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는 시기, 바라는 데에서 고통이 있다】

2021. 1. 1. 12:42카테고리 없음

(삼계지중분요요(三界之中紛擾擾))
지위무명불료절(只爲無明不了絶)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일념불생심증(징)연(一念不生心澄然)허면
무거무래불생멸(無去無來不生滅)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삼계지중분요요(三界之中紛擾擾)헌디
지위무명불요절(只爲無明不了絶)이라.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이 삼계(三界) 가운데에 가루 날... 날으듯이 윤회(輪廻)를 허는 것은, 지옥(地獄)으로 떨어졌다 천당(天堂)에 올라갔다 축생(畜生)이 되았다가 사람이 되았다가 아귀(餓鬼)가 되았다가 이렇게 해서 삼계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그러냐하면, 다못 무명(無明)을 요달(了達)해 끊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일념불생심증연(一念不生心澄然)하면,
한 생각 남이 없어서 마음이 맑으면,


무거무래불생멸(無去無來不生滅)이여.
갈 것도 없고 올 것도 없어서 생멸(生滅)이 없는 것이다.

_______
.......

여름이 되면 여름결제 겨울이 되면 겨울결제, 연례행사(年例行事)로 해마다 결제(結制)를 거듭하고 해제(解制)를 거듭하건마는, 마냥 동쪽에서 뜬 해가 서쪽으로 지고 또 동쪽으로 뜨는 해가 서쪽으로 지고 아무 특별한 것이 없어. 아무 특별한 것도 없고 기특한 것도 없는 가운데에 해가 뜨고 해가 지고 허지만 달라지는 것은 우리가 하루 지내면 하루 지낸 만큼 죽음이 다가오고 이틀 지나면 이틀 지낸 만큼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루하루 지내다가보면 한 달이 지내고, 한 달 한 달이 지내다보면 일 년이 지내서, 일 년을 지낼 때마다 나이가 한 살씩 불어나는데, 일 년 일 년 지내다보면 어언 십 년이 가고 이십 년이 가서, 엊그제가 청년, 청년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십(50)이 되고 육십(60)이 되고 칠십(70)이 되았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젖 먹고 밥 먹고 학교 다니고 결혼하고 이러는 가운데에 아무것도 마음에 얻은 것은 없고 업(業)만 짓고 나이만 먹으면서 죽음을 향해서 지옥으로 가는 벌이만 허고 있어서야 이것이 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출가(出家)해서 사문(沙門)이 되아가지고 선방(禪房)에 나와서 참선(參禪)을 허는 출가납자(出家衲子)들도, 철철이 선방에 나와서 결제를 하고 안거(安居)를 하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고 힘든 일이지만, 처음에 발심(發心)해서 출가할 때에 마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완(弛緩)되와 버리고, 그때의 그 열렬한 발심과 분심(憤心)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르르허니 가라앉어 버려서, 그리다가 어쩌다가 생각이 나면 또 용맹심(勇猛心)을 내나 그것이 사흘이 못가서 또 스르르허니 또 꺼져버리고. 생각은 이래서는 안 되겄다고 허면서도 실지로 허리를 쭉 펴고 정진(精進)을 해보면 혼침(昏沈) 아니면 산란(散亂), 산란 아니면 혼침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다보면 퍼뜩 석 달이 지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도인(道人)은 잠이 오면 그 잠을 자지 않기 위해서 무거운 바윗돌을 짊어지고 저 지리산을 하룻밤에 백리(百里) 이상을 걸어 고개와 골짜구니를 넘고 넘으면서 밤새 길을 걷고, 그렇게 해서 그 돌이 반들반들 허니 닳아져서 쌍계사(雙磎寺) 육조(六祖)시님(스님) 정골탑(頂骨塔) 앞에 그 돌이 놓여있는데 그렇게 애를 쓰고, 자명초(慈明楚...) 자명(慈明)스님 같은 이는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 정진을 허고 헌... 선관책진(禪關策進)에 보면 그 많은 도인들이 혼침과 산란을 이겨내고 해태(懈怠)로부터 벗어나서 정진(精進)을 허기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친 그러헌 사례가 수없이 기록이 되아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혼침(昏沈)과 산란(散亂)은 번갈라가면서 우리 수행헐랴는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가? 그 두 가지 몹쓸 것만 없으면 정진이 저절로 될 것이고 정진하는데 아무 괴로울 것이 없건마는, 유시(有時)에는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이 퍼 일어나고 그 번뇌와 망상이 좀 잠잠해질만하면은 혼침(昏沈)이 와가지고 눈 뚜껑이 천 근이나 무겁게 쪄 누른다 그 말이여. 아무리 눈을 뚝 부릅뜨고 애를 써도 그 눈팅이 내려 누르는 힘을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어.

