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업 짓지 않은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2021. 1. 6. 05:09카테고리 없음



어떤 사람이 평소에 착한 마음을 가지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그리고 열심히 또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하고 그러는데 우연히 넘어져 가지고 팔이 부러졌습니다. 그래서 간신히 치료를 받아가지고 팔이 나으니까 이제는 해소병(咳嗽病)이 생겨 가지고 까닭 없이 기침이 나오고 해가지고 여러 달을 고생허다가 또 그걸 간신히 낫궜습니다. 그놈을 겨우 낫구니까 이제는 몸이 염증이 생기고 피부병이 생겨 가지고 백약(百藥)이 무효(無效)여.

그래서 ‘어느 절 훌륭한 스님이 계시다’고 해서 거기를 찾아갔더니, “그대는 전생(前生)에 업(業)이 많아서 업으로 인(因)해서 그렇다. 그러니 <지장경(地藏經)>을 많이 읽고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많이 불러라” 그런 말씀을 허셨는데, 그동안에 ‘지장경을 좀 열심히 읽고 그래도 병이 안 낫는다’고 어제 찾아 왔습니다. 찾아와서,

“어떻... 대개... 대관절 어떻게 허면 이 병(病)을 나을 수 있으며, 업(業)이 있다니 어떻게 무슨 전생에 무슨 업을 지어 가지고 하필 내가 이러헌 죄(罪)를 받게 됩니까?”

“그리고 그 스님이 말씀허시기를 ‘좋은 일을 많이 하라’고 그러니 무슨 좋은 일을 해야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을 와서 -아주 청년이 얼굴이 부성 부성허니 부어가지고, 온 몸뚱이가 투두룩투두룩 허니 피부병이 생겨가지고 와서-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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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 세상에 전생에 업 짓지 않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선업(善業)도 업이요 악업(惡業)도 업인데, 선과 악은 종이 한 장에 안팎과 같애서, ‘선(善) 헌다’고 한 것이 때와 장소가 바뀌면 악(惡)이 될 수도 있고,
분명히 겉으로 보기에는 악(惡)인 것 같은데 세월이 지내고 또 그 일을 깊이 검토해 보면 또 그것이 선(善)으로 개념이 바뀌어지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업이나 악업이나, 아상(我相), 유위(有爲)의 상(相)을 가지고 지으면 그것이 바로 장차 새로운 과보(果報)를 받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일을 많이 해라고, 그럼으로써 빨리 그 병이 나을 것이다’그러는데, 무엇이 좋은 일입니까?”
아, 이렇게 질문을 한다 그말이여.

그래서, “좋은 일은, 물론 방생(放生)을 한다든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고 약을 준다든지, 모다 그런 좋은 일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누구나 알 수 있고 행하기 쉬운 좋은 일이라 하는 것은, 첫째, 남에게 해(害)를 끼치지 말어라. 큰일이나 작은 일이나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어라.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헌 것이 그것이 바로 좋은 일이다.” 내 이렇게 일러 주었습니다.


말이 나온 짐(김)에 정진(精進), 정진하는데 가행정진(加行精進)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 정진도 역시 ‘불방일(不放逸), 방일하지 아니헌 것’이 가장 좋은 정진인 것입니다.

정진을 좀 열심히 하려면 밤잠을 덜자고, 밥을 적게 먹고, 그래가지고 몸띵이를 갖다가 구속을 하고 알날신심(遏捺身心)해서 이렇게 허는 것으로써 가행정진이라고 생각하고 또 용맹정진이라고 대부분 생각헙니다마는, 가장 좋은 정진은 방일(放逸)허지 않는 것이여.

한 생각, 한 동작,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간에 항상 방... 방일하지 않는 -방일(放逸)이란 말은 화두(話頭)를 놓치고 경계(境界)에 팔려 나가고 그래가지고 게으른 생각이 나서 그럭저럭 지내는 것을 보통 방일이라고 허는데, 우리 참선허는 사람은 항상 성성(惺惺)하게 화두릴... 화두를 잡두리를 하면- 그것이 바로 불방일(不放逸)이고 그것이 바로 정진이여. 몸과 마음을 구속하고, 강제로 어거지로 쪄 누르고 구속허고 그런 것이 아니거든.


