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30. 16:26ㆍ카테고리 없음
【불법佛法의 목적目的】
오늘 조실祖室스님 첫 번째 재삿날을 맞이해서 날씨도 몹시 춥고 헌데도 불구하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들께서 정성스런 마음으로 참례參禮해 주신 데 대해서 감사에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법회法會때 오늘 생신법회生辰法會가 있다고 허는 광고를 드리지 아니한 것은, 조실스님 생존시부터 조실스님을 깊이 신信하고 법法에 은혜恩惠를 입으신 신남신녀信男信女와 또 그 문도제자門徒弟子들끼리 조용하게 이날을 추모追慕하고... 추모하는 뜻으로 조실스님의 법문法門 한 말씀을 듣고서 조용히 추모의 날을 갖고자 해서 광고 말씀을 드리지 아니했습니다.
벌써 열반涅槃하신 지 삼년3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지나가고 첫 번째 제삿날이 되었지마는, 생존시와 똑같이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육성肉聲 고대로의 법문法門을 들었습니다.
조실스님의 법문은 생존시와 조끔도 다름없이 우리는 들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실스님의 모습을 뵈올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와 또 조실스님께서 항시 말씀하시고 오늘도 말씀 허시기를,
‘생사生死는 본래 없는 것이다. 불법佛法은 생사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다.’
이렇게 말씀마다 생사生死 없는 도리道理, 생사 없는 이치에 말씀을 하셨고, 당신도 일생一生을 통해서 수행修行을 하신... 하신 목적目的이 생사해탈生死解脫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실스님은 갑인년甲寅年 섣달 초이튿날(12월 2일) 분명히 이 사바娑婆에 인연을 하직下直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첫째 깨달음을 얻으심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하셨고, 생사해탈한 그 도리를 사십구년(49년)을 통해서 팔만사천八萬四千의 묘법妙法을 설하셨음에도 불구하시고 팔십세(80세)를 일기一期로 해서 드디어 열반에 드셨습니다.
어째서 불법佛法이 ‘생사 없는 이치를 깨닫고 생사 없는 도리를 수용受用해서 영원히 생사해탈生死解脫한다’ 고 하면서 제불조사諸佛祖師가 차례차례로 다 이 세상을 다 하직하셨겠습니까.
깨달으신 분이나 깨닫지 못하신 분이나 한번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기어코 한 번 가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사해탈이라는 것이 말뿐이냐. 말만 생사해탈이고 실지는 다 죽어가고 만다면 불법佛法의 목적目的이 과연 무엇이냐?’
이렇게 질문한 분을 가끔 만납니다.
외도外道들은 생사해... 해탈을, 도道 닦는 목적을 이 육신肉身을 가지고 백세(100세) 이백세(200세) 삼백세(300세)... 팽... 중국에 팽조彭祖라고 허는 사람은 칠백세(700세) 까지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 육신을 가지고 죽지 아니하고 오래오래 살기를 바래는 그런 신선도神仙道 같은 도道도 있지마는 그것은 정법正法이 아니라 외도外道인 것입니다.
불법佛法에 생사해탈生死解脫은,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라 수용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육신을 온갖 방법을 통해서 수명壽命을 연장延長해가지고 죽지 않을랴고 그러헌 목적으로 도道를 닦는다고 하며는 내용을 알아보시기도 전에 그것은 정법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아셔도 틀림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涅槃허실 때,
“내가 멸도滅度에 들었다고 해도, -‘멸도’라고 하는 것은 열반이란 말씀이고, 알기 쉽게 말허면 돌아가신 것을 말헙니다- 내가 죽는다고 해도 나의 제자가 아니고 내가 죽지 안했다고 해도 나의 제자가 아니다. 일러라.”
또 <금강경金剛經>에 말씀허시기를,
“내가 법法을 설說함이 있다고 해도... 허며는 부처를 비방誹謗하는 사람이고, 설한바 법이 없다고 허며는 경經을 비방한 것이 되느니라.”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부처님이 돌아가셨다’고 허며는, 부처님은... 벌써 부처는 깨달음을 성취헌 분을 부처... 부처라고 허는 것인데, 부처님은 성불成佛을 못하셨단 말이 되는 것이고, 그러나 분명 부처님은 팔십세(80세)를 일기로 해서 열반상涅槃相, 결국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를 하직하셨는데 –중생의 눈으로 볼 때에- 돌아가시지 아니했다고 허면 현실現實에 맞지 아니한 것입니다.