그래서 옛날 중국(中國) 천목산(天目山)에 고봉선사(高峰禪師), 고봉스님은 ‘내가 삼 년(3년)동안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가지고 견성(見性)을 못하면 자살(自殺)을 해버리리라.’ 이러헌 결의(決意)를 허고서 정진(精進)을 허는데 역시 그 고봉스님도 혼침, 어떻게 앉기만 허면 혼침이 와가지고 밥 먹는 시간, 공양(供養)시간을 제외하고는 마냥 밖에 나가서 포행(布行)을 했습니다. 포행을 해가지고 조끔 졸음이 달아날 만 허믄 들어와서 또 앉으면, 앉기만 하면 금방 또 혼침이 오고, 그래서 밥 먹을 시간을 제외하고는 앉을 수가 없어. 그렇게 도량을 포행으로 포행으로 애를 쓰는 가운데 삼년이라 기한(期限)이 어언간 닥쳐오고 말았습니다. 몇 일이 안 되며는 삼년 기한이 차는데 착잡허기가 말로 헐 수가 없어. 장부(丈夫)가 한 번 결심(決心)을 했는데, 삼 년 만에 도(道)를 이루지 못하면 자결(自決)을 해버릴랴고 결의(決意)를 했는데 몇 일이 안 남았느... 안 남았다 그 말이여. 그래서 날마다 참 착잡한 마음으로 마지막 남은 몇 일 간을 정진을 허는데, 하룻밤 꿈에 단교(斷橋)스님이 나타나서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그 화두를 떠억 주신다 그 말이여.

꿈에 그 단교스님으로부터 화두(話頭)를 탔는데 눈을 뜨고 보니 너무 소소(昭昭)하고 영영(靈靈)허다 그 말이여. 그렇게 화두를 들면 들을 뿐이지, 들었을 때뿐이지 금방 딴 생각이 들어오고, 또 새로 화두를 들며는 일 분도 못가서 또 딴 생각이 들어오고 그렇게 애를 쓰기를 삼년을 했는데, 꿈에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화두를 단교스님으로부터 딱 받고서는 화두를 들랴고 안 해도 제절로 터억 현전(現前)허는데 혼침(昏沈)도 간 곳이 없고 번뇌망상 산란심(散亂心)도 간 곳이 없어. 앉아도 화두요 서서도 화두요 밥을 먹으나 옷을 입으나 똥 누고 오줌을 누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제절로 화두가 드러나,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허는데 말로써 표현헐 수가 없어.