그래서 선(善)도 남을 해치지 아니하면 그것이 제일가는 선이요, 거기서 조끔 더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가랴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에게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쓰는 것인데, 몸띵이로 행... 몸... 내의 몸 기력을 써서, 실력을 써서 남을 도와 줄 수도 있고, 말 한마디라도 남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남을 위안을 해주고, 남의 고통을 덜어주도록 말을 자... 자비스럽고 지혜로운 방편으로 말 한마디라도 해준거, 그것도 또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여.

또 마음으로라도 항상 남이 잘...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 마음으로 그이를 위해서 축원 기도를 해주고 잘되기를 빌어주고, 또 남이 잘된... 잘한 일이 있으면 마음으로 같이 기뻐해주고 축복을 해 준 거, 그것도 또한 좋은 일을 허는 것인데, 또 물질적으로 돈과 쌀이라든지 그밖에 그런 것을 베풀고 그런 것도 또한 착한 일이라고 헐 수가 있으나,

아까 조실 스님 말씀에 ’모두가 다, 지옥고 받고 있는 모든 그 중생들도 저에... 전부 나의 부모요,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다 나의 가족이요, 전부 동시에 그것이 바로 내 몸띵이다’ 이렇게 말씀을 허셨습니다마는,
일심으로 바르게 한결같이 기도를 허고 정진을 하면 자연히 마음이 청정해지니까 인아상(人我相)이 떨어지고 보면 '내'라는 생각이 없고, 전부(全部)가 나라고... '나'요 내가 ‘전부’다 그 말이여.

그러니 나를 위해서 남을 해꼬자 할 생각이 있을 수가 없고, 남이 고통 하는 것을 보면 자연히 우러나온 마음은 자비심(慈悲心) 밲에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산천초목(山川草木) 모다 그런 자연까지도 전부가 다 나의 집이요, 나의 가족이요, 나의 몸띵이, 이러헌 심경(心境)이 그렇게 될 수 밲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을 헌 사람은, 또 기도를 헌 사람은 항상 모든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헐 뿐만 아니라 내 몸같이 자비로써 모두를 다 돌보아주고 섭수(攝受)허게 될 수 밲에는 없습니다.
심지어 들이나 산에를 가도 그 들국화가 같은 거, 산에 진달래 같은 거, 아무리 아름답게 피어 있어도 자기집에 있는 꽃병에 꽃꽂이를 허기 위해서 그런 것을 꺾어 가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 생존시에 조실 스님과 같이 수행하던 용담 스님이라고 계셨는데, 그분은 양양 군수의 아들로, 참 출가해 가지고 그 조실 스님이, 조실스님 그 젊은 나이로 견성(見性)허신 그것을 보고서 굉장히 도반이면서 그렇게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참 존경하고 신(信)하고 그런데,

그분은 선학원에서 해방(解放)이 되자마자 선학원(禪學院)에서 [선가귀감]을 번역을 해서 간행한 그러헌 공로가 있는 분인데,
‘이북(以北)으로 넘어가서 내가 공산당들을 전부 정법으로 제도를 헌다’고 월북(越北)을 해서 지금 소식을 못 듣고 있습니다마는,

그분과 같이 산에를 놀러가셨습니다. 그런데 조실 스님은 젊어서 퍽 부잡(浮雜)하신 그런 성격도 가지셔서 산에 가면, 친구하고 같이 가면 그저 돌팔매질도 하고 돌도 떠둥글치고 이렇게 허면서 인자 즐겁게 노시는데,

하루는 이렇게 돌을 요렇게 뚝 떠둥글치니까, 그 용담 스님이란 분이,
“허허, 자네 견성을 한 도인(道人)이 어찌 그런 돌을 있는 고대로 놓고 보고 자연을 고대로 놓고 요렇게 봐야지, 어디 그놈을 뚝 떠둥글치면 그 자연이 손상이 될 뿐만 아니라 그 바위에 의지해서 개미도 살고 벌레도 살고 눈에 안 보이는 모든 짐승도 살고 있는데, 그것을 떠둥글치게 되면은 그 벌레들이 집을 잃을 것이고 그 바위가 굴러가다가 또 많은 생명도 죽게 되지 않겠는가. 자네는 도인이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해야 할 그런 숭고한 사상과 마음을 가지신 도인이 어찌 그러는가.”

아! 친구가 그 말을 한 것을 듣고서 ‘어떻게 마음으로 부끄러운 생각을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그 말씀을 하시면서 그 친구가 그렇게도 참 착하고 좋은 도반이였었는데, 그리고 그렇게 나를 그렇게 신(信)하고, 그 정법을 신하고 나를 애껴주던 친구가 이북으로 갔다고 하는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송담선사 법문 408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