이해서 여러 가지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참 어려운 일이 한없이 있겠습니다마는, 그럴 수록에 우리는 더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지해서 열심히 정진(精進)을 하고, ‘이 뭣고?’ 를 챙겨서 마음이 중심(中心)이 잡혀야 모든 어려운 일도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려 나가는 것입니다. 

특히 모두 대학에 떨어진 자녀를 가지신 분은 또 후기에 잘 보고, 또 전문대학도 좋고 그러니까 잘 그렇게 하시고, 정- 아들딸들이 마음을 잡지 못하고 이렇게 그러면 잘 달래서 절로 데리고 와서 부처님께 절도 시키고 또 스님네 한테 좋은 말씀도 듣고, 또 가능하면 후원(後院)에 와서 벗어부치고 그릇도 씻고, 이러한 기간을 잠시 가져 보는 것도 좋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낮에는 일하고 또 밤에는 또 참선도 하고, 이렇게 해서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에 또 재수(再修)를 해도 될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머지 안 해서 교육법(敎育法)이 개정(改定)이 되아서 정말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후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보람 있게 젊은 시절을 보냄으로 해서 행복한 장래를 살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오늘 천구백구십삼 년(1993)년의 일월(1월) 첫째 일요법회(日曜法會)를 맞이해서 ‘인생을 바르게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각도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새해에는 어쨋든지 ‘인생의 행복, 진정한 행복(幸福)이 무엇인가?’ 그 목표를 향해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도전을 허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주장자) 쿵!

 

- 송담선사 법문 498번. ​​​​​​
​​​​​​​
법문 듣기(chamsonbub.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