이렇게 말씀을 허면, ‘나도 꿈에 그런 누구한테 화두를 한 번 타 봤으믄...’
혹 그러헌 생각을 허실 분이 있을란가 모른지만, 꿈에 그 화두를 타게 되는 데에는 삼년이라고 헌 세월을 단 일분일초도 범연(氾然)히 지내지 안했다 이것입니다. 화두를 들... 들어가지고 일 분도 못 되아서 화두가 없어져부리면 또 들고, 일 분도 못 되아서 없어지믄 또 들고, 혼침이 오며는 포행하고 산란심이 일어나면 화두를 들고, 그래서 혼침과 산란과 그 두 놈들이 번갈라가면서 들어오는데, 그러헌 사이에서도 일분일초도 그냥 혼침에다 맺겨둔 채 지내지 아니하고 산란심이 일어난 채 그냥 그놈에다 맺겨두고 지내지를 안했다 그 말이여. 그렇게 애를 쓰고 이를 악물고 스스로 채찍질을 가하면서 삼 년을 하루같이 애를 썼기 때문에 몽중(夢中)에 화두(話頭)를 타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그 말이여.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에
반복원래시자한(反覆元來是這漢)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그 고봉스님이 꿈속에서 단교화상으로부터 ‘만법귀일’ 화두를 타가지고 정진을 허는데 애써서 헐 것이 없어. 제절로 의단이 독로허는데 그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고 그러헌 가운데 화두가 드러나는데, 앉으나 서나 누우나 밥을 먹으나 옷을 입으나 조끔도 털끝만큼도 힘을 들일 것이 없고 일부러 지어서 헐 것이 없어. 지나간 삼년 동안에는 온전히 억지로 지어서 했는데 이제는 지을 것이 없어. 애쓸 것이 없어. 제절로 화두가 독로허는데. 일부러 딴 생각을 좀 해 볼랴고 해도 되지를 안 혀. 옆에서 떠들어도 상관이 없고 옆에서 잡담을 해도 상관이 없고, 사람이 수십 명 수백 명 있는 대중 가운데에 앉아서도 한 사람도 눈에 보이지를 안 혀. 밥을 먹을 때도 그저 대중 따라서 밥을 먹을 뿐이지 밥 먹는 것에는 아무 상관이 없어. 다맛 따라서 그저 밥 먹고 그저 똥 내려우면 똥 누고 그러지 화두에는 추호(秋毫)도 관계가 없어. 그렇게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허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아서 그러헌 상태로 일주일이 갔는데,

일주일 만에 달마(達磨)스님 제삿날에 탑전(塔殿)에, 대중과 합해서 그 탑전에 올라가서 제사(祭祀)를 지내는데, 그 오조법연(五祖法演)화상의 탱화(幁畵)에 ‘백년삼만육천일(百年三萬六千日) 반복원래시자한(反覆元來是這漢)이다, 백년 삼만육천 일에 반복(反覆)허는 놈이 원래로 이놈이다’ 한 그 글이 쓰여 있는디 그 글을 보고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습니다. 백 년이며는 날 수로 치며는 삼만육천 일인데, 그 ‘백년 삼만육천 일에 반복허는 놈, 엎어졌다 뒤집어졌다하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갔다 왔다 허는 이 반복허는 놈이 바로 이놈이다’ 그 게송(偈頌)에 화두(話頭)를 타파(打破)했어. 천칠백(1700) 공안(公案)을 어느 공안을 들어봐도 하나도 맥힘이 없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라버린 것입니다.

비단 중국에 고봉선사 뿐만이 아니라 역대조사(歷代祖師)들이 다 대도(大道)를 성취하는 데에는 그만한 목숨을 걸고 용맹정진을 허셨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여러분들도 삼년기한을 정해놓고 정진을 열심히 허신 것은 좋으나, 삼년지내고도 깨치지 못하면 꺼떡허면 자살 같은 거 허고 그러헌 것을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삼년도 길고 하루씩. 항시 조실(祖室)스님께서 말씀허시기를, ‘삼 년도 길고 석 달도 길어. 하루씩을 작정을 해라.’ 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를 딱 작정을 허고 그날 하루를 짬지게 단속(團束)을 하고 정진을 해서 그날 하루를 딱 결산(決算)을 하고, 그 다음 날에는 또 하루를 작정을 하고 좀 더 알차게 정진을 하고, 이렇게 해서 하루씩 하루씩을 작정을 해서 여법(如法)허게 해나가면, 열흘이 하루 같고 한 달이 하루 같고 석 달이 하루처럼 그렇게 단속을 허는 것이 가장 바람직허다고 말씀을 허셨습니다. 중생(衆生)은 근기(根機)가 약해서 석 달이나 삼 년 길게 잡아 놓면, 하루 이틀은 괜찮지만 벌써 사흘채 가며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늘어지게 되고 열흘이 지내가면 더 늘어지거든. 또 정신을 채려도 또 몇 일 안 가믄 또 풀어지고 이러니까 하루씩을 단속을, 작정을 허고 허면 풀어질 수가 없거든.