‘법을 설한 바가 있다’고 허며는 부처를 비방한 것입니다. 부처님은 팔만사천 묘법을 설하셨으되 한 법도 설하신바가 없기 때문에 법을 설한바가 있다고 허며는 그건 부처님을 비방한 것입니다.
‘법을 설한 바가 없다’고 허며는, 분명 사십구년(49년)에 걸쳐서 장장 팔만사천八萬四千의 묘법문妙法門을 설하셨는데 그건 경을 비방한 것이 됩니다.
이것은 중생소견衆生所見으로서는 ‘설한바가 있다’ ‘없다’, 또는 ‘부처님이 열반하셨다’ ‘열반하시지 아니했다’, 중생의 사리상량으로서는 백년을 두고 밤잠을 안자고 따져보았자 해결 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을 통해서 결론 내려질 문제가 아니고 오직 활구참선活句參禪에 의해서만이, 사리상량邪理商量을 사용허지 아니한 일체 중생의 소견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활구참선, 조사선祖師禪을 통해서만이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조실스님께서 일평생을 이 법을 위해서 수행을 하셨고, 수행 하셔서 깨달으심을 열으신 뒤 칠십 칠세(77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실 때 까지 오직 이 한 법을 위해서 설하셨습니다.
생사 없는 속에,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수용受用을 하셨습니다.
무엇이 그러면 생사生死 없는 도리道理냐?
아까 조실스님께서 최초에 읊으신 게송,
‘대바람, 대나무 숲에 바람이 지내가고 젓대소리가 울려오는...’
무술년戊戌年 동짓달(11월) 열엿샛날(16일) 고고呱呱의 성聲을 울리시면서 이 세상에 태어나셔가지고 칠십칠년(77년)을 사시다가 갑인년甲寅年 섣달 초이튿날(12월 2일) 열반涅槃에 드신 그동안에, 보고 듣고 배고프믄 잡숫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이 전체全體가 바로 그것이 생산데, 생로병사生老病死인데, 그 생로병사를 여의지 아니하고 ‘생로병사生老病死 고대로가 생사生死 없는 열반涅槃의 경지境地인 것’입니다.
이것은 생사生死와 열반涅槃 사이가 백지 한 장 차이도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생사를 조끔이라도 띠어버리고 멀리 허고서 열반을 증득證得헌다고 허며는, 그 사람은 영원히 涅槃의 경지境地를 맛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생사生死가 바로 열반涅槃인 것입니다.
중생은 그 이치를 아지 못하기 때문에 생사라 하며는 생사에 대해서 알음알이를 내고, 열반이라 하면 열반에 대해서 알음알이를 내고, 그래서 그 이름따라서... 이름을 보자 모냥을 보자마자,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중생의 알음알이가 물결치기 때문에 점점 생사의 깊은 물구덩이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던지 무엇을 듣던지 그 당체當體가 바로 남이 없는 도리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당체當體를 여의고 찾는 디에서 우리는 바로 생사 없는 열반의 경지 속에 있으면서 열반을... 열반의 경지를 모르고, 열반 속에서 스스로 생사의 괴로움을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물속에 들어앉아서 물을 찾기 때문에 그 사람은 노상 목마른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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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조실스님의 생신추모재生辰追慕齋를 맞이해서 평소에 조실스님을 친견親見하신 분은 말할 것도 없고, 친견하시지는 못했지마는 조실스님의 육성肉聲을 생시... 생존시生存時나 다름없이 언제나 들을 수 있으므로, 우리는 자주자주 조실스님의 법문을 가슴속 깊이 새겨듣고 명심해서 기어코 생사 없는 도리를 금생(今生)에 이 몸으로 체달體達을 해서, 영원永遠한 안락安樂을 누리고 나아가서 모든 중생衆生을 남음 없이 제도濟度 헐 때까지 우리의 수행이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돈독敦篤해지기를 모두 다 같이 깊이 다짐하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 송담선사 법문 59번.