농사(農事)를 지어보면, 곡식(穀食)이라고 허는 것이 자랄 때가 있는 것입니다. 모 자리를, 봄에 일찍이 모 자리를 해서 그 모가 잘 자라며는 그것을 하지(夏至) 전(前)에까지 다 심어야 하는디, 될 수 있이믄 하루라도 일찍 심을 수록에 수확(收穫)이 더 늘어나고 좋은 것입니다. 아무리 늦어도 하지가 넘어버린 뒤에 심은 것은 농사가 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일쯕(일찍) 심어가지고 한참 날씨가 뜨겁고 그럴 때에 그때 필요헌 만큼 그 벼가 자라놔야... 자라게 해 주어야 제대로 수확을 보는 것이지, 그 자라야 헐 때에 날씨가 춥거나 너무 오랫동안 비가 많이 와서 햇볕을 보지 못하거나, 또는 너무 비가 오지 안 해서 가물아가지고 바짝 말라서 논바닥이 갈라지고 해서 수분이 없어서 자라지를 못하거나, 또 비료가 부족해서 자라지 못하거나, 논을 세 번 이상 매주어야 하는데 논을 매주지 못해가지고 잡초 속에 우거져있거나, 이리해서 자라야 헐 그 시기에 자랄 수 있도록 해주지 아니하면 그 농사는 볼 것이 없습니다.

이 수행(修行)도 발심을 해서 공부헐 때에 헐 그 시기(時期)가 있는 것입니다. 그 시기에 그때에 채찍을 가해서 좋은 도반(道伴)들과 선지식(善知識)의 바른 지도(指導)를 받으면서 그 시기에 참 알차게 공부를 해놔야 허는 것이지 그 시기를 놓쳐버리면 지름(기름)참선이 되아서 나중에는 늙발에(노인된 처지에) 가서 좀 헐랴고 해봤자 별 볼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孔子)님도 말씀 허시기를, ‘삼십에 서지 아니허면 그 뒤에 아무리 노력을 헌다 해도 별로 보잘 것이 없는 것이다.’ 이런 말씀을 허셨습니다. 이 정진(精進)도 헐 시기가 있어서 그 시기에 발심(發心)하고 분심(憤心)이 났을 때 야무지게 단속을 해서 공안(公案)을 타파(打破)를 해서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견(徹見)을 해야지, 처음 발심했을 때 시원찮게 다잽이를 해가지고 그럭저럭 지내버려 놓면 십년 이십년 그럭저럭 별로 소증처(所證處)가 없이 이 지름참선이 되아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혹 연세가 많으신 보살님네들은, ‘하이구 시기가 있다는디 인자 늙어서 선방에 와봤자 나도 별 볼일이 없겄구나.’ 혹 그렇게 자포자기(自暴自棄)를 허셔서는 아니 됩니다. 젊어서 발심헌 사람은 젊어서 발심헌 대로 시기가 있고, 연영(年齡, 연령)이 많아가지고 선방에 오셔서 발심헌 분은 또 연영이 많은 그날부터서 첫 철이니까 한 살인 것입니다. 오십에 들어오시면 오십 세에 들어온 해가 이 도(道)에, 법(法)에 연... 나이로서는 그날이 한 살이고, 육십에 들어오셨으면 육십이, 육십 살이 이 법에 나이로서는 한 살이여. 그것을 법랍(法臘)이라 그러는데, 한 살 되았으니 나이 많은... 세속적(世俗的)인 나이 많은 것을 여기서 따질 것이 못됩니다. 그날 한 살로 생각하고 정말 나이 많은 것도 잊어버리고, 자기가 세속에서 잘사는 것도 잊어버리고, 지식이 많은 것도 잊어버리고, 지나간 세월에 절에 오래 댕겼다고 허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발심(發心)한 그날부터 부처님 제자(弟子)로 새로 태어났다’ 이러헌 마음을 가지고 정말 알뜰히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團束)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이신 분은 대부분 오래전부터서 참선에, 이 참선법(參禪法)을 믿고 정진허신 분들이 많이 계시고 또 일부는 참선이 좋단 말은 들었지만 실지로 선방에 와서는 한 번도 지내보시지 아니한 그런 분도 계실 줄 압니다. 이 참선은 꼭 선방에 들어와야만 허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 계시면서도, 가정생활 하면서도 올바른 방법만 알아가지고 열심히 허면 얼마든지 헐 수가 있는 것이고, 또 선방에다 방부(房付)를 들이고 공부를 허시되 시비(是非)나 하고 사소한 일에 짜증이나 내고 옆에 사람하고 말다툼이나 하고 밤낮 앉어서 속 바글 바글 썩고 앉아서 제대로 공부를 못하면 참선 커녕은 오히려 업(業)만 더 짓게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

_______


한산정상월륜고(寒山頂上月輪孤)헌디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헌디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한산정상한산정상월륜고(寒山頂上)에 월륜고(月輪孤) 헌디,
한산 산꼭대기에 둥근 달이 밝았는디,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로구나.
저 맑은 하늘에 그 달이 밝게 비추어서 한 물견도 없구나.

구름 한 점 없는 달에... 달이 휘향창 밝으니 무엇이 있느냐 그 말이여.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가,
귀하고 귀한 그 천연의 값없는 보배가,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로구나.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이 사대(四大)로 뭉쳐진 육신(肉身)과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얽혀진 우리의 마음, 이 오음(五陰)의 이 몸띵이 속에 그 무가(無價), 값없는 보배가 매장(埋藏)되아 있구나.

우리는 쓰고 쓰고 또 써도 한량(限量)이 없고, 퍼도 퍼도 퍼내도 바닥날 줄 모르는, 영원히 다함이 없는 그러헌 무가보(無價寶)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무가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잘 활용을 헐 줄 모르고, 그것을 발견(發見)을 해서 그것을 자유자재(自由自在)로 쓰지를 못하고, 그것이 바로 이 육신, 오음색신(五陰色身) 속에, 탐진치 삼독 속에 그놈을 묻어버린 채 끊임없이 업(業)만 짓고 그래가지고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허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佛法)을 만나서 부처님 열반(涅槃)하신 제는(지는) 삼철련(3000년)이 되았지마는, 삼철련 동안 역대조사를 통해서, 역대(歷代) 선지식(善知識)을 통해서 그 내가 나를 찾는 그 무가보를 개발을 해서 찾아내는 최상승법을 전해가지고, 전해서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우리는 그 법에 의지해서 공부할 수 있는 인연(因緣)을 가진 것입니다. 금년 삼동(三冬), 어쨌든지 ‘금년 삼동이 첫 철이요 마지막이다’ 이러헌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정진해 주시기를 다시 한 번 부탁을 드립니다.

_______


오늘은 삼동결제(三冬結制)와 아울러서 백일기도(百日祈禱)를 시작허는 입재(入齋)날입니다. 이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여러분들은 기도와 정진이 궁극에 가서는 하나인 것입니다. 기도(祈禱)도 한 생각 단속을 허지 아니하면 기도가 되지 아니한 것이고, 참선(參禪)도 한 생각을 단속 못하면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댁에서 생활을 허시면서 정진하신 분, 백일기도에 동참(同參)하신 분들도 모두가 그 한 생각을 단속(團束)함으로써 하루하루를 알뜰히 정진을 허심으로 해서 기도(祈禱)도 성취하고 도업(道業)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댁에 계셔도 항시 이 선방에 와서 정진허는 그러헌 마음으로 정진을 허신다면 그 생활(生活) 속에서, 밥 허면서 빨래 허면서 애를 길르면서 생활허면 그 가운데에 한 생각만 단속허면 앉어있어도 상관이 없고 누워있어도 상관이 없고 서있어도 상관이 없고 걸어 다녀도 상관이 없고 차를 타도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뒤로 미루고 지... 지끔 이 시간 이 시간을 단속을 못하면 그 사람은 평생 동안 공부를 못하고 말 것이고, 아무리 어려운 사정이 있고 어려운 형편에 있을 때라도 그때그때를 단속해나가면 차츰차츰 공부가 익숙해질 것이고 복잡하고 어렵고 바쁜 속에서 공부를 단속해 버릇허면 그 다행스럽고, 처음에야 어렵지마는 어려웁다고 핑계대지 아니하고 자꾸 해 버릇허면 나중에는 되아진 때가 오는 것이고, 나중에는 차츰차츰 자기의 성격이라던지 자기의 공부허는 정진 힘이라던지를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가남(가늠) 해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옛날의 자기와 달라진, 달라져 있는 것을 발견을 허게 될 것입니다. 해갈수록 이 공부는 정진력(精進力)이 증장(增長)이 되는 것이고, 자꾸 핑계대로 아니허면 일 년 가도 그 모냥이요 삼 년 가도 그 모냥이요 일이 다 끝날 때가 없습니다.

‘아들딸만 결혼시켜 놓면 인자는 그때 참선을 좀 허리라’ 해도 아들 낳아 놓며는 손자 손녀가 또 튀겨져 나오고, ‘딸만 인자 여워버리면 내가 무슨 걱정이 있으까. 그때는 내가 선방에 가 참선허리라.’ 허지마는 딸도 가기만 했다하며는 일 년도 못가서 뒤집어 업고 오게 되고, 또 가서 또 해산(解産)수발 해야 하고, 일이라는 것은 한(限)이 없고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 끝내놓고 허리라’ 헌 마음을 가진 사람은 벌써 종자가 틀린 종자여. 일 속에서 헐랴고 마음을 먹어.

인생으로 태어났으니 아내 노릇도 해야 하고 엄마 노릇도 해야 하고 시어머니 노릇도 해야하고, 일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어쩔 수가 없다고 해서 공부는 안 해봤자 내 공부를 다른 사람이 대신 해주지는 아니허고... 허기 때문에, 딸 일 잘 봐주고 아들 일 잘 봐주고 살림 잘해줬다고 해서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조끔도 그건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거 허니라고 애썼으니까 빨리 천당에 가라’ 절대로 그런 염라대왕은 아직 안 태어났습니다. 그런 것은 자기가 과거(過去)에 지은 업(業)이요 과거에 지은 빚으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되는 일이고, 그렇다고 해서 자기 공부 안 해놓면 어떻게 헙니까? 그건 피할 수가 없으니 그것 해야 하고 그거 허면서 공부, 자기 공부는 자기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자기 생사(生死)문제가 그것이 본업(本業)이 되고 그밖에 일은 전부 빚 갚는 일인 것입니다. 빚 잘 갚었다고 누가 칭찬 안 해줍니다. 그 자식을 키우는데 못...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고 잠도 제대로 못자고 피나게 그 고생을 허면서 자식을 길러서 돈을 많이 벌어서 많이 그 자식에게 전해주었다고 해서 그 자식이 효도(孝道)를 허냐하면 별로 그러헌 속에서는 큰 효자가 나오질 않습니다. 아무것도 전해줄 것이 없이 그래야지 그 자식을 위해서 참 평생을 다 바쳤... 자식일 수록에 결혼해놓고 보면 지 지집(아내) 밲에는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자식을 이렇게 애써서 길렀으니 길러서 장가만 보내주면 내가 효도를 받아서 늙발에는 내가 호강을 좀 허리라’ 허고 기대를 했다면 백 명이면 백 명 그건 후회허게 되는 것입니다. 자식을 길르지 말라는 게 아니라 잘 길르되 그 자식한테 바래서는 아니 됩니다. 바래지 말고 자기 공부 자기가 해 나가야 합니다. 또 돈도 자기가 늙발에 쓸 것을 좀 준비를 해 놓은 것이 좋습니다. 탁 털어서 자식한테 다 해놓은 즉슨은 늙발에 용돈이 없어서 그 참 피나는 핍박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자기가 늙발에 쓸 돈도 준비를 해놔야 하고 또 자식한테는 부모의 의무는 헐지언정 자식에게 아무것도 바래지 말아야 합니다. 효도해 주기도 바래지 말고 돈도 늙발에 잘 주기를 바래지도 말고, 바랬다허며는 그때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바래지를 아니해야 그런대로 불효를, 불효(不孝)는 안 허게 되는 것이고 많이 바랬다하면 반드시 불효를 허게 됩니다.

이러헌 말은 여러분이 잘, 이해를 잘 못허면 ‘그 자식 길러봤자 소용이 없고 잘 해줘봤자 소용이 없으니까 어쨌든지 외봉을 많이 쳐놨다가 늙발에 내가 써야겄다’ 그렇게 생각 허시면 안 되고, 자식한테 바래서는 아니 됩니다. 바랜 즉슨은 뒤에 가서 참 피눈물 나는 불효를 받게 되는 것이니까, 어쨌든지 이만큼 젊었을 때, 이만큼 건강할 때 내가 내 마음 공부해서 수행을 해서 업(業)을 소멸(消滅)을 해 놔야 자식도 그런대로 괜찮허고 며느리고 그런대로 괜찮헌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따라서 며느리가 좋은 며느리도 되고 자식도 좋은 것이 되지 내가 업이 꽉 차갖고 있으면 멀쩡한 자식도 불효자식이 되고 멀쩡한 며느리도 아주 고약한 며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 그 며느리도 자기 친정에서 부모 밑에서 잘 배우고 잘 자라서 자기 부모를 버리고 내 집에 왔는데 그게 어찌 못 쓸 사람이라고 단정을 지을 수 있습니까? 시어머니 눈에는 눈에 안차고 못쓰게 보일런지 모르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이 업이 차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또 며느리 입장에서는 시집가서 시어머니와 뜻이 안 맞아서 속이 상하고 원망을 하고 ‘시어머니가 빨리 죽었으면’, 또는 ‘다른 아들네 집으로 가버렸으면’ 혹 그렇게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그러헌 고약한 심보를 가지면 자기는 복 받기는 틀린 것입니다. 자기가 마음속에 업이 차 있기 때문에 멀쩡한 시부모가 고약한 시어머니로 비추는 것이지 자기가 정말 업이 없어서 청정하고 어질고 착한 마음으로 시부모를 상대헌다며는 시부모가 생전사후(生前死後)를 그 자식며느리한테 의탁(依託)을 헐 판인데 왜 그 며느리를 고약허게 들볶을 까닭이 있겠습니까? 반드시 그 며느리한테도 있는 것입니다.

그 까닭을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자기(自己)에게서 그 원인(原因)을 찾아가지... 찾아서 스스로 자꾸 향상(向上)되아 갈랴고 노력을 해야 하고, 또 시부모는 시부모대로 그 잘못된 점을 스스로 자기에게서 찾아야, 찾아서 자기를 갖다가 향상을 시키고 그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착한 마음으로 며느리를 상대헌다면 그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가 친정어머니와 친 딸과의 사이처럼 그렇게 오손도손 허고 서로 그렇게 지낸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끔 하나의 구체적인 예를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로 들었지만, 모든 사람과의 관계도 또한 마찬가집니다. 이 선방에 지내신, 이 팔십 명(80명)이 지내시는데 동서남북(東西南北)에서 다 오셨습니다. 연세가 많은 분 젊은 분, 김 씨 이 씨 박 씨 뭐 별별 성(姓)바지가 다 모이시고 별별 모다 그 이 성격이 다른 분들이 모이셨지만, 공연히 달란 것 없이 미운 사람 있고, 나를 뭘 자꾸 나한테 잘해주고 뭘 잘 주어도 그것이 싫은 사람, 이거 중생계(衆生界)에서는 있을 수가 있습니다. 뭘 달라고 해도 주고 싶어서 못 견딜 정도로 좋은 사람도 있고 그런데, 이게 다 전생(前生)에 지은 업(業)의 소치(所致)인 것입니다. 업으로 된 것을 업에만 맽겨버리고 업에 따라서 행하면 언제 그 업을 소멸(消滅)을 허겠습니까? 좋은 사람을 만나도 화두(話頭)를 들고 뵈기 싫은 사람을 만나도 화두를 들고 해서, 화두를 듦으로 해서 모든 사람을 평등(平等)허게 상대헐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선방(禪房)이란 데는 자기 마음 맞은 사람들끼리만 모여가지고서는 그 정진(精進)에 별 도움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와 안 맞은 사람하고 한 철을 지낼 때에 거기에서 자기를 돌이키고 반성(反省)하고 자기에게 채찍을 가하고 그래가지고 자꾸 자기를 갖다가 갈고 닦아서 그래서 향상(向上)을 시켜나가는 것, 그럼으로써 우리는 놀라울 만한 발전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팔십 명이 모여 놨으니 참 별별 성격의 소유자도 있겠고 참... 있겠지만, 그 자기 마음에 안 맞은 분을 미워허지 말고, 그 날카로운 눈초리로 힐겨보면서(흘겨보면서) 그 미워허고 그러지를 말고 항시 자비(慈悲)스러운 눈매로 지켜주며, 남 잘못헌 것을 보고 허물로 생각허지 말고 남 잘못헌 것을 보고서 자기를 돌아보는 방향으로 노력을 허신다면, 대중 가운데 몇 사람이 본의(本意)아니게 잘못된 점이 있다하더라도 대중에 아무 해(害)가 되지를 아니할 것이고, 또 잘못 한 두 번 잘못 허다가 스... 스스로 자기를 깨우칠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선방 시님네도 한철 아무 장애 없이 잘 지낸다고 허는 것은 사실은 이 아직까지 우리 용화사에서는 조실시님 열반허신 뒤로 십년동안 중간에 별 탈이 없이 잘 지냈습니다마는, 그것은 조실시님을 신(信)하는 철저한 그런 그 신심으로 지내시기 때문에 별 장애가 없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쨌든지 금년 겨울 석 달 동안도 지난 어떠헌 결제동안 보다도 훨씬 알차고 짬진 한철이 되기를 부... 바라마지 않으며, 원효사나 회룡사 대중들도 거기 서로 비구니(比丘尼) 수좌(首座)끼리 모다 지내고 있지만, ‘항시 조실스님을 모시고 산다’하는 그러헌 마음으로 조실스님 녹음법문(錄音法門)도 날짜를 정해놓고 꼭 엄숙한 마음으로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법문을 듣고, 그러면서 어쨌든지 여법(如法)하게 알차고 짬지게 정진(精進)을 허기를 부탁을 합니다.


_______


본자허명절점하(本自虛明絶點瑕)한디
육창한월변하사(六窓寒月遍河沙)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기간나유한장단(其間那有閑長短)하야
법계함용공일가(法界含容共一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본자허명절점하(本自虛明絶點瑕)하야,
본래 스스로 비고 밝아서 조그마한 티도 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육창(六窓)에 한월(寒月)이 변하사(遍河沙)여.
여섯 창에 차운 달이 환허이 비추어서 온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달... 다 비추고 있다 그 말이여.

자성(自性)의 달이 본래 밝고 밝아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그 육창(六窓)을 통해서 삼천대천세계를 환히 비춘다 그 말이여.


기간나유한장단(其間那有閑長短)하야
그 사이에 무슨 길고 짧은 그런 쓸데없는 것이 있겠느냐 그 말이여. 무슨 시비(是非)가 있고 무슨 선악(善惡)이 있고 친소(親疏)가 있겠느냐 그 말이여.


법계함용공일가(法界含容共一家)여.
육도법계(六道法界)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온통 한 집이다 그 말이여.

내가 미(迷)한 생각으로 보니까, 중생(衆生)의 업식(業識)으로 보니까 모든 것이 시비(是非)요 차별(差別)이요 죄악(罪惡)이요 빈부귀천(貧富貴賤)이요 흥망성쇠(興亡盛衰)요 원근친소(遠近親疏)요 그런 것이지, 한 생각 비워져버리면 눈으로 무엇을 봐도 그것은 불세계(佛世界)요 귀로 무엇을 들어도 그것이 다 부처님 법문(法門)이요 무슨 냄새를 맡아도 그것은 전단향(栴檀香)이요 무엇을 먹어도 법희선열(法喜禪悅)이요.

금년 겨울 이 안거결제일(安居結制日)을 맞이해서 이렇게 여러분과 더불어 법요식(法要式)을 갖게 된 인연(因緣)으로 한철이 정말 알뜰하고 짬진 한철이 되아서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자아(自我)를 철견(徹見)할 수 있는 그러헌 계기(契機)가 이번 철에 각자 이루어지기를 부처님께 축원(祝願)을 하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송담선사 법문 252번.


———————

有求皆苦、
구함이 있으면 모두 괴로움이고,

- 석가모니.


無慾則剛.
욕심이 없으면 굳세다.

- 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